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권. 외전-결혼 준비 (217/225)

┃외전-결혼 준비

현성과 루시아의 결혼식이 있기 한 달 전.

반백발의 중년인 로카드가 긴장한 표정으로 응접실에 앉아 대기했다.

‘무슨 일로 나를 이곳까지 부르신 거지?’

로카드는 그간 자신이 그분들께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 곰곰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머릿속에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니면 혹시 나에게 뭔가 바라는 게 있으신가?’

그것도 아니었다.

상대는 전 차원에서 가장 강력한 힘과 세력을 지니고 있는 플레이어였다.

로카드는 굴레를 벗은 자는커녕 1레벨 플레이어도 아니었다.

그저 흔하디흔한 평범한 플레이어일 뿐이었다.

당연히 그 둘에게 줄 수 있는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끄응.”

머리가 아파 왔다.

과거 그분들과 작은 접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로카드가 초조한 표정으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설마 그때의 무례를 벌하시려는 건가?’

처음 그분들을 만났을 때의 무례했던 태도가 떠올랐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미 예전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 바로 사과를 했다.

기분 나빠 하거나 마음에 담아 두는 기색도 없었다.

그렇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자.’

그분의 한마디면 겨우 재건을 시작한 가문이 산산조각 날 수도 있다.

혹시라도 자신에게 뭔가 원하는 게 있다면?

무조건 들어주어야 했다.

과거의 무례를 추궁한다면?

로카드는 가문을 위해 바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끼이익!

그때 문이 열리고 한 쌍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일주일 후 결혼식을 올려 부부가 될 예정인 현성과 루시아였다.

“오셨습니까!”

로카드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현성과 루시아에게 인사를 했다.

“앉게.”

현성의 말에 로카드가 재빨리 자리에 착석했다.

“오랜만이네.”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루시아의 말에 로카드가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사람의 외형은 겨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그 외형을 보고 과거 큰 실수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둘의 외형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늙었구나.”

루시아의 말에 로카드의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처음 봤을 때라는 말에 과거 저지른 무례가 떠오른 탓이다.

“과거 처음 뵈었을 때 제가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로카드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음?”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지?”

루시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과거의 실수를 벌주려던 것이 아니셨나?’

로카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미 지난 옛일을 들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혹시 처음 만났을 때 무기를 들고 윽박질렀던 거 때문에 그러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현성의 물음에 로카드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히 엉뚱한 소리를 해 버렸어.’

등이 식은땀에 완전히 젖어 버렸다.

“그건 예전에 잊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아니면 설마 내가 그렇게 쪼잔해 보였나?”

“아닙니다!”

현성의 물음에 로카드가 맹렬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힘차게 대답했다.

“그만하세요. 애가 놀라잖아요.”

루시아가 현성을 말렸다.

“음, 알았어요.”

현성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문 현성 대신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너를 부른 건 내 결혼식에 초대하기 위해서야.”

“저를 말씀이십니까?”

로카드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수많은 차원을 지배하는 대군주들이 참석하는 결혼식이다.

고작해야 한 차원의 일개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인 그가 초대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

“참석하겠습니다.”

로카드가 재빨리 대답했다.

왜 자신을 초대하는 건지는 몰랐다.

하지만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것이 자신의 처지였다.

‘좋게 생각하자.’

이건 상당히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가 쟁쟁한 대군주들이다.

그들과 작은 친분이라도 맺는다면?

로카드가 가주로 있는 카이온 가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뭐, 반대로 밉보여서 큰 곤욕을 치를 수도 있지만…….

자의로 결혼식 참석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로카드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며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 복잡한가 보구나.”

루시아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 아닙니다. 너무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되어 놀랐을 뿐입니다.”

로카드의 말에 루시아가 피식하고 미소를 지었다.

“걱정할 것 없다. 나는 너를 단순한 하객으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다.”

루시아의 말에 로카드의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단순히 하객으로 초대하는 게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왜?’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러나 루시아가 자신을 초대한 목적이 무엇인지는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나는 너를 나의 가족으로서 초대하는 것이다.”

“예?”

가족으로서 초대한다는 루시아의 말에 로카드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내 이름이 뭔지 아느냐?”

“루시아 님이 아니십니까?”

최현성 플레이어의 반려 루시아.

그녀의 이름은 너무도 유명했다.

“그럼 내 성이 무엇인지는 아느냐?”

“예?”

로카드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자신이 그걸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카이온. 그게 바로 내 성이다.”

루시아의 말에 로카드가 화들짝 놀랐다.

“예? 그럼 혹시?”

“네 가문의 선조 중에 루이 카이온이라는 이가 있지? 그가 내 남동생이다.”

루시아의 말에 로카드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루이 카이온.

로카드 카이온의 직계 선조였다.

“비록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네가 나와 같은 피가 흐르는 혈족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가족으로서 내 결혼식에 참석해 줬으면 좋겠구나.”

루시아의 말에 로카드가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차원 전쟁이 마무리되지 않아 너희들을 챙겨 주지 못했다. 괜히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차원 전쟁 도중 루시아가 카이온 가문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면?

적군 차원의 굴레를 벗은 자들이나 신들이 카이온 가문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차원 전쟁은 끝났고 현성과 루시아는 패자가 아닌 승자였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르지. 루이 녀석을 대신해 너희들을 돕겠다.”

“가, 감사합니다!”

루시아의 말에 로카드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같은 피가 흐르는 혈족이라고는 하지만, 로카드는 루시아의 직계혈족이 아니었다.

거기다 오랜 시간이 흘러 섞인 피 역시 옅어질 대로 옅어졌다.

루시아가 카이온 가문을 챙겨 주지 않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한데 루시아가 직접 카이온 가문을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했다.

가주인 로카드로서는 엄청난 힘이 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루시아는 로카드에게 그간 궁금했던 점들을 묻고 그 자리에서 바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지속적인 도움을 약속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로카드의 말에 현성과 루시아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현성의 말에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에게는 가족이 있었지만, 루시아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그래서 로카드를 불렀다.

루시아의 가족으로서 결혼식에 참석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현실의 힘의 관계로 보면 로카드가 현성과 루시아의 말에 따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루시아는 적지 않게 긴장한 상태였다.

후손인 자신들을 그간 왜 방치했냐고 원망을 들을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로카드가 원망은커녕 고마움을 표하며 흔쾌히 수락해 줬다.

물론 로카드가 거절한다고 해도 그에게 해를 끼치거나 불이익을 줄 생각은 없었다.

현성이 루시아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너무 자신을 책망하지 말아요.”

현성에게 있어서 루시아는 사랑하는 사람이자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루시아의 정신은 현성보다 더 강인했다.

그러나 그런 루시아의 강인한 정신도 오래전 잃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견딜 수는 없었다.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로카드를 비롯한 카이온 가문에 투영되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대할 때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앞으로 잘 지내면 되잖아요.”

그간 차원 전쟁을 진행하느라 제대로 신경 써 주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다르다.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이제부터라도 갚아 가면 된다.

루시아가 아무 말 없이 현성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쉽지 않네.’

그런 루시아를 바라보며 현성의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이대로 시간이 계속해서 흐른다면?

현성의 부모님과 누나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자신의 곁을 떠나갈 것이다.

그럼 현성의 곁에는 루시아밖에 남지 않는다.

‘누나가 아이를 낳으면?’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나의 핏줄이 계속 이어진다면 루시아처럼 그 아이들을 가족으로서 돌볼 수 있을까?

생각을 이어 가던 현성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뭐, 그것도 아이를 낳아야 가능한 일이지.’

현성의 누나 최현지는 아직까지 솔로였다.

결혼 적령기는 이미 훌쩍 넘겨 버렸는데 말이다.

사실 현성이 준 비약으로 인해 고레벨 플레이어와 다름없는 신체 스펙을 갖게 되었기에 수명이 상당히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도 20대 초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누나가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웬만큼 성격이 까칠해야지.’

객관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누나 최현지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배경도 상당히 좋았다.

전 차원을 통틀어 최고의 플레이어인 최현성의 단 하나밖에 없는 친누나였으니까 말이다.

거기다 현성의 도움으로 만든 회사인 아라 역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지구뿐만 아니라 전 차원을 아우르는 초거대 기업이 되었다.

당연히 달라붙는 남자들이 없을 리가 없었다.

문제는 누나 최현지의 까칠한 성격이었다.

‘다 까 버렸지.’

잘생기고 매력 넘치고 능력까지 좋은 남자들이 최현지에게 매달리다시피 구애를 했다.

그러나 다 까였다.

‘뭐, 알아서 하겠지.’

누나 최현지의 인생을 현성이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었다.

현성은 어린애도 아니고 성인인 누나 최현지가 내린 결정에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부모님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신 것 같았지만 말이다.

* * *

“현지야.”

어머니 박미숙 여사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최현지의 귓가를 울렸다.

“왜요?”

“현성이도 장가를 가는데 넌 아직도 생각이 없니?”

어머니 박미숙 여사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최현지의 표정이 구겨졌다.

원래 최현지의 어머니인 박미숙 여사는 자식의 결혼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건 아버지인 최형규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식들의 의사를 존중해 준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은 부모님이었다.

거기다 두 분 다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마음이 약해지신 듯했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는 두 분 다 젊었지만, 그건 현성이 준 비약 때문일 뿐.

두 분의 친구 중에 손주가 장성해서 증손주를 본 이도 있었다.

친구들은 손주를 넘어 증손주를 보는데 두 분은 손주도 보지를 못했으니, 마음이 다급해질 만도 했다.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좋게 만나는 남자 친구라도 만들어 봐.”

어머니 박미숙 여사의 권유에 최현지가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마음에 없다면 어머니 박미숙 여사가 아무리 닦달을 해도 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현지는 독신주의자가 아니었다.

연애도 하고 싶었고 결혼도 하고 싶었다.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자식도 낳고 싶었다.

문제가 있다면…….

‘마음에 드는 놈이 없어.’

젊었을 적에는 아버지의 병 때문에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연애를 하지 못했다.

현성이 각성하고 난 후에는 자신의 회사인 아라를 키운다고 일에 파묻혀 지냈다.

그러다 일이 안정되고 연애 좀 해 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는…….

‘내 사회적 지위가 너무 높아졌어.’

접근해 오는 남자들은 외형적으로 완벽했다.

그러나 속마음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겉모습인 초거대 기업 아라의 회장.

최현성의 친누나.

그 타이틀만 보고 접근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연을 가장해 계획적으로 접근하는 놈들을 한 트럭 가까이 만나게 되니, 남자들의 속마음을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어졌다.

‘파렴치하기도 하고.’

최현지가 몇 년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현지야, 내가 잘못했어. 제발 다시 날 받아 주라.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 아저씨의 모습으로 변해 버린 전 남자 친구가 최현지에게 찾아와 싹싹 빌었다.

-난 널 사랑했어. 그런데 부모님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

-뭐가 다른데?

-부모님의 반대 따위는 이제 이겨 낼 수 있어. 아니, 그보다 더한 고난이 온다고 해도 너와 함께라면 헤쳐 나갈 자신이 있어.

아버지인 최형규가 마력 역류증에 걸렸다는 이유로 예전에 파혼하고 도망쳤던 전 남자 친구가 안면몰수하고 최현지에게 매달렸다.

과연 부모님의 반대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저 남자는 그저 자신 스스로 최현지와 함께 고난을 견뎌 낼 마음이 없었던 거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부모님 핑계를 대며 파렴치하게 매달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최현지가 가지고 있는 돈과 사회적 지위 때문이리라.

-너 지금 결혼해서 잘 살고 있잖아?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었어. 그저 널 잊고 싶어서 부모님이 소개해 준 여자들 중 하나와 만나서 결혼한 거야. 난 단 한 번도 그 여자를 사랑한 적이 없어.

-하!

-정말이야. 그리고 지금 아내와는 이혼할 생각이야. 그러니까 나랑 다시 시작하자.

-자식들은?

-진짜 사랑해서 낳은 자식들이 아니야. 그리고 이미 다 컸어. 굳이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전 남자 친구의 말에 최현지는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한때는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사랑했던 남자였다.

한데 그 남자는 너무도 추악한 존재로 변해 있었다.

-꺼져. 두 번 다시 날 찾아오지 마.

-현지야! 제발! 옛정을 생각해 봐! 우리 좋았잖아!

-앞으로 한마디만 더하면 네 집안 자체를 박살 내 버릴 거야. 한국이 아니라 지구에서 영원히 발붙이고 살 수 없게.

살기 어린 최현지의 경고에 전 남자 친구는 겁에 질린 얼굴로 물러났다.

‘미친놈.’

돈과 권력에 눈이 먼 머저리.

아마 그놈도 자신을 다시 받아 주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찾아온 것이다.

당연히 최현지가 그런 개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보안을 위해 설치해 놓은 감시 카메라에 놈의 모습과 지껄인 말이 모두 담겨 있었다.

최현지는 이번 일에 대한 보복으로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그놈의 아내와 처가에 보내 주었다.

결국 그놈은 이혼당했다.

장성한 자식들과도 절연을 당했다.

‘인과응보지.’

그 일이 있고 난 후 최현지는 더욱더 남자들을 꺼리게 되었다.

‘속마음도 알 수 없는 놈들을 만나서 연애할 바에야 차라리 혼자가 나아.’

부모님께는 미안하지만 최현지는 굳이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연애를 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배경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순수하게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렇지만 반대로 이게 얼마나 비현실적인 망상인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내면과 외면 그 둘은 억지로 떼어 내고 싶다고 떼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어린애도 아니고.’

최현지는 성인으로 장성한 자식을 두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친구들 대다수가 중고등학생인 자식들을 두고 있었고 빠른 경우는 자식이 대학생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최현지는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진 이후 이 나이를 먹도록 쭈욱 솔로였다.

솔직히 말해 여러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최현지가 여태까지 솔로인 이유는 단 하나.

아직까지 중고등학생 때의 순수한 연애관을 버리지 못해서인지도 몰랐다.

‘현성이도 결혼을 하는데.’

현성에게 루시아가 있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그런 반려가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띵동!

그때 벨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어머니 박미숙 여사가 외침과 함께 현관으로 향했다.

“저희 왔습니다, 어머님.”

굵은 저음의 남자다운 목소리에 최현지의 입가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달칵!

어머니 박미숙 여사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쌍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잘 왔다. 같이 저녁 먹자.”

그 두 사람을 보자마자 박미숙 여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둘을 집 안으로 들였다.

“왔어?”

최현지가 자리에 일어나서 두 사람을 반겼다.

“누나, 오늘은 집에 있으셨네요.”

남자의 말에 최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그때 여자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최현지의 품에 안겨 들었다.

“오래간만이네.”

“언니가 일이 바쁘다고 자꾸 집에 안 들어오시니까 그렇죠.”

여자의 투정에 최현지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백우신과 백우희.

부모님 입장에선 이런저런 일로 바빴던 현성과 최현지보다 더 많이 얼굴을 본 친자식 같은 존재였다.

지적장애를 가졌던 백우신은 현성과의 만남으로 인해 그 삶을 구원받았다.

그 후 현성의 가족과는 마치 한 식구처럼 지냈다.

“우신아, 현성이도 장가가는데 넌 언제 갈래?”

어머니 박미숙 여사가 타깃을 바꿔 백우신을 타박했다.

나이를 드시더니 확실히 결혼에 대한 압박이 강해졌다.

“하하하하.”

백우신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난감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까 우신이도 아직 혼자네.’

백우신은 여태까지 연애 한번 해 본 적 없는 순수한 모태솔로였다.

좋다고 달려드는 여자들은 많았는데, 완벽하게 철벽을 치며 모태솔로 생활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 있었다.

백우신의 나이를 생각하면 정말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백우신의 나이도 이제 40을 넘겼다.

이미 정말 전설 속에 나오는 대마법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현성에 의해 비약을 복용하고 레벨이 오르며 정신력 스텟이 많이 높아지면서 백우신의 지적장애도 사라졌다.

그렇지만 또래에 비해 순수한 면이 많았다.

‘지적장애는 사라졌어도 천성은 어디 가지 않지.’

백우신은 최현지의 경호원으로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그렇기에 최현지는 백우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

“너도 현지처럼 내 속을 썩이는구나. 얼른 둘 다 시집이랑 장가 좀 갔으면 좋겠는데.”

박미숙 여사의 타박에 백우신의 동생인 백우희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오빠는 언니랑 달라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백우희의 말에 박미숙 여사가 눈을 번뜩였다.

‘좋아하는 사람?’

예상치 못한 백우희의 발언에 최현지의 표정이 자신도 모르게 굳어졌다.

설마 백우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누구지? 어떤 년이야?’

최현지의 눈빛에 스산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정말이니, 우신아? 도대체 누구야? 어떤 아가씨니? 플레이어야? 아니면 일반인?”

박미숙 여사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그게…….”

백우신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여동생 백우희를 노려봤다.

하지만 백우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촉새같이 더 입을 나불거렸다.

“오빠는 절대 말 안 할걸요. 그러니까 제가 이야기해 드릴게요. 일단 연상이에요.”

“정말?”

백우희의 말에 박미숙 여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백우신도 나이가 있는데 연상이라니 놀란 것이다.

‘연상?’

최현지 역시 기분이 안 좋아졌다.

‘어떤 여우 같은 년이 순진한 우신이를 꼬신 거야!’

백우신은 백지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자칫 여우 같은 년에게 넘어갔다가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지도 몰랐다.

“플레이어니?”

플레이어는 노화가 느리다.

당연히 일반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살아가고 백우신보다 연상이라고 해도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20대 정도일 확률이 높았다.

“아니요, 일반인이에요.”

“뭐?”

박미숙 여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건 최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돈이 엄청 많아요. 관리를 잘해서 엄청 예쁘기도 하고요.”

백우희가 조잘조잘 떠들어 대며 오빠 백우신의 짝사랑 상대에 대한 정보를 흩뿌렸다.

백우신이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 눈치를 주기는 했지만, 박미숙 여사에게 차단당해 별다른 힘을 쓰지는 못했다.

“그럼 정말 괜찮은 아가씨네.”

놀랐던 박미숙 여사의 표정이 점점 풀려 갔다.

백우희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백우신의 짝사랑 상대라던 여자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엄마는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딱 들어 봐도 그 나이 먹고 영계나 꼬시는 꼬리 아홉 개 달린 불여시구만!”

최현지가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라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박미숙 여사와 백우신 그리고 백우희의 시선이 최현지에게 쏠렸다.

“너 갑자기 왜 그러니?”

박미숙 여사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고…….

“…….”

백우신은 아무 말 없이 난감한 표정으로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왜 언니가 흥분을 해, 우리 오빠 일인데?”

그때 백우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최현지에게 물었다.

“우신이는 내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인 녀석이야. 그런 우신이가 늙은 불여시한테 빠졌는데, 내가 화를 안 내게 생겼어?”

최현지의 말에 박미숙 여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넌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늙은 불여시가 뭐니?”

박미숙의 말에 최현지가 고개를 획 하고 돌렸다.

솔직히 말해서…….

자기도 왜 그렇게 갑자기 화를 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기분이 나빴다.

갑자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이래서야…….

‘내가 우신이를 좋아하는 것 같잖아.’

저벅저벅.

최현지가 소파 구석으로 가서 등을 돌리고 앉았다.

붉게 달아오른 자신의 얼굴을 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이성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내가 왜 이러지?’

백우신은 그냥 친동생 같은 아이였다.

하지만 진짜 친동생인 현성이 결혼한다고 할 때는 그냥 담담했다.

아니, 담담한 걸 넘어서서 오히려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백우신이 짝사랑을 한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화가 났다.

기분이 더러웠다.

‘내가 우신이를 진짜 아껴서 그런 거야.’

그냥 백우신이 걱정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백우신은 착하고 순수한 남자였으니까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잘난 년이기에?’

돈이 많다고 해 봤자 최상위 플레이어인 백우신보다 많을 수는 없었다.

관리를 잘해서 젊어 보인다고 해도 최상위 플레이어인 백우신보다 젊어 보일 수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우신이 아까웠다.

차라리 20대의 젊고 아름다운 플레이어였다면 이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정말 그럴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화가 난 이유가 단순히 백우신의 짝사랑 대상이 나이가 많고 일반인이라서일까?

젊고 아름다운 플레이어였다면 화가 나지 않았을까?

‘모르겠어.’

자기도 자기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서 백우희의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귓가를 울려 왔다.

힐끔 고개를 돌려 보자, 백우신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도대체 그런 년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백우희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성격이 좋은 것 같지도 않았다.

나긋나긋하고 자상한 성격이 아니라 까칠하고 더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최현지는 백우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백우신의 능력이면 얼마든지 젊고 아름다우며 성격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나이 많고 일반인인 여성을 좋아한다는 말인가?

“우신아, 그럼 고백해 보는 게 어떠니?”

그때 박미숙 여사가 백우신을 꼬셨다.

‘엄마는 진짜.’

최현지는 괜히 어머니인 박미숙 여사가 미워졌다.

“제가 어떻게 감히…….”

백우신이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신이 네가 뭐가 어때서. 너 정도면 1등 신랑감이지. 아마 네가 고백하면 상대도 좋다고 받아들일걸.”

‘그렇기는 하지.’

박미숙 여사의 말에 최현지는 자신도 모르게 수긍해 버렸다.

객관적으로 백우신은 정말 1등 신랑감이었다.

본인이 최상위 플레이어였다.

거기다 현성과는 친형제처럼 절친한 사이다.

그런 백우신을 거절할 여자가 몇이나 될까?

“전 자격이 없어요. 제가 너무 부족해서.”

박미숙 여사의 계속되는 재촉에도 백우신은 계속 자신이 자격이 없다 부족하다며 거절했다.

소파 구석에서 등을 돌린 채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최현지는 열이 확 하고 치솟았다.

‘도대체 그 여자가 얼마나 잘났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백우신의 자신감 없는 태도.

절대 짝사랑 대상에게 고백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고백을 하지 않는 이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대 여자를 자신이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여신 같은 존재로 격상시키고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매도한다.

순간 열이 확 하고 올랐다.

최현지가 봤을 때 백우신은 절대 하찮은 존재가 아니었다.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봐도 백우신은 정말 멋진 남자였다.

겉으로 드러난 외모와 스펙.

순수한 속마음.

무엇 하나 그 불여시에게 꿀릴 게 없었다.

만약 백우신이 고백을 한다면?

그 불여시는 무조건 받아들일 게 분명했다.

다만 속으로는 엎드려 절을 하더라도 겉으로는 도도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우희야, 이제 그만해. 그리고 어머님도 그만하세요. 전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어요. 그냥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백우신의 담담한 고백에 백우희와 박미숙 여사가 답답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고백을 들은 최현지는 다시금 열이 확 하고 끓어올랐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네가 뭐가 부족해서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

최현지는 자신이 말하고 자신이 놀랐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될 일이었다.

그럼 백우신은 그 불여시에게 계속 고백하지 않을 것이다.

한데 오히려 자신이 용기를 북돋아 준 꼴이 되어 버렸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누나?”

백우신이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최현지에게 물었다.

“윽!”

최현지는 백우신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 넌 자신감을 좀 가져야 해! 세상에 어떤 여자가 널 마다할 것 같아! 너 같은 완벽한 남자도 드물어!”

최현지는 또다시 말하자마자 후회했다.

‘내가 미쳤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방금 전의 자신을 만난다면 뺨을 후려갈겨 주고 싶었다.

“그럼 누나는요?”

“응?”

백우신의 물음에 최현지가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누나도 절 마다 안 할 거예요?”

“다, 당연하지.”

“그럼 저랑 사귀어요. 저 누나 좋아해요.”

“뭐?”

최현지의 두 눈이 순간 멍해졌다.

“너, 너, 좋아하는 사람 있다며?”

“네.”

“그런데 왜 나한테?”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나니까요.”

백우신의 대답을 듣는 순간, 최현지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얼굴만이 아니라 귀와 목덜미까지 붉어졌다.

최현지의 머릿속에 백우희가 알려 줬던 불여시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연상.

일반인.

큰 회사를 운영하는 오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아아.”

최현지가 짧은 신음과 함께 소파에 주저앉았다.

최현지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술에 취한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 왔다.

동생인 현성에 의해 비약을 섭취하고 초인이 된 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방금 우신이가 뭐라고 한 거지? 날 좋아한다고? 그 불여시가 나라고?’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점차 정리되어 갔다.

‘어떻게 해야 하지?’

받아들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솔직히 말해 오늘 이전까지 백우신을 남자로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친동생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백우신이 정체 모를 연상의 여인을 짝사랑한다고 했을 때 최현지 자신이 가진 감정은 분명히 질투였다.

‘미친년.’

최현지가 스스로를 욕했다.

친동생처럼 생각했던 백우신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는데 축하해 주기는커녕 질투를 하다니.

‘하지만…….’

그다음 백우신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

좋았다.

머릿속이 어지럽고 다리가 풀려 버렸지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가 되고 기뻤다.

‘나도 우신이한테 마음이 있었던 거야.’

없었다면 그런 감정 변화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생각을 해 보니 백우신은 자신의 이상형에 걸맞았다.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남자다우면서도 순박한 눈빛을 가졌다.

마음은 어떤가?

자신의 마음이 더럽게 느껴질 정도로 순수했다.

스스로가 최상위 플레이어고 동생인 현성과도 친형제라고 할 만큼 친하니 최현지의 배경을 보고 접근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왜 여태까지 그 사실을 몰랐지?’

백우신은 최현지의 이상형에 딱 알맞은 남자였다.

한데 그 사실을 까맣고 모르고 엉뚱한 곳에서 자신의 짝을 찾고 있었다.

거기다 백우신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고 했다.

백우신이 티를 낸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자신을 짝사랑해 왔던 게 확실했다.

‘그래서 우희가 내 앞에서 그렇게 이야기한 거구나.’

짝사랑만 하며 속앓이를 하는 친오빠인 백우신이 답답했을 거다.

또 그런 오빠의 사랑을 전혀 몰라주는 최현지의 모습에 섭섭함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터트려 버린 거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판을 내 보라고 말이다.

아까 전까지 얄밉게만 느껴졌던 백우희가 갑자기 예뻐 보였다.

“역시 거절인가요?”

그때 실망감으로 가득한 백우신의 묵직한 저음이 최현지의 귓가를 울렸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고백을 거절한 줄 알았나 보다.

“하긴 저 같은 게 누나 곁에 있기에는 많이 부족하죠.”

스스로를 자책하는 백우신의 말에 최현지가 벌떡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 너만큼 좋은 남자가 어디 있다고!”

최현지의 외침에 비 맞은 강아지처럼 축 늘어져 있던 백우신의 얼굴이 확 하고 밝아졌다.

“그, 그럼 제 고백 받아 주시는 건가요?”

백우신의 말에 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잘되면 가족 같은 관계에서 진짜 가족이 된다.

그렇지만 반대로 헤어진다면?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던 관계가 깨질 수도 있었다.

아마 백우신도 그 사실을 알기에 섣불리 고백하지 못했으리라.

‘아, 어쩌라고.’

1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니고 무려 20년 넘게 솔로로 지냈다.

이번에 겁을 집어먹고 물러난다면?

죽을 때까지 연애 한번 못 해 보고 늙어 죽을지도 몰랐다.

그건 싫었다.

‘나만 잘하면 돼.’

백우신은 순수한 마음과 순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을 가졌다.

지랄맞은 자신의 성격만 죽인다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리라.

“응, 나도 네가 좋아.”

최현지의 대답에 백우신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가진 것처럼 말이다.

“누나!”

백우신이 와락 하고 최현지를 끌어안았다.

최현지는 자신을 껴안은 백우신의 품속으로 더욱더 깊게 파고들었다.

그때였다.

“와! 분위기 좋네!”

“우희 너는 왜 산통을 깨니, 보기 좋기만 하구만.”

최현지의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처럼 달아올랐다.

그건 백우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에는 두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최현지의 어머니인 박미숙 여사가 있었고 백우신의 여동생인 백우희가 있었다.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한 편의 로맨스 드라마를 찍은 것이다.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이 후다닥 거리를 벌렸다.

“좋은데 왜 떨어지니? 아니면 엄마가 집 밖으로 나갈까?”

박미숙 여사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은 채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아들인 현성이 결혼을 한다.

오랜 시간 짝이 없던 딸 최현지가 걱정되었다.

솔직히 사고라도 쳐서 결혼했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친아들이나 마찬가지인 백우신도 걱정되었다.

한데 최현지와 백우신이 맺어지면?

한 번에 두 가지 걱정을 말끔하게 치워 버릴 수 있다.

최현지는 겉은 까칠하지만 속은 여린 아이다.

백우신은 겉은 여리지만 속은 강철처럼 단단한 아이다.

서로가 다른 짝을 만났다면?

살짝 걱정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현지와 백우신이라면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최현지는 백우신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따뜻한 여자고, 백우신은 최현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믿음직한 남자니까 말이다.

‘이제 진짜 가족이 되겠네.’

그 전에도 가족 같은 사이였다.

그렇지만 최현지와 백우신이 연애에 이어 결혼에까지 골인한다면?

그때는 가족 같은 사이가 아니라 진짜 가족이 될 것이다.

박미숙 여사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맺혔다.

* * *

“어…… 그러니까, 둘이 사귄다고?”

결혼 준비에 한창이던 현성의 얼굴이 멍하게 변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누나 최현지와 친동생처럼 생각했던 백우신이 얼굴을 붉힌 채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마치 연인처럼.

이상할 건 없었다.

두 사람은 진짜 연인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두 귀로 듣고도 쉽게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예, 형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백우신이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현성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어?”

현성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그 두 사람이 사귀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그저 당황했을 뿐이다.

“네가 앞으로 고생이 많겠다.”

정신을 차린 현성이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저 마녀를 데리고 갈 사람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다행히 마녀를 구해 줄 성자가 등장했다.

한데 그 성자가 친동생처럼 아끼던 백우신이었다.

현성으로서는 고마우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허리 펴고 고개 들어.”

그때 최현지가 끼어들어 현성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인 백우신의 몸을 강제로 일으켰다.

“네가 왜 허리를 숙여? 허리를 숙여야 하는 건 저 녀석이야.”

“하, 하지만 형님이신데.”

“형님은 무슨, 네가 손윗사람인데. 이제부터는 반대야.”

누나 최현지의 말에 현성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러고 보니.’

나이는 현성이 백우신보다 많다.

그렇지만 촌수로 따지면?

자신은 백우신의 처남이 된다.

‘그럼 내가 우신이를 매형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말이야?’

엄청난 정신적 충격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아직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백우신의 대답에 최현지가 살짝 충격받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획 하고 돌렸다.

“그래, 나이도 많고 일반인인 사람하고 최상위 플레이어인 네가 결혼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지.”

최현지의 중얼거림에 백우신이 당황한 표정으로 주절주절 입을 열었다.

“누, 누나, 내가 누나랑 결혼하기 싫다는 말이 아니라, 그게 그러니까 내 말 뜻은…….”

백우신이 안절부절못하며 누나를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다.

“칫! 몰라. 그리고 내가 누나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최현지가 입술을 삐죽이며 투털거렸다.

“알았어, 현지야.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는…….”

귀여운 척을 하며 삐진 누나.

그런 누나를 현지야라고 부르며 달래 주는 백우신.

“하아아아아!”

현성의 입에서 절로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누나의 애교 아닌 애교를 보니 속이 메슥거렸다.

“욱!”

토할 것 같았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는 전투를 치를 때도 아무렇지 않던 속이…….

두 사람의 꽁냥거리는 모습을 보자마자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

“알았어, 현지야.”

결국 두 사람이 화해를 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현성은 엄청난 내상을 입고 말았다.

‘아니, 어제부터 사귀기로 했다면서?’

아무리 남녀 사이라지만 하루 만에 이렇게 급발진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오히려 그래서 그런 건가?’

연애 초기, 한창 뜨거울 때 아니겠는가?

나중에 떠올리면 처참한 흑역사로 기록될 낯 뜨거운 짓을 아무렇게도 저지를 수 있는 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너 뭐 하냐?”

최현지가 엄청난 내상을 입은 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누나.”

현성이 짜게 식은 표정으로 최현지를 바라봤다.

솔직히 방금 전 최현지의 모습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였다.

다른 사람이 최현지의 탈을 쓰고 연기했다면 모를까?

“기분 나쁘니까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

최현지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현성을 노려보았다.

친남동생보다 어린 남자와의 알콩달콩한 연애.

그런 꼴을 친남동생인 현성에게 보였다.

왜 최현지라고 낯 뜨겁지 않겠는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좋은 것을…….

지금의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을…….

거기다 최현지 역시 할 말은 있었다.

“넌 더하거든.”

최현지의 한마디에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내가?”

“그래.”

최현지의 눈에 차원 전쟁이 끝나고 루시아와 꽁냥거리는 현성의 모습은 자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내가 그랬나?’

현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무튼 축하해, 누나. 짚신도 제짝이 있다는 말이 정말이었네.”

누나가 평생 혼자 산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그렇지만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하니 이건 분명 축하할 일이었다.

“그리고 우신아,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맙다. 정말 고맙다. 내가 앞으로 정말 잘할게. 평생 콩깍지 벗겨지면 안 된다.”

현성이 안쓰러운 감정과 고마운 감정을 가득 담아 백우신의 손을 부여잡으며 신신당부를 했다.

퍼억!

결국 화를 참아 내지 못한 최현지가 그대로 발을 들어 현성의 정강이를 찼다.

물론 소리만 요란했지 현성은 하나도 안 아팠다.

“윽!”

오히려 비명을 지르며 발을 부여잡은 건 발로 찬 당사자인 최현지였다.

“현지야, 괜찮아.”

백우신이 바로 달려와 최현지의 발을 부여잡았다.

현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최현지에게 치료 스킬을 시전해 줬다.

“너 이 자식.”

최현지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현성을 노려봤다.

“현지야, 그만해.”

백우신의 만류에도 최현지의 두 눈에 담긴 살기는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 축하해, 누나. 이건 진심이야.”

현성이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백우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매형도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진심이에요.”

현성이 백우신을 매형이라고 부르자, 최현지의 두 눈에 담긴 살기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백우신은 현성이 존대를 하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난 그럼 이만 가 볼게. 결혼 준비가 바빠서.”

슈욱!

현성이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루시아가 있는 신혼집으로 사라졌다.

“매형이라.”

최현지가 현성이 내뱉은 매형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우리 꼭 결혼까지 골인해야겠다. 족보 다시 안 꼬이게 하려면.”

최현지가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응, 꼭 그렇게 하자, 현지야.”

백우신이 미소를 지으며 최현지를 꼭 끌어안았다.

* * *

결혼은 인륜지대사라는 말이 있다.

또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게 아니라 집안과 집안이 만나는 일이란 말 또한 있다.

루시아의 집안에는 가문의 어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카이온 가문의 가주 로카드와 그 식솔들은 루시아의 손아랫사람이었다.

그것도 한참 손아랫사람.

반대로 현성에게는 집안 어른들이 꽤 많이 있었다.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은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건강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어른은 바로 현성의 큰아버지 부부였다.

문제는 그 큰아버지 부부가 보통 파렴치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하하하! 결혼 축하한다, 현성아.”

큰아버지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현성의 어깨를 두드렸다.

“현성이 네가 드디어 장가를 가는구나. 이제야 나도 마음이 놓인다. 그동안 내가 네 걱정을 얼마나 했는지 아니.”

큰어머니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현성은 저 두 사람의 속이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머니인 박미숙 여사의 표정도 그리 좋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치를 봐서인지 대놓고 싫은 소리를 하지는 못했다.

현성이 각성한 후 설날에 벌어진 사건 이후.

한동안은 따로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큰아버지 부부가 계속해서 찾아와 부모님과 누나 최현지 앞에서 싹싹 빌었다.

이에 아버지는 결국 다시금 제사를 합쳤다.

그 후 큰아버지 부부는 쥐 죽은 듯 조용히 살았다.

명절에 모일 때도 찍소리조차 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현성은 큰아버지 부부에 대해 신경을 껐다.

친척이라고는 하지만 남보다 못한 사이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건 누나인 최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차마 그러지 못하셨다.

미우나 고우나 피를 나눈 형제 아니겠는가?

그래서 도움을 주셨다.

현성이 번 돈이나 누나 최현지가 번 돈은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누나 최현지가 운영하고 현성이 실소유주인 아라에 납품을 부탁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버지 본인이 스스로 번 돈으로 도움을 주셨을 뿐이다.

현성의 아버지 역시 1인 기업이나 마찬가지인 최상위 플레이어다.

충분히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큰아버지 부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어머니인 박미숙 여사 역시 차마 그것까지 말리지는 못했다.

‘문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거지.’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남겨 준 유산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사촌 형인 최현중 역시 겉멋만 들었지 사업 수완이 전혀 없었다.

아마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큰아버지 부부와 사촌 형 최현중은 지금쯤 알거지가 되어있었을 거다.

‘저건 도움이 아니라 독인데.’

사람은 위기를 겪으며 성장한다.

경각심이 있어야 더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큰아버지 가족은 그런 게 없었다.

과거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라는 버팀목이 있었고, 이제는 현성의 아버지라는 버팀목이 생겼기 때문이다.

‘막내 고모만 봐도 잘 알지.’

막내 고모 부부는 현성이 선물로 준 아라의 지점을 아직까지도 잘 운영하고 있었다.

처음 도움을 준 이후 현성이나 부모님에게 단 한 번도 손을 벌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큰아버지 부부는 허구한 날 아버지에게 손을 벌렸다.

‘아버지가 마음을 강하게 잡수셔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셨다.

‘뭐, 바뀌시지 않겠지.’

어른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큰일을 겪어도 천성이 바뀌는 일은 거의 없었다.

큰아버지 부부의 나태함과 탐욕도 아버지의 정이 많은 마음도 앞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현성은 큰아버지 부부에게 계속해서 신경을 끄려고 했다.

어차피 자신이 뭔가를 해 주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해 주시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큰아버지 부부가 먼저 선을 넘어 버렸다.

“새아가 결혼 예물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냐?”

큰아버지가 운을 떼고…….

“너도 엄청 실력 있는 플레이어라고 했으니까 섭섭하게 넣지는 않겠지? 요즘 엘릭서 정도는 기본 아니니. 그리고 나는 그 체력 스텟 증가의 비약인가 뭔가 하는 것도 꼭 한번 먹어 보고 싶더라. 기왕이면 최상급까지 말이다.”

큰어머니가 마무리를 지었다.

‘역시 인간은 변하지 않는구나.’

현성에 의해 차원 전쟁이 끝나고 누나 최현지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었다.

누나 최현지가 운영하고 현성이 실소유주인 아라는 전 차원을 통틀어 가장 큰 규모를 가진 회사로 거듭났다.

당연히 타 차원에서만 생산되던 물건들이 지구에 풀려나갔다.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다.

차원 게이트를 수도 없이 건너서 유통되는 것이니만큼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유통이 되기는 된다는 말이었다.

당연히 엘릭서나 비약의 경우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특히 비약의 경우는 플레이어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효과가 있었기에 엄청난 고가로 거래되었다.

가장 비싼 건 체력 스텟 증가의 비약이었다.

탱커에게 체력이 가장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딜러 계열이나 힐러 계열도 체력이 높아서 나쁠 건 없다.

또 일반들에게도 체력은 중요했다.

특히 체력 스텟 증가의 비약을 한계까지 섭취하면, 육체가 젊어졌다.

당연히 플레이어처럼 수명도 늘어났다.

‘어느 정도 처먹은 거 같은데도 욕심을 못 버리는구나.’

같은 비약이라고 해도 최하급과 최상급의 가격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어 보였다.

그 말은 아버지가 자신이 버신 돈으로 체력 스텟 증가의 비약을 사서 줬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버지도 하급 정도까지가 한계셨겠지.’

현성의 아버지가 최상위 플레이어이기는 했지만…….

중급 이상의 체력 스텟 증가의 비약을 구매할 정도의 재력을 갖추기는 힘들었다.

‘루시아를 노리시겠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현성과 최현지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조카라고는 하지만 그 두 사람이 자신들을 남보다 못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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