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권. 한번 호구는 영원한 호구 (182/225)

┃한번 호구는 영원한 호구

“저, 저기 그게…….”

각투브크가 말꼬리를 흐리며 사나운 눈빛으로 현성을 노려봤다.

순순히 협조하는 듯했던 현성이 자신을 함정에 빠트렸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왜 현성 씨를 노려봐?”

“아닙니다!”

제나의 물음에 각투브크가 막 전입 온 신병처럼 힘차게 대답했다.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아니라고? 넌 내 눈이 썩은 동태 눈깔로 보이냐?”

“아닙니다!”

“누가 그런 말 듣고 싶대?”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제나가 말년 병장처럼 각투브크를 갈궜고, 각투브크는 어리바리한 신병처럼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을 하는 와중에 각투브크의 머리는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저 여자는 절대 이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가 아니야. 그럼 다른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라는 건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각투브크는 자신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가…….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

‘굴레를 벗은 자구나.’

굴레를 벗은 자들은 안전 결계의 유무와 상관없이 굴레를 벗지 못한 자들의 차원을 방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차원에 아무런 영향력도 끼칠 수 없다.

각투브크는 꽤 오랜 시간을 살아온 1레벨 플레이어다.

그렇기에 굴레를 벗은 자에 대한 제약에 대해서도 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굳이 쫄 필요가 없잖아?’

굴레를 벗은 자들은 자신이 가진 힘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그 말은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괜히 쫄았네.’

잔뜩 겁에 질려 있던 각투브크의 표정이 당당해졌다.

“죽고 싶지 않으면 괜히 내 소유의 회사에 욕심내지 말고 곱게 가라.”

제나가 유형화된 마력을 회수하며 말했다.

그때 각투브크가 남아 있는 용기를 최대한 쥐어짜서 억지로 입을 열었다.

“거,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원래는 반말로 ‘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뇨?’라고 하려고 했지만 차마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다.

“뭐?”

제나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제나의 몸으로 회수되던 유형화된 마력이 다시금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빠르게 공격 스킬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꿀꺽!

각투브크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켰다.

‘쪼, 쫄지 말자. 단순한 위협일 뿐이야. 진짜 나한테 해코지를 할 수는 없어.’

각투브크가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핍박을 하십니까? 그리고 그쪽이나 저나 어차피 이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같은 처지인 건데, 서로서로 조금씩만 양보를 하면 좋지 않습니까?”

“뭐? 그쪽?”

제나의 눈이 반쯤 돌아갔다.

슈슈슈슉!

그와 동시에 유형화된 마력들이 뻗어 나가 각투브크의 몸을 휘감았다.

“커억!”

각투브크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제압당한 각투브크의 주변으로 온갖 속성을 가진 공격 스킬들이 서서히 다가갔다.

“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당신은 굴레를 벗은 자가 아닙니까? 저는 아직 굴레를 벗은 자가 아닙니다. 그런 저를 공격하시다니요? 규율이 두렵지도 않으십니까?”

각투브크의 외침에 제나의 입가에 광기 어린 미소가 피어올랐다.

“오호, 그러니까 그 사실을 믿고 내 앞에서 이렇게 까불었다는 말이지? 그런데 어쩌나? 네가 그렇게 믿고 있는 규율이 이 상황에서도 널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제나의 말에 각투브크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네 차원에 방문했을 때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면, 네 말대로 되었을 수도 있어. 하지만 여기서는 아니야. 여기는 내 차원도 아니고 네 차원도 아니거든.”

“예?”

“규율이 존재하는 이유는 굴레를 벗어난 자들이 굴레를 벗지 못한 아군 차원으로 넘어가 난동을 부리는 걸 막기 위해서야. 그 차원의 병아리들을 보호하는 게 목적이라는 거지.”

그건 각투브크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병아리 취급받는 건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각투브크가 굴레를 벗은 자들에 비해 약자인 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각투브크는 오래전 제나와 같이 굴레를 벗은 자를 만난 경험이 있었고, 그때 규율의 덕을 톡톡히 봤다.

그래서 당연히 이곳에서도 같은 룰이 적용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상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규율이 굴레를 벗은 자가 넘어간 차원의 ‘병아리들만’ 보호한다는 점이지.”

제나의 말을 들은 각투브크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서 새로운 가정 하나가 떠올랐다.

“설마?”

“넌 이 차원의 존재가 아니야. 나와 같은 이방인이지. 쉽게 말해서 넌 규율의 적용 대상이 아니야.”

각투브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저도 병아리입니다!”

각투브크가 발악하듯 외쳤다.

자존심이고 뭐고 따질 때가 아니었다.

자신이 병아리라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건 네가 네 차원에 있을 때만 적용되는 거라니까. 넌 네 차원의 병아리지 이 차원의 병아리가 아니잖아.”

“그, 그럴 수가!”

“그냥 조용히 관광만 하고 돌아가지 그랬니?”

“당장 돌아가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이미 늦었어!”

제나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각투브크의 주변에 대기시키고 있던 스킬들을 휘둘렀다.

퍼퍼퍼펑!

작은 폭음과 함께 각투브크의 몸에 온갖 스킬들이 틀어박혔다.

“큭!”

각투브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각투브크도 나름 대비를 했는지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다.

마력을 모두 쏟아부어 제나의 공격 스킬들을 막아 낸 것이다.

“어쭈, 막아?”

하지만 그 모습을 목격한 제나의 눈이 완전히 돌아가 버렸다.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제나가 손을 뻗어 예비용 키보드를 집어 들었다.

퍼어억!

그리고 그대로 예비용 키보드를 휘둘러 각투브크의 머리를 후려쳤다.

제나의 손에 들린 키보드는 제법 고가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평범한 게이밍 키보드일 뿐이었다.

하지만 제나의 마력이 주입되자, 가히 창조 등급 무구에 비견되는 공격력과 내구성을 지니게 되었다.

“새파랗게 어린 놈이 어디서 건방을 떨어!”

퍼억! 퍼억!

“거기다 주제넘게 내 것을 탐내?”

눈이 돌아간 제나가 미친 듯이 키보드를 휘두르며 각투브크를 구타했다.

각투브크의 몰골은 순식간에 만신창이로 변했다.

‘이게 이렇게 도움이 되네.’

현성은 제나가 각투브크를 구타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제나는 현재 리X 오X 레X드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최대 주주였다.

원래는 현성이 최대 주주였는데, 제나에게 넘겨준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나가 좋아하는 고인물 캐릭터의 빠른 패치를 위해서였다.

제나는 지구 문물에 관심이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깊게 빠져 있는 게 바로 게임이었고, 특히 리X 오X 레X드의 경우 개인 사비로 아마추어 팀을 꾸려 프로 도전을 노리고 있을 정도로 열심히였다.

문제는 게임이라는 게 패치가 되면서 캐릭터 밸런스를 맞춘다는 점이다.

특히 고인물 캐릭터의 경우 웬만큼 인기가 없으면 부활하기가 힘들었다.

이에 제나는 전화를 걸어 현성을 닦달했고, 현성은 아예 리X 오X 레X드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주식을 제나에게 넘겼다.

그 후에는 회사 임원들이 제나를 직접 상대했다.

결과는 나름 윈윈이었다.

제나 역시 게임의 재미를 해칠 정도의 무리한 상향 패치를 원한 건 아니었다.

그저 고인물 캐릭터의 빠른 부활과 더 빠른 신캐릭터 출시를 원했을 뿐이다.

거기다 제나가 투자금 명목으로 개발비 지원까지 해 주니, 회사 입장에서는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그저 귀찮음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한데 그 선택이 현성을 살리게 될 줄은 몰랐다.

‘엉뚱한 용무였으면 이렇게 나서 줄 리가 없지.’

각투브크가 리X 오X 레X드를 탐내서 다행이었다.

‘덕분에 정보도 많이 얻었네.’

사실 각투브크를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잘 풀리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제나가 쩔쩔매는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기에 데리고 왔는데…….

규율에 그런 허점이 있는 줄은 몰랐다.

‘앞으로도 제나 님만 있으면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어.’

기왕이면 다른 회사 주식도 제나와 나누는 게 이득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다 죽어 가네.’

제나에 의해 키보드로 구타당하고 있는 각투브크는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VVIP 고객을 잃을 수는 없지.’

현성이 시간을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저, 제나 님.”

“왜?”

제나가 광기 어린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그만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현성의 말에 다 죽어 가던 각투브크가 부들거리며 힘겹게 눈꺼풀을 올렸다.

그러고는 간절한 눈빛으로 현성에게 애원했다.

제발 살려 달라고 말이다.

“이제 그만하라고? 내가 왜?”

“팀원들 휴식 시간이 다 끝나 갑니다. 잠시 후에 팀원들이 돌아올 텐데, 이 꼴을 보여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현성의 말에 광기에 휩싸였던 제나의 두 눈에 이성이 돌아왔다.

“크흠, 그건 그렇네.”

“타작은 다음에도 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정을 보니까 프로 팀과 연습 경기가 잡혀 있는 것 같은데.”

“그래, 프로 팀과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지. 얼마나 어렵게 잡은 연습 경긴데. 너, 다음부터는 조심해.”

제나의 말에 각투브크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랑 같이 나가시죠.”

현성이 각투브크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와 동시에 회복 계열 스킬을 시전했다.

화악!

각투브크의 몸이 밝은 빛에 휩싸이며 빠르게 외상이 치료되었다.

단점이 있다면 회복된 게 어디까지나 외상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현성은 회복 계열 속성 스킬과 마력 상성이 좋지 않다. 그래서 내상까지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뭐, 저 정도면 어차피 불가능한가?’

각투브크의 상태는 엄청나게 심각했다.

키보드를 뒤덮은 제나의 마력이 각투브크의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솔직히 말해 고레벨 힐러 수십 명이 달라붙어도 단기간에는 회복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다.

현성이 각투브크를 부축해 게임룸 밖으로 빠져나왔다.

“고, 고맙다.”

각투브크가 현성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가식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만약 현성이 중간에 말려 주지 않았다면?

각투브크는 아마 게임룸 안에서 키보드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쯧쯧쯧, 그러게 어째서 제나 님의 성질을 돋우셨습니까?”

“규율을 믿은 내 잘못이다.”

“규율이 있다고 해도 제나 님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됩니다. 화가 나서 눈이 돌아가면, 규율도 무시하시는 분이니까요.”

“뭐?”

“제나 님은 전에 규율을 어기고 난동을 부리다 봉인된 적이 있으신 분입니다. 아마 제대로 꼭지가 도셨으면, 각투브크 님의 차원으로 넘어가 분풀이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현성의 말을 들은 각투브크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긴 그 눈빛은 정상이 아니었어.’

광기 휩싸인 제나의 눈빛을 떠올리자, 다시금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돌아갈 거다.”

현성의 물음에 각투브크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단숨에 대답했다.

지구는 더 이상 각투브크에게 있어서 꿈과 환상의 차원이 아니었다.

언제든 자신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사악한 마녀가 서식하는 위험한 차원이었다.

“이대로 돌아가시기는 섭섭하실 것 아닙니까? 제가 작은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뭐?”

현성의 말을 들은 각투브크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했다.

사실 각투브크는 현성이 자신을 구해 준 것도 정말 의외였다.

거기서 죽게 내버려 뒀다면?

현성으로서는 이득이면 이득이지 손해 볼 일은 없었다.

한데 현성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악한 마녀에게서 자신을 살려 주었다.

“사실 전 각투브크 님을 좋아합니다. 말 그대로 제 VVIP 고객 아니십니까?”

“그, 그건 그렇지…….”

“그런 분을 그냥 보낼 수는 없지요. 따라오십시오.”

현성이 각투브크를 끌고 다시 가이드 역할을 자청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많이 바뀐 상태였다.

방금 전에는 현성이 각투브크의 눈치를 보며 끌려다녔다.

하나 지금은 각투브크가 현성의 눈치를 보며 끌려다니고 있었다.

“어떠십니까?”

“좋네, 재미있는 게 많아.”

“석 달 후에 국제적인 게임 행사가 많이 있습니다. 그때 오시면 제가 제대로 대접하겠습니다.”

“나보고 여기를 또 오라고?”

각투브크가 식겁한 표정으로 물었다.

처음 지구에 찾아왔을 때는 맛집처럼 심심하면 들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나를 만나고 난 후에서는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오기는커녕 지구가 있는 방향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을 생각이었다.

각투브크는 자신의 차원에서는 두려울 게 없는 절대자였다.

그런 그가 지구에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맞아 죽을 뻔했다.

각투브크는 그런 경험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하하하, 그건 각투브크 님이 괜히 제나 님을 자극하셔서 벌어진 일이 아닙니까? 각투브크 님이 제나 님의 것을 탐하지 않으면 괜찮을 겁니다.”

현성이 살살 각투브크를 달랬다.

그러면서 지구의 국제적인 게임 행사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직접 참여해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그리고 제가 게임 운영에도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게임 운영?”

시큰둥하던 각투브크가 흥미를 보였다.

“예, 각투브크 님은 VVIP 고객님이 아니십니까? 각투브크 님의 의견을 게임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현성이 이런저런 이권을 약속하며 각투브크를 꼬셨다.

‘이 자식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각투브크는 자신이 현성에게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골치 아픈 이방인.

자신의 이권을 빼앗을 수 있는 적.

그런데 그런 자신에게 먼저 이권을 나눠 주겠다고 제안을 해 왔다.

‘목적이 뭐지?’

애초에 자신을 살려 준 것도 그랬고 친절하게 구는 것도 그랬고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날 꼬시려는 목적이 뭐야?”

“목적이라뇨? 그런 거 없습니다. 그저 각투브크 님과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각투브크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현성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런다고 각투브크가 현성의 속마음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말 순수한 선의입니다.”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각투브크가 흥미를 느낄 만한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각투브크는 지구 문명에 흠뻑 빠져들었다.

“리X지를 개발한 회사가 이제 내 거라고?”

현성은 각투브크에게 리X지의 소유사 주식 일부를 양도해 줬다.

“100%가 아닌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현성의 말에 각투브크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제 작은 성의입니다.”

“고맙네, 고마워.”

“앞으로의 패치 방향도 제가 미리미리 귀띔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그래 주겠나?”

“물론이죠.”

“고맙네, 정말 고마워.”

“지구에 오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오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지구 관광을 시켜드리겠습니다.”

일주일 넘게 계속된 현성의 호의에 경계심 가득하던 각투브크의 눈빛이 흐물흐물하게 변했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준다니까 일단 받기는 해야지.’

각투브크 입장에서는 무슨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현성이 주는 것을 받아 봐야 이득을 봤으면 봤지 손해 볼 일은 없었다.

“크흠, 그럼 이만 가 보겠네.”

“종종 연락드리겠습니다.”

현성이 스마트폰을 흔들며 말했고, 각투브크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원 게이트를 열고 자신의 차원으로 돌아갔다.

‘좋아.’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처음에는 현성의 호의를 잔뜩 경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물흐물 풀어져 지금은 별다른 의심 없이 현성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아마 자신이 손해 볼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현성이 제나에게 맞아 죽을 뻔한 각투브크를 살려 준 이유는?

당연히 써먹을 곳이 있어서였다.

‘규율을 이용하면 제나 님을 통해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어.’

그를 위해 더 많은 지구의 재화를 제나에게 넘겨줘야 하겠지만, 그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현성에게 중요한 건 지구의 재화가 아니라 포인트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들은 규율이 아닌 협약의 영향을 받는다.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이 쳐들어오면 제나 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굴레를 벗어난 자인 제나는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을 상대할 때는 큰 도움이 되지만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을 상대할 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움이 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되는 거고.’

제나가 나서서 지구에 쳐들어온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을 박살 내면?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건 결코 현성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각투브크 같은 제어 가능한 아군을 최대한 많이 모아야 해.’

현성이 각투브크의 목숨을 살려 주고 극진한 대접을 해 준 것도 모자라 지구에 있는 게임 회사 주식까지 넘겨주며 친분을 쌓은 이유는 단 하나.

지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각투브크를 부려 먹기 위함이었다.

‘제나 님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다고는 하지만, 각투브크는 확실히 강자야.’

각투브크의 무력은 현성보다 윗길이었다.

그런 강자를 게임 회사 주식 조금 넘겨주고 부릴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각투브크 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니야.’

현성 덕분에 게임 패치 정보를 미리 받아 볼 수 있고, 아직 아군 차원 서버에 풀리지 않은 게임들을 미리 즐길 수도 있다.

‘각투브크가 지구 상품을 내다 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성은 큰 가치가 없는 것들을 선물로 주고 그것을 대가로 각투브크를 용병으로 부려 먹을 생각이었다.

‘각투브크는 소유욕이 강하지.’

각투브크의 성격상 지구에 있는 자신의 회사가 무너지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하나하나 늘려 나가자.’

현성은 타 차원의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을 지구로 유인해 공짜 용병으로 부려 먹을 생각이었다.

물론 각투브크나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이 지구에 있는 자신의 재화를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 적절한 압박에 들어가면 그만이다.

‘너희가 게임을 안 하고도 살 수 있나 보자.’

교류의 보석을 통해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에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을 비롯한 문화 상품의 서버는 모두 지구에 있다.

지구가 점령당하면?

각투브크를 비롯한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은 더 이상 게임을 비롯한 지구의 문화 상품을 즐길 수가 없었다.

‘적당히 액션 좀 취해 주면 되겠지.’

각투브크를 비롯한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이 머뭇거릴 때 게임 서버를 다운시킨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게임을 비롯한 지구의 문화 상품을 인질로 삼아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을 공짜로 부려 먹는다.

이게 각투브크를 보고 현성이 세운 계획이었다.

‘좀 치사한 것 같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구의 안전이었으니까 말이다.

* * *

각투브크는 그 후 지속적으로 지구를 방문했다.

특히 GG스타 같은 국제적인 게임 행사에 큰 만족감을 표했다.

그와 더불어 지구에 게임 개발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게임을 만들겠다나 뭐라나?

‘뭐, 나쁠 건 없지.’

현성의 입장에서는 땡큐였다.

각투브크가 지구에 애정을 쏟으면 쏟을수록 지구의 위기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테니까 말이다.

현성은 그 외에도 용병 고용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과 친분을 쌓았다.

당연히 그들 중 차원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이들은 지구에 방문했다.

그 후 제나와의 면담을 거친 뒤 순한 양이 되어 각투브크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지구의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반인반룡들의 차원에서 봤던 수준의 적이 아니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이 모였다.

거기다 그동안 현성 역시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구와 현성이 점령한 적군 차원을 오가며 사냥에 열을 올렸다.

사령술사 시즈라는 나름 자신의 차원을 잘 다스렸다.

여러 문제가 터지기는 했지만, 굳이 현성이 나설 것 없이 사령술사 시즈라 선에서 자체적으로 해결이 가능했다.

또 사령술사 시즈라는 예상보다 월등히 빠르게 소실된 힘을 회복해 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현성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성은 불사의 서로 휘하 플레이어들에게서 지속적으로 마력을 공급받았다.

그렇게 공급받은 마력을 라이프 포스 베슬에 주입하면?

너무도 손쉽게 사령술사 시즈라에게 마력을 전달해 줄 수 있었다.

‘지구는 안전해.’

현성이 키운 힘과 호구들의 협력 덕분이었다.

‘까망이도 어느새 다 컸네.’

현성의 신하 중 유일하게 플레이어가 아니라 몬스터인 까망이는 완전한 성체가 되었다.

까망이는 몬스터인 레비아탄이었지만 현성의 수하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현성이 내리는 대군주의 축복을 적용받을 수 있었다.

거기다 비약까지 먹이지 않았는가?

그 결과 까망이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지구 바다는 까망이 차지지.’

까망이는 초월 등급 레비아탄이 되었고 지구의 바다를 완벽하게 지배하는 바다의 제왕이 되었다.

‘더 성장할 수 있으려나?’

레비아탄의 성장 한계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현성도 알지 못했다.

‘창조 등급이 되면 좋을 텐데.’

초월 등급 몬스터는 최상위 포식자다.

하지만 현성의 입장에서는 전투에 큰 도움이 되기 힘들었다.

그랬기에 기왕이면 창조 등급 몬스터가 되어 주었으면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어.’

이제 남은 일은 지구를 침공해 올 적군 플레이어들과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때가 최대한 늦게 왔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최대한 많은 시간을 벌어야 현성과 휘하 신하들이 더 강해지고 믿을 수 있는 용병들도 더 많이 얻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주군.”

현성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루시아가 찾아왔다.

“한 가지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요? 뭐든지 말해 보세요.”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루시아는 현성의 첫 번째 신하이자 군주라는 직업을 얻을 수 있게 해 준 은인이다.

그런 만큼 루시아의 부탁이라면 무조건 들어줄 생각이었다.

“방금 전 준신화 등급 용병이 되었습니다.”

루시아의 말을 들은 현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말은?”

“예, 차원 게이트 스킬을 얻었습니다.”

“드디어 고향에 갈 수 있게 되었군요.”

오래전 어쩔 수 없이 떠나온 루시아의 고향.

적군 플레이어들에게 점령당했는지 아직 저항 중인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차원.

“제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루시아를 혼자 보낼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전에 약속했잖아요. 루시아의 고향을 되찾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현성은 과거에 루시아에게 했던 약속을 어길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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