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 거인
‘이런 미친.’
현성은 당혹감이 가득한 얼굴로 전방을 주시했다.
다 이긴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사령술사가 미친 짓을 벌였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 거지?’
플레이어의 몸은 장난감 블록이 아니다.
당연히 플레이어 둘의 몸을 합친다고 더 강해지지 않는다.
그건 당연히 플레이어의 시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언데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0레벨 언데드 둘을 이어 붙인다고 해서 4000레벨짜리 언데드가 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기존보다 더 약해질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수백, 수천, 수만의 언데드가 하나로 뭉쳐 새로운 육체를 구성했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거대한 언데드는…….
현성이 지금까지 목격한 그 어떠한 존재보다도 더 강렬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꽈아아앙!
힘 역시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었다.
플레이어들의 공격을 받아 내는 물리 공격 저항력과 스킬 공격 저항력 역시 상식을 초월한 수준.
언데드들이 뭉쳐 만들어진 새로운 적은 덩치만 큰 인형이 아니었다.
지구와 침략자 차원에 현존하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한계를 초월한 무언가로 재탄생했다.
“막아!”
“저걸 어떻게 막으라는 말이야!”
“피해!”
플레이어들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적의 손짓 한 번에 수백에 달하는 아군이 한 줌의 핏물로 변했다.
-퇴각하라.
현성이 후퇴 명령을 내렸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산처럼 저 거대한 언데드를 상대할 수 없었다.
오히려 아군이 죽어 나가면서 생긴 사기와 마이너스한 감정들이 거대한 언데드의 마력을 키워 주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현성으로서도 마땅한 답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속도가 상식적인 범주 안에 있다는 건데.’
물론 그 상식적인 범주 안에 있는 속도 역시 웬만한 고레벨 플레이어보다는 빨랐다.
-400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들만 앞으로 나서라.
거대한 언데드의 유일한 약점인 상식적인 범주 안에 있는 속도를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의 플레이어들은 4000레벨을 넘어선 왕과 대영주급의 실력자들밖에 없었다.
-공격!
현성의 명령에 따라 4000레벨 이상의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거대한 언데드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당연히 현성도 직접 참전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전력으로 사용했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거대한 언데드의 몸이 칠흑빛 뇌전과 화염에 휩싸였다.
하지만…….
‘씨알도 안 먹히네.’
전신에서 넘쳐흐르는 강대한 마력이 외부의 공격을 완벽하게 방어했다.
꽈아앙! 꽈아앙!
연달아 폭발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거대한 언데드의 몸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현성이 직접 날린 공격도 막아 내는 녀석이다.
당연히 다른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공격이 먹힐 리 없었다.
원거리에서 빛 속성 마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오히려 다른 속성의 마력 공격보다도 효과가 떨어졌다.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암흑 속성 마력이 빛 속성 마력으로 이루어진 공격을 역으로 씹어 먹었기 때문이다.
-그오오오오!
거대한 언데드가 포효를 터트리며 현성과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공격했다.
꽈아아앙!
현성과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재빠르게 몸을 피했다.
-콰콰콰콰콰콰!
하지만 거대한 언데드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브레스를 피할 수는 없었다.
“아아아악!”
“사, 살려!”
순식간에 수십 명에 달하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몸이 녹아내렸다.
거대한 영지를 다스리던 왕과 대영주였던 이들의 최후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허무했다.
하지만 사기와 독기가 뒤섞여 있는 브레스의 위력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스킬과 강철보다 단단한 육체조차 녹여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잡지?’
다 이긴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갑자기 언데드들이 하나로 뭉쳐 이런 초월적인 존재로 변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전투가 이어졌다.
하지만 아군의 희생만 늘어날 뿐, 거대한 언데드의 육신에는 작은 생채기 하나 낼 수가 없었다.
-전원 후퇴.
현성이 어쩔 수 없이 퇴각 명령을 내렸다.
이대로 전투를 지속해 봤자 아군의 피해만 커질 뿐이다.
아군의 피해가 커지면?
사기와 마이너스한 감정을 마력의 원천으로 삼는 거대한 언데드만 강해질 뿐이었다.
‘문제는 후퇴가 가능하냐는 건데.’
산처럼 거대한 덩치.
초월적인 힘과 마력을 보유한 육신.
고레벨 플레이어 수준으로 빠른 속도.
저 거대한 언데드가 마음먹고 날뛰기 시작하면?
퇴각은커녕 이 자리에서 전멸할 수도 있다.
-그오오오오!
거대한 언데드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팔을 휘두르고 브레스를 뿜어냈다.
꽈아아아앙!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대지가 갈라졌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대기가 진동했다.
“아아아악!”
“커억!”
도망치던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너무도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
거대한 언데드가 가지고 있는 힘에 비해 희생자가 너무 적었다.
-크아아아아!
거대한 언데드가 비명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날뛰었다.
‘저거 왜 저래?’
처음에는 나름 목표를 잡고 아군 플레이어들을 공격했다.
한데 지금은 달랐다.
아무도 없는 대지를 향해 주먹을 꽂아 넣었고, 허공을 향해 브레스를 뿜어냈다.
그 모습이 마치 이성을 잃고 날뛰는 미물 같았다.
‘설마 제어에 실패한 건가?’
수만에 달하는 언데드들이 하나로 뭉쳐 탄생한 언데드 거인의 힘과 마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그 강력한 힘을 제어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지.’
사령술사는 언데드들을 끼워 맞춰 강력한 힘과 마력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육체를 완성했다.
하나 새로운 육체를 완성한 것과 그것을 제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였다.
‘사령술사가 자신의 의지로 새로운 육체를 제어하는 게 불가능해진 건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이때가 기회다.’
-퇴각 중지! 전원 원거리에서 총공격!
현성의 명령과 함께 퇴각하던 플레이어들이 몸을 돌려 언데드 거인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현성이 날린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필두로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맹공을 퍼부었다.
현성에 의해 고용된 용병들 역시 밥값을 하기 위해 마력을 쥐어짜다시피 하며 언데드 거인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어어어어!
언데드 거인이 태산을 부술 정도로 강맹한 힘이 실린 주먹을 휘둘렀다.
또 모든 것을 녹여 버릴 수 있는 브레스를 사방으로 뿜어냈다.
하지만…….
‘명중률이 떨어져.’
저건 노리고 공격한 게 아니었다.
그저 마구잡이로 공격한 게 확실했다.
언데드 거인은 자신의 적인 플레이어들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다.
플레이어가 아닌 지형지물에 닥치는 대로 공격을 퍼부었다.
‘지금 끝장을 봐야 해.’
저렇게 강력한 적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맹공을 퍼부을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거기다 언데드 거인의 힘을 늘려 주지 않고 오히려 소모시킬 수 있으니 일석이조야.’
현성은 체력과 마력을 쥐어짜다시피 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건 휘하 신하들과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 * *
‘왜 이러는 거지?’
시즈라는 당혹스러웠다.
그녀의 적은 플레이어나 힘없는 일반인이 아니었다.
군주.
타 플레이어와 일반인을 강제로 억압해 자유의지를 말살한 뒤 종으로 부리는 군주가 바로 시즈라의 적이었다.
처음 황제가 왕과 대영주 들을 이끌고 자신에게 달려들었을 때 시즈라는 오히려 기뻐했다.
자신의 주적만을 골라서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전신에 넘쳐흐르는 이 힘과 마력만 있다면…….
황제, 왕, 대영주.
그들 모두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즈라는 쥐새끼처럼 도망치는 황제, 왕, 대영주를 쥐 잡듯이 때려잡았다.
그런데 황제, 왕, 대영주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시즈라는 그들의 도주를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이 자리에서 군주라는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모두 때려죽이고…….
모든 플레이어와 일반인 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물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육체가 시즈라의 제어를 벗어났다.
-생기가 느껴진다!
-죽여라!
-죽이자!
-생기를 품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말살하자!
온갖 마이너스한 감정들이 시즈라의 정신을 오염시켰다.
특히 언데드 특유의 산 자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했다.
시즈라는 수백만의 언데드를 통솔할 정도로 방대한 마력과 뛰어난 컨트롤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그것도 언데드들이 각각 개별적인 개체로 남아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수많은 언데드들이 하나로 뭉쳐 새로운 육체를 구성했다.
그 결과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마력과 불사라고 불러도 무방한 강인한 육신을 얻게 되었다.
하나 그 반작용으로 억눌려 있던 언데드들의 본능이 깨어났다.
산 자에 대한 증오와 살육의 광기.
따로따로 떨어져 있을 때는 시즈라가 충분히 제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만이 넘는 언데드들이 하나로 뭉쳐 뿜어내는 산 자에 대한 증오와 살육의 광기는…….
어느 순간 시즈라가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버렸다.
아니, 언데드들의 본능을 제어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언데드 특유의 증오와 광기에 오염당하지 않기 위해 버티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이, 이럴 수는 없어.’
시즈라가 자신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시즈라 역시 산 자가 아닌 죽은 자였다.
그녀 스스로가 산 자에 대한 증오와 살육의 광기를 지니고 있는 언데드였다.
그동안은 높은 정신력과 뛰어난 이성으로 언데드로서의 본능을 억누를 수 있었다.
하나 수만에 달하는 언데드들과 하나의 몸이 된 순간.
수만에 달하는 언데드들이 전달하는 증오와 광기의 파도가 시즈라의 정신을 오염시켰다.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해.’
시즈라가 페널티를 감수하고 하나로 뭉친 육체를 다시금 분리하려고 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모든 게 끝이다.
시즈라가 탄생시킨 전무후무한 언데드 거인은 이 차원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말살할 때까지 움직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제발.’
강제로 새로운 육체를 분리시키고 마력을 나누려 했다.
-죽이자!
-죽여라!
하지만 산 자에 대한 증오와 살육의 광기로 똘똘 뭉친 언데드들의 본능이 시즈라의 의지를 억눌렀다.
치열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시즈라는 악착같이 싸웠다.
하지만…….
증오와 광기의 파도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휘몰아쳤다.
그리고 계속되는 증오와 광기의 파도 속에서 시즈라의 이성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잠시 후.
언데드의 본능이 시즈라의 이성을 집어삼켰다.
* * *
-그오오오오오!
그동안 바보처럼 얻어터지고만 있던 언데드 거인이 본능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인다!
-살아 있는 모든 걸 죽인다!
언데드 거인의 마력이 생기를 뿜어내는 존재들을 정확히 포착했다.
그 후.
꽈아아아앙!
언데드 거인이 팔을 휘둘러 자신을 향해 신나게 공격을 퍼붓고 있던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몸을 한 줌의 핏물로 만들어 버렸다.
-콰콰콰콰콰콰!
언데드 거인의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전처럼 부정확한 마력 낭비가 아니었다.
정확하게 플레이어들이 가장 밀집해 있는 곳을 목표로 브레스를 뿜었다.
내부 분열을 끝마치고 살아 있는 자들에 대한 증오와 살육의 광기로 똘똘 뭉친 언데드 거인의 전투력은 방금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히익!”
하늘을 찌를 듯 상승했던 플레이어들의 사기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퇴각하라!
현성은 이변이 생겼음을 직감하고 후퇴를 명령했다.
퇴각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플레이어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오오오오!
언데드 거인이 살기가 가득 남긴 포효를 토해 내며 플레이어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주하기 시작하자, 제대로 된 목표를 잡지 못했다.
그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플레이어들을 잡아 죽일 뿐이었다.
물론 그런 행동 자체가 플레이어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지만 현성은 상황을 조금 다르게 파악했다.
‘제대로 된 지성이 없어.’
공격이 좀 더 정교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판단력이 떨어졌다.
그저 눈앞에 있는 적을 향해 본능적으로 공격을 쏟아 낼 뿐 효율이 높은 움직임을 보여 주지는 않았다.
‘확인해 보자.’
현성이 탐지 스킬을 사용해 몬스터 무리를 탐색했다.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영웅 등급 몬스터 무리를 발견했다.
슈욱!
현성이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영웅 등급 몬스터 무리에게로 이동했다.
-키이이이익!
현성을 목격한 순간 몬스터들이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
바다의 제왕 스킬의 효과였다.
현성은 몬스터들을 몰아 언데드 거인에게로 향했다.
-크르르르!
플레이어들을 사냥하느라 여념이 없던 언데드 거인이 현성이 몰고 온 영웅 등급 몬스터 무리를 발견했다.
-콰콰콰콰콰콰!
언데드 거인이 영웅 등급 몬스터 무리를 향해 브레스를 뿜어냈다.
대다수의 영웅 등급 몬스터가 한 줌의 핏물로 변했다.
-캬아아아악!
-키이이이익!
살아남은 몬스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자 언데드 거인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몬스터 무리를 공격했다.
‘역시 제어에 실패한 건가?’
사령술사가 언데드 거인을 제어하고 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본능만 남은 짐승이 되었구나.’
언데드 거인은 군주 플레이어를 제거하겠다는 애초의 목적을 상실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살아 있는 자를 죽일 뿐이었다.
‘이 점은 충분히 이용할 수 있겠어.’
언데드 거인이 제대로 된 지성을 갖췄다면?
현성이 침략자 차원에서 일군 세력은 물론 지구까지 위험했다.
하지만 저렇게 본능만 남은 짐승이 되었다면?
상대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물론 상대적인 표현일 뿐이다.
제아무리 지성이 없다고 해도 언데드 거인은 그 존재 자체가 자연재해나 마찬가지다.
지금도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거기에서 뿜어져 나온 사기와 잔존 마력을 흡수했다.
언데드 거인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침략자 차원의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
또 차원 게이트를 통해 지구로 넘어갈 확률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안전 결계가 언데드 거인을 막아 줄 확률이 높긴 하지만, 100%는 아니었다.
‘언데드 거인을 제거해야 해.’
저놈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쓰러트릴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포인트도 바닥이고…….’
이번 전투의 승리를 위해 포인트를 박박 긁어 썼다.
빛 속성 마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은 계속해서 현성의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존재이니 손해는 아니었다.
문제는 용병 고용 비용이었다.
언데드 군단과의 전쟁을 끝마쳤다면 모를까, 언데드 거인이라는 골칫덩어리를 남겨 놓은 상태에서 용병들의 고용 시간이 끝났다.
‘난감하네.’
다시 용병을 고용할 포인트를 모으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문제는 그동안 언데드 거인을 방치할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마땅한 해결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현성은 일단 루시아와 파르티샤를 비롯해 믿을 만한 신하들과 머리를 맞대어 보기로 했다.
장시간의 마라톤 회의가 이어졌다.
이런저런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언데드 거인을 처리할 수 있을 만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당연했다.
수만 마리의 언데드가 하나로 합쳐져 탄생한 언데드 거인은 플레이어의 한계를 초월한 규격 외의 개체였다.
게스피트, 백화, 제나 같은 굴레를 벗어던진 존재가 아닌 이상 힘으로 언데드 거인을 상대할 방법 따위는 없었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그때 파르티샤가 전혀 의외의 의견을 제시했다.
“좋은데요!”
현성이 반색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파르티샤 님의 계획이 성공하기만 하면 일석이조의 성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루시아도 현성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럼 한번 해 보죠.”
성공하면 좋다.
실패하면?
그때 가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그만이었다.
파르티샤가 제안한 계획은 그리 큰 리스크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결국 파르티샤의 계획이 확정되었다.
“그럼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현성이 말을 마친 직후 바로 몸을 날려 이번 계획을 실행할 준비를 했다.
모든 준비가 끝난 후.
현성이 연속적으로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언데드 거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그어어어어!
언데드 거인은 무차별한 파괴와 살육을 일삼으며 방황했다.
언데드 거인은 생기가 느껴지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파괴했다.
그 때문에 침략자 차원의 자연이 빠른 속도로 훼손되어 갔다.
언데드 거인이 인간이나 몬스터의 생기는 물론 동식물들이 가지고 있는 생기까지도 적으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언데드 거인이 휩쓸고 지나간 뒤 남은 것은 온갖 생명체들의 사체와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사기, 독기뿐이었다.
생기 넘치던 대지를 인간과 몬스터는 물론 동식물들조차도 살아갈 수 없는 죽어 버린 대지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으으으?
파괴 행위를 이어 가던 언데드 거인이 잠시 멈칫거렸다.
-크르르르.
그러더니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며 파괴 행위를 이어 갔다.
‘또 실패야.’
시즈라는 좌절했다.
치열한 주도권 다툼 끝에 시즈라는 언데드 특유의 본능에 휩쓸려 이성을 잃어버렸다.
거기서 포기했다면?
시즈라는 그대로 언데드 거인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즈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실낱같은 이성을 유지하며 강철 같은 의지로 본능을 억눌렀다.
그 결과 시즈라는 겨우 자신의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게 한계였다.
순수하게 언데드의 본능대로 움직이는 언데드 거인을 컨트롤하는 건 무리였다.
언데드 거인을 다시 무로 돌리려는 시도도 실패했다.
시즈라가 언데드 거인의 본체이기는 했지만 이미 주도권을 잃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억지로 자신과 언데드 거인을 분리하려고 한다면?
자신 혼자만 소멸하거나 언데드 거인에게 이물질로 인식되어 쫓겨날 확률이 높았다.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니었어.’
시즈라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차라리 그대로 패배하는 게 더 나았어.’
그랬다면 차원 전체가 멸망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빌어먹을…….’
언데드 거인이 전쟁의 겁화에 휘말려 도주하던 피난민들을 덮쳤다.
‘멈춰! 멈추라고!’
시즈라가 안간힘을 쓰며 언데드 거인의 움직임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언데드 거인의 움직임을 컨트롤할 수 없었다.
‘아아아아아!’
시즈라가 소리 없는 절규를 터트렸다.
시즈라와 언데드 거인은 한 몸이었다.
그렇기에 언데드 거인이 어떤 짓을 하는지는 그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게 시즈라에게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이 만든 존재가 이 차원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말살시킬 게 확실했다.
‘이곳을 풀 한 포기조차 자랄 수 없는 죽음의 대지로 만들 수는 없어.’
막고 싶었다.
하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오오오오!
그때 언데드 거인이 생기가 가득 담긴 존재를 인지하고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황제.’
시즈라의 눈에 황제가 들어왔다.
그가 일부러 언데드 거인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그 결과…….
학살당하던 피난민들 중 일부가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대는 조금 다르구나.’
다른 군주들이었다면 피난민들의 희생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는 달랐다.
직접 나서서 언데드 거인을 생명체가 없는 곳으로 유인했다.
사아아아악!
그때 황제가 언데드 거인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차원 게이트를 열었다.
‘어떻게 차원 게이트를 연 거지?’
시즈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는 지금까지 차원 게이트가 만들어지는 광경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차원 게이트를 어떻게 열었느냐 보다는 왜 열었느냐에 집중해야 해.’
그런 시즈라의 눈에 황제가 필사적으로 언데드 거인을 유인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설마 언데드 거인을 다른 차원으로 보내 버리려는 건가?’
만약 성공한다면?
시즈라의 고향인 이곳은 안전해질 수 있다.
-그르르릉!
하지만 언데드 거인은 쉽게 차원 게이트를 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경계했다.
‘제발 가.’
시즈라는 언데드 거인을 조종해 차원 게이트를 넘게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때였다.
-그어어어!
황제의 움직임에 반응하던 언데드 거인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더니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쿵! 쿵! 쿵!
시즈라는 언데드 거인과 한 몸이었다.
그렇기에 언데드 거인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흥미를 잃었어.’
황제가 자신이 사냥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거기다 차원 게이트에 대해 상당히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황제가 온갖 공격을 날리고 도발 스킬까지 사용하며 언데드 거인을 차원 게이트로 유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언데드 거인은 가끔 브레스를 내뿜는 정도에서 반격을 할 뿐 직접 몸을 움직여 황제를 따라가지 않았다.
‘가면 안 돼.’
시즈라가 언데드 거인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큰일이다.’
시즈라는 초조함을 느꼈다.
‘막아야 하는데.’
시즈라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드디어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시즈라는 언데드 거인에 대한 제어를 포기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자신과 언데드 거인을 분리했던 벽을 부쉈다.
그 후 분노와 증오 같은 온갖 마이너스한 감정들을 뿜어냈다.
-크극!
그러자 언데드 거인이 반응했다.
‘저자를 죽여.’
그간 시즈라가 쌓아 온 군주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언데드 거인에게 전염되었다.
-크어어어어어!
언데드 거인이 노성을 터트리며 다시금 황제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좋지 않아.’
마이너스한 감정을 통해 언데드 거인의 분노를 황제에게 돌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결과 겨우 되찾은 이성이 언데드의 본능에 빠르게 매몰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을 막기 위한 해결책은 간단했다.
언데드 거인과 자신을 분리하고 더 이상 감정을 공유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언데드 거인이 다시금 움직일 것이고 그 화는 고스란히 이 차원에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내가 막아야 해.’
시즈라는 결정을 내렸다.
‘내가 뿌린 씨앗이야.’
황제가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해 움직인 거라면 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좀 더 시간을 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는 확실한 해결책을 가지고 왔다.
그렇다면 그 계획이 성공할 수 있게 도와야 했다.
시즈라는 그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온갖 마이너스한 감정들을 언데드 거인에게 의도적으로 주입했다.
그 결과…….
-크아아아앙!
언데드 거인이 황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황제가 차원 게이트 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러자 언제 망설였냐는 듯 언데드 거인이 전력으로 달려들어 차원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
두 존재를 집어삼킨 차원 게이트가 말끔하게 그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