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권. 해법 (177/225)

┃해법

현성의 경고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순순히 투항하는 군주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다수는 무시했다.

‘안일하기는…….’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 어차피 현성에게 투항해야 했다.

사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왕과 대영주 들의 입장에서 군주를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는 시즈라 왕국의 언데드 군단에게 항복하는 건 자살행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왕과 대영주 들은 하나같이 위기가 눈앞에 닥치기 전까지는 손에 쥐고 있는 권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어차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권력을 쥐고 있다가 죽기 직전에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포기를 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언데드 군단에게 몰살당하는 경우가 나왔다.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어.’

이건 시간 싸움이었다.

언데드 군단의 규모가 더 커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전군은 하달된 지역으로 진군하라.

현성이 대군주의 외침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간 현성은 직접 전면에 나서서 적 왕국들을 무너트렸다.

그렇게 무너트린 왕국의 수가 수십, 수백에 달했다.

‘꼭 내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지.’

이제는 굳이 현성이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휘하에 있는 신하들을 동원해 점령전을 벌이면 더 빠르게 영토를 넓힐 수 있다.

하나의 왕국을 침공하는 데 왕국 셋 정도의 전력을 모으면 충분하리라.

그간 이 방법을 쓰지 않은 이유는 새롭게 휘하에 들인 왕과 대군주 들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언데드 군단의 규모를 더 이상 늘리지 않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투항을 권유하고 거부하면 무력으로 진압하라.

현성이 그 지시를 끝으로 직접 전장으로 향했다.

휘하의 왕과 대영주 들을 동원한 이유는 현성이 편히 쉬기 위함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많은 왕국을 병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현성 역시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시즈라 왕국의 언데드 군단과 현성의 플레이어 군단이 양쪽에서 빠르게 압박을 가해 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있지도 않은 여유를 부리고 있던 왕과 대군주 들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싸우는 건 자살행위다.

-일단 고개를 숙이자.

왕과 대영주 들이 우르르 현성에게 몰려들었다.

현성 혼자 나섰을 때보다 휘하의 왕과 대영주 들을 동원하니 점령 속도가 월등히 빨라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언데드 군단과 현성 휘하 플레이어들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졌다.

언데드 군단과 결전을 벌여야 하는 순간이 더 빨리 다가온 것이다.

‘이제 믿을 건 자력 결계뿐이다.’

현성이 지도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초월 등급 용병 고용이라는 패는 이미 써먹었고, 그 결과 포인트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남은 방법은 지형을 이용해 자력 결계를 발동시켜 언데드들을 쓸어버리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성공 확률이 너무 희박하다는 점이었다.

‘사령술사만 잡으면 끝나는데.’

사령술사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직접 움직이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커.’

정보를 얻어 내기 위해서는 현성이 직접 시즈라 왕국으로 침투해 왕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 만한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생포해야 했다.

문제는 현성에게 더 이상 초월 등급 용병을 고용할 포인트가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정보를 캐기 위해 시즈라 왕국에 잠입했다가 사령술사에게 발각된다면?

제아무리 현성이라고 해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현성은 마치 깊은 암흑 속에 빠진 것만 같았다.

도저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위이이잉!

그때 현성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루시아였다.

현성이 문자의 내용을 확인했다.

[주군, 어머님의 환갑잔치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현 상황에서는 상당히 생뚱맞을 수도 있는 문자였다.

‘오늘이었지.’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현성의 어머니인 박미숙의 환갑잔치 날이었다.

현성은 어머니 환갑잔치 준비를 루시아와 누나 최현지에게 일임했다.

‘잠시 다녀와야겠네.’

준비는 맡겼지만 참석하는 건 직접 해야 했다.

결정적으로 어차피 지금 당장 현성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현성은 오래간만에 지구로 귀환했다.

* * *

어머니의 환갑잔치는 꽤 화려하게 치러졌다.

초대된 사람은 주변 지인들과 친척들뿐이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거대 기업의 오너들이 현성의 어머니인 박미숙 여사의 환갑연을 축하하는 선물을 보냈다.

현성의 위상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생신 축하드려요, 어머니.”

현성의 말에 어머니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들, 바쁜데도 엄마 생일이라고 와 줬네.”

“당연히 와야죠.”

현성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현성은 아무리 바빠도 가족 행사에는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그냥 생일도 아니고 환갑연이 아닌가?

‘건강하셔서 다행이네.’

올해 61세.

하지만 현성의 어머니는 겉으로 봤을 때 40대 초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모두가 비약의 힘이었다.

‘어떻게 하면 언데드들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

현성의 몸은 어머니 환갑연에 참석한 상태였다.

하지만 머릿속은 언데드 군단 퇴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루시아의 물음에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언데드 군단 때문에 고민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그 전쟁에서 패배하면 지구까지 위험해져요.”

침략자 차원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순간, 지구는 더 이상 지금의 평화를 누릴 수 없다.

“언데드가 불사의 존재라 확실히 골치가 아픈 것 같습니다.”

루시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지구는 루시아에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그래서 지구만큼은 자신의 본래 고향과 같은 꼴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디서 언데드 몬스터라도 나타났나요?”

그때 누군가가 현성과 루시아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바로 신윤아였다.

고유 스킬 보유자이자 한때 한국 랭킹 1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플레이어.

현성과 함께 등장한 루시아, 최형규, 백우신으로 인해 랭커 랭킹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과 전 세계를 통틀어 랭킹 5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인물이었다.

“예, 좀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겨서요.”

현성의 말에 신윤아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도울 수 있을 것 같네요.”

“예?”

“제가 언데드 퇴치 전문이잖아요. 제 마력 속성이 뭔지 잊으셨어요?”

신윤아의 말에 현성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빛 속성!”

빛 속성 마력은 언데드의 천적이었다.

“네, 맞아요. 그래서 언데드를 상대로는 마력 효율이 급격히 상승하거든요.”

“혹시 언데드의 부활도 막아 낼 수 있나요?”

“사령술사의 레벨이나 언데드의 등급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충분히 가능해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윤아 씨 덕분에 살았어요!”

“네? 아니, 사실 제가 가면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렇게 크게는 아닐 텐데.”

신윤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윤아의 마력 속성은 빛.

암흑 속성의 마력을 가진 현성과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현성 정도의 힘이라면 웬만한 속성 차이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신윤아가 가세한다고 해도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는 게 사실이었다.

‘난 그냥 오래간만에 같이 사냥이나 갈까 해서 꺼낸 말인데.’

신윤아는 현성을 무척 오래간만에 만났다.

그래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말을 건 것에 불과했다.

한데 현성이 과할 정도로 기뻐했다.

“윤아 씨, 혹시 빛 속성을 가진 랭커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으신가요?”

현성의 물음에 신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모탈 길드 소속은 대략 2천 명 정도고, 타 길드 소속까지 합치면 대략 3천 명 정도는 될 거예요.”

당연히 한국이 아닌 전 세계 기준이었다.

“내일 당장 소집령 내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신윤아의 대답을 들은 현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드디어 해결책을 찾았기 때문이다.

-휘하에 있는 빛 계열 마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모아라.

현성이 대군주의 외침을 통해 침략자 차원에 있는 왕과 대영주 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굳이 나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할 필요가 없었어.’

신윤아의 말 덕분에 힌트를 얻었다.

현성은 사령술사를 찾거나 힘으로 언데드 군단을 분쇄할 생각만 했다.

그래서 과거 초월 등급 용병들을 고용할 때 모두 탐지 스킬의 등급이 높은 이들을 선택했었다.

‘어차피 당장 사령술사를 찾을 방법은 없어.’

그럼 남은 방법은 언데드 군단의 분쇄였다.

하지만 언데드 군단은 쉽게 막을 수가 없었다.

무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현성 자신도 엄청난 강자였고 휘하에 기라성 같은 강자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데드들이 어떤 공격을 가해도 불사신처럼 되살아나고, 죽은 아군이 언데드로 변해 아군을 공격한다는 점이었다.

언데드들의 부활과 아군이 언데드로 변하는 것만 막을 수 있다면?

언데드 군단과의 정면 승부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너무 내가 가진 힘만 생각했어.’

현성은 언데드의 본질을 제거하는 화염의 서만이 이번 일의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빛 계열의 마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있다면?

언데드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제압하고, 아군 플레이어들이 언데드로 변하는 걸 막을 수가 있었다.

물론 지구와 침략자 차원의 빛 계열 마력을 다루는 플레이어들을 총동원해도 이번 전쟁의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현성에게는 용병 고용이라는 해결책이 있었다.

‘굳이 전처럼 초월 등급 용병을 고용할 필요는 없어.’

그저 언데드의 부활을 막고 아군 플레이어들이 언데드로 변하는 걸 막는 수준이라면?

영웅 등급 용병만으로도 충분했다.

영웅 등급 용병은 초월 등급 용병에 비해 무려 4단계나 아래다.

그런 만큼 고용 비용도 무척이나 저렴했다.

현성에게 남아 있는 잔여 포인트로도 수천 명을 고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 * *

어머니의 회갑연이 끝난 후 현성은 곧바로 전쟁을 준비했다.

관건은 빛 속성 마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이었다.

단순히 그들을 모았다고 끝나는 건 아니었다.

‘빛 계열 버프 스킬북이 필요해.’

높은 등급일 필요는 없다.

그저 작은 축복 정도면 충분했다.

‘어차피 언데드들 중 대다수는 중저레벨이야.’

고레벨 언데드는 현성을 포함한 왕과 대영주 들이 직접 상대하면 그만이다.

현성이 시스템 상점에 접속했다.

그 후 빛 계열 버프 스킬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현성의 마력 속성은 암흑.

그렇기에 빛 속성 스킬은 익힐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효율이 너무 떨어졌고 심할 경우 안 익히는 것만 못한 속성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어.’

굳이 현성이 익힐 필요는 없다.

믿을 만한 이들에게 대신 익히게 하면 그만이었다.

‘조금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는데.’

아마 그랬다면 탐지 능력이 뛰어난 초월 등급 용병을 아홉 명이나 고용하는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합이 중요해.’

타 속성을 가진 플레이어 군단.

그리고 그들에게 축복을 내려 줄 수 있는 빛 속성 마력을 가진 플레이어.

‘시간이 없어.’

언데드 군단이 도착하기 전까지 모든 준비를 끝마쳐야 했다.

현성의 계획은 간단했다.

실제 언데드 군단과의 전쟁은 현성을 포함한 일반 플레이어들이 맡는다.

빛 속성 마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조였다.

후방에서 언데드의 부활과 아군의 언데드화를 막는 것.

‘빛 속성 마력을 가진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많으면 모르겠지만…….’

그랬다면 빛 속성 마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모아 하나의 부대를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머릿수가 부족했다.

수백만의 대군이 충돌하는 전쟁이 될 것이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몇만 정도에 불과한 빛 속성 마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철저하게 지켜야 했다.

‘내 역할이 중요해.’

지구의 빛 속성 마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침략자 차원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서는 그들이 현성의 휘하에 들어야 했다.

이를 위해 현성은 그간 아껴 놓았던 통솔력을 대거 소모했다.

지구 플레이어들의 경우는 현성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에 엄청나게 좋아했다.

현성의 휘하에 들어간다는 건 지구의 최상위 플레이어들만 가능한 축복이었기 때문이다.

현성의 휘하에 들어온 빛 속성 마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은 대군주의 깃발이 가진 효과에 엄청나게 큰 만족감을 표했다.

‘마력을 철저하게 분배해야 한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플레이어들의 마력을 불사의 서를 사용해 끌어 온다.

그렇게 끌어온 마력을 대군주의 자비 스킬을 통해 빛 속성 마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에게 전달해 줘야 했다.

‘남은 건 포인트를 늘리는 거야.’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빛 속성 마력을 가진 용병들을 최대한 많이 고용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인트가 필요했다.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당장 포인트 수급을 위해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에게 새로운 게임을 풀어야 함을 느꼈다.

‘아직 기존 게임으로 포인트를 완전히 뽑아 먹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어.’

당장 포인트 수급을 위해서는 새로운 게임을 풀어야 했다.

그래야 새로운 유료 가입자가 나오고 월 정액제로 인한 수익과 가챠 상품으로 인한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최대한 예전 것만 풀어야지.’

2000년대 초반에 나온 게임 위주로 서비스를 한다면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걸로 끝낼 수는 없지.’

교류의 보석 2는 아직도 잘 판매되는 중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교류의 보석 2.5를 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치 덩어리인 교류의 보석 3는 지금 팔아도 교류의 보석 2의 판매량에 별다른 타격이 없을 거야.’

현성은 교류의 보석 3까지 풀 계획을 세웠다.

교류의 보석 3는 재고가 넉넉히 있었기에 게스피트에게 따로 부탁할 필요가 없었다.

‘뭐, 애초에 엄청나게 많이 팔리는 물건도 아니고.’

현성은 일단 카이로를 불러서 교류의 보석 3를 건네주고 판매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저, 정말 이 가격에 팝니까?”

현성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카이로가 입을 쩍 벌리며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기존에 판매했던 교류의 보석 1과 교류의 보석 2에 비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아니, 단순히 비싸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같은 시리즈 상품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기존 교류의 보석에 비해 몇 배 정도 비싸진 수준이 아니라 무려 수십 배나 올랐으니까 말이다.

“애초에 대량으로 팔려고 만든 물건이 아니다. 일종의 사치품이지.”

“사치품은 최대한 가격을 올려 받는 게 미덕이기는 하죠.”

카이로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대량으로 팔려고 만든 물건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납득했다.

결정적으로 카이로는 의사 결정권이 없었다.

‘어차피 난 지시하는 대로 판매하기만 하면 된다.’

판매 물품과 가격을 정해 주는 건 현성이다.

카이로 입장에서는 현성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지시를 내려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카이로는 중간 상인의 입장이었다.

교류의 보석 3가 망해서 재고품이 잔뜩 쌓이든 말든 그건 현성이 책임질 일이지 카이로가 책임질 일이 아니었다.

‘잘되면 좋고 안 되면 마는 거지.’

카이로는 아무런 리스크 없이 그저 중간에서 수수료만 두둑하게 챙기면 그만이었다.

“바로 등록하겠습니다.”

카이로가 현성이 넘겨준 교류의 보석 3를 부지런히 시스템 상점에 올렸다.

‘지구로 가자.’

카이로에게 교류의 보석 3를 넘긴 현성이 바로 서버실로 향했다.

그 후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에게 새로운 게임을 풀 것을 지시했다.

* * *

“신상품이네.”

1레벨 플레이어 무파우가 눈을 번뜩였다.

그는 적군 1레벨 플레이어 중 최고의 얼리어답터였다.

그 말은 신상품이 나오면 무조건 구매하고 본다는 것이다.

“교류의 보석 3라…….”

태연한 표정이던 무파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가격이 너무너무 사악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사용료도 엄청나게 비쌌다.

‘사치품이군.’

무파우는 교류의 보석 3의 존재 목적을 단번에 간파했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그렇지 너무 비싸. 완전 도둑놈이네.’

무파우가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교류의 보석 3를 구매했다.

‘고민은 구매만 늦출 뿐.’

무파우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았다.

고민한다고 해도 결국은 살 것이다.

그걸 알기에 그냥 바로 구매해 버렸다.

‘그럼 설치를 해 볼까?’

무파우가 교류의 보석 3를 설치하고 게임을 실행해 봤다.

“오호!”

확실히 빨랐다.

‘새로 나온 게임도 해 봐야지.’

무파우는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무조건 플레이했다.

당연히 이번에 나온 신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속도가 빨라지기는 했으니까 게임 파일 다운받는 건 1시간 안에 끝나려나?’

무파우가 게임 파일 다운로드를 시작했다.

그런데…….

“헉!”

게임 파일 다운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10분도 안 걸릴 거 같은데?’

무파우의 예상은 적중했다.

‘대박이다!’

무파우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가격과 사용료가 비싸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일단 후기부터 작성해야지.’

평소라면 시스템 상점에 교류의 보석 3의 구매 후기를 작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무파우는 시스템 구매평 대신 자신의 개인 SNS에 교류의 보석 3 구매 후기를 올렸다.

잠시 후.

무파우의 SNS 조회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 * *

‘좋아.’

현성이 새로운 게임으로 인해 발생한 매출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직 무료 서비스 기간이었지만 가챠 상품이 엄청난 속도로 팔리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원하는 포인트를 충분히 모을 수 있겠어.’

잘만 하면 영웅 등급 용병 수천이 아니라 수만을 고용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어디 그뿐인가?

높은 등급의 광역 버프를 걸어 줄 수 있는 초월 등급 용병도 한 명 정도는 고용하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주인님.”

그때 카이로가 현성에게 다가왔다.

“여기 이번 주 정산 포인트입니다.”

카이로가 현성에게 포인트를 건넸다.

“어?”

현성의 표정이 변했다.

카이로가 전해 준 포인트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교류의 보석 3가 대박을 쳤습니다. 그렇게 비싼 물건이 날개 돋친 듯 팔릴 줄은 몰랐는데, 역시 주인님이십니다.”

카이로의 아부에 현성은 어안이 벙벙했다.

솔직히 어느 정도 성과를 낼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에게 판매를 시작했을 때도 교류의 보석 3는 꽤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고가품이기에 한계치라는 게 있었다.

한데 카이로가 건넨 포인트는 고가품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왜 이렇게 많이 팔렸지?’

현성이 예상한 판매량보다 족히 열 배는 더 팔린 것 같았다.

“1레벨 플레이어들이 경쟁적으로 구매를 하더군요. 특히 SNS가 큰 힘이 된 것 같습니다.”

카이로의 말에 현성이 스마트폰을 꺼내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의 SNS에 접속했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현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발단은 바로 무파우라는 적군 1레벨 플레이어의 SNS였다.

사실 무파우의 SNS 내용은 간단했다.

교류의 보석 3의 성능과 가성비에 대해 적어 놓은 게 끝이었다.

특히 가성비에 대해서는 직접 쓰레기라고 언급을 해 놨다.

얼핏 보면 호평이 아닌 혹평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한 줄이 교류의 보석 3의 판매량을 폭등시켰다.

-이건 어느 정도 여유가 되는 플레이어만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다. 그러니까 거지들은 괜히 거들떠보지도 마라. 구매 가격도 가격이지만, 유지비가 장난이 아니니까. 아마 괜히 사 봤자 애물단지만 될 거다.

조롱기 섞인 충고.

그게 적군 1레벨 플레이어의 허세력을 증가시켰다.

교류의 보석 3를 구매해 인증샷을 올리는 것이 일종의 재력 과시로 치부된 것이다.

그 결과…….

‘넘쳐 나네.’

SNS에는 교류의 보석 3 구입 인증샷이 넘쳐 났다.

내용도 허세가 가득했다.

-거 과장이 심하네. 겨우 이 정도 가지고 엄살은…….

-오히려 무파우가 거지 아님? 겨우 하나만 구입했던데? 난 총 열 개 구입해서 수하들 컴퓨터에까지 발라 줬다.

-겨우 열 개? 난 30개 샀는데? 살림이 많이 쪼들리나 봐?

‘제대로 붙었네.’

SNS로 인해 교류의 보석 3를 구매하는 게 포인트 많은 갑부 1레벨 플레이어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변했다.

“중복 구매자가 꽤 많은가 보군.”

현성의 물음에 카이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거물들이 인증샷을 찍으려고 대량 구매를 했습니다. 그리고 허세를 부리려고 능력도 안 되는데 교류의 보석 3를 구매한 녀석들도 꽤 있고요.”

‘사용할 포인트도 없으면서 인증샷 찍으려고 구매한 녀석들도 꽤 있나 보네.’

지구로 치자면 기름값이 없어 끌고 다니지도 못할 거면서 허세를 위해 고가의 고배기량 차를 구입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뭐,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교류의 보석 3가 정말 필요해서 샀든 허세를 위해서 샀든 현성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교류의 보석 3가 많이 팔리면 현성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말이다.

‘게스피트 님과 나눈다고 해도 꽤 도움이 되겠어.’

예상치 못한 교류의 보석 3의 대박으로 인해 더 많은 숫자의 용병을 고용하고 더 높은 등급의 빛 계열 스킬북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언데드 군단과의 전투에서 아군의 승률이 더 올라간 것이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

현성이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했다.

이제는 전심전력을 다해 부딪치는 일만 남았다.

* * *

시즈라가 언데드 군단과 함께 텅 빈 도시를 지나쳤다.

‘모두 떠났군.’

빈 도시를 지나치는 일이 점점 더 잦아졌다.

왕과 대영주가 떠난 뒤 왕국에 속한 플레이어와 일반인 들까지 피난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언데드 군단의 행군 속도는 더 빨라졌다.

‘피난민인가?’

시즈라는 행군 도중 중간중간 피난민들을 만났다.

피난민들은 언데드 군단을 목격한 순간 죽어라 도망쳤다.

시즈라는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흩어진 적들은 모두 한곳에 모여 있을 것이다.

단 한 번.

단 한 번의 전쟁이면 대륙에 평화가 찾아온다.

그리고 군주에게 억압당했던 이들 역시 자유를 되찾을 것이다.

언데드 군단은 식사를 할 필요도, 쉴 필요도 없었다.

그렇기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행군을 지속했다.

그 결과.

며칠 후 결전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리병 모양의 협곡.

그 반대편에 수백만에 달하는 플레이어 군단이 진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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