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권. 황제의 착각 (187/225)
  • ┃황제의 착각

    맥드웰과 카도시의 움직임은 곧바로 현성에게 보고되었다.

    언데드 군단이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었으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드디어 기어 나왔다 이거지.’

    현성은 곧바로 대대적인 철수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 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발동시켰다.

    맥드웰과 카도시는 그간 참았던 울분을 토해 내듯 마음껏 날뛰었다.

    일단 그 둘을 감시하고 있던 언데드들이 모두 박살이 났다.

    그 후 구조 작전을 펼치고 있는 현성 일행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한발 늦은 상태였다.

    “이런 빌어먹을!”

    “다 도망갔잖아!”

    맥드웰과 카도시가 언데드들을 박살 내는 사이 구조 작전을 펼치던 이들이 모두 도망간 것이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완전히 끝장을 내 주마.’

    맥드웰과 카도시가 이를 뿌득뿌득 갈며 현성 일행의 흔적을 추적했다.

    다행히 흔적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가자!”

    “모두 서둘러라!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놈들을 잡아야 한다!”

    맥드웰과 카도시가 수하들을 닦달하며 마력의 흐름을 추적했다.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한 후 남아 있는 잔존 마력은 휘발성이 강하다.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조금이라도 꾸물거렸다가는 그나마 남아 있던 흔적조차 사라져 버릴 테니까 말이다.

    맥드웰과 카도시가 수하들과 함께 정신없이 흔적을 추적했다.

    자신들의 행동이 현성에게 고스란히 보고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말이다.

    * * *

    ‘예상대로 움직여 주는구나.’

    현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맥드웰과 카도시가 숨을 죽이고 있는 동안 현성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언데드를 제외하고도 그들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아무리 높은 레벨의 탐지 스킬을 가지고 있어도 생명력과 마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물건은 잘 감지하지 못하지.’

    사실 탐지할 필요가 없었다.

    생명력이 없는 존재는 무생물에 불과했고, 마력이 없는 물건은 플레이어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맥드웰과 카도시는 당연하다는 듯 지구의 전자 제품을 감지해 내지 못했다.

    아마 두 눈으로 직접 목격을 하더라도 그게 무슨 일을 하는 물건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지금은 이 근방만 커버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이 차원 전체를 커버할 수도 있어.’

    돈과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모든 차원 게이트에 감시망을 세팅하는 것부터 마무리하자.’

    이 차원에 열려 있는 모든 차원 게이트에 감시망을 설치한다면?

    적군 차원의 플레이어들이 차원 게이트를 넘는 족족 알아차릴 수가 있다.

    차원 게이트뿐만 아니라 이 차원 전역을 커버하는 감시망이 완성된다면?

    적들의 이동 경로를 속속들이 알 수 있다.

    지구에는 이미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그래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거나 새로운 차원 게이트가 생겼을 때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했다.

    ‘감시망만 완성되면 효과적인 게릴라전이 가능해.’

    이 차원에서는 감시망이 몬스터가 아닌 적군 차원의 플레이어들을 감시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왔다.’

    현성이 맥드웰과 카도시를 바라보았다.

    그 둘이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거리까지 접근했다.

    ‘자력 결계는 준비가 끝났어.’

    맥드웰과 카도시가 수하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오기만 한다면?

    간단하게 저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저기다!”

    “가자!”

    맥드웰과 카도시가 구조대의 흔적을 따라 자기 발로 자력 결계 내부로 진입했다.

    ‘걸렸다.’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구조대가 의도적으로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게 네놈들의 패착이다.’

    현성은 은신 스킬을 해제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 있다!”

    “놈을 잡아라!”

    맥드웰과 카도시가 수하들을 이끌고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현성이 마력을 끌어 올리며 전투준비를 했다.

    ‘퇴로는 차단이 끝났어.’

    현성과 같은 1레벨 플레이어인 루시아와 파르티샤가 맥드웰과 카도시의 퇴로를 차단한 상태였다.

    “이 쥐새끼 같은 놈!”

    맥드웰이 마력을 끌어 올리며 자신의 주력 공격 스킬을 시전했다.

    아니, 시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력을 끌어 올리는 순간, 그 마력이 자신의 몸을 속박하는 사슬이 되어 되돌아왔다.

    “이게 무슨?”

    맥드웰의 얼굴이 굳어졌다.

    “뭘 꾸물거리는 거냐?”

    그런 맥드웰의 모습에 카도시가 답답하다는 듯 호통을 치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커억!”

    하지만 카도시 역시 맥드웰과 같은 꼴이 되어야 했다.

    “왜 마력이?”

    “함정이다!”

    맥드웰과 카도시는 자력 결계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갑작스러운 현상이 이 장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금방 알아차렸다.

    방금 전까지는 자유자재로 마력의 사용이 가능했었기 때문이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해!”

    맥드웰의 외침에 카도시를 비롯한 수하들이 몸을 돌렸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하지만 맥드웰과 카도시 일행이 자력 결계의 권역을 벗어나는 것보다 현성이 날린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가 그들에게 도착하는 게 더 빨랐다.

    “크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맥드웰과 카도시는 수하들을 방패 삼아 현성의 공격을 막아 내며 전력을 다해 달렸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본때를 보여 주마.’

    수하들의 희생 덕분이었을까?

    맥드웰과 카도시는 자력 결계의 권역 끝자리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두 명의 수문장이 있었다.

    콰아아앙!

    루시아의 방패가 맥드웰의 몸통을 가격했다.

    “커억!”

    전신의 뼈가 으스러진 맥드웰이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푸욱!

    파르티샤의 검이 카도시의 심장을 꿰뚫었다.

    “쿨럭!”

    심장을 꿰뚫린 카도시가 붉은 피를 토해 냈다.

    “이, 이럴 수가?”

    “고작 식민지의 원주민 따위에게…….”

    맥드웰과 카도시가 허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식민지라 업신여겼던 차원에서 이런 일을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저벅저벅.

    그런 맥드웰과 카도시를 향해 루시아와 파르티샤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너무도 손쉽게 두 사람의 숨통을 끊었다.

    거인족들의 차원에서 황제 다음가는 힘을 가진 제후국 왕의 죽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허무한 최후였다.

    ‘끝났다.’

    물론 진짜 끝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에 가까웠다.

    강력한 황제가 다스리는 거인족들의 본토에는 방금 전에 죽은 맥드웰과 카도시급의 강자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말이다.

    * * *

    -휘하 신하 맥드웰이 사망했습니다.

    -휘하 신하 카도시가 사망했습니다.

    “어?”

    황제가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또 죽었잖아.’

    셋을 보냈는데 하나가 죽었다.

    그때까지는 그냥 무관심하게 넘어갔다.

    공성전 기간이라 바쁘기도 했고 보드푸가 전사하기는 했지만 아직 맥드웰과 카도시가 멀쩡하게 남아 있었으니까 말이다.

    한데 그 셋이 모두 전사했다.

    이건 문제가 심각했다.

    ‘이런 망할…….’

    벌써 제후국의 왕이 네 명이나 전사했다.

    이건 절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다음 공성전 대비해야 하는데…….’

    마음 같아서는 신하들에게 알아서 처리하라고 떠넘겨 버린 후 게임에 열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은 황제였다.

    제후국 왕들의 안위를 지켜 줄 의무가 있었다.

    ‘넷이나 당한 거 보니까 보통 놈이 아닌 거 같은데…….’

    안일하게 생각해서 제후들만 계속 보냈다가는 줄초상을 치를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네.’

    황제가 마우스와 키보드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대전으로 모여라.

    대군주의 외침으로 제후들에게 지시를 내린 황제가 대전으로 향했다.

    그 후.

    황제가 친정을 선포했다.

    * * *

    현성은 거인족들의 본토에서 넘어온 제후국의 왕들을 처리한 후 구조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와 동시에 지구의 현대 전자 장비를 대거 들여와 차원 게이트를 감지했다.

    위이이잉!

    그 덕분에 현성은 거인족들의 대대적인 침공을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주 떼거리로 몰려오는구나.’

    전처럼 소규모가 아니었다.

    무려 수십만에 달하는 거인족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차원 게이트를 넘었다.

    ‘정면으로 싸우는 건 손해지.’

    현성은 대대적인 철수 명령을 내렸다.

    적들이 총공세를 해 온다?

    굳이 그걸 정면에서 받아 줄 필요가 없었다.

    현성은 휘하 신하들을 소집한 후 차원 게이트를 열었다.

    그 후 미련 없이 파르티샤의 차원으로 떠났다.

    * * *

    황제가 직접 친정을 했다.

    규모가 대단했다.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제후국의 왕들이 직속 병력을 이끌고 대대적으로 참전했기 때문이다.

    ‘다 쓸어 주마.’

    황제는 이번 기회에 자신의 게임 라이프를 방해하는 세력을 완전히 말소해 버릴 생각이었다.

    식민지를 이 잡듯이 뒤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놈들이 도대체 어디 간 거야?’

    황제는 이번 토벌전을 위해 시스템 상점에서 탐지 아이템인 호루스의 눈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대대적인 탐색으로 식민지를 싹 훑어 게릴라를 벌이는 원주민 플레이어들을 모조리 토벌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식민지 전체를 이 잡듯이 뒤졌음에도 게릴라를 벌였던 원주민 플레이어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무리 수색을 해도 게릴라를 벌였던 원주민 플레이어들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루스의 눈에 의존하지 않고 창조 등급 탐지 스킬을 가진 이들로만 구성된 부대를 만들어 식민지 차원 전체를 수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이런 망할.’

    큰마음을 먹고 직접 친정을 나왔다.

    한데 싸울 상대가 사라져 버렸다.

    황제 입장에서는 개망신을 당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자식들이 하늘로 솟은 거야 땅으로 꺼진 거야?’

    무려 석 달이라는 시간을 수색에 투자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그럼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원주민 플레이어가 저지른 짓이 아니야.’

    1레벨 플레이어는 차원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

    군주 플레이어도 차원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

    둘 중 하나였다.

    다른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가 자신의 식민지를 공격한 것이거나, 다른 차원의 군주 중 하나가 자신의 식민지를 공격한 것이거나 말이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거의 거저먹은 차원이었다.

    그런 만큼 갑자기 제후국의 왕을 쓰러트릴 정도의 강자가 나왔을 때 의심을 해 봤어야 했다.

    게릴라전을 벌인 것이 이 차원의 원주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말이다.

    ‘어떻게 하지?’

    황제는 머리가 부서질 것 같았다.

    언제까지 식민지에 있을 수는 없었다.

    이곳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했다.

    황제인 자신이 이렇게 불만을 토로할 정도니, 제후들의 불만도 상당히 커졌을 것이다.

    ‘돌아가야 하나?’

    벌써 석 달째였다.

    아마 석 달이 아니라 3년을 주둔하고 있어도 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철수하지 않는 한 말이다.

    ‘한번 함정을 파 보자.’

    대대적으로 철수한 척하고 몸을 숨기고 있는다.

    그럼 게릴라전을 펼쳤던 놈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

    황제는 병력을 대대적으로 철군시켰다.

    그 후 정예만 남기고 잠복에 들어갔다.

    잠복에 들어간 지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석 달이 지났다.

    하지만 게릴라를 벌였던 이들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식민지 차원을 포기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 * *

    ‘아직도 안 갔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현성이 손해 볼 것 없다는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스마트폰에는 차원 게이트를 통과한 거인족들의 구성과 숫자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현성은 차원 게이트를 넘으면서 구조한 원주민들은 물론 함께 행동하던 원주민 플레이어들 역시 데리고 왔다.

    당연히 정보를 전달해 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현성에게는 교류의 보석을 발라서 포인트로 가동되는 전자 장비들이 있었다.

    루시아의 차원에 남겨 둔 전자 장비들은 현성의 포인트를 쪽쪽 흡수하며 24시간 가동되고 있었다.

    전자 장비의 동력원으로는 마석을 사용했다.

    ‘아직 걸린 게 없어서 다행이기는 한데.’

    마석을 동력원으로 사용했기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래서 충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폭발하는 장치까지 마련해 놓았다.

    하지만 최하급 마석을 사용해서 그런지 의외로 지금까지 파괴된 장비는 하나도 없었다.

    ‘어차피 난 손해 볼 거 없어.’

    현성은 그간 파르티샤의 차원과 사령술사 시즈라에게 맡겨 둔 차원을 오가며 사냥에 열중했다.

    그 결과 꾸준히 스텟을 상승시켰다.

    반면 루시아의 차원으로 온 거인족들은 손해가 컸다.

    편의 시설에 대한 불편함은 문제도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바로 사냥을 통한 레벨업이었다.

    루시아의 차원은 몬스터들의 손에 너무 일찍 무너졌다.

    그렇기에 고레벨 거인족 플레이어들이 사냥할 만한 몬스터가 없었다.

    높은 등급의 몬스터라고 해 봐야 신화 등급이 끝이었다.

    거인족의 병졸들은 몰라도 귀족이라고 할 만한 이들이 사냥해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몬스터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른 자원이 아무리 많아도 레벨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은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최악이지.’

    루시아의 차원에는 많은 자원과 노예들이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의 성장을 촉구시켜 줄 몬스터가 없었다.

    ‘네놈들이 오래 버티면 버틸수록 나와 네놈들의 차이는 줄어든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거인족들이 더 오래 머물러도 좋고 머물지 않고 돌아가도 좋았다.

    * * *

    ‘빌어먹을…….’

    황제가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전군 철군한다.

    황제가 결국 철군 명령을 내렸다.

    제대로 체면을 구겼다.

    직접 친정을 했건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가게 생긴 것이다.

    황제는 노예들에 대한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라고 이르며 총 30명의 제후들을 식민지에 남겼다.

    게릴라전을 벌였던 타 차원의 플레이어가 재침공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황제와 대다수의 제후들이 본토로 복귀했다.

    노예들을 모두 본토로 이동시키자는 주장도 나왔으나 기각되었다.

    식민지에 있는 노예들 중 대다수가 광산, 농업, 토목이나 건축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노예들을 모두 본토로 이동시키면?

    새롭게 얻은 드넓은 식민지를 사실상 포기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거인족들의 인구수가 두 차원을 모두 커버할 정도로 많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

    황궁으로 돌아온 황제가 얼굴을 찌푸렸다.

    괜한 자존심 때문에 섣불리 철수를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괜한 고집이었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즐겨 보자.’

    황제는 친정을 나오며 수하들과 함께 야전에서 임시 게임룸을 꾸렸다.

    하지만 임시는 어디까지나 임시였다.

    모든 것이 불편했다.

    결정적으로 시도 때도 없이 보고를 해 오고 회의를 요청하는 제후들 때문에 제대로 게임을 즐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식민지의 일은 30명의 제후들에게 일임했다.

    이제부터는 모든 시간을 온전히 게임에 쏟을 수 있었다.

    ‘적룡 길드 놈들, 이제부터 죽었다고 복창해라.’

    황제가 굳은 표정과 함께 게임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 * *

    ‘완전히 철수할 생각은 없나 보네.’

    현성은 적들의 움직임을 보고 확신을 내렸다.

    대대적인 철군 이후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정찰부터 해 보자.’

    현성이 차원 게이트를 열고 오래간만에 루시아의 차원을 방문했다.

    ‘강자들이 꽤 많아.’

    창조 등급 은신 스킬을 사용해 대략적인 정찰을 마친 현성은 사태 파악을 끝마쳤다.

    ‘고맙다.’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식민지에 꽤 많은 제후들을 남겨 놨다.

    하지만 적들도 머리가 없는 건 아닌지 제후들이 최소 둘 이상 모여 있었고, 많게는 셋 이상 모여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 봤자 자력 결계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면 끝장이야.’

    현성의 실력으로 제후 한 명은 손쉽게 제압이 가능했다.

    둘은 조금 애매했다.

    그간 현성의 스텟이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제후 두 명을 상대로는 제압이 가능할 수도 있고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하나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적당히 분탕질 치다가 자력 결계 쿨타임 돌아올 때 한 번씩 오면 되겠네.’

    자력 결계의 쿨타임은 상당히 길다. 한번 사용하면?

    무려 1백 일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1백 일 주기로 제후들을 잡을 수 있다면,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지.’

    적들이 계속 이런 시스템을 유지해 준다면?

    시간이 많이 걸릴 뿐 거인족의 제후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상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 대책을 마련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책을 마련해도 자력 결계의 존재를 모르는 이상 대비하기는 어려울 거다.’

    거인족들은 자력 결계에 대해 모른다.

    자력 결계는 사령술사 시즈라가 다스리던 차원에서 금기로 지정된 물건이었다.

    모든 왕과 대영주들이 자력 결계를 두려워했다.

    왜 아니겠는가?

    자신들의 힘을 일시적으로나마 빼앗아 갈 수 있는 물건인데.

    이에 서로 으르렁거리던 왕과 대영주들이 하나로 힘을 모았다.

    그 후 자력 결계를 발동시킬 수 있는 속박의 서를 보유하고 있던 가문을 공격했다.

    왕과 대영주들의 공격에 자력 결계를 발동시킬 수 있는 속박의 서를 보유했던 가문은 그대로 멸문해 버렸다.

    아무리 자력 결계가 천고의 보물이라고 해도 쿨타임이 있는 이상 하나로 힘을 합친 왕과 대영주들의 공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뭐, 그 멸문한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가 지구로 넘어오는 바람에 오히려 나한테는 땡큐였지만.’

    자력 결계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자신도 죽고 가문도 멸문한다.

    ‘그렇지만 그건 그쪽 차원 이야기지.’

    거인족들에게는 사정이 달랐다.

    ‘아직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았어.’

    거인족들은 현성이 힘으로 제후 둘을 제거했다고 생각하지 속박의 서 같은 아이템의 힘을 빌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 한번 슬슬 시작해 볼까.’

    현성이 대군주의 부름 스킬을 통해 휘하 수하들을 소환했다.

    그와 동시에 다시금 대대적인 구출 작전을 시작했다.

    * * *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제후 요루시가 눈을 번뜩였다.

    “이놈들이 드디어 꼬리를 드러냈군.”

    “당장 가세.”

    다른 제후 사르미에의 말에 요루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제 폐하의 엄명을 잊었나?”

    “하지만 우리 둘이 큰 공을 세울 절호의 기회이지 않은가?”

    “황명을 어겼다는 사실을 아시면, 상이 아니라 벌을 받을 수도 있네.”

    요루시의 말에 결국 사르미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거인족들도 놀고만 있던 게 아니었다.

    당연히 다른 차원으로 도망친 쥐새끼를 잡을 함정을 파 놓은 상태였다.

    “당장 연락을 취하게.”

    “알겠네.”

    장거리 통신 스킬 보유자와 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

    이 둘만 있으면 제후들은 서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빠른 이동도 가능했다.

    요루시와 사르미에가 있는 지역에 식민지에 주둔 중이던 제후들이 모두 몰려들었다.

    총 30명.

    제후 30명이 가진 무력은 황제마저도 넘어설 정도로 강했다.

    “가지.”

    요루시의 말에 30명의 제후들이 은신 스킬을 시전하고 일제히 사건 현장으로 몰려갔다.

    “크아아악!”

    “거인족들을 죽여라!”

    “사람들을 구조해!”

    사건 현장은 난장판이었다.

    거인족 플레이어들은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었다.

    ‘저 건방진 놈들.’

    슈슈슉!

    30명의 제후가 은신 스킬을 해제하고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죽어라!”

    그리고 거인족 플레이어들을 학살하는 원주민 플레이어들을 향해 공격 스킬을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파삭!

    공격 스킬을 시전하기 위해 끌어 올렸던 마력이 그대로 제후들의 몸을 구속하는 사슬이 되었다.

    “이게 무슨?”

    “커억!”

    “다들 갑자기 왜 그래?”

    “마력을 사용하지 마!”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제후들 중 머리가 돌아가는 이들은 금방 문제의 원인을 파악했다.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시나?”

    하지만 올 때는 마음대로였어도 갈 때는 아니었다.

    ‘대박이네.’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솔직히 제후 두 명을 목표로 노리고 세운 작전이었다.

    한데 생각지도 못한 월척들이 대거 걸려들었다.

    ‘네놈들도 머리를 썼다 이거지.’

    거인족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통신망과 이동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번의 패배를 답습하지 않기 위함인지 무려 30명이나 되는 제후들이 일제히 몰려왔다.

    하지만 그게 저들의 패착이었다.

    ‘아무리 머릿수가 많아도 자력 결계 앞에서는 무의미하지.’

    하나 거인족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이렇게 단체로 몰려들었다.

    그게 저들의 실수였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가 자력 결계에 구속되어 힘을 잃은 제후들의 몸을 뒤덮었다.

    “아아아악!”

    “살려 줘!”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제후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망쳤다.

    하지만 퇴로는 이미 파르티샤와 루시아 그리고 카이로가 막아서고 있었다.

    현성을 포함해 무려 네 명의 1레벨 플레이어가 동원된 작전이다.

    당연히 제후들이 도망갈 퇴로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는다.’

    자력 결계의 존재를 들켜서는 안 된다.

    사령술사 시즈라가 있던 차원에서 자력 결계를 보유한 가문이 멸문당한 것은 그 존재를 들켰기 때문이다.

    만약 보안만 잘 유지했다면?

    어쩌면 그 가문이 차원 전체를 지배할 수도 있었다.

    그런 만큼 현성으로서는 보안이 생명이었다.

    * * *

    황제는 열심히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때 눈앞에 연속적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휘하 신하 요루시가 사망했습니다.

    -휘하 신하 스테커가 사망했습니다.

    -휘하 신하 사르미에가 사망했습니다.

    ……후략……

    “어, 어떻게 이런 일이…….”

    황제는 할 말을 잃었다.

    무려 제후가 30명이다.

    그들이 가진 순수한 무력만큼은 황제보다도 강했다.

    제후들이 황제의 신하가 아니었다면?

    군주의 지배력이 사라져 황제가 30명의 제후들과 정면으로 싸울 일이 생긴다면?

    잘해 봐야 동귀어진이 고작이었다.

    한데…….

    그런 제후 30명이 순식간에 전멸해 버렸다.

    ‘그럼 그놈이 나보다 강하다는 말인가?’

    평온하게 게임을 즐기고 있던 황제의 얼굴이 충격과 공포로 물들었다.

    머릿속에 큰 혼란이 찾아왔다.

    황제는 30명의 제후를 상대로 동귀어진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족히 몇 날 며칠을 싸워야 가능했다.

    한데 상대는 30명의 제후를 불과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몰살시켜 버렸다.

    그럼 결론은 하나.

    적이 자신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뜻이었다.

    ‘설마 선발대였나? 그간 조용했던 건 지원군을 이끌고 오기 위해서였나? 그게 아니면…….’

    온갖 망상들이 황제의 뇌리를 점령했다.

    하지만 망상의 결과는 단 하나.

    식민지를 점령한 강자가 차원 게이트를 통해 자신이 있는 본차원으로 넘어오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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