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권. 절망과 희망 (213/225)
  • ┃절망과 희망

    ‘살았다.’

    현성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최악의 경우 차원의 틈새에 짓눌려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현성은 살아남았다.

    도박에 성공한 것이다.

    ‘이제 됐어.’

    이제 이곳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

    현성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먹통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원 게이트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파직!

    역시 먹통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현성이 상태창을 열었다.

    루시아처럼 용병 고용을 통해 이곳에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어?’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시스템 상점에 접속해 용병 고용을 신청하려고 했는데…….

    ‘이게 뭐야?’

    결계가 외부와의 소통을 방해했을 때처럼 시스템 상점창이 열리지 않았다.

    과거 결계에 갇혔을 때 시스템은 마치 오프라인 상태로 변한 것처럼 외부와의 연결이 불가능했다.

    한데 시스템 상점이 그때와 같이 변해 버렸다.

    -루시아.

    대군주의 외침을 통해 루시아를 불러 봤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 거야?’

    도박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던 현성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살폈다.

    주변은 완벽한 암흑이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사용했다.

    그러나 현성의 몸 주변만 작게 빛날 뿐이었다.

    현성이 몸을 움직였다.

    슈우우우우욱!

    현성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그러나…….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이게 무슨?’

    끝없이 드넓은 공간.

    암흑밖에 없는 공간.

    그런 곳에 갇혀 버렸다.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가족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지구와 휘하 차원도 지켜야 했다.

    한데 이 빌어먹을 곳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한 번 더 사용해 봐야 하나?’

    차원 이동 스킬.

    그 스킬을 사용한다면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일단 가 보는 데까지 가 보자.’

    현성이 끝없는 암흑을 유영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그럼에도 암흑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아공간 스킬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이었다.

    현성의 아공간에는 수천 년을 먹고도 남을 정도의 물과 식량이 다양하게 쌓여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나오는 것은 짙은 암흑뿐이었다.

    ‘빌어먹을.’

    현성은 정신적으로 지쳐 갔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고독이라는 이름의 맹독이 현성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부모님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루시아와 누나도 보고 싶었고 전쟁의 향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말라 죽고 싶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탈출해야 해.’

    현성이 차원 이동 스킬을 다시금 꺼내 들었다.

    그러나 이대로는 위험성이 너무 컸다.

    ‘강화를 해야 하나?’

    무 등급까지 강화시켰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던 스킬.

    ‘혹시 모르는 일이야.’

    현성은 적당히 제물을 바치며 차원 이동 스킬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옵션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망할.’

    현성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괜히 포인트만 낭비한 꼴이 되어 버렸다.

    포인트는 현성의 수명이자 강해지거나 새로운 스킬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한데 그 포인트를 너무도 허무하게 낭비해 버렸다.

    ‘가챠를 더 돌려 보자.’

    이제 믿을 건 고유 권능 가챠의 두 번째 옵션밖에 없었다.

    현성이 가챠를 돌렸다.

    제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스킬이 나오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어둠의 그림자 - 일반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화염비 - 일반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후략……

    그러나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포인트만 줄어들었고 제대로 된 스킬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십시일반 - 유일 창조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이건 뭐야?’

    탈출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무려 유일 창조 등급 스킬이 떴다.

    현성이 스킬 정보를 확인했다.

    [십시일반 – 유일 창조 등급]

    -패시브 스킬

    -습득자와 물리적,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들의 포인트와 경험치를 전달받습니다.

    ‘헐?’

    현성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포인트와 경험치를 전달받을 수 있다고?’

    포인트는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경험치는?

    1레벨 플레이어인 현성으로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설마 레벨 업이 가능하다는 건가?’

    1레벨 플레이어인 현성은 몬스터를 사냥해도 경험치가 아닌 포인트를 얻는다.

    그런데 이 스킬이 있으면?

    다른 이들의 경험치를 받아 레벨 업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완전 사기 스킬이네.’

    고유 권능 가챠의 두 번째 옵션에서 드디어 인장 스킬에 이어 사기라고 불릴 만한 스킬이 나왔다.

    십시일반 스킬만 있으면?

    현성은 레벨 업을 할 수 있다.

    레벨 업을 하면?

    레벨 1당 5의 스텟을 준다.

    스텟을 추가로 대거 늘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지금 당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거지.’

    휘하 신하들에게 무언가를 받기는커녕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황금이 덩어리가 있어도 그것을 사용할 수 없는 무인도에 갇혀 있다면?

    그건 빵 한 덩이만도 못한 가치를 가진다.

    현재 현성의 처지가 그러했다.

    ‘어?’

    그때였다.

    -경험치 1을 습득하셨습니다.

    ‘이게 뭐야?’

    갑자기 경험치 1을 습득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설마?’

    현성의 표정이 환희로 가득 찼다.

    ‘완전히 동떨어진 게 아니었어.’

    십시일반 스킬은 지금까지 현성이 단 한 번도 손에 넣은 적이 없는 스킬이다.

    또 현성의 신하들은 각 차원에 흩뿌려져 있다.

    이곳과 가까운 곳에 신하들이 사는 차원이 있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야?’

    문제는 현성이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일단 움직이자.’

    이곳을 탈출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았다.

    잠시도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했다.

    * * *

    현성이 사라지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적들과 신들이 손을 잡고 벌인 공작을 알아차리고 맹비난을 가했다.

    그러나 말로 하는 비난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또 사라진 현성을 다시금 돌아오게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전쟁이 더 치열해졌을 뿐이다.

    다행히 지구는 제나와 다른 굴레를 벗은 자들의 배려로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성의 가족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들이 이대로 영영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현성 씨는 꼭 돌아오실 겁니다.”

    루시아가 그렇게 말하며 현성의 어머니 박미숙 여사를 달랬다.

    “그러겠지?”

    “예, 현성 씨는 분명히 살아 있습니다.”

    루시아의 말에 박미숙 여사가 애써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루시아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주군께서는 분명 살아 계신다.’

    군주와 기사로서 맺어진 언약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 말은 루시아의 주군인 현성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현성의 어머니인 박미숙 여사에게 하지 못한 말도 있었다.

    바로 현성이 언제 돌아올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빠르면 지금 당장이라도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후 돌아올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실 수도 있겠지.’

    차원의 틈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로 모든 포인트를 소모한다면?

    현성은 홀로 쓸쓸히 죽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루시아가 그 말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간의 전쟁에서 루시아는 현성의 가족을 호위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역할을 다른 이들에게 넘겼다.

    그 이유는 바로…….

    루시아 역시 굴레를 벗은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루시아는 현성이 각성한 초기부터 함께해 왔다.

    현성은 루시아에게도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고 그 수익 중 일부를 수수료로 받았다.

    그 때문에 성장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현성이 사라진 후에는?

    현성이 해야 할 일을 모두 루시아가 전담하고 있었다.

    이는 현성이 혹시 모를 상황을 대신해 루시아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지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현성의 대리인이 된 루시아의 포인트는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그리고 그 결과.

    굴레를 벗은 자가 될 수 있었다.

    물론 루시아는 굴레를 벗은 자가 되었다고 해서 현성이 내린 마지막 명령을 어길 생각은 없었다.

    현성이 내린 명령은 자신의 가족을 지키라는 것이다.

    아마 굴레가 벗은 자가 되며 새롭게 손에 넣은 고유 권능이 아니었다면…….

    루시아는 계속해서 현성의 가족 곁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새롭게 얻은 고유 권능으로 인해 더 이상 지근거리에서 현성의 가족을 보호할 필요가 사라졌다.

    루시아가 새롭게 얻은 고유 권능을 절대 보호.

    자신과 타인을 향한 모든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권능이었다.

    유일한 단점은 적의 공격을 방어할 때마다 포인트를 어마어마하게 소모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포인트만 많다면 사실상 무적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권능이었다.

    거리의 제한은 없었다.

    단 숫자 제한은 있었다.

    권능의 시전자인 자신을 제외한 네 명.

    이에 루시아는 현성의 부모님과 누나를 보호 대상으로 지정했다.

    남은 한 자리는 그대로 비워 놓았다.

    주군인 현성을 지정했지만 인식이 되지 않은 탓이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루시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미숙 여사에게 인사를 했다.

    “안 가면 안 되겠니?”

    박미숙 여사는 루시아를 자신의 딸처럼 생각했다.

    같이 산 세월이 벌써 수십 년에 달했다.

    박미숙은 아들 현성에 이어 딸처럼 생각하는 루시아마저 잃고 싶지는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도태될 뿐입니다. 현성 씨의 고향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강해져야 합니다.”

    루시아의 말에 박미숙 여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아가 정령 소환 스킬을 사용했다.

    반투명한 말의 형상을 한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 현성이 정령의 돌을 선물해 주어 얻은 녀석이었다.

    또 현성이 직접 강화해 줘서 높은 기동력과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전마이기도 했다.

    루시아가 바람의 정령 위에 올라탔다.

    “가자, 스캇.”

    루시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람의 정령 스캇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차원 게이트를 통과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 * *

    ‘이제 겨우 방향을 잡았네.’

    무려 보름을 방황한 끝에 현성은 제대로 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그 증거는 단 하나.

    바로 시스템 메시지였다.

    -경험치 1을 습득하셨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는 며칠 간격으로 한 번씩 울렸다.

    그래서 방향을 잡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보름 동안 열심히 노력한 끝에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았고 그 결과, 지금은 12시간에 한 번씩 시스템 메시지가 울리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경험치를 습득했다는 알람은 며칠 간격에서 이틀로, 하루로 그리고 지금은 12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이 시간을 1시간으로, 1분으로, 1초로 줄일 수 있다면?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 거야.’

    문제가 하나 있다면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을 헤쳐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언제 끝난다는 어떤 기약도 없이 말이다.

    ‘점점 나아지고 있어.’

    현성은 좌절하지 않았다.

    희망이 보이고 있다.

    그런데 좌절할 필요는 없었다.

    ‘꼭 빠져나간다.’

    현성은 1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1백 년이 걸리든 꼭 이곳을 빠져나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 * *

    현성이 사라진 후.

    전쟁은 좀 더 치열해졌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승기를 잡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신들의 개입 때문이었다.

    신들은 노골적으로 전쟁에 개입해 영향력을 발휘했다.

    현성이 사라졌다고 해도 전체적인 전력은 지구가 속해 있는 연합이 우세했다.

    그러나 신들이 개입하면서 그 우세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신들은 전쟁이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신들은 알파라지가 속해 있는 연합에 적당한 수준의 도움만 줬다.

    마치 두 연합이 서로 싸우다 공멸이라도 하라는 듯이 말이다.

    현성이 속해 있는 연합은 신들과 손을 잡은 적들을 비난했다.

    알파라지가 속해 있는 연합은 자신을 이용하는 신들을 못마땅해했다.

    그러다가도 전황이 불리해지면 패배하지 않기 위해 못 이기는 척 신들의 도움을 받았다.

    신들의 개입으로 전쟁은 초장기전이 될 조짐을 보였다.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다.

    그러나 두 연합 중 그 누구도 상대에게 굴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 * *

    꽈아아앙! 꽈아아앙!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권능들이 루시아의 몸을 연달아 강타했다.

    루시아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적들이 날리는 공격을 꿰뚫으며 전진했다.

    그런 루시아의 곁에는 백화가 자리해 있었다.

    백화가 검무를 추며 생겨난 강기들이 적들을 베어 나갔다.

    백화는 수비를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공격 일변도의 검술을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화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루시아가 펼쳐 준 절대 보호 권능 덕분이었다.

    루시아와 백화가 한 팀이 되어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을 휩쓸고 다녔다.

    “후퇴!”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결국 점령하고 있던 차원을 포기하고 후퇴를 감행했다.

    “휴우!”

    루시아가 긴 한숨을 토해 냈다.

    그간 고유 권능을 갈고닦으며 수련에 열중했다.

    또한 쉼 없는 실전을 겪으며 정신과 육체를 단련시켰다.

    그러나 피곤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겼네요.”

    백화의 말에 루시아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기긴 이겼다.

    그러나 적들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죽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적들이 무리하지 않고 적절히 후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시아가 씁쓸한 표정을 지은 건 적들을 놓쳤기 때문이 아니었다.

    ‘언제 돌아오시려나.’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현성이 돌아오지는 않았을까 하는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그 희망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또 최현성 플레이어를 생각하는 거예요?”

    백화의 물음에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오실 거예요.”

    “그러시겠죠?”

    “아직 멀쩡히 살아 있잖아요.”

    “그렇죠.”

    현성이 사라진 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건만 현성은 아직 귀환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성은 살아 있었다.

    현성과 루시아가 맺은 맹약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것과 귀환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어쩌면 현성은 10년이 아니라 100년, 1000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루시아는 그런 가능성을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이 없었다.

    위이이이잉!

    그때 루시아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연락을 한 사람은 게스피트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루시아가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

    -그 찢어 죽일 놈의 X끼가 있는 곳을 알아냈어.

    게스피트의 말에 루시아의 두 눈이 살기로 번뜩였다.

    찢어 죽일 놈의 X끼.

    현성을 함정에 빠트린 알파라지를 지칭하는 은어였다.

    “당장 가겠습니다. 좌표를 알려 주세요.”

    -알았어.

    루시아는 게스피트에게 좌표를 받자마자 차원 게이트를 열고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에휴!”

    백화가 한숨을 내쉰 후 그런 루시아의 뒤를 따라 차원 게이트를 넘었다.

    * * *

    꽈아아앙! 꽈아아앙!

    게스피트와 알파라지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잠시 후면 루시아가 온다. 모두 단단히 준비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기회에 제거해야 한다.

    알파라지가 게스피트의 공격을 막아 내며 은신해 있는 동료들에게 메시지 스킬을 사용했다.

    -알고 있어.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얼마나 피해를 입을지.

    루시아는 현성이 사라진 직후 알파라지와 그 동료들에게 악몽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모든 공격 무효화라는 사기적인 고유 권능을 각성한 루시아는 현존하는 가장 단단한 탱커였다.

    사실 단순한 탱커였다면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다.

    방어에 집중한 경우는 공격력이 약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루시아의 권능이 타인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공격력을 올리는 데 모든 권능을 올인한 딜러에게 모든 공격을 무효화하는 루시아의 권능이 적용된다면?

    그건 악몽 그 자체였다.

    루시아는 백화, 게스피트, 제나 같은 이들과 팀을 이뤄서 활동했는데, 그에 따른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이에 알파라지는 동료들과 함께 루시아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이번 일에는 신들도 개입해 있었다.

    루시아가 최현성 플레이어의 경우처럼 양측이 가진 팽팽한 힘의 균형을 깰 수 있는 이질적인 존재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파지지직!

    차원 게이트가 열리고 그 안에서 루시아와 백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르르릉!

    각자 자신의 무기를 뽑아 든 루시아와 백화가 알파라지에게 달려들었다.

    1 대 1에서 3 대 1이 된 상황.

    “죽여!”

    알파라지의 외침과 함께 은신해 있던 10여 명의 굴레를 벗은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전장 내부와 외부가 완벽하게 단절되었다.

    “뭐야?”

    “함정?”

    루시아와 백화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게스피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당황하던 세 사람의 표정은 금방 안정을 되찾았다.

    “고작 그 정도 인원을 가지고 우리를 제거하려고 한 거냐?”

    게스피트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적들을 바라보았다.

    적들의 숫자는 총 15명.

    많기는 했다.

    아군이 셋이니 무려 다섯 배나 많았다.

    그러나 아군 중에는 루시아가 있었다.

    “다 쓸어버려!”

    게스피트가 외침과 함께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게스피트의 뒤를 루시아와 백화가 따랐다.

    세 사람은 그간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루시아, 게스피트, 백화는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수많은 위기를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했기 때문이었다.

    루시아는 자신을 포함해 게스피트와 백화에게 권능을 사용했다.

    루시아는 그간 천문학적인 포인트를 투입해 자신의 권능인 절대 보호를 업그레이드했다.

    그 결과 루시아의 권능 절대 보호는 적용 대상이 세 명이나 늘어났고 포인트 소모량도 많이 줄어들었다.

    루시아, 게스피트, 백화는 적들의 공격을 무시하고 공격에만 전념했다.

    ‘포인트의 여유는 충분해.’

    루시아는 현성의 유산을 물려받은 후계자였다.

    그 결과 전쟁 중임에도 엄청나게 많은 양의 포인트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고유 권능 절대 보호를 사용하는 경우라면 자신을 포함해 세 명 정도는 하루 종일이라도 보호할 수 있었다.

    ‘우릴 죽일 생각이었다면 15명이 아니라 150명 정도는 데리고 왔어야지.’

    루시아가 적들의 어리석은 선택을 비웃으며 검과 방패를 휘둘렀다.

    ‘오히려 잘됐어.’

    이 기회에 현성의 실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알파라지를 제거해 버릴 생각이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굴레를 벗은 자들의 권능이 충돌하며 마력의 파편이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3 대 15의 전투였지만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은 숫자가 적은 루시아 일행 쪽이었다.

    방어를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일방적인 공세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나 적들의 숫자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적들에게 힘을 빌려주는 존재 때문이었다.

    “이 쓰레기 같은 놈들! 네놈들이 그러고도 굴레를 벗은 자냐!”

    게스피트가 잔뜩 분개한 표정으로 적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일반적인 전투였다면?

    적들의 반 이상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버티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적들의 몸을 수호하는 신들의 권능 때문이었다.

    적들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전투를 지속해 나갔다.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3시간이 흐르고 6시간이 흐르고 12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거의 만 하루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루시아, 게스피트, 백화의 얼굴에 절망이 피어올랐다.

    지금까지 수적 열세를 무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루시아의 권능 절대 보호 덕분이었다.

    그런데 현재 루시아의 포인트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당장 위기를 겪는 건 아니었다.

    백화와 게스피트가 자신들의 포인트를 루시아에게 넘기면 되니까 말이다.

    문제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백화와 게스피트가 루시아에게 포인트를 넘긴다고 해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날 뿐이다.

    적들을 보호하고 있는 신들의 권능 때문에 적들을 죽일 수가 없었다.

    이대로 계속 시간이 흐른다면?

    세 사람이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가 모두 바닥난다면?

    자신들은 이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많은 숫자의 병력을 동원하지 않은 거야.’

    게스피트는 고작 15명밖에 되지 않는 적들을 비웃었다.

    그러나 적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한 것뿐이었다.

    굳이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자신들을 잡을 수 있단 자신이 있었기에 15명만 나선 것이었다.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루시아, 게스피트, 백화는 수많은 시도를 했다.

    결계를 부수기 위해 노력도 해 보고, 적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 권능에 포인트를 투자해 공격력을 늘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적들을 보호하고 있는 신들의 권능은 너무 단단했다.

    사실상 서로가 서로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전투가 이어졌다.

    이건 루시아의 권능인 절대 보호가 먼저 사라지느냐와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을 보호하고 있는 신들의 권능이 먼저 사라지느냐의 싸움이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숫자가 적은 루시아 일행이 불리해졌다.

    고작 셋의 포인트를 모은 것과 총 15명의 적과 그들에게 권능을 부여해 주는 신들의 포인트를 모두 합친 것의 차이는 상당히 컸다.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 것 같아요.

    루시아가 메시지 스킬로 백화와 게스피트에게 포인트가 바닥났음을 알렸다.

    백화와 게스피트도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 두 사람도 남은 포인트를 모두 루시아에게 건네준 상태였기 때문이다.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절망 가득한 미래만이 남아 있는 상황.

    세 사람은 차원의 틈새로 도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현성은 무 등급 스킬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루시아 일행은 소모성 아이템을 사용해야 했는데, 보유하고 있는 소모성 아이템의 등급이 너무 낮아 결계를 뚫기가 힘들었다.

    뭐, 설사 결계를 뚫었다고 해도 생환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이 세 사람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의 대다수를 소모해 서서히 노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게스피트가 적들을 주시했다.

    곱게 죽어 줄 생각은 없었다.

    알파라지.

    현성을 차원의 틈새로 보내 버리고 자신들을 위기로 몰아넣은 원흉.

    저놈만은 꼭 제거할 생각이었다.

    루시아, 게스피트, 백화가 적들을 향해 마지막 싸움을 걸었다.

    전투 도중 루시아의 권능인 절대 보호가 사라졌다.

    서걱! 좌악!

    세 사람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하나둘 늘어났다.

    절대 보호의 권능이 사라진 상태에서 수적 우위를 뒤집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억울하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

    루시아는 현성의 원수를 눈앞에 두고도 어찌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억울했다.

    ‘보고 싶었는데.’

    귀환해서 환하게 웃는 현성의 얼굴을 꼭 보고 싶었다.

    한데 이제 그건 불가능한 꿈이 되어 버렸다.

    현성이 돌아오더라도 자신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보다 현성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안타까웠다.

    휘익!

    알파라지의 검이 루시아의 심장을 향해 날아왔다.

    절대 보호라는 권능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전투력이 가장 약한 건 바로 루시아였다.

    파앙!

    방패로 겨우 알파라지의 공격을 방어해 냈다.

    그러나 연계로 이어지는 다른 적의 공격은 도저히 막아 낼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아쉬웠다.

    죽기 전에 현성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그때였다.

    파지지직!

    공간이 찢어지며 반강제적으로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주군!”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