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의 등장
현성은 반인반룡들의 차원을 점령한 이후 더 적극적으로 차원 전쟁을 이어 나갔다.
다수의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을 확보했기에 적군 차원을 침공하기가 더 손쉬워졌기 때문이다.
그간 성장이 멈춰 있었던 용인화 스킬도 조금씩이지만 성장을 계속했다.
용혈검의 경우는 불마루스와 반인반룡들 덕분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라고는 하지만 불마루스와 반인반룡들은 용족으로 분류되었다.
그 덕분에 용혈검은 반인반룡인 불마루스와 그 수하들의 용혈을 먹으며 성장이 가능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너무 과도하게 용혈을 흡수하면 불마루스를 비롯한 반인반룡들의 스텟이 영구적으로 하락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현성은 적당한 수준에서 불마루스와 반인반룡들의 용혈 흡수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불마루스와 반인반룡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다.
그런 만큼 시간이 흐르면 소실된 용혈이 다시금 복구되었다.
현성은 헌혈 버스를 운용하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반인반룡들의 차원을 방문해 용혈검에 용혈을 먹였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용혈검을 성장시킬 수 있는 텃밭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달 정산이나 확인해 보자.’
현성이 그동안의 판매 수익을 계산해 봤다.
“어?”
그러던 중 현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게 뭐야?’
매출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특히 적군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전자 제품의 판매량이 급감했다.
‘도대체 이유가 뭐지?’
현성의 주력 판매 상품은 게임,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같은 문화 콘텐츠다.
하나 그 근간이 되는 건 바로 전자 제품이었다.
현성이 아무리 수많은 문화 콘텐츠를 판매해도 그걸 구동할 전자 제품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었으니까 말이다.
‘신제품을 출시했는데도 이 모양이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교류의 보석 판매량은 왜 갑자기 확 올라간 거야?’
전자 제품과 교류의 보석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전자 제품과 전자 제품을 연결하는 인터넷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교류의 보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전자 제품과 교류의 보석 판매량은 서로 연동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자 제품이 많이 판매되고 교류의 보석 판매량이 줄어든 적은 있어도 그 반대는 처음인데?’
현성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전부터 기미는 있었어.’
미세하게 전자 제품의 판매량이 줄어들고 교류의 보석 판매량이 늘어나기는 했다.
하지만 워낙 소액이라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현성도 그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만 생각했다.
한데 이번 달에 갑자기 상황이 뒤바뀌었다.
신제품을 출시했음에도 이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전자 제품의 판매량이 떨어지고 교류의 보석 판매량이 올랐다.
‘원인이 뭐지?’
현성이 머리를 굴려 봤다.
하나 현성으로서는 원인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적군 시스템 상점에는 현성이 직접 접속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이로를 불러야겠어.’
직접 옆에 앉혀 놓고 이번 일이 벌어진 원인을 파악해 볼 필요가 있었다.
현성이 대군주의 부름 스킬을 사용해 당장 카이로를 소환했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입가에 짜장 양념 소스를 잔뜩 묻히고 있는 카이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십니까, 주인님?”
“식사 중이었나 봐?”
“예, 그렇습니다. 요즘 제가 지구 음식에 푹 빠져 있거든요. 제가 이제까지 먹어 본 음식 중에서…….”
카이로가 주절주절 지구 음식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건 현성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전자 제품 판매량이 너무 많이 떨어졌어.”
현성의 한마디에 카이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약간 줄어든 건데,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상승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교류의 보석 판매량은 더 증가했잖아.”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카이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현성은 가슴이 답답했다.
카이로는 전자 제품 판매량 하락과 교류의 보석 판매량 증가가 뭘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놈은 생각이라는 걸 안 하고 사나.’
현성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입을 열었다.
“이상하잖아. 전자 제품이 없는데 교류의 보석을 어디에 쓰려고 이렇게 많이 샀겠어. 당장 후기 보고 원인 파악해.”
현성의 지시에 카이로가 귀를 축 늘어트리고는 시스템 상점에 접속했다.
“찾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카이로가 원인을 찾았다고 말했다.
“벌써?”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구매평에 나와 있더라고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인님.”
그 말과 함께 카이로가 상품 몇 개를 구매했다.
“이겁니다.”
“이게 뭐야?”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작은 금속 물체들을 바라보았다.
마력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은 아이템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사용 방법이.”
카이로가 금속 물체 중 하나의 버튼을 눌렀다.
화악!
그 순간 금속 물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냈다.
환한 빛과 함께 커다란 스크린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게 뭐야?”
현성이 물었다.
“TV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합니다.”
“이게 TV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예.”
그 말과 함께 카이로가 허공을 툭 하고 쳤다.
그러자 카이로의 눈앞에 반투명한 형태의 입력창이 나타났다.
카이로가 입력창을 조작하자 눈앞에 펼쳐진 스크린에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현성은 눈앞에 펼쳐진 황당한 상황에 쉽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3D로도 구현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카이로가 다시금 반투명한 형태의 입력창을 조작했다.
그러자 스크린 형태로 영상을 보여 주던 영상이 3D로 바뀌었다.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카이로가 시스템 상점에서 물품들을 구입해 현성에게 보여 주었다.
반지나 손목시계 형태를 가진 것들이 놀랍게도 TV, 스마트폰, 컴퓨터와 비슷한 기능을 했다.
가장 놀란 건 홀로그램이면서도 터치가 된다는 거였다.
그것도 가상현실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퀄리티를 가진 홀로그램이 말이다.
‘홀로그램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봐도 진짜 같을 정도야. 거기에 물리력도 있다면?’
현실을 게임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마치 마법 같은 일이었다.
정말 영화에서나 볼 법한 미래 기술이었다.
“이런 것도 있습니다.”
현성이 놀란 모습이 기분 좋은지 카이로가 이런저런 물품들을 구입해 시연회를 펼쳤다.
족히 수백 년 후의 미래에서나 볼 법한 기술의 향연이 현성의 눈앞에서 연달아 펼쳐졌다.
현성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이것 때문에 기존의 전자 제품 판매가 저조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휴대성이나 성능 차이가 꽤 크니까요. 제가 후기를 봤는데, 교류의 보석을 이 전자 제품에 바르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현성이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간 현성은 독점이라는 이점을 활용해 엄청난 폭리를 취해 왔다.
한데 경쟁자가 등장했다.
그것도 지구보다 월등한 과학 문명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경쟁자가 말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지금은 적군 차원에만 물건을 판매한다.
하나 시간이 흐르면?
현성처럼 판매망을 늘려 아군 차원에도 진출할 것이다.
또 적군 차원은 현재 현성의 주 수입원이었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주 수입원이자 전체 규모의 절반에 달하는 적군 차원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절대 잃을 수 없었다.
무언가 수를 써야 했다.
* * *
‘대박이다.’
마르코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렇게 잘 팔릴 줄이야.’
마르코스는 얼마 전 각성한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처참한 스텟과 구매, 판매라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고유 스킬을 보고 큰 절망에 빠졌다.
하나 시스템 상점에 접속한 뒤 생각이 달라졌다.
덩치도 크고 극도로 비효율적인 전자 제품들이 엄청나게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마르코스는 자신의 집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높은 가격에 판매했다.
그리고 떼돈을 벌었다.
그 후에는 드라마, 영화, 소설, 만화 같은 문화 상품도 판매했다.
‘완전히 노다지네.’
포인트를 이렇게 쉽게 벌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경쟁자가 있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야.’
극도로 비효율적인 전자 제품 따위는 가뿐히 지르밟을 자신이 있었다.
‘문화 상품은 양으로 밀어붙이면 그만이야.’
마르코스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쇼핑을 시작했다.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을 판매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비약과 스킬북을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어?”
그런 마르코스의 눈앞에 난생처음 보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판매자 마르코스 님의 물품을 구매한 구매자 카이로 님으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왔습니다. 컴플레인이 지속 및 누적되면 판매자 등급이 하락하거나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컴플레인 내용을 읽어 보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이런 것도 있었나? 어? 그런데 카이로라면 상당히 익숙한 이름인데?’
마르코스가 시스템 상점에 접속했다.
‘역시.’
비효율적인 전자 제품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플레이어였다.
‘무시해? 아니야. 일단 읽어 보자.’
마르코스가 컴플레인 메시지를 확인했다.
XX사의 구형 홀로그램 TV – 일반 등급 컴플레인
-전자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카이로라고 합니다. 동업 제의를 드리고자, 이렇게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마르코스 님에게도 큰 이득이 될 내용이니, 부디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교류의 보석이라는 아이템을 통해…….
마르코스가 컴플레인 메시지를 다 읽지도 않고 꺼 버렸다.
‘동업은 무슨.’
마르코스는 자신감이 있었다.
카이로라는 플레이어가 판매하는 상품을 가볍게 누르고 시장 전제를 장악할 자신감이 말이다.
그런 마르코스에게 있어서 카이로의 동업 제의는 고민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 * *
“아직도 답장이 없어?”
현성이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없습니다.”
카이로의 대답에 현성은 골치가 아팠다.
‘어떻게 해야 하지?’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했다.
현성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것은 상대방과 손을 잡는 것이다.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을 판매하는 1레벨 플레이어가 1백 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열 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전 차원을 통틀어 단 두 명만 존재한다.
그럼 굳이 서로 싸울 필요가 없었다.
현성과 마르코스가 손을 잡으면 간단하게 시장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
‘거절인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 상품은 논외로 치더라도 전자 제품의 경우에는 현성이 판매하는 지구산 물품보다 마르코스라는 플레이어가 판매하는 물품의 성능이 월등히 뛰어났으니까 말이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다른 플레이어들은 마르코스가 판매하는 전자 제품을 복제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과학이라는 토대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차원이니 당연했다.
하나 지구는 달랐다.
“일단 마르코스라는 플레이어가 판매하는 물품, 종류별로 전부 다 구입해.”
“예, 주인님.”
‘분석이라도 해 보자.’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전자 제품.
솔직히 전기를 동력원으로 쓰는지 전자 기판이 들어가는지 확인할 수 없기에 전자 제품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 체계가 지구와 완전히 다른 것 같지는 않았다.
전체적인 용도가 비슷했고 지구와 완전히 다른 문명을 쌓아 올렸다기보다는 지구보다 더 진보한 문명을 쌓아 올린 느낌이 강했으니까 말이다.
‘지구에서 생산이 가능할 수도 있어.’
물론 당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꼭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시간과 돈 그리고 전 세계의 석학들을 모조리 갈아 넣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 * *
마르코스는 신나게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 들을 팔아 치웠다.
그 결과 마르코스는 순식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판매자 마르코스 님의 물품을 구매한 구매자 사억라니 님으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왔습니다. 컴플레인이 지속 및 누적되면 판매자 등급이 하락하거나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컴플레인 내용을 읽어 보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또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카이로인가 뭔가 하는 놈이 아니잖아?’
누군지도 모르는 놈에게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어?’
-판매자 마르코스 님의 물품을 구매한 구매자 사억라니 님으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왔습니다. 컴플레인이 지속 및 누적되면 판매자 등급이 하락하거나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컴플레인 내용을 읽어 보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후략……
그때 또다시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그것도 연달아서 말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마르코스는 사억라니라는 플레이어가 왜 컴플레인을 걸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단 읽어 보자.’
마르코스가 컴플레인 메시지를 확인했다.
XX사 홀로그램 시계 – 일반 등급 컴플레인
-앞으로는 지금 판매가의 절반 가격으로 판매하도록 하세요. 판매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시간 지난 후입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후회할 겁니다.
XX사 홀로그램 시계 – 일반 등급 컴플레인
-앞으로는 지금 판매가의 절반 가격으로 판매하도록 하세요. 판매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시간 지난 후입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후회할 겁니다.
……후략……
모두 똑같은 내용의 협박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총 5,321종의 판매 물품 중 3,724종의 물품에 대해 컴플레인이 들어왔습니다. 전체 판매 물품의 70%가 임시 불량품으로 등록되었습니다. 3일간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셨습니다. 일주일 안에 컴플레인을 해결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임시 불량품들이 영구 불량품으로 등록되고 3개월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마르코스는 영업정지를 당할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
* * *
‘거절인가?’
사억라니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나 결국은 굴복할 수밖에 없을 거다.’
사실 사억라니가 이런 짓을 벌인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새로운 차원의 뉴비가 등장해 새로운 물품을 판매한다?
그럼 컴플레인을 이용해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지금은 무조건 거절을 하겠지만, 한 3개월 정도 영업 정지를 당하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사억라니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간 수많은 뉴비들을 짓밟으며 성장해 왔다.
하나 이번처럼 대박의 냄새를 풀풀 풍긴 뉴비는 없었다.
‘카이로라는 놈이 전자 제품 판매로 엄청난 대박을 쳤지.’
카이로의 경우는 사억라니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판매하는 물품의 양 자체가 1백 개 수준이 아니라 몇만 개 수준이었으니까 말이다.
사억라니의 포인트가 많기는 했지만 몇만 개씩 팔아 누적 판매량이 몇천만 개에서 몇억 개로 추정되는 고가 제품의 70%나 구입해 컴플레인을 걸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그런 짓을 했다면 사억라니의 포인트가 먼저 바닥을 드러냈을 것이다.
‘카이로의 경우가 특이했던 거고.’
카이로는 아마 전자 제품을 가지고 있는 차원에서 각성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성장한 후 아군 차원이든 적군 차원이든 전자 제품이라는 것을 판매할 수 있는 차원을 점령해 판매한 것이리라.
사억라니의 추측은 나름 정확했다.
카이로가 전자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차원을 점령한 게 아니라 반대로 전자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차원의 군주인 현성의 휘하에 들어갔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절대 놓치지 않는다.’
고인물로 추정되는 카이로와 달리 마르코스는 뉴비다.
전체 판매 물품이 고작 1백 개.
누적 판매량은 고작 수천 개에 불과하다.
그 정도 판매량이라면 사억라니의 포인트로 물량 장악이 가능했다.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
100% 대박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 만큼 사억라니는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붓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 * *
‘어떻게 하지?’
마르코스는 눈앞에 닥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일단 더 많은 물량을 팔아야 해.’
마르코스 역시 바보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카이로라는 판매자와 마찬가지로 전자 제품을 구동할 수 있는 동력원을 따로 판매했다.
‘어디 한번 해보자.’
마르코스가 다시금 상품 판매를 시작했다.
상대가 컴플레인을 해결해 줄 리는 없으니 더 많은 양을 팔아 컴플레인을 무효로 만들 생각이었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이게 뭐야?’
마르코스가 판매하는 모든 전자 제품이 더 저렴한 가격에 올라와 있었다.
‘사억라니 이 자식이.’
범인은 마르코스에게 협박을 가했던 사억라니였다.
사억라니는 마르코스가 판매한 물품의 70% 이상을 구매한 인물이다.
당연히 마르코스가 판매하는 모든 물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후략……
-판매자 마르코스 님의 물품을 구매한 구매자 사억라니 님으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왔습니다. 컴플레인이 지속 및 누적되면 판매자 등급이 하락하거나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컴플레인 내용을 읽어 보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후략……
마르코스가 올린 물건을 모두 사억라니가 사들였다.
그리고 곧바로 컴플레인을 걸었다.
‘해보자 이거지.’
마르코스가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이런 일을 대비해 준비해 놓은 게 있었다.
바로 신제품이었다.
더 효율이 좋은 전자 제품과 대용량 배터리를 판매해 사억라니가 구매한 물품을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려는 계획이었다.
마르코스가 곧바로 계획을 실행했다.
또한 신제품의 가격을 엄청나게 높게 책정했다.
사억라니가 모두 구입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등록된 물품이 판매되었습니다.
……후략……
-판매자 마르코스 님의 물품을 구매한 구매자 사억라니 님으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왔습니다. 컴플레인이 지속 및 누적되면 판매자 등급이 하락하거나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컴플레인 내용을 읽어 보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후략……
사억라니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가격을 올려 판매를 해도, 신제품을 내놔도 마르코스가 판매한 물품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모조리 사들인 후 컴플레인을 걸었다.
그 결과…….
-총 52,729종의 판매 물품 중 47,562종의 물품에 대해 컴플레인이 들어왔습니다. 전체 판매 물품의 90%가 임시 불량품으로 등록되었습니다. 3일간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셨습니다. 4일 안에 컴플레인을 해결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임시 불량품들이 영구 불량품으로 등록되고 3개월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습니다.
‘3개월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3개월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습니다.’로 변경되어 버렸다.
‘이런 망할.’
마르코스가 더 많은 물품을 더 고가에 올렸다.
하지만 사억라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마르코스가 판매한 물품들을 구입했다.
그 결과 포인트는 엄청나게 벌었다.
-누적 습득 포인트가 3,000억 포인트를 돌파했습니다.
-용병 시스템 이용이 가능해졌습니다.
순식간에 누적 습득 포인트가 3천억 포인트를 돌파했으니까 말이다.
하나 그럼 뭐 하겠는가?
영업정지를 당하게 생겼는데.
마르코스는 최선을 다해 저항하고 또 저항했다.
하지만 결국…….
-기한 내에 컴플레인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임시 불량품들이 영구 불량품으로 등록됩니다. 3개월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마르코스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야 말았다.
* * *
‘결국 영업정지를 당한 건가?’
현성이 카이로를 통해 받은 보고서를 읽어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르코스라는 이름의 경쟁자가 사억라니라는 이의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어디를 가나 이런 놈들이 있단 말이지.’
현성 역시 과거 크로우라는 되팔렘을 만나 전쟁을 치른 적이 있었다.
되팔렘과의 전쟁에서 현성은 당당히 승리했다.
전략과 전술을 잘 세우기도 했지만 크로우라는 되팔렘이 과도한 포인트 투자를 부담스러워하며 중간에 물러난 게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하나 사억라니라는 놈은 이미 전자 제품의 파급효과를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절대 물러나지 않고 막대한 포인트를 쏟아부어 승리를 거두었다.
현성의 경쟁자였던 마르코스는 막대한 자본을 가진 갑의 횡포에 으스러진 을의 꼴이 되어 버렸다.
‘나쁘지 않아.’
현성에게는 나쁠 게 전혀 없는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번 일이 마르코스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당장 자체 개발은 힘들어.’
현성은 전 세계 석학들을 끌어모아 마르코스의 차원에서 구입한 전자 제품의 연구를 지시했다.
하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비슷하게 만드는 것은커녕 구동 원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기는 하겠지만, 현성의 입장에서는 그 시간 동안 손해를 보느니 마르코스와 손을 잡는 게 더 큰 이득이었다.
“우리가 샘플로 구입한 물량이 얼마나 되지?”
“총 1천 개가 넘습니다.”
“컴플레인을 통해 접촉을 시도해 봐. 대화가 끝나면 바로 컴플레인 취소하고.”
“알겠습니다, 주인님.”
컴플레인 걸 물건이 1천 개가 넘는다는 건?
‘마르코스를 회유할 기회가 1천 번이나 있다는 거지.’
옛말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는 말이 있다.
열 번이 아니라 천 번을 찍으면?
제아무리 굳건한 나무라도 넘어올 수밖에 없으리라.
‘거기다 심리 상태도 전과는 다를 테고.’
영업정지를 당했다.
한데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자신을 영업정지 시킨 원수에게 모든 것을 빼앗길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협업 제의가 들어온다면?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 * *
‘어떻게 하지?’
영업정지를 당한 마르코스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처음 시스템 상점의 존재를 알았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자신의 차원에서는 널리고 널려 있는 흔한 물건들이 시스템 상점에선 엄청난 고가에 거래되었기 때문이다.
‘금방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영업정지를 당한 마르코스는 3개월 동안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3개월이 6개월이 될 수도 있고 60개월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였다.
-판매자 마르코스 님의 물품을 구매한 구매자 카이로 님으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왔습니다. 컴플레인이 지속 및 누적되면 판매자 등급이 하락하거나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컴플레인 내용을 읽어 보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이런 젠장!”
물건은 팔지도 못하고 있는데 또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어?”
그런데 컴플레인을 건 상대가 사억라니가 아니었다.
‘카이로.’
자신에게 동업을 제의했던 1레벨 플레이어.
그때는 어처구니가 없는 제안이라고 생각해 컴플레인 내용을 다 읽어 보지도 않고 닫아 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약간 달라졌다.
사억라니라는 강도를 만났기 때문이다.
카이로와 사억라니 모두 자신이 가진 전자 제품을 탐내는 건 동일했다.
하나 한쪽에서는 정중하게 동업을 제안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포인트로 밀어붙여 마르코스를 노예처럼 부리려고 하고 있었다.
‘한번 읽어나 보자.’
마르코스가 카이로가 보낸 컴플레인의 내용을 확인했다.
XX사의 구형 홀로그램 시계 – 일반 등급 컴플레인
-전에 동업 제의를 드렸던 카이로라고 합니다. 답장이 없으셔서 이렇게 다시 연락을 드립니다. 저는 절대 마르코스 님에게 해가 될 제안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교류의 보석이라는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러 방법을 통해 마르코스 님과 서로 상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차원 중 전자 제품이라는 무기를 들고 있는 건 저와 마르코스 님 단둘뿐입니다. 우리가 굳이 서로 출혈경쟁을 하며 싸울 필요가 있을까요? 저와 손을 잡으신다면 우리는 함께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꽤 긴 컴플레인 내용을 모두 읽은 마르코스가 장고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