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권. 연승 행진 (186/225)

┃연승 행진

‘어떻게 이런 일이?’

제드로스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제후국의 왕이다.

황제를 제외하면 자신의 상대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제후들이 있기는 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제드로스보다 강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상위 서열의 제후들도 이렇게 압도적으로 자신을 몰아붙일 수는 없었다.

힘이면 힘, 마력이면 마력.

무엇 하나 상대를 압도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속도도 자신보다 빨랐고 체력과 스킬 저항력 역시 자신보다 높았다.

모든 면에서 밀리는 상황.

‘식민지에 이런 수준의 플레이어가 있었다고?’

몬스터들의 침공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무혈입성한 차원이다.

그 후에도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본토에 있는 하급 플레이어들만으로 차원 전역을 점령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네놈, 정체가 뭐냐? 정말 식민지의 원주민이냐?”

제드로스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의문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정도 실력자가 있었다면 고작 몬스터 따위에게 차원이 무너져 버릴 리가 없었다.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상대가 코웃음을 치며 더욱더 강한 맹공을 펼쳤다.

제드로스는 최선을 다해 버텼다.

그리고 대군주의 외침을 통해 본토에 있는 신하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제발.’

어서 빨리 다른 제후나 황제의 직속 병력이 지원을 와 줘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황제가 자신을 대군주의 부름 스킬로 소환해 주기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서걱!

그 전에 검을 든 제드로스의 오른팔이 먼저 잘려 나갔다.

‘대군주의 부름.’

제드로스가 본토에 있던 자신의 수하들을 소환했다.

방패막이로라도 쓰기 위해서였다.

“나를 지켜라!”

제드로스의 외침에 소환된 신하들이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수하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살겠다 이거냐?’

현성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소환된 신하들의 숫자가 꽤 많았다.

거기다 실력도 출중했다.

현성을 이길 수는 없지만, 잠시 막을 수는 있는 전력이었다.

‘어떻게 할까?’

현성도 휘하 신하들을 동원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아군의 피해가 커질 확률이 높았다.

‘이럴 때 제격인 녀석이 있지.’

현성이 아공간에서 라이프 포스 베슬을 꺼내 짧게 세 번 연달아 마력을 주입했다.

사아아악!

그 순간 라이프 포스 베슬에서 칠흑빛 마력이 뿜어져 나오며 인간의 형상을 갖췄다.

“저놈들을 막아.”

현성의 지시에 사령술사 시즈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득! 우득!

사령술사 시즈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언데드로 변했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언데드들이 제드로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꽈아앙!

“막아라!”

“주군을 지켜야 한다!”

제드로스의 수하들은 자신의 주군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그들의 실력으로는 사방에서 달려드는 왕과 대영주급 언데드들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제드로스가 소환한 신하들이 사령술사가 부리는 언데드 군단에게 붙잡혀 있는 사이.

현성은 오른팔을 잃고 도주하는 제드로스를 노렸다.

서걱! 서걱!

현성의 손에 들린 용혈검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 결과 오른팔을 잃고 도주하던 제드로스의 몸에 하나둘 상처가 늘어났다.

그리고 결국에는…….

서걱!

제드로스의 목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휘하 신하 갈도쿠가 등용을 철회했습니다.

-휘하 신하 커프레드가 등용을 철회했습니다.

-휘하 신하 체레고스가 등용을 철회했습니다.

……후략……

신하들이 줄줄이 충성 맹세를 철회했다.

‘도대체 얼마나 급이 높은 놈이었던 거야?’

충성 맹세를 철회하는 신하들의 숫자가 수천 단위를 넘어섰다.

현성은 재빨리 휘하 신하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본토에 남아 있는 녀석들의 숫자가 만만치 않구나.’

꽤 높은 자리에 있었던 녀석인 것 같았다.

‘메모리 스틸.’

현성이 스킬을 사용해 방금 쓰러트린 적이 가지고 있던 한 달간의 기억을 엿봤다.

‘상당히 강력한 차원이다.’

현성이 점령했던 적 차원과는 상황이 달랐다.

황제라는 절대군주가 있다.

그 아래 수많은 제후국이 존재한다.

현성의 손에 죽은 인물은 수많은 제후국의 왕 중 한 명이었다.

‘위험한데.’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패배할 확률이 높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황제의 엉덩이가 무겁다는 건데.’

최근 황제는 무언가에 푹 빠져 있었다.

그래서 정사에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비그로푸가 죽은 지 2주가 넘어서야 손을 쓴 이유가 황제의 나태함 때문이었구나.’

현성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제후가 죽었으니 분명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황제가 직접 나서지는 않겠지만, 더 상위 서열의 제후가 단체로 몰려올 확률이 높았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휘하에서 탈출한 신하들의 숫자도 많았지만, 남아 있는 이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이들을 추슬러야 했다.

* * *

“막아! 무조건 막아! 적룡 길드한테 패배하는 건 절대 용서하지 못다!”

황제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예! 주군!”

휘하에 있는 거인족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했다.

평균 신장이 5미터에 달하는 거인족 플레이어들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하기 위해 변신 스킬 아이템을 사용하고 게임에 임했다.

하지만 신체 사이즈만 줄어들었을 뿐 그들의 놀라운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은 그대로였다.

“버프! 퍼프!”

“탱커 막아!”

“힐러가 누웠습니다!”

황제가 직접 만든 게임룸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경험치 손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부활 주문서 써!”

황제가 목소리를 높였다.

얼마 전 벌어진 전쟁에서 적룡 길드에게 성을 세 개나 빼앗겼다.

항상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적룡 길드에게 당한 패배는 실로 뼈아팠다.

그 후로 계속해서 밀리기만 했다.

‘저 미친놈은 포인트가 썩어 나나.’

황제가 이를 악물었다.

현질을 얼마나 했는지 적룡 길드의 전력이 두 배 이상 올라간 느낌이었다.

황제도 더 현질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포인트가 부족했다.

돈 싸움에서 밀린 것이다.

하지만 황제에게는 기존의 성을 지배하며 쌓아 놓은 게임 머니와 휘하 신하들을 모조리 테스트한 뒤 찾아낸 게임의 달인들이 있었다.

“싸워라! 더 이상 패배할 수는 없다! 우리 검은 사자 길드에게는 오직 승리만이 있을 뿐이다!”

“예! 주군!”

황제의 외침에 신하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황제가 게임에 열중하는 사이 눈앞에 작은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휘하 신하 제드로스가 사망했습니다.

“에이씨! 바쁜데 귀찮게!”

황제가 메시지창을 지워 버렸다.

그러고는 다시금 게임에 열중했다.

* * *

현성은 다시금 구조 작업에 열중했다.

제후들이 단체로 내려오면 구조 작업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 전에 최대한 많은 숫자의 사람들을 구조해야 해.’

현성의 지시하에 수많은 이들이 자유를 되찾았다.

‘그 녀석 덕분이네.’

이 차원에는 현성이 쓰러트린 제후 제드로스의 신하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충성 맹세를 철회하지 못한 녀석들도 있었다.

그 덕분에 현성은 손쉽게 수십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구출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 벌어진 구조 작전에도 제후 제드로스의 신하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이 차원을 다스리는 실무자들이었다.

그 덕분에 로카드가 모르는 곳에서 노예의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까지 대거 구조할 수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현성은 어차피 불러들인 시즈라를 최대한 활용했다.

시즈라의 언데드 군단을 동원해 대대적인 구조 작전을 펼친 것이다.

그 덕분에 사람들을 구조하는 작업의 속도가 월등히 빨라졌고, 수많은 원주민들이 구조되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이 차원을 점령하고 있던 거인족 플레이어들은 연달아 큰 곤욕을 치렀다.

‘좋아.’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일반 등급 업적을 획득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희귀 등급 업적을 획득했다.

영웅 등급 업적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획득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이 속도라면 전설 등급까지는 금방 찍을 수 있겠어.’

거인족 수뇌부의 대처가 늦은 덕에 제대로 꿀을 빨 수 있었다.

‘왜 대처가 늦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지.’

황제가 나태해서든 제후들끼리 내분이 생겼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제대로 꿀을 빨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게 중요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현성은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결과 거인족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점령지를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 * *

현성이 열심히 꿀을 빨고 있는 사이 거인족들의 본토에서는 난리가 났다.

식민지에서 일어난 반란 때문이었다.

반란.

제후들은 식민지에서 일어난 일을 단순한 게릴라성 테러가 아니라 반란이라고 규정했다.

벌써 빼앗긴 영토의 규모가 상당히 컸고, 죽임을 당하거나 적의 휘하에 들어간 거인족 플레이어의 숫자가 백만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황제 폐하께서는 아직도 소식이 없으시오?”

“오늘은 꼭 회의에 참석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허어,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이 있으시기에…….”

“다른 차원을 침공할 계획을 세우시는 게 아니겠소?”

“그게 가능한 일이기는 하오? 좌표를 알아야 차원 게이트를 열 수 있다고 알고 있는데…….”

“무슨 방법이 있으니 황제 폐하께서 저리 몰두하시는 게 아니겠소?”

“그럴 수도 있겠구려. 하지만 이미 점령한 차원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인데…….”

제후들이 설왕설래를 늘어놓았다.

아마 황제가 게임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지금처럼 태평하게 있지는 못할 것이다.

잠시 후.

약속한 대로 황제가 대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짐의 신하인 제드로스가 죽었다.”

황제의 말에 제후들이 표정을 굳혔다.

“누가 이번 일을 해결하겠는가?”

“신을 보내 주시옵소서!”

“아니옵니다! 신을 보내 주시옵소서!”

제후들이 앞다투어 자신을 보내 줄 것을 청했다.

이번 일을 잘만 해결하면?

큰 상을 받는 것은 물론 식민지에 대한 영향력도 강화시킬 수 있었다.

“경들을 모두 보낼 수는 없고…….”

황제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맥드웰, 보드푸, 카도시.”

황제가 제후 세 명의 이름을 불렀다.

“예, 폐하!”

호명된 제후 셋이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경들이 서로 힘을 합쳐 식민지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도록 하시오.”

“그리하겠사옵니다!”

황제의 선택을 받은 제후 셋이 힘차게 대답했다.

대전 회의가 끝난 후.

세 명의 제후가 휘하 신하들을 이끌고 차원 게이트를 넘었다.

* * *

‘순조롭네.’

현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구조 작업은 아무런 문제 없이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지구랑 파르티샤 차원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안전 결계가 사라졌을 때 현성은 큰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각투브크를 비롯한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과 친분을 쌓으며 이런저런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한데 그런 대비가 무색하게도 지구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파르티샤의 차원도 마찬가지였다.

드문드문 이어지던 반인반룡들의 습격 빈도가 오히려 줄어들 정도였다.

‘시즈라는 이제 슬슬 돌려보내야 하나?’

현성은 시즈라의 라이프 포스 베슬을 가지고 있다.

그 덕분에 원하면 언제든 신호를 보내 시즈라를 소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소환된 시즈라를 다시금 현성이 점령한 적군 차원으로 보내려면 따로 차원 게이트를 열어 줘야 했다.

‘차일피일 미루기는 했는데, 이제 슬슬 보내 주긴 해야지.’

시즈라가 다스리는 차원이 어느 정도 안정되기는 했다.

하지만 수장이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기에는 불안한 점이 더 많았다.

위이이잉!

그때 현성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시즈라였다.

“무슨 일이지?”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제가 부리는 언데드들을 다 박살 내고 있어요!

시즈라의 말을 들은 현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온 건가.’

거인족들의 수뇌부가 추가 병력을 파병했다.

“언데드로는 감당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한가?”

현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시즈라에게 물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적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지만, 이대로라면 금방 전멸할 거예요. 마력이 부족해요.

“마력만 충분히 공급되면 이길 수 있겠어?”

-조금 더 버틸 뿐이에요. 이기기는 힘들 것 같아요.

시즈라의 말에 현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직 복구 중인 시즈라의 언데드 군단이 가진 힘은 과거에 선보였던 위용에 비하면 많은 것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 부족한 전력으로도 현성의 지배하에 있는 플레이어들 중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할 정도였다.

“그렇게 강한가?”

-당신 정도의 강자가 무려 셋이나 있어요.

시즈라의 말에 현성이 눈을 번뜩였다.

‘제후국의 왕들이 분명해.’

제후국의 왕이 무려 셋이나 행차를 했다.

‘하나를 보내서 해결이 안 되니까 셋을 보냈다 이거지.’

현성의 입장에서도 하나는 몰라도 셋은 부담스러웠다.

‘일단 뿔뿔이 흩어 놔야 한다.’

각개격파.

그게 현성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언데드들을 셋으로 나눠서 퇴각해. 마력은 내가 계속 공급해 줄 테니까.”

-알았어요.

시즈라가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럼 사냥을 하러 가 보자.’

현성이 시즈라의 언데드 군단이 주둔하고 있던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사령술사는 어디 있는 거야?’

제후국의 왕 중 하나인 맥드웰이 얼굴을 찌푸렸다.

창조 등급 탐지 스킬을 써 봤다.

마력과 생명력을 탐지하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현성이 과거 겪었던 혼란을 맥드웰 역시 똑같이 겪었다.

사령술사가 언데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보이는 족족 제거해 버리면 되겠지.’

맥드웰은 열심히 언데드들을 정리했다.

그때였다.

언데드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각자 흩어져서 섬멸하자.”

“그렇게 하지.”

맥드웰의 말에 보드푸가 순순히 동의했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인 카도시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함정일 수도 있다. 흩어지는 것보다는 하나로 뭉쳐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서로 신하들을 교환했잖아. 그러니 괜찮아.”

“그래, 아무리 제드로스가 당했다고는 하지만, 설마 그 잠깐을 못 버티겠어?”

맥드웰과 보드푸의 타박에 반대하던 카도시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 역장으로 인해 통신 스킬이 방해받을 것을 염려해 제후국의 왕 셋은 서로의 신하들을 자신의 진영에 포함시켰다.

대군주의 외침을 통해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였다.

‘잠깐 사이에 별일이 있겠어.’

‘가장 먼저 반란군을 제압하는 자가 가장 큰 상을 받는다.’

‘저 둘보다 내가 먼저 공을 세워야 해.’

제후국의 왕들은 황제를 주군을 모시는 동료다.

하지만 서로가 경쟁하는 경쟁자이기도 했다.

맥드웰, 보드푸, 카도시.

세 명의 제후들은 각자 자신의 신하들을 이끌고 흩어지는 언데드 무리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 * *

‘드디어 왔다.’

현성의 눈에 언데드 군단을 추격하며 맹공을 퍼붓는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현성은 미리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놨다.

그 후 언데드 군단을 통해 적을 유인했다.

‘선빵필승.’

현성이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뒤 그대로 선공을 날렸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가 언데드 군단을 추격하던 이들을 향해 날아갔다.

꽈아아아앙!

‘제대로 들어갔어.’

제드로스를 상대할 때도 느꼈지만, 역시 선공을 먼저 날린 후 기습하는 게 최고였다.

타악!

현성이 용혈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던 언데드들도 몸을 돌려 반격에 나섰다.

“이 건방진 놈!”

현성의 기습 공격에 수하들의 대다수를 잃은 보드푸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타악!

보드푸가 자신의 대도를 뽑아 들고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현성 역시 피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꽈아앙! 꽈아앙!

현성과 보드푸가 연달아 검과 도를 맞대며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확실히 제드로스보다는 한 수 위야.’

이런 실력자가 셋이었다면?

현성도 위험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현성과 접전을 벌이고 있는 보드푸 역시 꽤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자식 상당히 강하다. 제드로스 놈이 괜히 당한 게 아니었어.’

예상대로 마력 역장도 펼쳐져 있었다.

‘역시 언데드들이 흩어진 건 함정이었어.’

보드푸가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죽었구나.’

맥드웰과 카도시의 신하 둘이 방금 전 기습에 휘말려 죽었다.

‘버티기만 하면 된다.’

휘하 신하가 죽으면 군주에게 곧바로 메시지가 간다.

맥드웰과 카도시는 자신이 홀로 공을 세우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전력을 다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보드푸는 방어에 전념했다.

‘버틴다 이거지?’

현성은 상대가 뭘 노리는지 알아차렸다.

‘동료들이 오면 나만 힘들어지지.’

우득! 우득!

현성이 용인화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무차별적으로 난사해 체력을 낮췄다.

당연히 광폭화 같은 버프 스킬들이 발동했다.

‘영역 선포.’

직업 스킬까지 발동시켜 줬다.

현성의 스텟이 급상승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나름 잘 버티던 보드푸가 형편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이익!”

보드푸의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현성과 마찬가지로 광폭화 같은 버프 스킬들을 발동시킨 것이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건 시간 싸움이었다.

현성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창조 등급 방어구와 몸에 돋아난 용의 비늘이 가진 방어력을 믿고 거침없이 맹공을 퍼부었다.

현성과 보드푸의 몸이 점점 붉은 피로 물들어 갔다.

‘이겼다.’

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졌다.’

그와 반대로 보드푸의 표정은 점점 초조하게 변했다.

현성의 몸에는 상처가 없었다.

생겨도 불사의 서가 금방 치료해 버렸다.

반면 보드푸의 상처는 잘 낫지 않았다.

흑뢰신마공에 의해 입은 상처는 금방 회복했다.

하지만 화염의 서로 인한 상처는 회복할 수가 없었다.

화염의 서가 품고 있는 근원을 제거하는 힘 때문이었다.

‘왜 빨리 안 오는 거야?’

보드푸는 초조한 표정으로 다른 제후들의 지원을 기다렸다.

서걱!

그때 보드푸의 왼쪽 다리가 잘려 나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사지가 멀쩡한 상태에서도 현성에게 밀리던 보드푸였다.

사지 중 하나가 잘려 나가는 큰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는 더 이상 현성의 공격을 막아 낼 수가 없었다.

서걱!

보드푸의 목이 날아갔다.

‘얼른 튀자.’

현성은 재빨리 전리품을 챙긴 뒤 마력 역장을 해제하고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자리를 떴다.

잠시 후.

“보드푸가 당했어!”

“이런 빌어먹을!”

뒤늦게 사건 현장에 나타난 맥드웰과 카도시가 얼굴을 찌푸렸다.

“보통 놈이 아니야.”

맥드웰의 말에 카도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드로스가 죽었을 때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제드로스보다 약간 강한 정도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자신들의 수하가 죽고 이곳에 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보드푸의 숨통을 끊었다.

이건 적의 실력이 제후인 자신들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증거였다.

“지원을 요청해야 하나?”

카도시의 말에 맥드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제 폐하께서 보드푸의 죽음을 인지하셨을 테니 알아서 지원이 올 거야. 괜히 우리가 먼저 지원을 요청할 필요는 없어.”

“하긴 그렇군.”

어차피 지원이 올 게 분명한 상황에서 먼저 지원을 요청한다?

그건 맥드웰과 카도시의 명성만 깎아 먹는 일이었다.

“앞으로는 꼭 붙어 있어야겠군.”

“그게 좋겠어. 놈이 피한 걸 보면, 우리 둘을 상대할 자신은 없는 것 같으니까.”

맥드웰과 카도시는 황제가 보내 줄 지원군을 기다리며 잠자코 있기로 했다.

둘이 힘을 합쳐 제드로스와 보드푸를 죽인 적을 공격하는 방법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저놈을 어떻게 믿고.’

‘저놈이 날 방패막이로 쓸지도 몰라.’

맥드웰과 카도시는 서로를 믿지 못했다.

제드로스가 죽으며 다른 제후들은 큰 이득을 봤다.

제드로스의 휘하에 있던 신하들이 자신들에게 충성 맹세를 했기 때문이다.

또 제드로스가 지배하던 제후국 역시 자연스럽게 다른 제후들의 차지가 되었다.

아마 방금 전사한 보드푸의 신하들과 제후국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다.

자신들이 전사한다면?

그건 상대에게만 이득이 되는 행동이었다.

동료이자 경쟁자인 맥드웰과 카도시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했기에 현성과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 * *

‘이놈들이 왜 이렇게 잠잠해?’

현성은 시즈라를 점령한 적군 차원으로 보내는 걸 보류하고 계속해서 언데드 군단을 운용했다.

그리고 언데드 군단을 이용해 본토에서 온 두 명의 제후를 감시했다.

한데 그 둘은 상당히 얌전했다.

처음 등장하자마자 언데드 군단을 박살 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언데드 군단을 보고도 섣불리 덤벼들지 않았다.

‘유인책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함께 왔던 동료의 죽음이 저 둘을 소극적으로 만든 것 같았다.

‘그럼 이 점을 최대한 이용해야지.’

현성은 휘하 신하들에게 더 적극적인 구조 활동을 명령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저 둘을 따로 각개격파 할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굴렸다.

‘한번 도발해 보자.’

현성은 언데드들과 군주를 잃고 강제로 현성의 휘하에 속하게 된 거인족 플레이어들을 이용해 두 명의 제후를 지속적으로 도발했다.

하지만 그 둘은 망부석이라도 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안 움직인다, 이거지?’

도발에 넘어오지 않는다면?

넘어오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현성은 언데드를 이용해 그 둘을 감시하게 한 후 두 명의 제후가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지역을 대놓고 공격했다.

‘난 손해 볼 거 없어.’

그 둘이 움직이지 않으면?

마음 편히 거인족들을 쓸어버리고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다.

반대로 그 둘이 움직이면?

자력 결계를 이용해 함정을 파고 제거하면 그만이었다.

* * *

‘도대체 언제 지원이 오는 거야?’

맥드웰은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식민지에는 맥드웰의 신하들도 있었다.

그들은 맥드웰을 대신해 식민지의 영토를 관리했다.

한데 최근 맥도웰의 식민지 영토를 관리하던 신하들이 줄초상을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카도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하들은 맥드웰과 카도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계속 무시하고는 있었지만 이대로 가면 경제적인 손해도 손해지만 신하들의 인망을 잃게 된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른 제후들의 항의가 시작된 것이다.

내용은 간단했다.

-자신만만하게 내려가더니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요?

-피해가 줄기는커녕 더 커지지 않았소?

-무능해도 이렇게 무능할 수가 있나…….

-당장 반란군을 때려잡으시오.

다른 제후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럼 어서 황제 폐하를 움직이란 말이야.’

금방 지원군을 보내 줄 것 같던 황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제후들은 감히 태업하는 황제를 원망하지 못하고 자신만만하게 식민지로 내려간 맥드웰과 카도시의 무능함만 성토했다.

결국 맥드웰이 결단을 내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어.”

“그럼 뭘 어쩌자는 건가?”

맥드웰의 말을 들은 카도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번 일에 한해서 전적으로 힘을 합치는 게 어떻겠나?”

“내가 자네를 어떻게 믿고?”

“영혼의 계약서를 쓰세.”

맥드웰의 말에 카도시가 눈을 번뜩였다.

영혼의 계약서.

그거라면 서로를 믿지 못하는 둘을 하나로 화합시켜 줄 수 있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맥드웰과 카도시는 영혼의 계약서 작성에 동의했다.

두 사람은 영혼의 계약서를 작성하고 사인을 했다.

그 후 두 사람이 오랜 침묵을 깨고 본격적인 반란군 토벌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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