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권. 굴레를 벗은 자 (204/225)
  • ┃굴레를 벗은 자

    “아주 잠깐만 기다려 봐. 내가 최현성 플레이어한테 꼭 할 말이 있다고.”

    목소리의 주인공이 현성과 게스피트 사이로 난입했다.

    ‘누구지?’

    현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아는 얼굴인가 했지만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자네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야.”

    목소리의 주인공이 막 입을 여는 순간.

    “어딜 새치기해? 내가 먼저야.”

    “웃기고 있네, 내가 먼저거든.”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현성을 향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가챠 확률 그거 진짜 맞기는 한 거야?”

    “이번 리X니 2 패치는 도대체 왜 그렇게 한 거야?”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현성에게 질문을 토해 냈다.

    이에 현성의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강력한 존재감을 가진 이들이 단체로 자신을 추궁하자 쉽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금 현성은 내가 고용한 상태야. 질문을 던지고 싶으면 정당한 포인트를 사용하라고.”

    게스피트가 그 말과 함께 현성의 용병 고용을 해제해 버렸다.

    슈욱!

    그 순간 현성이 다시금 지구로 귀환했다.

    “이런!”

    “너 정말 너무한다!”

    “나는 그냥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을 뿐이라고.”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억울함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게스피트를 노려봤다.

    하지만 게스피트는 당당했다.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억울하면 네놈들이 직접 포인트를 써서 최현성 플레이어를 고용해.”

    게스피트의 말에 다른 아군 굴레를 벗은 자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 * *

    지구로 돌아온 현성은 제나와 주백설의 전투 뒤처리에 전념했다.

    뒤처리가 끝난 후에는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지구는 안전하다는 생방송 발표까지 해야 했다.

    이번 일의 여파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뒷정리를 끝낸 현성이 짧은 휴식을 취했다.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면서 현성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서버를 다시 통합할까?’

    현성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대비했다.

    그래서 지구를 지켜 내지 못하더라도 타 차원에서 힘을 길러 지구를 수복할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의 중심이 되는 게 바로 지구의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이었다.

    현성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영혼의 계약서를 쓴 대상인 마르코스의 차원과 적군 차원에서 지구의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을 판매하는 카이로의 차원에 서버를 가져다 놓고 지구의 서버와 동기화시켰다.

    서버를 셋으로 분산해 위기에 대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세 개의 서버가 동시에 망가지지 않는 이상 문화 상품 판매를 지속할 수 있었다.

    한데 그런 철저한 대비가 이번에 현성의 발목을 잡았다.

    ‘전처럼 지구에만 단독으로 서버가 있었다면, 게스피트 님이 바로 시스템이 무력화된 걸 알아차리셨을 거야.’

    그럼 이번처럼 큰 위기를 겪을 필요가 없었다.

    교류의 보석으로 연결되어 있던 서버와의 연결이 끊기면 게임은 먹통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동일한 서버를 셋으로 분산시켜 놓은 탓에 지구에 있는 서버와의 연결이 끊겼음에도 타 차원의 플레이어들은 아무런 불편함 없이 게임과 웹서핑을 지속할 수 있었다.

    ‘시스템 세팅을 바꾸자.’

    위험을 셋으로 분산시키는 건 만일을 대비한 보험이었다.

    그런 만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시스템 세팅만 바꾸면 위기에 대처할 수 있어.’

    지구 서버와의 연결이 끊어지면 나머지 두 개의 서버가 작동을 중단하게 만들면?

    지구에 이상이 생기는 즉시 이 사실을 전자 제품을 이용하는 게스피트를 비롯한 굴레를 벗어난 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서버가 다 다운되겠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제나가 조금만 늦었어도 현성은 죽었을 것이다.

    ‘내가 죽거나 지구가 박살 나는 것보다는 서버가 다운되는 게 더 나아.’

    결정을 내린 현성이 마르코스의 차원과 카이로의 차원에 있던 서버들의 시스템 세팅을 바꾸었다.

    지구의 메인 서버와의 연결이 끊어지면 현성이 재작동시키기 전까지는 연결이 끊어져 버리도록 말이다.

    ‘이제 다시 사냥이나 하자.’

    제나와 주백설의 전투로 벌어진 일들을 마무리하고 서버 세팅까지 바꾼 현성이 다시금 각 차원을 순회공연하며 업적을 쌓았다.

    ‘훨씬 수월해졌어.’

    스텟이 많이 올랐기 때문인지 사냥이 더 쉬워졌다.

    ‘권능도 계속 각성시켜야지.’

    현성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무 등급 스킬들의 각성을 위해서도 무던히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신들의 개입도 없었고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의 위협도 없었다.

    현성은 차원 전쟁과 사냥 그리고 장사를 계속해서 스텟을 늘리고 포인트를 긁어모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현성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믿을 수 없는 업적]

    -최초로 단일 스텟 1만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단일 스텟 1만을 달성한 자]

    ‘어? 단일 스텟 1만?’

    현성이 놀란 표정으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정말이네.’

    상태창을 확인한 현성이 깜짝 놀랐다.

    마력 스텟이 1만을 돌파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스텟들도 거의 1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현성의 총스텟은 무려 5만에 육박했다.

    ‘업적의 힘이 정말 컸어.’

    탐식의 서가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정말 큰 힘이 된 건 업적이었다.

    자잘한 연계형 업적들이 쌓이고 쌓여 큰 힘이 되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모든 스텟 증가 옵션이 붙은 업적들이 현성에게 엄청난 시너지를 선물해 줬다.

    ‘총스텟 5만을 레벨 업을 할 때 주는 보너스 스텟으로만 올리려면?’

    무려 10000레벨을 달성해야 했다.

    “하하하하!”

    현성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3000~4000레벨 수준이었던 적군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고전했던 게 엊그제 같았다.

    한데 어느새 현성의 스텟은 그들의 두세 배를 넘겨 버렸다.

    ‘포인트도 엄청나게 쌓였고.’

    그간 현성은 위기를 겪지 않았다.

    당연히 불사의 서가 다운그레이드되어 다시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포인트를 소비할 일이 없었다.

    다른 무급 스킬을 만들지도 않았다.

    당연히 포인트는 줄어들지 않고 꾸준히 늘어났다.

    ‘이제 거의 목전에 왔어.’

    굴레를 벗은 자.

    과거에는 까마득하게 보이던 위치가 이제는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느껴졌다.

    * * *

    카루인은 1레벨 플레이어다.

    그와 동시에 굴레를 벗은 자이기도 했다.

    그는 전면전을 주장하는 주전파에 속해 있는 인물이다.

    겉으로 보았을 때 카루인는 그저 전쟁을 좋아하는 주전파에 속한 굴레를 벗은 자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카루인에게는 다른 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바로 모시는 신이 있다는 점이었다.

    카루인은 굴레를 벗지 못한 자였을 때부터 흑뢰신의 권속이었다.

    하나 그 사실을 굴레를 벗은 자가 될 때까지 철저하게 숨겼다.

    굴레를 벗은 자가 된 후에도 동료들에게 흑뢰신의 권속이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았다.

    ‘흑뢰신께서 전면전을 원하시는데 쉽지가 않구나.’

    카루인의 사고방식은 모든 게 흑뢰신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그게 자신이 사는 길이기도 했다.

    카루인이 흑뢰신의 권속이라는 사실이 발각된다면?

    적군, 아군 할 것 없이 모든 굴레를 벗은 자들이 자신의 적이 되어 버린다.

    그럼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 전면전이 벌어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동료를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전면전이 벌어지면 아군과 적군이 상호 협의하에 만든 협약이 무력화된다.

    규율도 마찬가지였다.

    시스템의 감시가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전면전만큼 신들이 권속을 늘리기 좋은 찬스도 없었다.

    전쟁이 벌어지고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면 살기 위해 신의 권능에 의지하는 플레이어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나의 권속으로 만들거나 죽여라.

    카루인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흑뢰신의 음성이 들려왔다.

    ‘시스템의 감시 때문에 쉽지가 않습니다.’

    -또 다른 권속 하나가 시스템의 눈을 속여 줄 것이다.

    이 말은 권속 하나를 포기하더라도 최현성 플레이어를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거나 죽이겠다는 뜻이었다.

    ‘어째서 그런 명령을 내리시는지 알려 주십시오.’

    -얼마 후면 최현성 플레이어는 굴레를 벗은 자가 될 것이다. 그 전에 그를 나의 권속으로 삼고자 한다.

    ‘이미 성장한 권속들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말씀이십니까?’

    카루인의 물음에는 미약한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널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흑뢰신의 음성에는 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사실 굴레를 벗은 자이면서도 자신의 권속인 카루인을 포기하는 것은 흑뢰신으로서도 엄청난 대출혈이었다.

    ‘알겠습니다. 하나 최현성 플레이어 곁에는 제나가 있습니다. 또한 게스피트 역시 최현성 플레이어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현재 타 차원에 있다.

    ‘한데 꼭 그렇게 하셔야겠습니까? 최현성 플레이어를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아군과 적군 굴레를 벗은 자들의 균형이 깨져 전면전이 벌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카루인은 흑뢰신의 지시가 탐탁지 않았다.

    굴레를 벗지 못한 권속이었다면 흑뢰신의 말에 토를 달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나 카루인은 흑뢰신과 대등한 격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그저 굴레를 벗기 전부터 흑뢰신의 권속이었기에 굴레를 벗은 후에도 종속되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너희들의 전쟁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흑뢰신이 계속해서 기회를 노릴 수 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전쟁을 종결하는 자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카루인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 그자는 언젠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전쟁을 영원히 종결시킬 것이다.

    카루인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그간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며 수많은 강자들이 나타났다.

    하나 그들 중 누구도 아군과 적군의 전쟁을 종결시키지는 못했다.

    한데 최현성 플레이어가 지금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이루어 낼 것이라고 신이 확답했다.

    ‘알겠습니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카루인이 두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 * *

    퍼퍼퍼퍼퍼펑!

    하늘에서 칠흑빛 뇌전이 비처럼 쏟아졌다.

    지상에 있던 몬스터들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여기도 끝났네.’

    현성이 차원 게이트를 열어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빙결 스킬을 사용해 보자.’

    새로운 차원에 도착한 현성이 탐지 스킬을 사용한 후 빙결 스킬을 사용했다.

    휘이이이잉!

    차가운 냉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콰드드드득!

    그리고 수천수만 개에 달하는 얼음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슈슈슈슈슉!

    현성이 의지를 전달한 순간, 얼음 창들이 일제히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퍼퍼퍼퍼퍼펑!

    현성이 타깃으로 지정한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얼음덩어리로 변했다.

    ‘역시 효율이 좋지는 않아.’

    현성이 직접 성장시킨 스킬인 흑뢰신마공과 중간에 얻은 빙결 스킬은 꽤 많은 숙련도 차이가 났다.

    ‘주력으로 쓰기는 힘들겠어.’

    동일한 마력을 소모한다고 가정할 때 빙결 스킬보다는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 같은 스킬을 사용하는 게 훨씬 더 이득이었다.

    ‘어서 정리하고 떠나자.’

    파지지지직!

    현성이 흑뢰신마공을 사용해 사냥을 이어 나갔다.

    ‘여기도 금방 끝났네.’

    스텟이 올라가며 스킬의 권능이 강해지자 몬스터를 사냥하는 속도도 점점 더 빨라졌다.

    ‘가자.’

    현성이 다음 목표로 삼은 차원의 좌표를 대상으로 차원 게이트를 열었다.

    그런데…….

    파직!

    ‘뭐야?’

    차원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다.

    마치 주백설의 습격을 받았을 때처럼 말이다.

    현성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파지지직!

    그런 현성을 향해 칠흑빛 뇌전이 날아왔다.

    휘익!

    현성이 재빨리 몸을 날려 칠흑빛 뇌전을 피했다.

    ‘흑뢰신.’

    칠흑빛 뇌전을 목격한 현성은 단번에 이 일을 벌인 이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방금 전 날아온 칠흑빛 뇌전에 흑뢰신의 권능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또 나를?’

    그간 흑뢰신은 현성 앞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흑뢰신마공을 통해 말을 건 적도 없었다.

    한데 갑자기 기습을 가해 왔다.

    “제법이구나.”

    칠흑빛 갑옷으로 전신을 꽁꽁 가린 적이 현성을 향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설마?’

    현성은 큰 충격을 받았다.

    상대가 뿜어내는 강대한 마력과 존재감 때문이었다.

    적은 엄청나게 강했다.

    하나 단순히 강하기만 했다면 현성이 이렇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놀랍게도 적은…….

    “굴레를 벗은 자?”

    현성의 중얼거림에 칠흑빛 갑옷을 입은 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어떻게 굴레를 벗은 자가 흑뢰신과?”

    현성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굴레를 벗은 자는 신과 동급의 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가 뭐가 아쉬워서 흑뢰신의 권속이 되었다는 말인가?

    “네놈이 그 이유를 알 필요는 없다.”

    휘익!

    그 말과 함께 상대가 현성을 향해 몸을 날렸다.

    현성은 일단 게스피트에게 받은 반지에 마력을 주입했다.

    화르르륵!

    그 후 화신 스킬을 사용한 채로 전력을 다해 도주했다.

    꽈아앙!

    하나 얼마 가지 않아 반투명한 벽에 가로막힌 신세가 되었다.

    ‘이까짓 거.’

    현성이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흑뢰신마공을 사용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꽈아아앙!

    커다란 폭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쩌저저쩍

    현성의 공격을 받은 결계에 작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버틸 수 있나 보자.’

    과거 주백설을 만났을 때는 그녀가 만든 봉인을 부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주백설을 만났을 때에 비해 지금의 현성은 권능의 숙련도와 스텟 상승 폭이 엄청나게 컸다.

    퍼어어어엉!

    적이 만든 봉인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났다.

    ‘해냈어.’

    현성이 다시금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그러나 현성의 위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봉인을 부수는 건 성공했지만 사냥을 하던 차원에 갇혀 버렸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거기다 등 뒤에서는 굴레를 벗은 자가 맹렬한 기세로 현성을 추격하고 있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

    봉인을 부수느라 거리가 너무 좁혀졌다.

    ‘가라.’

    현성이 아공간을 열었다.

    -크아아아앙!

    -캬아아아아!

    아공간 내부에서 언데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건방진!”

    파지지지직!

    적의 공격에 언데드 몬스터들이 그대로 순간 삭제당했다.

    ‘상관없어.’

    그저 작은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 버리는 패로 사용한 것뿐이었다.

    현성은 분신술 스킬을 비롯해 시간을 끄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란 스킬은 다 사용했다.

    ‘천뢰신.’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 도주하던 현성이 마음속으로 천뢰신을 불렀다.

    ‘듣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어. 포인트를 주마. 대신 전처럼 제나 님께 현재 내 상황을 전해 줘.’

    제나가 현성의 현재 상황을 알게 되면?

    이 문제는 손쉽게 해결이 가능했다.

    -거절하겠다.

    그때 천뢰신의 대답이 들려왔다.

    ‘거절? 포인트가 적어서 그런 거라면 더 많은 양을 주마.’

    -네가 가진 포인트를 모두 준다고 해도 널 돕지 않겠다.

    천뢰신의 단호한 태도에 현성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간 천뢰신은 노골적으로 포인트를 탐냈다.

    한데 그런 천뢰신이 현성이 가진 포인트를 전부 준다고 해도 도와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설마?’

    현성의 머릿속에 짚이는 점이 하나 있었다.

    ‘흑뢰신과 손을 잡은 거냐?’

    -그저 정당한 거래를 했을 뿐이다.

    천뢰신의 말에 현성의 표정이 분노로 물들었다.

    ‘나랑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천뢰신에 대한 분노는 아니었다.

    이 판을 만든 흑뢰신에 대한 분노였다.

    천뢰신이 현성이 가진 모든 포인트를 거절할 정도라면?

    흑뢰신이 천뢰신에게 현성을 돕지 않는 대가로 엄청난 포인트를 약속했다는 뜻이다.

    현성은 흑뢰신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엄청난 대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말인가?

    파지지지직!

    흑뢰신의 권능과 굴레를 벗은 자의 권능이 합쳐진 공격이 연달아 날아왔다.

    퍼엉! 퍼엉! 퍼엉!

    화신 스킬을 사용해 받는 스킬 공격 저항력을 최대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의 공격에 한번 적중당할 때마다 체력과 마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갔다.

    “네놈이 도망칠 곳은 없다! 흑뢰신님께 굴복해라! 그럼 살려 주마!”

    등 뒤에서 적의 외침이 들려왔다.

    ‘웃기고 있네.’

    현성은 자신을 공격하고 궁지에 몰아넣은 흑뢰신에게 굴복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전보다는 상황이 좋아.’

    현성은 주백설을 만났을 때보다 많이 성장했다.

    거기다 이 차원에는 체력과 마력을 회복할 수 있는 몬스터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현성에게 체력과 마력을 공급해 줄 신하들 역시 있었다.

    거기다 상대의 실력이 굴레를 벗은 자들 중에서 최하위권에 위치해 있는 듯 보였다.

    굴레를 벗은 자들 중 최상위권인 게스피트나 제나 수준이었다면 이렇게 도망을 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버티는 수밖에 없어.’

    현성은 주백설의 습격을 당한 이후 4시간 주기로 하루에 여섯 번씩 루시아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만약 4시간 주기로 주고받기로 한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루시아가 현성에게 연락을 해도 받지 않는다면?

    루시아는 현성이 위기에 빠졌다고 판단하고 곧바로 게스피트에게 연락을 취할 것이다.

    ‘3시간만 버티면 끝나는 일이야.’

    하필 1시간 전에 루시아와 연락을 취했다.

    ‘버틸 수 있어.’

    파지지지직!

    현성이 지상의 몬스터들을 향해 흑뢰신마공을 흩뿌렸다.

    소모되었던 체력과 마력이 빠른 속도로 차올랐다.

    “잔재주를 피우는구나!”

    적이 현성을 집중 공격 하던 걸 멈추고 지상의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현성이 몬스터를 사냥해 체력과 마력을 보충하는 걸 막으려는 생각이었다.

    ‘나쁘지 않아.’

    현성은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고 그곳엔 새로운 몬스터가 있다.

    또한 자신에게 집중되던 공격이 몬스터에게 분산되어 체력과 마력 소모가 조금이나마 느려졌다.

    현성과 적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 * *

    ‘쥐새끼 같은 놈.’

    카루인이 이를 악물었다.

    손쉬운 상대라고 생각했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굴레를 벗기 직전이다.

    하지만 아직 굴레를 벗은 자는 아니었다.

    굴레를 벗은 자인 자신의 권능과 흑뢰신의 권능을 합친다면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절대 정면 승부를 벌이지 않았다.

    요리조리 도망치며 체력과 마력을 보충하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크아아아앙!

    거대한 본 드래곤이 카루인을 향해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들었다.

    파지지직!

    카루인이 공격 스킬을 사용해 단숨에 본 드래곤을 분쇄했다.

    하나 그 짧은 순간 현성은 카루인과의 거리를 더 벌렸다.

    ‘도대체 아공간에 언데드 몬스터가 몇 마리나 있는 거야?’

    차라리 한 번에 다 풀어놓으면 정리하기 편할 것이다.

    한데 몇백 마리씩 나눠서 풀어놓으며 시간을 끌었다.

    ‘분명히 믿는 구석이 있는 거야.’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태라면?

    희박한 확률이나마 정면 승부를 해서 변수를 창출하는 게 더 나았다.

    하지만 최현성 플레이어는 전력을 다해 도주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믿는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카루인의 마음이 점점 더 초조해졌다.

    ‘단기 승부를 내야 한다.’

    장기전을 벌여 최현성 플레이어의 체력과 마력을 소진시키는 식으로 전투를 진행해도 이길 자신은 있다.

    하지만 그럼 전투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그 길어진 전투 시간 때문에 최현성 플레이어의 믿는 구석이 모습을 드러낸다면?

    카루인은 끝장이다.

    ‘권속들을 더 동원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다.

    카루인의 요청을 흑뢰신이 수락했다.

    이번 작전이 실패한다면?

    흑뢰신은 시스템의 눈을 속이고 있는 권속과 더불어 굴레를 벗은 자인 카루인까지 잃게 된다.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더 많은 권속을 동원해서라도 확실하게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압해야 했다.

    카루인이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맹공에 나섰다.

    체력 안배도 포기했다.

    ‘네놈이 뭘 믿고 버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수가 발동하기 전에 숨통을 끊어 주마.’

    카루인이 광범위한 광역 공격을 통해 최현성 플레이어를 공격했다.

    또한 몬스터 역시 미리미리 사냥해 최현성 플레이어가 체력과 마력을 회복할 여지를 빼앗았다.

    하나 최현성 플레이어는 미꾸라지처럼 카루인의 화망을 피해 요리조리 도망쳤다.

    그러나 카루인은 더 이상 초조해하지 않았다.

    잠시 후면 자신과 같은 흑뢰신의 권속들이 이곳에 도착할 것이니까 말이다.

    * * *

    ‘좋았어. 충분히 버틸 수 있어.’

    현성이 희망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주백설의 습격을 당했을 때보다 월등히 상승한 기량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다.

    무려 1시간 넘게 추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현성의 체력과 마력은 아직도 2/3 이상의 여유가 있었다.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체력과 마력을 수급한 덕분이었다.

    추격전이 지금처럼만 진행된다면?

    현성은 무사히 흑뢰신이 판 함정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어?’

    희망 가득하던 현성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게 무슨?’

    현성이 도주하는 정면 방향에서 흑뢰신의 권능이 느껴졌다.

    ‘설마 권속이 하나가 아니었던 건가?’

    가슴이 답답했다.

    현성이 탐지 스킬을 동원해 새로운 적을 파악했다.

    ‘그나마 다행이네.’

    두 번째로 등장한 흑뢰신의 권속은 그 힘이 형편없이 약했다.

    높게 잡아 봐야 과거 현성이 처음 상대했던 흑뢰신의 권속 수준이었다.

    문제는 그래도 어느 정도 드잡이질을 해야 할 테고, 그럼 굴레를 벗은 흑뢰신의 권속과의 거리가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일단은 피하자.’

    현성이 몸을 틀어 도주로를 변경했다.

    그러자 현성의 도주로를 막고 있던 흑뢰신의 권속 역시 추격을 시작했다.

    무려 둘이나 되는 흑뢰신의 권속에게 쫓기는 상황.

    하나 아직까지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현성이 가지고 있는 여유가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또 나왔잖아?’

    새로운 흑뢰신의 권속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흑뢰신의 권속들이 포위망을 갖추며 현성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런 망할.’

    현성은 도주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흑뢰신의 권속이 하나둘 늘어난다면?

    남은 2시간을 버틸 수가 없었다.

    ‘약한 놈부터 잡는다.’

    현성이 도주로를 막고 있던 흑뢰신의 권속을 향해 거리를 좁혔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그와 동시에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로 휩싸인 용혈검을 휘둘렀다.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흑뢰신의 권속이 형편없이 뒤로 밀렸다.

    현성은 사정없이 맹공을 가했다.

    서걱!

    접전 끝에 현성의 용혈검에 흑뢰신의 권속의 목이 날아갔다.

    파지지직!

    하지만 시간을 너무 끌었던 탓일까?

    굴레를 벗은 흑뢰신의 권속이 현성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화르르륵!

    현성이 화신 스킬을 사용해 굴레를 벗은 흑뢰신의 권속이 날린 공격을 피하고 다시금 몸을 날렸다.

    피 말리는 추격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굴레를 벗은 흑뢰신의 권속을 주축으로 다른 흑뢰신의 권속들이 현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현성은 흑뢰신의 권속들을 하나둘 쓰러트려 가면서 도주로를 확보했다.

    그러나 그와 비례해 현성의 체력과 마력이 빠른 속도로 소모되어 갔다.

    뒤에 나타난 흑뢰신의 권속들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흑뢰신의 권능을 부여받은 만큼 손쉽게 쓰러트릴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다.

    문제는 흑뢰신의 권속들의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난다는 점이었다.

    결정적으로 굴레를 벗은 흑뢰신의 권속이 현성의 뒤를 바짝 뒤쫓으며 맹공을 가하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대략 1시간가량.

    ‘버틸 수 있을까?’

    자신감이 떨어졌다.

    ‘해 보자. 아니, 무조건 해내야 해.’

    현성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버티기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버티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 * *

    ‘아주 발악을 하는구나.’

    카루인이 쥐새끼처럼 요리조리 도망치는 최현성 플레이어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지원군이 오기 전이었다면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떨쳐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 흑뢰신이 결단을 내렸고 자신의 권속들을 대거 투입했다.

    그 결과 최현성 플레이어는 흑뢰신의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힘겨운 싸움을 지속하고 있었다.

    ‘제법 잘 버티는구나.’

    최현성 플레이어는 상당히 잘 싸웠다.

    비교적 전투력이 떨어지는 권속들을 골라 쓰러트렸고, 가장 강한 자신의 공격은 몸을 화염으로 변화시키는 방어 스킬을 사용해 회피했다.

    ‘내가 없었다면 실패했을 수도 있겠어.’

    카루인이 이번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최현성 플레이어가 흑뢰신의 권속들을 모조리 쓰러트렸을 확률이 높았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그 정도로 잘 싸웠다.

    ‘하나 내가 참가한 이상 네놈은 이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죽이지 못하면 카루인 자신도 위험한 만큼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죽여야 했다.

    카루인이 다른 흑뢰신의 권속들과 함께 최현성 플레이어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와 동시에 흑뢰신의 권속 중 일부가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의 씨를 말려 버렸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체력과 마력 회복을 막기 위해서였다.

    콰아아아앙!

    최현성 플레이어가 카루인이 날린 칠흑빛 뇌전에 적중당했다.

    마력 부족으로 화염으로 변하는 스킬을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끝이 보이는구나.’

    최현성 플레이어가 아무리 잘 싸운다고 해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꽈아앙! 꽈아앙!

    화염으로 변하는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자 카루인이 날린 공격 스킬들이 제대로 된 피해를 주기 시작했다.

    ‘죽어라.’

    카루인이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공격을 날렸다.

    파지지직!

    카루인이 날린 공격이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적중했다.

    꽈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커다란 폭발과 함께 광범위한 지역이 칠흑빛 뇌전으로 뒤덮였다.

    ‘이런 미친.’

    공격을 날린 당사자인 카루인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이번 폭발은 카루인의 공격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몸속의 마력을 역류시켜 폭발시켰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큰일 날 뻔했어.’

    카루인이 식은땀을 흘렸다.

    조금만 대처가 늦었다면?

    아무리 카루인이라고 해도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피해가 크구나.’

    카루인처럼 재빨리 대응하지 못한 흑뢰신의 권속들 중 꽤 많은 숫자가 이번 폭발로 인해 희생되었다.

    ‘그래도 어쨌든 숨통은 끊었어.’

    카루인이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 무렵.

    사아아아악!

    마력이 뭉쳐지며 최현성 플레이어가 멀쩡한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이런 미친.’

    설마 상대가 부활의 권능까지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끝난 줄 알았던 전투가 다시 이어졌다.

    ‘지독한 놈.’

    최현성 플레이어는 부활함과 동시에 체력과 마력을 모두 회복한 듯 보였다.

    ‘그런다고 살아 돌아갈 수 있을 성싶으냐?’

    카루인이 흑뢰신의 권속들을 이끌고 다시금 맹공을 펼쳤다.

    전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여전히 포위망에 갇혀 서서히 말라 죽어 갔다.

    ‘부활의 권능을 연속해서 사용할 수는 없겠지.’

    카루인은 승리를 확신했다.

    하나 최현성 플레이어는 아직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은 듯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최현성 플레이어가 스킬을 전신에 두르고 상처 입은 짐승처럼 사납게 날뛰었다.

    ‘굳이 내가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겠지.’

    카루인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원거리에서 공격을 가했다.

    카루인이 몸을 사리자 다른 흑뢰신의 권속들이 입는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네가 직접 나서라.

    흑뢰신의 명령이 내려왔다.

    ‘놈이 방금 전처럼 마력을 역류시킬 수도 있습니다. 제가 휘말린다면 그게 더 큰 피해 아니겠습니까?’

    카루인이 흑뢰신의 명령을 거부했다.

    ‘내 안전이 우선이야.’

    최현성 플레이어는 다 죽어 가고 있다.

    하지만 숨통이 끊어진 건 아니었다.

    ‘분명히 숨통이 끊어지기 전에 아까 전처럼 최후의 발악을 할 거야.’

    최현성 플레이어가 죽기 전에 보여 준 마력 폭발의 파괴력은 실로 엄청났다.

    빠르게 대응해서 무사하긴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러리라는 법이 없었다.

    카루인은 스릴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다.

    ‘최대한 안전하게 간다.’

    카루인이 흑뢰신의 지시를 거부하고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 나갔다.

    흑뢰신 역시 카루인의 강한 거부 반응에 더 이상 무리한 지시를 하지는 않았다.

    파지지직! 파지지직!

    카루인이 원거리 공격을 날리며 최현성 플레이어를 공격했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카루인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내며 흑뢰신의 권속들에게 달려들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히려는 듯 보였다.

    ‘그래 봤자, 넌 끝이다.’

    카루인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공격을 날렸다.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최현성 플레이어가 있던 장소가 칠흑빛 뇌전으로 뒤덮였다.

    그 순간.

    최현성 플레이어가 있던 장소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 * *

    ‘방법이 없네.’

    현성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수많은 사선을 넘어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은 적은 없었다.

    굴레를 벗은 자가 흑뢰신의 권능까지 부여받았다.

    일대일로 싸워도 승산이 없는 상황이다.

    한데 다른 흑뢰신의 권속까지 몰려들었다.

    부활의 권능을 가진 불사의 서 덕분에 죽음에서 부활하기는 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대로 끝이었다.

    희망이 없었다.

    ‘불사의 서 등급이 떨어지면서 더 버티기가 힘들어졌어.’

    불사의 서가 무 등급 스킬일 때는 몸으로 받았던 공격도 이제는 일일이 다 방어를 해야 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보자.’

    굴레를 벗은 흑뢰신의 권속을 상대로는 아예 승산이 없었다.

    현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흑뢰신의 권속 숫자를 최대한 줄여 활로를 여는 것뿐이었다.

    서걱!

    용혈검이 흑뢰신의 권속 하나를 베어 냈다.

    그 순간 다른 흑뢰신의 권속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멀리서 굴레를 벗은 흑뢰신의 권속이 현성을 향해 맹공을 가했다.

    현성의 체력과 마력은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저 녀석이 마지막이겠네.’

    현성은 이마에 두 개의 뿔을 달고 있는 적을 마지막 길동무로 정했다.

    푸욱!

    용혈검이 적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 순간.

    -보유 포인트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모든 조건을 만족하셨습니다.

    -굴레에서 벗어납니다.

    -모든 스텟이 상승합니다.

    -고유 권능을 각성합니다.

    현성의 눈앞에 연속적으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전신에서 힘이 넘쳐흘렀다.

    ‘시스템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현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시스템에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인데도 새로운 메시지가 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현성이 체력과 마력 보충을 위해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흑뢰신의 권속들을 쓰러트렸을 때도 포인트 획득 메시지는 계속 떴으니까 말이다.

    현재 현성의 시스템창은 온라인이 끊긴 오프라인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하나 오프라인 상태라고 해도 미리 깔려 있던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는 있었다.

    -고유 권능 가챠를 얻으셨습니다.

    ‘이게 뭔 개소리야?’

    고유 권능을 각성한다는 시스템 메시지에 살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한데 뜬금없이 고유 권능으로 가챠를 얻었다고 한다.

    현성이 재빨리 고유 권능 가챠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가챠 – 고유 권능]

    -포인트를 소모해 랜덤으로 보유 스킬을 강화합니다.

    -강화 실패 시 보유 스킬의 등급이 하락합니다.

    -포인트를 소모해 랜덤으로 새로운 스킬을 만들어 냅니다.

    ‘무슨 이딴 권능이 다 있어.’

    현성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강력한 공격 스킬이나 방어 스킬 같은 권능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말 그대로 포인트로 가챠를 돌려야 하는 권능이 나와 버렸다.

    ‘도대체 왜 이딴 걸 고유 권능으로 주는 거야?’

    현성으로서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하나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고유 권능은 플레이어가 굴레를 벗은 자가 될 때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한 방법을 기초로 만들어진다.

    화염 계열 스킬을 중심으로 몬스터를 사냥해 굴레를 벗은 자가 되었다면?

    화염 계열 스킬과 비슷한 고유 권능이 만들어진다.

    플레이어의 차원에서 비약이 생산되어 비약 판매를 바탕으로 굴레를 벗은 자가 되었다면?

    비약 생산이나 제조와 관련된 고유 권능이 만들어진다.

    전투가 중심이든 판매가 중심이든 굴레를 벗은 자가 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방법으로 권능이 만들어지다 보니…….

    현성의 권능은 가챠가 되어 버렸다.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 판매로 포인트를 쌓은 현성이지만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바로 가챠 시스템이었으니까 말이다.

    ‘일단 써 보자.’

    현재 현성은 더운밥 찬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눈앞에 닥친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무조건 고유 권능을 사용해야 했다.

    현성이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하며 그 대상으로 흑뢰신마공을 선택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하락합니다.

    -흑뢰신마공 – 유일 초월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이런 망할.’

    현성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고유 권능인 가챠를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포인트가 소모된다.

    그런데 그렇게 발동시킨 고유 권능 가챠가 흑뢰신마공을 성장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약화시켜 버리고 말았다.

    “최대한 빨리 놈을 죽여라!”

    굴레를 벗은 흑뢰신의 권속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현성이 굴레를 벗은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콰콰콰콰! 콰지지직!

    사방에서 공격 스킬이 쏟아졌다.

    굴레를 벗은 자가 되어 기본 스텟이 상승하기는 했다.

    하지만 흑뢰신마공이 무 등급 스킬에서 유일 초월 등급 스킬이 되는 바람에 현성의 방어력은 오히려 더 떨어진 상태였다.

    ‘이런 미친.’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현성이 미친 듯이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하락합니다.

    -흑뢰신마공 – 유일 전설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하락합니다.

    -흑뢰신마공 – 유일 희귀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뭐, 이따위로 확률이 낮은 거야.’

    포인트를 쓰면 쓸수록 스킬이 약해지는 탓에 현성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믿을 구석은 고유 권능 가챠밖에 없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흑뢰신마공이 생성되었습니다.

    계속되던 실패 끝에 겨우 고유 권능 가챠 스킬이 강화에 성공했다.

    하나 달라진 건 없었다.

    ‘고유 권능을 쓰기 전이랑 비슷한 수준이잖아.’

    강화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세 번이나 실패했기 때문인지 위력 자체가 거기서 거기였다.

    ‘이런 XX.’

    현성이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천문학적인 포인트를 썼는데 말짱 도루묵이 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현성의 입장에서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고유 권능 가챠뿐이었다.

    현성이 다시금 고유 권능 가챠를 사용했다.

    -고유 권능 가챠가 발동됩니다.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보유 스킬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흑뢰신마공이 생성되었습니다.

    다행히 연속으로 강화에 성공했다.

    ‘성공했다.’

    현성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파지지직!

    현성이 강화에 성공한 흑뢰신마공을 사용했다.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현성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흑뢰신의 권속들이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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