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전
현성은 현재의 삶이 마음에 들었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었다.
또 더 이상 마음 졸이며 타 차원 플레이어들의 지구 침공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 하루도 끝이네.’
현성은 사냥을 마친 후 지구로 귀환했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
현성은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있었다.
그렇기에 매일 사냥이 끝난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늘 반복되는 평화로운 일상.
그 일상이 현성은 꽤 마음에 들었다.
‘어?’
한데 오늘은 조금 상황이 다른 듯했다.
‘뭐야?’
현성이 지구로 귀환함과 동시에…….
파지지직!
연속적으로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그와 함께 그 속에서 굴레를 벗은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었다.
‘열 명이 넘잖아.’
무려 열 명이 넘는 굴레를 벗은 자들.
아군은 아니었다.
아군이었다면 현성에게 이런 무례를 범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거기다 외부와의 접속도 끊겨 버렸어.’
적들은 차원 게이트를 넘자마자 결계를 사용해 지구와 타 차원의 연결을 끊어 버렸다.
‘빌어먹을.’
현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죽여라.”
리더로 보이는 굴레를 벗은 자의 말에 다른 이들이 일제히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휘이이이익!
총 11명의 적들이 엄청난 속도로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드드득!
콰콰콰콰!
적들이 현성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은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사용해 몸을 보호했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지상에 자리하고 있던 고층 빌딩들이 말끔하게 소멸했다.
“이놈들이!”
현성의 두 눈에 진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방금 전 충돌의 여파로 최소 수만에 달하는 생명이 사라졌다.
스르르릉!
용혈검을 뽑아 든 현성이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꽈아아앙! 꽈아아앙!
적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굴레를 벗은 자 둘 정도라면 현성 혼자서도 상대가 가능했다.
하나 상대의 숫자는 무려 11명.
현실적으로 이기기는커녕 버티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외부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수단이 결계로 막혀 버린 상황.
현성으로서는 절망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니들 뭐야?”
지구에 머무르고 있던 제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둘 다 죽여라.”
그러나 적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들의 수는 총 11명이었다.
현성과 제나가 힘을 합친다고 해도 고작 두 명.
그저 제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늘어날 뿐이었다.
“죽이긴 누굴 죽여!”
총 13명의 굴레를 벗은 자들이 서로 충돌했다.
현성과 제나는 서로 힘을 합쳐 싸웠다.
하지만 금방 수세에 몰렸다.
현성은 굴레를 벗은 자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다.
제나 역시 일반적인 굴레를 벗은 자들 중에서는 꽤 강한 편에 속한다.
하나 적들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스스로가 오랜 시간을 살아온 굴레를 벗은 자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차분하고 침착하게 현성과 제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현성과 제나 역시 그들의 공격을 최선을 다해 방어했다.
그러나 점점 몸에 상처가 늘어났고 체력과 마력이 빠른 속도로 고갈되었다.
모든 게 최악인 상황.
그러나 현성은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잠깐만 버티면 그만이야.’
현성은 후퇴하는 척하며 적들을 인적이 드문 해안가로 이끌었다.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전과는 상황이 다르거든.’
과거 주백설의 습격을 받았을 때.
현성은 외부와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다.
물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굳이 현성이 나서지 않아도 지구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이 자동으로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에게 알려지게 될 테니까 말이다.
* * *
각투브크는 오늘도 즐거운 게임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다.
“점사! 점사해!”
각투브크가 고성을 토해 내며 외쳤다.
전쟁 중인 혈과의 필드쟁.
승기를 거의 잡은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화면이 멈추며 버벅거렸다.
“뭐야? 왜 갑자기 렉이?”
각투브크는 당황했다.
컴퓨터도 교류의 보석도 모두 최신형으로 맞췄다.
그런데 왜 갑자기 렉이 걸린다는 말인가?
그러더니 갑자기 게임에서 튕겨 버렸다.
“이런 젠장!”
각투브크가 욕설을 내뱉으며 다시 게임에 접속하려고 했다.
하지만…….
게임에 접속되지 않았다.
게임뿐이 아니었다.
SNS도 게임 홈페이지도 모두 먹통이었다.
마치 모든 서버가 다운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각투브크에게 일어난 일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게스피트는 스X 크X프X를 하다가 다 잡은 승기를 놓치는 불상사를 겪었다.
그 외에도 리X지나 리X 오X 레X드 등등 수많은 게임을 즐기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갑자기 서버가 다운되는 이상 현상을 겪었다.
스마트폰도 먹통이었다.
이는 과거 현성이 취해 놓은 조치 중 하나였다.
주백설이 쳐들어왔을 당시 현성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었다.
지구와 타 차원의 연결이 끊겼지만 게임은 잘 돌아갔다.
총 세 개의 서버를 두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기 때문이다.
사고가 터져 서버 하나가 망가지더라도 플레이어들이 게임과 SNS를 포함한 지구 문물을 편안하게 즐기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러나 주백설의 습격 이후 현성은 시스템을 재구성했다.
지구의 서버와의 연결이 끊기면 모든 서버가 다운되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 조치가 지금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굴레를 벗지 않은 자들은 서버가 정상화되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굴레를 벗은 자들에게는 이야기가 달랐다.
갑작스러운 서버 다운에 화가 잔뜩 난 굴레를 벗은 자들 중 일부가 지구로 향하는 차원 게이트를 열었다.
서버 운영자인 현성에게 직접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구로 향하는 차원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다.
이에 게임을 즐기고 있던 모든 이들이 현성의 신상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 * *
‘이제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만신창이가 된 현성은 어서 빨리 결계가 박살 나기만을 기다렸다.
총 11명의 굴레를 벗은 자가 동원된 일이다.
당연히 굴레를 벗은 자 한둘이 나선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현성과 친분을 맺고 게임을 즐기는 굴레를 벗은 자들의 숫자는 무려 수백수천에 달한다.
그중에 1/10만 와도 지구와 타 차원의 교류를 방해하는 결계를 박살 낼 수 있었다.
‘제발 빨리 좀 와라.’
현성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고작 두 명이서 11명을 상대로 지금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버티는 건 현성으로서도 무리였다.
현성은 초조한 마음으로 지원을 기다렸다.
그러나 초조해하는 건 현성만이 아니었다.
현성을 공격하는 11명의 굴레를 벗은 자들 역시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계획대로라면 진작 현성을 제거했어야 했다.
그 후 전자 기기와 문화 사업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핵심 장비와 인력 들을 자신들의 차원으로 데리고 갈 계획이었다.
한데 현성이 너무 잘 버티는 바람에 시간이 너무 길게 소모되고 있었다.
적들은 필사적으로 공격했고 현성은 필사적으로 막았다.
그때였다.
파지지지직!
지구 상공에서 스파크가 튀어 오르며 일단의 플레이어들이 지구를 향해 진입해 왔다.
게스피트를 필두로 한 아군 플레이어들이 지원을 온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어떻게 벌써?”
현성을 공격하기 위해 온 11명의 적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지원군이 도착했다.
거기다 도착한 지원군의 숫자가 무려 1백여 명에 달했다.
지금까지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도 현성을 제거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수적 우세마저 잃어버렸다.
현성을 기습했던 11명의 적들은 결국 후퇴를 감행했다.
그러나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현성이 아니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협약을 깨고 지구를 습격했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수많은 지구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게스피트를 비롯한 지원군이 조금만 더 늦게 도착했다면?
현성의 목숨도 위험했다.
그런 그들을 무사히 돌려보내 준다?
현성에게는 그럴 마음이 단 1그램도 없었다.
그리고 그건 게스피트를 비롯한 지원군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놈들 잡아!”
자력 결계가 펼쳐지고 차원 게이트를 열지 못하도록 마력을 응집시켰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견제에 적들의 퇴로는 그대로 틀어막힌 듯 보였다.
그때였다.
슈슈슈슉!
지구를 침공한 11명 근처로 수백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모두가 굴레를 벗은 자들이었다.
11명의 적들을 추격하던 현성이 주춤했다.
그건 게스피트를 비롯한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게스피트가 성난 표정으로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을 노려봤다.
“당장 협약을 깬 그 11명을 넘겨. 그러지 않으면…….”
“그러지 않으면? 협약이 깨진다는 말인가?”
새롭게 등장한 적군 굴레를 벗은 자가 게스피트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그렇다.”
“그럼 그렇게 하지.”
“뭐?”
게스피트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전면전을 하자는 말이다. 왜 쫄리나? 그럼 이번 일은 여기서 덮지. 양측이 합의하면 협약은 유지될 수 있으니까.”
상대의 말에 게스피트를 포함한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소수의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었던 모양이네?”
게스피트의 물음에 상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해서 진실을 알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이건 11명의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저지른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었다.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 대다수의 동의하에 실행된 계획범죄였다.
“왜 나를 죽이려고 한 거지?”
현성이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을 노려보며 물었다.
“네놈만 제거하면 지금의 평화가 계속 유지될 수 있으니까.”
“뭐?”
“왜,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나?”
현성은 적군 굴레를 벗은 자가 말하는 바를 순식간에 이해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굴레를 벗지 못한 자였던 현성이다.
한데 지금은 굴레를 벗은 자들 중 그 누구보다도 강해졌다.
이 모두가 장사와 고유 권능 가챠로 얻은 인장 스킬 덕분이었다.
이대로 계속해서 시간이 흐른다면?
힘의 균형은 깨어진다.
자연스럽게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전면전을 일으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생각이라면?
지금이 적기였다.
아니, 오히려 지금도 조금 늦었다.
“전면전을 피하고 싶다면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 판매에 대한 수익의 반을 우리 측에 넘겨라. 또한 인장 스킬을 우리에게 무상으로 시전해 줘야 할 거다.”
모두가 현성이 가진 것들이었다.
당연히 현성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 이것들이 미쳐 가지고!”
그때 게스피트가 코웃음을 치며 앞으로 나섰다.
“우리가 저번 일을 조용히 덮어 줬더니 고마운 줄도 모르고 우리를 호구로 본 모양이네?”
게스피트의 전신에서 마력이 용솟음쳤고 살기가 피어올랐다.
“우리가 전쟁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나?”
게스피트의 물음에 적군 굴레를 벗은 자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그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형식적으로 제안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제안을 한 적군 굴레를 벗은 자도 상대측이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협정은 서로의 힘이 대등할 때 맺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현성의 존재로 인해 이미 힘의 균형에 미세한 균열이 가해졌다.
물론 이번 제안을 통해 억지로 힘의 균형을 맞출 수는 있다.
하나 제안을 하면서도 상대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평화는 지킬 힘이 있기에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협약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포기한다?
그건 더 이상 대등한 협약이 아니었다.
그저 일방적인 굴복일 뿐이다.
그리고 적군 굴레를 벗은 자가 알고 있는 상대는 그런 굴욕적인 평화를 받아들일 이들이 아니었다.
“그럼 전쟁이군.”
게스피트가 마력을 끌어 올리며 자신의 애검을 움켜쥐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걸 시작으로…….
수백에 달하는 아군과 적군의 굴레를 벗은 자들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진동했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음이 쉼 없이 터져 나온다.
수백 명에 달하는 굴레를 벗은 자들의 전쟁터가 된 지구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과거 주백설과 제나의 충돌만으로도 지구 전역에 난리가 났었다.
한데 이제는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규모 충돌이 벌어졌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지구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막아! 무조건 막아!”
“지구 박살 나면 앞으로 게임 못 할 수도 있어!”
-콰콰콰콰콰!
그때 소멸의 권능을 담은 칠흑빛 마력이 지상을 향해 날아갔다.
“저, 저거! 저거!”
그 모습을 목격한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화들짝 놀랐다.
“몸으로라도 막아! 잘못하면 한국이 사라지겠어!”
“그럼 앞으로 한국 게임 못 한다!”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난리를 쳤다.
퍼어어어엉!
그때 아군 굴레를 벗은 자 하나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소멸시킬 뻔했던 공격을 몸으로 막아 냈다.
“하하하하! 내가 막았어!”
만신창이가 된 아군 굴레를 벗은 자가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
“잘했어!”
“네가 우리를 살렸다!”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적을 쓰러트리는 것보다 지구를 지키는 일에 더 신경을 썼다.
혹시 충격파가 날아가 지구에 피해가 갈까 안달복달하며 전투에 임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자신의 몸을 방패로 삼아서라도 지구를 지켰다.
현재 이곳에 모인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모두 게임을 즐기던 도중 지구의 이상을 감지한 이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게임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무한한 삶을 살아오던 그들에게 생긴 유일한 낙이었기 때문이다.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자신의 삶의 낙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전투의 향방은 아군에서 유리하게 진행되었다.
‘전체적인 전력은 아군이 높아.’
지구로 지원을 온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 대부분이 현성과 자주 거래를 하던 이들이었다.
그 말인즉 인장 시전을 가장 많이 받은 이들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굴레를 벗은 자들끼리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유 권능이다.
하나 고유 권능의 파괴력이 대등하다면 스텟 차이로 승패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병력이 충원되는 속도가 느렸다.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협정이 끝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지원을 왔다.
그러나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더 이상 지원군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최대한 피해를 줄이며 퇴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제대로 의견 일치가 되지 않은 거야.’
현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적군 굴레를 벗은 자 전원이 전면전에 동의했다면?
지구를 향해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모두 모여들었을 것이다.
하나 수백 명 정도가 모여들었을 뿐이다.
많기는 했지만 모두 모여든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충분히 이길 수 있어.’
현성이 전력을 다해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을 공격했다.
* * *
‘일이 꼬이는군.’
게스피트와 설전을 나눴던 알파라지가 얼굴을 찌푸렸다.
알파라지는 이번 사건의 주동자였다.
그러나 과거 베루인이 벌였던 공작과는 그 규모 자체가 달랐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번 일에 가담한 굴레를 벗은 자의 숫자만 무려 3백 명이 넘었다.
알파라지에게 가장 베스트가 되는 상황은 11명의 동료들이 최현성 플레이어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 후 지구의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의 생산자들과 주요 생산 설비들을 빼앗는다.
그럼 전면전이 벌어지더라도 금방 종료될 확률이 높았다.
한데 11명의 굴레를 벗은 자를 동원했음에도 최현성 플레이어를 죽이는 데 실패했다.
‘더 많은 인원을 투입했어야 했나?’
그러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결계를 펼쳐 시스템의 눈을 속이는 것은 일종의 꼼수다.
열 명 정도라면 몰라도 더 많은 인원이 지구로 넘어갔다면?
시스템이 굴레를 벗은 자들의 이상행동을 바로 감지했을 것이다.
문제는 차선책도 막혔다는 점이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죽이는 데 실패한다면?
차선책으로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의 생산지인 지구를 철저하게 파괴할 계획이었다.
내가 얻을 수 없다면 적도 얻지 못하게 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한데 그 차선책도 굴레를 벗은 자들이 자신의 몸을 날려 가며 방해하는 바람에 실패해 버렸다.
‘완전 엉망진창이군.’
최선책과 차선책 모두 실패해 버렸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다.’
알파라지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일단 전쟁은 벌어졌어.’
알파라지의 계획에 모두가 동의한 건 아니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존재를 거북하게 생각하지만 전면전까지는 망설이는 이들도 꽤 많았다.
그들은 최현성 플레이어의 암살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일이 틀어지면 작전에 투입된 11명을 버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지.’
자신과 동료들은 뜻을 모아 함께 선전포고를 했다.
협약은 파기되어 버렸다.
다시 협약을 맺기 위해서는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적들을 막으면서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고 협약을 어긴 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그건 바보짓이지.’
외부의 적이 쳐들어오는데 내부 다툼을 벌이는 건 자살행위다.
또 이번 일에 가담한 굴레를 벗은 자의 숫자가 너무 많기에 현실적으로 처벌하는 게 불가능했다.
‘좋든 싫든 싸울 수밖에 없을 거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쟁을 반대하던 이들도 살기 위해서는 창과 검을 들고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적에게 항복하는 굴욕적인 방법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놈이 나올 리가 없지.’
억겁의 시간 동안 쌓인 원한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또한 굴레를 벗은 자들은 자존심이 강했다.
오랜 시간 수많은 차원을 다스리는 절대자로 군림한 자들이다.
그들이 굴욕을 감수하고 적이었던 자의 휘하 신하가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거기다 항복한다고 적들이 순순히 받아 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설사 적들이 항복을 받아 준다고 해도 전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전면전이 벌어져 고사리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투항한 적장을 가만히 내버려 둘까?
그럴 리가 없었다.
당연히 가장 위험한 전장에 투입시켜 소모하려 할 것이다.
최선책도 차선책도 실패했다.
하지만 결국 협약을 깨고 전면전을 벌이는 데는 성공했다.
‘어디 한번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번 전쟁에서 휴전 따위는 없다.
내가 죽든 적들이 죽든 끝까지 싸워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전쟁을 끝낼 것이다.
‘내가 꼭 그렇게 만들 것이다.’
알파라지가 굳은 결심과 함께 적들을 향해 창검을 휘둘렀다.
* * *
현성은 최전방에서 맹렬히 싸웠다.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 역시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
그러나 적들 역시 바보는 아니었다.
“이 치사한 놈!”
아군 굴레를 벗은 자가 노성을 터트리며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적의 공격을 몸을 받아 냈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적의 공격을 몸으로 막아 낸 아군 굴레를 벗은 자가 피투성이로 변했다.
적의 공격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기에 일반적인 전투 상황이었다면 그대로 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적의 공격에 지구가 파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적의 공격을 단순히 몸으로 막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혹시 충돌의 후폭풍이 지구인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러니 그 후폭풍까지 막아 내야 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말처럼 굴레를 벗은 자들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후폭풍이 지구에는 커다란 재앙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저 자식들, 못 본 사이에 많이 얍삽해졌네.”
“그러게. 지구가 박살 나면 우리만 손해 보는 게 아닐 텐데.”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사력을 다해 지구를 지키는 건 게임을 계속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게임을 즐기는 건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뿐이 아니었다.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 중 상당수가 게임을 즐기고 있다.
한데 적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지구에 맹공을 펼쳤다.
지구라는 차원을 대상으로 무차별 폭격을 퍼붓는 적들의 행동 때문에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수적 우세와 전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쉽게 승기를 잡지 못했다.
‘빌어먹을.’
현성은 속이 타들어 갈 지경이었다.
지구는 현성의 고향 차원이자 삶의 터전이다.
또 지구에는 현성의 가족과 지인들이 살고 있다.
현성의 눈에 그런 곳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퍼붓는 적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최선을 다해 막고 있기는 했지만 자칫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국가 하나가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다.
그때였다.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일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여태까지 마구잡이식으로 공격을 펼쳤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콰콰콰콰콰콰!
강대한 마력을 담은 스킬들이 대한민국을 향해 날아갔다.
저걸 막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지도상에서 말끔하게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막아!”
현성이 비명을 지르며 공격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저 미친놈들!”
“무조건 막자!”
현성의 외침을 들은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일제히 적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사이…….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일제히 도주했다.
현성과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들을 잡겠다고 움직였다가는 대한민국을 포기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마력이 듬뿍 담긴 스킬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피투성이가 된 현성과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폭발의 후폭풍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휴우우!”
대참사를 겨우 막아 낸 현성이 긴 한숨을 토해 냈다.
그러나 현성의 얼굴에 서려 있던 안도감은 금세 분노로 일그러졌다.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적군들은 모두 도주했다.
그렇다고 잡을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앞으로 시간은 많아.’
협약이 깨졌고 전쟁이 벌어졌다.
이번 전투는 길고 긴 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앞으로 현성은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과 지겹도록 싸워야 했다.
그 과정에서 오늘 지구를 습격했던 이들과 분명 마주칠 것이다.
‘그때 두고 보자.’
다시 그들을 만난다면?
절대 오늘처럼 곱게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 * *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굴레를 벗은 자들 중 하나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알파라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는 주화파였고 또한 최현성 플레이어가 제공하는 게임을 삶의 낙으로 여기고 사는 이들 중 하나였다.
“네놈이 무슨 자격으로 협약을 파기하고 지구를 습격한 거냐?”
상대의 추궁에 알파라지가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멱살을 잡은 상대의 손을 쳐 냈다.
“어차피 벌어졌을 전쟁을 앞당겼을 뿐이니까 너무 흥분하지 마.”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이미 벌어진 일을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지? 살고 싶다면 차분하게 전쟁 준비나 해.”
잠시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알파라지의 태도에 너무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혀 버린 것이다.
하나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알파라지, 이런 중범죄를 저지르고 네놈이 무사할 성싶으냐?”
“왜? 우리를 처벌하고 싶어? 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 봐.”
기세등등한 알파라지의 태도에 주화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상대측 굴레를 벗은 자들은 협약을 깨고 지구를 습격한 일에 가담한 자들 전원의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요구는 절대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 사건에 가담한 이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를 처벌한다면?
힘의 균형이 완전히 깨져 버린다.
거기다 지구 습격 사건에 가담한 이들이 순순히 투항할 리도 없었다.
그럼 결국 내분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럼 모두 함께 파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구 습격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던 굴레를 벗은 자들 역시 울며 겨자 먹기로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난 후 두고 보자.”
결국 주화파들은 그 말을 끝으로 물러났다.
‘X신 같은 놈들. 그래, 두고 보자. 전쟁이 끝난 후 누가 피눈물을 흘리게 될지 말이야.’
알파라지는 속으로 어리석은 주화파들을 욕하며 전장으로 향했다.
* * *
오랜 시간 이어지던 협약이 깨졌다.
그리고 전면전이 벌어졌다.
가장 먼저 날벼락을 맞은 것은 바로 굴레를 벗지 못한 자들의 차원이었다.
파지지직!
새로운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존에 존재하던 힘의 균형을 가볍게 으깨 버릴 정도의 강력한 적들이 무차별적인 침공을 해 왔다.
“다 죽여 버려!”
“와아아아아!”
꽈아앙! 꽈아앙!
“아악!”
“살려 줘!”
“도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들이 나타난 거야?”
신생 차원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살아날 구멍은 있었다.
파지지직!
새로운 차원 게이트가 열리며 아군 진영의 최상위 플레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다 쓸어버려!”
“와아아아아!”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가 서로 뒤엉키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는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먼저 침공한 쪽이 신생 차원을 점령하기도 했고 반대로 패배해 자신의 차원을 빼앗기는 경우도 있었다.
서로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힘이 없는 신생 차원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줄 최상위 플레이어의 도움이 절실했다.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제발 제 고향 차원을 지켜 주십시오.”
신생 차원의 지배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최상위 플레이어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 휘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최상위 플레이어들의 지속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생 차원들이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참하구나.’
현성은 씁쓸했다.
전쟁이 벌어진 직후 현성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지구를 포함한 휘하 차원들을 지켜야 했고, 그 와중에 틈틈이 아군 신생 차원들도 챙겨야 했다.
사냥을 할 시간이 줄어들며 포인트를 모으기는 더 힘들어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신하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아군 차원의 플레이어만 휘하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적군 차원의 플레이어들이 항복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해지는구나.’
이번 전쟁을 통해 굴레를 벗은 자들은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그에 반해 굴레를 벗지 못한 자들은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살기 위해 굴레를 벗은 자들의 휘하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굴레를 벗은 자의 휘하에 들어가는 것도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가능했다.
통솔력은 한계가 있기에 실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아예 휘하로 받아 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의 시발점이 된 현성은 굴레를 벗은 자다.
그렇기에 힘든 와중에도 세력을 늘릴 수 있었다.
또한 현성은 모든 굴레를 벗은 자를 통틀어 가장 높은 기본 스텟을 가지고 있다.
그 말은 통솔력 역시 가장 높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현성은 다른 굴레를 벗은 자들보다 더 많은 신하들을 휘하에 거둘 수 있었다.
전쟁의 수혜자가 되었음에도 현성은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전쟁을 종결시켜야 해.’
그렇게 해야지만 전쟁의 여파에 고통받고 있는 힘없는 이들을 구할 수 있었다.
‘더 강해지는 수밖에 없어.’
현성만 강해지는 게 아니라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 모두가 강해지면 빠르게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다.
문제는 포인트 수급이 엄청나게 힘들어졌다는 점이었다.
전쟁이 벌어지며 게임을 하는 이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전자 제품을 사는 이들 역시 급감했다.
사냥을 할 시간도 없었다.
대량의 포인트를 수급할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다른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인장 스킬 시전을 통해 포인트를 벌어들이기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기댈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현성이 고유 권능 가챠의 두 번째 옵션을 돌렸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빠른 발걸음 - 일반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굳건한 힘 - 일반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후략……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휴!”
포인트를 꽤 많이 소비했다.
그러나 인장 스킬 같은 특별한 스킬을 얻지는 못했다.
위이이이잉!
그때 현성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루시아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무슨 일이에요?”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쳐들어왔습니다. 현재 제나 님을 포함한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막고 있기는 한데,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알았어요.”
현성이 지구로 향하는 차원 게이트를 열었다.
파지지직!
차원 게이트를 통과함과 동시에 난장판으로 변한 지구의 모습이 들어왔다.
지구는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가장 자주 습격을 가하는 차원이었다.
그런 만큼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순번을 정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너무 많은 이들을 지구에 배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경계 인원을 넘어서는 숫자의 적들이 공격을 가해 올 때는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로 몸을 휘감은 현성이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최현성 플레이어다!”
“후퇴해!”
적들이 현성을 보자마자 퇴각을 준비했다.
제나를 포함한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꽤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쥐새끼 같은 놈들.’
현성이 이를 악물었다.
그간 현성은 전쟁에서 꽤 큰 악명을 떨쳤다.
현성은 가장 최근에 굴레를 벗은 자가 된 플레이어다.
그러나 빠른 성장 속도 덕분에 다른 굴레를 벗은 자들보다 강했다.
또한 지금도 전쟁이 발발하기 전보다는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현성은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콰콰콰콰콰! 화르르르륵!
적들이 지구를 향해 무차별 폭격을 퍼부으며 후퇴를 시도했다.
전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제는 안 먹힌다.’
현성이 분신술 스킬과 정령 소환 스킬을 사용했다.
가챠 스킬로 인해 강화된 분신술 스킬과 정령 소환 스킬은 기존의 한계를 아득하게 뛰어넘었다.
꽈아아아앙!
현성의 분신들이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날린 공격을 가볍게 분쇄했다.
뚱이와 덕구 역시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날린 공격을 막아 냈다.
그사이 현성은 도주하는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의 뒤를 추격했다.
분신은 현성의 능력치의 50%를 가지고 있었고 그 숫자 역시 셋으로 늘어난 상태였다.
뚱이와 덕구 역시 서로 힘을 합치면 굴레를 벗은 자를 상대로도 30분 이상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파지지직!
적들이 차원 게이트를 열고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나 그걸 순순히 두고 볼 현성이 아니었다.
파지지직!
흑뢰신마공이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적들 중 일부가 차원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현성은 자력 결계를 펼침과 동시에 마력을 응집시켜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차원 게이트를 여는 것을 막았다.
도주로가 차단된 것이다.
적들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현성을 응시했다.
도주에 실패한 적들의 숫자는 다섯.
현재 현성은 혼자였다.
“죽여!”
적군 굴레를 벗은 자 중 하나가 그렇게 외치며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그 외침을 들은 다른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 역시 공격을 시작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나름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 시작한 공격이기도 했다.
그들은 다섯이었고 현성은 현재 혼자였다.
자신을 향해 공격을 가해 오는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을 바라보던 현성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과거 11명이나 되는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의 습격에서도 살아남은 현성이다.
물론 제나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나 현성의 실력이 부족했다면?
아무리 제나의 도움이 있었다고 해도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현성은 과거보다 더 강해졌다.
얼마나 강해졌느냐 하면…….
꽈아아아아앙!
굴레를 벗은 자 다섯의 합공을 받으면서도…….
꽈아아앙! 꽈아아앙! 꽈아아앙!
그들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괴물 같은 놈!”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의 표정에 공포가 피어올랐다.
무려 다섯이다.
그들은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간 갈고닦은 권능을 사용했고 포인트까지 투입해 권능의 위력을 강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을 압도하기는커녕 반대로 압도당하고 있었다.
분신들과 뚱이, 덕구 때문에 수적 우위를 살릴 수도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이번 작전에 지원하는 게 아니었는데.”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절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싸워야 할 적이 현성 혼자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지구를 지키고 있던 굴레를 벗은 자들이 부상을 회복하고 이곳으로 달려올 것이다.
“항복해라. 그럼 살려 주겠다.”
현성의 말에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치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개소리하지 마!”
적군 굴레를 벗은 자 중 하나가 욕설을 내뱉으며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우리가 굴복할 것 같으냐!”
다른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꽈아아앙!
다시금 접전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퇴로도 확보하지 못했고 현성을 쓰러트리지도 못했다.
그사이…….
지구를 지키고 있던 굴레를 벗은 자들이 몸을 회복하고 전투에 합류했다.
“다 죽었어!”
화르르르륵!
제나가 분노 어린 노성과 함께 푸른 화염을 흩뿌렸다.
“아까의 복수를 해 주마!”
다른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 역시 자신의 고유 권능을 사용하며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을 공격했다.
전투의 승기가 완전히 뒤집혔다.
“아아아악!”
적군 굴레를 벗은 자 중 하나가 현성이 휘두른 용혈검에 목숨을 잃었다.
다섯이 넷이 되자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더욱 빠르게 무너졌다.
화르르르륵!
제나의 고유 권능 푸른 화염이 적군 굴레를 벗은 자 하나를 불태웠다.
넷이 셋이 되었을 때.
“항복! 항복하겠다!”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 중 하나가 항복을 선택했다.
“나도 항복하겠다!”
“나, 나도!”
다른 둘 역시 결국 백기를 들었다.
“당장 충성 맹세하고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 다 넘겨.”
“알겠다.”
현성의 말에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겨우 이것뿐인가?’
현성이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에게 넘겨받은 포인트를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남은 포인트의 양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고유 권능에 포인트를 갈아 넣는 비효율적인 전투를 장시간 지속했었으니까 말이다.
‘아쉽네.’
그리 많지 않은 포인트.
하지만 이 포인트 역시 현성 혼자 사용할 수는 없었다.
“지구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성이 지구를 지켜 주던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한 일이야.”
“하하하하! 제나 말대로 별일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가 좋아서 한 일인데요.”
현성의 말에 제나를 포함해 지구를 지키던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너스레를 터트렸다.
“인장 스킬을 시전해 드리겠습니다.”
현성이 방금 전 손에 넣은 포인트의 일부를 사용해 제나와 지구를 지켜 주던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에게 인장 스킬을 시전해 주었다.
사실 고향 차원이 없는 제나는 몰라도 다른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자신의 고향 차원과 휘하 차원을 지켜야 했다.
아무리 게임이 좋다지만 자신의 차원을 지키기도 바쁜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짬을 내서 무상으로 지구를 지켜 주는 일이 계속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현성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인장 스킬을 시전해 주는 것으로 적당한 보답을 해 주고 있었다.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지구 관광도 하고 보상도 받으니 일석이조였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