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권. 함정 (212/225)

┃함정

전투가 끝난 후 현성은 가족들을 찾아갔다.

“괜찮으세요?”

“내가 힘들 게 뭐가 있니.”

현성의 물음에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다.

“우리는 불편한 것 하나도 없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버지의 대답에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오셔서 바깥 공기 좀 마시세요.”

현성의 말에 부모님과 누나가 밖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하아! 좋다!”

누나 최현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쐬었다.

현성의 가족들은 최고 수준의 보안 시설이 설치된 지하 벙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경비도 철저했다.

아마 현성의 가족들이 각국 수장들보다 더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성은 불안했다.

아무리 보안이 좋고 경비가 철저해도 굴레를 벗은 자 앞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신경을 써 주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번 경우처럼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까지 위기에 몰릴 때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아공간 강화가 성공해야 하는데.’

현성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아공간을 떠올렸다.

높은 등급의 아공간은 살아 있는 생명체를 수납할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수납할 수 있다는 뜻이지 장시간 생존이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또 빛도 없으며 중력도 없다.

현성은 아공간을 강화시켜 그 내부를 평범한 인간이 살아가기 적합한 환경으로 바꾸고 싶었다.

그럼 가족들을 아공간이라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공간에 보호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가 봐라.”

“몸조심하고.”

현성의 말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나 현성은 부모님의 얼굴에 자리하고 있는 아쉬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성에게는 가족과 오래 함께 있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네, 가 볼게요.”

현성이 그 말과 함께 다시금 전장으로 향했다.

그날 현성은 무섭게 날뛰며 적군 진영의 차원을 열 개나 점령했다.

* * *

“최현성 플레이어 때문에 피해가 너무 커!”

“저놈을 잡지 않으면 결국 이번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을 거야.”

굴레를 벗은 자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최현성 플레이어를 성토했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무력은 일반적인 굴레를 벗은 자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했다.

그렇기에 최현성 플레이어가 출현하기만 하면 전투의 승패가 뒤바뀌고 아군의 희생이 커진다.

그간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목숨을 잃거나 투항한 굴레를 벗은 자의 숫자가 두 자릿수를 넘어 세 자릿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현재는 최현성 플레이어가 출현하면 뿔뿔이 흩어져 도주하고 대신 그렇게 흩어진 전력을 다른 전장에 집중시키는 식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꼼수를 부린다고 해도 결국은 피해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최현성 플레이어는 지금 이 시간에도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계속 흐르면?

결국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게임을 하는 놈들부터 단속을 해야 해.”

무려 전쟁 중인 와중에도 틈틈이 짬을 내서 게임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직접 하는 경우도 있었고 오토를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게임만이 아니라 영상이나 이북 같은 문화 상품을 즐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 결과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일정 포인트가 적인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흘러 들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단속할 건데?”

“그러다가는 내부 다툼만 커질 뿐이야.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거하거나 지구를 점령해야 한다.”

“네놈들도 게임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자는 거야.”

굴레를 벗은 자들이 말다툼을 벌였다.

그때였다.

“모두 그만! 결국 결론은 하나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거하거나 지구를 점령해야 한다.”

“맞아, 그래야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어.”

굴레를 벗은 자들의 의견이 하나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제거하지?”

문제는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군의 수가 월등히 많다면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그간의 전투에서 벌어진 손실로 인해 오히려 적군의 수가 아군보다 많은 상황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밀리고 숫자에서도 밀리는 상황인 것이다.

거기다 최현성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지구는 여러 굴레를 벗은 자들이 돌아가며 경계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점령이 쉽지 않았다.

사실 그간 지구를 점령해 보겠다고 병력을 찔러 넣지만 않았어도 아군의 희생이 현재의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큰 피해를 각오하더라도 승부를 걸어야지.”

알파라지가 입을 열었다.

“피해?”

“사실 병력을 대규모로 투입하면 지구를 박살 내는 것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알파라지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하면 자신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고향 차원과 휘하 차원에 대한 방비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구 하나 점령하자고 수십 수백 개의 차원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다시 되찾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휘하 신하가 죽게 되면 군주는 그 신하를 영입하는 데 투입했던 통솔력을 영구적으로 상실할 수밖에 없다.

군주의 깃발 효과로 상승했던 스텟이 영구적으로 감소되는 꼴인 것이다.

더군다나 지구 점령에 참여하는 굴레를 벗은 자들의 숫자가 많아지면?

지구를 점령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도 줄어든다.

리스크는 크고 이득은 적은 일에 몇 명이나 나서겠는가?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가 뭔지는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알고 있다. 피해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지. 그러나 소소한 피해를 두려워한 결과, 우리는 더 큰 피해를 봤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그럼 네가 직접 나서지 그래? 너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을 총동원해서 말이야.”

딴지를 걸었던 상대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그는 본래 주화파였다.

반강제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 터라 알파라지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럴 생각이다. 나와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을 총동원해 지구를 침공하겠다.”

“뭐?”

딴지를 걸었던 상대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말 자신이 하겠다고 나설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대신 너희들도 확실하게 호응을 해 줘야 한다. 지원군이 몽땅 지구로 몰려들면 이번 전쟁은 그대로 끝난다.”

“알겠다. 그렇게 하지.”

계획이 세워졌고 얼마 가지 않아 실행에 옮겨졌다.

* * *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이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흩뿌리며 전장을 누볐다.

“아아악!”

“살려 줘!”

전투는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항복하겠습니다!”

전투가 끝났다.

일방적인 압승이었다.

사실 현성이 참여한 전투들은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다.

‘이대로만 가면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어.’

현성은 이번 전쟁을 끝으로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두 세력의 대립이 종결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결과는 당연히 아군의 승리였다.

물론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전쟁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젠가 전쟁이 종결된다면, 최후의 승자는 적군이 아니라 아군이 될 것이 확실했다.

아군은 차근차근 영토를 넓히고 있었다.

잃은 병력도 많았지만 항복하는 이들로 인해 늘어나는 병력도 많았다.

반면 적군은 영토도 잃고 병력도 잃었다.

‘다음 전장으로 가자.’

그때였다.

위이이이잉!

현성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현성이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연결이 끊겼어.’

현성은 스마트폰 프로그램을 사용해 초 단위로 루시아와의 연결을 유지 중이었다.

연결이 끊기면?

이렇게 자동으로 알람이 울린다.

현성이 지구를 향해 차원 게이트를 열었다.

차원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다.

‘이 자식들이 또.’

현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협정은 깨졌지만 지구와 타 차원의 교류를 막는 결계는 여전히 시전이 가능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결계를 시전하는 목적이 시스템의 눈을 속이는 게 아니라 아군 간의 통신을 차단하는 데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현성은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간단히 그 문제를 해결했다.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현성이 지구 인근에 위치한 달로 향하는 차원 게이트를 열었다.

파지지직!

차원 게이트가 정상적으로 열렸다.

현성이 차원 게이트를 향해 뛰어들었다.

* * *

-잠시 후면 온다. 모두 준비해.

알파라지가 메시지 스킬을 시전하자, 이번 작전에 동원된 굴레를 벗은 자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로 이곳으로 올까?

-온다. 그동안에도 항상 이곳으로 왔으니까.

그간 알파라지와 그 동료들은 수도 없이 지구를 침공했다.

물론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그간의 실패가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성과 지구의 연락 체계를 파악했다.

또한 지구로의 직접적인 이동이 불가능할 때 현성이 주로 차원 게이트를 여는 좌표 역시 알아냈다.

그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파지지직!

-열렸다.

알파라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바로 차원 게이트 속에서 최현성 플레이어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죽여!

알파라지의 공격 명령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300인의 결사대가 최현성 플레이어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함정이다.’

차원 게이트를 넘는 순간 현성은 자신이 위기에 빠졌음을 알아차렸다.

적의 숫자는 수백 명에 달했고 현성은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다.

현성이 지구를 바라봤다.

지구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치열하냐면 강력한 스킬의 폭발이 이곳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현성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숫자가 적어.’

고작해야 50명 규모의 적들이 침공한 상태였다.

‘아군이 우세해.’

지구와 타 차원의 연결을 방해하던 결계가 깨졌는지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속속 합류해 적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지구를 침공하던 적들은 수세에 몰려 도주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네.’

적들의 주력이 현성 자신을 노린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50명이 아니라 3백 명이 넘는 굴레를 벗은 자들이 저곳에서 날뛰었다면?

설사 이기더라도 지구의 피해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루시아.

현성이 대군주의 외침을 통해 루시아를 불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날 가두기 위해 달에 새로운 결계를 설치했어.’

공간 이동도 차원 게이트도 막힌 상황.

하지만 현성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버티기만 하면 그만이야.’

현성이 강화된 화신 스킬을 사용했다.

화르르륵!

현성의 몸이 한 줄기 화염으로 변했다.

그냥 화신 스킬도 주백설의 공격을 꽤 오래 버티도록 도와줬다.

강화된 화신 스킬은 마력 소모는 줄고 스킬 공격으로 받는 대미지는 더욱더 경감시켜 주었다.

콰드드득! 콰콰콰콰! 파지지직!

3백 명의 적들이 온갖 종류의 공격 스킬을 퍼부었다.

현성은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적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적들의 숫자가 워낙 많아 피하는 것보다 맞는 게 더 많았지만 말이다.

꽈아아앙!

현성이 결계의 끝에 도달했다.

파괴해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단순히 굴레를 벗은 자들 두셋이 힘을 합쳐 만든 결계가 아니었다.

최소 열 명 이상의 굴레를 벗은 자들이 만들었고 현재도 유지 중인 결계였다.

뚫기 위해 노력하다가 체력과 마력이 빠르게 고갈되면?

오히려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포기하자.’

현성은 도박보다 안전을 선택했다.

현성은 결계 사이를 누비며 시간을 끌었다.

그러면서 지구의 상황에 시선을 집중했다.

지구에서의 전투는 완전히 종결되었다.

‘금방 이곳으로 올 거야.’

현성과 루시아의 연락 체계는 단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이다.

현성이 루시아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했듯이 루시아 역시 현성과 연락이 끊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조치를 취했으리라.

설사 루시아가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출동한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눈뜬장님이 아닌 이상에야 달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전투를 못 볼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 * *

‘방심하고 있구나.’

화신 스킬을 사용한 채로 요리조리 도망치고 있는 최현성 플레이어를 바라보는 알파라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구로 출동한 동료들이 널 도와주러 올 거라고 생각하나.’

알파라지는 최현성 플레이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생각대로 된다면?

얼마 가지 않아 지원군이 도착하고 전투는 난전으로 변할 것이다.

그럼 알파라지와 그 동료들은 수적 우세를 잃고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이번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대패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알파라지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최현성 플레이어를 쓰러트리기 위해 여러 준비를 했다.

그간 전쟁에서 아군이 밀린 것은 최현성 플레이어의 압도적인 무력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나 단지 그것만이 전쟁에서 밀린 원인은 아니었다.

가장 큰 차이는 정보력의 차이였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교류의 보석이 연결된 스마트폰을 통해 동료들과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류했다.

그건 다른 굴레를 벗은 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굴레를 벗은 자가 아니더라도 스마트폰을 통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정보를 교류했다.

그에 반해 알파라지와 그의 동료들은 최현성 플레이어가 유포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했다.

도청이나 조작 등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알파라지와 동료들은 메시지 스킬을 사용하거나 서로 휘하에 있는 신하들을 교환해 정보를 교류해야 했다.

알파라지는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정보 차단이었다.

알파라지와 그의 동료들은 그간 대책 없이 놀고만 있던 게 아니었다.

전쟁이 발발한 직후 알파라지와 그의 동료들은 수도 없이 지구를 침공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미약하나마 성과를 얻어 냈다.

지구의 문물과 인력을 야금야금 빼앗아 온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최현성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간의 통신을 조작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아무리 기다려도 네놈의 동료들은 오지 않을 것이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스마트폰은 결국 교류의 보석으로 작동한다.

교류의 보석은 포인트를 매개체로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정보를 교류한다.

그동안은 전자 기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결계를 통한 완전 차단만 가능했고 정보를 조작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스마트폰과 신하인 루시아 플레이어의 스마트폰이 주고받는 신호를 파악해 거짓 정보를 보내는 게 가능해졌다.

‘루시아는 네놈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왜?

루시아의 스마트폰은 현성의 스마트폰과 정상적으로 교류하고 있는 줄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문제는 지구에 있는 굴레를 벗은 자들의 눈을 속이는 것이었다.

아무리 결계를 쳐도 무려 3백 명이 넘는 굴레를 벗은 자들이 전투를 벌이는 여파를 막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알파라지는 외부의 도움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했다.

바로 신들과 손을 잡은 것이다.

‘신들은 전쟁이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전쟁이 일방적으로 종료된다면?

신들은 졸지에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다.

두 세력이 서로 대립해야 신들도 자신의 세력을 키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알파라지는 먼저 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신들은 그런 알파라지의 도움 요청을 수락했다.

그 후 기꺼이 자신들의 권능과 포인트를 소모해 3백 명에 달하는 굴레를 벗은 자들의 모습을 감춰 주었다.

‘이제 네놈은 독 안에 든 쥐새끼 신세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오늘 이 자리에서 죽든가.

그게 아니라면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할 것이다.

* * *

‘왜 아직도 아무런 반응이 없지?’

현성의 얼굴에 초조한 감정이 피어났다.

지원을 와야 할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

그런데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 중 단 한 명도 지원을 오지 않았다.

‘이상해.’

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지구에 있는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그간 가지고 있던 여유는 말끔하게 사라졌다.

현성은 결계에 갇혀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루시아를 비롯한 동료들은 현성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체력과 마력이 점점 떨어져 간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현성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현성이 일반적인 굴레를 벗은 자보다 강하다고 해도 3백 명이나 되는 굴레를 벗은 자들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도움이 필요한가?

그때 누군가가 현성에게 말을 걸었다.

현성은 말을 건 이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천뢰신.’

과거 현성에게 찝쩍거렸던 천뢰신이었다.

-우리의 권속이 되어라. 그럼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마.

천뢰신의 말에 현성은 작은 의문을 느꼈다.

‘우리의 권속이라니? 설마 신들이 서로 손을 잡았다는 말인가?’

-그렇다.

‘날 위기에 몰아넣는 데 네놈들도 일조를 했겠군.’

-…….

현성의 물음에 천뢰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답하지 않은 이유는 뻔했다.

‘이런 망할.’

신들과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손을 잡았다.

그제야 왜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지원을 오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의 권속이 되는 것만이 현재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네놈들의 권속이 된다고 해도 3백 명이나 되는 굴레를 벗은 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서 우리라고 말한 것이다. 네가 우리의 권속이 된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권능이 너에게 집중될 것이다.

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능.

그 권능이 현성에게 모두 집중된다면?

현재의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현성은 현존하는 가장 강한 플레이어였고 그런 만큼 신들의 힘 역시 최대치로 전달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동료들에게 나의 위기를 알려 다오. 그러면 내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포인트를 주지. 그리고 내가 앞으로 얻게 될 포인트의 일부를 영원히 너에게 나누어 주겠다.’

현성이 딜을 했다.

-앞으로 얻게 될 포인트의 일부를 영원히 나에게 제공한다라…… 그건 좀 구미가 당기는군.

‘10%를 주마.’

현성은 천뢰신이 퍼센티지를 조금 늘리는 선에서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솔직히 말해 다른 신들의 뒤통수를 쳐서라도 받아들이고 싶을 만한 제안이 아닌가?

-안타깝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뭐?’

-우리는 서로 계약을 했다. 또한 지금 너를 공격하고 있는 자들과도 계약을 했지. 계약을 깨지 않고 널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네가 우리 모두의 권속이 되는 것뿐이다.

천뢰신의 말에 현성의 표정이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방법이 없는 건가?’

현성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천뢰신의 말대로 신들의 권속이 되는 것.

두 번째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에게 투항하는 것.

그러나 현성은 둘 중 그 어떤 선택지도 고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 둘 모두 자신을 위기로 몰아넣은 원수들이었다.

또한 자신을 노예로 부리기를 원하는 자들이었다.

현성은 그런 자들에게 굴복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걸 써야 하는 건가?’

현성은 그간 가챠의 두 번째 옵션을 상당히 많이 돌렸다.

물론 인장 스킬 말고는 모두 쓰레기라고 부를 만한 스킬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이 스킬도 있었다.

[차원 이동]

-액티브 스킬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목적지를 설정할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쓰레기 같은 스킬이었다.

목적지를 설정할 수 없다는 말은 그대로 소멸하거나 차원의 미아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말이다.

현성은 이 스킬을 습득한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 등급까지 강화해 봤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옵션은 여전히 목적지 설정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곧바로 봉인했다.

실수로라도 사용하면 큰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마 상태창에 스킬을 삭제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면 그대로 삭제해 버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이 스킬밖에 해법이 없어.’

물론 그 전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발악을 해 볼 생각이었다.

현성은 시간 끌기를 포기했다.

사실 그간 현성이 무조건 도망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굴레를 벗은 자들을 찾아내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결계를 유지하던 굴레를 벗은 자 둘을 제거하면?

전투에 참여했던 굴레를 벗은 자 중 일부가 결계 유지에 투입되었다.

‘방법은 하나야.’

압도적인 힘으로 결계를 부수는 것.

그게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현성이 결계를 부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열 명이 넘는 굴레를 벗은 자들이 유지하고 있는 결계는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거기다 집중 공격을 당하는 탓에 체력과 마력이 더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었다.

‘역시 답이 없나.’

현성이 결계 파괴에 집중하자 적들은 결계 유지에 더 많은 인원을 투입했다.

애초에 1 대 300의 대결이다.

현재 현성이 가진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투항해라. 그럼 지구의 안위를 보장해 주마.

그때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알파라지가 현성에게 메시지 스킬로 말을 걸어왔다.

‘아주 이놈이고 저놈이고.’

현성을 자신의 휘하에 넣고 부려 먹을 생각밖에 없는 듯 보였다.

-싫다.

현성이 단칼에 알파라지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직 여유가 있는 모양이군. 죽기 직전의 상황이 되어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알파라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더 강력한 공격이 휘몰아쳤다.

현성은 결계를 부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체력과 마력 소모만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 천뢰신과 알파라지가 집요하게 현성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네놈들의 노예가 되느니 모험을 걸어 보겠어.’

어차피 최악의 경우를 가정했을 때 이곳에서 죽나 차원의 틈새에 끼어 죽나 마찬가지였다.

최선의 경우는?

과거 루시아가 그랬듯 차원의 미아가 되는 것이었다.

‘그럼 충분히 생존할 수 있어.’

루시아는 차원의 미이가 되었지만 용병 시스템을 이용해 바깥 공기를 마셨다.

그 말은 현성이 차원의 미아가 되더라도 금방 복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차원 이동.’

현성이 차원 이동 스킬을 사용했다.

화악!

그 순간 밝은 빛무리와 함께 현성의 모습이 그대로 사라졌다.

-뭐야?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공간 이동 스킬도 차원 게이트 스킬도 모두 봉인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네놈들이 결계를 제대로 유지하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

굴레를 벗은 자들이 서로 남 탓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 조용.

그때 알파라지가 모두에게 메시지 스킬을 보냈다.

-놈이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 같다.

-어리석은 선택?

-그래, 내 생각에는 좌표가 정해지지 않은 차원 이동을 감행한 것 같다.

알파라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굴레를 벗은 자들이 수군거렸다.

-자살행위군.

-완전히 미쳤어.

-영원한 고독을 선택하다니.

-일단 우리는 이만 철수한다. 기다려 보면 알겠지. 최현성 플레이어가 운 좋게 살아남았는지 아니면 그대로 죽어 버렸는지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알파라지가 먼저 차원 게이트를 열고 자리를 떴다.

그 이후 다른 굴레를 벗은 자들 역시 차원 게이트를 통해 각자의 차원으로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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