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권. 호구의 반란 (181/225)

┃호구의 반란

‘사실 맡길 사람이 없기도 하고.’

침략자 차원의 편리한 통치를 위해서라면?

그냥 기존의 왕과 대군주 들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폐단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침략자들의 세계에는 극심한 신분제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현성이 냉혹한 군주였거나 신분제가 철저한 차원 출신이었다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현성은 신분제가 없는 세상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었다.

한국인인 현성의 입장에서는 일반인을 노예 취급하는 신분제를 뿌리 뽑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현성이 직접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정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에 대해서도 아는 게 쥐뿔도 없었다.

설사 아는 게 있다고 해도 이 차원의 정치와 경제를 정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었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그 시간에 초월 등급 몬스터 한 마리 더 잡는 게 경제적이었다.

‘그렇다고 지구의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에게 맡길 수도 없고.’

국가와 민족만 달라져도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 상식과 가치관이 달라진다.

한데 국가와 민족이 다른 게 아닌 차원이 다른 세상이다.

당연히 지구의 정치인과 경제인 들에게 맡기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뛰어난 무력도 있어야지.’

새로운 시대가 오면 기존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반발하기 마련이다.

그 반발을 깨부술 수 있는 힘.

그런 힘을 가진 존재가 전면에 나서야 했다.

현성이 계속 붙어서 뒤치다꺼리를 해 줄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사령술사가 딱이지.’

본인이 이 차원의 정치와 경제에 관심이 많았다.

또 이 차원의 원주민이자 대영주들을 능가하는 무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이게 있으면 사령술사가 엉뚱한 짓을 해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어.’

사령술사 시즈라의 영혼이 보관되어 있는 라이프 포스 베슬이 바로 현성의 손에 있었다.

“어때?”

현성의 물음에 사령술사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현성이 일반적인 군주와 다르다는 것은 확실히 인지했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 보고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너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기회가 왔을 때 잡아. 네가 손해 볼 일은 없잖아?”

현성의 물음에 잠시 망설이던 사령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해 볼 일 없다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기회를 손에 넣기 위해서라도…….

아무것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그런데 그 언데드 군단 다시 소환할 수는 있는 거야?”

“그렇다. 하지만 언데드들이 파괴되며 오랜 시간 모아 왔던 마력이 모두 소진되었기에 당장은 불가능하다. 아마 다시 그 정도 규모의 군단을 꾸리려면 족히 천 년은 마력을 모아야 할 거다.”

전에는 지속적인 전쟁을 하며 사기와 마이너스한 감정을 통해 마력을 빠르게 모았다.

자연적으로 마력을 모으려면?

사실 천 년으로도 부족한 감이 있었다.

“당장 그 정도는 필요 없고, 급한 대로 왕과 대영주급 강자들만 골라서 30명 정도 부활시키자고.”

그 정도면 왕과 대영주 들의 반발을 억누르는 데 충분할 것이다.

“앞으로 잘 부탁해.”

현성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나, 나도 잘 부탁한다.”

사령술사가 어정쩡한 표정을 지으며 현성의 손을 맞잡았다.

* * *

시간이 흘러 현성은 다시금 지구로 복귀했다.

그 덕분에 두 차원을 다시금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

현성이 그간 침략자 차원이라고 불렀던 새롭게 점령한 차원으로 간 순간.

현성의 눈앞에 여러 메시지가 떠올랐다.

첫 번째는 메시지는 업적이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창조 등급]

-최초로 적 차원을 점령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로로 적 차원을 점령한 자 – 창조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일반 등급]

-최초의 차원 전쟁에서 1승을 거두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차원 전쟁에서 승리한 자 - 일반 등급]

이건 당연히 예상했던 보상이었다.

‘오히려 좀 짜네.’

무려 차원 하나를 점령했다.

그런데 보상이 겨우 창조 등급 업적 하나에 일반 등급 업적 하나였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차원을 더 많이 점령하면 중복 업적의 등급이 올라가기는 하겠지만…….’

현성이 전쟁을 벌인 이유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굳이 억지로 다른 적군 차원과 전쟁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괜히 지구만 위험해지지.’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만약 반인반룡들의 세계 같은 곳에 갔다가는?

오히려 현성의 목숨과 지구가 위험했다.

두 번째 메시지는 직업이었다.

-적 차원을 점령하셨습니다.

-초월 등급 직업 차원 침략의 대군주로 전직하셨습니다.

-직업 전용 스킬 차원 게이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이건 조금 의외였다.

현성은 이미 용병 전용 스킬 차원 게이트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직업 전용 스킬 차원 게이트도 생겼다.

용도는 용병 전용 스킬과 동일했다.

‘1레벨 플레이어만 차원 게이트를 열 수 있는 건 아니었어.’

현성은 차원 게이트를 1레벨 플레이어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현성이 직업 전용 스킬 차원 게이트를 유심히 살폈다.

‘뭐, 다르기는 하네.’

기본적인 용도는 동일했지만 구동 원리에서는 꽤 큰 차이가 있었다.

용병 전용 스킬 차원 게이트는 포인트를 통해 구동된다.

직업 전용 스킬 차원 게이트는 마력과 마석을 통해 구동되었다.

‘진작 생겼으면 고생을 덜했을 텐데.’

현성의 아공간에는 마석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다.

조금만 더 빨리 이 스킬을 손에 넣었다면?

반인반룡들이 지배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오래 몸을 감추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세 번째 메시지는 현성에게만 들린 게 아니었다.

지구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동일한 시간에 메시지를 받았다.

-제1차 차원 전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안전 결계가 소멸합니다.

오랜 시간 지구를 지켜 주었던 방패, 안전 결계가 소멸했다.

‘안전 결계가…….’

현성은 약간 충격을 받았다.

대충 예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정말 소멸하자 두려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해.’

솔직히 새롭게 점령한 차원의 전력은 지구의 전력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현성이 먼저 적군 차원에 진입해 선빵을 날리며 세력을 키우지 않았다면?

지구와 점령한 차원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졌다면?

아마 지구가 패배했을 것이다.

‘이제 언제든 다른 세상의 강자가 지구를 침략할 수 있어.’

현성의 위기감이 커졌다.

굴레를 벗어난 규격 외의 존재들이 끼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바로 아래 단계만 해도 현성에게는 굴레를 벗어난 규격 외의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언데드 거인을 날려 버렸던 그 사람처럼 말이지.’

그런 존재가 지구의 좌표를 알아내고 쳐들어온다면?

지구는 그날 바로 멸망할 것이다.

‘어째 점점 더 버거워지는 느낌이네.’

현성은 강해졌다.

지구도 강해졌다.

차원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정감 따위는 전혀 들지 않았다.

‘얼마나 강해져야 다른 차원의 침공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 게스피트 같은 굴레를 벗어난 자가 되어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라리 제나 님같이 굴레를 벗은 자들이 관광 삼아 오면 다행인데.’

제나가 미친년에 시한폭탄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게임룸에 처박혀 얌전히 지내고 있지 않은가?

현성보다 강한, 굴레를 벗지 못한 자가 지구로 온다면?

‘그건 재앙이야.’

아군이건 적군이건 그건 절대 현성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어!”

차원 게이트를 열 때 생성되는 마력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이런 미친!”

추가 대격변이 없는 상황에서 차원 게이트가 열린다는 건?

차원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스킬을 가진 누군가 임의로 지구에 침입했다는 뜻이었다.

‘도대체 누가?’

차원 게이트를 랜덤으로 여는 건 상당히 위험해서 제나 같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만 시도한다.

제정신이 박혀 있는 플레이어 중에 지구의 좌표를 알고 있는 사람은?

‘있을 리가 없는데.’

현성이 기겁해서 몸을 날렸다.

“꺄아아악!”

“몬스터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현성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차원 게이트가 열린 곳으로 튀어 나갔다.

* * *

‘신기한 게 많네.’

각투브크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지구의 도시 전경을 바라봤다.

게임.

그중에서도 리X지 폐인 각투브크는 판매자인 최현성 플레이어의 차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씩 최현성 플레이어의 차원으로 차원 게이트를 여는 실험을 했다.

좌표는 저번에 용병 고용으로 최현성 플레이어가 근거리 통신망 설치를 권유하러 왔을 때 확보해 놨다.

물론 실험의 결과는 항상 실패였다.

한데 놀랍게도 이번에는 성공했다.

‘아주 포인트를 갈퀴로 긁어모았구나, 모았어.’

각투브크 차원의 안전 결계가 사라진 것은 최초의 대격변이 일어나고 2백 년 가까이가 흐른 후였다.

그런데 최현성 플레이어의 차원은 고작 몇십 년 만에 안전 결계가 사라져 버렸다.

‘뭐, 나야 나쁠 거 없지.’

각투브크는 오래전부터 항상 지구에 오고 싶어 했다.

솔직히 말해 1백 년은 더 기다려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보다 엄청 빠르게 지구에 올 수 있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PC방이라는 곳부터 가 봐야지.’

각투브크는 지구에서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탁!

각투브크가 지상으로 내려왔다.

‘드라마랑 영화에서 봤던 거랑 비슷한 것도 있고 다른 것도 많네.’

각투브크가 느긋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을 무렵.

“꺄아아악!”

“몬스터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각투브크가 얼굴을 확 일그러트렸다.

‘이것들이 누굴 보고 몬스터라는 거야?’

나름 고향에서는 차원 최고의 미남으로 손꼽히는 인물이 바로 각투브크였다.

화르르륵! 슈슈슈슉!

각투브크를 향해 온갖 공격 스킬들이 날아들었다.

일반인과 뒤섞여 있던 플레이어들이 공격 스킬을 날린 것이다.

휘익!

각투브크가 손을 휘저었다.

퍼엉!

그 순간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던 공격 스킬들이 작은 폭음과 함께 그대로 소멸했다.

“이것들이!”

분노한 각투브크가 마력을 끌어 올렸다.

콰콰콰콰콰콰!

그 순간 각투브크의 몸속에 얌전히 잠들어 있던 강대한 마력이 외부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유형화된 푸른 마력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자, 각투브크를 공격했던 플레이어들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건방진 놈들!”

각투브크가 손을 들어 올렸다.

쩌저저저적!

그 순간 대기의 기온이 극도로 하락하며 냉기의 창이 만들어졌다.

휘익!

각투브크가 냉기의 창을 날렸다.

자신을 공격한 건방진 피라미를 응징하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파지지직! 화르르륵!

갑자기 치솟아 오른 칠흑빛 뇌전과 화염이 각투브크의 공격을 막아 냈다.

“호오!”

각투브크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피라미들밖에 없던 세상에 제법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새끼 상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뭐, 그래 봤자 각투브트의 눈에 차는 정도는 아니었다.

각투브크의 눈에 차려면 새끼 상어가 아니라 성체 상어 정도는 되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너, 최현성이지?”

각투브크가 약간의 짜증과 분노를 담은 목소리로 새끼 상어의 이름을 불렀다.

* * *

‘이런 젠장.’

현성이 마음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왜 하필 저 자식이 온 거야.’

각투브크.

현성의 최우량 고객 중 한 명.

게임에 미치기라도 했는지 수명을 갈아 넣은 미친 듯한 현질로 현성이 어마어마한 포인트를 벌게 해 준 호구다.

하지만 아무리 호구라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 교류의 보석으로 연결된 고객일 때의 상황이다.

각투브크가 수명을 갈아 넣었든 어쨌든 현성의 최우량 고객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던 건…….

그 정도 포인트를 물 쓰듯 써 버릴 수 있을 정도의 강자였기 때문이다.

그 강자가 아무런 제약 없이 지구에 강림했다.

현성 입장에서는 제나 이상의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으드득! 널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각투브크가 이를 빠득빠득 갈며 말했다.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각투브크 님. 정말 반갑습니다.”

현성이 등 뒤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대답했다.

용병 고용으로 만났을 때는 당당할 수 있었다.

제약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각투브크에게는 아무런 제약도 없었다.

“안 그래도 제가 가능하다면 각투브크 님을 꼭 한번 초대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래?”

“예, 물론입니다. 각투브크 님은 저의 최우량 고객이시지 않습니까? 당연히 초대해 직접 대접하려고 했죠.”

“하!”

현성의 말에 각투브크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일단 지구에 온 이상 제 손님이시니 제가 모시겠습니다.”

“날 모시겠다고?”

“물론입니다, 고객님.”

“고객님이 아니라 호갱님이겠지. 뭐, 일단 가이드를 해 준다니 받기는 해야겠군. 네가 있으면 이 차원 어디를 가든 최고의 대접을 받을 테니까.”

“물론입니다.”

현성의 말에 각투브크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그 PC방이라는 곳에 가 보고 싶은데?”

“저, 일단 PC방에 들어가시려면 외형부터 바꾸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각투브크 님의 체격으로는 들어가시기가 조금 힘들 것 같아서요.”

각투브크는 몬스터라고 오해를 받을 정도의 독특하고 우람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뭐, 그렇게 하지.”

각투브크가 순순히 현성의 말에 따라 변신 아이템을 사용해 외형을 동양인과 비슷하게 바꿨다.

“그럼 어디 안내해 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성이 그 말과 함께 각투브크를 PC방으로 데리고 갔다.

-전원 전투준비 하고 24시간 대기한다.

그와 동시에 대군주의 외침으로 각투브크가 난동을 부릴 상황에 대비했다.

‘문제는 이기기가 힘들 것 같다는 건데.’

각투브크가 방출한 마력의 수준으로 예상해 볼 때 현성이 가진 힘과 세력을 모두 동원해도 승산이 그리 높지 않았다.

설사 이긴다고 해도 그 여파로 대한민국이 멸망할 수도 있다.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근거리 통신망 판매에 열을 올리느라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어떻게 옛날에 딱 한 번 봤는데 좌표를 기억하고 안전 결계가 사라지자마자 바로 오냐?’

그건 그날 이후 각투브크가 매일매일 지구로 향하는 차원 게이트를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현성이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돌려보내야 해. 그리고 두 번 다시 지구에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현성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차라리 지능이 떨어지는 언데드 거인이 낫지.’

그놈은 다른 차원으로 보내 버릴 수라도 있었지.

각투브크는 그렇게 처리할 수도 없었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각투브크가 PC방 키오스크 앞에서 현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현성이 각투브크에게 PC방 키오스크 사용법을 알려 줬다.

“오! 신기하네!”

각투브크가 환한 미소와 함께 선결제를 하고 PC방에 자리를 잡았다.

현성 역시 각투브크 옆에 자리를 잡았다.

각투브크가 능숙하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해 게임을 시작했다.

“오오! 이거 재미있는데? 이건 왜 서비스를 안 한 거야?”

“조만간 도입할 예정입니다.”

각투브크의 물음에 현성이 건성으로 대답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빌어먹을…….’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 * *

‘흐흐흐, 내가 골치 아프다 이거지? 꼬시다, 꼬셔.’

각투브크는 게임을 하는 와중에도 중간중간 현성의 상태를 체크했다.

현성의 미소 속에 감춰진 근심을 확인하면 기분이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좋아졌다.

‘쉽게는 안 갈 거다. 아니, 설사 무슨 일이 생겨서 갔어도 다시 올 거야.’

각투브크는 현성에게 쌓인 게 많았다.

과거 랜덤 박스에 당한 기억부터 시작해서…….

독점이라는 이유로 온갖 바가지란 바가지는 다 쓰고 현성의 물건을 구입했다.

‘컴퓨터도 그렇게 비싼 물건은 아닌 것 같고.’

컴퓨터가 비싸다면?

PC방에 이렇게 사람이 많을 리가 없었다.

그것도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들이 말이다.

‘덤터기를 제대로 씌웠다 이거지.’

각투브크는 이번 기회에 현성의 멘탈을 탈탈 털어 버릴 생각이었다.

단순히 게임만 즐길 생각이었다면?

굳이 비싼 포인트를 내고 지구로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독점은 끝이다.’

지구의 전자제품은 엄청난 값어치를 지닌다.

게임, 영화, 도서, 애니메이션 같은 문화 상품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독점은 꿈도 꾸지 마라.’

각투브크는 계속해서 자신의 차원과 지구를 오가며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계획이었다.

아니, 그런 수준을 넘어서 직접 판매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나 같은 놈이 많아지면 곤란하겠지만, 그럴 리는 거의 없지…….’

현성이 근거리 통신망 판매를 위해 접촉한 VVIP 고객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자는?

더욱 줄어든다.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자들 중에서 현성보다 강한 자는?

더더욱 줄어든다.

설사 현성을 만났다고 해도 지금까지 지구의 좌표를 기억하고 있는 1레벨 플레이어는?

더더더욱 줄어든다.

사실 각투브크처럼 제정신이 아닌 놈이 아니라면 있을 수가 없었다.

‘넌 끝났어. 그동안은 혼자서 꿀을 빨았겠지만…… 앞으로는 나도 같이 빤다.’

각투브크는 현성이 무난하게 협조할 거라고 생각했다.

협상이 파투가 난다면?

각투브크로서도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 * *

각투브크가 게임에 열중하는 동안 현성은 해결책 마련에 몰두했다.

하지만 행복회로를 돌리는 것 말고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그냥 돌아갈 수도 있어.’

이렇게 생각했다가.

‘어차피 자기 차원도 지켜야 할 거 아니야? 포인트를 모으려면 사냥도 해야 할 거고. 설마 자기 차원을 떠나서 여기서 계속 죽치고 있겠어?’

현성이 열심히 행복회로를 돌렸다.

“이번에는 영화관으로.”

각투브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따라오시죠.”

현성이 각투브크를 영화관으로 안내했다.

그 후에도 각투브크는 온갖 지구의 문물들을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현성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한민국.

아니, 지구의 명운을 건 전쟁과 행복회로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아, 그리고 내가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는데 말이야?”

“부탁요?”

현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동안 현성을 자신의 전용 가이드처럼 부려 먹던 각투브크의 입에서 무려 ‘부탁’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지구의 물품들을 내가 좀 구입할 수 있을까?”

“물품요?”

“그래, 컴퓨터, 스마트폰, 게임기 같은 거.”

이건 현성의 장사 밑천을 털어 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게임 회사도 몇 개 구입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는데? 거, 리X 오X 레X드 같은 거 있잖아.”

아니, 장사 밑천 정도가 아니라 현성의 전 재산을 탈탈 털어 가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어쩔 수 없다.’

대충 예상은 했다.

하지만 행복회로를 굴린 대로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그럼 어쩔 수 없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런 때를 대비해 들어 놓은 보험을 사용할 때가 왔다.

‘문제는 그 보험이라는 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 같은 거란 점인데…….’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했다.

지금은 비상 상황이었고…….

보험이 사고를 치지 않으면 현성이 사고를 쳐야 할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제가 게임 회사 대주주 한 분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현성의 말에 각투브크의 표정이 환해졌다.

“대주주? 게임 회사 주인을 말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게임 회사 주인은 너 아니었어?”

“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주주라는 개념이 조금 모호해서요. 일단 게임 회사를 인수하려면 그분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좋아, 가자고.”

현성의 말을 들은 각투브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 각투브크는 현성이 저항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무력 충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 각투브크로서도 좋을 게 없었다.

둘이 싸우면?

지구인들이 현성 편을 들지 자신의 편을 들 리가 없었다.

거기다 괜한 싸움에 지구의 문명이 파괴된다면?

그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동이었다.

‘흐흐흐, 잘 생각했다.’

각투브크는 현성이 자신과 이익을 나누려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지.’

무력 충돌 없이 대화로 합의를 이뤘다고 생각하자, 각투브크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였을까?

각투브크는 아무런 의심 없이 현성의 뒤를 따라 한 건물로 들어갔다.

“이곳입니다.”

현성의 안내에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간 각투브크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대, 대단해!”

각투브크의 눈앞에는 오직 게임의, 게임에 의한, 게임만을 위한 공간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오오오오오!”

각투브크는 당장 자신의 게임룸도 이렇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대단한 것은 게임룸의 내부만이 아니었다.

외부에도 강력한 방어 스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창조 등급 몬스터가 난동을 부려도 이 게임룸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 같았다.

“으흠?”

그런데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대단한 게임룸을 만들고 유지하는 이의 무력 수준 때문이었다.

‘이상하다. 이 차원에는 최현성 플레이어가 가장 강한 플레이어여야 정상인데?’

이 게임룸은 최현성 플레이어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나서도 만들 수 없는 수준의 방비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겼다!”

그때 게임에 열중하고 있던 여인 하나가 목소리를 높여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역시 제나 씨가 최고예요!”

“이번 게임은 제나 씨가 다 캐리했네!”

다른 팀원들이 여인을 추켜세우며 환호를 터트렸다.

“어? 오래간만에 오셨네요.”

게임을 끝마친 한 게이머가 현성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아, 예. 제나 씨한테 볼일이 있어서요.”

“그럼 저희가 자리 비켜 드릴게요. 어차피 휴식 시간이거든요.”

“아, 찌뿌둥하다.”

팀원들이 우르르 일어나 게임룸을 나갔다.

그 결과 게임룸에는 단 세 사람만이 남았다.

제나, 현성, 각투브크였다.

“무슨 일이야?”

제나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별것 아닌 일로 자신을 찾아온 거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아예, 이분이 리X 오X 레X드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를 사고 싶다고 하셔서요.”

현성의 말에 제나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와 동시에 측량하기조차 힘든 강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너냐, 내 회사를 사겠다는 놈이?”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제나의 물음에 각투브크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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