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권. 강림 (193/225)

┃강림

‘저것들은 도대체 뭐야?’

오로센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지원군들을 바라보며 얼굴을 구겼다.

‘그래도 다 고만고만한 수준이네.’

지원군의 무력은 목표물인 최현성과 엇비슷했다.

조금 강한 자도 있었고 조금 약한 자도 있었다.

고작 저 정도 수준의 지원군은 네다섯 더 늘어난다고 해도 오로센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그까짓 잡놈 몇 합류했다고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오로센이 노성을 터트리며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잡놈? 그래, 어디 그 잡놈 손에 죽어 봐라!”

흥분한 각투브크를 시작으로 현성이 부른 지원군들의 총공격이 이어졌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지구의 플레이어들과 비교하면 천상계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격돌은 말 그대로 하늘을 가르고 대지를 쪼개 버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현성의 주거지 주변에 사는 이들 대부분이 플레이어들이기에 빠르게 몸을 피했다는 점이었다.

‘건방진 놈들!’

오로센은 거침없이 스킬을 난사하며 현성이 부른 지원군들을 공격했다.

현성은 포섭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원군으로 온 이들은 오로센의 입장에서 죽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로센은 거칠게 현성과 플레이어들을 밀어붙였다.

지원군이 왔다고 해도 승패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목표물인 현성을 제압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더 소모될 뿐이다.

그때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파지지직! 파지지직!

‘저것들은 또 뭐야?’

연달아 차원 게이트가 열리며 플레이어들이 추가로 등장했다.

다섯 명에 불과하던 지원군이 순식간에 열 명으로 늘어났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 것 같냐.’

열 명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파지지직! 파지지직!

문제는 지원군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몇 놈이나 오는 거야?’

자신만만하게 현성과 지원군들을 공격하던 오로센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특별히 강한 플레이어는 없었다.

처음 등장했던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무력은 목표물인 최현성과 엇비슷했다.

문제는 쪽수였다.

‘왜 이렇게 많이 와?’

열 명이던 지원군이 20명이 되고 30명으로 늘어났다.

‘이런 망할.’

오로센이 점점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열 명 남짓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만, 그 수가 30을 넘어가면 오로센으로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고작해야 열 명 남짓일 줄 알았는데.’

설마 현성이 이렇게 많은 지원군을 부를 줄은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리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고 해도 쪽수가 저렇게 많으면 승산이 없었다.

‘도망치고 훗날을 기약해야 하나?’

후퇴하려면 지금 해야지 지원군의 숫자가 더 늘어나면 후퇴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허무하게 물러날 수는 없지.’

오로센이 남은 포인트를 탈탈 털어 용병들을 고용했다.

슈슈슈슉!

그 순간 오로센의 주변으로 아홉 명의 용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로센을 포함해 총 열 명.

30명에 달하는 최현성의 아군들보다 숫자는 적었다.

하지만 오로센은 승리를 확신했다.

오로센이 고용한 용병 전원이 자신과 비슷한 급의 용병들이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투항하는 게 좋을 거다.”

오로센의 엄포에 현성을 돕기 위해 출동했던 1레벨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 * *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현성은 그간 꾸준히 인맥 관리를 해 왔다.

그 덕분에 각투브크를 비롯해 총 30명에 달하는 지원군을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용병 고용을 선택한 순간 일이 꼬여 버렸다.

“크흠, 최현성 플레이어, 이거 전에 듣던 거랑 상황이 조금 다른데? 이러면 나도 약속을 지키기가 힘들어.”

각투브크가 헛기침을 하며 슬쩍 물러날 의사를 표했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가세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라면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이건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다른 1레벨 플레이어들 역시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한마디씩 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현성도 각투브크를 비롯한 1레벨 플레이어들의 상황을 이해했다.

사실 현성의 부름에 응해 지구로 넘어와 강력한 힘을 가진 오로센과 함께 싸워 준 것만으로도 이들은 의리를 지켰다고 할 수 있다.

오로센은 상당한 강자였고 각투브크를 비롯한 1레벨 플레이어들 역시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그들에게 패배할 게 뻔한 상황에서 함께 싸워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건 같이 싸워 달라는 게 아니라 같이 죽어 달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자가 부른 용병들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요.”

현성이 그 말과 함께 용병을 고용했다.

슈욱!

밝은 빛무리와 함께 용병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순도 높은 마력이 대기를 짓눌렀다.

“헉!”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이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곳이 지구로구나.”

현성에게 고용된 용병이 칠흑빛 마력을 줄기줄기 뿜어내며 중얼거렸다.

“크윽!”

오로센과 그가 고용한 용병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현성이 고용한 용병의 한마디가 그들의 심신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절로 몸이 떨리고 당장 도망치고 싶은 공포가 밀려 들어왔다.

단지 등장한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존재.

말 한마디로 그토록 강력한 오로센과 그의 용병들을 벌벌 떨게 만들 수 있는 존재.

굴레를 벗어난 자.

신과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자.

대마왕 게스피트가 지구에 강림했다.

“날 고용하다니, 포인트를 꽤 많이 축적해 놨던 모양이구나.”

게스피트가 미소를 지으며 현성을 바라봤다.

“예, 혹시 이런 일이 있을지 몰라서.”

현성의 대답에 게스피트가 기분이 좋다는 듯 처음 방문한 지구의 풍경을 살폈다.

현성 일행과 오로센의 격돌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지만, 격전지와 멀리 떨어진 곳은 멀쩡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빌딩 숲을 바라보며 게스피트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영상 매체를 통해 접하던 곳에 처음 와 봤으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날 고용해 줘서 고맙구나.”

게스피트로서도 용병 고용은 정말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굴레를 벗어난 자인 게스피트의 용병 고용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죽하면 용병 고용 비용을 최소치로 적용해 놨음에도 족히 천 년 가까이 게스피트를 고용한 이가 없었겠는가.

본래 굴레를 벗어난 자는 다른 차원의 일에 관여할 수 없다.

하나 합당한 대가를 받았다면?

용병 고용을 통해 충분히 힘을 빌려줄 수 있었다.

“일단 저자들부터 처리해 주시지요.”

현성이 게스피트에게 오로센과 그가 고용한 용병들의 처리를 부탁했다.

솔직히 말해서 현성은 속이 쓰렸다.

‘신의 권속과 충돌할 때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오로센이라는 강적 때문에 게스피트를 고용해 버리고 말았다.

현성은 성장형 스킬인 흑뢰신마공, 화염의 서, 불사의 서를 무급 스킬로 만든 후 포인트를 계속 모아 왔다.

무급 스킬의 경우 더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아직 무급 스킬로 성장시키지 못한 탐식의 서는 포인트로 스킬북을 구매해 성장시킬 수가 없었기에 잠정적으로 포기했다.

성장형 아이템인 용혈검 역시 마찬가지였다.

용인화의 경우는 스킬북의 매물이 너무 적어서 나오는 족족 구입해도 포인트가 남았다.

결국 현성의 포인트는 자연스럽게 쌓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창조 등급 스킬을 구입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차원 전쟁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창조 등급과 초월 등급 스킬들을 습득했기에 깔끔하게 포기했다.

또 포인트를 모으면 유사시 용병 고용을 통해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방금 전 현성이 오로센과 그가 고용한 용병들로 인해 게스피트를 소환한 것처럼 말이다.

‘포인트는 또 모으면 되는 거니까.’

현성이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게스피트 고용으로 인해 그간 모아 놓은 포인트가 한 방에 날아갔다.

포인트가 아깝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포인트를 아끼겠답시고 오로센과 비슷한 수준의 용병들을 고용해서 드잡이질을 했다가는?

전투의 여파로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었다.

현성에게는 고향 차원이라고 할 수 있는 지구의 안위가 가장 중요했다.

그렇기에 가장 확실한 카드인 게스피트를 고용한 것이다.

“걱정할 필요 없다. 이미 저자들은 자유를 잃었으니까.”

게스피트의 말에 현성이 오로센과 용병들을 바라보았다.

오로센은 물론이고 그에게 고용된 용병들의 몸이 돌처럼 굳어 있었다.

‘정말 대단하네.’

오로센과 그가 고용한 용병들은 현성과 지원군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도 필패가 확실한 강자들이었다.

한데 그런 그들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제압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궁금증이 치밀었다.

‘스킬인가?’

게스피트가 어떤 스킬을 사용했고 그 스킬이 오로센과 그가 고용한 용병들의 정신과 육체를 완벽하게 장악해 버렸다.

그게 가장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용병 고용을 해제하고 돌아갈 여력조차 없는 건가?’

그런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정신계 스킬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자, 고용주님,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저놈들을 죽이면 되는 건가?”

게스피트가 나른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그런데 그 전에 잠시 심문을 할 수 있을까요?”

현성의 물음에 게스피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물론 가능하기는 하지. 그런데 전부 다 심문할 생각이야?”

“아닙니다. 저자만 심문하면 됩니다.”

현성이 오로센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았어.”

게스피트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사아아악!

그 순간 오로센을 제외한 용병들의 몸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오로센에게 고용되어 얼떨결에 지구를 침략하게 된 용병들이 너무도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것이다.

‘어쩔 수 없어.’

사실 죽은 용병들은 그냥 용병 고용에 응했을 뿐이다.

하지만 현성은 그들을 살려 보낼 수가 없었다.

용병 고용을 통해 지구로 온 순간, 지구의 좌표를 각인했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만약 돌아가서 훗날에 지구로 침공해 오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지금은 게스피트가 있기에 안심이다.

하지만 최소 고용 시간이 끝나면 게스피트는 다시금 본래의 차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인정을 발휘해 용병들을 살려 보냈는데 그들이 은혜를 원수로 갚아 게스피트가 돌아간 후에 지구로 쳐들어온다면?

지구는 그대로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당분간은 최대한 조심해야 해.’

게스피트 같은 굴레를 벗어난 자를 고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포인트가 필요하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게스피트를 다시 고용할 포인트를 모으기 전까지는 최대한 몸을 사리는 편이 좋았다.

“크으으으!”

오로센이 침음을 터트리며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현성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지구로 온 거지?”

현성이 오로센에게 가장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

하지만 오로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크아아아악!”

현성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오로센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게스피트가 손을 쓴 것이다.

“휘하에 있는 다른 1레벨 플레이어를 이용했다. 그중 하나가 이곳과 연결된 아군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에게 고용된 적이 있었어. 그래서 이곳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

오로센의 말에 현성은 금세 상황을 이해했다.

‘이자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움직였구나.’

현성은 처음에 파르티샤를 이용해 위기에 처한 아군 차원을 찾았다.

그러다 나중에는 그렇게 구원하게 된 1레벨 플레이어들을 통해 더 많은 차원들의 좌표를 알게 되었다.

현재 파르티샤는 루시아와 마찬가지로 차원 게이트를 열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현성은 굳이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과의 충돌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용병 고용을 통해 도움을 요청한 이들의 차원만 방문했다.

하지만 하기에 따라서는 오로센처럼 무단으로 다른 아군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도 가능했다.

파르티샤와 루시아가 과거 용병 고용을 통해 방문했던 차원들의 좌표를 기억하고 있다면, 파르티샤와 루시아에게 포인트를 넘겨주고 대신 차원 게이트를 열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말이다.

‘결국 카이로 그놈이 문제였어.’

카이로가 과거 용병으로 고용했던 1레벨 플레이어들.

그들 중 하나가 오로센과 연결되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이런 경우가 이번 한 번으로 끝나리라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볼일은 끝난 건가요, 고용주님?”

게스피트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아아악!

오로센의 몸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고용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잠깐 지구를 구경해도 괜찮겠지?”

게스피트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와 마계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게스피트가 가진 측정 불가 수준의 마력으로도 차원 게이트를 여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그 정도로 거리가 머니 게스피트로서도 단순한 관광을 위해 포인트를 소모해 차원 게이트를 열고 지구로 넘어오기는 힘들었다.

한데 현성 덕에 지구 구경을 하게 생긴 것이다.

“제가 가이드를 해 드리겠습니다.”

현성이 직접 나섰다.

그때였다.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내가 해 줄 테니까.”

갑자기 등장한 제나가 게스피트에게 팔짱을 꼈다.

그 순간 게스피트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친한 척하지 말고 떨어져.”

게스피트가 제나를 떼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순순히 떨어질 제나가 아니었다.

“우리가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수 사이도 아니잖아. 이것도 인연이니까, 내가 직접 가이드해 줄게.”

“필요 없거든.”

“전우 좋다는 게 뭐야. 따라와.”

제나가 힘으로 게스피트를 질질 끌고 갔다.

“아, 너희들도 같이 갈래?”

제나가 얼떨결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각투브크를 비롯한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마침 고향 차원에서 처리해야 할 급한 일이 있어서!”

“제가 방금 전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서!”

“휘하 신하들에게 긴급한 연락이!”

온갖 변명이 튀어나왔다.

“그럼 잘 가! 앞으로도 종종 도와주고!”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제나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각투브크를 비롯한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이 차원 게이트를 열고 고향 차원으로 돌아갔다.

현성이 차비와 수고비로 주기로 약속했던 포인트를 받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제나가 게스피트를 질질 끌고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성이 아공간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바로 전화를 걸었다.

-현성이니.

“네, 저예요. 어머니는 괜찮으세요?”

-난 괜찮다. 네 아버지도 있고 루시아도 있고 우신이도 있잖니. 현지도 나랑 같이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보다 넌 괜찮니?

“예, 멀쩡해요. 일도 다 잘 해결했어요.”

-정말 멀쩡한 거 맞지? 네 아버지 말로는 엄청 강한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하던데.

아버지가 괜한 말을 하신 모양이었다.

그래도 몬스터라고 둘러서 말을 하신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강한 거 아시잖아요.”

-그래, 알았다. 언제쯤 올 거니?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어서 저녁때쯤 들어갈게요.”

-저녁은 뭐 먹고 싶니? 김치찌개? 된장찌개? 갈비찜? 아니면…….

어머니의 말이 길어졌다.

현성은 김치찌개라고 대답하고 어머니와의 전화를 끊었다.

루시아를 비롯해 지구 최고의 랭커 수준으로 성장한 아버지와 백우신이 있기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전투의 여파가 워낙 광범위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 본 것이다.

‘당장 족치러 가자.’

가족의 안전을 확인한 현성이 곧바로 차원 게이트를 넘었다.

이 사달을 일으킨 주범.

카이로를 심문하기 위해서였다.

* * *

“주인님께서 갑자기 무슨 일이신지?”

현성에 의해 차원이 점령된 이후 제대로 꿀을 빠는 생활을 하고 있던 카이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용병 고용 몇 명이나 했어?”

현성의 물음에 카이로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대충이라도 말해 봐.”

“음, 백 명은 넘는 것 같고 2백 명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뭐?”

카이로의 대답을 들은 현성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혹시나 했는데 폭탄도 이런 폭탄이 없었다.

“아니, 뭘 그렇게 많이 고용했어?”

현성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주인의 분노에 카이로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군 용병들만 단속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어.’

현성은 그간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과 친목을 다지고 그들을 우군으로 만들었다.

한데 카이로가 지구를 침공할 수 있는 적군들을 우후죽순으로 양산하고 있었다.

“너 설마 지금도 용병 고용하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제가 뭐가 좋아서 피 같은 포인트를 지불하며 용병 고용을 하겠습니까? 그 전에도 살기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고용했던 겁니다.”

카이로가 열심히 자기변명을 했다.

“앞으로 절대 용병 고용하지 마. 필요하면 차라리 나한테 연락을 하라고. 알겠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카이로의 확답을 들었지만 현성은 마음이 답답했다.

“하아!”

오로센이 문제가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 제2, 제3의 오로센이 등장할지 몰랐다.

‘포인트도 없는데.’

그간 모은 포인트를 게스피트를 고용한다고 다 써 버렸다.

다시금 포인트를 모으기 전에 이런 일이 생기면?

지구가 그대로 멸망할 수도 있었다.

지구는 현성의 고향이자 기반이다.

현성이 가만히 앉아서 막대한 포인트를 수급할 수 있는 이유도 지구에서 다양한 종류의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을 생산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가 멸망당하거나 적군 플레이어들에게 점령당하면?

가족을 비롯해 수많은 지구인들의 안위에 문제가 생긴다.

어찌어찌 가족과 지구인들을 구한다고 해도 지구를 잃으면 포인트 수급에 막대한 차질이 생길 게 뻔했다.

‘빨리 강해져야 해.’

다소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현성의 마음이 단단하게 조여졌다.

오로센 같은 강자가 나타나더라도 게스피트의 도움 없이 처리할 수 있는 힘을 최단 시간 안에 길러야 했다.

‘같은 1레벨 플레이어를 상대로는 자력 결계도 무용지물이야.’

현성이 자력 결계 안에서 자유롭게 힘을 쓸 수 있는 이유는 1레벨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한데 상대도 1레벨 플레이어라면?

자력 결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 * *

“왜 날 끌고 온 거야?”

게스피트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제나에게 물었다.

“가이드해 주려고.”

“네가 그럴 리가 없잖아.”

“뭐, 사실 가이드해 주면서 겸사겸사 물어볼 것도 있고 해서.”

“뭔데?”

게스피트의 물음에 제나가 피식하고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 제법 짭짤했겠네.”

“뭐가?”

“굴레를 벗어날 가능성이 높은 적군 1레벨 플레이어를 열 명이나 제거했잖아. 거기다 그들의 휘하에 있던 차원과 신하들은 모두 너한테 귀속되었을 테고 말이야.”

제나의 말에 게스피트는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지구 나들이는 게스피트에게 있어서 초대박이나 마찬가지였다.

고용 비용도 받았고 수준 높은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을 제거해 업적도 얻었다.

어디 그뿐인가?

전직 퀘스트도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었고, 대략 수백 개에 달하는 차원을 아주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전부터 최현성 플레이어를 이용해서 포인트도 짭짤하게 벌었잖아.”

게스피트는 교류의 보석을 발명한 당사자이자 현성의 동업자였다.

현성보다 비율이 낮기는 하지만 수입이 꽤 짭짤했다.

“그래서?”

“최현성 플레이어 덕분에 이번에 대박 났잖아. 양심이라는 게 있으면 어느 정도는 돌려주는 게 어때?”

게스피트가 뭔가 울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건 너도 알잖아? 나도 협약과 규율에 얽매여 있는 몸이야.”

게스피트의 답변에 제나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무조건 퍼 주라는 건 아니야. 그냥 협약과 규율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최현성 플레이어를 좀 도와주라는 말이지.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그게 이득이잖아?”

제나의 말에 게스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스피트는 그 전부터 현성에게 협약과 규율을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이번에 큰 이득을 봤으니, 그 빛은 포인트 정산 비율 조정으로 적당히 갚아 줄 생각이었다.

현성이 빨리 성장해서 굴레를 벗어나야 게스피트의 사업도 더욱 안정적으로 변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네가 왜 그런 걸 신경 쓰는 거야?”

게스피트와 제나는 적군 차원과의 전면전 당시 함께 싸웠던 전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었다.

그저 멀리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거나 몇 마디 정도 대화를 나눴을 뿐이다.

‘이년이 왜 이러는 거야?’

게스피트가 아는 제나는 모든 일에 무관심했다.

수틀리면 사고를 치는 말썽꾸러기였다.

그래서 처음 제나가 지구에 왔다고 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

한데 나름 지구 생활에 잘 적응한 것도 모자라 은근슬쩍 현성에게 도움까지 주고 있었다.

게스피트는 제나가 현성을 신경 쓰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 지구라는 이름의 차원이 마음에 들었거든.”

“그래서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을 포섭할 때 도움을 준 거야?”

“뭐, 그렇지. 다른 놈들이 운영해서 개판 되는 것보다는 구관이 명관이라고 최현성 플레이어가 계속하는 게 나으니까.”

“그렇기는 하지.”

다른 아군 1레벨 플레이어가 지구를 점령해 어떤 갱판을 칠지 모르는 일이다.

만약 적군 1레벨 플레이어가 지구를 점령한다면?

게스피트나 제나 모두 엄청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제나는 게스피트를 끌고 다니며 가이드를 자처하면서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게스피트가 지구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이만 가 봐야겠다.”

“잘 가.”

“다음에는 내 차원에도 한번 방문하도록 해. 섭섭지 않게 대접해 주지.”

게스피트의 말에 제나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거기 가 봐야 뭐 좋을 게 있다고.”

제나가 대답을 하기 무섭게 게스피트의 모습이 지구에서 그 자취를 감췄다.

* * *

‘최현성.’

본래 자신의 차원으로 귀환한 게스피트는 자신을 고용한 현성을 떠올리며 검지로 옥좌를 톡톡 쳤다.

‘그저 가능성이 뛰어난 루키라고 생각했을 뿐이거늘…….’

지금은 그 존재감이 압도적으로 커졌다.

아직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전 중인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지구 문화에 흠뻑 빠진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이 꽤 많아.’

게스피트는 이번 용병 고용을 통해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을 제거했다.

그 후 그들의 휘하에 있던 신하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휘하로 흡수했다.

새롭게 얻은 신하들을 통해 살펴본 결과, 용병으로 고용되어 있던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 중 절반 이상이 지구의 문화에 깊게 빠져 있었다.

나머지 절반 역시 꽤 많은 포인트를 지구 문물에 투자한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아군과 적군 차원 모두에서 포인트를 끌어모으고 있어.’

그 결과 현성은 짧은 시간에 엄청난 포인트를 벌어들였다.

또 그중 일부는 게스피트에게도 흘러들어 왔다.

‘그 녀석 때문에 오랜 시간 유지되던 차원 전쟁의 승패가 결정될지도 모르겠어.’

지금의 상태가 계속해서 유지된다면?

팽팽하던 균형이 아군 차원 쪽으로 서서히 기울게 될 것이다.

그럼 게스피트가 각성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어졌던 길고 긴 차원 전쟁이 영원히 그 막을 내릴 수도 있었다.

‘일단 그 녀석을 지켜야 한다.’

그간 게스피트는 협약과 규율을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 현성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수익 배분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하게 자신의 몫을 챙겼다.

‘당분간은 적당히 돌려주마.’

현성은 끝까지 살아남아 굴레를 벗어난 자가 되어야 했다.

작게는 게스피트 자신의 이득을 위해.

크게는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차원 전쟁의 고리를 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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