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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권. 귀환 (214/225)
  • ┃귀환

    현성은 오랜 시간 차원의 틈새를 헤매고 다녔다.

    정신이 마모될 정도로 길고 긴 시간이었다.

    현성은 인간을 왜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부르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외로웠다.

    다른 이와 대화가 하고 싶었다.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현성은 말하는 방법을 잊지 않기 위해 끝없는 암흑을 돌아다니며 미친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처음 희망을 발견했을 때는 금방이라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며 그 희망이 점점 깎여 나갔다.

    그나마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는 희망이라도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았다는 증거는 바로 수급되는 경험치와 포인트였다.

    수급되는 경험치의 양과 포인트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에 따라 플레이어로 각성하고 오랜 시간 1이었던 레벨이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포인트에 여유가 생기자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할 여유도 생겼다.

    그러나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현성은 여전히 혼자였고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십시일반 스킬을 통해 습득하는 경험치와 포인트의 양이 계속해서 상승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시스템은 오프라인 상태였다.

    차원 이동 스킬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현성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잘못하면 그대로 죽는다.

    설사 살아남는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일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오랜 시간을 이동한 끝에 겨우 바깥세상의 실마리를 잡았다.

    이 실마리마저 잃어버린다면?

    모든 게 끝이었다.

    현성은 포인트를 모았다.

    그리고 고유 권능 가챠의 첫 번째 옵션과 두 번째 옵션을 골고루 돌렸다.

    첫 번째 옵션은 공격 스킬이나 방어 스킬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차원 이동 스킬과 십시일반 스킬에 투자했다.

    차원 이동 스킬의 강화가 계속된다면 혹시 도착지를 자유자재로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십시일반 스킬을 강화한 이유 역시 탈출구를 더 빠르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두 번째 옵션은 십시일반과 같이 이곳에서 탈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돌렸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현성은 같은 일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차원 이동 스킬과 십시일반 스킬을 강화하고 고유 권능 가챠의 두 번째 옵션을 발동시켜 새로운 스킬을 뽑았다.

    차원 이동 스킬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십시일반 스킬의 경우 점점 효율이 올라갔다.

    ‘언제까지 이렇게 떠돌아야 하는 거지?’

    10년.

    식량도 있고 물도 있었다.

    계속해서 수급되는 경험치와 포인트로 인해 현성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의 마모 속도가 너무 빨랐다.

    현성은 왜 굴레를 벗은 자들이 죽음을 선택하는지 충분히 이해했다.

    ‘다시 해 보자.’

    현성이 기계적인 동작으로 가챠 옵션을 돌렸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하락합니다.

    -매직 미사일 - 일반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차원 이동이 생성되었습니다.

    ……후략……

    정신없이 가챠를 돌렸다.

    -고유 권능 가챠의 발동이 실패했습니다.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다 써 버렸나?’

    현성이 무감각한 표정으로 차원 이동 스킬의 정보창을 열었다.

    [차원 이동]

    -액티브 스킬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

    인형처럼 느껴지던 현성의 얼굴에 생기가 피어올랐다.

    ‘없다. 없어졌어.’

    차원 이동 스킬에 항상 붙어 있던 ‘목적지를 설정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사라졌다.

    몽롱했던 정신이 또렷해졌다.

    현성이 정신을 집중했다.

    기존에 현성이 알고 있던 좌표들을 향해 차원 이동 스킬의 사용이 가능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현성과 만났던 이들이 위치한 좌표가 또렷하게 느껴졌다.

    ‘완전 개사기가 되어 버렸네.’

    그간 엄청난 포인트를 퍼먹은 보답을 하기라도 하듯 차원 이동 스킬은 단순한 이동 스킬이 아니라 위치 추적기 겸 이동 스킬이 되어 버렸다.

    ‘가자.’

    현성은 부모님이 계신 곳을 향해 차원 이동 스킬을 사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뭐지?’

    자신이 알고 있는 이들이 뭉쳐 있는 좌표가 감지되었다.

    그런데 위치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었다.

    ‘전투 중인 건가?’

    루시아, 게스피트, 백화.

    세 사람의 좌표가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거슬리는 게 하나 있다면…….

    ‘그놈이다.’

    현성에게 이 고생을 하게 만든 장본인.

    알파라지.

    그놈이 루시아, 게스피트, 백화와 함께 있었다.

    ‘이놈이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 거야.’

    현성이 목적지를 바꿨다.

    ‘가자.’

    그리고 루시아를 대상으로 새롭게 거듭난 차원 이동 스킬을 사용했다.

    파지지직!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휘익!

    현성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차원 게이트 속으로 뛰어들었다.

    * * *

    루시아는 현성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현성이 귀환하기를 간절하게 기원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항상 그렇듯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현성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루시아!”

    현성이 루시아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날렸다.

    서걱!

    어느새 현성의 오른손에 쥐인 용혈검이 일 검에 알파라지의 오른팔을 잘라 냈다.

    “크악!”

    알파라지가 짧은 비명을 터트리며 뒤로 물러났다.

    “최현성!”

    “최현성 플레이어!”

    게스피트와 백화가 환한 얼굴로 현성을 불렀다.

    그녀들로서도 죽기 직전의 위기의 순간에 현성이 모습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이곳은 공간 이동 스킬 사용이 불가능한 결계 내부이지 않은가?

    “다들 잘 지냈죠?”

    현성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주군…….”

    루시아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네가 없었는데 잘 지냈겠냐?”

    게스피트는 틱틱거렸고…….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백화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현성의 귀환을 환영했다.

    네 명이 훈훈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을 때.

    콰콰콰콰콰콰!

    소멸의 권능이 담긴 공격이 현성과 루시아 일행을 향해 날아왔다.

    퍼어어엉!

    현성이 용혈검을 휘둘러 가볍게 적의 공격을 분쇄했다.

    “이야기는 잠시 후에.”

    그 말과 함께 현성이 적들을 주시했다.

    총 15명.

    알파라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하나 그들의 존재를 인지한 순간, 공간 이동 스킬의 좌표에 그들 개개인 각인되었다.

    설사 이 자리에서 도망친다고 해도 언제든 찾아가 목을 베어 버릴 수 있는 조건이 완성된 것이다.

    “설마 살아 돌아올 줄은 몰랐어.”

    알파라지가 잘려 나간 오른팔을 다시 붙이며 입을 열었다.

    “살아서 돌아온 걸 후회하게 해 주지.”

    살기 가득한 알파라지의 말에 현성이 코웃음을 쳤다.

    “네가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닐 텐데?”

    적들의 숫자는 고작해야 15명.

    과거의 현성이라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한 숫자였다.

    “이 자리에 우리만 있는 게 아니거든.”

    알파라지가 그 말과 함께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콰콰콰콰!

    현성에게 달려드는 알파라지의 몸에 온갖 신들의 권능이 깃들었다.

    천뢰신의 권능, 흑뢰신의 권능, 무신의 권능, 정령신의 권능 등등.

    어림잡아도 최소 수십에 달하는 신들의 권능을 한 몸에 담은 알파라지의 무력은 확실히 일반적인 굴레를 벗은 자의 한계를 월등히 뛰어넘은 상태였다.

    “주군, 제게 포인트를 조금만 나눠 주십시오. 그럼 제 권능을…….”

    휘익!

    루시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현성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서걱!

    현성을 향해 달려들던 알파라지의 몸이 상체와 하체로 분리되었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알파라지는 떨어져 나간 자신의 하반신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온갖 신들의 권능을 부여받은 지금이라면 현성과도 충분히 해볼 만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해볼 만한 수준이 아니라 압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자신이 압도당해 버렸다.

    사아아아악!

    현성이 몸속에 잠들어 있던 마력을 일깨웠다.

    그 순간 유형화된 마력이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을 휘감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떨어져!”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현성의 마력을 떨쳐 내려고 발악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당황한 건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만이 아니었다.

    루시아, 게스피트, 백화 역시 현성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마력에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이건 말도 안 돼!”

    알파라지가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비틀었다.

    그러나 온갖 신의 권능이 중첩된 몸으로도 현성의 마력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강대한 마력을?”

    알파라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굴레를 벗은 자이자 온갖 신들의 권능을 한 몸에 부여받은 자신의 권능보다 현성의 마력이 더 강력했기 때문이다.

    굴레를 벗은 자들의 스텟은 엇비슷하다.

    절대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수가 없었다.

    “인장 스킬을 도대체 얼마나 많이 사용한 거냐?”

    알파라지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현성이 인장 스킬을 이용해 스텟을 올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인장 스킬은 최근 10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한 적 없어.”

    고유 권능 가챠를 돌리기 바빠서 쓸 틈이 없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럼 어떻게 이렇게 높은 스텟의 마력을 얻었다는 말이냐!”

    알파라지의 외침에 현성이 피식하고 미소를 지었다.

    “레벨을 올리면 되지.”

    “뭐?”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야.”

    파삭!

    현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알파라지를 포함한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의 육신이 그대로 소멸했다.

    스킬도 권능도 아닌 현성이 뿜어낸 순수한 마력에 짓눌려서 말이다.

    전투가 끝났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게스피트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현성에게 물었다.

    현성은 굴레를 벗은 자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 주지는 못했다.

    결정적으로 현성은 10여 년간 차원의 틈새에 갇혀 있었다.

    그럼 더 약해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더 강해졌다.

    그것도 게스피트의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말이다.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 드릴게요. 일단 부모님을 뵈어야 할 것 같아서요.”

    파지지직!

    현성이 그 말과 함께 차원 게이트를 열었다.

    “먼저 갑니다.”

    그 말을 끝으로 현성이 차원 게이트를 통과했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주름살이 살짝 늘어난 부모님의 얼굴과 익숙한 집 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혀, 현성아!”

    어머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성의 이름을 불렀다.

    “역시 돌아왔구나!”

    어머니가 현성을 꼭 끌어안았다.

    아버지 역시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현성을 끌어안았다.

    “왔구나, 왔어. 그래, 꼭 돌아올 줄 알았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어디, 내 새끼 얼굴 좀 보자. 이게 꿈은 아니지?”

    어머니가 현성의 얼굴으로 양손으로 어루만지며 물었다.

    “네, 진짜 돌아왔어요. 꿈 아니에요.”

    “정말 고맙다! 고마워!”

    어머니가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다시금 현성을 끌어안았다.

    아버지 역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현성을 부둥켜안았다.

    세 사람이 감격적인 해후를 하고 있을 때.

    “좀 빨리 올 것이지.”

    누나 최현지가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현성을 타박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최현지의 눈시울도 점점 붉게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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