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권. 외전-동창회 (218/225)
  • ┃외전-동창회

    현성의 결혼식에는 많은 하객들이 참석한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건 역시 플레이어들이었다.

    1레벨 플레이어부터 현성의 휘하에 속해 있던 이들 그리고 과거 인연을 맺었던 플레이어 협회 관계자들까지…….

    하나 현성은 하객들을 다 플레이어로만 채우지는 않았다.

    플레이어들은 따지고 보면 현성의 직장 동료 개념이었다.

    가족과 직장 동료 말고도 결혼식에 초대해야 할 존재들이 있었다.

    바로 친구들이었다.

    “현성아, 얼추 다 온 것 같은데?”

    윤성호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해진 시간에서 벌써 5분이나 지났다.

    지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부른 사람 중 거의 90% 이상은 다 온 것 같았다.

    “다들 만나서 반갑다! 오늘은 내가 사는 거니까, 다들 마음껏 먹고 즐겨라!”

    “와아아아아!”

    현성의 말에 친구들이 환호성을 토해 냈다.

    인사말을 끝낸 현성이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이야, 다들 오랜만이다.”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 자리에는 초, 중,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대학교 때 친구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오랜만이다, 현성아.”

    친구들이 환한 표정으로 현성을 반겼다.

    “그동안 잘 지냈어?”

    “나야 똑같지, 뭐.”

    “그보다 옆에 계신 분은?”

    친구들이 현성의 곁에 있는 루시아를 보며 물었다.

    “이번에 현성 씨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 루시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제수씨. 저는 박성욱이라고 합니다. 현성이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저는 김승우라고 합니다. 현성이 대학교 동기입니다.”

    친구들이 앞다투어 루시아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루시아에게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루시아는 다른 차원의 인간이다.

    그러나 굳이 지구인들 중 가장 비슷한 인종을 찾자면, 바로 백인이었다.

    그것도 보기 드문 백금발에 사파이어처럼 푸른 눈동자를 가진 늘씬한 몸매를 가진 10대 후반의 백인 소녀.

    루시아의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외형만 가지고도 남자들로서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여보.”

    “실례되게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그러다 보니 현성의 친구들은 아내의 날카로운 눈빛과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는 정말 좋겠다.”

    “그러게 말이야. 제수씨가 현성이보다 연상이라고 했는데, 전혀 그런 티가 안 나잖아.”

    “뭐, 현성이만 해도 우리랑 또래로 보이냐? 내 아들이라고 해도 믿겠다.”

    현성의 친구들이 부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친구들이 아내에게 구박을 받거나 말거나, 자기들끼리 부러워하거나 말거나, 현성은 계속해서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간 자주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매년 자리를 마련해 동창회를 열었다.

    이게 다 윤성호 덕분이었다.

    현성은 과거 윤성호와 재회한 이후 종종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다 동창회 이야기가 나왔다.

    윤성호는 유치원을 시작으로 초중고를 거쳐 대학교까지 같이 다닌 죽마고우였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성의 초중고 동창들은 물론 대학교 동창에게까지 연락이 닿을 수밖에 없었다.

    윤성호는 현성에게 동창회에 나오라고 계속해서 꼬드겼다.

    이에 현성은 못 이기는 척 동창회에 참석했다.

    작은 사건 사고 들이 있기는 했지만…….

    동창회는 꽤 즐거웠다.

    그리고 현성은 그날 이후 꽤 넉넉한 돈을 동창회 경비로 투척했다.

    초등학교 동창회, 중학교 동창회, 고등학교 동창회, 대학교 동창회 모두 말이다.

    동창들에게 경조사가 생기면 여유가 있을 때는 직접 찾아갔다.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바쁠 때는?

    윤성호를 통해 봉투를 보냈다.

    꽤 넉넉한 금액을 넣었기 때문일까?

    항상 고맙다는 연락이 왔다.

    현성은 윤성호 덕분에 친구들과의 인맥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다.

    동창회에 참석은 하지 않지만 넉넉한 회비를 내고 경조사도 모두 챙겨 주니 자주 보지는 못하더라도 인맥이 계속해서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

    ‘그간의 노력이 이제야 빛을 보는구나.’

    친구들의 결혼식은 둘째 치고 친구 아들, 딸 들의 결혼식이나 손주 돌잔치에 봉투를 보낼 때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드디어 현성도 장가를 간다.

    그간의 노력이 빛을 보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아, 현성의 결혼식에는 축의금이 없었다.

    그냥 와서 먹고 마시다 가면 그만이었다.

    현성은 그저 지금까지 친구들과의 인맥을 유지하고 있고 그들이 자신의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었다.

    “혀, 현성아, 안녕.”

    그때 한 친구가 조심스럽게 현성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래, 왔냐?”

    현성의 말에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왔으니까 재미있게 놀다 가라. 사고는 치지 말고.”

    “응, 알았어. 걱정하지 마 얌전히 있다가 밥만 먹고 갈게.”

    “그렇게 해라.”

    현성이 그 말을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친구들에겐 살갑게 대했던 현성의 태도를 생각하면 상당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이상할 건 없었다.

    방금 전 만났던 녀석은 현성에게 있어서만큼은 친구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냥 다른 녀석들과 친구라서, 동창회에 속해 있어서 부른 것뿐이다.

    “저 자식은 낯짝이 참 두껍네.”

    윤성호가 현성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다른 녀석들은 그날 이후 한 번도 동창회에 나온 적이 없는데, 저 녀석은 꼬박꼬박 참석한단 말이지. 아마 너 때문이겠지?”

    “그렇겠지.”

    현성은 엄청난 유명인이었다.

    아니, 유명인을 넘어서 함부로 다가갈 수조차 없는 인물이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 같은 강국의 국가원수들도 현성에게 편하게 말을 놓지 못한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친구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현성의 이름을 편하게 부르고 손쉽게 말을 놓았다.

    이건 그 자체로도 엄청난 힘이었다.

    현성의 친구, 현성의 동창.

    굳이 현성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큰 힘이 된다.

    경조사가 생겼는데 대통령 이름으로 화환이 오면 어떨까?

    그것도 ‘축하한다, 친구야!’라는 친근한 문구와 함께 말이다.

    그 자체만으로 권력이었다.

    아무리 직장 상사라도 대통령의 친구에게 막말을 하고 구박을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대통령 친구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은근히 더 챙겨 줄 수밖에 없었다.

    한데 대통령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인물에게서 그런 화환이 온다면?

    고작 임기가 5년에 불과한 대통령이 아닌 영원히 지구를 지배할 게 확실한 종신 군주의 친구라면?

    아무리 간 큰 사람이라도 절대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어디 그뿐일까?

    현성은 친구들과 만나면 적정 수준에서 자신이 줄 수 있는 도움을 준다.

    가족들 중 누군가가 큰 병에 걸렸거나 사고가 났는데 병원비가 없다?

    대신 내준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에 달하는 병원비라도 현성에게는 고작 친구에게 천 원짜리 쭈쭈바를 사 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뭐, 다친 경우에는 즉사가 아닌 이상 그냥 힐러 한 명 보내 주면 그만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 외에도 현성이 용인하는 한도에서 크고 작은 도움을 줬다.

    단 현성의 친구로서 누릴 수 있는 이득은 거기서 끝이었다.

    현성을 속인다면?

    그게 아니라 친구라는 이유로 현성과의 친분을 자랑하며 다른 이들을 속이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 한다면?

    그에 따른 제재가 주어진다.

    제재는 간단했다.

    동창회에서의 제명.

    그게 끝이었다.

    얼핏 보면 ‘고작 그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벼운 제재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동창회에서 제명당한다는 것은 더 이상 현성의 친구가 아니게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말이다.

    굳이 현성이 그 이상의 제재를 가할 필요는 없다.

    동창회에서 제명당한 순간, 속아서 이용당한 인물들이 알아서 보복했으니까 말이다.

    그간 받았던 소소한 이득들이 사라지는 건 당연했다.

    시범 케이스가 하나 있었기에 다른 동창들은 철저하게 규칙을 지켰다.

    ‘그 녀석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지.’

    현성과 같은 학교를 다녔고 서로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친분도 없는 놈이 하나 있었다.

    한데 그놈이 현성의 이름을 팔아 대놓고 사기를 치고 해외로 튀었다.

    사기 친 금액도 그리 크지 않았다.

    고작 수백억(?)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

    사실 해외로 도주한 사기꾼은 잡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현성의 이름을 팔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전 세계가 나서서 그놈을 추적했고, 도주한 지 3일 만에 잡혀서 한국으로 송환되었다.

    일반적인 사기라면 경제사범에 대해 관대한 한국의 특성상 중형이 나오기는 힘들었다.

    아무리 범인이 쓰레기라도 검사가 사형이나 종신형을 구형할 수 없었다.

    그건 판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기라는 행위로 수십 명이 죽고 수백, 수천의 피해자가 생겨도 형량은 정해져 있었다.

    피해 입은 금액 역시 황제 노역이라는 미명하에 너무도 손쉽게 줄어든다.

    사실 현성이 직접 나서면 헌법을 무시하는 판결을 내리게 압력을 가할 수도 있었다.

    또 거기에 아무도 태클을 걸지 못할 게 확실했다.

    그러나 현성은 그러지 않았다.

    그냥 헌법을 바꿔 버렸다.

    일단 사기죄의 최고 형량을 사형으로 올려 버렸다.

    또 피해 금액이 적어 10년이나 20년의 형량을 살더라도 노역으로 피해 금액을 변제하지 못하면 형량이 계속 늘어나게 만들어 버렸다.

    쉽게 말해 피해 금액을 변제하지 못하면 죽거나 평생 감옥에서 강제 노역을 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헌법을 바꾸는 과정은 합법적으로 그리고 엄청나게 신속한 속도로 이루어졌다.

    현성의 동창 한 명이 사기를 침으로 인해 정재계의 수많은 인사들이 피똥을 쌌다.

    과거라면 전관예우 변호사를 사서 손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한데 법이 바뀌면서 최고 사형까지 그 형량이 올라갔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사기나 횡령한 금액을 변제하지 않으면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했다.

    그 결과 원한을 품은 정재계 인사들이 현성의 동창에 대한 실질적인 형태의 보복에 들어갔다.

    현성은 건드릴 수는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결과 현성의 동창은 사기 친 금액을 모두 변제하고 감옥을 나온 후에도 엄청나게 힘겹고 괴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

    이런 시범타가 있었기에 현성의 동창들은 감히 헛짓거리를 하지 못했다.

    현성은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소소한 고민들을 해결해 주었다.

    그러다 불현듯 처음 동창회에 참석했을 때 발생했던 소소한 사고가 떠올랐다.

    ‘그때 그놈은 지금쯤 뭐 하고 있으려나?’

    현성의 머릿속에 처음 동창회에 참석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 * *

    ‘갈까, 말까?’

    현성은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할까 말까 계속 고민했다.

    윤성호는 이틀 뒤에 열리는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오라고 일주일 넘게 현성을 조르고 있었다.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가야 할까라는 마음도 있었다.

    ‘가자.’

    잠시 고민하던 현성이 결국 결정을 내렸다.

    현성도 오래간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간 현성이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살았던 것은 아버지의 병원비를 버느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창 일에 열중할 때는 친구들과 술 한잔 할 시간도, 돈도 없었다.

    ‘뭐, 다 핑계지.’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대학교에 다니며 평범하고 행복한 캠퍼스 라이프를 보내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그건 다 옛일이 되었다.

    아버지는 병이 완치되어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다.

    현성은 이무기 레이드, 오크 대족장 레이드, 오크 주술사 레이드를 통해 최상위 플레이어로의 입지를 단단히 다졌다.

    돈도 있고 시간의 여유도 있다.

    플레이어라는 직업도 얻었다.

    굳이 친구들을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참석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틀 후.

    현성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동창회 장소로 향했다.

    차는 굳이 가지고 가지 않았다.

    어차피 술을 마실 게 뻔하다.

    주차 문제로 고생하고 대리운전을 부르느니, 택시를 이용하는 게 속 편했다.

    ‘여긴가?’

    현성이 고깃집의 간판을 확인했다.

    딸랑!

    작은 방울 소리와 함께 현성이 고깃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현성의 눈에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왔다.

    ‘민우, 성은이, 지철이.’

    약간 어색하기는 하지만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어?”

    “현성이 아니야?”

    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들 역시 현성을 알아봤다.

    “성호가 올 거라고 하더니 진짜 왔구나!”

    “오래간만이다! 현성아!”

    친구들이 반가운 얼굴로 현성을 반겼다.

    “아, 그래, 오랜만이다.”

    현성이 어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버지가 병으로 입원하신 후 성호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들이었다.

    “너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짜식이 빠져 가지고. 그동안 형님들한테 연락도 안 하고 말이야.”

    “이래저래 일이 좀 있어서.”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 후에는 즐거운 토크 타임이 시작되었다.

    주제는 현성이었다.

    왜 번호를 바꾸고 연락을 안 했냐, 대학교는 잘 다니고 있냐, 여자 친구는 사귀었냐 등등.

    온갖 질문이 날아들었다.

    현성은 적당히 대답해 주며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생각해 보면 현성의 사정을 아는 건 대학교 때 친구들뿐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현성의 아버지가 마력역류증으로 병원에 입원했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성호 녀석이 이야기 안 했구나.’

    성호는 현성과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교에 진학했다.

    아버지끼리도 친구이니 모든 사정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은 아니었다.

    물론 성호 외에도 현성과 같은 대학교를 간 고등학교 동창들도 몇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은 상태였다.

    ‘괜히 말할 필요는 없지.’

    이미 다 해결된 일이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징징거리고 싶지는 않았다.

    현성은 대학교를 휴학하고 일을 하고 있다고 적당히 둘러댔다.

    플레이어로 각성했다는 사실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먼저 플레이어로 각성했다는 사실을 말하기가 조금 뻘쭘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현성이 일을 한다는 말에 축하해 주기는 했다.

    그렇지만 굳이 무슨 일을 하는지 연봉이 얼마인지 같은 건 물어보지 않았다.

    관심이 없어서 물어보지 않는다기보다는…….

    일종의 암묵적인 룰인 것 같았다.

    ‘하긴 친구들 사이에 굳이 그런 걸 따질 필요는 없지.’

    결정적으로 동창회는 자칫 잘못하면 자기 자랑 대회가 되기 쉽다.

    특히 한창 취업에 대한 압박이 심할 현성 또래에서는 말이다.

    현성이 조금 일찍 도착했기 때문인지 계속해서 고깃집 문이 열리며 동창들이 들어왔다.

    “현성아, 오랜만이다. 반가워.”

    “너 자주 얼굴 좀 비쳐.”

    남자 동창들은 물론 여자 동창들까지 참석하고 인원이 늘어났다.

    오늘 현성을 초대한 성호 역시 도착했다.

    주최자인 성호가 도착하자 본격적인 동창회가 시작되었다.

    치이이익!

    “한 잔씩 하자!”

    “마셔!”

    고기가 구워지고 술잔이 돌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오래간만에 만난 동창들은 고등학교 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일상적인 관심사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 등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눴다.

    “근데 현성아, 넌 어떻게 하나도 안 늙었냐?”

    “그러게, 오히려 고등학교 때보다 더 어려진 것 같다야.”

    여자 동창들이 현성의 말끔한 피부와 앳되게 보이는 얼굴에 관심을 보였다.

    “너 혹시 피부과 같은 거 다녀?”

    “아니.”

    “그럼 타고난 거야? 진짜 부럽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대화가 후끈 달아오를 때쯤.

    부아아아앙!

    커다란 엔진음과 함께 달려온 람보르기니 한 대가 식당 앞에 멈춰 섰다.

    시끄러운 엔진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람보르기니에 쏠렸다.

    람보르기니의 문이 열리고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은 남자가 차에서 내려 고깃집으로 다가왔다.

    딸랑!

    방울 소리와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현성도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김세호.’

    고등학교 시절 일진 노릇을 하며 다니던 놈이었다.

    김세호의 등장에 대번 동창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 저 자식도 초대한 거야?”

    현성이 오늘 모임의 주최자인 윤성호에게 물었다.

    “아니, 초대한 적 없어. 여태까지 동창회에 참석한 적도 없었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등장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김세호는 악질적인 일진이었다.

    당연히 동창생들의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특히 이 자리에는 고등학생 시절 김세호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친구들도 몇몇 포함되어 있었다.

    “이야! 다들 오랜만이다! 동창회를 하면 날 불렀어야지! 왜 나한테는 연락도 안 했어? 섭섭하다야.”

    김세호가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그 인사를 반갑게 맞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모임의 주최자인 윤성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윤성호의 물음에 김세호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SNS보고 왔지.”

    몇몇 동창생들이 동창회 일정을 SNS에 올렸는데, 그게 사달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왜, 내가 와서 싫어?”

    “그럼 좋겠냐?”

    윤성호의 말에 김세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금방 풀렸다.

    “야, 나도 동창이잖아. 동창회에 참석할 수도 있지. 예전에 내가 좀 실수하긴 했지만, 그건 어려서 그랬던 거잖아. 나도 이제 철들었다.”

    김세호가 그렇게 말하더니 턱 하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왜 돼지고기를 먹고 있냐? 이모!”

    김세호가 서빙을 보는 종업원 아주머니를 불렀다.

    “여기 소고기 종류별로 쫙 깔아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돼지고기를 소고기로 바꾼 김세호가 호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야!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오늘은 내가 다 쏜다!”

    “꺅!”

    “세호야! 진짜야?”

    김세호의 말에 여자 동창들이 환호성을 토해 냈다.

    남자 동창들의 불편했던 표정 역시 환해졌다.

    술과 고기를 공짜로 사 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세호야, 너 로또라도 맞았어? 차도 그렇고 쏘는 것도 그렇고.”

    여자 동창생 중 한 명이 김세호에게 물었다.

    “야! 로또 그거 1등 당첨돼 봐야 세금 떼고 어쩌고 하면 10억도 간당간당해! 그걸 누구 코에 붙인다고!”

    10억을 푼돈 취급하는 김세호의 외침에 동창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나 플레이어로 각성했다!”

    동창들의 집중된 시선을 받으며 김세호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외쳤다.

    “우와! 그게 정말이야?”

    “플레이어로 각성했다니, 좋겠다!”

    “그래서 람보르기니를 타고 왔구나.”

    환호성과 함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김세호의 어깨가 저절로 올라갔다.

    “내가 처음 던전에 갔을 때 있었던 일인데…….”

    그 이후 김세호의 노골적인 자랑이 시작되었다.

    여자 동창들이 노골적으로 김세호에게 달라붙었다.

    남자 동창들 역시 혹시 콩고물이 떨어질까 하는 마음에 김세호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동창회가 두 개의 파로 갈렸다.

    김세호에게 달라붙은 쪽과 달라붙지 않은 쪽으로 말이다.

    “새끼가 허풍은…….”

    그때 김세호에게 달라붙지 않은 쪽에 있던 남자 동창생 한 명이 뭔가 아니꼬운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야, 너 뭐라고 했냐?”

    일진 양아치 출신 김세호가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반응했다.

    “허풍?”

    “내가 뭐 틀린 말 했냐? 사실 플레이어라고 해서 다 람보르기니 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너 혹시 카푸어 아니야? 아니면 렌트한 거라든지?”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플레이어는 일반인에 비해서 엄청나게 고수익을 올린다.

    그렇지만 플레이어도 플레이어 나름이다.

    높은 등급의 스킬이나 희귀한 직업을 얻지 못하면?

    수입 자체는 일반인 고소득자와 큰 차이가 없었다.

    물론 레벨을 올리면 수익은 늘어난다.

    그러나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레벨이 올라가도 중상위 파티에 끼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아이템을 맞추고 스킬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템은 비싸다.

    일반 등급이 무려 수천만 원이나 하고 희귀 등급은 최하 몇억에서 수십억을 호가한다.

    전직을 했는데 좋은 스킬이 나오지 않는다면?

    무기와 방어구를 맞추는 것도 모자라 스킬북까지 구매해야 한다.

    그럴 돈이 없으면?

    자신의 레벨보다 낮은 사냥터에서 노가다를 통해 돈을 모아야 했다.

    플레이어는 수입이 많은 만큼이나 지출도 많은 직업이다.

    또 결정적으로 플레이어는 아차 하는 순간 목이 날아갈 정도로 위험도가 높은 직업이었다.

    고수익은 올릴 수 있지만 그만큼 힘들고 위험한 직업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단점을 감안하더라도…….

    플레이어가 엄청나게 좋은 직업인 것은 확실했다.

    일반 직장인이 평생을 일해도 벌지 못하는 돈을 단시간에 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큭큭큭! 그래그래, 그렇게 내가 부러우면 그냥 카푸어라고 생각하면서 자위해라! 아니면 렌트했다고 생각하든가!”

    김세호가 카푸어 아니냐고 물어본 남자 동창생을 비웃었다.

    “그런데 아쉬워서 어쩌냐, 그런 거 아닌데. 내가 각성하면서 무려 영웅 등급 스킬을 얻었거든. 다음 전직 때는 어쩌면 전설 등급 스킬을 얻을지도 몰라. 그럼 너 같은 놈이 수십 년은 일해야 버는 돈을 단 며칠이면 벌어들일걸.”

    김세호의 조롱에 시비를 걸었던 남자 동창생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다른 동창생들의 얼굴빛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본래 윤성호가 만든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이런 노골적인 조롱이나 자랑은 없었다.

    윤성호가 사람을 가려서 받기도 했고 대다수가 학생이거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초년생들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때가 덜 묻어 있기도 했다.

    그렇기에 항상 분위기가 좋았는데,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김세호가 판을 깨 버린 것이다.

    주최자인 윤성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호야, 너 그냥 가라.”

    윤성호의 말에 김세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야! 그걸 왜 네가 정해?”

    “맞아! 세호도 우리 동창인데 참석할 수도 있지!”

    그때 김세호 주변에 붙어 있던 동창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김세호와 친하게 지내면 콩고물이 떨어지거나 큰 인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주최자인 윤성호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하아!”

    윤성호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고등학교 동창회에서는 되도록 파벌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했다.

    자기 자랑하는 놈들도 없었으면 했다.

    그간 잘 조율을 해 왔는데 갑자기 난입한 김세호 때문에 판이 깨졌다.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았나 보네.’

    윤성호가 허탈한 표정으로 자신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동창들을 바라봤다.

    그때 김세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야, 윤성호.”

    “왜?”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뭐?”

    “그냥 단순히 동창회를 주최했을 뿐이잖아. 그런데 왜 네가 대장처럼 굴어, 건방지게?”

    김세호의 표정이 일진 양아치 시절로 돌아갔다.

    “응? 왜 건방지게 구냐고?”

    김세호가 윤성호의 이마를 검지로 쿡쿡 찍었다.

    “야! 너 너무하는 거 아니야!”

    그때 김세호 쪽에 붙지 않았던 여자 동창생 중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름은 한수정.

    고등학교 때 여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로 예쁜 동창이었다.

    “저 자식, 아직도 철이 덜 들었어. 지가 아직도 일진인 줄 안다니까!”

    “양아치 본성이 어디 가냐?”

    한수정를 시작으로 윤성호와 친한 동창생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김세호에게 붙었던 동창생들이 입을 열었다.

    “먼저 시비를 건 사람은 성호잖아? 그런데 왜 세호한테만 뭐라고 하는 거야?”

    “그러게 다들 너무하는 거 아냐?”

    좋았던 동창회 분위기가 순식간에 개판으로 변했다.

    윤성호파와 김세호파로 나뉘어 설전이 벌어졌다.

    “저 양아치 놈한테 꼬리를 흔들어? 너희들은 자존심도 없냐?”

    “누가 꼬리를 흔들었다는 거야? 세호가 틀린 말 한 것도 없는데 열 내는 성호가 잘못한 거지!”

    다들 술도 먹었겠다 좋은 말보다는 막말이 먼저 나왔다.

    “모두 그만해!”

    그때 윤성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즐겁게 놀자고 모인 자리잖아. 그냥 재미있게 놀고 흩어지자.”

    윤성호는 이 정도에서 사태를 마무리 짓고 싶었다.

    1차는 어차피 다 끝나 간다.

    2차 때 김세호에게 붙은 동창들과 갈라지면 싸우거나 분위기 나빠질 일은 없을 것이다.

    “하! 성호 너 또 완장질 하는구나? 넌 정말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지?”

    윤성호가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김세호가 또 나섰다.

    “너, 오성물산 다니고 있지? 오성맨이라서 이렇게 건방진가?”

    김세호의 말에 윤성호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데 나한테는 그러면 안 되지. 암, 안 되고말고. 너, 내가 어디 소속인 줄 알아? 나 오성길드 소속이야, 인마!”

    “우와! 세호야! 너 오성길드 소속이야?”

    “진짜 좋겠다!”

    김세호파에 붙은 동창들이 재빨리 아부를 떨었다.

    오성길드.

    대기업 오성 그룹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길드로,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길드다.

    “내가 오성물산에 한마디만 하면 넌 그대로 모가지야! 알았어!”

    김세호의 외침에 윤성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성물산은 오성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사냥한 마석과 몬스터 사체를 구매해 판매하는 일을 한다.

    당연히 오성길드의 영향력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윤성호의 경우 파티 단위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오성물산 소속이다.

    흔하디흔한 영업직 일반 직원과 영웅 등급 스킬을 보유한 플레이어가 척을 지면 회사는 과연 누구 편을 들어 줄까?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무조건 영웅 등급 스킬을 보유한 플레이어의 편을 들어 줄 것이다.

    “김세호, 왜 동창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회사 일을 끌어들여?”

    한수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세호에게 소리쳤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게 잔뜩 화가 난 것 같았다.

    “하! 이것들이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네. 왜 동창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회사 일을 끌어 들이냐고? 원래 그런 게 사회고 세상이야, 이 멍청한 것들아. 동창이라고 다 같은 동창이 아니야.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는 거라고. 고등학교 때랑 똑같이 말이야.”

    김세호의 대답에 한수정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쓰레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나이를 먹고도 저럴 줄은 몰랐다.

    하지만 더 이상 쉽게 입을 열지는 못했다.

    그건 윤성호파의 동창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입을 열면 열수록 윤성호에게 더 안 좋은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야, 윤성호,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사과해라. 그럼 봐줄게.”

    김세호가 자신만만한 어조로 윤성호를 다그쳤다.

    ‘참나.’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현성은 혀를 찼다.

    김세호가 등장하며 분위기가 개박살 났다.

    윤성호가 2차 때 갈라질 생각이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참고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끼이이익!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른 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윤성호의 어깨를 붙잡았다.

    “성호야, 저 새끼한테 사과 같은 거 할 필요 없어. 내가 해결할게.”

    현성의 말에 윤성호가 미안함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현성이 플레이어 협회 소속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세호는 거대 길드이자 오성 그룹이라는 뒷배를 가지고 있는 오성길드 소속이다.

    자신 때문에 김세호와 충돌하면 현성에게도 피해가 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하! 내가 해결할게? 이 새끼가 건방지게.”

    현성이 나서자 김세호의 표정이 더욱 사납게 일그러졌다.

    “노가다나 뛰는 거지새끼 주제에 어딜 끼어들어?”

    김세호의 말에 동창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노가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게?”

    “현성이 회사에서 일한다고 하지 않았어?”

    고등학교 때 현성의 집은 평범한 서민 가정이었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노가다를 뛸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거기다 동창생들 역시 현성이 어느 대학교를 갔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노가다라니?

    “아! 니들은 몰랐냐? 이 새끼 아버지가 마력역류증인가 뭔가 하는 불치병에 걸려서 반병신이 됐어. 그래서 지금은 대학교 휴학하고 노가다 뛰면서 병원비 벌고 있다고. 이 새끼 아버지도 참 병신이지, 자식들한테 짐이 될 거 같으면 차라리 자살을 했어야지.”

    김세호의 조롱에 친구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건 김세호파에 속해 있던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친구 아버지가 불치병에 걸렸다.

    병원비를 벌기 위해 대학교를 휴학하고 노가다를 뛴다.

    이건 결코 조롱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안쓰럽게 생각하고 응원해 줘야 하는 일이었다.

    인성이 쓰레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김세호는 거기다 패드립까지 했다.

    당연히 동창생들의 얼굴이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하!”

    현성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쓰레기라는 사실은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왜? 기분 나빠? 근데 네가 기분 나쁘면 뭐? 어쩔 건데?”

    김세호는 고등학교 때보다 더한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일진이라는 알량한 힘을 믿고 미친개처럼 날뛰던 놈이다.

    그런 놈이 플레이어라는 더 강한 힘을 얻었다.

    당연히 더 미친개처럼 날뛸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경고만 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겠네.”

    현성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뭐? 경고? 네가 뭔데 나한테 경고니 마니 하는 소리를.”

    콰직!

    김세호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현성의 주먹이 녀석의 안면에 박혀 들었다.

    코뼈가 으스러지고 얼굴 전체가 피범벅으로 변했다.

    “아아아아악!”

    김세호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현성은 그런 김세호를 무시하며 태연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 후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최현성 플레이어, 어쩐 일이십니까?

    상대가 반가운 목소리로 현성의 전화를 받았다.

    “길드에 김세호라는 이름의 길드원이 있죠?”

    -예? 그게 무슨?

    “있습니까, 없습니까?”

    -금방 확인해 보겠습니다.

    “너 이 자식!”

    현성이 통화를 하는 동안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던 김세호가 정신을 차렸다.

    본래 성격 같으면 바로 현성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현성 역시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거기다 김세호는 힐러였다.

    현성은 근접 딜러나 탱커로 보였으니, 당연히 섣불리 달려들 수가 없었다.

    달려들어 봤자 자신만 줘 터질 게 뻔했으니까 말이다.

    “힐!”

    화아아악!

    김세호의 외침과 함께 환한 빛이 얼굴을 뒤덮었다.

    그러자 으스러졌던 코뼈가 금방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너 이 자식, 네가 무슨 짓을 한 건 줄 알아!”

    김세호가 성난 목소리로 현성에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현성은 김세호에게 아예 관심을 끊고 통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직입니까?”

    -아, 찾았습니다. 최근 길드에 입단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런데 김세호 플레이어는 왜?

    “그게 말이죠.”

    현성이 대답을 하려는 찰나 김세호가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플레이어라고 다 같은 플레이어가 아니야! 나 오성길드 소속이라고! 거기다 귀하디귀한 힐러!”

    김세호의 외침은 성능 좋은 스마트폰 마이크를 통해 고스란히 상대에게 전달되었다.

    -혹시 김세호 플레이어와 트러블이 생기신 겁니까?

    “트러블이라고 할 것도 없고요. 제가 일방적으로 모욕을 당해서요. 그것도 제 아버지까지 싸잡아서 말이에요. 패드립이라고 아시죠?”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쪽에서 죄송하실 건 없고요. 그냥 저랑 오성길드가 적대 관계가 되었다는 것만 알아 두세요. 그거 알려 드리려고 전화드린 거니까요.”

    -저, 적대 관계라니요.

    통화를 하던 상대방이 쩔쩔맸다.

    플레이어 간의 적대 관계는 그리 신사적인 게 아니다.

    던전은 현대 기기가 작동하지 않는 곳이다.

    그렇기에 던전에서 범죄가 일어나면?

    그건 완전범죄가 된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웬만하면 다른 플레이어와 원한을 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건 길드도 마찬가지였다.

    왜?

    자칫 잘못하면 던전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까.

    현성은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를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한국 최고의 플레이어다.

    아니, 한국을 넘어서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그런 인물과 적대 관계가 된다면?

    실제로 현성이 오성길드를 대상으로 척살 활동에 들어가든 들어가지 않든 상관없다.

    오성길드에 속한 플레이어들은 던전에 출입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어쩌면 더 이상 오성길드 소속으로 있을 수 없다며 대거 탈퇴할지도 몰랐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의 플레이어들을 관리하는 국가기관인 플레이어 협회와 대척점에 서게 된다.

    오성길드가 아무리 오성 그룹을 뒷배로 두고 있는 거대 길드라고 해도 플레이어 협회와 척을 져서 좋을 게 없었다.

    특히 요즘같이 플레이어 협회의 권위가 상승한 상태에서는 말이다.

    막말로 오크 대족장이나 오크 주술사 같은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가 시작될 때 플레이어 협회의 임무 배치 권한으로 오성길드의 길드원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현성과는 절대 척을 지지 말아야 했다.

    아니, 척을 지면 큰일 난다.

    문제는 또 있었다.

    상부에서는 최현성 플레이어를 플레이어 협회에서 빼내 오성길드로 영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현성이 오성길드에 악감정을 가진다면?

    최현성 플레이어를 오성길드로 스카우트하는 게 불가능해 진다.

    고작해야 일개 신입 길드원의 돌발 행동으로 현성과 같은 거물과의 사이가 틀어지는 건 오성길드의 길드장으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잠시 김세호 플레이어를 바꿔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현성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김세호에게 넘겨주었다.

    한편 현성을 상대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김세호는 뭔가 일이 꼬이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현성의 입에서 오성길드라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거기다 대화하는 뉘앙스가 오성길드를 자기 아래로 깔고 보는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어. 나랑 비슷한 나이고 거기다 각성한 지도 얼마 안 됐을 텐데.’

    김세호가 애써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받아 봐.”

    “누군데?”

    김세호가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네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오성길드의 길드장.”

    현성의 말에 김세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그게 무슨……. 거짓말이지?”

    “네가 직접 받아 보면 알 거 아니야.”

    현성의 무덤덤한 말에 김세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스마트폰을 받아 귀에 가져다 댔다.

    -김세호 플레이어 맞으십니까?

    “네, 그런데 누구신지?”

    -오성길드에서 길드장 직책을 맡고 있는 이재후라고 합니다.

    “지, 진짜요? 진짜 이재후 길드장님이세요?”

    김세호가 어벙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재후 길드장은 한국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최상위 플레이어였기 때문이다.

    -오늘부로 오성길드는 김세호 플레이어와의 계약을 해지하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김세호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플레이어로 각성하고 영웅 등급 스킬을 손에 넣은 김세호는 플레이어 아카데미를 이수하자마자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다.

    그중 오성길드의 조건이 가장 좋았기에 오성길드와 계약을 했다.

    계약금으로 받은 돈으로 펜트하우스를 사고 람보르기니도 샀다.

    당연히 일시불은 아니었고 은행 대출과 할부를 이용해서 샀다.

    그게 다 오성길드에서 약속한 고정 급여 덕이었다.

    저레벨이 무슨 돈이 있어서 수십억에 달하는 펜트하우스를 사고 수억에 달하는 람보르기니를 질렀겠는가?

    한데 오성길드와의 계약이 해지되면, 고정 급여가 사라진다.

    순간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잠깐, 내가 손해 볼 게 있나?’

    하지만 그 암담한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계약금은 이미 받았고 고정 급여야 다른 길드에 들어가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었다.

    오성길드가 아니기에 고정 급여의 액수가 조금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하! 좋습니다! 제가 뭐 오성길드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줄 압니까? 오히려 절 놓친 걸 크게 후회하실 겁니다!”

    김세호가 큰소리를 쳤다.

    ‘최현성 그리고 오성길드, 너희 큰 실수 하는 거야.’

    현성이 오성길드장과 밀접한 관계인 것 같았다.

    하지만 김세호에게는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그저 다른 길드에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두고 보자.’

    현성이 자신에게 주먹질한 사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또 오성길드가 불합리한 이유로 자신을 자른 것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이 두 가지를 이용하면?

    오히려 현성과 오성길드장에게 크게 한 방 먹여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곧바로 담당 파티장과 계약 담당자에게 연락하겠습니다.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뭘 각오해요? 각오는 그쪽이 하셔야죠. 아, 그리고 그쪽에서 계약 파기하자고 한 거니까, 계약금 돌려받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

    김세호는 당당하게 나갔다.

    오히려 계약금을 날름할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뭔가 착각하시는 모양이군요.

    “착각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죠?”

    -계약 파기의 원인을 제공한 건 오성길드가 아니라 김세호 플레이어입니다. 그러니 계약 위반에 따른 위약금을 청구할 겁니다.

    “제, 제가 무슨 계약 파기의 원인을 제공해요!”

    -타 플레이어와 트러블을 발생시켜 길드에 위해를 끼칠 시 계약을 파기하고 위약금을 청구할 수 있다고 계약서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게 무슨?”

    위약금이라는 말에 김세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참고로 위약금은 계약금의 열 배입니다. 그리고 다른 길드에 들어갈 생각은 포기하는 게 좋으실 겁니다. 최현성 플레이어와 트러블이 생긴 김세호 플레이어를 받아 줄 길드는 단 한 곳도 없을 테니까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위약금은 계약금의 열 배.

    최현성 플레이어와 트러블이 생긴 김세호 플레이어를 받아 줄 길드는 단 한 곳도 없다.

    오성길드장 이재후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러는 사이 김세호의 손에 들려 있던 스마트폰이 다시금 현성에게로 되돌아갔다.

    “그러니까, 이제 김세호와 오성길드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말씀이시죠?”

    -예,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굳이 오성길드를 적대할 필요는 없겠네요. 뭐, 일부러 절 도발한 것도 아니니까요.”

    -너그럽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뚝!

    현성이 통화를 종료하고 태연한 얼굴로 다시금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동창생들의 시선이 모두 현성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현성아, 너도 플레이어였어?”

    한수정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현성에게 물었다.

    “어.”

    현성의 짤막한 대답을 시작으로 동창생들이 연달아 입을 열었다.

    “우와! 대박이다!”

    “세호 저 자식이 전화 한 통화로 쩔쩔맬 정도면 너 엄청 잘나가나 보다!”

    “그러게, 앞으로 친하게 지내야겠네!”

    윤성호의 편을 들었던 동창생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현성과 대화를 나눴다.

    반면 김세호의 편을 들었던 동창생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야, 최현성.”

    그때 멍하니 넋이 나가 있던 김세호가 몸을 돌려 현성을 노려봤다.

    “왜?”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네가 말한 세상 물정을 알려 준 것뿐이야.”

    “뭐?”

    “네가 동창이라고 다 같은 동창이 아니라며?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다며? 그래서 그 말대로 계급 차이를 확실히 보여 준 것뿐이야.”

    툭!

    김세호가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네 말대로 원래 이런 게 사회고 세상이야. 그러니까 앞으로는 입조심하면서 살아라.”

    빠드득!

    현성의 말을 들은 김세호가 이를 악물었다.

    “두고 봐! 내가 이번 일은 절대 그냥 안 넘어간다!”

    “그러든가.”

    현성은 김세호에 대한 신경을 완전히 꺼 버렸다.

    뛰어난 청력을 가진 현성은 김세호와 오성길드장 이재후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

    김세호가 가진 플레이어로서의 커리어는 개박살이 난 거나 다름이 없었다.

    거기다 위약금까지 물어주게 생겼으니, 꽤 오랜 시간 개고생을 해야 할 터였다.

    “젠장!”

    김세호가 욕설을 내뱉더니 자신의 짐을 챙겼다.

    그러더니 식당 밖으로 향했다.

    “야! 밥값은 내고 가야지!”

    “그래, 네가 쏜다며?”

    남자 동창생들의 조롱이 이어졌지만, 김세호는 못 들은 척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창생들의 표정이 난감해졌다.

    돼지고기에서 소고기로 메뉴를 바꿨기에 동창회비로 감당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내가 살게.”

    그런 분위기를 파악한 현성의 말에 동창생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와아아아아!”

    “현성이 최고다!”

    김세호가 사라지자 동창회의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다.

    윤성호파는 신이 났고 김세호파는 쭈구리가 되어 찌그러졌기 때문이다.

    “성호야, 다음부터 쟤들은 부르지 말자.”

    현성이 기회주의자적인 면모를 보였던 동창생들을 보며 말했다.

    “나도 그럴 생각이야.”

    윤성호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 * *

    동창회 장소를 빠져나온 김세호는 오성길드의 담당 파티장과 계약 담당자를 만났다.

    그새 마음이 바뀐 김세호는 계약 파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소송이 들어왔다.

    김세호는 변호사까지 고용해 소송에 응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김세호의 실책이 너무 명확했다.

    동창생 중에 한 명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세호의 외침을 모두 녹음해 놓았다.

    그리고 그건 김세호가 현성을 모욕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거기다 플레이어라고는 해도 개인에 불과한 김세호가 무려 대기업인 오성 그룹을 등에 업고 있는 오성길드와의 소송전에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에 김세호는 타깃을 바꿨다.

    현성을 폭행죄로 고소해 압박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일단 증거가 없었다.

    동창생들이 모두 등을 돌렸기에 증인도 없었다.

    녹음 파일에서도 폭행에 대한 부분은 싹 사라져 있었다.

    이에 김세호는 과거 플레이어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자신에게 러브콜을 했던 다른 길드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김세호 플레이어와는 계약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때고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까?

    -김세호 플레이어에게 했던 계약 제의는 예전에 끝난 일입니다.

    아무도 받아 주지를 않았다.

    결국 김세호에게 남은 것은 빚밖에 없었다.

    펜트하우스 대출금과 람보르기니 할부금도 모자라 막대한 위약금과 소송비용까지 갚아야 했다.

    김세호는 결국 파티 단위로 저레벨 던전을 쉴 새 없이 돌며 빚을 갚아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인생은 실전이라는 냉혹한 교훈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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