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권. 강적 (175/225)

┃강적

현성은 순식간에 프로드 왕국을 점령했다.

하지만 그 정도에서 만족할 현성이 아니었다.

‘사냥감은 아직 많이 남아 있어.’

현성은 프로드 왕국을 점령한 직후 곧바로 메이다 왕국을 침공했다.

프로드 왕국의 경우 대영주들을 한곳에 모아 놓은 후 전쟁을 종결지었기에 그라도 왕국처럼 대영주들을 찾아가 일일이 드잡이질을 할 필요가 없었다.

현성의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에 메이다 왕국은 화들짝 놀랐다.

그 후 하나로 똘똘 뭉쳐 강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이미 두 개의 왕국을 통합한 현성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구 그라도 왕국 인근에 있던 왕국들이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현성은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의 도움으로 인해 대영주와 왕을 뛰어넘는 힘을 얻었다.

팽팽한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와중에 현성이라는 이레귤러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당연히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왕과 대영주 그리고 왕국과 왕국.

서로 힘이 엇비슷하기에 유지될 수 있었던 균형이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현성 앞에 무너지는 왕국이 하나둘 늘어났다.

그럴수록 현성의 힘은 강해졌고, 다른 왕국들은 더욱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나중에는 왕국들이 서로 힘을 합쳐 현성을 막기 위한 동맹군을 결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통일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현성이 계속해서 강해졌기 때문이다.

현성은 실시간으로 강해지고 있었다.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과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을 통해 벌어들이는 포인트 덕분이었다.

현성은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에게 판매하는 컨텐츠를 천천히 늘려 나갔다.

그 결과 포인트 수급이 줄어들기는커녕 계속해서 늘어나기만 했다.

그뿐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하며 현성이 전리품으로 얻은 창조 등급 스킬 역시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기존 침략자 차원의 왕국들은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그와 반대로 현성이 지배하는 왕국의 영토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현성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타국을 점령하고 있을 무렵.

그런 현성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 * *

시즈라 왕국은 군주가 없는 왕국이었다.

아니, 단순히 군주가 없는 것을 넘어서 증오하는 왕국이었다.

당연히 주변 왕국들의 극심한 견제와 공격을 받았다.

시즈라 왕국은 오랜 시간 방어에 전념하며 힘을 키웠다.

그러다 현성이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통일 전쟁을 시작하자 시즈라 왕국 역시 칼을 뽑아 들었다.

“막아라! 막으란 말이다!”

케이니 왕국의 왕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케이니 왕국 왕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자신의 몸을 방패 삼아 적을 막았다.

왕국의 대영주들 역시 사력을 다해 적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저히 적을 이길 수가 없었다.

바로 그들의 적이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크오오오오!

뼈만 남은 스켈레톤들이 기이한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죽어!”

케이니 왕국 소속 플레이어 하나가 욕설을 내뱉으며 검을 휘둘렀다.

플레이어의 검에는 충만한 마력이 담겨 있었고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액티브 스킬까지 발동시킨 상태였다.

하지만…….

파강!

플레이어가 휘두른 검은 스켈레톤이 든 방패에 가볍게 막혀 버렸다.

스켈레톤이 든 방패를 충만한 마력이 깃든 방어 스킬이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푸욱!

이어지는 스켈레톤의 공격에 플레이어의 숨이 끊어졌다.

스켈레톤은 자신의 무기를 들고 계속해서 전진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스켈레톤의 손에 죽은 플레이어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방금 전까지 자신의 아군이었던 자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단순히 육체적인 힘으로 휘두르는 게 아니었다.

스켈레톤을 향해 휘둘렀던 충만한 마력과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액티브 스킬을 발동시킨 상태였다.

생전에 가지고 있던 스텟과 스킬을 고스란히 보유한 채 언데드가 되어 되살아난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자신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적으로 돌변했다.

케이니 왕국의 왕 입장에서는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아군의 전력은 계속 줄어든다.

반면 적의 전력은 아군 전력이 줄어든 만큼 계속해서 보강된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적을 상대로 싸우는 기분은 실로 처참했다.

해결책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첫 번째, 죽은 플레이어를 언데드로 만드는 스킬을 시전하는 사령술사를 찾으면 된다.

두 번째, 아군 플레이어들의 희생을 최소화한 상태로 언데드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면 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케이니 왕국 왕의 눈앞에는 그 숫자를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들이 득실거렸으니까 말이다.

언데드들의 숫자는 최하 10만이 넘어 보였다.

스킬을 시전한 사령술사는?

보이지도 않았다.

“도대체 저 많은 언데드 병사들이 어디서 나타난 거냐!”

케이니 왕국의 왕은 10만이 넘는 언데드들을 보며 경악했다.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었다.

거기다 죽은 아군이 곧바로 언데드로 부활하는데, 스킬을 시전하고 마력을 공급하는 사령술사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한 거냐!”

언데드를 부리는 사령술 계열의 스킬은 상당히 드물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당연히 케이니 왕국의 왕 휘하에도 사령술 계열 스킬을 사용하는 수하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 지위가 그리 높지 않았다.

단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점은 사령술 계열 스킬의 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점이었다.

죽은 플레이어이나 몬스터의 사체에 마력을 불어 넣어 봤자 며칠 버티지 못하고 다시 사체로 돌아간다.

언데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마력을 불어 넣어 줘야 하는데, 이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전투 시에만 마력을 주입해 언데드를 일으킨다.

문제는 불어 넣어 준 마력이 소모되면 다시 사체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전투 시 동일 마력으로 언데드를 부리느니 공격 스킬을 한 방 더 시전하는 게 나았다.

물론 마석을 대거 사용하면 언데드를 조금 더 오래 부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래 봤자다.

마석에 담긴 마력이 소모되면 소멸하는 건 똑같았으니까 말이다.

결정적으로 마석은 침략자들의 차원에서 화폐 역할을 한다.

말 그대로 돈을 미친 듯이 쏟아부어야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두 번째 단점은 사령술로 되살아난 언데드의 전투력이었다.

생전과 다를 바가 없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언데드로 되살아난 플레이어나 몬스터의 전투력은 생전보다 월등히 떨어졌다.

마력을 미친 듯이 쏟아붓거나 마석을 물처럼 쏟아부으면 생전보다 강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럴 바에는 다른 공격 스킬을 시전하는 게 더 효율이 좋았다.

세 번째 단점은 스킬의 한계였다.

사령술 스킬은 종류에 따라 플레이어만 부활시킬 수 있거나 몬스터만 부활시킬 수 있다는 조건이 붙는다.

문제는 단순히 부활시키는 사체의 종류가 아니라 등급이었다.

스킬 등급보다 격이 높은 존재는 통제가 되지 않는다.

그 격의 차이가 심하면?

아예 언데드로 부활시킬 수조차 없었다.

한데…….

“도대체 어떻게!”

눈앞에 존재하는 언데드 군단은 케이니 왕국의 왕이 알고 있던 사령술의 단점을 송두리째 박살 냈다.

10만에 달하는 언데드가 동시에 공격을 가했다.

처음에는 버티면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벌써 3일 넘게 언데드 군단이 유지되고 있었다.

거기다 언데드 군단은 전원 플레이어였다.

생전에 사용하던 스텟과 스킬을 그대로 사용했다.

언데드라면 생전보다 약해져야 한다.

한데 오히려 강해진 느낌이었다.

결정적으로…….

언데드에게 죽은 대영주 중 한 명이 언데드로 되살아났다.

대영주는 플레이어들의 정점에 있는 존재다.

그런 이가 언데드로 되살아났다는 말은…….

사실상 모든 플레이어의 사체를 언데드로 부릴 수 있다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탈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언데드들이 마력 역장을 펼쳐 도망칠 수도 없었다.

“으아아악!”

“살려 줘!”

체력과 마력이 고갈된 신하들이 하나둘 언데드들의 공격에 쓰러졌다.

그리고 언데드가 되어 아군을 공격했다.

“아아아!”

힘들여 키운 자신의 왕국이 무너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케이니 왕국의 왕이 피눈물을 흘렸다.

점점 인의 장벽이 옅어졌다.

그리고 결국!

“아아악!”

케이니 왕국 왕 역시 언데드들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케이니 왕국을 점령한 언데드들의 숫자가 순식간에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저벅저벅.

총 20만 대군으로 늘어난 언데드 군단이 다음 목표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 * *

“뭐?”

현성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어, 언데드들이 진군하고 있습니다. 그 숫자가 족히 수백만은 되어 보입니다. 이미 수십 개의 왕국이 언데드 군단에게 점령당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보고해 봐.”

현성의 말에 흩뿌려 놓은 정보원 중 하나가 부지런히 자신이 본 사실을 털어놓았다.

요점은 간단했다.

수백만의 언데드 군단이 왕국들을 점령하고 있다.

그렇게 점령된 왕국에는 시즈라 왕국의 국기가 꽂혔다.

언데드 군단은 플레이어의 시체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놀랍게도 그 언데드 군단에는 망국의 왕과 대영주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미친.”

현성은 정보원의 보고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나 군주와 신하 관계로 묶여 있는 정보원은 절대 자신을 배신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정보원이 현성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진짜였어.’

정보원의 보고는 모두 사실이었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 대군이 왕국을 공격했다.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수백만이 넘는 언데드 군단과 고작 수십만에 불과한 왕국의 군대가 충돌했다.

언데드 군단은 불사였다.

죽여도 죽여도 다시 되살아났다.

거기다 스킬도 쓰고 왕과 대영주급 무력을 지닌 언데드들이 선봉에서 날뛰고 있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현성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한데?’

현성 역시 망자의 부활이라는 사령술 계열 스킬을 익히고 있었다.

몬스터에 한정되지만 죽은 녀석을 부활시킬 수 있다.

그 결과 현성도 아공간 속에 수만에 달하는 언데드 군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주기적으로 마력을 보충해 줘야 했다.

현성은 사냥과 불사의 서를 통해 손쉽게 언데드 군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해야 수만 마리가 한계였다.

수만 마리도 빠듯한데 수백만 마리는 절대 불가능했다.

수백만 마리의 언데드 몬스터를 부리려면 현성의 휘하에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가 최소 수억 명, 넉넉잡아 수십억 명은 되어야 가능한 수치였다.

문제는 또 있다.

‘어떻게 대영주와 왕을 언데드로 부릴 수 있는 거지?’

현성이 가진 망자의 부활은 초월 등급부터는 제대로 제어가 되지 않는다.

대영주와 왕은 초월 등급 몬스터 정도는 순식간에 압살시켜 버릴 수 있는 강자였다.

그런 그들을 언데드 몬스터로 부린다?

‘창조 등급 스킬이라도 불가능한 일이야.’

현성은 전쟁을 통해 수많은 창조 등급 스킬을 수집했다.

하지만 아무리 창조 등급 스킬이라도 저 정도 힘을 낼 수는 없었다.

‘저건 창조 등급 스킬이 가진 격을 뛰어넘는 힘이야.’

현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혹시 안전 결계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이유가 저것 때문이었나?’

현성은 수많은 왕국을 점령했다.

그 결과 독보적인 힘을 손에 넣었다.

힘의 균형이 깨졌기에 안전 결계가 소멸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여러 대비책을 마련해 놓았다.

한데 안전 결계는 그 힘이 약해졌을지언정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었다.

‘확실해.’

안전 결계가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저 언데드 군단을 부리는 사령술사가 가진 힘이 현성보다 크기 때문이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통일 전쟁이 끝나면 침략자 차원으로 인한 문제는 말끔하게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큰 위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전면전은 자멸 행위였다.

병력의 규모는 맞출 수 있다.

수백만에 달하는 플레이어를 휘하에 거두고 수백 명에 달하는 왕과 대영주 들을 휘하에 거둘 수는 있다.

하지만 사령술사에게 절대 충성을 바치는 언데드와 군주에게 절대 충성을 바치는 휘하 신하는 엄연히 다른 존재였다.

‘실제로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것도 아니고…….’

왕과 대영주 들은 그저 현성이 가진 힘에 눌려 잠자코 있을 뿐이다.

현성보다 더 강한 자가 나타난다면?

언제라도 배를 갈아탈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언데드들을 부리는 주체가 시즈라 왕국이라는 건데.’

시즈라 왕국은 군주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증오한다.

군주라는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는 시즈라 왕국에게 있어서 무조건 잡아 죽여야 할 사냥감에 불과했다.

‘그런 만큼 사력을 다해 싸우기는 할 테지만…….’

상황이 불리해지면 도망칠 확률이 높았다.

결정적으로…….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없어.’

적은 죽지 않는 불사의 군대다.

현성 휘하의 모든 병력이 죽기를 각오하고 사력을 다해 싸운다고 해도…….

그들은 결국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체다.

그런 만큼 죽지 않는 언데드와의 싸움에서는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현성 역시 사령술사의 약점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현재 현성의 입장에서 가장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단 하나.

사령술사의 암살이었다.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왕과 대영주 들이 언데드로 변했다.

현성은 확실히 강해졌다. 왕과 대영주 들을 순식간에 제거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하나 그건 상대가 한 명이었을 경우다.

수십 수백 명이 모여 있다면?

아무리 현성이라도 도리가 없었다.

‘분명히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거나 자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감추고 있을 거야.’

골치가 아파 왔다.

‘일단 정보 수집이 우선이다.’

손자병법에는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절대 틀린 게 아니었다.

현재 현성이 알고 있는 정보는 적이 수백만 마리의 언데드를 부린다는 것뿐이었다.

현성은 적장의 얼굴이나 이름은커녕 성별도 모른다.

적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제대로 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시즈라 왕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라. 특히 언데드를 부리는 사령술사에 대한 정보를 최우선으로 모아라. 또 시즈라 왕국에 대한 정보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단 하나도 빼놓지 말고 모두 보고하도록.

현성이 대군주의 외침을 통해 지시를 내렸고…….

통일 전쟁을 위해 대륙 전역으로 흩뿌려 놓았던 정보원들이 시즈라 왕국으로 몰려들었다.

* * *

‘주군의 명령을 꼭 완수해야 한다.’

케이고는 현성의 휘하에 있는 신하 중 한 명이었다.

또 유능한 정보원이기도 했다.

부랑자로 위장한 케이고는 시즈라 왕국이 점령한 영토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오히려 타 영지에 잠입해 정보를 수집할 때보다 더 안전했다.

시즈라 왕국은 외부인을 배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배척은커녕 환영했다.

절대 일반적인 광경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국가는 외부인을 배척했다.

설사 같은 왕국인이라고 해도 속한 영지가 다르면 배척하기 일쑤였다.

한데 시즈라 왕국은 달랐다.

‘확실히 군주를 배척하는 국가다워.’

시즈라 왕국도 계급사회였다.

하지만 그 벽이 그리 빡빡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신분 차별이 없었다.

플레이어도 일반인도 동일한 권리를 가진 백성일 뿐이었다.

시즈라 왕국은 공식적으로 왕을 제외한 모든 이가 동등했다.

계급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신분처럼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마치 백성들의 낙원 같은 곳이군.’

자신이 주군을 모시는 휘하 신하가 아니었다면?

플레이어가 아니었다면?

시즈라 왕국에 뼈를 묻었으리라.

‘주군께서 흩뿌린 사상도 제대로 뿌리를 내렸다.’

타 왕국에서는 민주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것들이 음지에서 퍼져 나갈 뿐이었다.

하지만 시즈라 왕국은 달랐다.

당당하게 퍼져 나갔다.

‘그런데 플레이어의 숫자가 너무 적다.’

이상한 점은 백성들의 숫자에 비해 플레이어의 비율이 너무 낮다는 것이었다.

‘사령술사가 없이는 절대 유지될 수 없는 국가다.’

플레이어의 숫자와 레벨은 각 왕국의 무력을 측정하는 척도다.

사령술사가 없다면?

시즈라 왕국은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겨졌을 것이다.

‘사령술사에 대한 정보를 모아야 하는데.’

케이고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하지만 사령술사에 대해서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저 사령술사가 시즈라 왕국의 왕이라는 것.

백성들에게 엄청난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

그 두 개가 끝이었다.

‘큰일이다.’

케이고는 초조함을 느꼈다.

그때였다.

‘어?’

케이고는 어느새 자신에게 미행이 붙었음을 알아차렸다.

‘도망칠까?’

잠시 고민이 일었다.

‘아직은 아니야.’

케이고는 태연하게 행동하며 계속해서 정보를 모았다.

그 결과 자신에게 붙은 미행이 한둘이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실상 포위된 거나 마찬가지다.’

위기였다.

‘은신 스킬이나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할까?’

잠시 갈등이 일었다.

‘물리적인 포위망이 구성됐다면, 마력 역장 역시 발동되었을 거야.’

케이고는 탈출을 포기했다.

‘드레이크를 잡으려면 드레이크 굴에 들어가야 한다.’

케이고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포위망이 구성되기는 했다.

하지만 감시자들은 케이고를 포위하고 지켜볼 뿐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시즈라 왕국의 왕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케이고가 행동을 바꿨다.

그동안은 간접적으로 시즈라 왕국의 왕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대놓고 물어봤다.

“그건 왜 묻지?”

노점상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케이고에게 물었다.

“사실 저는 플레이어입니다.”

케이고가 그 말과 함께 다소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일반인에 불과한 노점상의 표정은 태연했다.

다른 영지였다면 바닥에 넙죽 엎드렸겠지만 시즈라 왕국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크흠!”

케이고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부랑자 주제에 유세는…….”

노점상의 말에 케이고가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시즈라 왕국에 정착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병사가 되고 싶다는 말이군.”

노점상의 말에 케이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왕 아래 모두 평등하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즈라 왕국은 계급사회다.

당연히 일반 평민보다는 병사의 계급이 높다.

거기다 병사는 단순한 군인이 아니다.

현대사회의 경찰 역할까지 함께 수행한다.

“아무리 시즈라 왕국이라도 병사들은 플레이어로 구성되어 있을 거 아닙니까?”

“맞네.”

“또 레벨에 따라 더 높은 직급을 배정받을 수 있을 거고요.”

시즈라 왕국은 플레이어를 억압하거나 핍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대우를 해 준다.

플레이어는 기본적으로 일반인보다 전투 능력이 월등히 높은 존재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다 침략자들의 차원은 기본적으로 무력이 우선시되는 세상이다.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으면?

더 높은 직급을 가질 수 있다.

“레벨이 꽤 높은가 보군.”

노점상의 물음에 케이고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뭐,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사실이었다.

정보원인 케이고의 레벨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현성의 배려로 인해 높은 등급의 은신, 수색, 감지, 아공간, 공간 이동 등의 스킬을 익혔을 뿐이다.

사실 케이고의 레벨로는 자신을 미행하는 이들의 존재조차 몰라야 정상이다.

포위망을 구성한 이들은 케이고보다 월등히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들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현성의 배려로 익힌 감지 스킬 덕에 자신의 미행하는 이들의 존재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저쪽으로 가 보게.”

노점상의 말에 케이고가 태연한 표정으로 중앙관청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냥 가면 되는 겁니까? 경계가 삼엄하던데요?”

“그냥 가면 되네.”

노점상이 그 말을 끝으로 좌판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케이고는 살짝 망설였지만, 결국 중앙관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케이고가 중앙관청으로 향하는 동안 하나둘 미행이 떨어져 나갔다.

‘이대로 도망쳐도 되기는 하지만…….’

케이고는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정보를 얻기 위해 직접 적의 소굴로 걸어 들어가기로 말이다.

* * *

현성은 통일 전쟁을 지속했다.

패배는 없었다.

계속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현성은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답답하네.’

현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시즈라 왕국에 정보원들을 뿌렸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보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이 속도라면 늦어도 두 달 안에는 부딪칠 수밖에 없어.’

그것도 넉넉하게 잡은 거였다.

빠르면 고작해야 한 달 안에 시즈라 왕국과 충돌할 것이다.

‘억지로 속도를 늦출 수도 없고.’

상대는 언데드를 다루는 사령술사다.

도대체 무슨 스킬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약이라는 게 없는지 왕국들을 점령하는 족족 언데드의 숫자를 늘려 나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왕들도 바보는 아니라는 건데.’

시즈라 왕국이 이끄는 언데드 군단의 진군에 대항하기보다는 도피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왕과 대영주 들은 플레이어들만 챙겨 도망쳤다.

백성들은?

그대로 방치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시즈라 왕국이 백성들은 해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하급 영지의 플레이어들도 항복한다면 굳이 해치지 않았다.

하지만 군주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상대로는 자비가 없었다.

대영주급 언데드들까지 동원해 죽이려고 노력했다.

‘삼파전이야.’

현성의 왕국과 시즈라 왕국이 대륙을 서서히 점령하며 진군하고 있다.

중간에 끼인 신세가 된 왕국들은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현성은 그 와중에 엄청난 숫자의 왕과 대영주 들을 휘하로 받아들였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현성은 군주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적대하지 않았다.

반면 시즈라 왕국은 군주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발견 즉시 척살했다.

어차피 도망칠 곳도 없는 상황에서 각국의 왕과 대영주 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항복뿐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현성과 시즈라 왕국 모두 자신들이 감히 어찌할 수 없는 강적이었으니까 말이다.

‘투항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중간에 낀 왕과 대영주 들은 현성의 왕국과 시즈라 왕국이 직접적으로 충돌하지 않는 방패막이 역할을 해 준다.

하지만 그 방패가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그 방패가 완전히 소멸하는 날.

현성은 좋든 싫든 시즈라 왕국과 일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시즈라 왕국의 언데드 군단을 이길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꼭 이겨야 해.’

이건 단순히 침략자 차원에서 벌어지는 영토 분쟁이 아니었다.

현성이 침략자 차원에서 시즈라 왕국을 막아 내지 못한다면?

시즈라 왕국의 언데드 군단은 차원 게이트를 넘어 지구를 침공할 것이다.

그럼 모든 게 끝이었다.

현성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두었던 모든 방어책이 무너진다.

힘들게 지켜 왔던 지구가 치열한 전쟁터로 변한다.

그리고 어쩌면 지구가 시즈라 왕국에게 함락당할 수도 있었다.

‘남은 수는 자력 결계와 용병 고용인데…….’

수십만 규모로 병력을 나눠 대대적인 점령전을 벌이고 있는 언데드 군단을 유인해 한곳에 가둔다.

그 후 자력 결계를 발동해 쓸어버린다.

현성에게는 적의 근원을 제거하는 화염의 서가 있는 만큼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불가능한 미션은 아니었다.

하지만 계획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일단 수십 개로 나뉜 언데드 군단을 한곳으로 유인해야 했다.

그게 쉬울 리가 없었다.

설사 한곳으로 유인해 함정에 빠트린다고 해도…….

사령술사가 바보가 아니라면 함정에 빠진 언데드들을 그대로 방치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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