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권. 흑뢰신과 천뢰신 (201/225)

┃흑뢰신과 천뢰신

‘힘들겠어.’

파지지직!

현성이 적이 날린 공격을 화신 스킬을 사용해 회피했다.

그리고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날렸다.

퍼엉!

적은 정면으로 현성이 날린 공격을 받아 냈다.

그 후 다시 맹렬히 공격을 가해 왔다.

현성이 화신 스킬을 사용하고 있기에 큰 피해는 없었다.

하나 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흑뢰신이 무한에 가까운 힘을 전달해 주고 있었고, 상대의 육체가 그것을 버틸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강해졌다.

하나 현성은 체력과 마력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었다.

맨몸으로 적의 공격을 감당하기 힘들어 화신 스킬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 혼자서는 무리야.’

화신 스킬이 있기에 지금까지 버틴 것이다.

만약 화신 스킬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부르자.’

현성이 시스템 상점을 열었다.

게스피트를 고용해 이번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였다.

파직!

‘어?’

현성은 적잖이 당황했다.

마치 노이즈라도 낀 것처럼 시스템 상점이 흐릿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시스템 상점의 창이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이게 뭐야?’

시스템 상점이 열리지 않다니?

지금까지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현성은 계속해서 시스템 상점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시스템 상점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각성을 한 이후 시스템 상점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간 이동 스킬이나 차원 게이트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스템 상점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은 절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현성이 아공간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게스피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역시 먹통이었다.

‘이게 무슨?’

이제 남은 방법은 단 하나.

대군주의 외침뿐이었다.

-내 동맹과 게스피트 님에게 도움을 청해라.

현성이 대군주의 외침을 통해 신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동맹들은 당연히 반응을 해 줄 것이다.

게스피트의 경우 동맹들이 포인트를 모아 대신 용병 고용을 해 줄 수 있다.

그렇게 사용한 포인트는 현성이 갚아 주기로 약속했으니까 말이다.

현성은 차분하게 지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데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지원을 오는 이들이 없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체력과 마력이 보충되지 않는다.’

각 차원에 흩어져 있는 신하들이 전해 주던 체력과 마력의 수급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 차원에 속한 이들만 체력과 마력을 보내고 있어.’

다른 차원에 있는 신하들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

“하하하하! 다른 이들의 도움이라도 기다리고 있는 거냐! 그거라면 포기해라! 타 차원과의 연결은 완전히 끊겨 버렸으니까 말이다.”

상대가 현성에게 외쳤다.

‘이런 망할.’

현성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상대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용병 시스템과 교류의 보석을 바른 스마트폰 그리고 대군주의 외침까지 모든 게 먹통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체력과 마력은 점점 고갈되어 갔다.

체력과 마력이 모두 소비되면?

지금처럼 버티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나?

그때였다.

무 등급 스킬을 가진 이후 단 한 번도 들려오지 않았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에게 복종해라. 그러면 살려 주마.

‘흑뢰신.’

현성이 이를 악물었다.

‘계획적으로 나를 노린 거였어.’

우연히 흑뢰신의 권속이 현성의 지배하에 있는 차원을 공격한 게 아니었다.

현성을 노린 계획적인 침공이었다.

‘어쩐지.’

시스템 상점과 대군주의 외침이 막힌 게 이상하다 했다.

한데 그것 역시 흑뢰신이 현성이 올 것을 알고 준비해 놓은 함정이었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네게 더 강한 힘을 선물해 주마.

‘이 자식이.’

자신의 권속을 이용해 현성을 압박하며 회유한다.

이건 칼을 든 강도가 복종을 종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네놈에게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현성은 전투 대신 도주를 선택했다.

하나 상대는 끈덕지게 따라붙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함정에 빠져 버렸다.

한데 그 함정을 빠져나갈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내가 도와줄까?

또 다른 신이 현성에게 말을 걸었다.

흑뢰신은 아니었다.

이번에 말을 건 신은 흑뢰신마공이 아니라 다른 스킬로 인해 현성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였다.

‘천뢰신의 갑옷.’

현성이 보유한 무급 스킬 중 하나인 천뢰신의 갑옷과 연결된 신이 말을 걸어왔다.

‘당신의 권속이 되라는 건가? 그렇다면 거절이다.’

천뢰신은 현성을 위협하는 당사자는 아니다.

하나 현성이 보기에는 흑뢰신이나 천뢰신이나 그놈이 그놈이었다.

-내 권속이 된다면 정말 좋기는 하겠지만, 네놈이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겠지. 그러니 다른 제안을 하겠다.

‘다른 제안?’

-정당한 거래다. 네놈이 가진 포인트 전부를 내놓아라. 그럼 힘을 빌려주마.

천뢰신의 말에 현성이 얼굴을 찡그렸다.

포인트는 현성의 수명이다.

그걸 전부 건네주면?

현성은 죽는다.

‘나보고 자살을 하라는 말인가?’

-아, 그럼 네가 가진 포인트의 99%만 받도록 하지.

천뢰신의 말에 현성이 고심에 들어갔다.

현성은 그간 지속적으로 포인트를 축적해 왔다.

그렇게 모인 현성의 포인트는 게스피트를 세 번 이상 고용하고도 남을 정도로 방대한 양이었다.

한데 그 포인트의 99%를 달라니?

이건 거의 날강도나 다름없었다.

‘절반을 주지.’

현성이 딜을 걸었다.

-1%의 포인트도 내가 아량을 베푸는 거다. 이 자리에서 죽고 싶은 거냐?

‘절반 그게 내 한계치다. 거절한다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겠다.’

현성이 승부를 걸었다.

천뢰신은 포인트를 요구했다.

그 말은 신들에게도 포인트가 무척이나 귀한 재화라는 뜻이었다.

현성이 여기서 이대로 죽어 버리면?

천뢰신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현성의 제안을 수락하면?

현성이 가진 절반의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게스피트는 신과 같은 격을 가진 존재다.

그런 존재의 힘을 빌리는 데 현재 가진 포인트의 1/3이면 충분하다.

한데 천뢰신은 99%를 요구했다.

절반.

그게 현성이 생각한 마지노선이었다.

천뢰신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현성은 전투를 지속하며 도주했다.

체력과 마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그러는 와중에도 흑뢰신은 계속해서 현성은 유혹했다.

현성은 흑뢰신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

화르르륵!

화신 스킬을 유지할 체력과 마력이 바닥난 현성을 향해 적이 맹공을 퍼부었다.

현성은 상처투성이었다.

체력과 마력 부족으로 불사의 서가 발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기회다. 나의 권속이 되어라.

흑뢰신이 최후통첩을 하듯 말했다.

하지만 현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놈. 그럼 죽어라.

흑뢰신의 그 말과 함께…….

서걱!

적이 검을 휘둘러 현성의 오른팔을 베어 냈다.

휘익!

그리고 적의 검이 현성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한 번은 더 기회가 있어.’

현성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불사의 서가 가진 부활의 권능.

무 등급 스킬로 업그레이드를 시켜 놨기에 한 번 정도는 부활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불사의 서가 가진 부활의 권능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눈앞에 적을 쓰러트릴 자신은 없었다.

그렇기에 현성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천뢰신.’

바로 천뢰신이 자신과의 거래에 응하는 것이었다.

적의 검이 현성의 심장에 틀어박히기 직전.

-정확히 절반이다.

천뢰신이 현성이 제안한 조건을 수락했다.

‘알겠다.’

현성이 대답을 한 순간.

콰콰콰콰콰콰!

막대한 권능의 폭포가 현성의 몸을 뒤덮었다.

화악!

천뢰신의 권능 중 하나인 회복의 권능이 현성의 체력과 마력을 빠르게 회복시켜 주었다.

티잉!

현성의 심장을 향해 날아오던 적의 검은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이, 이게 무슨?”

승리를 장담하던 적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신의 권능인가?’

현성은 자신의 몸을 뒤덮는 강력한 권능의 폭포에 전율했다.

과거 흑뢰신의 힘을 강제로 빼앗아 사용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건 맛보기에 불과했어.’

온전한 신의 권능은 금방이라도 중독될 것같이 강렬했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몽롱해졌다.

-나에게 복종해라. 그러면 이 힘과 권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천뢰신의 의지가 현성의 뇌리를 뒤흔들었다.

“큭! 거절한다!”

현성이 커다란 목소리로 천뢰신의 의지를 떨쳐 냈다.

그리고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현성이 천뢰신의 권능을 빌린 상태라지만 상대는 흑뢰신의 권능을 하사받은 권속이었다.

‘최대한 빨리 승부를 봐야 해.’

천뢰신의 권능으로 인해 체력과 마력이 회복되었다.

하나 천뢰신의 권능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현성의 육체에 강한 부담을 주었다.

천뢰신의 권능이라는 강력한 힘을 현성이라는 이름의 그릇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바로 권능과 함께 전해지는 천뢰신의 의지였다.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천뢰신의 의지는 끈덕지게 현성을 유혹해 왔다.

신의 권능으로 인한 육체적인 과부하와 정신적인 유혹.

제아무리 현성이라고 해도 오래 버티기는 힘들었다.

현성이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맹공을 가했다.

치열한 난타전이 벌어졌고 현성과 상대의 몸에 하나둘 상처가 늘어났다.

하나 그와 동시에 서서히 승기가 기울기 시작했다.

현성은 불사의 서를 통해 부상을 회복했다.

하나 불사의 서가 없는 적은 존재의 근원을 제거하는 힘을 지닌 현성의 공격으로 인한 상처를 회복할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피투성이가 된 적이 칠흑빛 뇌전을 미친 듯이 뿜어내며 현성을 공격했다.

퍼엉! 퍼엉!

하나 단 하나도 제대로 된 유효타가 없었다.

천뢰신의 권능을 받으며 현성이 가지고 있는 스킬 천뢰신의 갑옷이 극도로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파지지직!

강화된 권능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현성의 주력 공격 스킬인 흑뢰신마공 역시 그 위력이 족히 세 배는 강해졌다.

‘이겼다.’

현성이 일방적으로 적을 밀어붙였다.

그때였다.

콰콰콰콰콰!

상대의 전신에서 폭발적인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설마?’

타악!

현성이 그대로 뒤로 물러나며 상대와의 거리를 벌렸다.

퍼어어어어엉!

그 순간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칠흑빛 뇌전의 폭풍이 현성을 덮쳤다.

“크윽!”

용갑을 뚫고 들어온 칠흑빛 뇌전이 현성의 뼈와 살을 불태웠다.

하지만 현성은 악착같이 버텨 냈다.

그리고 결국 살아남았다.

“하아! 하아!”

현성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사아아악!

손상된 부상들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천뢰신의 도움을 받다니 운이 좋구나. 하지만 그런 행운이 또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거라.

그 말을 끝으로 흑뢰신과 현성의 연결이 끊어졌다.

-앞으로도 적당한 대가를 내놓는다면 힘을 빌려주겠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날 부르거라.

천뢰신 역시 그 말을 끝으로 현성과의 연결을 끊어 버렸다.

“빌어먹을.”

현성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흑뢰신과 천뢰신.

그 둘에게 완전히 놀아나고 말았다.

흑뢰신의 공격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천뢰신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기는 했지만, 막대한 포인트를 날려 버렸다.

두 신의 농간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한 것이다.

‘두고 봐라.’

흑뢰신은 명백한 자신의 적이었다.

그런 만큼 훗날 이 빚을 톡톡히 갚아 줄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현성은 천뢰신 역시 신뢰하지 않았다.

천뢰신은 그저 정당한 대가를 받고 현성에게 힘을 빌려줬을 뿐이었다.

결정적으로…….

‘내 몸을 노리고 있었어.’

권능을 전달한 순간부터 계속된 육체적인 과부하와 정신적인 유혹.

현성이 둘 중 하나라도 버텨 내지 못했다면?

천뢰신에게 굴복해 그의 권속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 * *

현성은 자신이 흑뢰신의 권속에게 습격당했다는 사실을 게스피트에게 알렸다.

게스피트는 곧바로 현성을 용병 고용 한 후 자초지종을 물었다.

현성은 게스피트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함정을 팠다고?”

“예, 시스템 상점을 시작으로 대군주의 외침까지 모든 게 막혀 있었습니다.”

게스피트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왜 그러십니까?”

“네게 그 이유를 알려 줄 수는 없지만 뭔가 이상하구나.”

게스피트는 현성의 말을 듣는 즉시 흑뢰신이 무슨 권능을 사용했는지 알아차렸다.

‘이상해. 그 정도 권능을 사용하려면 포인트 소모가 어마어마할 텐데.’

포인트는 1레벨 플레이어에게나 신들에나 소중한 생명 줄이었다.

한데 현성 하나를 잡기 위해 그렇게 어마어마한 포인트를 소모하는 권능을 사용했다?

거기다 현성을 권속으로 만드는 데도 실패했다.

흑뢰신의 입장에서는 손해만 본 것이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텐데.’

현성은 천뢰신과의 거래를 통해 살아남았다.

하나 설사 천뢰신과의 거래가 없었다고 해도 현성이 흑뢰신에게 굴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문제는 흑뢰신이 왜 현성은 노렸느냐 하는 점이었다.

현성이 흑뢰신에게 굴복했다면?

이득은 이득이다.

하나 그 이득이 그리 오래갈 수는 없었다.

현성은 게스피트를 비롯한 아군 차원 굴레를 벗은 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성이 아무리 잘 숨겨도 흑뢰신의 권속이 된 사실이 금방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흑뢰신은 이번 일을 계획하는 데 막대한 투자를 했다.

한데 그 투자에 성공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너무 보잘것없었다.

‘결국은 실패했고 말이야.’

흑뢰신은 막대한 포인트를 날렸고 잘 키운 권속까지 잃었다.

왜 흑뢰신이 그런 손해를 감수했을까?

“게스피트 님?”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게스피트의 이름을 불렀다.

“아무것도 아니다.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천뢰신이 나서지 않았다면 현성은 죽었을 것이다.

“또 앞으로 웬만하면 천뢰신의 도움을 받는 일은 피하거라.”

강력한 신의 권능은 그 어떤 마약보다도 달콤하다.

계속해서 신의 권능에 노출된다면, 그 힘에 중독될 가능성이 높았다.

설사 신의 권능이 주는 유혹을 이겨 낸다고 해도 그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현성의 육체와 정신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걸 받거라.”

게스피트가 현성에게 반지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내가 만든 아이템이다. 내 권능이 깃들어 있지.”

“게스피트 님의 권능이요?”

현성이 화들짝 놀랐다.

“이걸 저한테 주셔도 괜찮은 겁니까?”

“괜찮다. 이건 착용자에게 아무런 쓸모도 없는 아이템이니까 말이다.”

“그럼 왜?”

“또다시 신의 권속을 만나거든 반지에 마력을 불어 넣거라. 그럼 이 반지가 나에게 너의 위치를 알려 줄 거다.”

“일종의 비상 호출기 같은 거군요?”

“그래, 내 권능이 담겨 있으니, 신의 권능을 상쇄할 정도는 될 거다.”

“그런데 저의 위치를 알아내신다고 해도 협약 때문에 절 도울 수가 없으시지 않습니까?”

“신의 권속에 대해서는 예외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부르거라.”

“알겠습니다.”

현성이 재빨리 반지를 챙겼다.

게스피트가 도와주겠다는데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주의해서 사용하거라. 신의 권속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나를 호출해 봤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

“알겠습니다, 게스피트 님.”

“그럼 이만 가 보거라.”

“예, 감사합니다.”

현성은 게스피트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지구로 귀환했다.

‘포인트는 단순히 시스템 상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재화가 아니야.’

게스피트는 현성에게 직접적으로는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알려 주지 않았다고 해도 게스피트는 간접적으로 현성에게 많은 정보를 주었다.

천뢰신과의 거래를 통해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는 순간, 게스피트는 잘했다고 말하면서도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건네준 포인트가 천뢰신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게 확실해.’

신들에게도 포인트는 중요하다.

예상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신들은 협약이나 규율과 무관한 존재다.’

그 말은 신들이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의 전쟁에 직접적으로 끼어든 적이 없다는 증거였다.

신들이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의 전쟁에 끼어들었다면?

분명 그들을 제재하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현성이 게스피트가 준 반지를 쓰다듬었다.

‘위험하기는 했지만 큰 보상을 얻었어.’

게스피트를 호출할 수 있는 반지.

신의 권속을 상대할 때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현성에게는 상당히 큰 힘이 되었다.

신의 권속을 제외하면 현성을 위협할 만한 강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현성은 수많은 차원을 점령하며 업적을 모았다.

그 후 그 차원들을 순회공연하며 몬스터들을 잡아 업적을 얻었다.

탐식의 서로도 스텟을 얻었다.

그렇게 얻은 업적과 스텟으로 인해 현성은 엄청나게 강해졌다.

과거 고전했던 상대인 반인반룡들의 지배자 불마루스나 사억라니 역시 지금 현성의 상대는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오늘 게스피트를 만나며 확실히 느꼈다.

자신은 더 강해졌다.

게스피트와의 거리가 더 가까워졌다.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나아가면 현성도 굴레를 벗은 자가 될 수 있다.

‘포인트를 모으자.’

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인트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다.

게스피트 같은 굴레를 벗은 자나 천뢰신 같은 신도 포인트를 원했다.

그 말은 포인트가 굴레를 벗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는 뜻이었다.

* * *

‘실패한 건가?’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가 얼굴을 찌푸렸다.

최현성 플레이어.

그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 열심히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을 판매하며 포인트를 긁어모으고 있었다.

‘흑뢰신의 권속이 된 것 같지도 않구나.’

최현성 플레이어는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의 균형을 깨는 존재다.

그래서 제거하거나 흑뢰신의 권속으로 만들어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의 전쟁에 관여할 수 없는 제3의 세력으로 만들려고 했다.

한데 실패했다.

‘빌어먹을.’

계약은 절대적이다.

그런 만큼 흑뢰신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분명 가장 강한 권속을 동원해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거하려 했을 것이다.

한데 그게 실패해 버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계속해서 시간이 지나면 최현성 플레이어는 점점 더 성장할 거다.

그리고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그때 가서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아군의 필패다.’

어차피 전면전이 벌어질 거라면?

‘차라리 지금 낫다.’

지금 전면전을 벌이는 게 아군의 승산을 조금이라도 더 높일 수 있었다.

문제는 전면전을 벌일 방법이었다.

회합 때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전면전을 벌일 생각도 의욕도 없는 아군들의 모습을 말이다.

‘내가 아무리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고 설쳐 봤자 의미가 없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자신이 직접 나서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거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하나?’

직접 나선다면 아직 굴레를 벗지 못한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거하는 건 간단하다.

하나 그런 일을 벌이면 최악의 경우에는 사형.

운이 좋아 봤자 몇천 년은 봉인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나 하나의 희생으로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거한다면 나쁜 장사는 아니야.’

하나 문제는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 역시 아군 차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고향 차원이었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후손들이었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습격해 제거한 후 사형을 당하거나 봉인당한다면?

자신의 고향 차원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후손들은 평화를 박탈당한 채 다시금 끝없는 전쟁의 구렁텅이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녀를 움직일 수만 있다면…….’

삶에 아무런 미련이 없는 자.

보살펴야 할 고향 차원이 없는 자.

그녀라면 자신을 대신해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거해 줄지도 몰랐다.

문제는 그녀를 움직일 방법이었다.

‘정보를 모아 보자.’

굴레를 벗은 자라고 해도 사람이다.

그런 만큼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이 있다.

그녀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구미가 당기는 정보를 찾아낸다면?

그걸 이용해 그녀를 움직여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 * *

주백설.

그녀는 굴레를 벗은 자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과거에 벌어졌던 차원 전쟁의 여파로 인해 고향 차원이 소멸해 버린 이 중 하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주백설은 자유롭게 여러 차원을 여행하며 지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지루하네.’

주백설은 수많은 차원을 여행했다.

하나 항상 무료함을 느꼈다.

새로운 것을 보고 느껴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짜증만 몰려왔다.

‘나는 방관자에 불과해.’

주백설은 직접 나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불합리한 점을 봐도 바로잡을 수 없다.

악인을 봐도 처벌할 수 없다.

‘내 차원만 무사했다면…….’

새로운 자극이 없더라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를 그대로 투영시킬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신의 권속이라도 나타났으면 좋겠네.’

무료한 주백설의 삶에 유일한 낙은 신의 권속을 족치는 것이었다.

신의 권속에 한해서는 규율과 협약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힘을 행사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동안 잘 지냈나?”

그때 누군가가 주백설에게 말을 건넸다.

주백설이 고개를 돌렸다.

자신처럼 이 차원의 평범한 거주민으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그건 그의 본질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굴레를 벗은 자였다.

“왜 날 찾아왔지?”

주백설이 경계하듯 물었다.

자신과 그의 관계는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다.

한데 왜 갑자기 자신을 찾아왔다는 말인가?

“부탁할 일이 하나 있어서 말이야.”

“부탁?”

상대의 입에서 부탁이라는 말이 나오자 주백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주백설의 기억에 그는 상당히 오만한 자였다.

그런 그가 부탁이라는 말을 입에 담다니?

“최현성 플레이어라는 자에 대해 알고 있나?”

“기이한 기물을 판매하는 이를 말하는 모양이군.”

“맞아. 그자가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의 균형을 파괴하고 있다.”

그의 말에 주백설이 코웃음을 쳤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의 차이가 점점 더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어.”

“그래서?”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거하고 그의 차원을 멸망시켜 줬으면 한다.”

“내가 왜? 최현성 플레이어라는 자를 죽이고 싶으면 직접 하지 그래?”

주백설이 그 말과 함께 몸을 돌렸다.

“제나.”

그의 한마디에 주백설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녀가 최현성 플레이어를 꽤 아끼는 모양이더군. 아니, 아끼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끼고도는 모양이야. 너처럼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던 그녀가 최현성 플레이어의 차원에 쭉 상주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야.”

“제나 그년이 최현성 플레이어의 차원에 있다고?”

주백설의 물음에 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알아낸 정보였다.

이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꽤 오랜 시간과 수많은 포인트를 소모했다.

하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 대가로 살의로 이글거리는 주백설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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