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권. 격돌 (176/225)

┃격돌

‘설사 계획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서 언데드 군단을 모두 제거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야.’

자력 결계는 미봉책일 뿐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어 줄 수 없었다.

이는 용병 고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나보다 강한 용병들을 대거 고용해야 해.’

고용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포인트는 모아 놨다.

포인트를 탈탈 털어서 용병들을 대거 고용한다면, 언데드 군단을 쓸어버리는 것 역시 가능했다.

문제는 이 역시 미봉책일 뿐이라는 점이다.

상대는 인간이 아닌 언데드.

아무리 죽여 봐야 사령술사를 제거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현성 입장에서는 포인트만 낭비하는 꼴이었다.

‘언데드 군단은 사령술사만 건재하면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어.’

결론은 단 하나.

사령술사를 찾아야 했다.

문제는 시즈라 왕국으로 침투시킨 정보원들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답답하네.’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보원들만 믿고 있을 수는 없어.’

최후의 결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직접 가 봐야겠어.’

분명 위험할 것이다.

하지만 현성은 자신의 힘을 믿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오면 모아 놓은 포인트로 용병 고용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현성이 직접 움직이려는 순간.

위이이잉!

스마트폰을 통해 보고가 들어왔다.

[시즈라 왕국의 중요 인물들이 구 카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시즈라 왕국 왕의 행방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보고드립니다.]

현성의 눈이 번뜩였다.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성공했나?’

케이고라는 이름의 정보원이 시즈라 왕국의 병사로 잠입했다는 보고는 이미 받은 바 있었다.

하지만 일개 병사가 시즈라 왕국의 왕이 있는 장소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진짜로 알아냈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야.’

거기다 보고자인 케이고가 보고한 건 시즈라 왕국 왕의 행방이 아니라 중요 인물들의 행방이었다.

‘어차피 더 나빠질 것도 없어.’

애초에 직접 움직일 각오도 했다.

‘중요 인물들이라면 시즈라 왕국 왕의 위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지금은 기다릴 때가 아니라 행동할 때였다.

‘가자.’

현성이 구 카리아 왕국의 수도 위치를 확인한 뒤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 * *

시즈라 왕국의 병사로 편성된 케이고는 점령한 도시의 경계병 임무를 맡았다.

특별히 힘든 건 없었다.

선임들도 친절한 편이었고, 보수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정보를 수집할 기회가 없다는 점이었다.

도시 치안 업무거나 높은 분들의 수행원 같은 직책이었다면 정보 수집이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계병은 아니었다.

대부분 한자리에 가만히 서서 말뚝 근무를 서거나 순찰을 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던 중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소위 말하는 높으신 분들이 갑자기 성문을 통해 급하게 이동했기 때문이다.

선임 경계병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구 카리아 왕국의 수도로 소집 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케이고는 그 사실을 곧바로 주군인 현성에게 보고했다.

거짓 정보일 수도 있고, 정확도도 높지 않았다.

‘이게 맞는 선택인지 모르겠네.’

하지만 케이고는 보고를 선택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야. 더 이상 고민하지 말자.’

케이고가 마음을 다잡았다.

사실 케이고에게는 선택권이라는 게 없었다.

현성은 불확실한 정보라도 무조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케이고는 현성의 신하였다.

‘난 지시에 따랐을 뿐이야.’

이번 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케이고에게는 아무런 손해가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케이고의 정보가 이번 통일 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케이고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좋게 생각하자.’

자신이 올린 보고로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건 주군인 현성이 선택할 문제였다.

케이고는 보고를 올린 스마트폰을 아공간에 넣어 버렸다.

그 후 숙소의 불을 끄고 밖으로 나가 경계 근무에 복귀했다.

케이고가 사라진 후.

텅 빈 경계병 숙소 안.

암흑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 * *

현성이 구 카리아 왕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표정이 밝다.’

현성이 구 카리아 왕국의 수도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구 카리아 왕국의 수도는 전쟁의 여파를 아직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사방에 무너진 건물이 보였고 아직 지우지 못한 핏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전쟁에서 패해 타국에 나라를 빼앗겼다.

일반적인 상황이면 백성들의 표정이 어두워야 했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오히려 타 왕국의 백성들보다 표정이 월등히 밝았다.

‘시즈라 왕국의 정책은 절대다수의 백성들에게 도움이 된다.’

물론 기존에 절대 권력을 누리던 기득권층인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는 불만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의외로 플레이어들의 불만으로 인한 문제는 없는 듯했다.

‘어차피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최말단 귀족에 지나지 않지.’

신분이 조금 높을 뿐 플레이어들 역시 군주에게 귀속된 노예에 지나지 않았다.

일반 백성들이 하급 노예라면 플레이어들은 그저 고급 노예에 불과했다.

물론 시즈라 왕국의 체제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걸 티 낼 만큼 멍청한 놈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수백만에 달하는 언데드를 부리는 시즈라 왕국의 왕에게 저항한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오랜 시간 쌓인 상식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 주었다고 해도 그 전까지 노예의 삶을 살았던 점령지의 백성들은 여전히 플레이어들을 귀족 대하듯이 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점령지 백성들의 태도 역시 바뀔 것이다.

플레이어들의 불만도 커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문제가 생길 게 불 보듯 뻔했지만…….

‘어차피 지금 당장은 아니야.’

플레이어들도 백성들도 지금은 시즈라 왕국의 왕이 휘두르는 절대 권력 앞에 얌전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현성은 창조 등급 은신 스킬을 사용한 상태로 창조 등급 탐지 스킬을 최대한으로 펼치고 있었다.

한데 시즈라 왕국의 왕으로 추정되는 강력한 마력을 가진 존재가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여기 없을 수도 있어.’

케이고가 올린 보고는 시즈라 왕국의 고위층이 이동했다는 정보였지 왕의 위치를 알아냈다는 정보는 아니었다.

‘고위층을 하나 잡아서 정보를 알아내야겠어.’

시즈라 왕국의 높은 자리에 있는 플레이어라면 왕의 행보에 대해 아예 모르지는 않을 터였다.

‘어떤 놈을 고를까?’

케이고의 보고는 정확했고 꽤 많은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구 카리아 왕국의 수도에 모여 있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아무리 현성이라도 아무런 소동 없이 단숨에 제압하는 건 불가능했다.

‘놈들이 흩어질 때를 노린다.’

결정을 내린 현성이 차분히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뭐지?’

한곳에 뭉쳐 있던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성이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어디로 가는 거지?’

시즈라 왕국의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구 카리아 왕국의 수도를 빠져나갔다.

현성은 계속해서 그들의 뒤를 추적했다.

‘어?’

그러던 중 갑자기 사방에서 강대한 마력이 피어올랐다.

슈슈슈슉!

그와 동시에 현성의 주변으로 그 수를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든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친.’

현성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함정이다.’

정보원 케이고의 보고를 듣고 시즈라 왕국 왕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알아내기 위해 홀로 이곳에 왔다.

한데 역으로 함정에 빠져 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그간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성장한 현성은 초월 등급 은신 스킬인 차원의 이면을 넘어서는 창조 등급 은신 스킬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상대가 아무런 기미도 없이 현성의 창조 등급 은신 스킬을 꿰뚫어 봤다.

‘일단 피하자.’

마력 역장이 펼쳐져 있을 게 분명하기에 현성은 은신 스킬을 사용한 상태로 최대한 빨리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정확히 현성을 향해 언데드들의 온갖 공격이 날아들었다.

‘망할.’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이 전력을 다해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발동시켰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현성을 중심으로 온갖 공격이 휘몰아쳤다.

현성의 몸이 순식간에 넝마로 변했다.

적이 어중이떠중이라면 모르지만 언데드 중에는 왕과 대영주였었던 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 이들이 쏟아 내는 집중 공격이다.

아무리 현성이 전력을 다해 방어하려 해도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현성은 일단 아공간을 열었다.

-크오오오오!

-카아아아앙!

아공간이 열리며 현성이 그간 망자의 부활 스킬을 사용해 차곡차곡 모아 놓은 언데드 몬스터들이 등장했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언데드 플레이어와 언데드 몬스터의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어차피 혼자서는 못 이겨.’

언데드 플레이어에는 왕과 대영주였던 자들이 있다.

그런 만큼 언데드 몬스터들로는 절대 이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이번 사태는 현성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었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승부를 본다.’

멀리 떨어진 전장에 있어야 할 언데드들이 갑자기 이곳으로 소환되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언데드들의 주인인 사령술사뿐이었다.

쉽게 말해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령술사가 있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결판을 낼 생각으로 온 거야.’

현성이 이곳에 온 목적은 사령술사의 제거다.

물론 현성도 사령술사가 언데드를 소환할 수 있는 스킬을 보유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혼자 조용히 처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다.

‘엄청난 변수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곳에 온 목적은 이뤘어.’

그 행방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사령술사가 이곳에 있다.

그거면 충분했다.

‘아깝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현성은 용병 고용을 선택했다.

현 상황에서 발동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자력 결계를 쓸 수는 없으니 남은 선택은 용병 고용뿐이었다.

현성이 그간 모아 놓은 포인트를 탈탈 털었다.

그 포인트를 모두 소모해 용병들을 소환했다.

화아악!

언데드들이 날리는 온갖 스킬의 포화가 밀어닥치는 전장에 아홉 명의 초월 등급 용병들이 소환되었다.

“고용주를…….”

퍼엉!

아홉 명의 초월 등급 용병들은 현성에게 인사를 하기도 전에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스킬의 포화에 휘말렸다.

그 짧은 시간에 언데드 몬스터들이 거의 전멸했기 때문이다.

“이런 X발!”

분노한 용병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무려 초월 등급 용병이다.

당연히 언데드들의 집중 공격에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분이 확 상했다.

소환되어 오자마자 공격을 당했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꽈아아아앙!

아홉 명의 용병들이 무차별하게 날뛰며 언데드 몬스터들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언데드와 사령술사를 제거해 주세요!”

현성이 뒤늦게 명령을 내렸다.

“말 안 해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상황에서 소환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잘못하면 죽을 뻔했잖아요!”

“옳소!”

“고용주는 각성하라!”

용병들의 항의에 현성은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정도 위기가 아니라면 애초에 현성이 초월 등급 용병들을 소환할 필요도 없었다.

초월 등급 용병은 비효율의 극치다.

한 명 고용해서 대영주 하나 때려잡아 봐야 무조건 손해다.

그것도 엄청난 손해.

수지타산을 맞추려면 대영주 수십은 때려잡아야 할 거다.

그래서 현성도 그간 용병을 고용하지 않은 것이다.

낮은 등급 용병은 별다른 도움이 안 되고 높은 등급 용병은 가성비가 너무 떨어졌으니까 말이다.

이것도 현성이 너무 강해진 덕에 생긴 부작용 중 하나였다.

각성 초기 용병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엄청난 강자가 아니면 더 이상 현성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포인트 손해가 꽤 크겠어.’

현성이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흩뿌렸다.

상대가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군대였다면 충분히 손해를 만회하고도 남는다.

죽은 적들의 잔존 마력이 아이템으로 변할 테니까 말이다.

하나 적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닌 언데드였다.

‘언데드는 아무리 쓸어버려도 전리품이 나오지 않는다.’

현성이 가진 스킬인 망자의 부활로 소환된 언데드 몬스터들은 아이템을 토해 내지 않는다.

왜?

언데드가 되기 전에 이미 토해 냈으니까.

‘쓸어버리기나 하자.’

현성이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시작으로 그동안 익힌 온갖 계열의 창조 등급 스킬들을 사용했다.

꽈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언데드들이 무참히 쓸려 나갔다.

아군은 현성을 포함해 총 열 명.

그에 비해 언데드들의 숫자는 족히 10만은 넘어 보였다.

단순히 머릿수만 채운 것도 아니었다.

수백만이 넘는 언데드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언데드만 모은 티가 났다.

‘그래도 우리가 이긴다.’

열 명 대 10만의 싸움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절대 열 명이 10만을 이길 수가 없다.

하지만 현성은 승리를 확신했다.

문제는 단 하나.

사령술사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 * *

현성과 용병들이 언데드와 치열한 드잡이질을 하고 있을 무렵.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시즈라.

시즈라 왕국의 왕이었다.

‘예상이 빗나갔다.’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현성은 시즈라 왕국의 존재를 인식하고 정보를 모으며 대비책을 세웠다.

그건 시즈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성의 왕국이 무섭게 팽창하는 것을 인지하고 정보를 모아 대비책을 만들었다.

그 대비책 중 하나가 바로 이번에 만든 함정이었다.

‘군주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다 쓸어버릴 생각이었거늘…….’

현성은 왕과 대영주 들을 거느린 황제다.

그가 함정에 빠지면?

휘하인 왕과 대영주 들을 소환할 것이다.

그럼?

단숨에 휘몰아쳐 군주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일거에 쓸어버린다.

이게 시즈라가 세운 계획이었다.

왕과 대영주 들이 휘하 최상위 플레이어들을 소환하면, 군주 직업을 가지지 않은 플레이어들의 피해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했다.

시즈라는 대승적으로 생각했다.

왕과 대영주 들이 휘하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을 소환할 수는 없다.

그러니 군주 직업을 가지지 않은 플레이어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일반 백성들의 피해?

이전 작전이 성공하면 일반 백성들의 피해는 사실상 제로로 만들 수 있었다.

시즈라의 입장에서는 말끔하게 군주 직업을 가진 이들만 제거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한데 그 계획이 어그러졌다.

‘저들은 절대 황제의 휘하에 있는 왕이나 대영주 따위가 아니야.’

가장 위협적인 적인 황제보다 더 강대한 마력을 흩뿌리며 언데드들을 쓸어버리고 있는 존재가 왕이나 대영주일 리가 없었다.

거기다 미리 파악해 놓았던 왕이나 대영주 들과는 외형이 달랐고 주력으로 사용하는 스킬도 달랐다.

사실 그건 당연했다.

현성은 이번 싸움에 휘하 신하들을 소환하는 게 아니라 타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들을 고용했으니까 말이다.

‘골치 아파지겠어.’

그간 전쟁에서 왕과 대영주 들은 치졸한 수를 수없이 사용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일반 백성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웠고, 군주 직업이 가지고 있는 강제성을 이용해 휘하 하급 플레이어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이번 계획을 세웠다.

한데 그게 시작부터 어그러졌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자들이 튀어나온 거지?’

시즈라의 자랑이던 언데드 군단이 무참히 쓸려 나가고 있었다.

물론 소멸되는 즉시 부활되기는 했다.

하지만 황제의 손에 죽은 언데드들은 다시 부활하지 못했다.

언데드를 부활시킬 수 있었던 근원이 소멸했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자를 죽여야 한다.’

황제보다 강한 힘을 가진 플레이어가 아홉 명이나 등장했다.

하지만 근원을 소멸시킬 수 있는 권능이 없는 이들은 아무리 강해도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하나 대륙의 1/3을 점령한 황제는 달랐다.

그는 시즈라가 가진 힘의 원천인 언데드들의 근원을 소멸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전력으로는 무리다. 힘을 더 모아야 해.’

결정을 내린 시즈라가 두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자신의 휘하에 있는 언데드들의 존재가 느껴졌다.

‘잠시 돌아가라.’

시즈라의 명령에 대륙 중앙을 향해 진군하고 있던 수백만의 언데드 군단의 몸이 그대로 바스러졌다.

그와 동시에 수백만 언데드 군단을 유지하고 있던 막대한 마력이 현성과 용병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10만 언데드들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 * *

‘금방 정리가 되겠어.’

현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초월 등급 용병들은 현성의 예상대로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은 바로 현성이었다.

용병들의 손에 죽은 언데드들은 금방 되살아났다.

어디서 마력을 공급받는지 바스라진 신체가 금방 복구되어 말 그대로 불사신과 같은 위용을 보여 주었다.

이런 상태가 계속 유지되었다면?

현성의 입장에서는 초월 등급 용병 아홉 명을 고용하고도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성이 있기에 상황이 달라졌다.

현성은 근원을 소멸시키는 화염의 서를 보유하고 있다.

화염의 서는 언데드들의 근원을 소멸시켜 부활을 원천 봉쇄했다.

그 결과.

꽈아아앙! 꽈아아앙!

아홉 명의 초월 등급 용병들이 현성의 방패가 되었고…….

화르르륵!

현성은 창이 되어 언데드들의 숫자를 차근차근 줄여 나갔다.

연계도 가능했다.

초월 등급 용병들이 언데드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방어 스킬이 해제되면, 현성이 화염의 서로 공격하는 식이었다.

‘그보다 사령술사를 찾아야 하는데.’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사령술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건 초월 등급 용병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단은 언데드들을 소멸시키는 데 집중하자.’

마력 역장이 펼쳐져 있기에 수색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앞을 가로막고 있는 언데드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후 사령술사를 찾는다.

그게 현재 현성의 1차 목표였다.

꽈아아아앙!

그때 커다란 폭발과 함께 이변이 발생했다.

현성의 방패 역할을 맡고 있던 초월 등급 용병이 뒤로 밀려 난 것이다.

“이놈들 뭐야? 갑자기 강해졌어!”

방금 전 공격을 받은 초월 등급 용병의 외침에 다른 용병들 역시 표정을 굳혔다.

언데드들에게 강대한 마력이 주입되었다.

그와 동시에 언데드들의 전투 능력이 대폭 증가했다.

“이러면 곤란한데.”

용병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솔직히 말해 용병들 입장에서도 언데드는 상당히 까다로운 적이었다.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아마 고용주가 가진 근원을 소멸시키는 힘이 아니었다면?

용병 고용 시간 내내 언데드들과 드잡이하다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한데 상황이 변했다.

크게 변한 건 아니었다.

언데드들이 강해졌다고 해 봐야 초월 등급 용병들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한 방이면 끝났던 것들이 세 방은 먹여 줘야 박살이 났다.

거기다 언데드들의 공격이 가볍게 막아 내기 힘든 수준으로 강해졌다.

당연히 언데드 한 마리를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망할.’

현성도 표정이 굳어졌다.

근원을 제거하는 화염의 서도 무적은 아니다.

스킬을 통해 얼마든지 방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용병들과 힘을 합쳐 차근차근 언데드 몬스터들의 숫자를 줄여 나가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언데드 몬스터들이 강해졌다.

그럼 현성이 가진 화염의 서로 언데드들을 소멸시키는 속도도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포인트야.’

현성은 언데드들을 공격해 체력과 마력을 보충했다.

거기다 불사의 서가 가지고 있는 옵션을 통해 신하들에게서도 체력과 마력을 보충받았다.

용병들 역시 초월 등급답게 체력과 마력 관리를 아주 잘하고 있었다.

시간만 충분히 쏟는다면 언데드 군단 따위 충분히 박살 낼 수 있었다.

시간을 충분히 쏟을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용병들은 이 차원의 존재가 아니었다.

타 차원에서 포인트라는 보수를 받고 고용된 존재다.

현성의 포인트가 바닥나면?

초월 등급 용병들은 다시금 본래 자신들이 있던 차원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사령술사는 아직 찾지도 못했는데.’

언데드들에게 강대한 마력이 전달되었다.

사령술사의 짓이 분명했다.

이건 사령술사를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데 도저히 사령술사의 꼬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사령술사를 통해 언데드들에게 마력이 전달되는 기미가 전혀 없었다.

그냥 언데드들이 갑자기 강해졌다.

골치가 아파 왔다.

“사령술사의 위치는 아직입니까?”

현성의 물음에 초월 등급 용병들이 일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창조 등급 탐지 스킬을 가진 현성도 사령술사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 만큼 다른 초월 등급 용병들 역시 마찬가지일 게 분명했다.

‘도대체 왜 감지가 안 되는 거야?’

사령술사의 마력은커녕 생명체가 지니고 있는 생기도 찾지 못할 판이었다.

‘멀리 있는 건 아닌데.’

마력을 능수능란하게 조정했다.

거기다 언데드들의 움직임 역시 무척 자연스러웠다.

언데드들이 생전의 힘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 봤자 죽은 시체다.

쉽게 말해서 사령술사의 지시에만 따를 뿐 자체적으로 협공을 할 능력이 없었다.

그런 언데드들이 현성과 초월 등급 용병들을 상대로 일사불란하게 합공을 했다.

이건 사령술사가 직접 지시하지 않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무리 찾아도 사령술사의 기척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일단 언데드들부터 박살 내자.’

현성이 목표를 수정했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좌절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럴 때는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게 우선이었다.

‘고레벨 언데드들을 완전히 소멸시키면, 당분간 사령술사의 발을 묶어 놓을 수 있어.’

초월 등급 용병을 무려 아홉 명이나 고용해 놓고 사령술사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건 엄청난 손해였다.

솔직히 말해서 포인트가 아까워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언데드부터 때려잡고 보자. 포인트는 다시 모으면 그만이야.’

현성이 애써 쓰린 속을 달래며 부지런히 화염의 서를 흩뿌렸다.

잠시도 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고레벨 언데드들을 완전히 박멸해야 했다.

* * *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길 수 없는 건가?’

시즈라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수백 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 마력을 모아 왔다.

그 후 대륙이 혼란에 휩싸였다.

그래서 언데드 군단을 일으켰다.

한데 애써 모은 언데드 군단이 빠른 속도로 소멸하고 있었다.

언데드 군단이 소멸하는 건 감당할 수 있다.

문제는 언데드 군단과 함께 소멸되는 마력이었다.

‘다 저놈 때문이야.’

시즈라가 현성을 노려보았다.

군주의 정점에 있는 자.

왕들의 왕.

저놈이 애써 모은 마력을 빠르게 소모시키고 있었다.

‘이대로는 무리야. 각개격파 해야 한다.’

적들의 전력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금 이대로 소모전을 펼치는 건 시즈라의 입장에서 큰 손해였다.

일단 하나로 뭉친 적을 뿔뿔이 흩어 놔야 했다.

시즈라가 결정을 내린 순간.

맹렬하게 달려들던 언데드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나며 뿔뿔이 흩어졌다.

* * *

맹공을 퍼붓던 언데드들이 일제히 물러나 뿔뿔이 흩어지는 순간.

현성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딜 도망가려고! 추격해서 박멸하세요!”

현성이 목소리를 높이며 언데드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고용주인 현성의 지시를 받은 용병들 역시 도주하는 언데드들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언데드들은 공격을 포기한 대신 방어에 모든 마력을 집중하며 퇴각했다.

그 결과 언데드들을 소멸시키는 속도가 월등히 떨어졌다.

현성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런 망할. 퇴각할 거면 진작 할 것이지.’

현성은 방금 엄청난 손해를 봤다.

왜냐하면…….

조금 전 기본 용병 고용 시간이 끝나서 막 용병 고용 시간을 연장했기 때문이다.

‘방금 계약 연장을 해서 포인트를 지불했단 말이야.’

현성은 속으로 처절한 절규를 터트렸다.

포인트를 사용해 고용한 용병들은 얼마나 높은 성과를 냈느냐에 따라 고용 비용을 지급받지 않는다.

그저 몇 시간 동안 활동했느냐에 따라 포인트를 지급받는다.

그런 만큼…….

현성은 방금 쓸데없이 포인트를 지불해 버렸다.

‘방어에 집중해서 효율이 너무 떨어졌어.’

문제는 또 있었다.

현성의 몸은 하나다.

뚱이와 덕구를 동원해도 고작해야 셋.

마음 같아서는 근원을 제거하는 화염의 서를 용병들에게 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언데드들은 잘게 나눠 흩어졌다.

용병들이 아무리 언데드를 때려잡아도 화염의 서로 마무리를 하지 않으면 다시금 되살아난다.

그 말인즉.

잘게 흩어진 언데드 무리들 중 일부밖에 박멸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현성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완전히 포인트만 날린 꼴이었다.

언데드들이 흩어질 줄 알았다면 용병 고용을 종료하는 편이 더 나았다.

“후우!”

현성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 후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벌어진 일이야. 좋게 좋게 생각하자.’

언데드들은 나타났을 때처럼 갑자기 훅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물리적인 힘을 이용해 퇴각하고 있었다.

‘마력 역장은 내가 다시 펼쳤고.’

언데드들이 마력 역장을 해제하기에 본능적으로 마력 역장을 사용했다.

언데드들이 공간 이동 스킬을 통해 도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이동한다는 건 사령술사가 이 근처에 있는 게 확실하다는 뜻이야.’

소환사가 공간의 제약 없이 소환수를 마음대로 원하는 장소에 소환할 수는 없다.

그건 사령술사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스킬을 다시 사용하는 식으로 자신의 곁에 소환수인 언데드를 소환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엉뚱한 장소에 소환할 수는 없었다.

그 말인즉슨!

현성의 추측대로 분명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령술사가 있다는 뜻이었다.

‘다시 사령술사를 찾아야 하나?’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마력을 통해 추적해 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유일하게 알아낸 정보라고는 언데드들이 서로의 마력을 공유한다는 것 정도였다.

‘생기도 안 느껴지고 마력도 안 느껴지고, 도대체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무려 창조 등급 탐지 스킬을 동원해도 찾을 수가 없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사실 당장 사령술사를 찾는다면 모를까 용병 고용이 끝난 후에는 찾아도 문제였다.

현성은 더 이상 용병을 고용을 연장하거나 새로운 용병을 고용할 포인트가 없었다.

용병들의 고용이 끝난 뒤 사령술사를 찾는다면?

오히려 현성이 언데드들의 합공에 위기에 몰릴 확률이 높았다.

사령술사가 언제라도 자신의 곁에 언데드들을 소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까 말이다.

‘일단 용병 고용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언데드들을 소멸시킨다.’

막대한 포인트를 소모해 고용 시간을 연장한 값을 하려면 현성이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화르르륵!

현성은 초월 등급 용병들과 힘을 합쳐 하나라도 더 많은 언데드를 사냥하기 위해 노력했다.

* * *

시즈라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피해가 너무 크다.’

군주의 정점에 있는 황제를 제거하기 위해 꾸민 함정에 아까운 언데드들과 마력만 잃게 생겼다.

‘적들이 흩어졌어야 하는데.’

열 명의 적들이 추격을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면?

자신을 추격해 온 적을 각개격파 하고 다른 먹잇감을 노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적들도 그걸 알고 있는지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뭉쳤다.

그 결과 각개격파는 불가능해졌다.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최대한 많은 숫자의 언데드를 살리는 것만 생각한다.’

결정을 내린 시즈라가 언데드들을 더 잘게 쪼갰다.

언데드들이 전멸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염연히 시즈라의 착각이었다.

시즈라는 현성을 제외한 아홉 명의 플레이어가 다른 차원에서 온 용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언데드들이 전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언데드들을 더 자잘하게 흩어 놓은 것이다.

그게 실수였다.

현성이 고용한 용병들의 고용 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많이 살려야 해.’

그 사실을 모르는 시즈라는 언데드들이 뿔뿔이 흩어져 퇴각을 하고 있음에도 상당히 큰 초조함을 느꼈다.

자칫 잘못하면 애써 키워 놓은 언데드 군대가 괴멸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이변이 일어났다.

언데드들의 피해가 제로로 변한 것이다.

‘뭐지? 왜?’

시즈라는 의문을 느꼈다.

비록 잘게 흩어졌다지만 언데드들을 더 잡으려면 얼마든지 더 잡을 수 있었다.

한데 갑자기 중간에 포기해 버렸다.

‘이유가 뭐지?’

시즈라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도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사실 그게 당연했다.

1레벨 플레이어가 아닌 시즈라가 용병 고용 시스템에 대해 알 리 만무했으니까 말이다.

‘뭔가 이상해.’

시즈라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언데드들을 풀었다.

하지만 현성을 포함한 용병들 중 그 누구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공격을 멈춘 수준이 아니라 아예 말끔하게 증발해 버렸다.

마치 자신의 반격이 걱정되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이다.

‘뭔가 약점이 있는 거야.’

시즈라의 두 눈에서 기이한 광기가 일렁거렸다.

‘전투를 오래 지속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건가?’

그럴 확률이 높았다.

‘최대한 몰아붙인다. 여유를 줘서는 안 돼.’

결정을 내린 시즈라가 최전방으로 향했다.

이번 전투로 왕과 대영주급 언데드들이 많이 소멸당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정복하지 못한 세상에는 아직 많은 왕과 대영주 들이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시즈라가 스킬을 취소했다.

그러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언데드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사라진 언데드들이 품고 있던 막대한 마력이 시즈라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슈욱! 슈욱!

시즈라가 연속적으로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전장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통신 스킬을 사용해 왕국의 신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더 이상 방치할 필요 없다. 첩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시즈라 왕국에는 상대 플레이어의 직업과 소속 여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고유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가 있었다.

그 덕분에 시즈라 왕국은 군주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와 그 수하들을 효율적으로 찾아 제거할 수 있었다.

시즈라는 그간 의도적으로 왕국에 들어온 첩자들을 허용했고 오히려 역정보를 흘렸다.

하지만 아마 같은 수가 두 번씩이나 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첩자들을 색출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군주에게 종속된 신하들은 자유의지가 없다.

각성한 순간부터 자의가 아닌 타의로 구속되어 평생을 모시는 군주의 종으로 살아가야 한다.

시즈라는 가여운 종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했고 그들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을 안쓰러워했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한때는 군주에게 종속된 종의 신세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아직 점령하지 못한 왕국의 국경에 도착했다.

왕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갑자기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던 언데드들이 말끔하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전긍긍하며 ‘피난을 가야 하나?’ 하고 걱정했던 왕과 대영주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왕과 대영주 들은 갑작스러운 언데드의 소멸에 사령술사가 죽은 게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그 이유를 제외하면 갑자기 언데드들이 소멸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과 대영주 들은 바보가 아니었기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그렇게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던 경계병들의 눈에 시즈라가 들어왔다.

“뭐야? 언데드잖아? 모두 소멸한 거 아니었나?”

“그러게?”

경계병들이 시즈라를 보며 떠들었다.

시즈라는 피식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미소를 짓는 순간 말라비틀어진 죽은 피부 조각이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그래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고작 한 마리잖아. 내가 처리할게.”

성 위에서 플레이어 하나가 가볍게 몸을 날려 지상에 착지했다.

스르릉.

그 후 검을 뽑아 들고 시즈라를 향해 다가왔다.

‘가여운 것.’

저들은 모두 군주에게 종속된 불쌍한 종이다.

그러니…….

‘목숨은 살려 주마.’

시즈라가 손을 들었다.

사아아악!

그녀의 몸 안에 잠들어 있던 막대한 마력이 외부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언데드의 형상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시즈라의 몸속에 있던 마력이 그저 그런 플레이어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언데드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해서 그녀의 힘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그저 힘이 잘게 쪼개졌을 뿐이다.

언데드들은 서로의 마력과 생명을 공유한다.

‘가여운 것.’

두두두두!

언데드들이 검을 뽑아 들었던 플레이어에게 달려들었다.

플레이어는 순식간에 언데드들에게 포위당해 무기를 빼앗기고 마력을 봉인당했다.

‘안타깝구나.’

고작 한 명의 적이라면 이렇게 목숨을 부지하게 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십만이 뒤엉킨 전장에서는 일일이 군주가 아닌 플레이어들의 목숨을 구해 줄 수가 없었다.

‘너희들에게는 죽음이라는 이름의 영원한 자유와 안식을 선물하마.’

시즈라의 의지에 언데드들이 반응했다.

-캬아아아!

-크오오오!

언데드들이 노성을 터트리며 눈앞의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단 하나.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라는 것이었다.

“언데드다!”

“아아악!”

“살려 줘! 난 살고 싶어!”

플레이어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자유의지를 말살당한 채 군주의 노예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시즈라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왜냐하면 바로 자신이 죽음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었으니까 말이다.

* * *

용병들이 돌아가자 현성은 일단 본진으로 귀환했다.

‘일단 어느 정도 시간은 벌었어.’

그렇게 번 시간 동안 포인트를 모으고 사령술사를 찾아낼 방도를 알아내야 했다.

‘그런데 정말 어디 숨은 거야?’

마력도 탐지되지 않고 생명력도 탐지되지 않는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위이이잉!

그때 현성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뭐지?’

현성이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사라진 언데드 군단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현재 레타지 왕국을 침공 중입니다.]

‘미친.’

현성과 용병들이 언데드 군단을 전멸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엄청난 수의 고레벨 언데드들을 제거했다.

그런 만큼 사령술사가 당분간은 숨을 죽이리라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사령술사는 잠시도 쉬지 않고 곧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간 잃어버린 왕과 대영주급 언데드들을 보충이라도 하겠다는 듯 다시 침공을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방금 용병 고용을 마쳤다.

그 결과 현성의 포인트는 바닥.

초월 등급 용병들을 고용할 정도로 포인트를 모으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언데드의 숫자를 줄일 수는 없다. 하지만 늘어나는 건 막아야 해.’

침공이 계속되면 이번 현성과의 충돌로 잃어버린 왕과 대영주급 언데드들을 빠르게 복구할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성이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아직 굴복하지 않은 왕과 대영주 들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사신을 보내라.

현성이 일단 군주의 외침으로 왕과 대영주 들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하지만 한번 거절한 전적이 있는 놈들이야.’

현성은 언데드 군단이 진군한 순간부터 지속적으로 왕과 대영주 들에게 투항을 권유해 왔다.

그 결과 많은 왕과 대영주 들이 자신의 영지를 버리고 현성에게 투항했다.

물론 투항한 이들은 대부분 언데드 군단과 충돌하기 직전의 위기에 몰렸던 놈들이다.

그렇지 않은 놈들은 꼭 시간을 끌었다.

당장 위험하지도 않고 현성이 시즈라 왕국처럼 군주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학살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성은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또한 그들에게 단단히 경고해라. 이번 권유에도 투항하지 않는다면, 절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거라고 말이다.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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