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권. 최후의 결전 (178/225)

┃최후의 결전

‘왔다.’

현성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 언데드 군단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준비는 끝났다.’

그간 언데드 군단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이제는 그동안 준비한 바를 적들에게 쏟아 낼 때였다.

‘어서 와라.’

호리병 모양의 협곡.

이는 아군에게는 유리하고 적들에게는 불리한 지형이었다.

언데드 군단은 좁은 지형을 통과해 진군할 수밖에 없다.

반면 아군은 넓게 퍼져 좁은 지형에 몰려 있는 언데드 군단에게 집중포화를 쏟아부을 수 있었다.

협곡 위에도 일단의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협곡을 오르거나 협곡을 통과하려는 언데드 군단에게 집중포화를 쏟아붓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할 거냐?’

언데드 군단이 호리병 모양의 협곡을 우회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호리병 모양의 협곡을 우회하기 위해서는 꽤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그 말은 현성에게 더 많은 시간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현성의 입장에선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언데드 군단은 아무리 많은 시간을 줘도 더 이상 병력을 늘릴 수 없다.

반면 현성은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포인트를 모아 아군 병력의 양과 질을 강화할 수 있었다.

언데드 군단의 선택은 간단했다.

바로 병력을 나눠 일부는 협곡 안으로 진입하고 일부는 험난한 협곡을 직접 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좌아아악!

수백만의 언데드 군단이 험난한 협곡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피해가 있더라도 더 이상 시간을 주지 않겠다 이거지.’

지형의 불리함 따위는 감수하겠다는 태도였다.

군대가 플레이어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작전이다.

하지만 적의 군대는 이미 죽은 시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병력의 피해를 감수하는 작전을 실행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언데드는 아무리 죽여도 다시금 되살아나니까 말이다.

‘후회하게 해 주마.’

현성이 용병들을 대거 고용했다.

슈슈슈슉!

아군 병력들 사이에 1레벨 플레이어들로 구성된 용병 수만 명이 합류했다.

‘4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다.’

현성 입장에서는 그 안에 승부를 봐야 했다.

-크아아아앙!

-으아아아아!

언데드 몬스터들이 절벽을 기어올랐다.

“공격하라!”

“언데드 놈들을 모조리 격추하라!”

언덕 위에 대기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맹공을 퍼부었다.

평소라면 언데드들의 몸에 타격을 입히더라도 금방 회복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빛 속성의 버프가 가미된 공격들은 언데드를 움직이는 동력인 암흑 속성 마력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화아아악!

그리고 빛 속성 마력을 가진 고레벨 플레이어의 공격은…….

-캬아아아!

-아아아악!

언데드들을 다시금 시체로 되돌릴 정도의 강력한 위력을 자랑했다.

‘저 정도 되어야지.’

그간 쌓은 포인트와 새로운 게임, 교류의 보석 3에서 나온 수익을 모두 용병 고용에 투자했다.

어디 그뿐인가?

지구와 침략자 차원의 빛 속성 마력을 가진 랭커들에게 대량의 스킬북을 투자했다.

솔직히 말해서 주머니를 탈탈 털어 대량의 투자를 한 것치고는 오히려 효과가 약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건 현성의 감상일 뿐이었다.

“와아아아아!”

아군 플레이어들은 언데드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자 커다란 함성을 터트리며 기뻐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죽여도 죽여도 자꾸만 되살아나는 언데드들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한데 언데드들이 일반적인 공격에 타격을 입고 다시금 부활하지 못한다.

이건 기존에 언데드를 상대했던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는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두두두두!

그때 좁은 협곡 안으로 언데드 군단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쪽이 진짜다.’

협곡을 기어 올라가는 언데드들은 중저레벨이 대부분이었다.

그에 반해 좁은 협곡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언데드들은 고레벨로 이루어져 있었다.

-공격!

현성이 대군주의 외침으로 명령을 내렸다.

“파이어 스톰!”

“토네이도!”

“그레이트 썬더!”

원거리 플레이어들이 공격 스킬을 퍼부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좁은 협곡 사이로 온갖 스킬들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언데드 군단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방어 스킬을 사용한 상태로 큰 피해 없이 협곡을 통과하고 있었다.

-가자!

현성의 외침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아군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언데드 군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가장 선두에는 당연히 현성이 자리해 있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의 전신이 칠흑빛 뇌전과 화염으로 물들었다.

우득! 우득!

그와 동시에 현성의 피부 위로 용의 비늘이 돋아났다.

‘초전에 기세를 제압한다.’

힘을 아껴 둘 생각 따위는 없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언데드 군단을 박살 낼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아껴 뒀던 스킬들과 영역 선포 같은 직업 전용 스킬들도 전부 다 발동시킨 상태였다.

꽈아아아아앙!

칠흑빛 뇌전과 화염의 폭풍이 휘몰아쳤고 언데드 군단이 쓸려 나갔다.

현성의 뒤를 이어 아군 고레벨 플레이어들 역시 온갖 공격 스킬을 사용하며 언데드 군단을 밀어붙였다.

“죽여!”

“이 자리에서 결판을 봐야 한다!”

“축복이 떨어진 플레이어는 후방으로 이동해서 다시 축복을 받아라!”

온갖 고함과 욕설이 전장을 뒤덮었다.

현성의 휘하에 있는 왕과 대영주 들도 필사적으로 싸웠다.

이번 전쟁에서 패배하면 자신들의 목숨을 내놔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군의 우세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언데드 군단이 아군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고레벨 언데드들은 웬만한 충격에는 쉽게 박살 나지 않았다.

거기다 사령술사 역시 이번 싸움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지 고레벨 언데드들에게 마력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아아악!”

“떨어져! 떨어져!”

언데드들이 박살 나는 만큼 아군 플레이어들의 희생도 커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미리 받은 빛 속성 마력의 축복 덕분인지 죽은 아군이 언데드로 변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좋지 않은 소식도 있었다.

‘빛 속성 마력의 축복이 제대로 먹히지를 않아.’

파괴되었던 고레벨 언데드들이 다시금 부활하고 있었다.

‘마력을 집중시켰다 이거지.’

빛 속성 마력이 암흑 속성 마력의 천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해서 암흑 속성 마력 역시 빛 속성 마력의 천적이었다.

암흑 속성 마력이 더 강력하다면?

빛 속성 마력은 더 빠르게 그 힘을 잃는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현성이 휘하 신하들에게 마력을 분배하며 화염의 서를 더욱 강하게 흩뿌렸다.

뚱이와 덕구 역시 열심히 전장을 돌아다니며 맹활약하고 있었다.

화염의 서가 가진 힘은 언데드의 근원을 소멸시킨다.

그 말인즉 아무리 마력이 많아도 화염의 서에 의해 소멸된 언데드들은 절대 부활할 수 없었다.

현성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4시간 안에 결판을 봐야 해.’

수백만의 대군이 뒤엉킨 전쟁이다.

평범한 인간들의 전쟁이라면 몇 날 며칠이 아니라 몇 년이 가도 승부가 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의 전쟁은 달랐다.

오래 끌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단기간에 결판이 날 수도 있었다.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언데드 군단의 대부분이 협곡 내부로 들어왔다.

협곡 위에서 전투를 치르던 아군 플레이어들 역시 결국 언데드에게 밀려 아군 본대에 합류했다.

언데드들이 협곡 위와 통로를 완전히 장악했다.

-발파!

그 모습을 확인한 현성이 군주의 외침으로 지시를 내렸다.

꽈아아아앙!

그 순간 커다란 폭음과 함께 협곡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협곡을 막 통과하던 언데드들은 거대한 낙석에 깔려 박살이 났다.

협곡 위를 점령했던 언데드들 역시 협곡이 무너져 내리자 지반이 박살 나며 흙과 돌덩이 속에 파묻혔다.

-2차 발파!

다시금 이어진 현성의 명령에…….

꽈아아아앙!

이번에는 언데드들이 밟고 있던 지상이 화려하게 폭발했다.

드드드드득!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지반이 뒤틀렸고 거대한 버섯구름이 하늘을 꿰뚫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네.’

현성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현재 열심히 싸우고 있는 신윤아의 말 덕분에 현성은 고정관념을 버렸다.

그래서 이번 전쟁에 지구의 강력한 화기들을 동원했다.

‘일반적인 미사일이라면 중간에 격추되겠지만, 미리 장착된 폭탄은 이야기가 다르지.’

협곡을 무너트릴 수 있도록 미리 발파 작업을 해 놨다.

언데드들이 밟고 있는 지상에 대량의 수소 마력 폭탄을 매설해 놨다.

‘던전에서는 현대 병기가 먹통이지만, 여기서는 아니거든.’

마음 같아서는 언데드 군단을 향해 직접 핵폭탄을 투하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취소했다.

언데드 군단에 의해 중간에 격추될 확률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중간에 요격당해 핵폭탄이 괜히 엉뚱한 곳에 떨어지면 큰일이었다.

그래서 언데드들의 발아래 수소 마력 폭탄을 매설했다.

‘무려 핵융합과 마력이 섞인 무기야.’

아무리 언데드가 불사의 존재라도 핵무기에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거기다 대량의 마석이 포함되어 폭발력을 극대화시켰다.

마석 내부에 포함된 마력이 뒤섞인 폭발은 육체가 없는 고스트 계열 몬스터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언데드는 물리적인 육체가 있다.

즉, 수소 마력 폭탄의 물리 공격력을 아무런 가감 없이 받아 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뭐, 그래 봤자.’

저벅저벅!

검은 연기를 꿰뚫고 언데드 군단이 다시금 진군을 시작했다.

‘고레벨 언데드들에게는 별다른 효과가 없겠지만.’

현성이 검은 연기를 꿰뚫고 모습을 드러낸 언데드 군단을 바라봤다.

그 수가 처음보다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고레벨 언데드들의 숫자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무력은 이미 지구의 무기가 가진 화력을 아득히 뛰어넘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떨거지들은 정리했어.’

이번 공격으로 중저레벨 언데드들은 말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아마 다시 부활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러지는 않겠지.’

사령술사는 이미 이번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꽤 많은 마력을 소모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당장 큰 도움이 되기 힘든 중저레벨 언데드들을 부활시킨다?

그런 짓을 한다면 그건 오히려 현성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현성이 폭발의 연기를 뚫고 전진하는 언데드 군단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었다.

이번 전쟁에 대비해 현성이 준비해 놓은 수는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 * *

시즈라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화염에 휩싸여 녹아내렸던 몸이 순식간에 본래대로 돌아왔다.

‘타격이 크다.’

이번 공격으로 언데드 군단의 90%가 박살 났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마력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상당히 미약한 수준이었다.

이번에 휘하 언데드들에게 타격을 입힌 것은 순수한 폭발이었다.

‘황제, 꽤 많은 준비를 했구나. 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을 거다.’

대다수의 언데드가 소멸했지만,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마력은 고스란히 자신과 고레벨 언데드들에게 흡수되었다.

거기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이 죽었구나.’

언데드와 플레이어 들의 싸움에서 수많은 플레이어가 목숨을 잃었다.

비록 빛 속성 마력의 축복 때문에 그들을 언데드로 부활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아아아악!

그들이 죽으면서 남긴 사기와 함께 죽을 때 느꼈던 공포, 분노, 증오 등등의 마이너스한 감정들이 마력으로 치환되어 시즈라와 언데드 군단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난 패배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자들이 죽으면서 뿜어내는 사기.

살아 있는 자들이 죽으면서 느끼는 공포와 증오.

그 두 가지 원동력이 있는 한.

시즈라가 이끄는 언데드 군단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 불사의 군대였다.

* * *

-크아아아악!

-으아아아아!

언데드 군단이 성난 괴성과 함께 돌진을 시작했다.

숫자는 분명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뿜어내는 마력과 흉포함이 배는 증가한 것 같았다.

‘줄어든 마력의 총량이 예상보다 적다.’

언데드 군단은 모든 마력을 서로 공유한다.

그럼 언데드 군단의 숫자가 줄어든 만큼 꽤 큰 피해가 있어야 했다.

한데 폭발을 뚫고 살아남은 언데드 군단이 뿜어내는 마력의 손실량이 그리 크지 않았다.

수치로 따지자면 현성이 예상한 수준의 1/3 정도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총량으로 따지면 꽤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원래 언데드 군단이 가지고 있던 마력이 워낙 많았기에 그리 큰 타격이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역시 사기와 마이너스한 감정들을 마력으로 치환시키는 건가?’

없던 마력이 생겨날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사령술사들이 흔히 사용하는 마력 보충 방법이니만큼 특별할 것도 없었다.

‘뭐, 숫자가 줄어든 만큼 이점도 많으니까.’

현성은 이점만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일단 언데드 군단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 말은 넓게 흩어 놨던 빛 속성 마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의 화력을 한곳에 집중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발동시켜라.

현성이 휘하 신하를 통해 미리 준비해 놓은 자력 결계의 발동을 명령했다.

파지지직!

그 순간 언데드 군단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굼떠졌다.

그리고 일부는 바닥에 쓰러지기까지 했다.

자력 결계가 제대로 먹힌 것이다.

“갑시다!”

현성이 외침과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 현성의 뒤를 따라 루시아와 파르티샤를 필두로 고용된 1레벨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온갖 스킬들이 비처럼 쏟아지며 언데드들을 휩쓸었다.

근본을 소멸시키는 화염의 서가 비처럼 떨어져 내렸고, 언데드들에게 쥐약이라고 할 수 있는 빛 속성 공격 스킬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크아아아아!

언데드들이 발버둥을 치며 저항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자력 결계가 발동한 이상 언데드들은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사용하려고 뿜어내던 마력이 자기 자신을 옭아맬 테니까 말이다.

‘아쉬운 건 자력 결계의 범위가 너무 좁다는 점이지.’

자력 결계는 창조 등급 스킬이다.

왕과 대영주급 강자들도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단점도 많았다.

스킬 캐스팅 시간이 길고 쿨타임도 길었다.

결정적으로 자력 결계의 영역 자체가 그리 넓지 못했다.

수백, 수천이 뒤엉켜 싸우는 전장이라면 충분하겠지만…….

‘살아남은 언데드만 10만이 넘어.’

언데드들의 수가 워낙 많아서 전체 병력의 1/4 정도밖에 자력 결계의 영역에 포함시키지 못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지.’

제대로 몰이를 했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작은 성 같은 곳에 몰아넣었다면 효과가 더 좋았겠지만, 사령술사가 있는 이상 너무 욕심을 부리다가는 아예 자력 결계의 효과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이 정도가 적당했다.

현성과 1레벨 플레이어들이 신나게 언데드들을 박살 내고 있을 때.

파스스스!

무기력하게 공격당하고 있던 언데드들이 갑자기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빌어먹을.’

현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자력 결계의 효과는 자신의 마력이 자신을 옭죄는 것이다.

그건 반대로 말해 마력이 사라지면 자력 결계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뜻과도 같았다.

‘생각보다 빨리 반응했어.’

사라진 언데드들이 아직 자력 결계의 영역에 진입하지 않은 뒤편에 새롭게 생겨났다.

사령술사가 언데드들에게 부여했던 마력을 거두어들인 다음 새롭게 소환한 것이다.

‘역시 인간이 아니었구나.’

현성은 그 모습을 보며 사령술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사실 이상하기는 했다.

마력을 탐지하는 스킬도 생명력을 탐지하는 스킬도 사령술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령술사가 언데드라면?

모든 의문이 해결된다.

휘하 언데드들과 마력을 공유하니 마력 탐지는 의미가 없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 언데드이니 생명력 탐지도 의미가 없다.

또 언데드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당연히 그중에서는 스스로 언데드가 된 경우도 있었다.

그것도 살아생전의 지능을 그대로 보유한 채로 말이다.

‘결국 너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언데드들을 싹 다 제거해야 한다 그거지.’

사령술사는 언데드.

모든 언데드들과 마력과 생명을 공유한다.

현성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골치 아플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언데드 군단을 말끔히 정리하면, 사령술사도 함께 죽을 것이다.

‘너를 찾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죽이는 건 가능하다.’

현성의 가장 큰 걱정은 언데드 군단을 정리해도 사령술사가 살아 있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점이었다.

한데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자리에서 언데드 군단을 모조리 쓸어버리기만 한다면 말이다.

-총공격!

현성이 대군주의 외침을 통해 총공격을 명령했다.

현재 언데드 군단은 독 안에 든 쥐였다.

수소 마력 폭탄의 폭발로 협곡이 무너져 퇴로가 막혔다.

앞으로 달려 나가자니 자력 결계로 막혀 있다.

호리병 같은 지형의 특성상 언데드 군단은 사방이 꽉 막힌 공간에 갇힌 쥐 새끼나 마찬가지였다.

“턴 언데드!”

“신성한 빛의 망치!”

“응징의 분노!”

빛 속성 마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온갖 원거리 공격 스킬을 퍼부었다.

일반 플레이어들 역시 온갖 원거리 공격 스킬을 퍼부었다.

언데드 군단 역시 방어 스킬과 원거리 공격 스킬로 방어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원거리 전투는 한곳에 뭉쳐 있는 언데드 군단보다 넓게 퍼져 있는 아군이 월등히 유리했다.

결정적으로…….

‘이러면 죽은 자의 사기나 마이너스한 감정을 마력으로 치환시킬 수가 없지.’

근접전보다 사망하는 플레이어의 숫자가 월등히 적었다.

거기다 거리도 멀어 사망한 플레이어의 사기를 흡수하기도 힘들었다.

또 아군이 우세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공포와 증오 같은 마이너스한 감정들이 뿜어져 나올 리가 없었다.

-그어어어어!

-캬아아아아!

언데드 군단의 수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언데드 군단이 뒤늦게 수소 마력 폭탄의 폭발로 엉망이 된 무너진 협곡을 넘어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무너진 협곡도 그 높이가 상당했다.

거기다 무너진 협곡 위에도 어느새 아군 플레이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탱커들이 단단하게 진을 구성했다.

그 뒤에는 원거리 스킬과 빛 속성 스킬로 무장한 딜러들이 대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성이 직접 대군주의 축복을 내려 준 신윤아가 전신을 찬란한 빛으로 뒤덮은 채 협곡을 오르는 언데드들을 말 그대로 박살 내고 있었다.

‘우리의 승리다.’

언데드 군단은 독 안에 든 쥐였다.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마력은 줄어들기만 할 뿐 늘어나지는 않는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결국 언데드 군단은 천천히 그 힘을 잃고 죽어 갈 수밖에 없었다.

* * *

‘대단하구나.’

사방에서 쏟아지는 스킬의 포화 속에서 시즈라가 놀랍다는 듯 입을 쩍 하고 벌렸다.

‘내 실책이다.’

적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싸워 주는 게 아니었다.

언데드 군단의 힘이라면 지형 정도는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보다 황제에게 시간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시금 전과 같은 강력한 존재들을 부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외통수였나?’

이 자리에서 싸웠건 협곡을 돌아 더 많은 시간을 주었건 어차피 자신에게 불리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 불렀던 존재들이 없는 걸 보니 쿨타임이 있는 건 맞는 것 같군.’

아마 자신이 협곡을 돌아 더 많은 시간을 줬다면, 분명히 그때 그 강력한 존재들을 불렀을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시즈라의 입장에서는 이곳에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죽은 시체가 없으니 사기가 없고 절망과 공포도 느껴지지 않는구나.’

마력을 보충할 방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퇴로도 막혀 버렸다.

언데드들이 하나둘 소멸했다.

그럼에 따라 시즈라가 부리는 언데드 군단의 근간이 되는 마력 역시 줄어들었다.

‘훌륭하다, 황제. 하지만 난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시즈라가 두 눈을 감고 손을 뻗었다.

투둑! 투두둑!

그와 동시에 뼈와 썩은 살점으로 이루어진 언데드들이 시즈라에게 달라붙었다.

본래 하나였지만 여러 그릇으로 나뉘어 담겨 있었던 마력이 다시금 하나로 뭉쳤다.

시즈라가 수백 년간 모은 마력을 자신의 몸에 집중시키지 않고 수많은 언데드들에게 분산시켜 놓은 이유는 단 하나.

시즈라의 몸이 그 막대한 마력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육체는 마력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의 한도를 넘는 마력이 투사된다면?

흘러내리거나 그릇을 산산조각 낼 뿐이다.

이를 막기 위해 시즈라는 언데드들을 이용해 마력을 분산시켰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방법으로는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수백, 수천, 수만의 언데드가 시즈라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 결과 시즈라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도 않았다.

우득! 우득!

수많은 시체들이 하나로 뭉쳤다.

뼈와 뼈가 맞물리고 썩은 살점이 하나로 뭉쳤다.

‘그릇이 작다면 키우면 그만이야.’

시즈라는 자신의 몸을 본체로 삼아 언데드들을 흡수해 마력의 그릇이 되는 육체를 키웠다.

제대로 된 그릇이 아닌 억지로 용량을 키운 그릇이기에 마력 컨트롤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넘쳐흐르는 마력의 일부가 자연으로 되돌아갔다.

또 다른 일부는 새롭게 구성한 육체를 파괴했다.

하지만 시즈라는 그 모든 손해를 감수했다.

‘어차피 현 상황에서 승리는 불가능하다.’

그럼 모험을 해야 했다.

마력의 손실과 육체의 손실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이제 영원히 과거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겠구나.’

시즈라의 본래 육신은 겉으로나마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즈라 왕국의 왕 행세를 할 수 있었다.

생기를 불어 넣고 스킬을 시전하면 겉으로는 살아 있는 인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나 새롭게 구성된 육신은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시체로 만들어진 거인.

그게 새로운 시즈라의 육체였다.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고 불완전한 육신에 깃든 마력을 포기한다고 해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확률보다는 그대로 소멸할 확률이 더 높았다.

‘어쩔 수 없지.’

이건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모든 플레이어들의 자유를 위해 선택한 길이었고, 자신이 평생에 걸쳐 이뤄야 할 목표의 완성을 위한 길이었다.

수백, 수천, 수만의 시체가 하나로 뒤엉켰다.

모든 언데드들이 하나가 된 순간.

시즈라의 전신에서 막대한 힘과 마력이 터져 나왔다.

-그어어어어어!

수많은 시체가 하나로 뒤엉켜 탄생한 거대한 언데드…….

아니, 시즈라가 커다란 포효를 터트렸다.

“아아아악!”

“커억!”

시즈라의 포효 소리에 섞인 마력에 플레이어들이 귀를 막거나 피를 토했다.

쿠웅! 쿠웅!

시즈라가 무너진 협곡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무너진 협곡은 너무 높아 오르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무너진 협곡이 마치 작은 언덕처럼 느껴졌다.

“마, 막아라!”

“죽여!”

플레이어들이 시즈라를 향해 달려들며 스킬을 난사했다.

‘가여운 것들.’

시즈라의 눈에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플레이어들이 마치 개미 떼처럼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군주 플레이어들만 골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육체는 불완전했다.

그렇기에 세세한 컨트롤 같은 건 불가능했다.

군주 플레이어만 골라 죽이기는커녕 플레이어들을 제대로 구분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지금의 시즈라가 할 수 있는 것은…….

꽈아아아앙!

거대해진 육체를 휘둘러 적들을 짓밟고…….

-콰콰콰콰콰콰!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마력을 발산해 적들을 쓸어버리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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