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권. 고유 권능 (205/225)

┃고유 권능

‘대박이네.’

강화된 흑뢰신마공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사실 이건 당연한 거였다.

강화 성공 한 번으로 희귀 등급으로까지 하락했던 흑뢰신마공이 무 등급 스킬이 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연속으로 강화에 성공했다.

그 말은 강화에 성공하기 전의 무 등급 스킬과 강화에 성공한 무 등급 스킬의 위력 차이가 희귀 등급과 무 등급 스킬만큼 크게 난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한 번 더 강화해?’

그럼 흑뢰신마공으로 굴레를 벗은 흑뢰신의 권속도 손쉽게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야.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혹시 강화에 실패라도 하면 큰일 난다.

‘불사의 서를 강화해 보자.’

권능을 소모한 불사의 서는 현재 희귀 등급에 불과했다.

‘강화에 실패한다고 스킬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보유 스킬 등급이 하락한다고 했지 사라진다고 하지는 않았다.

‘해 보자.’

현성이 불사의 서를 대상으로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하락합니다.

-불사의 서 – 유일 일반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실패해 버렸다.

‘한 번 더.’

현성이 다시금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하락합니다.

-불사의 서 – 유일 일반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연속해서 강화에 실패했다.

하지만 불사의 서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해 볼 만해.’

현성이 한 번 더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불사의 서가 생성되었습니다.

‘나이스.’

불사의 서가 다시 무 등급 스킬이 되었다.

한 번의 생명을 더 얻자 현성은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아직 위험했다.

고유 권능인 가챠를 사용해 무 등급 스킬들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흑뢰신마공이 희귀 등급이 되었던 것과 같은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제물이 필요해.’

강화에 실패해 등급이 떨어져도 상관없는 스킬.

현성이 지금은 거의 방치 상태에 있는 일반 등급 스킬인 도발을 제물로 선택했다.

‘2~3번 정도 실패한 후에 천뢰신의 갑옷을 강화해 보자.’

결정을 내린 현성이 일반 등급 스킬 도발을 대상으로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도발이 생성되었습니다.

‘이런 망할.’

현성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일반 등급인 도발 스킬이 강화에 성공해 무 등급 스킬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실패했어야 하는데.’

하지만 일단 급한 대로 써먹기는 해야 했다.

현성이 날파리처럼 도망 다니며 원거리 공격을 가하는 흑뢰신의 권속들을 상대로 도발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죽여라!”

“흑뢰신님을 위해!”

흑뢰신의 권속들이 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현성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달려들었다.

파지지직!

현성이 그런 흑뢰신의 권속들을 향해 흑뢰신마공을 날렸다.

퍼어어엉!

현성의 도발 스킬에 걸려들어 달려들었던 흑뢰신의 권속들이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이것도 생각보다 효과가 좋네?’

도발 스킬은 각성 초창기를 제외하면 거의 사용하지 않은 스킬이었다.

사용할 일이 없었고 높은 등급의 스킬북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하나 무 등급 스킬이 된 도발 스킬의 효율은 엄청났다.

‘하긴 무 등급 스킬인데 안 좋을 리가 없지.’

현성은 다음 제물로 일반 등급 스킬인 민첩한 몸을 선택하고 고유 권능 강화를 사용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광속이 생성되었습니다.

‘또 성공했잖아?’

일반 등급 민첩한 몸 스킬이 무 등급 스킬 광속이 되었다.

‘왜 자꾸 성공하는 거야?’

제물로 바친 스킬들이 연달아 성공해 버렸다.

하지만 나쁠 건 없었다.

광속 스킬은 말 그대로 현성의 민첩 스텟을 엄청나게 증폭시켜 주었으니까 말이다.

‘무 등급 스킬은 어차피 큰 도움이 되니까 손해는 아니야.’

현성은 다시금 일반 등급 스킬을 제물로 바쳤다.

단 이번에는 전처럼 아무것이나 고르지 않았다.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하급 스킬을 골랐다.

‘이걸로 하자.’

스킬의 장인.

무려 스킬 사용 시 마력 소모량을 10%나 줄여 주는 패시브 스킬이다.

하나 성장이 불가능했고 상위 호환되는 스킬북도 없었다.

그러나 마력 소모량을 줄여 준다는 장점 때문에 탱, 딜, 힐 구분할 것 없이 누구나 필수적으로 익히는 스킬이었다.

현성이 희귀 등급 스킬인 스킬의 장인을 대상으로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하락합니다.

-스킬의 장인 – 일반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실패네.’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현성에게는 제물이 필요했던 것뿐이니까 말이다.

현성이 계속해서 일반 등급 스킬인 스킬의 장인을 대상으로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하락합니다.

-스킬의 장인 – 일반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후략……

무려 네 번이나 강화에 실패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현성이 천뢰신의 갑옷을 대상으로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했다.

제물을 충분히 바쳤으니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하락합니다.

-천뢰신의 갑옷 – 유일 전설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실패해 버렸다.

‘이런 망할.’

현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성공할 수도 있어.’

현성이 천뢰신의 갑옷을 대상으로 다시금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하락합니다.

-천뢰신의 갑옷 – 유일 희귀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실패했다.

무 등급 스킬이던 천뢰신의 갑옷이 순식간에 희귀 등급 스킬이 되어 버렸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무려 여섯 번 연속 강화에 실패했다.

‘이래서는 다시 강화에 성공해도 손해가 너무 크잖아.’

고유 권능 가챠는 사용할 때마다 막대한 포인트가 소모된다.

얼마나 막대한 포인트가 소모되냐면 성장형 일반 등급 스킬에 다른 스킬북을 먹여 창조 등급 스킬의 끝자락까지 성장시키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현성은 현재 고유 권능 가챠 때문에 힘겹게 모아 놓은 포인트의 1/3 이상을 허공에 날려 버린 상태였다.

그간 현성이 판매한 랜덤 박스와 랜덤 강화 시스템 때문에 게임을 즐기던 수많은 1레벨 플레이어들이 막대한 포인트를 허공으로 날리고 피눈물을 흘렸다.

한데 그 업보가 그대로 현성에게 되돌아왔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날아간 포인트가 아깝기는 하지만 현성은 다시금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했다.

현성은 현재 흑뢰신의 권속들에게 집중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이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유 권능인 가챠뿐이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천뢰신의 갑옷이 생성되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강화에 성공했다.

‘한 번 더 가자.’

현성은 기세를 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다시금 천뢰신의 갑옷을 대상으로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천뢰신의 갑옷이 생성되었습니다.

그간의 실패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 연속적으로 강화에 성공했다.

방어력이 올라가고 받은 공격을 대상에게 되돌리는 권능이 더욱 강화되었다.

‘한 번 더 할까?’

천뢰신의 갑옷을 더 강화시키고 싶다는 유혹이 강하게 들었다.

‘그만하자.’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너무 컸다.

‘일단 모든 주력 스킬을 1강 상태로 만드는 걸 목표로 하자.’

결정을 내린 현성이 다시금 가챠를 돌렸다.

가챠는 성공할 때보다 실패할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한 번 성공했을 때의 쾌감이 너무 강렬했다.

1강 무 등급 스킬은 같은 무 등급 스킬과는 그 격이 다른 위력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 보니 현성은 계속해서 가챠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고유 권능 가챠를 발동시킬 수 없습니다.

-보유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그간 쌓아 놨던 막대한 포인트를 모두 소모해 버리고 말았다.

‘포인트가 얼마나 남은 거야?’

현성이 보유 포인트 현황을 살펴봤다.

974,233,751포인트.

‘이런 망할.’

고작 9억 포인트가 조금 넘었다.

수명으로 치면 고작 30년.

현성이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항상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뽀얀 피부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검버섯이 핀 쭈글쭈글한 피부로 바뀌어 있었다.

‘수명은 늘리면 그만이야.’

그보다는 현재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는 게 중요했다.

살아남기만 하면 사냥을 하든 장사를 하든 해서 포인트를 얼마든지 늘릴 수 있었다.

‘흑뢰신마공, 화염의 서, 불사의 서, 천뢰신의 갑옷, 화신.’

총 다섯 개의 스킬을 무 등급 1강 스킬로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도발, 광속, 스킬의 장인, 은신, 분신술 스킬을 무 등급 스킬로 만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해볼 만해.’

현성이 무 등급 스킬 은신을 사용했다.

그 후 치고 빠지며 빠르게 흑뢰신의 권속들을 제거하면서 포인트를 획득했다.

무 등급 은신 스킬로도 굴레를 벗은 흑뢰신의 권속을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하나 굴레를 벗지 못한 다른 흑뢰신의 권속들을 속이기에는 충분했다.

분신술 역시 무 등급 스킬이 되며 현성이 가진 전투력의 30%를 온전히 발휘하며 날뛰었다.

서걱!

좌악!

용혈검이 거침없이 허공을 가르며 흑뢰신의 권속들을 베어 나갔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더 강력해진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 역시 그 위용을 뽐냈다.

“네 이놈!”

분노한 굴레를 벗은 흑뢰신의 권속이 달려들기도 했지만…….

화르르륵!

현성은 화신 스킬을 이용해 간단하게 굴레를 벗은 흑뢰신의 권속이 날린 공격을 회피해 버렸다.

‘기다려라, 귀찮은 날파리들을 다 처리한 뒤 상대해 줄 테니까.’

현성은 자신감이 넘쳤다.

상대는 굴레를 벗은 자이자 흑뢰신의 권능을 부여받은 권속이었다.

하나 현성도 이제 굴레를 벗은 자가 되었다.

‘어차피 저놈이나 나나 비슷해.’

현성은 이제 갓 굴레를 벗은 자가 되었다.

하나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을 보면, 저 녀석도 굴레를 벗은 자가 된 지 얼마 안 된 게 확실해.’

같은 굴레를 벗은 자라고는 하지만 상대의 무력은 게스피트나 제나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충분히 이길 수 있어.’

가챠로 인해 강화된 1강 무 등급 스킬들이 현성의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

* * *

‘어떻게 이런 일이.’

카루인은 경악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굴레를 벗은 자가 되기 직전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흑뢰신의 권속들을 잡고 포인트를 모아 굴레를 벗은 자가 되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나 카루인은 갓 굴레를 벗은 자가 된 최현성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굴레를 벗은 자는 고유 권능을 각성한다.

그러나 무 등급 스킬과 마찬가지로 고유 권능 역시 일반 스킬처럼 익히자마자 자유롭게 사용할 수는 없었다.

고유 권능의 제대로 된 쓰임새를 파악하고 수련을 해야 했다.

또한 고유 권능의 범용성을 늘리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포인트를 투자해야 했다.

한데 최현성 플레이어는 그 모든 과정을 말끔하게 생략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놀랍도록 강해졌다.

‘도대체 무슨 권능을 얻었기에 저렇게 범용성이 좋은 거야?’

뇌전 계열 스킬만 강화되었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한데 화염 계열, 회복 계열, 방어 계열까지 온갖 스킬들의 성능이 올라갔다.

어디 그뿐인가?

분명 그 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도발, 은신 같은 스킬도 사용했다.

‘흑뢰신님.’

카루인이 흑뢰신을 불렀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흑뢰신이 부여해 준 작은 권능만으로는…….

최현성 플레이어를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흑뢰신님, 제발 저에게 더 강한 권능을 주십시오!’

카루인이 간절하게 부르짖었다.

사실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카루인 자신이 죽을 판이었으니까 말이다.

카루인은 이번 사건의 주범이다.

그런 만큼 증거인멸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이 자리에서 최현성 플레이어를 죽여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최현성 플레이어와 싸워 패배하면 죽는다.

만약 비긴다면?

이기지는 못해도 도주에 성공한다면?

설사 그런다고 해도 카루인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자신이 흑뢰신의 권속이라는 사실은 최현성 플레이어의 입을 통해 알려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카루인은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모든 굴레를 벗은 자들의 공적이 된다.

아군과 적군의 굴레를 벗은 자들은 카루인의 숨통이 끊어지기 전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카루인이 살기 위해서는 이 자리에서 최현성 플레이어를 죽여야 했다.

-네 청을 들어주마.

장고에 들어갔던 흑뢰신이 결국 결정을 내렸다.

사실 흑뢰신으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천뢰신의 개입을 막기 위해 막대한 포인트를 투자했다.

수많은 권속들을 투입했고 그중 꽤 많은 숫자를 잃었다.

이 상태에서 목적을 이루지도 못한 채 카루인을 비롯한 남은 권속들을 모두 잃는다면?

흑뢰신은 끝장이었다.

콰콰콰콰콰!

막대한 권능의 폭포가 카루인에게 쏟아져 내렸다.

카루인은 굴레를 벗은 자다.

그런 만큼 흑뢰신의 권능을 거의 최대치로 부여받을 수 있었다.

하나 카루인에게 권능을 보내는 흑뢰신의 심정은 처참하기만 했다.

권속에게 권능을 부여해 주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막대한 포인트가 소모된다.

이번 작전이 성공한다면?

흑뢰신은 최현성 플레이어라는 굴레를 벗어난 자를 권속으로 삼거나 죽여 그 권능을 흡수해 손해를 만회할 수 있다.

하나 실패하면 잃기만 하고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흑뢰신도 카루인과 마찬가지로 이번 전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하하하하하!”

카루인의 입에서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신에서 힘이 넘쳐흘렀다.

지금 이 상태라면 최현성 플레이어가 아니라 최상위권 굴레를 벗은 자들과 싸운다고 해도 절대 질 것 같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 어서 공격해라.

흑뢰신이 다급한 어조로 카루인을 재촉했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최대한 빨리 쓰러트려야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전투가 길어지면?

애초의 목적이었던 최현성 플레이어를 권속으로 삼거나 죽여 그 권능을 흡수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손해를 보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다.

흑뢰신으로서는 그런 일만큼은 무조건 피하고 싶었다.

이미 현 상황은 흑뢰신의 예상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 대가로 흑뢰신은 예상치도 못한 피해를 너무 많이 봤다.

그런 만큼 더 이상의 피해는 막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 해결하겠습니다.’

카루인이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흑뢰신을 달랜 후 최현성 플레이어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아까는 흑뢰신이 권능을 최대치로 부여한 게 아니었나 보네.’

현성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카루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권속에게 저렇게 강한 권능을 줄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주지 왜 지금에서야 줬단 말인가?

‘뭐, 그런다고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현성이 화신 스킬을 사용한 후 그대로 카루인의 공격을 무시했다.

그 후 여태까지 했던 것처럼 다른 흑뢰신의 권속만 때려잡았다.

화신 스킬은 강화에 성공한 스킬 중 하나다.

그 덕분에 극악에 가까웠던 마력 효율이 꽤 많이 개선되었다.

그뿐 아니라 스킬 공격에 대한 저항력도 더 상승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카루인이 분노한 표정으로 현성에게 맹공을 가했다.

현성은 카루인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움직였다.

‘저런 놈이 어떻게 굴레를 벗은 자가 된 거야?’

현성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카루인을 바라봤다.

사실 처음부터 좀 이상하기는 했다.

아무리 카루인이 굴레를 벗은 자들 중에서 최약체로 분류될 정도로 약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방금 전까지 현성은 굴레를 벗지 못한 자였다.

굴레를 벗은 자와 굴레를 벗지 못한 자가 가진 힘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거기다 카루인은 흑뢰신의 권능까지 부여받은 상태였다.

한데 카루인은 그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한참 고생을 하고 나서야 현성을 위기에 몰아넣었다.

그것도 다른 흑뢰신의 권속들에게 도움을 받아서 말이다.

물론 지금의 카루인은 전과 달랐다.

흑뢰신의 권능을 최대치로 부여받아 엄청나게 강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루인과 현성의 전투 양상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작정 힘으로 찍어 누르려는 타입이야. 스킬 숙련도가 너무 떨어져.’

방금 전까지는 긴가민가했다.

그러나 굴레를 벗은 자가 되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카루인은 굴레를 벗은 자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수준이 낮았다.

현재 카루인의 행동은 현성이 과거 만났었던 신의 권속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막대한 권능을 주입받고 강해지기는 했다.

그러나 힘의 낭비가 너무 심하고 적중률이 떨어졌다.

사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카루인은 굴레를 벗는 자가 되는 과정에서 흑뢰신의 도움을 받았다.

아니, 도움을 받는 수준을 넘어 전적으로 의지했다.

위기가 생기면?

흑뢰신의 권능을 받아 힘으로 찍어 누르고 위기를 극복했다.

그러니 굴레를 벗는 자가 되는 과정에서 진짜 위기라고 할 만한 일을 겪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런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되자, 카루인은 굳이 고생스럽게 스킬 숙련도를 올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기계적으로 업적을 획득하며 성장했을 뿐이다.

당연히 전투 센스가 늘 리가 없었다.

항상 강한 적을 만나면 더 강한 힘으로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승리를 거둬 왔으니까 말이다.

사실 흑뢰신이 처음부터 카루인에게 막강한 권능을 주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막대한 포인트를 투자해 더 많은 권능을 부여해 줘도 효율이 너무 떨어졌으니까 말이다.

‘반푼이 같은 놈이었네.’

현성은 카루인을 비웃었다.

흑뢰신의 권능을 받아 상위권 굴레를 벗은 자들과 대등한 힘을 얻었다.

한데 그 힘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몰랐다.

현성과 카루인의 상황이 정반대였다면?

아마 전투는 상당히 짧은 시간에 종결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사선을 넘고 온갖 위기를 극복하며 굴레를 벗은 자가 된 현성과 흑뢰신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성장해 굴레를 벗은 자가 된 카루인은 그 근본부터가 달랐다.

현성이 야외에서 비와 바람을 견디며 성장한 야생화라면, 카루인은 온실 속에서 비료와 물을 먹고 자란 화초였다.

‘이크, 위험할 뻔했네.’

현성이 아슬아슬하게 카루인의 공격을 회피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반푼이 같은 놈이라고 해도 가지고 있는 힘이 워낙 강하니까 골치 아프기는 하네.’

현성은 흑뢰신에게 적당한 수준의 권능을 부여받은 카루인을 상대로는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흑뢰신에게 막강한 권능을 부여받은 지금의 카루인을 상대로는 요리조리 도망치며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하나 현성은 초조해하지 않았다.

도망 다니기만 해도 괜찮았다.

‘이제 20분 남았다.’

루시아와 정기적으로 연락하기로 약속한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0분.

20분 후면 루시아가 현성의 이상을 알아차리고 게스피트에게 연락을 취할 것이다.

‘그럼 게임 끝이지.’

저런 반푼이를 상대로는 20분이 아니라 200분이라도 버틸 자신이 있었다.

* * *

‘도대체 언제 쓰러지는 거야?’

카루인이 초조한 표정으로 최현성 플레이어를 공격했다.

흑뢰신이 막강한 권능을 부여해 줬을 때만 해도 금방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자신이 가진 막강한 힘에 비하면 최현성 플레이어가 가진 힘은 너무나도 보잘것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확신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그 보잘것없는 힘을 가지고 카루인의 공격을 피하고 막아 내며 흑뢰신의 권속들을 제거했다.

아군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적의 피해는 전무 한 상황.

카루인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도대체 뭘 하는 거냐? 어서 저놈을 죽여라!

흑뢰신 역시 초조함이 극에 달한 듯 더욱 강하게 카루인을 질책했다.

‘빌어먹을…….’

흑뢰신의 질책이 이어지자, 카루인은 더 강한 권능을 실어 공격을 퍼부었다.

하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쓸데없이 과한 권능을 사용해 흑뢰신의 포인트가 더 빠르게 고갈되어 갔다.

사실 카루인의 공격이 가진 파괴력은 지금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오히려 차고 넘쳤다.

그러나 최현성 플레이어는 페인팅을 한다든지 카루인의 공격을 예상하고 미리 몸을 피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질질 끌었다.

카루인은 아예 최현성 플레이어 주변을 초토화시키겠다는 각오로 맹공을 퍼붓기도 했다.

이에 대항하는 최현성 플레이어의 대처는 무척 신속했다.

우선 분신을 방패로 삼아 도주로를 만든다.

그 후 스킬 저항력이 높은 화신 스킬을 사용해 유유히 카루인의 화망을 빠져나갔다.

‘미치겠네.’

온갖 방법으로 공격을 퍼부어도 미꾸라지같이 빠져나가 버린다.

그런 최현성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카루인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그러나 카루인보다 더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인 이가 있었다.

바로 이번 작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한 흑뢰신이었다.

손해가 너무 커졌다.

얼마나 커졌냐면 애초의 목적대로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거하더라도 그간 입은 손해를 만회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흑뢰신은 카루인에게 퍼 주고 있는 권능을 끊을 수가 없었다.

왜?

최현성 플레이어를 잡지 못하면 아무런 이득 없이 지금까지 입은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서 저놈을 죽여라!

흑뢰신이 절규하듯 외쳤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거해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흑뢰신은 그저 이름뿐인 신으로 전락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 * *

루시아는 집에서 현성의 어머니와 함께 드라마를 시청 중이었다.

띠디디디! 띠디디디!

그때 루시아의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루시아가 스마트폰을 들어 올려 알람을 껐다.

그 후 차분히 기다렸다.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현성의 연락을 기다린 것이다.

하나 알람이 울린 지 1분이 넘었음에도 현성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뭐지?’

루시아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띠! 띠! 띠!

루시아가 밖으로 나가며 스마트폰을 켜고 현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현성이 있는 차원과 타 차원의 연결이 끊긴 것이다.

루시아가 곧바로 게스피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지?

게스피트가 나른한 어투로 물었다.

“주군과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루시아가 재빨리 현 상황을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갔던 차원이 어디지?

“제가 좌표를 알고 있습니다.”

-곧 지구로 넘어가겠다.

파지지직!

잠시 후 게스피트가 지구에 도착했다.

그것도 정확히 현성의 집 앞마당에 말이다.

“안내하거라.”

게스피트의 말에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원 게이트를 열었다.

파직!

하나 차원 게이트가 정상적으로 열리지 않았다.

“확실하구나.”

게스피트는 루시아가 차원 게이트를 열었던 좌표를 확인했다.

그 후 자신의 권능을 담아 새로운 차원 게이트를 열었다.

파지지직!

게스피트와 루시아가 새롭게 열린 차원 게이트를 타고 타 차원으로 넘어갔다.

* * *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시간을 체크했다.

루시아와 약속한 시간이 벌써 1분이나 지났다.

그때였다.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천지가 뒤틀렸다.

“도대체 누가?”

그와 동시에 잔뜩 당황한 카루인의 외침이 현성의 귓가에 울렸다.

‘왔구나.’

익숙한 마력이 둘이나 느껴졌다.

바로 게스피트와 루시아였다.

“이런 젠장!”

카루인도 게스피트의 마력을 느꼈는지 전투를 포기하고 차원 게이트를 열었다.

현성을 노리던 걸 포기하고 타 차원으로 도주하려는 것이다.

‘어딜 도망가려고.’

현성이 카루인을 향해 강화된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로 맹공을 가했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연달아 폭음이 터져 나왔다.

카루인은 현성의 공격에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하나 충격에 의해 약간은 밀려 날 수밖에 없었다.

현성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력 역장을 사용하고 차원 게이트가 열린 장소에 또 다른 차원 게이트를 열었다.

차원 게이트는 한곳에 두 개나 생성될 수가 없었다.

당연히 카루인이 열었던 차원 게이트는 그대로 소멸되어 버렸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카루인이 분노 어린 표정으로 현성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현성은 재빨리 그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아웃복싱 방식으로 치고 빠지며 카루인이 도주하지 못하게 방어했다.

“이익!”

카루인의 표정이 다급함으로 물들었다.

게스피트의 마력이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퍼어어어엉!

강대한 마력이 담긴 게스피트의 원거리 공격이 카루인에게 직격했다.

“크윽!”

게스피트의 공격 한 방에 카루인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벌써 발을 뺐네.’

흑뢰신이 부여해 준 권능이 있었다면?

카루인이 게스피트의 공격 한 방에 그로기 상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 상황이 어렵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흑뢰신은 카루인에게 부여했던 권능을 모두 회수해 버렸다.

카루인을 버린 것이다.

흑뢰신에게 버림받은 카루인이 게스피트의 손아귀에서 살아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은?

‘제로나 마찬가지지.’

설사 0.01%의 확률로 도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그걸 가만히 두고 볼 현성이 아니었다.

현성이 카루인에게 맹공을 가했다.

“커억! 크윽!”

카루인은 현성이 날린 공격들을 속수무책으로 허용했다.

애초에 카루인은 흑뢰신이 준 권능을 믿고 날뛰는 힘만 센 어린아이 같은 존재였다.

그런 카루인이 흑뢰신의 권능을 잃었으니, 현성의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현성이 일방적으로 카루인을 두들기는 와중에 게스피트와 루시아가 도착했다.

“살려 두어라.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아내야 하니.”

게스피트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세를 멈췄다.

사아아아악!

그 순간 게스피트의 마력이 거미줄처럼 뻗어 나와 카루인의 몸을 구속했다.

“그나저나 놀랍구나, 벌써 굴레를 벗은 자가 되다니.”

게스피트는 현성이 굴레를 벗은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그 덕분에 이번 위기를 겨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현성의 대답에 게스피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지구로 돌아가 대기하고 있거라. 다시 회합을 열어야겠다.”

“네, 게스피트 님.”

현성은 일단 지구로 귀환했다.

포로가 된 카루인은 게스피트가 데리고 갔다.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주군.”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루시아가 현성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까는 게스피트가 있었기에 나서지 못했던 모양이다.

“운이 좋았어요. 부모님은 모르시죠?”

현성의 물음에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현성의 감사 인사에 루시아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현성은 루시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것을 포착했다.

“이제 왜 이 전쟁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겠네요.”

현성의 말에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의문이었다.

지구는 왜 차원 전쟁에 휘말렸을까?

루시아의 고향 차원 역시 차원 전쟁에 휘말려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알고 싶었다.

왜 차원 전쟁이 일어났는지…….

왜 그 전쟁에 현성과 루시아의 고향 차원이 휘말렸는지 말이다.

‘이제 알 수 있어.’

현성은 굴레를 벗은 자가 되었고 비밀을 알아낼 자격을 얻었다.

* * *

넓은 공터에 천여 명에 달하는 굴레를 벗은 자들이 모여들었다.

“무슨 일로 또 회합을 소집한 거야?”

“메시지 제대로 안 읽었어? 최현성 플레이어가 또 적군 굴레를 벗은 자에게 습격을 당했다잖아.”

“이 자식들 안 되겠네. 저번에 한 번 봐줬는데 또 이런 짓을 벌여?”

“이게 다 저번에 적당히 넘어가서 그런 거야. 이번에는 제대로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고.”

굴레를 벗은 자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그런데 그 소식 들었어? 최현성 플레이어가 굴레를 벗은 자가 되었다는구만.”

“벌써? 각성한 지 백 년도 안 되지 않았나?”

“백 년은 무슨 50년도 안 됐다고.”

“최연소 굴레를 벗은 자 아니야?”

“무조건 최연소지. 최단 기간이기도 하고.”

“이전까지 최고 기록이 각성하고 나서 5백 년 정도였던 거 같은데 정말 엄청 빠르네.”

“그게 다 그놈이 우리 포인트를 빨아먹어서 그런 거야.”

굴레를 벗은 자들이 현성을 주제로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그때였다.

슈욱!

회합 장소에 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현성 플레이어다.”

“정말 굴레를 벗었잖아?”

“진짜 난놈은 난놈이네.”

천여 명이 넘는 굴레를 벗은 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현성에게로 쏠렸다.

현성은 담담하게 그 시선을 받아들였다.

전에 증인으로 참석했을 때는 이렇게 담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현성은 굴레를 벗은 자였고 저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 있는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모두 조용! 회합을 시작하겠다!”

현성이 도착하자 게스피트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건은 전과 마찬가지로 최현성 플레이어를 노린…….”

게스피트가 사건을 브리핑했다.

현성도 사건 당사자로서 중간중간 증언을 했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현재 현성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상태였다.

어서 빨리 회합을 끝내고 게스피트에게 차원 전쟁의 원인이 뭔지, 왜 지구가 휘말려 들었는지 그 이유를 듣고 싶었다.

“벌써 두 번째야. 이번에 참으면 우리가 호구가 되는 거라고!”

“맞아! 당장 전쟁을 벌여야 해!”

주전파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나 주화파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굳이 전면전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흑뢰신이 개입해서 발생한 사건이잖아.”

주전파와 주화파가 신나게 대립했다.

“전쟁까지 번지지는 않을 거예요.”

그때 누군가가 다가와 현성에게 말을 걸었다.

“백화 님.”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상대를 반겼다.

말을 걸어온 인물은 바로 현성의 VVIP 고객인 백화였다.

또 백화는 저번 회합 때 현성의 입장을 대변해 준 적이 있었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호감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은 흑뢰신이 벌인 일이에요. 그런 만큼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을 추궁할 명분도 약해지죠.”

“흑뢰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현성이 백화에게 물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한 진술이 모두 사실이라면, 몇천 년 정도는 이름뿐인 신으로 지내야 할 거예요. 이번 일에 포인트를 너무 많이 썼거든요.”

“포인트가 신들에게 왜 중요한 겁니까?”

현성이 궁금한 점 중 하나를 물었다.

“포인트는 우리의 수명이에요. 그리고 강력한 힘이자 에너지원이기도 하죠. 시스템도 포인트로 유지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20%의 수수료를 받는 건가요?”

현성의 물음에 백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1레벨 플레이어들이 물품을 거래하거나 용병 고용을 할 때마다 지불하는 20%의 수수료.

그게 바로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동력원이었다.

“신들도 권능을 강화하거나, 격을 올리거나, 권속을 만들 때 포인트를 사용해요.”

사실상 만능 에너지원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였다.

“대다수의 권속을 잃고 권능을 부여하느라 포인트도 어마어마하게 썼을 거예요. 그런데 아무런 소득도 거두지 못했으니, 몇천 년 정도는 아무것도 못 하겠죠.”

백화의 친절한 설명에 현성이 가장 궁금한 점을 물었다.

“도대체 지구는, 아니 제 고향 차원은 왜 차원 전쟁에 휩쓸린 겁니까?”

현성의 질문에 백화가 입을 열려는 순간.

“투표로 결정한다!”

게스피트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일단 투표부터 해야겠네요.”

백화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과 백화는 전면전 반대에 한 표를 던졌다.

다른 대다수의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투표 결과가 나오자 곧바로 그 사실을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에게 보냈다.

이에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도 평화를 원한다는 답신을 보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되었다.

‘다행이네.’

평화를 계속 이어 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되자,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겨우 굴레를 벗은 자가 되어 차원 전쟁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왔다.

그런데 빠져나오자마자 다시 차원 전쟁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살짝 아쉽기는 하네.’

현성은 배상금으로 저번처럼 대박을 터트리지 못했다.

이번 사건의 주범이 흑뢰신이었기 때문이다.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은 흑뢰신의 권속이었던 카루인을 구워 먹든 삶아 먹든 알아서 하라며 포기해 버렸다.

문제는 카루인이 사실상 개털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육체가 없는 정신체인 흑뢰신에게 찾아가 배상금을 받아 낼 수도 없었다.

현성은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카루인이 흑뢰신의 권속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에 대한 사과와 함께 건네준 약간의 포인트로 만족해야 했다.

당연히 고유 권능 가챠를 열심히 돌리느라 바닥을 드러낸 포인트는 거의 복구되지 않은 상태였다.

‘뭐, 어쩔 수 없지.’

현성은 배상금에 대한 아쉬움을 잠시 접어 뒀다.

그보다 더 관심이 가는 사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있겠어.’

현성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게스피트를 주시했다.

그런데 어째 게스피트의 기분이 살짝 나빠 보였다.

“넌 안 가냐?”

게스피트가 백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최현성 플레이어와 이야기 좀 더 나누다가 가려고. 왜?”

“그럼 따로 약속 잡아. 오늘 여기로 최현성 플레이어를 부른 사람은 나니까.”

게스피트의 말에 백화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러더니 현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건 제 차원 좌표예요. 심심하면 언제든지 놀러 오세요.”

백화가 그 말과 함께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게스피트 님.”

현성이 게스피트를 불렀다.

“왜?”

게스피트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요. 왜 지구가 차원 전쟁에 휘말리게 된 거죠? 제가 굴레를 벗은 자가 되었으니, 지구는 확실히 차원 전쟁에서 벗어나게 된 게 맞나요?”

현성이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게스피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맞아, 네가 여기 동의하기만 한다면.”

게스피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성의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과 맺은 협약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동의하면 넌 더 이상 차원 전쟁을 벌일 수 없어. 그리고 협약된 사항을 어겼을 때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되겠지. 일단 협약된 사항에 대해 설명해 줄게…….”

게스피트의 긴 설명이 이어졌다.

딱히 현성에게 해가 되는 내용은 없어 보였다.

“동의합니다.”

현성이 게스피트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단숨에 예를 눌렀다.

“이제 제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세요.”

현성의 물음에 게스피트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왜 지구가 차원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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