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권. 강림 (161/225)
  • ┃강림

    “크윽!”

    트베레오의 전신이 피투성이로 물들었다.

    아군은 지리멸렬했다.

    만나기만 하면 본때를 보여 주겠다던 자신감은 이미 산산조각 난 지 오래였다.

    ‘내가 큰 착각을 했구나.’

    부랑자 출신이라기에 당연히 자신보다 약할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이 정도라면 대군주 휘하 신하들 중에서도 수위권에 뽑힐 정도의 실력자였다.

    아마 세키라 대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면, 크게 중임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랑자로 있었다는 것은 더 높은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큭큭큭, 내가 왕위를 노리는 반역자를 몰라봤구나.”

    트베레오가 현성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현성은 갑자기 헛소리를 하는 적장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나 쉽지 않을 것이다! 네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대영주님들의 벽을 넘을 수는…….”

    서걱!

    현성이 가볍게 검을 휘둘러 처절하게 저항하던 적장의 목을 날려 버렸다.

    ‘이제 끝난 건가?’

    적장의 목을 날려 버린 현성이 전장을 바라보았다.

    적장의 휘하에 있던 이들이 현성의 휘하로 넘어왔다.

    그 결과 적들의 수는 이제 겨우 1백 명도 채 남지 않았다.

    아군의 피해도 상당히 컸다.

    하지만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타무그의 수하 1백여 명은 모두 멀쩡했다.

    대승이었다.

    ‘확실히 강해졌어.’

    자력 결계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완벽하게 대승을 거둘 수가 있었다.

    타악!

    현성이 1백여 명도 남지 않은 적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군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현성이 직접 나서야 했다.

    * * *

    “하!”

    세키라 대영주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급 영지의 영주들이 줄줄이 죽어 나갔다.

    그러더니 파병군의 총사령관이었던 트베레오까지 전사했다.

    사실상 대패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파병군에 속해 있던 세키라 대영주의 휘하 수하들이 빠르게 목숨을 잃어 갔다.

    “버러지 같은 것이 감히…….”

    세키라 대영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쉽게 생각했던 부랑자 출신 군주 한 놈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마력 역장이 펼쳐져 있는지 통신 스킬을 사용하라고 보낸 신하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휘하 신하 세부키가 사망했습니다.

    아니, 방금 죽어 버렸다.

    세키라 대영주는 이대로 이번 일을 넘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병력을 파견할 여력이 없었다.

    설사 여력이 있다고 해도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럼 남은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폭식 대군주의 축복.”

    세키라 대영주가 살아남은 휘하 신하 중 한 명에게 축복을 걸었다.

    -마음껏 날뛰어라. 그리고 나에게 대항한 자를 사로잡아라.

    군주의 외침으로 명령을 내린 세키라 대영주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부랑자 군주 놈을 휘하에 들여 세력을 흡수하면, 이번에 입은 손실을 만회할 수 있겠지.’

    세키라 대영주의 머릿속에 자신의 축복을 받은 신하가 패배할 가능성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 * *

    전투는 종결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살아남은 적 플레이어는 고작 30명 남짓.

    상태도 그리 좋지 못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맹공에 빠른 속도로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30명이 20명이 되고 20명이 열 명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끝이네.’

    현성이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로 둘러싸인 신혈검을 휘둘렀다.

    이번 공격으로 남아 있는 적들의 숨통을 끊어 버릴 생각이었다.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칠흑빛 뇌전과 화염이 화려하게 비산했다.

    “어?”

    현성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적들은 분명 전멸했어야 했다.

    한데 신안 스킬에 살아 있는 적의 존재가 감지되었다.

    문제는 단순히 살아남기만 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게 무슨?’

    살아남은 적의 마력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부풀어 올랐다.

    콰아아아앙!

    어마어마한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현성의 몸이 한 걸음 뒤로 밀려 났다.

    그나마 한 걸음 밀린 건 사정이 나았다.

    “으아악!”

    “커억!”

    현성의 휘하에 있는 침략자 플레이어들 중 나름 고레벨이라고 가려 뽑은 이들은 아예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마력 폭풍에 휘말려 나뒹굴었으니까 말이다.

    저벅저벅.

    마력 폭풍으로 엉망이 된 대지에 플레이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어떻게 된 거지?’

    최후까지 살아남은 만큼 분명 실력이 있는 플레이어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지는 않았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적들이 전멸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력의 기질이 달라.’

    단순히 마력의 양과 질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마력의 성향 자체가 달라졌다.

    “망할!”

    현성은 그제야 승전 대군주의 축복을 떠올렸다.

    아마 이 스킬이 자신에게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영주 정도라면 승전 대군주의 축복과 비슷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게 당연했다.

    -자력 결계를 준비해라.

    현성이 후방에 대기 중이었던 휘하 신하에게 자력 결계의 사용을 명령했다.

    아까 상대했던 1천 명의 플레이어들보다 눈앞에 있는 한 명의 플레이어가 더 위험했다.

    현재 현성의 눈앞에 있는 플레이어는 세키라 대영주 본인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일단 시간을 벌어야 해.’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이 전력을 다해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사용했다.

    쩌저저적!

    그 순간 적의 몸이 차가운 냉기로 휩싸였다.

    아까도 저 플레이어는 냉기 계열 스킬을 주력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현성이 사용한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에 밀려 별다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꽈아아아아앙!

    현성이 사용한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가 냉기의 벽 앞에 가로막혔다.

    휘이이이잉!

    그와 함께 전장 지역 전역을 뒤덮는 블리자드가 휘몰아쳤다.

    “크아악!”

    “모, 몸이!”

    현성 휘하의 플레이어들의 몸이 차가운 얼음 조각으로 변해 갔다.

    -퇴각해라!

    현성은 일단 휘하 플레이어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나마 현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인원은 현성, 루시아, 파르티샤, 타무그, 사몬뿐이었다.

    타무그의 수하들도 지금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최대한 버텨야 해.’

    자력 결계의 발동을 명령하기는 했다.

    하지만 자력 결계는 발동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다.

    ‘자력 결계까지 통하지 않으면 큰일인데.’

    세키라 대영주의 힘이 자력 결계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다면 모든 게 끝장이다.

    빠지지지직!

    모든 것을 얼려 버리는 냉기의 폭풍이 현성의 몸을 덮쳤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이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대항했다.

    치이이익!

    현성이 냉기의 폭풍을 뚫고 전진하며 신혈검을 휘둘렀다.

    꽈아아앙!

    현성이 휘두른 신혈검이 냉기의 폭풍을 꿰뚫고 적의 몸을 강타했다.

    적의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꽈아앙! 꽈아앙!

    루시아, 파르티샤, 타무그, 사몬이 전력을 다해 적을 공격했다.

    하지만 적의 방어가 너무 단단했다.

    냉기의 폭풍을 헤치고 공격을 할 수는 있었다.

    문제는 그게 전부였다.

    전력을 다해 날린 공격을 맞은 적은 그저 몸을 비틀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 정도로 차이가 났나?’

    눈앞의 상대는 대영주의 축복을 받은 존재지 대영주 본인이 아니었다.

    당연히 대영주보다는 약할 게 분명했다.

    한데도 이렇게 강할 줄이야?

    그저 움직임을 저지하고 있을 뿐 실질적인 유효 타격을 단 하나도 주지 못했다.

    문제는 적의 방어가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제법 발악을 하는구나.”

    계속 얻어맞고만 있던 적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순순히 무릎을 꿇어라. 그리하면 세키라 대영주님께서 네놈을 중히 쓰실 것이다.”

    적의 말에 현성이 콧방귀를 뀌었다.

    현성이 침략자 차원의 플레이어였다면 나름 솔깃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성은 지구의 플레이어였다.

    침략자들의 하수인이 될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시간은 끌 수 있겠지.’

    대화로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시도해 보는 게 좋았다.

    “세키라 대영주가 나에게 뭘 해 줄 수 있지?”

    현성의 물음에 적이 얼굴을 찌푸렸다.

    “어리석구나. 네놈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당장 복종해라. 그러지 않으면 네놈의 사지를 잘라 낸 후 벌레처럼 끌고 갈 것이다.”

    적의 말에는 살기가 줄줄 넘쳐흘렀다.

    과거 무드크의 경우처럼 현성의 호감을 살 생각 따위는 없어 보였다.

    사실 그러는 게 당연했다.

    현성의 공격에 의해 동료들을 모두 잃었고 본인 역시 목숨을 잃을 뻔했으니까 말이다.

    현성을 사로잡으라는 세키라 대영주의 명령이 없었다면, 투항 권유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큭큭큭, 거절한 것으로 알겠다.”

    현성의 대답이 없자 적이 몸을 날렸다.

    타악!

    순식간에 적이 현성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파강!

    신혈검과 적의 손에 들린 창이 충돌했다.

    “큭!”

    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차가운 냉기가 피부를 넘어 뼛속까지 전달되었다.

    현성이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이용해 냉기에 대항했다.

    ‘강해.’

    분명 스킬의 등급은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가 더 높았다.

    한데 칠흑빛 뇌전과 화염이 냉기에 밀리고 있었다.

    스텟의 차이가 극심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 정도일 줄이야.’

    현성은 침략자 차원을 넘으며 수많은 업적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강해졌다.

    그렇기에 내심 대영주라고 불리는 이들과도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에 불과했다.

    대영주가 직접 나선 것도 아니고 단지 축복을 통해 자신의 힘을 빌려준 신하 하나도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 상황이다.

    진짜 대영주가 이 자리에 등장했다면?

    현성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부터 대비를 해야 해.’

    현성에게는 아직 스텟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많이 남아 있었다.

    침략자 차원의 최고 레벨 플레이어들을 쓰러트려 다수의 초월 등급 업적을 얻는 것 같은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는 없다.

    하나 몬스터를 사냥해 업적을 늘려도 스텟이 늘어난다.

    또 탐식의 서를 사용해 몬스터의 사체를 먹어 치워 스텟을 늘릴 수도 있다.

    ‘지금 당장은 이렇게 밀리지만 나중은 다를 거다.’

    현성이 이를 악물고 신혈검을 휘두르며 저항했다.

    루시아, 파르티샤, 타무그, 사몬 역시 현성을 도와 최선을 다해 적을 공격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적의 움직임이 그렇게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적은 강력한 마력을 바탕으로 스킬을 난사했다.

    또 넘치는 힘과 속도를 바탕으로 창을 휘둘렀다.

    하나 정교함이 떨어졌다.

    섬세하게 힘을 조절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남발하고 있었다.

    ‘자신의 힘이 아니니까.’

    갑자기 본래 자신의 역량을 월등히 뛰어넘는 강력한 힘을 얻었다.

    침착하게 제어하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한데 적은 제어는커녕 오히려 세키라 대영주가 준 힘에 취해 날뛰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 정도로 충분했다.

    힘의 차이가 워낙 압도적이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저렇게 갑자기 강해진 힘에 도취되어 날뛰는 적 정도는 손쉽게 제압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가정 따위는 필요 없었다.

    현재의 현성은 적보다 약했으니까 말이다.

    꽈아앙! 꽈아앙!

    차가운 냉기가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꿰뚫었다.

    강력한 스킬 저항력을 지닌 마신의 갑주와 천뢰신의 갑옷 역시 냉기로부터 현성의 몸을 보호해 주지는 못했다.

    현성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손아귀가 터져 나가고 전신이 날카로운 냉기의 칼날에 찢겨져 나가도 버티고 또 버텼다.

    신하들에게서 체력과 마력을 보충받고, 그렇게 보충받은 체력과 마력을 루시아, 파르티샤, 타무그, 사몬에게 나누어 주며 버텼다.

    그렇게 버티고 버틴 결과.

    ‘됐어.’

    드디어 자력 결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자력 결계의 발동이 준비될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

    이제 남은 일은 적을 그곳으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정해진 장소까지 후퇴.

    현성이 군주의 외침으로 명령을 내렸다.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모두가 뒤로 물러났다.

    “도망갈 수 있을 성싶으냐!”

    적이 노성을 터트리며 현성의 뒤를 추격했다.

    두두두두!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적의 민첩 스텟이 현성보다 높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현성은 당황하지 않았다.

    추격은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사아아아악!

    현성이 아공간을 열었다.

    -크아아아앙!

    -캬오오오오!

    그와 동시에 언데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틈틈이 사냥을 하며 보충을 해 놓았기에 언데드 몬스터의 숫자는 수백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등급도 최하가 전설이었고 대부분이 준신화, 신화 같은 높은 등급의 몬스터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겨우 이 정도로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적이 차가운 냉기에 휩싸인 창을 휘두르며 언데드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꽈앙! 꽈앙!

    수백에 달하는 언데드 몬스터들이 마치 수수깡처럼 부서졌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고작해야 약간의 시간을 벌어 주는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거기 서라!”

    순식간에 언데드 몬스터들을 전멸시킨 적이 노성을 터트리며 현성의 뒤를 추격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자력 결계가 코앞이었다.

    슈욱!

    한데 적이 순식간에 달려 나와 현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네놈 따위가 감히 내 손아귀에서 도망칠 수 있을 성싶으냐!”

    적의 노성에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다 죽어 가던 녀석이 대영주의 축복을 받았다고 아주 기고만장하구나?”

    “뭐라?”

    “네놈이 뭐라도 되는 줄 아냐? 지금 네가 가진 힘은 네 것이 아니야. 세키라 대영주가 빌려준 거지. 원래대로면 내 앞에서 고개도 제대로 못 들 놈이 세키라 대영주에게 빌린 힘만 믿고 기고만장하기는.”

    현성의 말에 적의 얼굴이 분노로 물들었다.

    “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봐.”

    “이익!”

    적이 입을 움찔거리며 현성의 말에 반박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지.’

    현성이 적을 보며 이죽거렸다.

    빠지지직!

    주변에 있던 커다란 강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현성의 팩트 폭격에 적중당한 적의 이성이 반쯤 날아간 듯 보였다.

    “으아아아아!”

    적이 노성과 함께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내가 왜 이곳에서 싸웠겠냐?’

    현성이 얼어붙은 강물을 바라보며 다시금 아공간을 열었다.

    -크아아아아앙!

    커다란 포효와 함께 거대한 덩치의 초월 등급 언데드 레비아탄이 모습을 드러냈다.

    꽈아아아아앙!

    언데드 레비아탄의 등장과 함께 얼어붙어 있던 강물이 산산조각 났다.

    -콰콰콰콰콰콰!

    그와 함께 언데드 레비아탄의 워터 브레스가 적을 향해 날아갔다.

    꽈아아아앙!

    워터 브레스에 적중당한 적의 몸이 살짝 뒤로 밀려 났다.

    “일단 이 녀석부터 쓰러트려 보라고.”

    현성이 그 말과 함께 강 건너편으로 몸을 날렸다.

    -캬아아악!

    언데드 레비아탄이 적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네놈이 감이 나를 무시해! 겨우 이까짓 걸로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적이 날카로운 창을 휘두르며 강한 냉기를 뿜어냈다.

    언데드 레비아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히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초월 등급 언데드 몬스터라고 해도 대영주의 축복을 받은 적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아주 약간의 시간 정도는 끌어 줄 수 있지.’

    어차피 초월 등급 레비아탄은 현성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적과 아군이 뒤섞여 있는 상태에서 공격 명령을 내리면 폭주해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공격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예 적이 없는 상태라면?

    초월 등급 언데드 몬스터의 위용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었다.

    뭐, 그래 봤자 오래 버틸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꽈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초월 등급 언데드 레비아탄이 산산조각 났다.

    ‘밥값은 충분히 했어.’

    초월 등급 언데드 레비아탄이 시간을 벌어 준 덕분에 현성은 겨우 원하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성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신혈검을 뽑아 들고 적과 싸울 준비를 했다.

    타악!

    적이 현성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쥐새끼처럼 도망만 치더니 왜 멈춘 것이냐? 설마 밑천이 다 바닥난 것이냐? 그래서 이제 항복을 하겠다고?”

    적은 현성이 도주를 멈춘 이유를 멋대로 상상하고 결론까지 내렸다.

    “네놈이 아무리 항복을 한다고 해도 곱게 데리고 가지는 않겠다. 우선 팔과 다리부터 잘라 내 주마.”

    적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내며 현성에게 다가왔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이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뿜어냈다.

    “큭큭큭! 그래, 어디 발악해 보아라!”

    적이 오히려 반갑다는 듯 마력을 끌어 올렸다.

    쩌저저저적!

    적의 몸에서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 순간.

    파직! 파직!

    자력 결계가 작동했다.

    “이, 이게 무슨?”

    자신만만하던 적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전신에 넘쳐흐르던 힘이 자신의 제어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적이 아닌 자신을 공격했다.

    “크윽!”

    그는 더욱 강하게 마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마력을 끌어올리면 끌어올릴수록 오히려 더 강한 힘이 자신의 몸을 옥죄어 왔다.

    “서, 설마 자력 결계?”

    적의 표정이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감히 자력 결계를 사용하다니?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으…….”

    서걱!

    현성은 적이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신혈검을 휘둘러 목을 날려 버렸다.

    “휴!”

    현성의 입에서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거의 죽다 살았다.

    자력 결계 덕분에 겨우 위기를 넘겼다.

    ‘당분간은 몸을 사려야겠어.’

    대영주가 직접 움직이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한데 방금 전 경험으로 그 자신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처럼 군주 전용 스킬을 사용할 경우, 자력 결계를 제외하면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운이 좋았어.’

    현성은 그간 자신을 노린 적들을 단숨에 제압했다.

    하급 영주들의 경우도 가장 먼저 목을 날려 버렸다.

    그렇다 보니 대영주로서도 마땅히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살아남은 신하가 있어야 대군주의 축복을 내리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무려 1천 명이 넘는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 결과, 단기간에 적을 전멸시킬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사달이 벌어졌다.

    ‘빨리 힘을 키워야 해.’

    하급 영지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방에 널려 있는 몬스터들을 사냥해 업적을 획득하는 것 역시 중요했다.

    현성은 침략자 차원으로 넘어온 이후 승승장구했다.

    그 때문일까?

    자신도 모르게 침략자 차원의 플레이어들을 조금 만만하게 생각했다.

    ‘침략자 차원의 진짜 힘은 대영주들이야.’

    그들을 상대할 힘을 키울 때까지는 얌전히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오히려 잘된 일이야.’

    이번 일을 통해 대영주가 가진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영지전에 끼어드는 건 취소다.’

    현성은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영지전이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나면 총공격을 해 볼 생각이었다.

    어부지리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그건 현성이 대영주가 가진 힘을 잘 몰랐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아무리 전력이 약화되었어도 대영주는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야.’

    이번 일로 큰 교훈을 얻었다.

    ‘최대한 장기전이 되게 만들자.’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싸움을 최대한 질질 끌어야 했다.

    어느 한쪽이 승리하거나 휴전을 하게 되면, 현성이 위험해진다.

    ‘세키라 대영주에게도 빚을 갚아 줘야지.’

    1천 명의 직속 병력을 잃고 분노하고 있을 세키라 대영주의 칼끝이 현성을 향하지 않게 하려면 재빨리 싸움을 붙여야 했다.

    -세키라 대영주가 수천의 직속 병력과 수십 개의 하급 영지를 잃어버렸다는 소문을 퍼트려라.

    현성이 사방에 뿌려 놓은 휘하 플레이어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디 한번 고생해 봐라.’

    세키라 대영주는 그동안은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전쟁을 지켜보며 웃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싸움의 당사자가 된다면?

    사정이 좀 달라질 것이다.

    * * *

    “이게 무슨!”

    세키라 대영주가 노성과 함께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우드득!

    옥좌의 일부인 팔걸이가 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주군! 무슨 일이십니까?”

    “왜 갑자기?”

    신하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세키라 대영주를 바라보았다.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가 갑자기 세키라 대영주가 돌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죽었다.”

    “예?”

    “내가 직접 축복을 내린 신하가 죽었다는 말이다.”

    세키라 대영주의 말에 신하들의 표정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그, 그게 무슨?”

    “상대는 부랑자 출신 군주가 아니었습니까? 한데 어찌?”

    신하들은 세키라 대영주의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부랑자들의 수준이야 뻔하다.

    트베레오가 전사하고 직속 병력 1천 명이 죽어 갈 때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세키라 대영주가 직접 축복을 내린 후에는 모든 문제가 손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키라 대영주의 축복을 받은 신하가 패배하는 경우는 다른 대영주를 만났을 때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한데 패배해 버렸다.

    “하, 하면 그 부랑자의 실력이 설마?”

    “대, 대영주님들급이라는?”

    신하들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 부랑자의 실력이 대영주급이라면?

    절대 섣불리 건드릴 수 없었다.

    아니, 건드려서는 안 된다.

    지금 아군의 전황상 대영주급 실력자와 척을 지는 것은 무조건 피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내가 실수를 했구나. 설마 그 정도일 줄이야.”

    세키라 대영주가 아랫입술을 악물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큰일이군.’

    트베레오와 직속 병력을 잃은 것도 손해고 하급 영지를 잃은 것도 손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대영주급 부랑자와 척을 졌다는 것이다.

    만약 현재 대치 중인 대영주와 부랑자가 동시에 자신의 영지를 공격한다면?

    그간 힘겹게 키워 온 기반이 모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끄응.”

    세키라 대영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괜한 욕심을 냈다가 아군 전력만 잃고 적까지 만들어 버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세키라 대영주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덜컹!

    회의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리고 장거리 통신 스킬을 익힌 신하 하나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주군, 큰일입니다! 마로저니 대영주가 대군을 이끌고 아군 방어선을 공격했습니다!”

    신하의 말에 세키라 대영주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대충 예상은 했다.

    마로저니 대영주가 아군 전력의 손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알아차린 거지?’

    나름 철저하게 정보를 차단했다.

    한데 일이 터지자마자 걸려 버렸다.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일단 마로저니 대영주의 총공세를 막는 것이 우선이었다.

    세키라 대영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소집령을 내린다! 전군은 마로저니 대영주의 남진을 막아라!

    세키라 대영주가 군주의 외침으로 휘하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쪽이 총공세를 펼친다면 이쪽도 전력을 다해 막아야 했다.

    세키라 대영주의 명령과 함께 사방에 흩어져 있던 휘하 신하들이 빠르게 마로저니 대영주의 영지와의 접경 지역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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