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권. 개입 (162/225)

┃개입

‘빠르군.’

세키라 대영주와 적대 관계에 있던 마로저니 대영주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전군을 동원했다.

‘당분간 나한테 신경 쓸 여유는 없겠지.’

자신과 대등한 힘과 세력을 지닌 대영주와의 전면전이 벌어졌다.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세키라 대영주는 현성에게 손을 쓸 여력이 없을 것이다.

‘시간을 벌었어.’

하지만 현성의 마음은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강해져야 해.’

자력 결계 덕분에 수많은 위기를 넘겼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자력 결계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력 결계는 분명히 강력한 무기지만 쿨타임이 꽤 길었다.

‘내가 충분히 조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성은 자력 결계의 도움 없이 타무그와 그 수하들을 제압했다.

또 뱀 인간도 쓰러트렸고 1만에 달하는 세키라 대영주의 대병도 무너트렸다.

그렇기에 자신감이 있었다.

그간 키워 온 힘으로 자력 결계의 도움 없이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믿었다.

자력 결계는 그저 최후의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자력 결계를 사용할 때를 현성 스스로의 힘으로 조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만이었다.

‘대영주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강해.’

만약 대영주가 부대를 여럿으로 나눠서 현성을 공격한다면?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대군주의 축복을 사용한다면?

자력 결계를 이용해 한 번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 차를 두고 두 번 세 번 연속적으로 공격이 들어온다면?

자력 결계는 무력화되어 버린다.

자력 결계를 사용할 수 있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결국 해결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현성이 대영주들을 넘어설 정도로 강해지는 것.

다행히 현성에게는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아주 많이 남아 있었다.

* * *

-크아아아앙!

초월 등급 몬스터 한 마리가 커다란 포효를 터트리며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현성은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하며 신혈검을 휘둘렀다.

좌악!

붉은 선혈이 튀어 오르며 초월 등급 몬스터가 성난 눈빛으로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아아아악!

초월 등급 몬스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유형화되어 강력한 독기로 화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은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이용해 맞섰다.

꽈앙! 꽈앙!

칠흑빛 뇌전과 화염 그리고 초록빛 독기가 치열하게 충돌했다.

뇌전과 화염은 독기를 불태우려고 했다.

독기는 뇌전과 화염마저 녹여 버리려고 했다.

치열한 접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결국 승리한 것은 현성이었다.

푸욱!

신혈검이 초월 등급 몬스터의 머리뼈를 꿰뚫고 뇌를 관통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초월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초월 등급 네임드 몬스터 크룰킹 네지라를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홀로 크룰킹 네지라를 쓰러트린 자 - 초월 등급]

“휴우!”

사냥을 무사히 끝마친 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아아아악!

몬스터의 몸에서 잔존 마력이 뿜어져 나오며 아이템으로 화했다.

‘그냥 사체가 남는 게 더 좋은데.’

사체가 남으면 탐식의 서를 이용해 추가로 스텟을 늘릴 수가 있다.

하지만 아이템으로 화하면 스텟을 늘릴 수가 없었다.

문제는 사체가 남는 경우보다 아이템으로 화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었다.

‘어쩔 수 없지. 망자의 부활.’

현성이 망자의 부활 스킬을 사용해 방금 사냥한 초월 등급 몬스터를 언데드 몬스터로 부활시켰다.

-액티브 스킬 망자의 부활 – 준신화 등급보다 월등히 격이 높은 개체의 영혼입니다. 언데드 몬스터의 온전한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온전한 통제를 원하신다면, 격에 맞는 스킬을 습득하셔야 합니다.

역시나 온전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초월 등급 레비아탄처럼 언제 써먹을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말이다.

휘하 신하들이 보내 준 체력과 마력이 있기에 몸은 지치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적지 않게 피로했다.

하지만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현성이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스마트폰에는 현성의 영지에 있는 몬스터들의 동향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슈욱!

현성이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빠르게 이동했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한가롭게 잠을 자고 있는 네임드 몬스터의 모습이 현성의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용종이었다.

스르릉.

현성이 이번에는 신혈검 대신 용혈검을 뽑아 들었다.

타악!

그리고 곧바로 네임드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현성의 승리였다.

현성은 다시금 스마트폰을 보고 이동을 계속했다.

그날 현성은 총 50이 넘는 스텟을 늘릴 수 있었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러는 동안 현성은 꾸준히 사냥에 열중했다.

네임드 몬스터를 최우선적으로 사냥해 스텟을 늘렸다.

네임드 몬스터가 탐지되지 않을 때는 다수의 몬스터를 사냥해 업적을 통해 스텟을 늘렸다.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 현성은 빠르게 스텟을 늘릴 수 있었다.

‘지구와는 비교하기도 힘들 정도로 사냥 속도가 빨라.’

차원 게이트를 통해 지구로 넘어온 몬스터들의 숫자는 침략자 차원에 있는 몬스터들의 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말 그대로 사방에 몬스터가 널려 있었다.

현성은 세키라 대영주의 축복을 받은 플레이어를 상대한 이후 대영주들에 대한 도발을 멈췄다.

그리고 사냥에 열중하며 지속적으로 스텟을 늘렸다.

현성 휘하에 있던 플레이어들 역시 사냥에 열중하며 레벨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현성만큼 빠르게 강해질 수는 없었다.

레벨은 오르면 오를수록 올리기가 어렵다.

또 격에 맞는 몬스터를 사냥하지 않으면 20레벨의 법칙에 따라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성장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현성과 휘하 신하들의 차이는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현성의 휘하에는 두 명의 1레벨 플레이어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루시아와 파르티샤는 현성과 함께 침략자 차원에 온 이후 전력을 다해 사냥에 열중했다.

그 덕분에 현성과 루시아 그리고 파르티샤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탐식의 서를 보유하고 있는 현성보다는 느렸지만, 그래도 본래의 차원에서 사냥을 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현성은 전보다 더 강해졌다.

하지만 아직 만족할 수가 없었다.

대영주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영지전이 그 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생각보다 아크사 대영주가 너무 강해.’

처음에는 치열했던 접전이 지금은 아크사 대영주의 일방적인 우세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크사 대영주가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영지전이 끝나면 분명히 나를 노릴 텐데.’

잃어버린 영지를 수복하기 위해서라도 분명 그렇게 할 것이다.

대영주가 가진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때라면 승자인 아크사 대영주를 치기 위해 병력을 모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자력 결계 하나만 믿고 모험을 할 수는 없지.’

현성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전쟁이 좀 더 오래 진행되어야 했다.

‘역시 직접 움직이는 수밖에 없는 건가?’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 사이의 힘의 균형이 어그러졌다.

시간을 더 벌기 위해서는 아크사 대영주의 세력을 깎거나 코디기 대영주의 세력을 키워 줘야 했다.

‘코디기 대영주의 세력을 키워 줄 방법은 없고.’

남은 해결책은 아크사 대영주의 세력을 깎는 것뿐이었다.

현성이 고심에 고심을 이어 갔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아크사 대영주의 친다.’

꽤 위험 부담이 큰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당장의 안전을 위해 가만히 있다가는 훗날 큰 화를 입을 게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현성이 루시아와 파르티샤 그리고 타무그를 불러들였다.

이번 일을 위해서는 다수의 병력보다 소수의 정예병이 필요했다.

“아크사 대영주를 친다.”

현성의 말에 루시아와 파르티샤 그리고 타무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물론 정면 대결을 할 생각은 없다. 또한 우리의 정체를 드러낼 생각도 없다.”

“하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타무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세키라 대영주의 이름을 빌릴 생각이다.”

“세키라 대영주 말씀이십니까?”

타무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우리를 치러 왔던 이들의 모습을 빌릴 생각이다.”

현성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세키라 대영주의 직속 병력으로 위장하실 생각이시군요?”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쉽게 속아 넘어갈까요?”

침략자들의 차원은 정보 전달이 느리다.

세키라 대영주와 현성이 충돌한 일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세키라 대영주의 입장에서는 굳이 아군의 전력이 줄었다는 사실을 떠벌릴 필요가 없으니 입을 다물었다.

현성은 그 전부터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로 향하는 모든 정보를 끊고 있었다.

“이걸 이용한다면 가능할 거야.”

우르르!

현성이 아공간을 열어 아이템들을 쏟아 냈다.

침략자들의 차원에서는 이름 있는 플레이어들이 서로를 알아볼 방법이 마땅히 없다.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문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풍문으로 외모를 짐작할 뿐이다.

설사 외모를 알고 있다고 해도 쉽게 믿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아이템을 이용해 얼마든지 본인의 외모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침략자 차원의 플레이어들이 다른 이름 있는 플레이어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단 셋.

스텟과 스킬 그리고 아이템이다.

외형을 아무리 바꿔도 본래 가지고 있는 스텟을 단기간에 올릴 수는 없다.

스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름 있는 플레이어들의 경우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 등급 스킬이나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설사 유일 등급 스킬이나 고유 스킬이 아니라고 해도 쉽게 구하기 힘든 신화 등급 스킬을 사용한다.

아이템의 경우도 이름 있는 플레이어들의 경우 유일 등급 아이템이나 신화 등급 아이템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성에게는 세키라 대영주의 직속 병력을 쓰러트리고 난 뒤 습득한 수많은 전리품들이 있었다.

‘스킬도 있고 아이템도 있어.’

이를 이용하면 현성과 수하들의 모습을 세키라 대영주의 직속 병력처럼 꾸미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번 일에는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넷과 타무그의 직속 병력만 동원한다.”

다른 이들은 위장을 시키고 싶어도 스텟이 달려 위장을 시킬 수가 없었다.

부족한 스킬과 아이템은 현성이 제공해 줄 수 있어도 부족한 스텟은 어찌할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주군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타무그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주군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군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루시아와 파르티샤도 뒤를 이어 고개를 숙였다.

위장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현성이 하사하는 스킬북과 아이템은 진짜다.

플레이어가 가장 손쉽게 강해지는 방법은 좋은 스킬북과 아이템을 손에 넣는 것이다.

현성이 그 두 가지를 하사했으니 당연히 고마워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타무그의 심경 변화가 컸다.

루시아와 파르티샤는 오랜 시간 현성을 모셨다.

또 현성과 같은 편에 속한 아군이다.

하지만 타무그와 그 수하들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 수도 있다.

타무그는 그런 상황이 오면 충성 맹세를 철회해서라도 현성과의 관계를 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성은 타무그와 그 수하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전에 했던 약속을 이행하려는 태도를 보였고, 전투에 동원한 후에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었다.

한데 이번에 또다시 엄청난 보상을 주었다.

이번 작전에는 타무그의 수하들이 총동원된다.

당연히 여기 있는 스킬북과 아이템 중 상당수가 자신의 수하들에게 돌아갈 터였다.

이렇게 큰 투자를 한다는 건 주군인 현성이 타무그 자신과 휘하 수하들을 중히 쓰겠다는 약속이나 다름이 없었다.

‘주군께서 먼저 약속을 깨지 않으신다면, 평생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타무그가 마음속으로 진심 어린 충성을 맹세했다.

* * *

현성은 아이템을 분배했다.

그 후 수하들이 새로운 스킬과 아이템에 적응할 시간을 주었다.

적응은 금방 끝났다.

현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변신 아이템을 이용해 수하들의 외모 역시 세키라 대영주의 직속 병력과 비슷하게 꾸몄다.

현성과 루시아 그리고 파르티샤는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었고, 타무그와 그 수하들은 3미터가 넘는 키와 푸른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변신 아이템까지 사용한 덕에 현성과 그 수하들은 사용하는 스킬과 아이템은 물론 겉모습까지 완벽하게 바꿀 수 있었다.

‘그럼 가 볼까.’

현성이 긴장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의 목표는 아크사 대영주 휘하에 있는 하급 영지 따위가 아니다.

아크사 대영주가 직접 다스리는 직영지였다.

‘경계가 철저하네.’

전쟁 중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크사 대영주의 직영지는 침입자를 상대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전처럼 할 수는 없어.’

하급 영지는 하급 영주 하나만 잡으면 큰 전투 없이 상황을 종결지을 수 있다.

대영주의 직영지 역시 큰 전투 없이 상황을 종결하기 위해서는 대영주의 목을 베어야 했다.

하지만 그건 현재 전력으론 불가능하다.

결국 남은 것은 피 튀기는 혈전이었다.

현성의 뒤로 잔뜩 긴장한 수하들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 대기한다.

현성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무턱대고 아크사 대영주의 직영지를 공격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하면 괜히 현성과 수하들만 위험해진다.

현성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위이이잉.

그때 현성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아크사 대영주의 병력과 코디기 대영주의 병력이 충돌했습니다.

짧은 문자를 본 현성이 입가에 미소를 피워 올리며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그런 현성의 뒤를 따라 백여 명의 결사대 역시 몸을 움직였다.

경계를 철저하게 하고 있기는 했지만 아크사 대영주의 병사들은 그리 긴장한 표정이 아니었다.

전세가 아군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들이 근무하는 곳이 전장과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 침입자가 있을 리가 없는 상황에서 이 정도로 철저하게 경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들이 정예 중에 정예라는 증표나 마찬가지였다.

푸욱! 털썩!

외벽 위에서 경계를 서던 병사 하나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경계병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어 갔다.

“침입자다!”

경계병들의 지휘소에서 나온 지휘관으로 보이는 플레이어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뿌우우우웅!

그와 동시에 경계를 알리는 뿔피리가 울려 퍼졌다.

‘빠르군.’

경계병들을 암살하던 현성이 차원의 이면 스킬을 사용한 뒤 지휘관에게 접근해 신혈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던 지휘관이 목숨을 잃었다.

‘군주였군.’

지휘관은 군주 플레이어였다.

그렇기에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경계병들의 죽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새롭게 현성의 휘하에 들어온 신하들이 줄줄이 충성 맹세를 철회했다.

‘레벨이 꽤 높다 이거지. 정신 무장도 제대로 되어 있고.’

확실히 대영주의 직영지에 있는 병력은 하급 영지의 병력과 질이 달랐다.

-제대로 날뛸 시간이다.

현성이 군주의 외침으로 신하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꽈아아아앙!

그와 함께 은신 스킬을 사용하며 조용히 움직이던 수하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강대한 마력이 피어오르며 수하들이 총공세를 펼쳤다.

숫자는 고작해야 1백 명.

하지만 원래부터 강자들이었다.

또한 현성이 하사한 스킬북과 아이템을 손에 넣으며 더욱 강해졌다.

물론 기존의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내가 얼마든지 채워 줄 수 있지.’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현성의 수하들은 체력과 마력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질주했고 있는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스킬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힘의 분배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전심전력을 다했다.

이대로 계속 움직였다가는 아무리 정예라고 해도 1시간도 안 되어 체력과 마력이 모두 고갈될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승전 대군주의 자비.’

현성이 직업 전용 스킬을 통해 신하들이 소모하는 체력과 마력을 고스란히 채워 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타무그의 수하들의 경우 약간 번거롭기는 했다.

현성이 타무그의 체력과 마력을 채워 주면, 타무그가 다시금 휘하 수하들에게 체력과 마력을 배분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번거로울 뿐 문제가 될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도 슬슬 움직여 볼까?’

현성이 마력을 끌어모았다.

쩌저저저적!

하늘에서 차가운 냉기가 피어올랐다.

차가운 냉기들은 날카로운 얼음 창으로 변했다.

휘익!

현성이 손을 휘두르자 하늘에 피어오른 얼음 창들이 일제히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퍼퍼퍼퍽!

건물이 산산조각 났다.

전투를 준비하던 플레이어들의 몸이 얼음 창에 꿰뚫려 차가운 시체로 변했다.

현성은 계속해서 마력을 공급하며 스킬을 유지했다.

그와 동시에 현성이 한 자루의 창을 뽑아 들었다.

현성의 주력 무기는 검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창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현성이 뇌전과 화염 대신 냉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타악!

현성이 달려 나갔다.

놀란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무기를 뽑아 들려는 자도 있었고 스킬을 시전하려는 자도 있었다.

쩌저저저적!

현성의 몸이 하얀 안개로 뒤덮였다.

“적이다!”

“죽여라!”

적 플레이어들이 현성을 향해 달려든다.

“컥!”

“모, 몸이!”

하지만 그들의 무기는 현성의 몸에 닿지도 못했다.

현성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그들의 몸이 차가운 냉기에 휩싸이며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현성의 몸을 뒤덮고 있는 하얀 안개는 그냥 안개가 아니었다.

강력한 마력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냉기의 갑옷이자 무기였다.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쓸 만하네.’

현성이 냉기 대신 뇌전과 화염을 사용했다면?

저들은 현성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아쉽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현성의 장기인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가 봉인되었다.

이에 현성이 꺼내 든 무기는 바로 냉기였다.

전부터 냉기 계열 스킬들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과거 세키라 대영주의 축복을 받은 신하도 냉기 계열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현성은 그간 습득한 스킬북들 중 냉기 계열 스킬북을 모두 익혔다.

그렇게 익힌 스킬들은 흑뢰신의 숨결이나 화염의 서보다 격이 떨어졌다.

하나 그것을 운용하고 있는 주체가 바로 현성이었다.

휘익!

쩌저저저적!

창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차가운 냉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냉기에 직격당한 적은 그대로 몸 전체가 얼어붙었다.

타악!

현성이 달려 나가며 생긴 냉기의 폭풍에 얼음 조각으로 변한 시체들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도대체 저놈은 뭐야?”

“어, 어디서 저런 놈이?”

대영주의 직속 병력이 몸을 떨었다.

정예 중에 정예인 그들이 싸우기를 주저하고 물러나고 있었다.

현성은 자신의 목적에 충실했다.

아크사 대영주의 휘하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무참히 쓸어버리며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여긴가?’

그 결과 현성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휘익!

창을 휘둘렀다.

꽈아앙!

굳게 봉인되어 있던 문이 산산조각 났다.

‘많네.’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마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현성은 아공간을 열어 마석을 모두 쓸어 담았다.

그 후 다른 창고로 이동했다.

“막아라!”

“목숨을 걸고 지켜라!”

적 플레이어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현성을 막을 수는 없었다.

휘익!

현성이 창을 휘둘렀다.

쩌저저저적!

현성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플레이어들의 몸이 얼음덩어리로 변했다.

꽈아아아아앙!

차가운 냉기의 칼날이 그들이 막고 있던 또 다른 창고의 봉인을 파괴했다.

‘빙고.’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창고 안에는 스킬북들이 작은 동산처럼 쌓여 있었다.

사아아아악!

현성이 아공간을 열어 스킬북들을 쓸어담았다.

위이이잉!

그때 현성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현성이 재빨리 내용을 확인했다.

아크사 대영주가 군사를 물리고 있습니다. 코디기 대영주는 반격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문자를 확인한 현성이 곧바로 군주의 외침을 사용했다.

-전원 철수한다.

현성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차별하게 아크사 대영주의 직영지를 파괴하고 약탈하던 수하들이 일제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적들은 갑작스러운 아군의 철수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싫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감당할 수 없는 적들이 스스로 물러가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나중에 다시 오마.’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마 적들이 현성이 속으로 하는 말을 들었다면, 지금처럼 좋아하지 못했을 것이다.

* * *

“놓쳐?”

살기 어린 아크사 대영주의 물음에 휘하 신하가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하옵니다.”

꽝!

아크사 대영주가 분노한 눈빛으로 단상을 내리찍었다.

“본성에는 머저리들만 있다더냐? 어찌! 놓쳤다는 말이냐?”

“송구하옵니다, 주군.”

신하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아크사 대영주의 분노가 풀릴 리 만무했다.

아크사 대영주는 쉽게 분을 삭이지 못하고 식식거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정도 화를 가라앉힌 아크사 대영주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방금 전 직영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단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하라.”

아크사 대영주의 말에 보고를 올리던 신하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아크사 대영주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코디기 놈들의 짓은 아니군.”

외형과 주력으로 사용하는 스킬이 코디기 대영주의 수하들과는 달랐다.

결정적으로 코디기 대영주에게는 저 정도 전력을 후방으로 돌릴 만한 여력이 없었다.

“놈들이 서쪽 직영지 끝에서 난동을 피웠다고 했으렷다?”

“예, 주군.”

직영지 서쪽은 현재 코디기 대영주와의 전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였다.

적들이 작정을 하고 아군의 빈틈을 노린 것이다.

거기다 적들은 아군이 전투를 시작하자마자 습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군이 전투를 끝내자마자 도주했다.

‘첩자가 있는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휘하에 있는 신하들이 군주인 자신에게 등을 돌렸을 리가 없었다.

‘하면 코디기 놈들이 정보를 제공했다는 뜻인데…….’

정보를 제공해 주려 해도 그에 호응할 세력이 필요했다.

현재 그런 짓을 할 만한 세력은…….

“큭큭큭, 역시 세키라 년인가?”

대영주인 자신에게 시비를 걸 수 있는 존재는 같은 대영주가 유일했다.

거기다 세키라 대영주라면 자신을 공격할 이유가 차고 넘쳤다.

‘고작 1백여 명의 병력으로 나를 농락해!’

절로 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병력을 돌려 세키라 대영주를 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대영주인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자신이 병력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세키라 대영주도 이런 대범한 짓을 한 것이리라.

‘당장은 참아 주마.’

하지만 전쟁이 끝나는 그날.

세키라 대영주에게 이번 일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줄 생각이었다.

아마 세키라 대영주가 이 사실을 안다면,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세키라 대영주가 계획했던 대로 아크사 대영주의 하급 영지를 모두 점령했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을 것이다.

한데 반대로 현성에게 자신이 다스리던 하급 영지를 대거 빼앗기고 직속 병력까지 잃었다.

그 결과 세키라 대영주는 마로저니 대영주의 총공세를 받았다.

다른 대영주와 전쟁을 치르는 상황이다.

당연히 이런 헛수작을 부릴 여유가 없었다.

한데 현성으로 인해 괜한 누명을 썼다.

그리고 엉뚱한 적을 만들어 버렸다.

세키라 대영주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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