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위협
현성이 지구로 복귀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가장 먼저 시스템 상점에 판매 중인 물품 중 빈 물품을 채워 넣었다.
그 후에는 그간의 상황을 보고받고 사억라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차원들을 단속했다.
대다수는 순순히 현성의 지배를 받아들였다.
하나 현성의 지배를 거부하고 반기를 든 이들 역시 존재했다.
소수라고는 하지만 그런 이들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순순히 현성의 지배를 받아들인 사억라니 휘하의 신하들이 이에 휩쓸려 대규모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쉴 시간이 없네.’
현성은 자신에게 반기를 든 자들을 제압한 후 마르코스에게 전화를 걸어 사억라니를 제거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마르코스는 크게 기뻐했다.
현성이 사억라니에 대한 복수를 약속하기는 했다.
하지만 영혼의 계약서에 기재된 내용도 아니기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한데 현성이 속전속결로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쪽에서 먼저 공격을 해 와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최현성 님께서 정말 큰 수고를 해 주셨군요.
마르코스에게 한참 동안 감사 인사를 받은 뒤 현성이 전화를 끊었다.
“휴우!”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피곤이 몰려왔다.
체력과 마력은 쌩쌩했다.
하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그대로였다.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화이트 드래곤과 잠도 자지 못하고 사투를 벌였다.
그 후에도 열흘 넘게 그간 밀린 일들을 처리를 하고 반기를 든 이들을 제압했다.
‘딱 3일만 쉬자.’
현성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다.
3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첫째 날은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둘째 날은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셋째 날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었는데, 누나 최현지와 루시아가 쳐들어와서 그 둘에게 하루 종일 끌려다녀야 했다.
‘한 것도 없는데 벌써 3일이 지났네.’
마음 같아서는 3일이 아니라 석 달은 쉬고 싶었다.
아니, 그것도 부족했다.
그간 현성이 쉼 없이 달려온 걸 생각하면 3년은 푹 쉬어도 무방했다.
하나 현성은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이 쉬는 동안 경쟁자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현성은 그간 자신과 차원 전쟁을 벌인 1레벨 플레이어들이 패배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바로 나태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위험을 회피했다.
그 결과 더 큰 위험이 찾아와 위기에 처했다.
현성은 그들과 똑같은 전철을 밟을 생각이 없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자.’
굴레를 벗은 자가 된다면?
현성에게도 진정한 자유가 찾아올 것이다.
현성은 3일 동안의 휴식을 끝내자마자 활발하게 차원 전쟁을 벌였다.
안 그래도 강했던 현성이 무 등급 무기와 방어구를 얻었다.
무 등급 업적도 얻어 스텟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런 현성을 막을 수 있는 적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현성은 연승 행진을 벌였다.
업적이 빠르게 늘어나며 스텟이 증가했다.
스킬도 늘어났다.
또한 실전을 통해 무 등급 무기인 용혈검과 무 등급 방어구인 용갑의 권능을 하나둘 각성해 나갔다.
현성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나갔다.
그리고 그 점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 * *
모든 것이 순백으로 가득한 공간.
그곳에 수백 명의 플레이어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각성한 지 백 년도 채 되지 않은 애송이가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의 균형을 무너트리고 있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최현성이라는 녀석을 말하는 거겠지?”
적색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물었다.
“맞아.”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적색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의 말에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가 얼굴을 찌푸렸다.
“마음 같아서는 그 녀석을 당장에 찢어 죽이고 싶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의 말에 다른 이들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애송이 하나 때문에 협약을 깨고 전면전을 벌이자는 말인가?”
“자네는 걱정이 너무 과해.”
“우리는 방관자일 뿐이야. 굴레를 벗지 못한 자들의 일에는 관여할 수 없어.”
자리에 모여 있던 이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럼 그놈을 계속 내버려 두자는 말인가?”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가 다른 이들에게 물었다.
“그자는 얼마 가지 않아 굴레를 벗어난 자가 되겠지. 그럼 차원 전쟁을 통한 정복도 금방 끝날 거야.”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닌데,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닌가?”
다른 이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최현성이라는 자는 여태까지 굴레를 벗었던 자들과는 달라. 그자가 굴레를 벗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가? 오히려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질 거야. 제거할 수 있을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거를 해야 해.”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가 열변을 토했다.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 최현성이라는 자는 그걸 이용해서 아군 차원 포인트를 지속적으로 갈취해 나가고 있네. 지금은 가볍게 보이지만, 그게 쌓이고 쌓이면 결국 힘의 균형을 무너트릴 정도로 커질 거야. 거기다 아군 차원에 속했던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 판매자 역시 최현성 그자와 손을 잡았더군. 이건 심각한 문제야.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네.”
“자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네. 그런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다는 말인가? 협약을 깨고 전면전이라도 벌이자는 말인가? 힘겹게 쟁취한 평화를 포기하라고?”
새와 인간을 반쯤 합쳐 놓은 것 같은 사내의 물음에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가 할 말을 잃었다.
“백번 양보해서 자네의 말이 옳다고 해도 그게 문제가 된다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될 일. 아군 차원의 플레이어들 역시 적군 차원의 플레이어들 못지않게 부지런하게 힘을 키우고 있네. 그들을 믿게.”
‘비겁한 놈들.’
저들 역시 문제는 인지하고 있다.
하나 협약이 깨지는 것이 두려워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협약이 깨지면 전면전이 벌어지고 지금의 평화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 테니까 말이다.
“자네가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원한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네. 그런데 그럴 거면 핑계를 조금 더 그럴듯하게 댔어야지. 아직 굴레조차 벗지 못한 애송이를 들먹이면 우리가 자네에게 협조할 줄 알았나?”
“난 그 애송이가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의 균형을 깨는 존재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나도 마찬가지네.”
“고작 그 정도 일로 회합을 요청하다니, 어지간히 배짱이 없군.”
“난 그만 돌아가겠네.”
‘망할.’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는 자신의 추측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일부는 문제를 인지하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다.
하나 대다수는 이게 문제가 될 거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태한 놈들.’
아마 저놈들의 대다수는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하나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의 생각은 달랐다.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은 항상 균형을 맞춰 왔다.
적군 차원에 뛰어난 자가 등장하면?
아군 차원에도 뛰어난 자가 등장했다.
그 균형이 계속해서 맞춰졌기에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은 지금의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다.
하나 이번 일은 그렇게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아군 차원의 포인트가 적군 차원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군 차원에 등장한 최현성의 대항자가 그와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밑으로 들어갔다.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나 이번 일에 심각성을 느끼는 이들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한자리에 모였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모습을 감췄다.
하나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소수지만 남은 이들이 있었다.
“나는 네 의견에 동의해.”
적색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 말했다.
“하지만 동의하는 것과 전면전을 일으키는 건 다른 문제야. 대부분 전면전을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 정도 명분으로 저놈들을 설득하는 건 무리라고.”
적색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을 비롯해 남은 이들은 전면전을 지지하는 주전파들이었다.
하나 이들도 강성과 중강성 그리고 약성으로 나뉘었다.
적색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은 약성 주전파였다.
“멍청한 놈들. 어차피 전쟁을 해야 한다면 빨리 승부를 내는 게 유리하거늘.”
강성 주전파 중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게 말이야. 최현성도 문제지만 그놈 주변에 뭉쳐 있는 놈들도 문제라고. 동맹 어쩌고 하면서 세력을 넓히더니, 이제는 자기들끼리 힘을 합쳐서 아군 플레이어들을 공격하고 있어.”
현성은 혼자 활동한다.
그래야만 업적과 성과를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성은 방어를 위해서만 동맹의 힘을 빌렸다.
하나 현성을 중심으로 뭉친 동맹들 중에는 방어가 아니라 공격에도 힘을 합치는 경우가 있었다.
업적과 성과를 나누더라도 안전을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늘어나자, 현성을 중심으로 뭉친 동맹들이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전체적인 대세에 영향을 주기에는 미미하기 그지없는 정도였다.
또 침공당하는 차원의 플레이어들도 서서히 현성이 만든 동맹을 흉내 내며 힘을 모으고 있었다.
하나 현성을 중심으로 굳건하게 뭉친 동맹과 당장 급하게 결성한 동맹은 규모나 협동력 면에서 많은 차이가 났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군 새싹들이 채 피어나기도 전에 다 꺾여 버릴 거야.”
“새싹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고!”
“최현성 그놈만이라도 당장 제거를 해야 해.”
주전파들이 한마디씩 떠들어 댔다.
하나 이들도 목소리만 높일 뿐이었다.
이들 역시 규율에 묶여 있다.
괜한 소란을 피웠다가는?
적군 1레벨 플레이어가 아니라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의 손에 의해 봉인될 수도 있었다.
주전파들은 자신의 자유를 포기해 가면서까지 전면전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모두 조용히 해.”
그때 적색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순간 시끄럽게 떠들던 주전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뭔가 수가 있는 거지?”
적색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에게 물었다.
“네가 저 겁쟁이들이 반대할 거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방법은 있다. 하지만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
“그게 뭐지?”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의 말에 적색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다급하게 물었다.
“흑뢰신을 이용할 생각이다.”
“그놈을?”
적색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얼굴을 찌푸렸다.
신이라는 존재는 아군과 적군을 떠나 굴레를 벗은 자들과 그리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들은 호시탐탐 굴레를 벗지 못한 자들을 지배하려고 했다.
그리고 또 어떨 때는 굴레를 벗은 자들에게까지 손을 뻗친다.
“흑뢰신과 최현성이라는 자가 아예 무관한 사이는 아니더군.”
“괜히 찝쩍거렸다가 실패한 모양이네.”
“맞아. 그리고 아직 최현성이라는 자에게 미련이 남아 있지.”
“최현성이라는 자를 흑뢰신에게 던져 주려는 모양이네.”
적색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의 말에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파강! 파강!
현성이 용혈검을 휘두르며 일방적으로 상대를 밀어붙였다.
상대는 현성의 맹공을 방어하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서걱!
그때 현성의 용혈검이 무기를 들고 있던 상대의 오른팔을 베어 냈다.
휘익!
그 이후 용혈검이 정확히 상대의 목 앞에서 멈추었다.
“항복하겠습니다.”
상대가 항복을 선언했다.
“앞으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주군.”
상대가 무릎을 꿇으며 현성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무난하네.’
적군 차원 하나를 점령한 현성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사억라니를 처리한 이후 현성은 계속해서 승승장구했다.
그 결과 현성은 빠른 속도로 강해져 갔다.
등급이 하락했던 불사의 서를 다시 무급 스킬로 만들기 위해 일시적으로 바닥을 드러냈던 포인트 역시 계속해서 늘어났다.
용족화 스킬과 차원 게이트 스킬을 사용해 소모하는 포인트보다 쌓이는 포인트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경쟁자인 마르코스와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인트는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성장형 스킬들을 무급 스킬로 업그레이드시킨 후부터 현성은 마땅히 포인트를 사용할 곳을 찾지 못했다.
다른 성장형 스킬을 손에 넣는다면?
포인트를 사용할 곳이 생긴다.
하나 성장형 스킬은 그렇게 흔한 게 아니었다.
시스템 상점에는 아예 매물 자체가 없었고 막대한 포상금을 걸어 놓고 지배 중인 차원에서 수배를 해도 쉽게 얻을 수가 없었다.
‘분명 다른 사용처가 있을 것 같은데.’
게스피트는 굴레를 벗은 자였다.
그런데도 포인트를 필요로 했고 현성과 손을 잡았다.
‘포인트로 구매가 가능한 건 창조 등급 스킬북이나 그 아래 등급의 스킬북이야.’
하나 게스피트가 창조 등급 스킬북이나 그 아래 등급의 스킬북을 구입하기 위해 포인트를 모았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굴레를 벗은 자인 게스피트는 분명히 여러 종류의 무급 스킬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무 등급 스킬과 창조 등급 스킬은 그 격이 다르다.
아무리 많은 창조 등급 스킬을 보유하고 있어도 굴레를 벗은 자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포인트가 필요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야.’
하지만 현성으로서는 그 이유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부지런히 모으자.’
현성은 포인트를 허투루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다른 1레벨 플레이어들의 경우 일정 경지에 이른 이후 나태해졌다.
마땅히 포인트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취미 생활에 포인트를 쓰기도 했다.
하나 현성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오르지 않는 시스템 상점 등급을 올릴 수 있는 열쇠가 바로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뭐, 급할 때 용병 고용을 이용할 수도 있으니까.’
과거 게스피트를 고용해 지구를 구했던 것처럼 말이다.
* * *
드사니자는 1레벨 플레이어였다.
하나 운이 그리 좋지 못했다.
적군 차원의 공격을 받아 아군 차원이 멸망해 버렸으니까 말이다.
드사니자는 복수를 원했다.
그리고 운 좋게 하나의 스킬을 얻어 초월적인 존재와 연결될 수 있었다.
드사니자는 초월적인 존재에게 굴복했고 복수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드사니자는 초월적인 존재에게 받은 힘을 이용해 자신의 차원을 점령했던 적군 1레벨 플레이어를 쓰러트렸다.
고향을 되찾은 것이다.
하나 드사니자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차원 전쟁을 벌이며 자신의 힘을 키워 나갔다.
하나 그런 그에게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 있었다.
바로 굴레를 벗은 자들이었다.
굴레를 벗은 자들은 규율과 협약에 의해 굴레를 벗지 못한 자들의 일에 관여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다.
그건 바로 드사니자처럼 초월적인 존재의 권속이 된 경우였다.
드사니자는 초월적인 존재의 권속이 되며 규율과 협약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었다.
그렇기에 가장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 바로 굴레를 벗은 자들이었다.
굴레를 벗은 자들에게 초월적인 존재의 권속이 되었다는 사실을 들킨다면?
드사니자는 그대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드사니자는 철저하게 자신이 초월적인 존재의 권속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그저 수많은 1레벨 플레이어 중 하나처럼 행동했다.
그 결과 드사니자는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대로 계속해서 시간이 흐른다면?
초월적인 존재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춘다면?
그때는 굴레를 벗은 자를 만나더라도 무서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고 싶은 불행이 찾아왔다.
굴레를 벗은 자가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드사니자는 전투태세를 갖췄다.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다.”
굴레를 벗은 자가 그렇게 말했다.
“난 그저 너라는 매개체를 통해 네 주인을 만나고 싶을 뿐이니까.”
“뭐?”
드사니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때였다.
멍한 기분이 들며 드사니자의 의식이 그대로 증발했다.
그리고 초월적인 존재가 드사니자의 육체를 점령했다.
-용건이 뭐냐?
드사니자의 육체를 점령한 초월적인 존재가 물었다.
“네게 부탁할 일이 있다.”
-부탁?
“그래. 최현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플레이어를 제거해 줬으면 한다. 그게 아니라면 네 권속으로 만들어도 좋고.”
-하하하하하!
굴레를 벗은 자의 말에 초월적이 존재가 광소를 터트렸다.
-네놈들이 나에게 부탁을 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구나. 그것도 이렇게 치졸한 일을 말이다.
“너 역시 최현성이라는 자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기는 하지.
“수락인가? 거절인가?”
굴레를 벗은 자가 물었다.
-그건 네놈이 하기에 달린 일이지.
“일단 네 권속을 살려 주겠다.”
-그게 끝인가?
권속 따위?
아깝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만들 수 있었다.
“포인트를 주지.”
-얼마나?
“네가 이런 권속을 50명 이상 만들 수 있을 만큼.”
-흠, 구미가 당기는군.
“선불로 절반의 포인트를 주지. 그리고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면 후불로 나머지 절반의 포인트를 주겠다. 아마 네가 손해 볼 일 따위는 없을 거다.”
굴레를 벗은 자가 초조한 표정으로 초월적인 존재의 대답을 기다렸다.
-권속 백 명을 만들 수 있는 포인트를 모두 선불로 준다면 수락하마.
“그렇게 하지.”
초월적인 존재의 제안에 굴레를 벗은 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초월적인 존재가 강림한 드사니자와 손을 맞잡았다.
-좋다, 계약은 성립되었다.
그 말을 끝으로 드사니자에게 강림했던 초월적인 존재의 의지가 그대로 사라졌다.
파지지직!
목적을 이룬 굴레를 벗은 자 역시 차원 게이트를 타고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돼지 같은 놈.”
자신의 차원으로 돌아온 굴레를 벗은 자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굴레를 벗은 자는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였다.
“성공했나?”
적색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물었다.
“그래, 예상보다 출혈이 크기는 했지만.”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굴레를 벗은 자가 대답했다.
“역시 그놈을 살려 둔 보람이 있었군.”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와 적색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은 드사니자가 초월적인 존재의 권속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나 일부러 방치했다.
드사니자가 자신과 아군 차원에 이로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계속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초월적인 존재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면 제거해 버릴 생각이었다.
한데 그 전에 써먹을 일이 생겨 버렸다.
“성공할 수 있을까?”
적색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꼭 성공해야지. 만약 실패한다면 우리는 포인트만 날리는 꼴이 되고 말아.”
호리호리한 체형에 황금빛 피부를 가진 사내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포인트를 날리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최현성이라는 존재를 제거할 방법이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초월적인 존재는 규율과 협약에 얽매여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꼼수를 쓸 수 있었다.
한데 이런 꼼수마저 이겨 낸다면?
그때는 전면전밖에 답이 없었다.
* * *
‘지금 이대로 쭉 갔으면 좋겠네.’
현성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시스템 상점에 물품들을 등록했다.
그간 현성의 세력은 하루가 다르게 커졌다.
업적 역시 빠르게 쌓여 갔다.
아무런 문제 없이 쑥쑥 성장을 하니 현성의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위이이잉!
그때 현성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뭐지?’
현성이 별다른 생각 없이 스마트폰에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적군 차원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현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한 차원을 향해 차원 게이트를 열었다.
파지지직!
현성이 차원 게이트를 통과했다.
“버텨라!”
“버티기만 하면 무조건 우리가 이긴다.”
침공을 받았다고 연락이 온 차원은 난리가 나 있었다.
과거 사억라니가 카이로를 노리고 시즈라가 관리하는 차원을 공격했을 때와 흡사한 상황이었다.
‘먼저 쳐들어온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현성이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가 가진 권능을 신하들에게 나눠 주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그와 동시에 신하들의 몸이 칠흑빛 뇌전과 화염으로 뒤덮였다.
“주군께서 오셨다!”
“다 쓸어버려!”
사기가 잔뜩 오른 아군 플레이어들이 거칠게 적 플레이어들을 밀어붙였다.
그때였다.
파지지직!
적군 플레이어들의 몸이 아군처럼 칠흑빛 뇌전으로 물들었다.
‘뭐야?’
현성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적군 플레이어들의 몸을 뒤덮은 칠흑빛 뇌전의 기운이 무척이나 친숙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존재의 근원을 소멸시키는 힘까지 담겨 있어?’
존재의 근원을 소멸시키는 권능을 가진 아군 플레이어들과 적군 플레이어들이 격돌하자 사상자가 속출했다.
타악!
현성이 직접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나섰다.
그때였다.
누군가 현성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며 검을 휘둘렀다.
파강!
현성이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
‘누구지?’
난생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한데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외모에서 느껴지는 익숙함이 아니었다.
이건 상대가 품고 있는 기운에 대한 익숙함이었다.
‘설마?’
현성이 재빨리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뿜어내 전신을 뒤덮었다.
파지지직!
그때 상대 역시 칠흑빛 뇌전으로 전신을 뒤덮었다.
“넌 누구냐?”
현성이 물었다.
“그런 것은 알 필요 없다. 죽어라.”
상대가 그 말과 함께 맹공을 가해 왔다.
파강! 파강!
현성이 용족화와 패시브 스킬을 발동시키며 버텼다.
하나 상대의 공격은 상당히 강력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상대가 내뿜는 칠흑빛 뇌전이 현성에게 내리꽂힐 때마다 강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강하다. 하지만 저건 저자의 온전한 힘이 아니야.’
현성은 상대가 내뿜는 힘의 근원이 뭔지 알아차렸다.
‘흑뢰신.’
과거 현성이 강제로 힘을 빼앗아 와 사용했던 신.
흑뢰신이 가진 권능이 상대의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하필 신의 권속이 침공해 온 건가?’
상황이 그리 좋지 못했다.
현성은 과거 신의 권속을 한번 쓰러트렸던 적이 있다.
하나 그때 쓰러트렸던 신의 권속과 눈앞에 있는 신의 권속 사이에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었다.
바로 육체가 가진 기본 스펙이었다.
‘강해.’
신의 권속이라고 해도 본바탕이 어떠냐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의 크기가 달라진다.
한데 눈앞에 있는 신의 권속은 전에 상대했던 신의 권속보다 월등히 강했다.
그 말은?
흑뢰신이 전해 주는 권능을 더욱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파지지직!
그런 현성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해 주듯이 적의 몸을 뒤덮고 있는 칠흑빛 뇌전이 점점 더 진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