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권. 상호방위조약 (194/225)

┃상호방위조약

‘어쩐 일이시지?’

카이로와의 상담을 마친 현성에게 게스피트가 연락을 취해 왔다.

잠시 후 용병 고용을 통해 현성을 부를 거라는 내용이었다.

뭐, 단순히 이야기 좀 나누자는 뜻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조건이 하나 붙어 있었다.

‘용병 고용 비용을 최대치로 올리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셨지.’

현성은 용병 고용 비용을 그간 최저치로 낮춰 놓은 상태였다.

최대한 많은 차원을 방문해 좌표를 알아내는 게 목적인데 용병 고용 비용이 높으면 그만큼 고용될 확률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내가 손해 볼 일은 없지.’

어차피 게스피트가 고용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한 상황이다.

거기다 용병 고용 비용을 높이면 현성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손해가 될 일은 없었다.

-고용주 게스피트 님이 용병 최현성 님의 고용을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현성이 예를 선택했다.

화악!

환한 빛무리와 함께 현성이 지구를 떠나 게스피트의 차원으로 이동했다.

“왔구나.”

게스피트가 나른한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 게스피트 님.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교류의 보석 판매량이 요즘 확 줄어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불렀다.”

“아, 그건…….”

현성이 간단하게 교류의 보석 판매량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좀 이상하기는 했다.

게스피트와 현성의 동업은 꽤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다.

굳이 현성이 설명을 해 주지 않아도 게스피트 역시 교류의 보석 판매량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음, 알겠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해라.”

“예.”

현성은 5분 정도의 짧은 설명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갔다.

‘왜 부르신 거지?’

현성으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작 5분의 짧은 상담으로 꽤 짭짤한 포인트를 얻었다.

게스피트를 고용함으로 인해 바닥을 기던 현성의 포인트가 어느 정도 회복된 것이다.

하지만 게스피트의 용병 고용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현성에게 문자를 보내고 수시로 고용하기를 반복한 것이다.

고용 후에는 ‘신작 게임은 언제 나오냐?’, ‘왜 리X지 모바일 매출에 떨어진 거냐?’ 등등 굳이 현성에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항들을 물었다.

현성은 5분 남짓의 짧은 대화를 나누고 용병 고용으로 막대한 포인트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현성도 게스피트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나에게 포인트를 주기 위한 명분이 필요하셨던 거야.’

게스피트는 규율과 협약의 제약을 받는다.

그렇기에 아무 이유 없이 현성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지만 합당한 명분이 있다면?

서로 주고받을 게 있는 정당한 거래라면?

게스피트의 포인트가 현성에게 이동하는 게 가능했다.

‘업무를 핑계로 내가 게스피트 님을 용병 고용 했을 때 사용한 포인트를 되돌려주시려는 것 같기는 한데…….’

게스피트가 왜 그러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현성과 게스피트가 동업자 관계이기는 했지만, 그게 이런 식으로 포인트를 돌려줄 명분이 되지는 않는다.

물론 아예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다.

‘동업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러시는 건가?’

현성이 지구의 지배권을 잃으면 자연스럽게 게스피트와의 동업에도 문제가 생긴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아군과 적군 차원에 서비스하는 서버를 이전할 준비를 갖추어 놓기는 했다.

하지만 현성이 온전히 지구를 지배했을 때와 비교하면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전자 제품이나 콘텐츠 공급에도 문제가 생길 게 뻔했고 말이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이상한 점은 게스피트가 좀 과하게 퍼 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현성을 자주 호출한다는 점이었다.

‘뭐, 지켜보면 알겠지.’

현재로서는 게스피트가 자신을 고용할 때 현성이 사용한 포인트를 되돌려주려고 하는 것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이런 행동이 계속된다면?

그건 현성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겠다는 뜻과 다를 게 없었다.

‘좋은 일이야.’

게스피트 같은 강자가 현성의 뒷배가 되어 준다면?

공식적으로 힘을 빌릴 수는 없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이런저런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다.

‘게스피트 님이 도움을 주자고 마음을 먹으셨을 때 최대한 뽕을 뽑자.’

현성은 누군가가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는데 그걸 극구 거절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이었다.

* * *

현성은 게스피트의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포인트를 복구해 나갔다.

그사이 현성은 자신이 점령한 차원들을 순회하며 사냥에 열중했다.

현성이 스텟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업적과 탐식의 서뿐이었다.

다행히 점령한 차원에는 다양한 몬스터들이 있었고 그 덕분에 계속해서 업적과 탐식의 서를 사용해 스텟을 늘릴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게스피트를 고용할 정도의 포인트를 모았을 때쯤.

현성은 그간 잠시 미뤄 뒀던 차원 전쟁을 다시 시작했다.

목적의식이 강해진 만큼 차원 전쟁에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루시아와 파르티샤가 알고 있는 차원 좌표를 통해 아군 차원을 먼저 방문한 것이다.

아군 1레벨 플레이어가 생존해 있고 차원이 나름대로 잘 돌아간다면 내버려 둔다.

하지만 적군 플레이어들에 의해 점령당했거나 점령당할 위기에 있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적군 차원을 공격하고 아군 차원을 보호했다.

그 덕분에 현성의 업적은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또 적군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지도 않았다.

카이로처럼 아군으로 포섭할 수 있는 경우는 포섭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늘어나는 차원만큼이나 현성의 휘하에 속한 1레벨 플레이어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뭐, 단점이 하나 있다면 그렇게 휘하에 배정한 1레벨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었다.

‘루시아 정도 수준만 되어 줘도 좋을 텐데.’

그런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높았다면 굳이 현성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위이이잉!

현성이 무난하게 점령전을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마트폰이 울렸다.

‘문자네.’

현성이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보낸 사람은 각투브크였다.

강력한 적이 나타났음. 지원을 요청함.

문자의 내용을 확인한 현성이 곧바로 차원 게이트를 열고 각투브크의 차원으로 넘어갔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넘어가자마자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꽤 강한 놈인 모양이네.’

현성이 얼굴을 찌푸리며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로 온몸을 휘감았다.

“저놈은 또 뭐야?”

각투브크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적군 플레이어가 당황한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하지만 지원군은 현성이 끝이 아니었다.

현성을 시작으로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이 차원 게이트를 통해 하나둘 넘어와 전장에 합류했다.

“이익!”

적군 플레이어가 용병을 고용했다.

1레벨 플레이어였던 모양이다.

현성을 포함한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과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이 정면으로 격돌했다.

현성은 용인화 스킬과 영역 선포 스킬까지 사용하며 최선을 다해 싸웠다.

‘보통 놈은 아니네.’

적들은 각투브크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로센처럼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장에 합류하는 아군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반면 적군 1레벨 플레이어는 추가로 용병을 고용할 여력이 없는지 안절부절못하더니 용병들을 내버려 두고 그대로 몸을 뺐다.

‘놓칠 수는 없지.’

현성이 적군 1레벨 플레이어를 추격했다.

하지만 용병들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이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로 뒤덮인 용혈검을 휘둘렀다.

꽈아아아앙!

앞을 가로막았던 용병 둘이 뒤로 밀려 나며 튕겨 나갔다.

하지만 금방 오뚜기처럼 일어났다.

“승패는 이미 정해졌어. 괜히 포인트 욕심내다가 목 날아가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현성의 말에 용병들이 주변을 살폈다.

현성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승패는 완전히 결정이 났다.

눈치 빠른 용병들 중 일부가 고용을 취소하고 본래의 차원으로 돌아간 탓에 전황이 확 기울어 버린 것이다.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용병 둘이 동시에 모습을 감췄다.

용병 고용을 해제한 것이다.

타악!

현성은 계속해서 적군 1레벨 플레이어를 추격했다.

“이 거머리 같은 놈!”

화르르르륵!

적군 1레벨 플레이어가 욕설과 함께 강력한 화염을 난사하며 현성의 접근을 막았다.

하지만 현성은 화염의 서가 가진 권능 중 하나를 활용해 오히려 그 화염을 적군 1레벨 플레이어에게 돌려보냈다.

꽈아아아앙!

“크아아아악!”

적군 1레벨 플레이어가 비명을 터트리며 몸을 비틀거렸다.

푸욱!

현성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적군 1레벨 플레이어의 심장에 용혈검을 찔러 넣었다.

“커억!”

현성은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적군 1레벨 플레이어의 몸이 칠흑빛 뇌전과 화염에 휩싸였다.

‘끝났다.’

끝까지 저항하던 용병들도 고용주가 사망하자 자연스럽게 용병 고용이 해제되어 본래의 차원으로 역소환되어 버렸다.

‘큰 이득을 봤어.’

직접 침공을 시도한 적군 1레벨 플레이어를 현성이 쓰러트렸다.

그 결과 적군 1레벨 플레이어가 거느리고 있던 신하들이 현성의 휘하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차원의 지배권이 현성에게 넘어왔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창조 등급]

-최초로 57번째 적에게 점령되어 있던 아군 차원을 탈환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57번째 적에게 점령되어 있던 아군 차원을 탈환한 자 - 창조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희귀 등급]

-최초로 차원 전쟁에서 79승을 거두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79번째 차원 전쟁에서 승리한 자 – 희귀 등급]

이 둘 외에도 아군 구원 업적 등 꽤 많은 업적을 단번에 얻었다.

각투브크를 지원하러 온 지원군들 중에서 유일하게 현성만이 수고비 이상의 성과를 얻은 것이다.

다른 지원군들은 용병들이 고용을 해제하고 돌아가 버리자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사실 이게 정상이고, 용병들을 고용 해제조차 못 하게 제압한 게스피트가 특이 케이스였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각투브크가 현성을 비롯한 1레벨 플레이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처음 제안을 주셨을 때는 번거롭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도움을 받네요.”

각투브크의 말에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현성은 적군 1레벨 플레이어의 지구 침공을 걱정해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과 친분을 쌓고 지원군을 만들었다.

하지만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 법.

무작정 현성이 필요할 때 도와 달라고 하면 실효성이 떨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현성이 고안한 것이 바로 동맹이었다.

각 차원에 문제가 생기면 서로 힘을 합쳐 돕는다.

도움을 받은 1레벨 플레이어는 지원을 와 준 플레이어들에게 차원 게이트 오픈 비용과 수고비를 지급한다.

이건 현성과 아군 1레벨 플레이어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동맹이었다.

첫 번째로 본차원을 안전하게 지킬 동맹을 얻을 수 있다.

두 번째로 지원을 간 경우에는 운이 좋다면 업적과 지배하는 차원을 손쉽게 늘릴 수 있었다.

‘이 동맹의 규모를 키운다.’

지금은 서로 품앗이를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규모가 더 늘어나고 규율을 정해 서로 힘을 합친다면?

동맹을 넘어서 강제력을 가진 일종의 상호방위조약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저도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두 분의 사례를 보니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지원을 온 아군 1레벨 플레이어의 말에 다른 이들도 하나둘 입을 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솔직히 저도 예전에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포인트 탈탈 털어서 용병 고용으로 겨우 막았습니다. 그래도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졸였는데, 동맹이 생긴 후에는 한시름 놨습니다.”

“제가 아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도 이 동맹에 포함시키면 어떨까요?”

“전 찬성입니다. 인원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한자리에 모인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현성도 한마디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직은 시기상조야.’

강제력을 가진 상호방위조약은 동맹에 속해 있는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이 반발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었다.

‘한 명씩 한 명씩 차근차근 늘려 간다.’

영혼의 계약서만 있으면 간단하게 강제력을 가진 상호방위조약 체결이 가능하다.

현성은 일단 각투브크부터 포섭하기로 했다.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었으니 강제력을 가진 상호방위조약의 필요성에 공감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저를 돕기 위해 와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약소하지만 수고비를 드리겠습니다.”

각투브크가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한 뒤 현성을 포함한 지원군들에게 포인트를 나눠 주었다.

이곳까지 오는 데 쓴 이동비와 수고비를 합친 금액이었다.

현성도 역시 전에 도움을 준 플레이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포인트를 나눠 주었다.

아마 이 정도 강자들을 용병으로 고용하려고 했다면?

이동비와 수고비의 몇백 또는 몇천 배에 달하는 포인트가 들었을 수도 있다.

훈훈한 마무리 이후 각투브크의 차원에 모여들었던 1레벨 플레이어들이 각자의 차원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현성은 아니었다.

“왜 가지 않고?”

각투브크가 의아한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저와 정식으로 동맹을 맺을 생각 없으십니까?”

“정식으로? 우리는 이미 동맹을 맺었잖아?”

“영혼의 계약서를 사용했으면 합니다.”

“영혼의 계약서?”

각투브크의 얼굴에 부정적인 빛이 서렸다.

영혼의 계약서라는 말에 꽤 큰 부담감을 느낀 것 같았다.

“그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내용은 구두로 맺었던 동맹과 동일할 테니까요.”

“그럼 굳이 영혼의 계약서를 쓸 필요는 없지 않나? 괜히 포인트만 아깝잖아?”

각투브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구두와 약간의 강제성이 있는 영혼의 계약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뭐가 다른데?”

“지금은 저와 각투브크 님의 사이가 좋기에 구두로 맺은 동맹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훗날 사이가 틀어진다면, 바로 깰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혼의 계약서가 있다면 다르겠죠?”

“우리 사이가 나빠질 이유가 있나?”

각투브크가 약간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훗날 사이가 틀어진다는 말에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저와 각투브크 님의 사이는 굳건하겠죠. 하지만 다른 분들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막말로 동맹이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차원으로 향하는 좌표를 알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어제든 침공이 가능합니다.”

현성의 말에 각투브크의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사실 냉정하게 말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뭐, 그렇기는 하지. 자네는 믿을 수 있지만, 다른 놈들은 전적으로 믿기가 어려워.”

각투브크는 현성을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다.

각투브크는 현성의 차원인 지구 침공이 불가능했다.

왜?

제나가 있었으니까.

반대로 현성은 각투브크의 차원 침공이 가능했다.

각투브크의 입장에서 현성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강해졌다.

아마 시간이 좀 더 흐른다면?

각투브크보다도 월등히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오면?

‘영혼의 계약서를 쓰는 게 유리해.’

각투브크는 자기 입으로 현성을 전적으로 믿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 진짜 믿는다기보다는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믿는 것이었다.

방금 전 자신을 돕기 위해 와 준 이들도 사실 전적으로 믿고 있지는 않았다.

“또 저는 영혼의 계약서에 한 가지 문구를 더 추가할 생각입니다.”

“그게 뭔가?”

독소 조항이라도 넣는다고 생각했는지 각투브크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바로 사냥터 공유입니다.”

“사냥터 공유?”

“예, 서로가 지배하고 있는 차원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몬스터를 잡는 겁니다. 이건 무조건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일입니다.”

사냥터 공유.

이건 현성에게도 각투브크에게도 필요한 부분이었다.

사냥할 수 있는 차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업적을 얻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는 하지.”

각투브크가 혹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각투브크나 현성 같은 1레벨 플레이어들은 성장이 일정 부분 멈춰 있는 상태였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차원 전쟁을 벌여 힘을 키워야 했다.

그래야 업적을 늘려 강해질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냥터를 공유한다면?

위험부담 없이 강해질 수 있다.

“저는 각투브크 님을 시작으로 다른 분들도 이 동맹에 포함시킬 생각입니다. 각투브크 님이 물꼬를 터 주십시오.”

각투브크의 머리가 복잡하게 굴러갔다.

동맹이 늘어나면?

‘무조건 이득이야.’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각투브크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각투브크가 현성의 제안을 수락했다.

현성의 말대로 영혼의 계약서를 작성한다면?

냉정하게 말해서 각투브크가 득을 보면 득을 봤지 손해를 볼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현성과 각투브크가 영혼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내용은 구두로 맺었던 동맹과 동일했다.

현성과 각투브크가 영혼의 계약서 작성을 끝마쳤다.

화아악!

완성된 영혼의 계약서가 둘로 나뉘어 현성과 각투브크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현성과 각투브트가 서로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솔직히 처음에는 꺼림칙했는데, 막상 쓰고 나니 든든하구만.”

“저도 그렇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내 휘하 차원에서 사냥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넘어오라고.”

현성이 각투브크의 배웅을 받으며 지구로 돌아갔다.

지구로 넘어온 현성은 그간 친분을 쌓은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작업에 들어갔다.

각투브크의 사례를 예로 들며 영혼의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꼬신 것이다.

순순히 응한 이들도 있었고 살짝 거부감을 표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규모가 커지면 좋든 싫든 들어올 수밖에 없어.’

구두로 맺은 동맹과 영혼의 계약서로 맺은 동맹.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영혼의 계약서로 동맹을 맺은 이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구두로 동맹을 맺은 이들은 불안해할 것이다.

‘거기다 일단은 지금 이 정도로 충분하고.’

현성은 차원 전쟁을 멈추고 내실 다지기에 들어갔다.

그간 열심히 움직인 덕분에 도움을 청하는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이 확 줄어들기도 했고, 현재 현성의 무력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강자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업적을 쌓자.’

현성은 휘하 차원들과 영혼의 계약서를 통해 동맹을 맺은 차원들을 순회공연하며 부지런히 업적을 늘려 나갔다.

단일종의 몬스터에게 적용되는 연계형 업적이 빠르게 늘어났다.

탐식의 서 역시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를 먹어 치우며 현성의 스텟을 늘려 주었다.

물론 단일종의 몬스터에게 적용되는 연계형 업적과 탐식의 서가 늘려 주는 스텟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다.

현성은 그 말을 진짜 현실로 만들 생각이었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현성은 수많은 업적을 달성했다.

휘하 차원과 동맹 차원을 순회공연하며 얻은 값비싼 성과였다.

그 와중에 현성이 추진한 동맹은 더욱 강화되었다.

동맹에 참여한 1레벨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늘어났고 영혼의 계약서를 통해 계약을 맺은 플레이어들 역시 늘어났다.

현성은 여기서 한 가지 꼼수를 부렸다.

바로 현성 자신을 중심으로 동맹을 늘려 나간 것이다.

동맹 인원이 소수일 경우에는 일일이 영혼의 계약서를 교환하면 된다.

하지만 그 인원이 수백에 달한다면?

구성원 모두가 일일이 영혼의 계약서를 교환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에 현성은 자신을 기준으로 영혼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동맹의 대상을 현성에게 국한시킨 게 아니라 현성과 영혼의 계약서를 나누고 동맹 관계에 있는 이들로 넓힌 것이다.

이런 현성을 따라 하는 플레이어들도 생겼다.

자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동맹을 형성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은 현성과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동맹의 규모는 현성이 가장 컸으니까 말이다.

현성의 스텟이 빠르게 증가하는 만큼 동맹을 맺은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의 스텟도 빠르게 늘어났다.

사냥터가 많아진 효과였다.

현성은 휘하에 들어온 1레벨 플레이어들에게도 사냥터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현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동맹들의 전력이 대폭 올라가기 시작했다.

서로 힘을 합친 시너지가 제대로 발휘된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끝났어.’

이제 다시금 차원 전쟁을 시작할 때였다.

‘이길 수 있을까?’

지금부터 싸워야 할 상대들은 굴레를 벗어나기 직전의 상태에 놓인 강자 중에 강자들이었다.

어느 정도 해볼 만한 적들은 그 전에 다 정리를 했다.

‘해보자.’

가만히 있으면 정체될 뿐이다.

굴레를 벗어난 자가 되어 진정한 자유를 얻을 때까지 현성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역시 첫 번째 목표는 그곳이지.’

현성이 파르티샤의 차원으로 이동했다.

많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파르티샤의 차원에는 아직까지 안전 결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파르티샤의 차원이 가진 힘과 반인반룡들의 차원이 가진 힘의 격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현성이 마른침을 삼키며 차원 게이트를 통과했다.

‘여기는 변한 게 없구나.’

과거 현성이 시즈라가 만든 언데드 거인에게 쫓겨 도망쳤던 장소.

현성은 이곳에서 큰 충격을 받았었다.

도저히 대적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언데드 거인을 일격에 박살 내 버린 존재의 등장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면 이길 수 있을까?’

현성은 과거에 비해 월등히 강해졌다.

‘하지만 그놈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을 거야.’

현성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고는 하지만 아직 따라잡았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한번 해보자.’

반인반룡들의 차원 침공은 파르티샤의 차원을 지키겠다는 의미보다는 자신의 실력을 점검해 보는 의미가 더 컸다.

* * *

한편 그 시각…….

“다 쓸어버려!”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은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오랜 라이벌이었던 검은 사자 길드가 갑자기 증발해 버린 이후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은 자신이 만든 적룡 길드로 서버 전체를 장악했다.

그 후에 재미가 감소했다.

싸울 만한 라이벌이 사라지자 PK 하는 재미로 게임을 했던 붉은 비늘의 반인반룡이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것이다.

그때 새로운 적수가 등장했다.

유저 수 감소로 인한 서버 통합이 진행되며 타 서버의 강자였던 보라매 길드와 같은 서버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적의 등장은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어 가던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그 결과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은 다시금 게임의 세계에 깊게 빠져들었고, 지금 현재까지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현성이 현실에서 열심히 성장하는 동안 붉은 비늘을 가진 반인반룡은 자기 자신이 아닌 게임 속 캐릭터를 열심히 성장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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