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권. 침략자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 (171/225)
  • ┃침략자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

    2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현성은 빠르게 성장했다.

    침략자들의 차원은 기회의 땅이었다.

    끊임없이 영지전을 치르고 사냥을 하며 업적을 늘려 나갔다.

    그리고 그 결과.

    현성은 그라도 왕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영주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라도 왕국의 왕조차도 현성의 눈치를 봤다.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현성의 그늘에 들어온 대영주만 해도 셋이 넘었다.

    레벨이 오를 대로 오른 대영주나 왕은 빠르게 성장하고 싶어도 성장할 수가 없다.

    하나 1레벨 플레이어인 현성은 쉬지 않고 꾸준히 성장했다.

    그 결과 현성은 대영주들을 뛰어넘는 무력을 지닐 수가 있었다.

    보유하고 있는 모든 성장형 스킬들을 창조 등급으로 만들었고, 수많은 초월 등급 스킬들을 손에 넣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템 역시 모두 초월 등급으로 세팅을 맞췄다.

    거기다 성장한 것은 현성만이 아니었다.

    루시아와 파르티샤 역시 빠르게 성장했다.

    루시아의 경우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현성처럼 차원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준신화 등급 용병이 되는 것 역시 가능해 보였다.

    또 지구에 있는 플레이어들과 파르티샤 차원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평균 레벨 역시 꾸준히 상승했다.

    특히 현성이 직접 비약을 먹여 키운 척살대는 침략자 차원의 고레벨 플레이어들과 대등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 덕분에 지구의 방어가 더 탄탄해졌다.

    웬만한 침공은 현성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해결이 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침략자 차원에 흩뿌려 놓은 정보 조직은 더욱 탄탄해졌다.

    그라도 왕국 전역의 사정을 손바닥 안의 손금 들여다보듯 볼 수 있었다.

    타국에 대한 정보도 꾸준히 수집했다.

    그 결과.

    현성은 한 가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는 1레벨 플레이어가 없는 건가?’

    침략자들의 차원은 절대 강자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이가 없었다.

    왕도 그렇고 대영주도 그렇고 서로 비슷비슷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사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레벨은 오르면 오를수록 올리기가 힘들어진다.

    단순히 레벨을 올리기 위해 더 많은 몬스터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레벨에 맞는 수준의 몬스터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냥을 해서 레벨을 올리고 싶어도 사냥할 몬스터가 없으니 레벨이 오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체된 레벨이 계속해서 유지되다 보니, 각국의 왕과 대영주들의 수준이 엇비슷해진 것이다.

    ‘아니면 제대로 성장하기도 전에 죽은 건가?’

    그럴 확률도 있었다.

    현성은 지구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은 플레이어들의 인권을 보장해 주는 나라다.

    침략자들의 차원처럼 각성한 즉시 강제로 상위 레벨의 군주 플레이어에게 충성을 맹세하거나 부랑자가 될 필요가 없다.

    또 플레이어들을 동원한 국가 간의 전쟁도 없었다.

    ‘그런 나도 죽을 뻔한 위기를 여러 번 겪었어.’

    서우 길드의 부길드 마스터 정성우에게 죽을 뻔하기도 했고, 드레이크에게 잡아먹히기도 했으며, 타국의 플레이어들에게 암살당할 뻔하기도 했다.

    현성은 수많은 위기를 넘기고 겨우 이 자리에 섰다.

    한데 인권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의문인 침략자들의 차원이라면?

    ‘이미 죽었을 확률이 높아.’

    상위 플레이어들에게 죽었을 수도 있고, 몬스터 사냥이나 전쟁 중에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

    사실 현성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큰 걱정을 덜었어.’

    현성이 가장 걱정한 적이 바로 침략자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였다.

    침략자 차원의 문명을 보면 전자 제품이나 문화 산업 판매를 통해 급격히 힘을 키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나 아군 진영의 1레벨 플레이어들은 현성보다 강한 자들이 월등히 많았다.

    현성보다 월등히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힘을 키웠기 때문이다.

    적군 진영에도 그런 1레벨 플레이어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그렇기에 나름 걱정이 컸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분쟁의 씨앗도 잘 퍼져 나가는 것 같고.’

    현성이 침략자 차원에 흩뿌린 사상들은 무럭무럭 잘 성장하고 있었다.

    부랑자들의 비율이 늘어났다.

    특히 군주 직업의 플레이어가 없는 시즈라 왕국에서 공산주의가 크게 흥하고 있었다.

    현성으로서는 나쁠 게 없는 일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그라도 왕국을 완전히 장악하는 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야.’

    그라도 왕국을 주름잡고 있는 또 다른 대영주와의 대결.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승리하기만 하면…….

    그라도 왕국의 왕에게 충성 맹세를 받는 것도 가능할지 몰랐다.

    * * *

    “파이어 스톰!”

    “기가 썬더!”

    플레이어들이 공격 스킬을 난사하며 상대를 공격했다.

    수천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이 서로 충돌하는 전장.

    현성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다른 대영주들이 극도로 몸을 사리는 것과는 달랐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그간 더욱 강력해진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가 전장을 뒤덮었다.

    “으아아악!”

    “막아라!”

    “절대 대영주님에게 접근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적 대영주의 신하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현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현성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현성이 파죽지세로 적진을 뚫고 가장 강력한 마력이 느껴지는 장소로 뛰어들었다.

    후방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현성의 등 뒤는 루시아, 파르티샤, 타무그가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순순히 나오는 게 좋을 텐데?”

    현성의 말에 적 대영주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꼭 피를 봐야만 하겠느냐?”

    적 대영주의 말에 현성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먼저 싸움을 걸어온 건 네놈이다.”

    현성의 말에 적 대영주가 대도를 뽑아 들고 몸을 날렸다.

    꽈아앙! 꽈아앙!

    현성과 적 대영주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두 사람 사이의 힘의 격차는 명백했다.

    적 대영주는 현성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푸욱!

    현성의 손에 들린 용혈검이 대영주의 심장을 꿰뚫었다.

    “와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고 전쟁이 끝났다.

    ‘이겼다.’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번 싸움의 승리로 현성은 그라도 왕국 내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진 군주가 되었다.

    설사 그라도 왕국의 왕이라고 해도 현성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현성은 습관처럼 전리품으로 나온 창조 등급 스킬북을 챙겼다.

    ‘이제 타국을 침공할 수 있겠어.’

    그라도 왕국의 왕에게 충성 맹세를 받아 내 신하로 삼는다.

    그 후 타국을 침공한다.

    현성이 침략자 차원을 일통한다면?

    지구는 더 이상 침략자 차원의 플레이어들의 침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구가 완전히 안전해지는 것이다.

    물론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게 자명했다.

    어쩌면 현성이 패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야.’

    지구를 침략자들과 싸우는 전쟁터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럼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어차피 해야 할 전쟁이라면…….

    ‘침략자인 네놈들의 땅에서 하는 게 맞는 거야.’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신하들에게 전장의 정리를 명령했다.

    그 후 세력 현황을 통해 새롭게 휘하에 들어온 신하들의 명부를 확인했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번 전투에서 대부분 전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 저레벨 플레이어들은 꽤 많이 살아남아 있었다.

    현성이 세력 현황에 나와 있는 신하들의 명부를 쭉 내렸다.

    “어?”

    그러던 도중 현성의 눈에 이상한 점이 들어왔다.

    ‘레벨이 1이라고?’

    새롭게 현성의 휘하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저레벨이라고 해도 400레벨이 넘었다.

    대영주라고 무작정 휘하 신하를 늘릴 수는 없다.

    통솔력을 조절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신하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영주들은 가리고 가려 뽑은 이들만 휘하 신하로 받는다.

    갓 각성한 신규 플레이어들은?

    휘하에 있는 하급 영주에게 충성 맹세를 하게 시키면 그만이다.

    ‘그런데 휘하에 레벨이 1에 불과한 플레이어가 있다고?’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분명 1레벨에 불과한 플레이어의 스텟이 2000레벨대는 되어 보일 정도로 높았기 때문이다.

    ‘혹시?’

    현성의 얼굴이 밝아졌다.

    당장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현성이 군주 전용 스킬인 대군주의 부름을 사용했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인간과 고양이를 반쯤 섞어 놓은 것 같은 묘인족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몸은 단단히 결박되어 있었고 눈과 입도 가려져 있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구속복 수준이네.’

    그것도 단순한 구속복이 아니라 마력을 억제하는 옵션을 가지고 있는 신화 등급 아이템으로 보였다.

    현성은 일단 구속복을 풀어 줬다.

    자유를 찾은 묘인족 사내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명을 내려 주십시오.”

    그게 끝이었다.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라.”

    현성의 말에 묘인족 사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어?”

    묘인족 사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이의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놈이 전에 섬기던 군주는 이미 죽었다.”

    현성의 말에 묘인족 사내의 얼굴이 환해졌다.

    모시던 군주의 죽음에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했다.

    “강제로 그놈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이냐?”

    현성의 물음에 묘인족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1레벨에 불과한데 스텟은 2000레벨 수준이더구나?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이냐?”

    현성이 모르는 척 물었다.

    “그, 그것이…….”

    묘인족 사내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현성은 정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침략자 차원의 1레벨 플레이어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죽지 않았다.

    멀쩡히는 아니지만 분명히 살아 있었다.

    거기다 그간 해 온 행동으로 볼 때…….

    ‘아이템 자판기 신세였던 건가?’

    현성은 처음 고유 스킬 구매와 판매를 손에 넣었을 때 극도로 조심했다.

    자칫 자신의 고유 스킬이 알려졌다가는 아이템 자판기 신세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성은 여러 위기가 있었지만 힘이 없었던 시절을 잘 극복했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보유하고 있는 스텟의 총합이 무려 1만에 가까웠으니까 말이다.

    이 정도 수준의 플레이어는 침략자 차원을 기준으로 보아도 상당한 수준의 고레벨 플레이어였다.

    한데 어째서 구속복을 입은 상태로 발견되었을까?

    그때 조심스럽게 현성의 눈치를 살피던 묘인족 사내의 몸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휘하 신하 카이로가 등용을 철회했습니다.

    휘익!

    현성이 묘인족 사내가 사라졌던 공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커억!”

    그 순간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던 묘인족 사내가 현성의 손에 목이 잡힌 채로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슈욱!

    묘인족 사내가 현성을 향해 칼날같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파지지직!

    하지만 현성의 손에서부터 이어진 칠흑빛 뇌전에 적중당한 뒤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흑뢰신마공의 옵션 중 하나인 마비가 발동한 것이다.

    ‘일단 힘을 좀 빼놔야겠어.’

    현성이 대군주 하나를 죽이고 새롭게 손에 넣은 창조 등급 스킬 흡마신공을 사용했다.

    그 순간 묘인족 사내의 몸에 있던 체력과 마력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묘인족 사내의 발버둥도 점점 약해졌다.

    잠시 후.

    묘인족 사내의 몸이 축 늘어졌다.

    체력과 마력을 강제로 빼앗겨 버렸으니, 대항할 힘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묘인족 사내의 두 눈에는 아직도 독기가 가득했다.

    ‘일단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어.’

    굳이 이곳에서 실랑이를 할 필요는 없었다.

    현성은 휘하 신하들에게 뒷정리를 맡기고 묘인족 사내를 데리고 본성으로 이동했다.

    침략자 차원에서 현성이 본거지로 삼고 있는 본성은 철저한 경계와 더불어 마력 역장까지 펼쳐져 있었다.

    현성이 본성에 도착하자 휘하 신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했다.

    현성은 신하들에게 경계를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출구가 하나밖에 없는 지하로 향했다.

    묘인족 사내가 도주하는 걸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자, 이제 대화를 해 볼까?”

    현성의 말에 묘인족 사내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치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충 이해는 가네.’

    다시 아이템 자판기 신세가 되고 싶지 않기에 하는 행동일 것이다.

    1레벨에 2000레벨대의 스텟.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현성의 손에 목숨을 잃은 대영주도 그 비밀을 알아내고자 묘인족 사내를 심문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비밀을 알아냈겠지.’

    사내는 현성이 자유를 주자마자 명을 내려 달라고 말했다.

    그 말은 그 전에 모시던 대영주에게 굴복했었다는 뜻이었다.

    ‘어쩐지 휘하 신하들의 수준이 높다 했다.’

    눈앞의 묘인족 사내를 통해 스킬북과 비약을 수급해 빠르게 휘하 신하들의 힘을 키웠을 것이다.

    하지만 묘인족 사내를 가둬 놓고 아이템 자판기로 만든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1레벨 플레이어를 휘하에 데리고 있었으면서도 그 정도밖에 활용을 하지 못하다니?

    1레벨 플레이어가 가진 고유 스킬 판매와 구매는 상당히 큰 힘이다.

    하지만 1레벨 플레이어의 가장 큰 힘은 성장의 한계치가 없다는 점이다.

    업적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진정 어린 충성을 받았다면 침략자 차원을 통일할 수도 있었을 텐데.’

    묘인족 사내의 전 주군은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마력을 봉인하는 구속복을 입혀 놓았다.

    그 말은 묘인족 사내의 전 주군이 자신의 휘하에 있는 신하를 두려워했다는 뜻이었다.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

    현성은 각성한 지 몇 년 만에 지구 최고의 플레이어로 성장했다.

    눈앞의 묘인족 사내 역시 현성보다는 느리지만 상식을 초월한 속도로 성장해 나갔을 것이다.

    그렇기에 훗날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지금은 자신이 제어할 수 있지만, 더 성장한 뒤라면 자신의 제어를 벗어날 확률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충성 맹세를 철회해 기존에 올린 스텟과 스킬을 초기화시켜 버리면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구매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이 정도가 적당한 절충점이었던 모양이군.’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고 적당히 높은 수준의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상태.

    그 정도 수준에서 묘인족 사내의 성장을 막고 아이템 자판기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현성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휘하 신하가 자신을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용병 시스템을 이용해 도망칠 생각인가?”

    현성이 묘인족 사내에게 물었다.

    그 말을 들은 묘인족 사내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눈과 입을 가린 구속복.

    묘인족 사내를 데리고 있던 전 주군이 그런 이유는 단 하나.

    자기 멋대로 시스템 상점창을 조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으리라.

    “난 너를 핍박할 생각이 없다. 그러니 일단 이야기라도 해 보는 게 어떠냐?”

    현성의 말에 묘인족 사내가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이미 나를 핍박해 놓고 핍박할 생각이 없다고?”

    “어차피 용병 시스템을 통해 도주해 봤자 그곳에서 노예 같은 삶을 살 뿐이다. 그리고 보아하니 제대로 고용되기도 힘든 신세 같은데?”

    1레벨 플레이어들의 성격은 천차만별이다.

    하나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다.

    루시아의 경우만 봐도 약점을 잡혀 이용당하기만 했다.

    또 장비를 모두 잃은 상태에서는 제대로 용병 역할을 하기도 힘들었다.

    아마 현성이 루시아에게 정당한 대접을 해 주지 않았다면?

    루시아는 포인트를 모두 소모해 늙어 죽었을 것이다.

    그건 눈앞의 묘인족 사내 역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포인트도 얼마 없어 보이고 말이야.”

    인간이 아닌 묘인족이기에 외모로 정확한 나이를 추정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대충 짐작해 봐도 청년은 아니었다.

    아무리 좋게 봐도 인간으로 치면 40~50대 정도 중년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 말은 묘인족 사내에게 남은 포인트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아마 그간 고생깨나 했겠지.’

    전에 모시던 군주에게 대놓고 적개심을 보였다.

    그렇다면 아마 그 전에도 수많은 반항을 했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반항 방법은 용병 고용 시스템을 통한 다른 차원으로의 탈출이었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결국 묘인족 사내는 구속복을 입고 갇혀 있는 신세가 되었다.

    용병 시스템을 통해 이동한 다른 차원에서도 제대로 중용받지 못한 것이다.

    ‘거기다 반골 기질도 대단한 것 같고.’

    현성에 대한 충성 맹세를 철회하고 도망치려고도 했다.

    묘인족 사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아마 자유였을 것이다.

    “어,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는 거지? 그놈에게서 들은 건가? 그럴 리가? 그놈이 내 이야기를 했을 리가 없는데?”

    묘인족 사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성이 포인트와 용병 시스템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이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표정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착취하는 대상이 달라졌을 뿐 자신의 처지는 달라질 게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난 무조건 원하는 걸 토해 낼 수 있는 게 아니야. 포인트를 벌어야 아이템을 살 수 있다. 지금은 포인트가 없다. 네가 원하는 아이템을 얻고 싶다면, 그만큼 값어치가 있는 물건을 내게 주거나 내가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묘인족 사내가 속사포처럼 말을 토해 냈다.

    당장 아이템을 내놓으라고 자신을 겁박할까 봐 두려워하는 듯했다.

    “네 사정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리고 난 널 도와줄 수도 있다.”

    “뭐?”

    묘인족 사내의 표정이 어리둥절하게 바뀌었다.

    솔직히 말해 당장 원하는 아이템을 내놓으라며 고문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황급하게 자신의 사정을 말한 것이다.

    한데 상대가 자신의 사정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줄 수 있단다.

    “네가 많은 포인트를 벌 수 있게 해 주겠다. 물론 그렇게 벌어들인 포인트의 대부분을 나에게 상납해야겠지만, 적당한 수준의 포인트를 수수료로 지급해 줄 의향이 있다.”

    “그게 무슨?”

    묘인족 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현성이 손을 내밀어 묘인족 사내의 손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현성이 보유하고 있던 포인트의 일부가 묘인족 사내에게 넘어갔다.

    묘인족 사내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1레벨 플레이어?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이 차원에 있는 1레벨 플레이어는 나 하나뿐이어야 할 텐데?”

    묘인족 사내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제야 다른 가능성이 생각난 것이다.

    “너, 설마 다른 차원에서 온 거냐?”

    묘인족 사내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1레벨 플레이어들처럼 네놈을 악랄하게 착취할 생각은 없다. 그러니 순순히 협조하는 게 좋을 거다.”

    현성의 말에 묘인족 사내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협조할 수밖에 없을 거다.’

    묘인족 사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현성도 게스피트의 도움이 없었다면 굴레가 뭔지, 협약과 규율이 뭔지 몰랐을 것이다.

    ‘용병으로 불러 주는 이가 없는 걸 보면, 그런 정보를 알려 줄 정도로 친분을 쌓은 다른 1레벨 플레이어도 없겠지.’

    아마 묘인족 사내는 현성이 지구에서 제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과 공포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잠시 후.

    현성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묘인족 사내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순순히 협조하겠다.”

    대답은 순순히 했다.

    눈빛에도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현성은 그런 겉모습을 믿을 생각이 없었다.

    현성이 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무언가를 끄적끄적 적었다.

    “여기에 사인해라.”

    현성이 묘인족 사내 앞에 방금 전까지 끄적이던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건 평범한 서류가 아니었다.

    과거 개똥이와 말똥이에게 사용했던 영혼의 계약서였다.

    그것도 개똥이와 말똥이가 서명했던 영웅 등급 영혼의 계약서가 아니라 초월 등급 영혼의 계약서였다.

    아이템이나 스킬 들이 담고 있는 힘에는 등급에 따른 한계가 있다.

    현성이 과거 익힌 영웅 등급 패시브 버프 스킬들이 역시 스텟 증폭치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었다.

    현성의 스텟이 너무 높아 영웅 등급 스킬의 한계치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건 영혼의 계약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마 영웅 등급 영혼의 계약서를 쓴다면, 눈앞의 묘인족 사내를 완벽하게 제압하기 힘들 것이다.

    훗날을 생각한다면 초월 등급이 제격이었다.

    묘인족 사내가 영혼의 계약서의 계약 내용을 읽어 나갔다.

    “이런 미친!”

    묘인족 사내의 입에서 당장 욕설이 터져 나왔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 묘인족 사내는 현성에게 완벽하게 종속되어 버리니까 말이다.

    영혼의 계약서는 군주에게 충성 맹세를 하는 것보다 더 페널티가 컸다.

    나중에 힘을 찾아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도 없었고, 그간 올린 스텟과 스킬을 포기하고 충성 맹세를 철회할 수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왜, 못 하겠나?”

    “당연히 못 하지! 이건 완전 노예 계약이잖아!”

    “그게 뭐가 노예 계약이라는 거지? 나름 공정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성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네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고 쓰여 있잖아!”

    묘인족 사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계약은 나름 정당했다.

    묘인족 사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아이템을 시스템 상점에 팔 때 얻는 포인트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현성이 포인트를 받을 때는 자신이 건네준 물건을 판매해서 포인트를 벌어들였을 때였다.

    묘인족 사내가 받는 수수료는 고작 1%.

    하지만 묘인족 사내가 손해 볼 일은 없었다.

    오히려 1%나마 추가로 포인트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어차피 판매창은 남아돌았으니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단 하나의 문장.

    현성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 정도야 당연하지 않나?”

    “뭐가 당연하다는 거지? 네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말은 무조건 네 말에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잖아!”

    “그 정도면 나름 자율권을 준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

    묘인족 사내가 눈을 치켜떴다.

    그러더니 속사포처럼 불만을 토해 냈다.

    “네가 내가 벌어들인 포인트를 받았으면 한다고 말한다면? 난 네 뜻에 반하지 않기 위해 너에게 포인트를 줄 수밖에 없어! 사실상 노예 계약이라고!”

    “그럼 예외 조항을 넣도록 하지.”

    현성이 영혼의 계약서에 포인트, 아이템, 묘인족 사내의 목숨이 위험한 임무 등등의 예외 사항을 적어 넣었다.

    “이 정도면 만족하겠지?”

    현성의 말에 묘인족 사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수는 없지. 이동의 자유를 비롯해서…….”

    묘인족 사내가 줄줄이 자신의 요구 사항을 이야기했다.

    그 요구 조건을 모두 넣는다면?

    현성에게 적대하지 못한다는 조건을 넣고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 달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예 영혼의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할 판인 것이다.

    “야.”

    현성의 부름에 주절주절 떠들던 묘인족 사내가 말을 멈췄다.

    “너는 내가 호구로 보이냐?”

    은은한 살기가 흐르는 현성의 말에 묘인족 사내의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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