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권. 동업 (197/225)
  • ┃동업

    ‘아직도 연락이 안 오네.’

    지금쯤이면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직 잠잠했다.

    그때였다.

    위이이이잉!

    현성의 스마트폰에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습니다.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넘어왔구나.’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면 절대 현성의 제안을 거절 할 수 없을 것이다.

    “카이로.”

    “예, 주인님.”

    “준비하고 있어, 마르코스가 용병 고용 신청할 거니까.”

    “알겠습니다.”

    현성이 문자메시지를 통해 용병 고용을 신청하면 곧바로 고용하겠다고 답장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니까 이건 편하네.’

    아마 전이었다면 마르코스가 카이로가 판 물건을 구매해 컴플레인을 거는 식으로 대화하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하나 스마트폰이 퍼짐으로 인해 차원과 차원 간의 정보 교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고용했습니다.”

    화악!

    카이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밝은 빛무리가 솟구치며 플레이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약하네.’

    마르코스는 고작해야 몇백 레벨 정도 수준에 불과한 스텟을 가지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마르코스 님.”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 예, 저도 반갑습니다, 카이로 님.”

    마르코스의 말에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카이로는 이 녀석입니다. 전 최현성이라고 합니다.”

    “예? 그게 무슨?”

    현성을 카이로라고 생각하고 있던 마르코스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에 대한 설명은 조금 나중으로 미루겠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우리의 동업이니까요.”

    현성이 말에 마르코스가 눈을 번뜩였다.

    “그건 그렇죠. 저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다고 하셨는데, 좀 더 정확히 그 내용을 알고 싶습니다.”

    “일단 영업정지 자체를 풀어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건 시스템의 영역이니까요. 하지만 영업정지가 풀린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리게 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대리 판매죠.”

    “예?”

    “손을 내밀어 보시죠.”

    현성의 말에 마르코스가 손을 내밀었다.

    현성이 마르코스에게 1조 포인트를 넘겨주었다.

    “헉!”

    마르코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까지 마르코스가 벌어들인 포인트의 총합은 겨우 5천억 포인트가 될까 말까 했다.

    한데 그 두 배나 되는 포인트를 한 번에 전달받은 것이다.

    “보시다시피 1레벨 플레이어끼리는 서로 포인트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제가 마르코스 님의 물품을 대신 판매해 드리는 것도 가능하죠.”

    “아아아!”

    “얼마 전까지 사억라니라는 자와 판매 경쟁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대신 싸워 드리겠습니다. 카이로는 오랜 시간 물품을 팔아 왔기에 판매 정지를 당할 일은 없을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자도 엄청난 거부 같던데요?”

    “만약 카이로가 판매 정지를 당한다면, 다른 1레벨 플레이어를 동원해서라도 사억라니라는 자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제 휘하에 있는 1레벨 플레이어의 숫자는 수천에 달합니다. 그러니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으실 겁니다.”

    휘하에 있는 1레벨 플레이어의 숫자가 수천에 달한다는 말을 들은 마르코스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상대가 자신의 예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거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또 사억라니라는 자의 차원 좌표를 알아내기만 한다면, 마르코스 님을 대신해 제가 직접 그자를 응징해 드리겠습니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물론입니다. 저는 이미 수많은 차원 전쟁에서 승리한 전적이 있습니다.”

    차원 전쟁이라는 말에 마르코스가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그렇게 강하신 분이라면 왜 제가 있는 차원을 침공하지 않으신 거죠?”

    “그 이유는 안전 결계의 존재 때문입니다. 안전 결계는…….”

    현성이 차분하게 마르코스에게 안전 결계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설사 안전 결계가 없었다고 해도 저는 절대 마르코스 님의 차원을 침공하지 않았을 겁니다. 서로 싸우는 것보다는 손을 잡는 게 훨씬 더 큰 이득이 될 테니까요.”

    현성의 말을 들은 마르코스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중요한 일인데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셔야죠.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저는 동업과 동시에 마르코스 님에서 계약금을 지급해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계약금요? 1조 포인트가 계약금 아니었나요?”

    “하하하하!”

    마르코스의 물음에 현성이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푼돈이 어떻게 계약금이 되겠습니까? 마르코스 님이 원하신다면 그 수백 배, 아니 수천 배라도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현성의 대답에 마르코스의 넋이 반쯤 나가 버렸다.

    “마르코스 님?”

    현성의 부름에도 마르코스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한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릴 뿐이었다.

    “수천 배…… 그럼…… 몇천조 포인트……. 그거라면…….”

    현성은 차분하게 마르코스가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렸다.

    통 크게 1조 포인트를 아무런 조건 없이 선물로 주었다.

    그 후 수천조 포인트라는 거액을 약속했다.

    작정하고 마르코스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저,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마르코스의 말에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상담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전화를 주셔도 되고 문자를 주셔도 좋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마르코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거의 넘어온 거 같은데.’

    현성이 반쯤 낚은 물고기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마르코스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 * *

    현성을 만나고 돌아온 마르코스는 며칠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수천조 포인트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수천조 포인트가 있으면 지금 당장 최고의 플레이어가 될 수 있어.’

    그럼 자신을 우습게보고 무시했던 이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수 있다.

    또한 지긋지긋한 가난에서도 당장 벗어날 수 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단 하나.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이치가 마음에 걸렸다.

    ‘분명히 수수료를 받을 거야.’

    판매 대행 수수료.

    그게 아마 현성이라는 자의 새로운 수입원이 되어 줄 것이다.

    냉정하게 따져 현성이라는 인물은 자신에게 투자를 하고 수익을 얻으려는 투자자지 아무 조건 없이 자신에게 베풀어 주려는 자선사업가가 아니었다.

    ‘나에게 수천조를 투자한다면 못해도 몇백조 포인트 정도의 이득은 챙기려고 할 거야.’

    그게 당연한 세상의 이치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상대가 거액의 포인트를 제시한 이유는 자신이 선점한 시장을 지키고 중간 마진을 얻기 위해서였다.

    ‘수락하면 편해질 거야.’

    하나 마르코스의 이득이 줄어든다.

    ‘힘들더라도 내 힘으로 해결해 볼까?’

    하나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마르코스는 3개월의 영업정지를 당했고 그 영업정지가 30개월이나 3백 개월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딩동!

    그때 누군가가 마르코스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지?’

    마르코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탐지 스킬을 발동시켰다.

    ‘이런 망할.’

    마르코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은신 스킬을 사용한 플레이어들이 마르코스의 집을 포위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누구시죠?”

    마르코스가 태연한 어조로 물었다.

    “트롤러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무슨 일로 제집까지?”

    “전에 드렸던 제안에 대한 답을 아직 주시지 않아서요.”

    “좀 더 고민해 보고 결정을 내리면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일단 이야기를…….”

    트롤러 길드에서 나왔다는 이가 한참 주절거리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은신 스킬을 사용한 플레이어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는 거야.’

    만약 마르코스가 트롤러 길드에게 좋지 않은 대답을 한다면?

    감시자들이 암살자로 바뀔 수도 있었다.

    ‘이런 망할.’

    시스템 상점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자신을 노리는 자들이 너무 많았다.

    ‘수천조 포인트.’

    수천억도 아니고 수천조다.

    그 포인트를 손에 넣는다면?

    트롤러 길드 전체가 덤벼들어도 자신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나한테는 시간이 없어.’

    시스템 상점에서는 판매 정지를 당했다.

    현실에서는 거대 길드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

    당장 힘을 키우지 못하면?

    ‘아이템 자판기 신세가 될 수도 있어.’

    판매 정지만 당하지 않았어도 상황이 조금은 나았을 것이다.

    하나 판매 정지와 트롤러 길드라는 적이 마르코스를 짓누르고 있었다.

    ‘결정을 내려야 해.’

    마른침을 꿀꺽 삼킨 마르코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정을 내린 것이다.

    마르코스가 현성에게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화악!

    밝은 빛무리에 휩싸인 마르코스가 자신의 방 안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반갑습니다, 마르코스 님.”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마르코스를 반겼다.

    “5천조 포인트를 계약금으로 주실 수 있으십니까?”

    마르코스가 인사도 생략한 채 현성에게 물었다.

    “물론 가능합니다. 계약서에 사인만 해 주신다면요.”

    “일단 계약서를 보고 싶습니다.”

    마르코스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리 작성해 놓은 영혼의 계약서를 보여 주었다.

    마르코스가 꼼꼼하게 계약서를 읽어 나갔다.

    전체적으로 큰 문제는 없는 계약서였다.

    마르코스가 현성에게 물건을 넘긴다.

    그럼 현성은 마르코스가 넘긴 물건을 판매한다.

    현성의 이득은 중간에서 발생하는 수수료였다.

    “수수료가 20%가 넘는군요.”

    마르코스가 약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20%라니?

    너무 과도하지 않은가?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수정해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만큼 계약금의 액수가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계약금 액수요?”

    “예, 저도 땅을 파서 장사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에게도 5천조 포인트는 그리 적은 포인트가 아닙니다. 거기다 사억라니라는 녀석과 출혈경쟁도 해야 하죠. 제가 20%의 수익으로 5천조 포인트라는 계약금을 복구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요?”

    잠시 고민하던 마르코스도 어느 정도 납득하기는 했다.

    5천조 포인트는 선금이 아니라 계약금이다.

    20%의 비율을 포기하면 마르코스는 당장 5천조 포인트를 얻을 수 있고, 앞으로 물건을 판매해 나오는 수익의 80%를 얻을 수 있다.

    아무리 마르코스의 전자 제품이 잘 팔려도 20%의 수익으로 5천조 포인트를 벌려면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원하신다면 계약금을 낮추고 마르코스 님의 비율을 80% 이상으로 올려 드릴 수도 있습니다.”

    현성의 말에 마르코스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계약을 할까 말까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다.

    ‘계약금을 낮추고 비율을 올릴까? 아냐 나한테는 당장 강해질 수 있는 포인트가 필요해. 차라리…….’

    고민을 끝마친 마르코스가 입을 열었다.

    “계약금으로 1경 포인트를 주십시오. 그럼 최현성 님의 비율을 30%로 올려 드리겠습니다.”

    마르코스가 딜을 했고…….

    “음…… 좋습니다.”

    현성이 콜을 외쳤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현성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했다.

    “조건요?”

    쌀이 익어 밥이 된 상황이다.

    그런데 조건이라니?

    ‘포인트를 더 달라는 건가?’

    하지만 그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더 높은 포인트를 불렀지 조건이라는 말을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가 시전하는 스킬에 걸려 주십시오. 그 후 제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세요.”

    “혹시 그 스킬이 진실의 계약인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영혼의 계약서에 장난을 쳤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정말 불쾌하군요. 계약서는 함께 작성하지 않았습니까? 의심이 가신다면 다시 한번 영혼의 계약서를 살펴보시죠!”

    현성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언성을 높였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있을 뿐입니다. 제 조건을 수용해 주시면, 10년간 수수료 비율을 20% 올려 드리겠습니다. 어떠십니까? 최현성 님의 입장에서는 손해 보실 게 전혀 없는 조건입니다. 제 질문에 대답 한 번만 해 주시면 됩니다.”

    현성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언성을 높였기 때문인지, 자신의 말이 상당한 무례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마르코스가 통 크게 딜을 걸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현성을 도발했다.

    마치 죄지은 게 없으면 바로 콜을 하라는 듯이 말이다.

    현성은 곧바로 콜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딜을 할 때라는 걸 느꼈다.

    “으흠.”

    현성이 고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뭐 찔리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마르코스가 현성을 도발하듯 물었다.

    “기간을 30년으로 늘려 주십시오. 그리고 수수료 비율을 조정하는 기간을 제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럼 수용하겠습니다.”

    현성의 말에 이번에는 마르코스가 머뭇거렸다.

    기간이 세 배로 늘어난다는 말은 마르코스가 손해를 보는 기간도 세 배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거기다 수수료 비율 조정 기한을 현성이 자유롭게 정할 수 있게 한다면?

    당연히 매출이 최고조를 찍을 때 일시적으로 반영해 최대한의 이득을 챙길 것이다.

    현성의 이득은 마르코스의 손해와 동일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신 제가 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신다면, 반대로 저에게 30년간 20%의 비율을 올려 주십시오.”

    고심을 이어 가던 마르코스가 현성에게 반대로 딜을 걸었다.

    “하하하, 저에게는 나쁠 게 없는 일이군요. 제 마음 같아서는 기한을 30년이 아니라 3백 년으로 늘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현성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연기하며 호탕하게 외쳤다.

    “그럼 정말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예?”

    “기한을 정말 3백 년으로 늘리시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마르코스의 말에 현성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환호를 내질렀다.

    “먼저 3백 년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마르코스의 말에 현성이 표정을 굳혔다.

    “찔리는 게 없으시다면 수용하시지요.”

    마르코스가 현성을 밀어붙였다.

    “하! 도대체 뭘 물어보시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큰 이득을 보겠군요! 하지만 마르코스 님은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실 겁니다!”

    현성이 큰소리를 쳤다.

    “전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현성이 마르코스의 조건을 수용했다.

    사실 현성은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거짓을 말한 것도 아니고 마르코스를 속인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현성은 일부러 연기를 했다.

    마르코스가 물어볼 질문이 뭔지 대충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현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끼를 던졌고 마르코스는 덥석 물었다.

    ‘뭐, 의문은 말끔하게 제거하고 가는 게 좋지.’

    괜한 의심을 품고 있으면 나중에 사이가 벌어질 수도 있다.

    또 사실상 3백 년간 전체 매출의 50%를 날로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스킬을 시전하겠습니다.”

    마르코스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코스가 진실의 계약 스킬을 시전했다.

    -진실의 계약 스킬이 시전되었습니다. 스킬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현성이 예를 선택했다.

    마르코스의 마력이 현성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막으려면 억지로 막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성은 순순히 마르코스의 마력을 받아들였다.

    “단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사억라니가 벌인 일과 관련해 직간접적으로 조금이라도 관여한 바가 있으십니까?”

    ‘역시 이거였구나.’

    현성의 예상이 맞았다.

    “없습니다.”

    현성의 대답에 마르코스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었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수하들을 통해서든 뭘 통해서든 사억라니라는 자와 무언가 일을 꾸민 적이 없으십니까?”

    “전 이번 일이 터지기 전까지 사억라니라는 자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현성의 대답에 마르코스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방금 전에는 왜?”

    마르코스의 물음에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질문은 하나였지 않습니까? 너무 많은 걸 물어보시는 것 같은데요?”

    현성의 말에 마르코스는 자신이 낚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상태였다.

    “자, 그럼 서명하시죠.”

    현성이 마르코스를 향해 수정한 영혼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마르코스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현성이 내민 영혼의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화악!

    서명을 마치자 영혼의 계약서가 둘로 나뉘어 현성과 마르코스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현성이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고…….

    “…….”

    마르코스가 떫은 감을 씹은 표정으로 그런 현성의 손을 마주 잡았다.

    * * *

    ‘속았어.’

    마르코스는 자신이 현성의 연기에 속았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먼저 상대를 속이려 한 데다 과한 욕심을 부린 건 나니까.’

    마르코스는 현성과 사억라니가 서로 손을 잡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타이밍이 딱딱 맞아떨어졌기에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성의 제안을 거절하니 사억라니가 공격을 시작했다.

    사억라니의 공격에 영업정지를 당하니 현성이 후한 조건으로 딜을 해 왔다.

    사실 마르코스의 입장에서는 현성과 사억라니가 손을 잡았다고 해도 딱히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사억라니의 공격은 무자비했고 판매 물량이 많지 않은 마르코스는 대항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또 사억라니를 물리치고 영업을 정상적으로 재개한다고 해도 현성의 협조가 없으면 마르코스의 성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교류의 보석.

    현성은 전자 제품과 교류의 보석을 따로따로 팔았다.

    그 덕분에 마르코스가 파는 전자 제품에도 교류의 보석을 바르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현성이 교류의 보석 판매를 중지한다면?

    그 후 자신이 판매하는 모든 제품에 교류의 보석을 바른 후 출시한다면?

    마르코스가 파는 전자 제품 중 다자간 통신이 필요한 것들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마르코스는 현성과 사억라니가 손을 잡았다는 의심을 하면서도 순순히 영혼의 계약서를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베팅을 했다.

    정말 현성과 사억라니가 손을 잡았다면, 비율을 더 많이 떼어 가는 조건으로 이득을 보려 했다.

    만약 그게 자신의 착각이었다면?

    아깝기는 하지만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 준 은인인 현성에게 더 큰 수혜를 베풀어 준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깝기는 하네.’

    현성의 연기에 속아 3백 년간 20%의 수익을 더 헌납하게 되었다.

    차라리 20%의 비율을 계약금으로 받았다면?

    ‘1경 포인트가 아니라 2경 포인트를 계약금으로 받았을 수도 있는데.’

    그게 참 아쉬웠다.

    마르코스가 휘휘 고개를 휘저으며 아쉬운 마음을 떨쳐 냈다.

    ‘1경 포인트면 충분해.’

    마르코스가 신나게 쇼핑을 했다.

    비약을 전부 구입해 한계치까지 스텟을 올렸다.

    그 후 스킬북을 구입해 신나게 익혔다.

    방어구, 무기, 액세서리도 풀로 맞췄다.

    최초 업적이 뜨며 스텟이 계속해서 불어났다.

    ‘다 죽었어.’

    세팅을 마친 마르코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간 자신을 괴롭혔던 트롤러 길드.

    그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 * *

    ‘신기한 물품들이 많네.’

    현성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마르코스가 넘긴 전자 제품들은 정말 다양했다.

    또 영화, 드라마, 게임, 만화 같은 문화 상품들의 종류도 엄청나게 많았다.

    ‘급성장하겠어.’

    사억라니라는 놈이 태클을 걸지 않았다면?

    마르코스가 게스피트 같은 조력자를 만났다면?

    최단 시간 안에 현성과 필적하는 수준의 강자로 성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다행이야.’

    고작 1경 포인트로 마르코스를 동업자로 만들었다.

    거기다 게스피트 같은 조력자를 만나는 길을 차단했다.

    ‘전자 제품은 한계가 있어.’

    동업자가 된 이상 마르코스가 전자 제품을 팔아 아무리 많은 수익을 거둬도 절대 현성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마르코스가 거두는 수익의 30%를 현성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3백 년이란 기간 제한이 있긴 하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50%의 수익을 가져올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성장 구간이라 나중에 사용할 생각이지만.

    또 현성은 교류의 보석을 쥐고 있다.

    교류의 보석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은 마르코스에게 가지 않는다.

    현성과 게스피트가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교류의 보석이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할 거야.’

    마르코스가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을 아무리 많이 팔아도 교류의 보석을 이용해 멀티 플레이 기능을 사용하는 순간, 그 수익은 고스란히 현성과 게스피트에게 넘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게 불만이면 영혼의 계약서를 다시 작성해야 할 거고.’

    여러모로 현성에게는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는 계약이었다.

    * * *

    현성은 마르코스와의 계약 이후 다시금 차원 전쟁을 시작했다.

    강력한 경쟁자가 될 뻔했던 마르코스를 나름 손쉽게 동업자로 만드는 데 성공했기에 기분이 날아갈 것같이 좋았다.

    신제품이 생겼으니 포인트 수급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현성은 활발하게 차원 전쟁을 벌이며 부지런히 영토를 넓혀 나갔다.

    그때 카이로에게서 문자가 왔다.

    주인님, 살려 주세요!

    ‘뭐지?’

    카이로가 구조 문자를 보낼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가 보자.’

    현성이 황급히 차원 게이트를 열었다.

    화악!

    차원 게이트를 통과한 현성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대규모 전쟁이었다.

    수많은 적군 플레이어들이 카이로의 고향 차원을 공격한 것이다.

    시즈라가 이끄는 언데드 대군을 비롯해 과거 왕과 대영주였던 자들이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었지만, 적의 군세가 너무 강력했다.

    ‘시즈라가 없었다면 진작 무너졌겠어.’

    그만큼 아군과 적군의 전력 차이가 극심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이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사용했다.

    그와 동시에 시즈라의 언데드 대군과 휘하 신하들에게도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가 가진 권능을 나눠 주었다.

    “주군께서 오셨다!”

    “우와아아아!”

    “이제 살았다!”

    “다 쓸어버려!”

    현성에게서 권능을 나눠 받은 아군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우두머리를 잡아야 해.’

    이 정도 대규모 침공이라면 대군주가 직접 나섰을 확률이 높았다.

    꽈아아아아앙!

    그때 멀리서 강력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슈욱! 슈욱!

    현성이 연달아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강력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는 장소로 이동했다.

    “히이이이익!”

    “네 이놈, 거기 서라!”

    문제의 장소에 도착한 현성의 눈에 비명을 지르며 도주하고 있는 카이로와 그 뒤를 추격하는 적군 플레이어의 모습이 들어왔다.

    “주인님! 저놈입니다! 저놈!”

    현성의 모습을 발견한 카이로가 힘차게 목청을 높였다.

    “저놈이 바로 사억라니입니다!”

    카이로의 말을 들은 현성은 왜 갑자기 대규모 침공이 일어났는지 이해했다.

    그리고 확실하게 인지했다.

    ‘마르코스와 맺은 계약을 통해 계속해서 이득을 보기 위해서는 저놈을 반드시 제거해야 해.’

    파지지직! 화르르륵!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로 전신을 뒤덮은 현성이 용혈검을 뽑아 들고 사억라니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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