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권. 종전 (215/225)

┃종전

현성은 그날 가족들과 밤이 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또 10년 만에 어머니가 직접 끓여 주신 김치찌개도 맛봤다.

솔직히 지구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 중 가장 먹고 싶었던 게 바로 어머니가 손수 끓여 주신 김치찌개였다.

하루라는 시간 동안 가족들과 해후를 나눈 후.

현성은 루시아 일행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적인 이야기도 있었고 전쟁과 관련된 공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현성은 그리운 얼굴들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즐겁게 느껴졌다.

“신들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전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피식하고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쟁은 금방 끝날 겁니다.”

차원의 틈새에 있을 때도 휘하 신하들에게서 경험치와 포인트를 전달받았다.

그러나 차원의 틈새 밖으로 나오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간 차원의 틈새에서 받았던 건 새 발의 피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수백 개의 차원에 흩어져 있는 신하들과 그 신하들의 신하들이 다이렉트로 전해 주는 경험치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루시아 일행은 모르겠지만 현성은 가족들과 해후를 나누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레벨이 올랐고 포인트가 쌓여 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경험치와 포인트가 끊임없이 쌓이고 있었다.

본래 고레벨 플레이어가 되면 레벨을 올리기가 힘들다.

그 이유는 레벨 업을 하는 데 필요한 포인트의 절대량이 늘어나서이기도 했고 사냥할 몬스터의 숫자가 줄어들어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성에게 그런 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십시일반 스킬을 통해 수급되는 경험치는 20레벨의 법칙에 구애받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스텟이나 찍자.’

현성이 레벨이 오르면서 생긴 보너스 스텟을 모두 소모했다.

그 결과 현성의 총스텟이 무려 15만을 돌파했다.

‘시간만 충분하면 20만도 찍겠네.’

아니, 어쩌면 20만을 넘어서 1백만을 찍는 것도 가능할지 몰랐다.

현성에게는 인장 스킬과 십시일반 스킬이 있으니까 말이다.

“가죠.”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대한 빨리 전쟁을 종결시키고 싶었다.

그래야만 영원한 평화를 누릴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 * *

최현성 플레이어의 귀환.

이 소식을 들은 이들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바로 환호와 절망이었다.

당연히 환호하는 쪽은 아군이었고 절망하는 쪽은 적군이었다.

특히 아군 중에서도 현성의 지배하에 있었던 차원들의 반응은 실로 폭발적이었다.

지구에서는 TV와 라디오를 통해 하루 종일 그간 현성의 업적과 앞으로 현성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떠들었다.

인터넷도 난리가 났다.

그간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휘하 차원들도 환한 미소를 지르며 현성의 복귀를 반겼다.

또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포인트 보따리를 싸들고 현성에게 찾아와 인장 스킬을 시전받았다.

반면 적군 중에는 큰 절망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

차원의 틈새에서 귀환한 현성의 무위가 너무 초월적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현성으로 인해 전장의 흐름이 천천히 기우는 정도였다.

하나 지금은 아니었다.

천천히 기우는 게 아니라 아예 혼자서 전장의 흐름을 뒤바꿔 버렸다.

불리한 전장에 불쑥 모습을 드러내 적들을 쓸어버리고 사라진다.

결계를 치고 신들의 도움을 받아 외부와의 접속을 끊기도 했다.

그렇지만 현성은 귀신같이 위기에 처한 아군을 찾아내 구원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크윽! 이 망할 놈들!”

쿠테브닌이 이를 악물었다.

현재 쿠테브닌은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다.

적은 신들과 힘을 합치고 결계까지 쳤다.

쿠테브닌은 오래전부터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노리던 1순위 제거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아이템을 강화할 수 있는 강화석을 만들어 내는 유일한 플레이어였으니까 말이다.

그간 쿠테브닌은 수많은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극복하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고 쿠테브닌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현성의 등장으로 마음이 조급해진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공격적으로 나온 것이다.

“충성을 맹세해라. 그럼 살려 주마.”

적군 굴레를 벗은 자가 쿠테브닌 앞에 쭈구려 앉아 권유했다.

“퉤!”

쿠테브닌이 상대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냥 죽어라.”

적군 굴레를 벗은 자가 쿠테브닌의 숨통을 끊기 위해 무기를 들어 올렸다.

파지지직!

그 순간 강제로 차원 게이트가 열리며 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현성 플레이어!”

죽음을 각오했던 쿠테브닌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현성을 반겼다.

“이런 젠장!”

적군 굴레를 벗은 자가 쿠테브닌의 숨통을 끊기 위해 무기를 찔러 넣었다.

그러나 적군 굴레를 벗은 자의 손에 들린 무기가 쿠테브닌의 심장을 꿰뚫는 것보다…….

현성의 손에 들린 용혈검이 적군 굴레를 벗은 자의 심장을 꿰뚫는 게 더 빨랐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사용한 현성이 쿠테브닌을 공격했던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을 공격했다.

수적 우위도…….

신들의 권능도…….

현성 앞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도망쳐!”

결국 겁에 질린 적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주했다.

“하!”

현성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차원 게이트를 열어 그들을 하나하나 추격해 제거하거나 충성 맹세를 받아 냈다.

단 한 명의 적군 굴레를 벗은 자도 현성의 손아귀에서 도망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최현성 플레이어. 앞으로 제가 만든 강화석의 10%를 최현성 플레이어께 무상으로 드리겠습니다.”

목숨을 구원받은 쿠테브닌이 현성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그에 합당한 보상을 약속했다.

이런 일이 계속해서 되풀이되었다.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현성과 한번 마주치면 절대 숨거나 도망칠 수가 없었다.

현성이 귀신같이 알고 찾아와 제거하거나 굴복시켰기 때문이다.

팽팽하던 전황이 급격히 기울어졌다.

신들의 가세에도 이미 기울어진 승기를 뒤집기는 힘들었다.

이에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다.

모든 전력을 동원해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 *

파지지직!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그와 동시에 수천에 달하는 굴레를 벗은 자들이 지구로 쏟아져 들어왔다.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최후의 전장으로 정한 곳은 바로 지구였다.

지구에서 전쟁을 벌이는 게 가장 승기가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고향 차원을 지키느라 전력을 다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왔구나.”

현성이 차원 게이트를 통해 지구로 쏟아져 들어오는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현성을 비롯한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적들이 총공격을 해 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수천에 달하는 인원의 이동을 숨길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딱히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그대로 방치 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지구에 모여 마지막 결전을 치르는 것뿐이었다.

“공격!”

리더로 보이는 자의 외침과 함께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의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스르르릉!

현성이 용혈검을 뽑아 들었다.

사실 싸우면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단 하나.

지구의 안전이었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굴레를 벗은 자들이 전투를 벌인다면…….

지구가 제나의 고향 차원처럼 완전히 소멸해 버릴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대비는 되어 있어.’

타악!

현성이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용혈검을 휘둘렀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도 흩뿌렸다.

현성이 성난 맹수처럼 날뛰며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을 쓸어버렸다.

“한국을 공격해!”

적군 굴레를 벗은 자 중 하나가 그 말과 함께 한국을 향해 소멸의 권능을 흩뿌렸다.

사아아아악!

칠흑빛 권능이 한국 전역을 뒤덮었다.

그러나…….

적군 굴레를 벗은 자가 흩뿌린 칠흑빛 권능은 한국에 도달하지 못했다.

중간에 자리 잡은 반투명한 장벽에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결계?”

적군 굴레를 벗은 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직접 한국으로의 육탄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터엉!

그 역시 중간에 자리 잡은 반투명한 장벽에 가로막혀 버렸다.

“다른 나라를 공격해!”

“알았어!”

동료의 말에 한국을 공격했던 적군 굴레를 벗은 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여전히 지상으로 진입할 수가 없었다.

지구 상공을 뒤덮고 있는 반투명한 장막 때문이었다.

“이게 도대체 뭐야?”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장벽을 파괴하기 위해 온갖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반쯤 질린 표정으로 지구의 지상을 뒤덮고 있는 반투명한 장막을 바라보았다.

‘아파 죽겠네.’

투구 속에 가려진 현성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의 공격이 100%의 확률로 현성에게 꽂혔기 때문이다.

아마 현성의 체력 스텟이 조금만 낮았다면?

그대로 즉사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성은 다행히 살아남았다.

이는 힐러 플레이어들의 지속적인 힐과 불사의 서 그리고 적의 체력과 마력을 흡수하는 스킬들 덕분이었다.

그중 하나라도 미흡했다면?

현성은 한 번의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통해서 다행이야.’

탱커의 직업 스킬 중에 희생의 방패라는 것이 있다.

현성은 탱커는 아니었지만 가챠의 두 번째 옵션을 돌리다 희생의 방패 스킬을 얻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고 굳이 강화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최후의 전장으로 지구를 노린다는 사실이 속속 발견되자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현성은 희생의 방패가 가진 옵션에 주목했다.

타인이나 사물이 받는 공격을 대신 받아 주는 스킬.

그 사물에 지구라는 행성도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현성은 일단 시도해 보기로 했다.

희생의 방패를 계속 강화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 희생의 방패 범위를 행성 단위로 늘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지구가 받아 내야 하는 어마어마한 수치의 충격을 현성이 대신 받아 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희생의 방패가 강화되며 받게 되는 공격을 꽤 높은 수치로 감소시켜 주기는 했다.

그렇지만 무려 수천에 달하는 굴레를 벗은 자들이 서로 충돌하는 장소였다.

또 적들은 적극적으로 지구를 공격할 것이 거의 확실했다.

자칫 잘못하면 현성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현성은 한번 해 보기로 했다.

견뎌 내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현성은 도전했다.

어차피 지구에 있는 이들을 모두 대피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수많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성이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아, 물론 불사의 서라는 보험이 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현성은 레벨 업을 하며 쌓인 보너스 스텟을 모두 체력에 올인하며 지구에서 벌어질 최후의 결전을 대비했다.

그리고 최후의 결전이 벌이지는 날.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현성의 계획은 멋지게 성공했다.

뭐, 그 대가로 현성은 계속해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지만…….

어쨌든 성공한 건 성공한 거였다.

전투는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애초에 전력 차이가 너무 컸다.

사실 현성이 귀환한 순간부터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에게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전황이 완벽하게 기울어졌고 투항하는 자들이 속출했다.

마지막 결전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끝났다.

억겁의 시간 동안 이어졌던 차원 전쟁이 아군의 승리로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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