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시장 확대
“뭐? 그게 무슨?”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묘인족 사내를 무시하고 현성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면? 너랑 내가 정당한 거래를 할 수 있는 대등한 입장이라고 생각하냐?”
현성의 말에 묘인족 사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아닙니다. 전 다만…….”
묘인족 사내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말투도 존대로 바뀌었다.
하지만 현성은 묘인족 사내의 주절거림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만.”
현성이 묘인족 사내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지금 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야. 굳이 이런 계약서 따위 쓰지 않고 네놈을 죽여 버려도 된다고.”
현성이 영혼의 계약서를 묘인족 사내의 눈앞에서 펄럭였다.
“내가 다른 놈들처럼 네놈이 가진 고유 스킬을 탐낼 것 같아?”
현성의 물음에 묘인족 사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 같은 반골을 살려 두면 나에게 득이 될 일이 생길까, 아니면 독이 될 일이 생길까?”
“전 반골이 아닙니다! 믿어 주십시오!”
묘인족 사내가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현성이 자신을 살려 두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만약 자신이 반대 입장이었다면?
고가의 초월 등급 영혼의 계약서를 제시하는 대신 단칼에 죽여 버렸을 것이다.
같은 1레벨 플레이어들끼리는 상대가 가지고 있는 고유 스킬을 탐낼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 말이다.
묘인족 사내는 그제야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이해했다.
그리고 현성이 자신에게 엄청난 호의를 베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했다.
“당장 사인하겠습니다!”
묘인족 사내가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한 뒤 펜을 들었다.
살기 위해서는 노예 계약서나 다름없는 조건의 영혼의 계약서를 제시하더라도 사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묘인족 사내는 현성이 영혼의 계약서의 내용을 더 악랄하게 바꿀까 봐 재빨리 사인을 했다.
그 모습을 목격한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침략자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인 묘인족 사내를 죽이지 않고 살려 준 이유는 현성이 정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판매창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현성의 판매창은 남아돌았다.
설사 부족해지더라도 루시아나 파르티샤의 판매창을 이용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인족 사내에게 영혼의 계약서를 제시한 이유는 단 하나.
현성이 접속할 수 있는 시스템 상점은 오직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과의 거래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적 1레벨 플레이어들에게도 전자 제품과 문화 상품을 팔아먹을 수 있겠어.’
상품의 판매 시장을 두 배로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호의를 베풀어 주는 척 소량의 포인트를 넘겨주며 적 1레벨 플레이어와 자유롭게 포인트 교환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미리 확인했다.
그러니 이 정도 수고쯤은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다.
“사, 사인했습니다.”
묘인족 사내의 외침과 동시에 영혼의 계약서가 환한 빛무리로 변하더니 둘로 나뉘어 현성과 묘인족 사내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현성은 영혼의 계약서가 강제하는 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묘인족 사내 역시 그 사실을 느꼈는지 잔뜩 풀이 죽은 표정이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결과 약간의 자유를 가진 노예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잘한 거야.’
묘인족 사내가 애써 자신의 마음을 달랬다.
만약 자신이 상대의 입장이었다면?
영혼의 계약서를 직접 구매해 내밀었다고 해도 단칼에 거절했을 것이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묘인족 사내가 공손히 현성의 오른손을 잡으며 말했다.
좋든 싫든 묘인족 사내는 현성에게 종속된 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무조건 현성에게 잘 보이는 게 중요했다.
방금 전처럼 까칠하게 행동했다가는 자신만 손해였다.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 혹시 시스템 상점에 전자 제품이라는 것이 있나?”
현성의 말에 묘인족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전자 제품요?”
“직접 보여 주는 게 낫겠군.”
현성이 아공간에서 노트북과 스마트폰 등등의 전자 제품을 소환했다.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다.”
현성이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정말 신기하군요.”
묘인족 사내는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의 등장에 크게 놀랐다.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물품이 있는지 다시 한번 시스템 상점창을 살펴봐라.”
현성의 지시에 묘인족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시스템 상점창을 뒤졌다.
잠시 후.
“없습니다.”
묘인족 사내가 시스템 상점에 전자 제품이 없음을 밝혔다.
‘혹시나 했는데 다행이네.’
현성이 접속할 수 있는 아군 시스템 상점에는 경쟁자가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차원이 존재하는 만큼 적군 시스템 상점에는 비슷한 물품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다행히도 그런 건 없었다.
“내가 건네주는 물품들을 시스템 상점에 등록하도록.”
현성이 그 말과 함께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물량이 떨어지면 판매할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전자 제품들을 모조리 끄집어냈다.
“가격은 내가 정해 주겠다.”
현성이 전자 제품들의 가격을 불러 줬다.
묘인족 사내가 재빨리 현성이 가리킨 물품들을 현성이 부르는 가격에 시스템 상점에 등록했다.
‘처음부터 아군 시스템 상점과 동일한 물품을 판매할 필요는 없어.’
적당한 수준의 전자 제품을 푼다.
영화나 드라마도 과거의 것 위주로 푼다.
그 후 서서히 수준을 높여 가며 아군 차원과 적군 차원의 균형을 맞추면 된다.
묘인족 사내가 현성이 지시한 일을 모두 마무리했다.
그리고 놀란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묘인족 사내는 눈치가 빠른 만큼 현성이 왜 자신을 살려 두었는지 알아차린 눈치였다.
“적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셨습니까?”
“맞다.”
현성이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서 절 살려 두신 것이었군요.”
묘인족 사내의 눈빛에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왜, 적의 하수인이 된 게 분한가?”
현성의 물음에 묘인족 사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아군이건 적군이건 제가 가릴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제 목숨이 우선이죠.”
“그런데?”
“제가 너무 성급하게 영혼의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묘인족 사내는 현성에게 속았다.
현성이 아군이 아니라 적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더 많은 것을 얻어 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든 것이다.
현성이 아군이었다면 말 그대로 호의를 베푼 것이다.
하지만 적군이라면 이용할 구석이 있는 만큼 자신을 살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을 이용했어야 했다.
한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오히려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굳이 벌주를 선택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왜 아쉬운가?”
말을 마친 현성의 두 눈에서 스산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아닙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제가 탁월한 선택을 한 겁니다!”
묘인족 사내가 재빨리 대답했다.
전에 모시던 대군주에게 당했던 고통스러운 세월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묘인족 사내는 자기 자신의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은 고통과 절망에 끝까지 저항하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전에 모셨던 대군주에게 굴복해 원하는 아이템을 가져다 바쳤다.
묘인족 사내가 순순히 영혼의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다면?
전에 당했던 고통을 고스란히 다시 당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굴복했을 것이다.
‘전보다는 나아.’
최소한 자신이 벌어들인 포인트는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다.
거기다 비록 1%라고는 하지만 수수료도 받을 수 있다.
전처럼 구속복을 입고 갇혀 있을 필요도 없다.
“저는 그저 주인님의 자비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묘인족 사내가 넙죽 엎드리며 말했다.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묘인족 사내는 눈치가 빠르고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엉뚱한 짓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뭐, 영혼의 계약서가 있는 만큼 엉뚱한 짓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테고 말이다.
“아, 그리고 주인님, 판매 등록한 물품들이 빠르게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 속도라면 금방 바닥이 날 것 같은데요?”
“잠시 기다려라.”
현성이 그 말과 함께 지구로 돌아갔다.
그리고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전자 제품들의 재고를 모조리 털어 왔다.
그 후 그 물품을 모두 묘인족 사내에게 넘겼다.
묘인족 사내는 자신의 눈앞에 작은 산처럼 쌓인 물품들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가격은 기억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어서 판매 등록해.”
“예, 주인님.”
묘인족 사내가 열심히 전자 제품들을 판매 등록했다.
현성은 그사이 게스피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용은 간단했다.
자신을 고용해 달라는 게 전부였으니까 말이다.
잠시 후.
-고용주 게스피트 님이 용병 최현성 님의 고용을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게스피트가 보낸 용병 고용 메시지가 왔다.
현성이 예를 눌렀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현성이 게스피트의 차원으로 이동했다.
“무슨 일이냐?”
게스피트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현성에게 물었다.
“교류의 보석 1을 대량으로 생산해야 할 것 같아서요.”
“교류의 보석 1을?”
게스피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교류의 보석 2.5나 교류의 보석 3도 아니고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인 교류의 보석 1을 왜 다시 생산한다는 말인가?
교류의 보석 1의 경우는 아예 생산 및 판매를 중단한 상태였다.
교류의 보석 2 역시 생산량을 서서히 줄이고 있었다.
“그게 실은…….”
현성이 게스피트에게 침략자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를 만났고 영혼의 계약서를 통해 종속시켰다는 사실을 알렸다.
“정말 대단하구나. 판매 시장이 두 배는 넓어졌어. 거기다 적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들이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를 가지고 와서 우리가 강해질 수 있으니, 일석이조나 마찬가지다.”
게스피트의 얼굴이 환해졌다.
현성이 평범한 1레벨 플레이어였다면 침략자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를 통해 장사하는 일을 반대했을 것이다.
아이템은 플레이어를 강하게 해 주는 근본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전자 제품은 플레이어들의 전투력 향상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저 취미 생활이나 여가 활동에 영향을 줄 뿐이다.
“현재는 전자 제품과 DVD만 판매하고 있지만, 교류의 보석 1도 판매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차라리 교류의 보석 2.5를 파는 것이 낫지 않느냐? 그럼 온라인 게임을 더 빨리 보급할 수 있지 않느냐?”
과거에는 전자 제품을 판매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더 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게임 정액 요금제를 통해 벌어들이는 포인트가 어마어마하게 커진 상태였다.
거기다 정액 요금제는 기간이 지나면 다시금 포인트가 들어온다.
“당장 포인트 수익을 극대화하기보다는 보다 장기적으로 더 많은 포인트를 벌어들일 생각입니다.”
현성의 말에 게스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구나. 어차피 교류의 보석 1은 교류의 보석 2가 판매되면 쓰레기가 될 테니까 말이다.”
교류의 보석 2.5를 판매하면 교류의 보석 2역시 그 가치를 잃을 수밖에 없다.
“교류의 보석 1의 판매가 바닥을 칠 때쯤 교류의 보석 2를 판매할 생각입니다.”
“교류의 보석 2의 판매가 바닥을 치면, 그 후에는 교류의 보석 2.5를 풀겠구나.”
게스피트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쟁자가 없는 시장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데 굳이 처음부터 진보된 기술을 보여 줄 필요는 없었다.
최대한 많은 포인트를 짜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적극적으로 도와주마.”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나에게도 좋은 일인데.”
게스피트와 현성의 입가에 자본주의의 미소가 짙게 피어올랐다.
적군 시스템 상점에 등장한 전자 제품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창고에 있던 재고를 모두 털어 왔음에도 물량이 달릴 정도였다.
‘사실 당연한 거지.’
현성은 전자 제품의 엄청난 인기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아군 시스템 상점에서 큰 인기를 누리던 제품을 선별해 판매했으니 이렇게 잘 팔리는 게 당연했다.
덕분에 꽤 많은 포인트가 들어왔다.
물론 현재 현성의 입장에서 그리 큰 포인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전자 제품 판매는 시작에 불과했다.
어느 정도 인프라가 깔리면, 교류의 보석 1을 시작으로 수많은 문화 상품들을 판매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문화 상품들은 엄청난 포인트가 되어 현성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오늘 치 정산 포인트입니다.”
묘인족 사내.
아니, 카이로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현성에게 전자 제품을 판매해 벌어들인 포인트를 넘겼다.
카이로의 몫은 전체 금액의 1%.
벌어들인 포인트의 99%가 사라졌으니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판매 등록할 물품들이다.”
현성이 다량의 전자 제품을 내밀었다.
‘교류의 보석 1의 대량생산도 거의 끝나 간다.’
전자 제품이 어느 정도 보급되고 교류의 보석 1의 재고가 쌓이면 판매를 시작할 것이다.
현성은 적군 시스템 상점에 판매할 교류의 보석 1과 연결된 서버를 따로 만들고 있었다.
나중에 아군 측과 적군 측의 수준이 비슷해지면, 서버를 합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상조였기에 서버를 따로 분리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카이로가 부지런히 새로운 상품들을 판매 등록했다.
“앞으로는 수수료를 10%로 늘려 주겠다.”
“예?”
갑작스러운 현성의 말에 상품들을 판매 등록하고 있던 카이로가 화들짝 놀랐다.
“왜? 싫은가?”
“아, 아닙니다!”
“내 말을 잘 따르면 수수료를 더 늘려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수수료를 더 줄일 수도 있어.”
“주인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카이로가 힘차게 대답하고는 열과 성을 다해 상품들을 판매 등록했다.
1%와 10%는 천양지차다.
수수료가 무려 열 배나 늘어난 것이다.
‘빨리 성장해라.’
현성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카이로를 바라봤다.
수수료를 열 배나 늘려 준 것은 카이로가 이뻐서가 아니었다.
단지 카이로의 시스템 등급을 높여 주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신화 등급만 가능하지만 더 높이면 초월 등급도 가능할 거야.’
초월 등급은 아무래도 물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포인트가 있어도 원하는 스킬북을 구입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카이로가 초월 등급 스킬을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 상점 등급을 획득한다면?
현성은 아군 시스템 상점과 적군 시스템 상점에서 원하는 물품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다.
“끝났습니다.”
카이로가 열심히 움직인 덕분에 상품 등록이 순식간에 끝났다.
“이건 예비 물량이다. 아공간에 보관하고 있다가 판매 상품이 다 떨어지면 바로 올리도록.”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카이로의 표정이 무척이나 밝아졌다.
현성에게 전자 제품 판매로 얻는 포인트는 푼돈에 불과했다.
하지만 중년인의 모습을 하고 있을 정도로 포인트가 부족했던 카이로에게는 그 푼돈의 10%조차 무척이나 소중했다.
거기다 현성은 카이로가 몬스터를 잡아서 얻은 포인트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몬스터 사냥을 통해 나온 아이템을 판매해 얻은 포인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이로의 두 눈에 충성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현성은 카이로가 전에 모시던 이들에 비하면 상당히 좋은 주인이었다.
자유를 구속하지 않아 얼마든지 사냥을 할 수 있었다.
억지를 쓰거나 기존에 약속한 일을 어기는 법도 없었다.
거기다 수수료를 무려 열 배나 올려 주었다.
그런데 수수료를 더 늘려 줄 수도 있다고 한다.
‘주인님께 신임을 받아야 한다.’
카이로 입장에서 현성이 부탁한 전자 제품 대리 판매는 잠시 수고만 들이면 그만인 간단한 일이었다.
한데 그 전자 제품이라는 것을 통해 얻는 포인트가 실로 엄청났다.
‘10%만 해도 이 정도인데 20%라면? 30%라면?’
죽어라 사냥하는 것보다 더 많은 포인트를 앉은자리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어차피 카이로는 영혼의 계약서 때문에 영원히 현성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같은 노예 신세라고 해도 자유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구속복을 입은 채 원하는 스킬북을 가져다 바치는 신세는 진정한 노예의 삶이다.
아니, 노예의 삶보다 더 비참했다.
반면 자유롭게 사냥을 하며 부수입으로 막대한 수수료까지 받을 수 있는 삶은 절대 노예라고 할 수 없었다.
그저 다른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처럼 주군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것도 무척 자비로운 주군이 말이다.
* * *
현성은 카이로를 시켜 차분하게 전자 제품을 풀었다.
전자 제품 보급이 어느 정도 완료된 순간.
현성은 그간 게스피트가 생산해 놓은 교류의 보석 1을 모조리 풀었다.
그와 동시에 리X지와 X우 같은 초기 온라인 게임을 풀었다.
당연히 정액제와 부분 유료화가 합쳐진 사악한 방식이었다.
“오! 신상품이 나왔군!”
1레벨 플레이어 무파우의 표정이 환해졌다.
무파우는 얼마 전에 나온 컴퓨터 게임이라는 것에 푹 빠져 있었다.
무려 일주일간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게임에 열중할 정도였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시들시들해졌다.
무파우의 실력이 컴퓨터 인공지능의 실력을 아득히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때 근거리 통신망이라는 게 나왔다.
또 멀티 게임이라는 게 나왔다.
그 후부터 무파우는 수하들과 함께 게임을 즐겼다.
혼자서 싱글 플레이를 하는 것보다는 멀티 플레이를 하는 것이 몇 배는 더 재미있었다.
하지만 수하들의 실력이 떨어져 슬슬 흥미가 떨어져 가던 참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카이로라는 판매자가 신상품을 출시했다.
당연히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어? 이게 뭐야?’
카이로라는 판매자가 올린 신상품들은 당연히 다 게임이라고만 생각했다.
한데 게임이 아닌 것이 하나 섞여 있었다.
그렇다고 컴퓨터나 노트북 같은 전자 기기도 아니었다.
‘교류의 보석?’
신상품은 바로 교류의 보석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아이템이었다.
‘이건 뭐야?’
게임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냥 넘어갈까 하다 멈칫했다.
‘그래도 뭔가 확인은 해 보자.’
전자 제품과 게임을 처음 보급한 카이로가 올린 신상품이다.
카이로가 올린 신상품의 정보는 무조건 확인하는 게 좋았다.
무파우가 교류의 보석이라는 아이템의 설명을 읽었다.
그리고 실망감으로 가득 차 있던 표정이 일순간 급변했다.
‘멀티 플레이를 가능하게 해 준다고?’
다른 1레벨 플레이어들과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설명에 무파우의 눈빛이 번뜩였다.
근거리 통신망을 이용해 같은 차원에 있는 수하들과 즐기는 게임도 재미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슬슬 질리던 참이었다.
‘일단 한번 사용해 보자.’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무파우는 바로 교류의 보석을 구입해 컴퓨터에 발랐다.
그 후 곧바로 새롭게 출시된 온라인 게임인 리X지를 실행시켰다.
순식간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무파우는 일주일간 침식을 잊고 리X지에 매진했다.
마치 자신이 처음 게임이라는 걸 접했을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침식을 잊고 온라인 게임에 열중한 1레벨 플레이어는 무파우만이 아니었다.
포인트에 여유가 있는 침략자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 전원이 온라인 게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 * *
‘엄청나네.’
현성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전자 제품을 시작으로 게임과 문화 상품을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에게 풀었다.
현성은 자신이 푼 물품이 엄청난 반향을 가지고 올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에게서 엄청난 포인트를 벌어들였다.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에게서도 엄청난 포인트를 벌어들이는 게 당연했다.
한데 이건 정도를 넘어섰다.
특히 교류의 보석 판매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아니,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이 팔렸다.
현재까지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에게 판매한 교류의 보석 1의 누적 총합을 합쳐도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이 한 달간 구매한 교류의 보석 1의 수량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리X지와 X우 같은 온라인 게임에 가입한 가입자 숫자도 벌써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이 아군 1레벨 플레이어의 숫자를 넘어섰다.
무료로 게임을 즐기고 접는 것도 아니었다.
대다수의 유저들이 무료 서비스 기간이 끝나면 유료로 넘어갔다.
‘이게 다 얼마야?’
이제 겨우 교류의 보석 1과 2D 온라인 게임 몇 개의 서비스를 시작했을 뿐이다.
그런데 현성의 예상치를 아득하게 뛰어넘는 엄청난 양의 포인트가 쏟아져 들어왔다.
‘이건 절대 혼자 하는 게 아니야.’
한 차원에서 여러 명이 게임을 즐기는 게 확실했다.
아군 1레벨 플레이어의 숫자보다 적군 1레벨 플레이어의 숫자가 월등히 많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확인해 보자.’
현성이 서버에서 접속 기록을 확인했다.
‘이런 미친놈들.’
현성은 경악했다.
기본이 보름이다.
중간은 한 달 정도.
긴 경우는 게임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로그아웃하지 않은 계정도 있었다.
현성이 교류의 보석에 남겨진 기록을 확인했다.
‘대단하네.’
현성의 예상이 맞았다.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은 혼자서 게임을 즐기지 않았다.
수십 대의 컴퓨터를 구입하고 수십 개의 교류의 보석을 구입했다.
그 후 함께 파티 사냥을 하며 전 맵을 꿰뚫고 다녔다.
길드를 만들어 PK를 하고 다니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진짜 호전적이네.’
현성이 침략자 차원으로 넘어가서 느꼈던 호전성이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에게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실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의 경우 게임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의 비율이 꽤 높았다.
그래서 영화, 드라마, 웹소설, 웹툰 등등의 상품 판매를 통해 게임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을 끌어들였다.
한데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대다수의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몰두했다.
영화, 드라마, 웹소설, 웹툰은 비주류였다.
오직 게임.
특히 서로 PK나 길드전이 가능한 온라인 게임에 집착했다.
게임 성향조차 호전적인 것이다.
‘이래서 전자 제품과 교류의 보석 판매량이 어마어마했구나.’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저런 식으로 대량의 컴퓨터와 교류의 보석을 이용해 단체로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한데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은 거의 대다수가 그런 식으로 게임을 했다.
“큭큭큭!”
현성의 입에서 만족감이 가득 담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기도 모르게 양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박이다.’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에게 판매했을 때보다 더 큰 대박이 터졌다.
현성은 온라인 게임에 정액제와 부분 유료화 요소를 섞었다.
쉽게 말해 게임을 하는 유저가 많으면 많을수록 현성이 벌어들일 수 있는 포인트는 많아진다.
그런데 이런 승부욕 강한 유저들이 대량으로 있다면?
‘가챠 시스템을 적용해서 꿀 빨기가 편해지지.’
플레이어 한 명이 좋은 아이템을 얻으면?
한 길드가 높은 등급의 아이템으로 무장을 하면?
아군 1레벨 플레이어들처럼 일부 상위 유저들만 가챠 시스템에 빠져들까?
‘그럴 리가 없지.’
승부욕이 강한 적군 1레벨 플레이어들은 미친 듯이 가챠를 돌릴 게 뻔했다.
상대보다 더 빠르게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
상대보다 더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더 기다릴 필요는 없겠어.’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유저풀을 확보했다.
그럼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현성이 가챠 시스템과 아이템 XX를 오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