소설리스트

20권. 새로운 가족 (221/225)
  • ┃새로운 가족

    현성은 신혼여행을 끝마치고 다시 지구로 복귀했다.

    마음 같아서는 몇 달 수준이 아니라 몇십 년 수준으로 신혼여행을 즐기고 싶었지만, 집안일이 생긴 관계로 그럴 수가 없었다.

    바로 현성의 누나 최현지의 결혼 소식 때문이었다.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결혼을 하네.”

    현성이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혹시 속도위반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졌다.

    “그럴 수도 있죠. 두 사람이 사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서로 알고 지낸 지는 상당히 오래됐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사귀는 시간도 없이 결혼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렇기는 하죠.”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선선히 동의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현성과 루시아가 더했다.

    연애 기간도 없이 곧바로 결혼에 골인했으니까 말이다.

    뭐, 그렇기에 신혼여행이라는 핑계로 여러 차원을 돌아다니며 연애하는 기분을 즐긴 거지만 말이다.

    “누나 결혼식 보고 우리 다시 여행 가요.”

    현성의 말에 루시아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현성과 루시아는 직업이 없는 백수나 마찬가지였다.

    이모탈 길드는 강선영 길드장을 비롯한 간부진이, 아라는 누나 최현지가 잘 운영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다른 차원들도 현성의 휘하에 있는 신하들이 알아서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다.

    현성과 루시아는 수많은 이들의 꿈인 돈 많은 백수의 삶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시간과 재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번에는 아버님이랑 어머님도 모시고 가는 게 어때요?”

    “부모님도요?”

    “네.”

    “음, 제가 한번 여쭤볼게요.”

    현성은 부모님을 모시고 차원 여행을 꽤 길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좋아하셨었지.’

    루시아가 먼저 말을 꺼낸 만큼 부모님이 허락하신다면 함께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솔직히 현성 개인적으로는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하는 것보다 루시아와 단둘이 여행하는 게 더 좋았다.

    현성과 루시아는 아직 뜨겁게 타오르는 신혼이다.

    그러니 단둘이 있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게 당연했다.

    하나 현성은 루시아만 좋다면 부모님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생각이었다.

    ‘둘만의 여행은 나중에 언제라도 갈 수 있으니까.’

    현성과 루시아의 수명은 무한하다.

    그러나 부모님이나 누나는 아니었다.

    언젠가는 현성의 곁을 떠날 것이다.

    그건 신들도 어찌하지 못하는 강대한 힘과 권능을 가진 현성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순리였다.

    그러니 현성이 할 수 있는 건 그때가 오기 전까지 가족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밖에 없었다.

    먼 훗날 후회하지 않도록.

    아니, 어차피 무조건 후회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도록 말이다.

    * * *

    “결혼 축하해, 누나.”

    “고마워, 현성아.”

    현성의 말에 누나 최현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지?’

    그런 최현지의 모습에 현성은 적잖이 당황했다.

    ‘목소리에서 행복함이 가득하네.’

    얼굴에도 싱글벙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누나가 아닌 것 같아.’

    이런 최현지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평소의 까칠하고 냉철한 성격은 도대체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아, 그런데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는 거야? 혹시 속도위반한 건 아니지?”

    현성이 최현지에게 물었다.

    순간 웃는 상이던 최현지의 표정이 시베리아 벌판처럼 차갑게 변했다.

    ‘괜히 물어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는데,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는 힘들 것 같았다.

    “빨리는 무슨 지금도 늦은 거지. 그리고 속도위반은 아니란다.”

    그때 어머니의 입에서 답변이 나왔다.

    “속도위반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아니더라.”

    어머니가 아쉬움이 짙게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리셨다.

    “엄마! 그럼 엄마는 딸이 속도위반으로 결혼했으면 좋겠어?”

    어머니의 말에 누나 최현지가 소리를 빽 하고 질렀다.

    “어, 엄마는 그랬으면 좋겠어.”

    그러나 현성과 최현지 남매의 어머니인 박미숙 여사는 너무나도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가 그동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얼마나 손주가 보고 싶은 줄 아니? 친구들은 손주를 넘어서 증손주를 보는데.”

    어머니의 말에 현성과 최현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그동안 손주 꿈도 못 꿨다. 아니, 손주가 뭐야. 자식 놈들이 결혼도 안 했었는데. 그래서 이번에 현지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혹시 손주가 생긴 건 아닌가 하고 기대했는데 아니란다. 내가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어머니의 잔소리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걱정하지 마! 금방 손주 안겨 줄 테니까!”

    그때 더 이상 잔소리를 참지 못한 현지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머, 너 애 낳을 생각은 있었구나?”

    어머니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하지. 그럼 내가 애 안 낳는다고 할 줄 알았어?”

    “난 네가 결혼한다고 할 줄도 몰랐다. 너 워커홀릭이잖아.”

    “그 정도는 아니거든.”

    “그래, 잘 생각했다. 최대한 빨리 가져. 네 나이면 엄청 노산이야.”

    어머니의 말에 누나 최현지의 이마에 힘줄이 빡 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신체 나이는 아직 20대거든!”

    “비약 먹어서 신체 나이가 젊으면 뭐 하니, 어차피 평생 생성되는 난자의 숫자는 정해져 있는데. 너 그러다 폐경 오면 애 갖고 싶어도 못 갖는다.”

    어머니의 팩트 폭력에 누나 최현지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게 정말이야?”

    “그럼, 신체 나이가 아무리 젊어도 난자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도 없어.”

    “나 일한다고 건강관리도 안 했는데 어떻게 하지?”

    누나 최현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은 늦지 않았어.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가져.”

    어머니의 재촉에 누나 최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플레이어나 비약 섭취한 사람한테는 해당 사항 없는 일인데.’

    현성이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열렬히 토론하는 모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일반인이 평생 배란하는 난자의 숫자는 고작 몇백 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본래 가지고 있는 난자의 숫자는 무려 수백만 개.

    성장하면서 점점 줄어들기는 하지만 비약을 먹어 신체 나이가 젊어지면?

    난자가 더 이상 줄어들지 않는다.

    즉, 비약을 잔뜩 섭취한 누나 최현지는 나이 먹었다고 임신 못 할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플레이어 중에는 백 살이 넘어서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쉽게 말해 박미숙과 최현지 모녀가 하는 걱정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다.

    현성은 어머니와 누나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엄마, 그게 플…….”

    아니, 열려고 했다.

    어머니의 강력한 눈빛 공격을 받아 중간에 멈춰 버렸지만 말이다.

    ‘알고 계셨구나.’

    어머니의 반응을 보니 이미 알고 있는 정보인 듯싶었다.

    ‘일부러 그러신 거구나.’

    손주를 하루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누나에게 거짓 정보를 흘린 것 같았다.

    ‘조카라.’

    현성은 조만간 조카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나도 결정을 해야 하는데.’

    현성도 2세를 낳을지 말지 결정을 해야 했다.

    원래 현성은 어린아이들을 좋아했다.

    또 결혼하면 빨리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현성과 루시아의 신체 나이는 최전성기인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고정되어 있다.

    당연히 아이를 낳기를 원한다면 언제든지 낳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태어난 자식이 부모보다 더 빨리 늙는다는 점이다.

    ‘길어야 몇백 년이야.’

    온갖 비약을 먹이고 스텟을 늘려 줘도 인간이 타고난 수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건 불가능했다.

    언젠가 부모님이나 누나와 헤어진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가끔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런데 무조건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떠나는 게 확실시된 상황이라면?

    그 상황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상태라면?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크로우 그놈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 수는 없지.’

    크로우는 자식들을 자신의 세력을 키워 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아내를 두었고 그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자식을 낳았다.

    아내나 자식들이 늙어 죽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새로운 아내를 맞이해 자식을 낳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피붙이를 가족이 아니라 도구로 생각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모두에게 버림받았지.’

    크로우가 자신의 가족들을 도구로 삼았듯 가족들 역시 크로우를 가장이 아닌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황이 어려워지자 곧바로 버림받은 것이다.

    현성이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어머니와 누나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 * *

    누나 최현지의 결혼식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애초에 최현지 가족과 백우신의 가족은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당연히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그리고 드디어 상견례 날짜가 잡혔다.

    ‘이제 진짜 우신이가 매형이 되어 버렸네.’

    언젠가 이렇게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물론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가족이 늘어나네.’

    백우신은 현성에게 친동생 같은 존재다.

    한데 친동생 같은 존재가 매형으로 변하며 진짜 한 가족이 되었다.

    “네 엄마랑 현지는 언제 온다니?”

    아버지가 현성에게 물었다.

    “금방 온다고 했어요.”

    현성이 짧게 대답했다.

    물론 어머니의 금방은 현성이 알고 있는 금방과 달랐다.

    ‘그래도 오늘까지 늦지는 않겠지.’

    요즘 엄마와 누나는 결혼 준비로 무척이나 바빴다.

    그래도 오늘은 늦지 않을 것이다.

    바로 상견례 날이었으니까 말이다.

    “새아가는?”

    “엄마랑 누나랑 같이 오는 것 같아요.”

    현성의 대답에 아버지의 시선이 백우신에게 돌아갔다.

    “백 서방, 사부인이랑 사돈처녀는 언제 온다고 했나?”

    “금방 온다고 했습니다.”

    백우신의 대답을 끝으로 세 남자의 대화가 끝났다.

    ‘뭐, 그렇게 준비할 게 많다고.’

    남자들은 그저 정장 차려입고 오면 그만인데 여자들은 준비할 게 많은 것 같았다.

    사실 상견례라고는 해도 워낙 가족같이 지내 오던 사이라 큰 어색함이 없었다.

    애초에 상견례 참석자 자체가 평소에 모여 밥을 먹던 멤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잠시 후.

    엄마와 루시아가 누나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도착했다.

    차 안에는 백우신의 어머니와 여동생도 함께 타고 있었다.

    ‘같이 오시는 거였구나.’

    평소에도 양쪽 집안의 여자 다섯은 종종 몰려다녔다.

    그렇지만 상견례 장소에 함께 올 줄은 몰랐다.

    ‘사실 이렇게 격식 차릴 필요도 없는데.’

    그냥 평소처럼 집에 모여서 밥 먹으며 결혼식 날짜 잡으면 그만이긴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격식을 차리기를 원하셨다.

    “오셨군요, 사부인.”

    “예, 사돈. 너무 늦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다 같이 오신 건데요.”

    아버지와 백우신의 어머니가 격식을 차리며 대화를 했다.

    ‘평소 친구처럼 지내시던 사이셨는데 저러시니까 좀 어색하네. 뭐, 금방 익숙해지겠지.’

    상견례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곧바로 식당 안으로 들어갔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결혼식 날짜를 정했다.

    결혼식 날짜는 금방 정해졌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우리 현지가 나이가 있어서 아이는 최대한 빨리 가졌으면 좋겠어요. 현지도 그러고 싶어 하고요. 백 서방 생각은 어때?”

    어머니가 백우신을 백 서방이라고 불렀다.

    “저도 그렇습니다, 장모님.”

    백우신은 어머니를 장모님이라고 불렀다.

    ‘아, 어색해.’

    현성은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적잖은 어색함을 느꼈다.

    그러나 현성이 어색해하거나 말거나 어른들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다.

    주로 새신부인 최현지와 새신랑 백우신에게 애를 빨리 가지라고 구박하는 내용이었다.

    ‘역시 나이를 드시면 다 똑같다니까.’

    새신랑과 새신부가 얼굴을 붉히면서도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니 현성에게 조만간 조카가 생길 것 같았다.

    ‘내가 외삼촌이 된다는 말이지.’

    뭔가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가 이어졌다.

    양가 어른들은 새신부와 새신랑을 놀리기 바빴다.

    그때였다.

    “욱! 우웩!”

    헛구역질이 나왔다.

    순간 대화가 정지되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헛구역질을 한 상대에게 쏠렸다.

    헛구역질을 한 사람은 새신부인 최현지도 아니었고 한창 신혼인 루시아도 아니었다.

    갑자기 헛구역질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현성의 어머니 박미숙 여사였다.

    “엄마.”

    최현지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박미숙 여사를 주시했다.

    “아니, 그냥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서.”

    “비약 덕분에 초인이 된 엄마가 속이 울렁거릴 일이 있어요?”

    최현지의 말에 박미숙 여사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일단 이거 드세요.”

    최현지가 상비용으로 들고 다니는 엘릭서 한 병을 박미숙 여사에게 넘겼다.

    “응.”

    박미숙 여사가 엘릭서를 마셨다.

    “아, 이제 다 나은 것 같아.”

    박미숙 여사가 그 말과 함께 다시금 젓가락을 들어 반찬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 순간.

    “우욱!”

    박미숙 여사가 다시금 헛구역질을 했다.

    “당장 산부인과부터 가 봐요, 엄마.”

    최현지의 말에 박미숙 여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가 갑자기 산부인과를 왜 가?”

    “그걸 몰라서 물어요?”

    “그냥 나이 먹어서 그런 거야.”

    “엄마 신체 나이는 30대거든요. 그리고 엘릭서를 먹었는데 왜 계속 속이 울렁거려요?”

    “그, 그러게.”

    “엄마 혹시 요즘 몸 아픈 적 있어요?”

    최현지의 말에 박미숙 여사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근육통이랑 몸살기가 조금 있기는 한데.”

    “지금도 그래요?”

    최현지의 물음에 박미숙 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그건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엘릭서는 만병통치약이다.

    모든 질병을 가볍게 완치시킨다.

    그러나 질병이 아니라면?

    당연히 엘릭서로 완치될 리가 없었다.

    “일단 산부인과부터 가 봐요.”

    “얘는 지금 어떻게 산부인과를 가니.”

    최현지의 말에 박미숙 여사가 눈을 부라렸다.

    상견례 중에 산부인과라니.

    “사부인 어서 가 보세요. 어차피 날도 잡았잖아요.”

    백우신 어머니의 말에 박미숙 여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당장 가요.”

    최현지가 박미숙 여사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상견례에 참석했던 이들이 우르르 산부인과로 몰려갔다.

    그리고 그 결과.

    “축하드립니다. 임신 5주 차십니다.”

    산부인과 의사의 축하 인사를 받을 수 있었다.

    난리가 났다.

    최현지는 물론 현성도 적잖이 당황했다.

    설마 마흔을 넘어 쉰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동생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증손주를 볼 나이에 자식을 보게 되자 어안이 벙벙했다.

    “축하드립니다, 사돈.”

    “축하드립니다, 장인어른, 장모님.”

    “축하드려요, 아버님, 어머님.”

    백우신의 어머니를 시작으로 백우신과 루시아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의 얼굴은 뻘겋게 달아올랐고…….

    “크흠.”

    아버지는 멋쩍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셨다.

    “엄마, 아빠, 정말 대단하시네요. 축하드려요.”

    현성은 엄지손가락을 척 하고 들어 올리며 축하해 줬고.

    “하, 이 나이에 동생이라니. 그래도 다행이네요. 자칫 잘못했으면 족보 제대로 꼬일 뻔했는데.”

    최현지는 그나마 삼촌 또는 이모가 조카보다 먼저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런데 누나도 바로 아이 가질 거라고 했는데. 그럼 동갑 아닌가?’

    결혼 후 허니문 베이비가 생긴다고 가정하면, 삼촌 또는 이모가 조카와 동갑인 상황이 발생할 것 같았다.

    * * *

    누나 최현지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현성의 하나뿐인 친누나.

    거기다 전 차원을 아우르는 초거대 기업 아라의 회장.

    백우신 역시 지구 내에서는 최상위 플레이어였다.

    당연히 하객은 미어터졌다.

    거의 현성의 결혼식에 버금가는 규모로 식을 치른 최현지와 백우신은 신혼여행에서 바로 허니문 베이비를 갖게 되었다.

    이대로 아이가 태어난다면?

    현성의 예상대로 삼촌 또는 이모와 조카가 동갑인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먼저 어머니가 출산을 했다.

    “응애! 응애!”

    어머니는 건강한 여자아이를 낳았다.

    ‘다행이네.’

    내심 걱정했던 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미숙 여사는 엄청난 초고령 출산이었지만 무난히 순산했다.

    사실 순산을 안 하기도 힘들었다.

    최고 수준의 의료진은 물론 최상위 힐러 플레이어를 동원하고 그것도 모자라 엘릭서를 포함한 온갖 아이템들을 사용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했으니까 말이다.

    또 고령이라고는 하지만 육체 나이는 30대였다.

    “하하하, 네 이름은 최현아다!”

    아버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셨다.

    어머니도 새롭게 얻은 딸을 품에 안고 환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날 이후.

    현성은 동생 바보가 되었다.

    ‘너무 예뻐.’

    갓 태어난 현성의 여동생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석 달 후.

    “응애! 응애!”

    누나 최현지가 출산을 했다.

    건강한 여자아이였다.

    누나 최현지와 매형 백우신은 뛸 듯이 기뻐했다.

    “하하하! 드디어 손주를 보는구나.”

    “너무 예쁘다, 우리 손녀.”

    아버지와 어머니도 드디어 손주를 보셨다고 기뻐하셨다.

    현성도 기뻤다.

    ‘한 번에 가족이 둘이나 들었네.’

    여동생과 조카가 생겼다.

    조카는 여동생만큼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기쁜 만큼 현성의 속내는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 * *

    “오빠!”

    “삼촌!”

    두 명의 여자아이가 우다다다 달려와 현성의 품에 안겼다.

    “하하하, 현아랑 소희 오늘도 유치원 잘 다녀왔어?”

    “네! 오늘 그림 그렸는데. 엄마랑 아빠도 그리고, 오빠랑 새언니랑 언니랑 형부랑 소희도 그렸어요!”

    여동생 최현아가 칭찬해 달라는 듯 힘차게 외쳤다.

    “삼촌, 나도 그림에 가족들 그렸어. 엄마랑 아빠랑 삼촌이랑 이모랑…….”

    그러자 조카인 백소희가 지지 않겠다는 듯 종알종알 입을 열었다.

    현성의 여동생인 최현아와 조카인 백소희는 같은 유치원을 다녔다.

    이모와 조카가 나란히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최현아와 백소희는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이 되었는데, 이모랑 조카 사이가 아니라 사이좋은 자매처럼 보였다.

    ‘시간이 엄청 빠르네.’

    현성은 자신의 품에 안겨 종알종알 떠드는 여동생 최현아와 조카 백소희를 바라봤다.

    눈도 뜨지 못하고 포대기에 싸여 꿈틀거리던 게 엊그제 같았다.

    뒤집기를 하고 바닥을 기어 다니고 걸음마를 하고.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일 같은데 ‘어어’ 하는 사이에 어느덧 일곱 살이 되었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된 것이다.

    최현아와 백소희가 이렇게 성장한 걸 보면 뿌듯하면서도 언제 이렇게 컸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근데 삼촌이랑 숙모는 왜 아기가 없어? 나도 동생 갖고 싶은데.”

    그때 백소희가 순수한 눈망울로 현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맞아! 나도 조카가 있었으면 좋겠어. 소희 말고 아기 조카!”

    백소희 말에 최현아도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순간 현성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현아야, 소희야, 이리 와.”

    그때 어머니가 나서서 최현아와 백소희를 데리고 갔다.

    “음…….”

    아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있지만.

    현성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 * *

    “현아하고 소희가 너무 예뻐요.”

    “나도 그래요.”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오늘 현아랑 소희랑 같이 놀이터에 갔는데…….”

    루시아가 현아와 소희와 놀아 주며 겪었던 일들에 대해 신이 나서 이야기를 했다.

    현성은 입가에 내내 미소를 지으며 루시아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현성과 루시아는 좋은 오빠와 새언니였고 좋은 외삼촌과 외숙모였다.

    부모님과 누나 부부를 대신해 애들을 봐 주는 경우가 상당히 잦았다.

    사실 아이를 기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신경 쓰고 걱정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 아이들은 수시로 사고를 치고 말을 엄청나게 안 듣는다.

    당연히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화병이 나기 일쑤고 ‘내 자식이니까 참고 키우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또 걱정도 커진다.

    친구들은 잘 사귀고 있는지.

    성격이 모나지는 않은지.

    수도 없이 많은 걱정을 하며 아이를 키운다.

    현성과 루시아도 그 점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런 일에 단점만 있겠는가?

    온갖 고생을 하며 키우지만 그 아이들이 커 나가며 주는 기쁨 역시 적지 않다.

    현성과 루시아는 최현아와 백소희를 돌보며 간접적으로 부모의 아이 키우기를 경험했다.

    그리고 현성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루시아는 아니었다.

    “전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현성이 입을 열었다.

    “진심이에요?”

    “네, 요즘 현아랑 소희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해요. 어머님이랑 형님을 보면서도 그렇고요.”

    “견딜 수 있겠어요?”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늙어 간다.

    그리고 죽는다.

    그 고통을 과연 견딜 수 있을까?

    현성은 아직 자신이 없었다.

    “닥치지 않은 일을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중간에 해결책이 생길 수도 있고 우리 후손들은 계속해서 살아가잖아요.”

    루시아는 직계 후손이 없다.

    그러나 남동생의 후손은 계속해서 그 혈통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루시아는 지금도 그들을 계속해서 돌봐 주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행복 역시 적지 않았다.

    “거기다 우리 또한 영원히 불멸하는 존재는 아니잖아요.”

    1레벨 플레이어의 육체는 포인트만 있으면 영원불멸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은 아니었다.

    수많은 1레벨 플레이어들이 영원불멸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신이 된다.

    수천수만 년의 시간이 흐른다면?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할지 현성도 알지 못했다.

    “당장 아이를 갖자는 게 아니에요. 한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는 거죠.”

    “알았어요. 한번 고민해 볼게요.”

    현성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강해졌다.

    * * *

    ‘이번에는 뭐가 나오려나?’

    현성이 습관처럼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했다.

    유용한 스킬이 나온 적도 많았고 정말 쓰잘머리 없는 스킬이 나온 적도 많았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철 같은 몸 – 일반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재생 – 일반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후략……

    역시나 쓸모없는 스킬들이 잔뜩 나왔다.

    현성은 무시하고 계속해서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공유 – 유일 일반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유일 등급이네?’

    오래간만에 건질 만한 게 나왔다.

    유일 등급 스킬.

    전 차원에 오직 현성만이 소유가 가능한 스킬이 뜬 것이다.

    현성이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스킬 정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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