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권. 반인반룡들의 차원 (195/225)

┃반인반룡들의 차원

현성은 우선 정찰을 시작했다.

‘역시 전체적인 레벨이 높아.’

지금까지 현성이 차원 전쟁을 치렀던 그 어떤 차원보다도 평균 레벨이 높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할 만해.’

문제는 언데드 거인을 한 방에 날려 버린 존재.

반인반룡들이 살아가는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로 추정되는 존재의 무력이었다.

사실 지구의 경우에도 현성과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의 수준 차이가 꽤 컸다.

당연히 반인반룡들이 살아가는 차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반인반룡들이 살아가는 차원의 일반적인 플레이어와 1레벨 플레이어가 지구의 일반적인 플레이어와 현성만큼 차이가 난다면?

반인반룡들의 차원을 점령하는 일을 당장 백지화해야 했다.

‘일단 정보부터 모으자.’

전쟁을 치르기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정보 수집이었다.

현성은 반인반룡들의 도시에 잠입해 정보를 모았다.

그 결과 반인반룡들의 차원이 한 명의 황제와 여러 명의 제후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간 수없이 방문했었던 적군 차원들과 비슷한 구조였다.

‘그럼 그놈만 잡으면 끝이야.’

현성이 반인반룡들의 수도로 향했다.

반인반룡들의 수도에 도착한 현성은 잔뜩 긴장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방비가 허술하네.’

차원을 지배하는 절대자가 있어서일까?

의외로 수도의 방비는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현성은 수도 중심에 위치한 황성으로 들어갔다.

황성의 경비 역시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다.

하나 황성은 황성이었다.

경비는 대단하지 않았지만 은신 스킬을 파훼할 수 있는 스킬들이 상시 발동되어 있었고 마력 역장 역시 펼쳐져 있었다.

‘일단 기다려 보자.’

황제를 직접 봐야 견적이 나올 것 같았다.

현성은 차분하게 황제가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황제의 코빼기도 볼 수가 없었다.

‘분명히 황성에 있는 게 맞는데?’

도대체 뭔 짓을 하는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 불러내야지.’

현성이 시즈라의 라이프 포스 베슬을 손에 쥐고 짧게 세 번 연속으로 마력을 주입했다.

사아아악!

라이프 포스 베슬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빛 마력이 인간의 형상을 갖췄다.

“무슨 일이십니까?”

시즈라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분탕질 좀 쳐 줘야겠어.”

“분탕질요?”

현성이 간단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때 시즈라의 두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여기가 그때 그 차원이라는 말씀이시지요?”

“맞아.”

“알겠습니다. 제대로 분탕질을 쳐 드리죠.”

시즈라가 순순히 현성의 말에 대답하고는 휘하 언데드 몬스터들을 소환했다.

시즈라는 그간 현성에게 지속적으로 마력을 보급받았다.

그 결과 왕과 대영주급의 최상위 언데드들을 모두 복구했다.

‘자존심이 꽤 상했던 모양이네.’

과거 언데드 거인이 일격에 파괴당하고 반인반룡들에게 쫓겼던 일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디 한번 얼굴이나 보자.’

현성은 느긋한 마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반인반룡들의 차원을 지배하는 황제를 기다렸다.

황제가 예상보다 강하다면?

시즈라와 언데드들을 포기하고 도주하면 그만이다.

라이프 포스 베슬만 있으면 시즈라는 얼마든지 부활시킬 수 있다.

시즈라가 부활하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데드 군단 복구 역시 가능했다.

시즈라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때의 설욕전을 해 주마.’

반인반룡들의 차원.

이곳은 언데드 거인에게 정신이 잠식된 시즈라를 구원해 준 장소였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최강의 언데드가 일격에 박살 나는 굴욕을 겪었던 곳이기도 했다.

애증의 장소.

그렇지만 시즈라에게는 사랑하는 마음보다 증오하는 마음이 더 컸다.

자신을 언데드 거인에게서 해방시켜 준 자 역시 강압적으로 타 플레이어를 억압하는 군주 플레이어였기 때문이다.

현성을 만나고 군주에 대한 무조건적인 살해 욕구는 많이 줄어들었다.

군주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군주에 대한 증오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박살을 내 주마.’

현성의 허락을 받은 일이다.

시즈라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고삐가 풀렸다고 할 수 있었다.

사아아아악!

시즈라가 몸속에 잠들어 있던 마력을 일깨웠다.

우득! 우득!

칠흑빛 마력들이 언데드로 변했다.

-그어어어어!

-우워어어억!

언데드 몬스터들이 수도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황궁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들었다.

“이건 뭐야?”

“어디서 갑자기 언데드 몬스터가?”

“막아라!”

꽈아앙! 꽈아앙!

수도와 황궁을 지키고 있던 반인반룡들이 달려들어 언데드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하나 단순 수비병들만 가지고 언데드들을 모두 처리하는 건 무리였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부활하는 언데드의 특성 때문이었다.

‘전과는 달라.’

시즈라는 그간 꽤 많은 마력을 축적했다.

또 현성이 시즈라의 라이프 포스 베슬을 통해 계속해서 마력을 주입해 주고 있었다.

현성은 각 차원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신하들에게서 마력을 보충받는다.

그런 현성의 지원을 받는 시즈라의 마력은 사실상 무한에 가까웠다.

거기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언데드들의 몸이 칠흑빛 뇌전과 화염에 휩싸였다.

단순히 현성의 마력만을 전달받은 것이 아니라 현성이 보유하고 있는 스킬을 전달받은 것이다.

이는 현성이 오랜 시간 연구해 탄생시킨 무 등급 스킬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의 새로운 권능이었다.

-크오오오!

으드드득! 파지지직!

현성의 마력과 스킬을 전달받은 것도 모자라 생전의 무력마저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는 언데드 군단의 전투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막아라!”

-콰콰콰콰콰!

반인반룡들이 브레스를 쏘고 온갖 공격 스킬을 난사했지만, 파괴된 언데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다시 부활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앙!

언데드들의 손에 죽었던 반인반룡들이 언데드로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죽여라!”

“절대 저놈들이 황궁에 발을 들이게 해서는 안 된다!”

서열이 높아 보이는 반인반룡들이 강력한 힘을 뽐내며 언데드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했다.

하지만 전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언데드들은 파괴하기 무섭게 부활했다.

거기다 전사한 동족들마저 언데드로 부활한다.

그러다 보니 언데드가 파괴되는 속도보다 늘어나는 숫자가 월등히 빨랐다.

거기다 현성이 부여한 화염의 서가 가진 권능 때문에 반인반룡들은 언데드에게 입은 부상을 치료할 수도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반인반룡들은 일방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시즈라 혼자였다면 이렇게 날뛸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 현성이 마력과 스킬을 지원해 주는 이상 시즈라는 두려울 게 없었다.

그때였다.

“크아아아아아!”

반인반룡 중 하나가 엄청난 마력을 뿜어내며 언데드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

반인반룡이 뿜어낸 브레스에 언데드들이 우수수 쓸려 나갔다.

‘뭐지?’

시즈라는 갑작스럽게 파워업을 한 적의 행동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당황한 시즈라와 달리 현성은 갑자기 반인반룡 중 하나가 파워업을 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대군주의 축복이네.’

반인반룡들의 황제가 대군주의 축복 스킬을 사용해 휘하에 있는 신하 한 명에게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어지간히 엉덩이가 무거운 모양이네.’

지구에서 이런 소동이 일어났다면?

현성은 진작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한데 반인반룡들의 황제는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 대군주의 축복을 선택했다.

‘정말 징하다. 나왔어도 진작에 나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나서는 대신 대군주의 축복을 선택했다.

‘그런다고 사태가 해결될 것 같냐.’

대군주의 축복으로 자신의 힘을 휘하 신하에게 부여할 수 있다.

하나 신하는 그 힘을 100% 활용하지 못한다.

결정적으로 현성 역시 라이프 포스 베슬을 통해 언데드들에게 대군주의 축복과 비슷한 효과를 주고 있었다.

‘네가 끝까지 안 나올 수 있나 보자.’

현성은 시즈라의 라이프 포스 베슬에 더 강한 마력과 권능을 부여했다.

이에 시즈라는 현성이 전해 준 강력한 마력과 권능을 소수의 언데드들에게 주입해 그들을 파워업시켜 대군주의 축복을 받은 반인반룡을 상대하게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어차피 언데드는 죽여도 죽여도 다시 되살아난다.

반면 반인반룡들은 부상을 회복하지도 못했고 죽으면 언데드로 되살아났다.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그러지 않으면 넌 절대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없을 거다.’

이번 전투는 단순한 언데드들과 반인반룡들의 싸움이 아니다.

현성과 황제가 언데드 군단과 반인반룡 군단을 통해 펼치는 일종의 대리전이었다.

그리고 그 대리전은 승기는 서서히 현성에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 * *

-휘하 신하 볼카루드가 사망했습니다.

-휘하 신하 모티고가 사망했습니다.

-휘하 신하 보라트가 사망했습니다.

……후략……

“이런 썅!”

적룡 길드의 명운이 달린 공성전을 치르고 있던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욕설을 내뱉었다.

“이 머저리 같은 놈들! 왜 자꾸 죽는 거야?”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의 외침에 게임을 하던 휘하 신하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너희들한테 한 소리가 아니다. 게임에 집중해.”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그 말과 함께 다시금 게임에 열중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휘하 신하들이 사망했다는 메시지가 계속해서 그의 눈앞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작 언데드 따위 하나 해결하지 못해서 이런 꼴을 보여?’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의 이름은 불마루스.

반인반룡들의 차원을 비롯해 수백 개에 달하는 차원을 지배하는 대군주였다.

그는 꽤 오래전부터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그래서 웬만한 일은 신하들에게 다 위임했다.

수도에 언데드 군단이 등장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신하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해결할 거라고 생각했다.

신하들이 계속 도움을 요청하자 귀찮지만 대군주의 축복을 내렸다.

그럼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젠장! 네가 대신 하고 있어!”

결국 불마루스가 키보드와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휘익!

황궁 내부에서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반인반룡들의 차원을 다스리는 황제 불마루스였다.

-콰콰콰콰콰콰!

불마루스의 입에서 소멸의 권능이 담긴 화염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언데드 군단이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불마루스의 화염 브레스에 당한 언데드들은 다시금 부활하지 못했다.

근본이 사라져 완전히 소멸해 버린 것이다.

‘역시 강하다.’

현성이 그 모습을 보고 시즈라에게 철수 신호를 보냈다.

라이프 포스 베슬이 멀쩡한 이상 시즈라는 소멸하더라도 다시 부활할 수 있다.

하지만 시즈라가 부리는 언데드들은 아니었다.

여기서 계속 피해를 입으면?

아까운 언데드들을 모두 잃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해볼 만해.’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은 확실히 강했다.

하나 전처럼 압도적인 전율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아아아악!

언데드 군단이 시즈라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그 후 시즈라는 라이프 포스 베슬로 되돌아왔다.

‘일단 물러나자.’

현성이 훌쩍 자리를 떴다.

아니, 뜨려고 했다.

“네 이놈, 어딜 도망가느냐!”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노성과 함께 자신에게 달려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런 망할.’

현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현성이 있는 곳은 적진 한복판이다.

그런 만큼 이곳에서 정면으로 충돌하는 건 현성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저번에는 못 알아차리더니, 이번에는 어떻게 알아차린 거야?’

휘익!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이 현성을 향해 날카로운 발톱으로 무장한 오른팔을 휘둘렀다.

우득! 우득!

현성이 용인화 스킬을 사용해 용인으로 변했다.

그 후 왼팔로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의 공격을 막아 냈다.

꽈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현성과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의 거리가 잠시 벌어졌다.

현성이 용인의 날개를 펄럭이며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날개를 가진 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허공에서 치열한 추격전이 펼쳐졌다.

현성은 어떻게든지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을 떼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나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하늘로 날아오르면 하늘로 날아서 쫓아오고,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도망치면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따라왔다.

‘어쩔 수 없다.’

도망치는 건 무리였다.

‘이 자리에서 결판을 봐야 해.’

계속해서 도주를 시도하다가는 현성의 체력과 마력만 줄어들 뿐이다.

현성이 몸을 돌린 후 입을 쩍 벌렸다.

-콰콰콰콰콰콰!

현성의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도 피하지 않고 현성을 향해 브레스를 뿜었다.

꽈아아아아앙!

검붉은 불꽃이 하늘을 뒤덮었다.

‘거리를 꽤 벌리기는 했어.’

수도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

‘가라.’

현성이 시즈라의 라이프 포스 베슬에 마력을 주입했다.

모습을 드러낸 시즈라를 향해 현성이 수도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시즈라가 고개를 끄덕인 후 언데드 군단을 소환해 반인반룡들의 수도로 향했다.

“건방진!”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노성을 터트리며 시즈라를 향해 붉은 화염을 흩뿌렸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이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이용해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날린 공격을 막아 냈다.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을 텐데?”

현성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맹공을 가했다.

“크윽!”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도 시즈라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자기 한 몸 앞가림하기도 바빴으니까 말이다.

“후회하게 해 주마.”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눈을 번뜩이며 직업 전용 스킬, 대군주의 부름을 사용했다.

화아아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수천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반인반룡이 아니었다.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진 타 차원의 플레이어들이었다.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에게 소환된 플레이어들이 다른 플레이어들을 소환했다.

‘해보자 이거지.’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타 차원에 있는 자신의 휘하 군주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불러낸 휘하 군주들이 또 휘하의 신하들을 불러냈다.

사실상 자신의 휘하에 있는 전력을 총동원한 것이다.

‘너만 신하가 있는 게 아니야.’

현성 역시 대군주의 부름 스킬을 사용했다.

화아아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현성의 휘하에 있는 신하들이 대거 소환되었다.

그들 중 군주 직업을 가진 이들은 다시금 다른 신하들을 불러들였다.

방금 전까지 단둘이 격전을 벌이던 장소가 순식간에 수십만의 군세가 뒤엉켜 싸우는 전장이 되어 버렸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이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의 수하들을 향해 흩뿌렸다.

“아아아악!”

칠흑빛 뇌전과 화염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며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의 수하들을 덮쳤다.

“이놈!”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도 노성을 터트리며 현성의 수하들을 향해 화염의 비를 흩뿌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현성이 자신의 수하들을 공격하니 자신도 현성의 수하들을 공격한 것이다.

하나 현성에게는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과 달리 나름의 대비책이 있었다.

화르르륵!

현성의 수하들을 향해 날아가던 화염이 방향을 바꿔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의 수하들에게 날아갔다.

화염의 서가 가진 화염 스킬에 대한 지배력이 발동된 것이다.

“주군! 왜 우리에게!”

“살려 주십시오! 주군!”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의 수하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터트리며 죽어 나갔다.

“이익!”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집중을 해야지.’

화염의 서 스킬이 가진 화염 스킬의 지배력도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넓게 흩뿌린 화염 정도는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었다.

-콰콰콰콰콰콰!

노화가 치민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이번에는 브레스를 뿜어냈다.

현성이 화염의 서를 이용해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날린 브레스를 컨트롤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아까처럼 넓게 흩뿌리는 형식이 아닌 한곳에 집중된 공격이었기에 화염의 서가 가진 화염 스킬에 대한 지배력이 먹히지 않은 것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

현성에게는 믿음직한 수하들이 있었다.

루시아가 방패를 들고 정면으로 화염 브레스를 막아섰다.

화르르륵!

루시아의 방어 스킬이 순식간에 분쇄되었다.

그와 동시에 머리카락과 피부가 녹아내렸다.

화염 브레스 한 방을 막아 낸 대가로 루시아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우득! 우득!

손상된 루시아의 신체가 순식간에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존재의 근원을 소멸시키는 힘이 담긴 공격을 받은 상대가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했기 때문이다.

푸욱!

그때 현성의 손에 들린 용혈검이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의 몸통을 파고들었다.

화염 브레스를 쏘는 틈을 노려 현성이 반격을 가한 것이다.

“크아아아악!”

분노한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현성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현성은 수비에 열중하며 중간중간 반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 반격의 대상 중에는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의 수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도 현성의 수하들을 향해 반격을 날렸다.

하지만 루시아의 탄탄한 방어를 꿰뚫을 수는 없었다.

루시아는 전신이 만신창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날린 공격을 막아 냈다.

그리고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했다.

“네놈이 원인이었구나!”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현성을 노려보며 외쳤다.

존재의 근원을 소멸시키는 힘을 무시하고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현성이 보유한 스킬 불사의 서가 가진 권능이었다.

현성은 그간 스텟만 올린 게 아니었다.

무급 스킬들의 활용법을 꾸준히 연마했다.

그 결과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신하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자가 회복 스킬인 불사의 서가 가진 권능 역시 신하들에게 전달이 가능했다.

‘물론 다는 아니고 고작 네다섯 명이 한계이기는 하지만.’

공격 스킬인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는 다수의 인원에게 그 권능을 빌려줄 수 있다.

하지만 회복 스킬이자 부활의 권능까지 있는 불사의 서의 경우에는 소수의 인원에게밖에 권능을 빌려주지 못했다.

방어 스킬인 천뢰신의 갑옷 역시 아직은 다수에게 적용이 불가능했다.

“네 이놈!”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노성을 터리며 현성을 향해 맹공을 가했다.

현성의 수하들을 공격해 봤자 자신만 손해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꽈아앙! 꽈아앙!

현성은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의 공격을 막으면서 간간이 반격을 했다.

하늘 위에서 펼쳐지는 현성과 붉은 비늘 반인반룡의 대결은 상당히 팽팽했다.

하나 지상에서 벌어지는 휘하 수하들 간의 싸움은 현성 쪽이 월등히 우세했다.

그 이유는 당연히 현성이 휘하 신하들에게 전달해 준 권능과 가끔씩 흩뿌려 준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 덕분이었다.

반인반룡의 휘하 수하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전향자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모시던 군주가 목숨을 잃어 전향하는 경우도 있었고, 군주가 스스로 충성 맹세를 철회해 전향하는 경우도 있었다.

* * *

‘이런 빌어먹을.’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 불마루스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실수다.’

차라리 휘하 신하들을 동원하지 않는 게 나았다.

그랬다면 오히려 할 만했을 것이다.

한데 휘하 신하들을 동원한 탓에 일방적으로 밀리게 생겼다.

상대와 불마루스의 전투력은 호각.

하나 불마루스는 점점 지쳐 가고 있었고 상대는 점점 더 쌩쌩해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상대가 가진 스킬 때문이다.

‘나와 내 휘하 신하들의 체력과 마력을 빼앗아 가고 있어.’

상대가 가진 스킬.

그리고 그 스킬의 권능을 전달받은 적의 신하들.

그 때문에 자신과 휘하 신하들의 체력과 마력은 줄어들고, 적과 적 신하들의 체력과 마력은 계속해서 불어났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불마루스도 무 등급 스킬의 소유자였다.

하나 그는 휘하 신하들에게 권능을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권능을 사용하는 쪽으로 무급 스킬을 발전시켰다.

‘저놈을 죽이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나.’

공격력은 불마루스가 한 수 위였다.

‘단기 결전으로 승부를 낸다.’

장기전은 불리했다.

마력과 체력에서도 차이가 났지만, 결정적으로 불마루스에게는 소멸의 권능에 당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회복 계열 무 등급 스킬이 없었다.

불마루스의 전신이 붉은 화염으로 뒤덮였다.

그와 동시에 불마루스의 마력이 극도로 압축되어 갔다.

마력이 급속도로 고갈되어 가기 시작했다.

불마루스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들을 모조리 사용했다.

스킬의 쿨타임이 길다거나 페널티가 있는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 그대로 모든 스킬을 갈아 넣었다.

꽈아아아앙!

불마루스의 일격이 적의 방어를 뚫고 유효타를 남겼다.

“으아아아아!”

전신이 붉은 화염으로 뒤덮인 불마루스가 적을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미친.’

현성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 이겼다고 생각했다.

한데 갑자기 상대의 전투력이 급상승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현성도 가지고 있는 패시브 스킬을 비롯해 온갖 스킬들을 총동원했다.

하지만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내기는 불가능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폭음이 터져 나올 때마다 현성의 몸에 큼지막한 상처들이 생겨났다.

상대의 무지막지한 공격력 앞에서는 창조 등급 방어구와 방어 스킬 그리고 용인의 비늘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무급 스킬 성장 방향이 나랑 완전히 달랐구나.’

범용성은 현성이 월등히 우월했다.

휘하 신하들에게 권능을 전달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나 파괴력에 있어서만큼은 상대가 한 수 위였다.

‘이대로 가면 위험해.’

부활의 권능을 가진 불사의 서가 있는 이상 현성의 승리는 확정적이다.

하나 목숨을 잃으면?

애써 무급 스킬로 성장시킨 불사의 서 등급이 형편없이 추락할 것이다.

현성이 가진 힘이 커진 만큼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서 소모해야 하는 권능 역시 막대할 테니까 말이다.

‘뼈를 주고 살을 취한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게 아니다.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거다.

휘익!

현성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적의 공격을 의도적으로 허용했다.

푸욱!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반인반룡의 팔이 현성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와 동시에 붉은 화염이 현성의 몸을 불태웠다.

“으드득!”

현성이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 내며 자신의 왼팔로 적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오른손에 들려 있던 용혈검을 적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 * *

‘이런 빌어먹을.’

불마루스는 자신의 오른팔이 상대의 심장을 꿰뚫는 순간,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의 왼팔이 자신의 오른팔을 봉인했다.

그리고 상대의 오른팔에 들린 검이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이런 젠장.’

불마루스가 왼팔을 들어 올렸다.

퍼억!

가까스로 목이 날아가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하나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왼팔이 반 이상 잘려 나갔으니까 말이다.

다른 공격에 당한 상처였다면 순식간에 회복했을 것이다.

하나 존재의 근원을 소멸시키는 힘이 있다 보니 부상당한 왼팔을 회복시키는 게 불가능했다.

퍼억!

불마루스가 적의 배를 발로 차고 거리를 벌렸다.

타악!

하지만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맹공을 펼쳐 왔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맹공을 퍼붓는 난타전.

적은 방어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하고 싶으면 공격해 보라는 듯 자신의 급소를 노출시켰다.

마치 같이 죽자는 식의 맹공을 펼친 것이다.

그런 적에 비해 불마루스의 공격은 매우 소극적이었다.

방금 전과 달리 과감한 공세를 펼치지 못하고 오히려 방어에만 치중했다.

한 번의 실수로 왼팔을 잃었다.

다음 실수로 사지 중 하나를 또 잃는다면?

이번 전투는 불마루스의 필패였다.

‘저놈은 도대체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거야?’

일반적인 생명체는 심장이 꿰뚫리면 죽는다.

설사 즉사를 면한다고 해도 한동안은 전투력이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한데 마치 무생물처럼 공세를 펼쳤다.

또한 심장이 꿰뚫리는 중상을 순식간에 회복해 버렸다.

서걱! 서걱!

자잘한 상처가 하나둘 늘어났다.

왼팔을 잃은 후부터 불마루스는 계속해서 밀리고 있었다.

혈액이 소실되며 체력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길 수가 없어.’

근원을 소멸시키는 권능은 둘 다 가지고 있었다.

하나 한쪽은 소멸되어 버린 근원을 멀쩡히 회복시킬 수 있다.

그에 반해 다른 한쪽은 소멸되어 버린 근원의 회복이 불가능하다.

‘내가 졌다.’

불마루스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휘익!

그때 상대의 검이 불마루스를 향해 휘둘러졌다.

“항복하겠다!”

불마루스가 목이 터져라 항복을 부르짖었다.

휘익!

이에 불마루스의 오른팔을 향해 날아오던 상대의 검이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약간 타이밍이 늦었다.

서걱!

“커억!”

불마루스의 오른팔이 반쯤 잘려 나갔다.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불마루스가 항복 선언과 동시에 적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고개를 푹 숙인 불마루스가 두 눈을 감고 상대의 처분을 기다렸다.

충성 맹세를 했다지만 상대가 받아 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제발…….’

불마루스는 죽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게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받아 주지.”

“하아!”

상대의 대답을 들은 불마루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신 불마루스, 앞으로 주군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불마루스가 적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하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당장 죽을 위기를 넘기기 위한 임기응변이었다.

‘나중에 두고 보자.’

불마루스는 지금의 위기를 넘기고 상처를 회복하면, 충성 맹세를 철회하고 이번에 진 빚을 몇 배로 갚아 줄 생각이었다.

‘잔머리 굴리기는.’

현성이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불마루스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네가 나한테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냐?’

현성은 이미 불마루스 같은 이들을 많이 겪어 봤다.

그렇기에 이런 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휘익!

현성이 용혈검을 휘둘렀다.

서걱!

날카로운 용혈검의 칼날이 반쯤 잘려 있던 불마루스의 오른팔과 왼팔을 완전히 잘라 냈다.

“크아아악!”

불마루스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 냈다.

“어, 어째서?”

불마루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걱정할 필요 없다.”

현성이 자신의 신하가 된 불마루스에게 불사의 서가 가진 권능을 나눠 주었다.

잘린 팔의 단면과 몸 곳곳에 난 상처들이 순식간에 아물었다.

“오오오오!”

불마루스가 기대에 찬 눈으로 자신의 양팔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양팔이 다시 자라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현성은 딱 불마루스의 몸에 난 상처만 치료해 주었다.

“주군?”

불마루스가 ‘내 양팔은 왜 치료 안 해 줘?’라는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양팔은 나중에 회복시켜 주마.”

현성이 그 말과 함께 불마루스를 지나쳤다.

이에 불마루스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그런다고 내가 잃어버린 양팔을 회복하지 못할 것 같아? 두고 보자.’

불마루스가 속으로 칼을 갈았다.

현성은 존재의 근원을 소멸시키는 힘을 상쇄시킬 수 있는 회복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나 있는 게 둘 있지 말라는 법은 없어.’

유일 등급 스킬이라고 해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스킬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불마루스는 자력으로 새로운 회복 스킬을 얻은 뒤 양팔을 만들어 현성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불마루스가 그러거나 말거나 현성은 전장을 정리했다.

불마루스를 휘하에 넣으며 엄청나게 큰 이득을 봤다.

현성과 불마루스는 거의 대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만큼 지배하고 있던 차원과 휘하 신하들의 숫자 역시 엄청나게 많았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단 한 번의 전투로 그간 불마루스가 고생해 일구어 놓은 성과를 한입에 꿀꺽 삼킨 것이다.

‘저놈이 충성 맹세를 철회하고 도망치지 못한다는 전제하에서지만.’

양팔을 잃은 불마루스는 더 이상 현성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나 현성과 싸워 이기는 것과 현성의 휘하에서도 도망치는 것은 엄연히 달랐다.

현성은 이에 대한 해결책도 가지고 있었다.

“포인트 내놔.”

전장을 정리한 현성의 한마디에 불마루스의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포인트는 1레벨 플레이어들이 강해질 수 있는 이유이자 스스로의 수명이었다.

수명을 내놓으라고 하니 불마루스 입장에서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왜 싫어? 그럼 그냥 죽든지.”

스르르릉.

현성이 용혈검을 뽑아 불마루스의 목에 겨눴다.

“아, 아닙니다. 드리겠습니다.”

현성이 불마루스에게 포인트를 받았다.

“정말 이게 다야?”

“예, 그렇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비늘이 너무 반짝거리는데?”

반인반룡이라도 나이가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붉은 비늘을 가지고 있는 불마루스는 아무리 봐도 늙은 반인반룡의 모습이 아니었다.

“더 내놔.”

현성의 한마디에 불마루스의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크윽!”

결국 불마루스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죽하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나 불마루스는 결국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지 못했다.

현성은 불마루스의 노화 진행 정도까지 확인해 가며 포인트를 털었다.

그 결과 불마루스는 3년 치 수명 정도의 포인트만 남겨 두고 모든 포인트를 현성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불마루스는 피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불마루스 입장에서 현성은 칼을 든 강도나 마찬가지였다.

하나 양팔을 잃은 불마루스의 입장에서는 마땅히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현성의 안전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위치 추적 스킬 및 아이템과 충직한 신하들을 총동원해 불마루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한 것이다.

불마루스의 도주를 방지하기 위한 대비책이었다.

양팔을 잃고 포인트까지 빼앗긴 불마루스는 깊은 절망을 느끼고 황궁 깊은 곳에 틀어박혔다.

‘이런 망할.’

하루아침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었다.

불마루스의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 불마루스에게 닥친 절망적인 소식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양팔이 없으니까 게임을 할 수가 없잖아.’

발과 날개 그리고 꼬리를 이용해 해 보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근본이 소멸한 상황이다 보니, 변신 아이템을 사용해도 사라진 양팔이 다시 생겨나지는 않았다.

절망적인 현실을 잠시 잊어 보고자 게임의 세계로 들어가려 했는데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으아아아아!”

불마루스가 괴성을 지르며 난동을 부렸다.

그리고 그 일은 감시자들에 의해 고스란히 현성에게 보고되었다.

‘게임이라.’

현성은 불마루스가 게임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동안 사냥도 안 하고 게임에 열중했다 이거지.’

사실상 불마루스의 성장은 정체되어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포인트를 벌어서 게임 가챠에 퍼부었으니까 말이다.

‘좋아.’

현성은 불마루스가 게임에 빠지는 게 그리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짓거 선심 좀 쓰자.’

현성이 불마루스를 찾아갔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불마루스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현성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선물을 하나 주려고.”

“선물요?”

불마루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럼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불마루스가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현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 뺏어 가 놓고 주기는 뭘 준다고.’

불마루스에게 있어서 현성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악당이다.

그런 악당이 선물을 준다고 해서 무엇이 기쁘겠는가?

어차피 자신에게 빼앗아 간 것 중에 하나일 텐데 말이다.

“두 팔을 주지.”

현성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불마루스에게 불사의 서가 가진 권능을 투사했다.

우득! 우득!

텅 비어 있던 불마루스의 양팔이 다시금 자라났다.

“오오오오!”

불마루스가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현성이 자신의 양팔을 회복시켜 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

그런데 다시 생겨난 양팔이 뭔가 이상했다.

불마루스의 양팔은 강철보다 단단한 비늘로 덮여 있었다.

또 순수한 근력만으로 초월 등급 몬스터를 찢어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거력을 품고 있었다.

한데 새롭게 생겨난 양팔은 어째 강철은커녕 종잇장으로도 벨 수 있을 것같이 약하게 느껴졌다.

또한 팔근육은 초월 등급 몬스터를 찢어 죽이는 거력은커녕 일반 등급 몬스터도 어찌할 수 없을 것같이 빈약해 보였다.

‘착각인가?’

불마루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새롭게 생겨난 오른팔을 들어 옆에 있는 벽을 후려쳤다.

퍼억!

“크아아아악!”

불마루스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있는 힘껏 벽을 후려진 불마루스의 오른팔 뼈가 부러졌기 때문이다.

“왜 그런 짓을…….”

현성이 혀를 쯧쯧 차며 불사의 서가 가진 권능으로 불마루스의 오른팔을 치료해 주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주군?”

불마루스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현성에게 물었다.

외형은 달라진 게 없다.

붉은 비늘도 달려 있었고 날카로운 손톱도 그대로였다.

하나 속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강맹한 힘을 담고 있던 불마루스의 오른팔이 완전히 속 빈 강정으로 전락해 버렸다.

“제거된 근원 중에서 외형만 복구했거든.”

“예?”

“외형만 복구했다고. 아마 내구도나 근력은 일반인의 팔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거야.”

현성의 말에 불마루스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악독한 놈. 나에게 이런 굴욕을 주다니.’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던 자신이 바보였다.

불마루스는 자신이 현성에게 농락당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현성의 말에 생각이 달라졌다.

“보고 들어 보니까 요즘 게임을 못 해서 힘들어한다며. 일반인 수준이기는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야.”

불마루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생각해 보니 일반인 수준의 근력과 체력만 있어도 게임은 얼마든지 즐길 수 있었다.

“엉뚱한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 한 충성 맹세를 끝까지 지켜. 그럼 그에 합당한 보답을 해 줄 테니까.”

현성이 그 말과 함께 불마루스의 차원을 떠났다.

벌떡!

불마루스는 현성이 떠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전력을 다해 게임룸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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