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등급 몬스터
‘제발.’
사억라니가 간절한 마음으로 차원 게이트를 연달아 통과했다.
하나 상대는 끈질기게 자신의 뒤를 따라왔다.
‘도대체 어떻게?’
상대가 부활하는 것을 목격한 사억라니는 전의를 상실했다.
체력과 마력이 바닥을 드러낸 상태에서 도저히 상대를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사 어찌어찌 이겼다고 해도 다시 부활하면 어쩔 것인가?
‘그곳까지 가기만 하면 살 수도 있어.’
사억라니가 사력을 다해 도주하는 이유는 목적지에 도달하기만 하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따라잡힌다면?
모든 게 끝이었다.
‘가 보자.’
사억라니가 전력을 다해 도주했다.
그리고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콰콰콰콰콰콰!
이제 막 차원 게이트를 넘은 사억라니를 향해 극한의 냉기를 품은 아이스 브레스가 날아왔다.
화르르륵!
목적지에 도착한 사억라니가 재빨리 화신 스킬을 사용해 푸른 화염으로 변했다.
‘여전히 흉포하구나.’
사억라니가 푸른 화염으로 변한 채로 하늘 높이 솟구쳤다.
-크르르르!
낮은 으르렁거림과 함께 사억라니에게 아이스 브레스를 날렸던 이 차원의 지배자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네 상대는 내가 아니야.’
사억라니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차원 게이트를 닫은 곳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파지지직!
새로운 차원 게이트가 열리며 끈질기게 자신을 추격해 오던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억라니를 향해 달려들던 이 차원의 지배자가 새로운 생명체의 등장에 시선을 돌렸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사억라니는 무생물에 가까웠다.
반면 새롭게 등장한 현성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었다.
이 차원의 지배자가 보기에 현성은 사억라니보다 월등히 매력적인 먹잇감이었다.
-콰콰콰콰콰!
이 차원의 지배자가 매력적인 먹잇감을 향해 아이스 브레스를 날렸다.
* * *
‘뭐야?’
차원 게이트를 넘는 순간,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은 재빨리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로 몸을 감싸며 회피했다.
빠지지직!
회피가 약간 늦어지며 발끝이 아이스 브레스에 스쳤다.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의 보호를 받고 있던 발끝이 그대로 얼어붙어 버리더니 퍽 하고 산산조각 났다.
“크윽!”
현성이 고통을 참으며 침음을 흘렸다.
‘뭐가 이렇게 강해?’
공격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불사의 서가 순식간에 손실된 신체를 수복시켰다는 점이었다.
현성은 사억라니를 추격하는 와중에도 시스템 상점에 들어가 회복 계열 스킬들을 닥치는 대로 구입해서 익혔다.
그 결과 불사의 서는 창조 등급의 한계치에 다다른 상태였다.
‘이 괴물은 뭐야?’
현성을 공격한 건 순백의 동체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 화이트 드래곤이었다.
사실 몬스터는 그 등급 유무에 상관없이 현성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현성은 몬스터의 등급이 창조 등급이든 초월 등급이든 순식간에 제거해 버릴 수 있는 힘을 지녔으니까 말이다.
한데 이놈은 아니었다.
몬스터 주제에 현성이 그 끝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의 강력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앙!
화이트 드래곤이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빠르다.’
화이트 드래곤은 거대한 덩치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사억라니 저놈이.’
현성이 사억라니를 발견하고 이를 악물었다.
사억라니는 현성이 화이트 드래곤의 공격을 받아 내고 있는 사이 전력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하거나 차원 게이트를 열지는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화이트 드래곤의 방대한 마력이 이 근방을 모조리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사억라니가 화이트 드래곤의 마력이 장악한 지역을 벗어난다면?
충분히 다른 차원으로 도주하는 게 가능했다.
‘놓칠 것 같으냐.’
현성은 화이트 드래곤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사억라니를 추격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다시금 이어졌다.
사억라니가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현성은 도망치는 사억라니를 추격한다.
그리고 화이트 드래곤이 그런 현성의 뒤를 추격했다.
* * *
‘뭐, 저렇게 잘 피해.’
사억라니는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설마 현성이 화이트 드래곤의 추격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을 따라올 줄은 몰랐다.
현성이 화이트 드래곤의 공격을 미꾸라지처럼 피해 가면서 사억라니에게 맹공을 가했다.
사억라니 입장에서는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화신을 유지할 체력과 마력이 바닥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화신 스킬을 유지하지 못하면?
현성의 공격을 제대로 방어해 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어.’
사억라니는 모험을 해 보기로 했다.
화르르륵!
사억라니가 도주하는 걸 포기하고 반대로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
당황한 현성이 사억라니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하나 사억라니는 그 모든 공격을 감수한 후 현성을 무시하고 지나갔다.
-크르르르르!
화이트 드래곤이 차가운 냉기를 뿜어냈다.
그것도 감수하고 그대로 화이트 드래곤을 지나쳤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현성이 사억라니를 추격하기 위해서는 화이트 드래곤을 지나쳐야 한다.
하지만 화이트 드래곤이 현성을 순순히 보내 줄 리 없었다.
육체가 없는 사억라니와는 사정이 다른 것이다.
하나 이에 대한 현성의 해답은 간단했다.
마찬가지로 육체가 없는 정령인 뚱이와 덕구를 보낸 것이다.
뚱이와 덕구가 화이트 드래곤을 무시하고 사억라니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망할.’
사억라니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현성과 화이트 드래곤이 드잡이질을 하고 있는 사이 사억라니는 뚱이와 덕구를 상대로 드잡이질을 해야 했다.
하나 한계는 금방 찾아왔다.
화신 스킬을 유지하고 있던 사억라니의 체력과 마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버린 것이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크아아악!”
결국 사억라니는 뚱이와 덕구의 협공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 * *
‘잡았다.’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끈질기게 도주하던 사억라니를 쓰러트렸다.
하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크아아아아앙!
성난 포효와 함께 현성에게 달려드는 화이트 드래곤이 아직 남아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나 현성은 전혀 두려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어찌 되었든 용종이잖아.’
푸욱!
현성이 용혈검을 화이트 드래곤의 몸통에 박아 넣었다.
그런데 비늘이 하도 두꺼워서 제대로 용혈검이 박히지 않았다.
현성은 화이트 드래곤의 공격을 일정 부분 감수하면서 용혈검을 더 깊게 박아 넣었다.
그 순간.
-귀속 아이템 용혈검 - 유일 창조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용혈검의 성장 메시지가 떠올랐다.
‘좋아.’
창조 등급이 된 후로는 반인반룡들의 황제였던 불마루스의 피를 먹어도 용혈검은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용혈검을 무 등급 무기로 업그레이드시킬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한데 이곳에서 만난 화이트 드래곤 덕분에 용혈검을 성장시킬 수 있는 열쇠를 찾아냈다.
‘고맙다.’
창조 등급의 한계를 넘어선 몬스터.
현성은 자신을 그런 몬스터에게로 안내해 준 사억라니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사억라니에게 고마운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멍멍!
덕구가 사억라니가 사망하며 떨어트린 스킬북을 가지고 왔다.
무려 무 등급 스킬북이었다.
현성은 사억라니가 남긴 선물인 무 등급 스킬북을 곧바로 익혔다.
다행스럽게도 곧바로 화신 스킬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권능을 따로 각성시켜야 하나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겠네.’
물론 제대로 숙달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수련을 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당장 써먹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현성에게는 엄청나게 큰 이득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휘익!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화이트 드래곤의 앞발이 현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화르르르륵!
하지만 현성의 몸이 푸른 화염으로 변한 순간, 화이트 드래곤의 물리 공격을 너무도 손쉽게 회피할 수 있었다.
-콰콰콰콰콰콰!
아이스 브레스 같은 스킬 계열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완전히 사기 스킬이네.’
시전자를 무적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체력과 마력 소모가 너무 빨라.’
현성은 불사의 서를 통해 휘하 신하들의 체력과 마력을 수급받을 수 있다.
하나 현성과 휘하 신하들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손실이 커진다.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사용할 때는 그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비되는 체력이나 마력보다 회복되는 체력과 마력이 더 많았으니까 말이다.
하나 화신 스킬의 체력과 마력 소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회복되는 것보다 소모되는 게 더 빨라.’
그 수를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신하들에게 체력과 마력을 보충받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로 인한 손실과 화신 스킬의 체력과 마력 소모 속도로 인해 현성의 체력과 마력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이런 적은 또 처음이네.’
화신 스킬은 사기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는 만큼 페널티도 컸다.
‘나랑은 정반대 스타일이었어.’
현성의 전투 스타일은 장기전에 유리했다.
한데 화신 스킬의 경우는 단기전에 유리한 스킬이었다.
‘위급한 순간에만 사용하자.’
현성이 화신 스킬을 해제하고 화이트 드래곤을 공격했다.
그러다가 도저히 피하기 힘든 공격이 날아오면?
화르르륵!
화신 스킬을 사용해 공격을 받아 냈다.
이런 식으로 사용하자 체력과 마력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 시킬 수 있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현성이 화이트 드래곤과 치열한 접전을 이어 나갔다.
그러는 와중에 용혈검은 무럭무럭 성장해 나갔다.
물론 화이트 드래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용혈검을 몸에서 뽑아내기 위해 마력과 스킬을 사용했다.
그럴 때마다 용혈검이 화이트 드래곤의 몸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그럼 현성은 다시금 용혈검을 회수해 화이트 드래곤의 몸에 꽂아 넣었다.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다.
현성은 용의 혈조와 용의 혈갑도 사용했다.
하나 아쉽게도 용의 혈조와 용의 혈갑은 화이트 드래곤을 상대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화이트 드래곤의 마력 제어 능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다.
현성과 화이트 드래곤의 접전은 쉽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현성과 화이트 드래곤 모두 쌩쌩한 상태로 접전을 이어 나갔다.
현성은 화이트 드래곤의 용혈과 휘하 신하들이 전달해 주는 체력과 마력 덕분에 지치지 않았다.
화이트 드래곤은 애초에 가지고 있는 체력과 마력이 워낙 높아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3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자 화이트 드래곤이 점점 지쳐 가기 시작했다.
원인은 바로 현성이 지속적으로 화이트 드래곤의 몸에 꽂아 넣는 용혈검 때문이었다.
용혈검은 화이트 드래곤의 용혈을 쪽쪽 빨아먹으며 성장했다.
반대로 화이트 드래곤은 용혈검 때문에 마력과 체력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스텟까지 하락했다.
‘확실히 강하긴 하지만 일주일만 더 고생하면 충분히 잡을 수 있겠어.’
현성이 다 잡은 사냥감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화이트 드래곤을 주시했다.
화이트 드래곤은 정말 엄청나게 강했다.
‘역시 사억라니를 먼저 잡는 게 정답이었어.’
사억라니가 그대로 도망쳤다면?
그래서 화신 스킬을 얻지 못했다면?
‘내가 졌겠지.’
몸 전체가 얼음덩어리로 변해 산산이 부서질 위기가 수도 없이 많이 찾아왔다.
현성은 그때마다 화신 스킬을 사용해 위기를 넘겼다.
화이트 드래곤은 현성에게 한 번의 죽음을 선사한 사억라니도 어찌하지 못한 강력한 존재였다.
하나 현성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스킬과 사억라니를 통해 얻은 화신 스킬을 조합해 훌륭하게 화이트 드래곤을 사냥해 나갔다.
* * *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피로가 누적되기는 했지만 현성은 처음 전투를 벌였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체력과 마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화이트 드래곤은 한눈에 보기에도 홀쭉해져 있었다.
주변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방대한 마력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거의 다 잡았어.’
현성이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크르르릉!
그때 화이트 드래곤이 처음으로 다른 행동 패턴을 보였다.
바로 도주였다.
-콰콰콰콰콰!
아이스 브레스를 사용해 현성을 공격한 후 화이트 드래곤이 등을 보이고 달아났다.
‘놓칠까 보냐.’
다 잡은 사냥감이다.
그런 사냥감을 놓칠 수는 없었다.
현성이 마력 역장 스킬을 사용했다.
그와 동시에 마력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화이트 드래곤이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도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전세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처음에는 화이트 드래곤이 현성을 추격했다.
하지만 지금은 현성이 화이트 드래곤을 쫓고 있었다.
‘절대 안 놓친다.’
현성은 또다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쏟아붓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화이트 드래곤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쫓고 쫓기는 지루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하나 이 추격전의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화이트 드래곤은 지쳤고 현성은 아직 쌩쌩했으니까 말이다.
‘거의 다 잡았어.’
현성이 피곤에 찌든 눈빛으로 화이트 드래곤이 튕겨 낸 용혈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화이트 드래곤의 꼬리에 용혈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용혈검이 깊숙이 박혔다.
-귀속 아이템 용혈검 - 유일 창조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귀속 아이템 용혈검 - 유일 창조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귀속 아이템 용혈검 - 유일 창조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후략……
다시금 익숙한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그때였다.
-귀속 아이템 용혈검 - 유일 창조 등급이 귀속 아이템 용혈검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짤막한 메시지를 끝으로 용혈검이 성장했다는 메시지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드디어 용혈검이 무급 아이템이 된 건가?’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용의 혈조.’
현성이 용의 혈조 스킬을 사용했다.
쫘아아아악!
용혈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발톱이 모습을 드러내 화이트 드래곤의 몸을 헤집어 놓았다.
-캬아아아앙!
화이트 드래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 냈다.
‘창조 등급일 때는 제대로 된 상처도 입히지 못하더니.’
무급 스킬로 성장하니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용의 혈갑.’
현성이 용의 혈갑을 두르고 화이트 드래곤의 몸에 틀어박혀 있는 용혈검을 움켜쥐었다.
그 후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 그리고 용의 혈조까지 발동시킨 상태로 있는 힘껏 용혈검을 휘둘렀다.
좌악!
거대한 화이트 드래곤의 동체가 갈가리 찢겨졌다.
‘끝이다.’
서걱!
현성이 용혈검을 휘둘러 화이트 드래곤의 목을 베어 냈다.
쿠우우웅!
목이 잘린 화이트 드래곤의 동체가 지상으로 추락했다.
‘잡았다.’
드디어 성공했다.
무려 열흘이 넘는 접전 끝에 화이트 드래곤을 사냥한 것이다.
그때였다.
[믿을 수 없는 업적]
-최초로 굴레를 벗어날 자격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굴레를 벗어날 자격을 획득한 자]
‘이게 뭐야?’
업적이 떴다.
스텟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업적이 뜨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 뭔가 이상하기는 했다.
일반적으로는 ‘최초로 XX 등급의 몬스터를 사냥하셨습니다.’ 이런 업적이 뜨는 게 당연한 거니까 말이다.
한데 전혀 다른 업적이 떴다.
‘굴레를 벗어날 자격?’
이런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업적이나 칭호에 대한 등급이 없어.’
당연히 있어야 할 업적이나 칭호에 대한 등급이 없었다.
‘설마 무 등급 업적인 건가?’
현성은 여러 개의 무급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나 업적이 뜬 적은 없었다.
방금 전 용혈검을 무급 무기로 업그레이드시켰을 때도 아무런 업적 메시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현성은 무 등급 스킬이나 아이템을 획득할 경우 업적이 없는 건가 하고 아쉬워했다.
한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 그동안은 왜 안 준 거야?’
최초로 무급 스킬을 획득했을 때도 최초로 무급 무기를 획득했을 때도 업적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무급 몬스터로 추정되는 화이트 드래곤을 잡으니까 업적을 줬다.
‘일단 확인을 해 보자.’
현성이 새롭게 획득한 칭호인 [최초로 굴레를 벗어날 자격을 획득한 자]의 옵션을 확인했다.
[최초로 굴레를 벗어날 자격을 획득한 자]
-모든 스텟 1,920 증가.
‘어?’
뭔가 현성의 예상을 벗어난 보상이 나왔다.
‘창조 등급 업적이 모든 스텟 320 증가였으니까 무 등급 업적은 640이 증가해야 하는데?’
640이 아니라 무려 1,920이 증가했다.
스텟은 총 다섯 개다.
그 말인즉 업적 하나로 총스텟이 9,600이나 증가했다는 뜻이다.
무려 1만에 가까운 스텟이 한 방에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1,920이야?’
일단 많이 주니까 좋기는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스텟을 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혹시?’
현성이 지금까지 자신이 획득했어야 하는 무 등급 최초 업적을 계산했다.
‘스킬 하나, 무기 하나, 몬스터 사냥 하나.’
총 세 개의 최초 업적을 받아야 했는데 받지 못했다.
‘만약 그때마다 무 등급 최초 업적을 받았다면?’
정확히 1,920이 된다.
‘설마 한 방에 몰아서 준 거냐?’
640씩 세 번 줘야 할 보상을 킵해 놓고 안 주다가 한 방에 몰아서 준 거라고 가정하면?
‘그럼 정확히 맞아떨어지네.’
왜 총스텟이 640이 아니라 1,920이 증가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가능했다.
‘그런데 왜 몰아서 주는 거야?’
주려면 전처럼 업적을 달성할 때마다 주는 게 정상 아니겠는가?
‘최초로 굴레를 벗어날 자격을 획득한 자라.’
칭호 자체가 여태까지 나왔던 것과 달랐다.
‘자격을 획득했다고 써 있어.’
게스피트는 현성이 최초의 무 등급 스킬을 얻었을 때 격이 상승했다고 했다.
현성 역시 자신과 게스피트가 같은 라인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하나 시스템이 인정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시스템이 현성의 격을 인정했다.
‘무 등급 스킬은 많이 가지고 있어. 하지만 중복되지는 않았어.’
이번 싸움으로 현성은 무 등급 아이템을 손에 넣었고 무 등급 몬스터를 사냥했다.
‘스킬, 아이템, 몬스터 사냥.’
그 셋은 플레이어의 근간이었고 대표적인 업적이었다.
‘업적을 더 쌓아야 해.’
그래야 격이 올라가고 굴레를 벗을 수 있다.
‘좋아.’
현성은 자신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정말 고맙다.’
현성이 다시 한번 사억라니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사억라니가 아니었다면?
현성은 무 등급 몬스터인 화이트 드래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아이템과 몬스터 사냥으로 획득해야 하는 업적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마 얻더라도 먼 훗날이 되었겠지.’
정말 사억라니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거기다 현성에게 주어진 보상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아아아악!
화이트 드래곤의 사체에서 뿜어져 나온 잔존 마력이 뭉쳐지며 두 개의 아이템으로 화했다.
‘안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용혈검이 화이트 드래곤의 용혈을 빨아먹을 만큼 빨아먹은 상태라 아이템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나왔다.
그것도 무려 두 개나 말이다.
‘스킬북과 갑옷이라.’
현성이 스킬북을 먼저 확인했다.
[용족화]
‘이름만 있구나.’
등급이고 옵션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름만으로도 대충 이 스킬북의 효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용족으로 변신하게 해 준다는 거겠지?’
용인화와 비슷한 변신형 스킬인 것 같았다.
현성이 방금 전 쓰러트린 거대한 화이트 드래곤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도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건가?’
현성이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주시했다.
-액티브 스킬북 용족화를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현성이 예를 선택했다.
-액티브 스킬북 용족화를 습득하셨습니다. 하위 등급의 스킬이 자동으로 흡수됩니다.
‘어라?’
하위 등급 스킬이라고 할 만한 건 딱 하나밖에 없었다.
현성이 용인화 스킬을 확인했다.
‘없어졌네.’
용인화 스킬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용족화에 흡수된 것이다.
‘테스트나 해 보자.’
현성이 용족화 스킬을 사용했다.
그 순간 현성이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머리에서 굳건한 뿔이 돋아났고 입안에서는 날카로운 이빨이 튀어나왔다.
-크르르르르.
현성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가 아닌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터져 나왔다.
‘진짜네.’
현성이 거대한 드래곤이 되어 버렸다.
‘스텟이 늘어났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물리 공격 저항력과 스킬 공격 저항력 역시 놀랍도록 늘어났다.
‘용인으로도 변할 수 있나?’
현성이 의지를 전달한 순간.
거대한 드래곤의 몸이 압축되며 인간과 드래곤의 모습을 반반 섞은 듯한 용인의 모습으로 화했다.
‘좋네.’
용인화 스킬을 흡수했기 때문인지 용인으로 변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나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포인트를 미친 듯이 갉아먹네.’
스킬의 위력이 증폭된 만큼 소모되는 포인트가 어마어마했다.
‘용족화 스킬도 포인트로 발동하는 거였나?’
어쩌면 용인화 스킬을 흡수한 부작용일지도 몰랐다.
현성이 용족화 스킬을 해제했다.
그 후 갑옷을 집어 들었다.
[용갑]
역시나 이름 말고는 그 어떤 설명도 없었다.
‘갑옷은 갑옷인데 반쪽짜리네.’
현성이 사냥한 화이트 드래곤과 쏙 빼닮은 새하얀 갑옷은 상체의 일부만을 겨우 가리는 조끼 형태였다.
‘일단 입어 보자.’
현성이 용갑을 착용했다.
스텟이 상승하고 물리 공격 저항력과 스킬 공격 저항력이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하나 현성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겨우 이 정돈가?’
늘어난 능력치가 창조 등급 방어구와 비슷한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건 창조 등급 방어구가 아니라 무 등급 방어구다.
당연히 창조 등급 방어구를 월등히 뛰어넘는 성능을 보여주어야 했다.
‘혹시?’
뭔가 집히는 게 있었다.
현성이 용갑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스르르륵!
그러자 조끼 형태이던 용갑이 반팔 형태로 바뀌었다.
현성이 바로 감을 잡고 대량의 마력을 쏟아부었다.
촤르르르륵!
그러자 조끼 형태이던 용갑이 순식간에 전신 갑옷 형태로 커졌다.
현성은 과거 마신의 갑옷을 사용하던 때를 떠올리며 갑옷의 모양을 잡았다.
‘좋네.’
마력을 꽤 많이 잡아먹기는 했지만 물리 공격 저항력과 스킬 공격 저항력이 엄청나게 상승했다.
‘이제 액세서리만 구하면 되겠어.’
무 등급 무기와 무 등급 방어구를 구했다.
이제 남은 건 액세서리뿐이었다.
‘아쉽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화이트 드래곤이 무 등급 액세서리를 남기지 않은 게 아쉽게 느껴졌다.
용족화 대신 액세서리가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천천히 구해 보자.’
현성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아쉬운 마음을 지워 냈다.
이번 일로 무 등급 스킬북, 무기, 방어구를 하나씩 손에 넣었다.
제대로 대박을 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다.
‘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지구를 지킨 것을 넘어서 지구를 침공하던 차원을 점령했다.
그 후 수많은 아군과 적군 차원을 지배하는 대군주가 되었다.
무 등급 스킬, 무기, 방어구, 업적을 손에 넣었다.
지금처럼 꾸준히 성장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굴레를 벗은 자가 되어 이 끝없는 전쟁에서 해방될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