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권. 게릴라 (159/225)
  • ┃게릴라

    아크사 대영주는 최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코디기 대영주의 함정에 빠져 무드크를 잃었다.

    다행히 그 후 과감한 선택을 하며 무드크를 잃은 손실을 만회했다.

    문제는 그 후였다.

    ‘비겁한 녀석.’

    코디기 대영주는 방어에 치중하며 치사하게 하급 영지들을 공격했다.

    대영주들끼리의 전쟁에서 하급 영지를 건들지 않는 것은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어차피 승자가 되면 자신의 영지가 될 곳을 초토화시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코디기 대영주는 그런 불문율을 깨어 버렸다.

    그 결과 하급 영주들이 빠른 속도로 목숨을 잃었다.

    선택은 두 가지.

    첫 번째는 하급 영지에 구원 병력을 보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총공세를 펼쳐 단기전으로 결판을 보는 것이었다.

    아크사 대영주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코디기 대영주의 함정에 빠져 변방의 하급 영지에 무드크와 그 수하들을 보냈다가 모두 잃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함정일 수 있어.’

    아크사 대영주는 정면 승부로 승산이 없자 코디기 대영주가 꼼수를 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은 총공세를 명령했다.

    ‘아무리 수작을 부려도 결국은 힘이다.’

    아크사 대영주는 직접 전장으로 나오는 위험을 감수했다.

    코디기 대영주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기 위해서였다.

    잃어버린 하급 영지는 코디기 대영주의 숨통을 끊은 후에 되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아크사 대영주의 착각이었다.

    아크사 대영주의 하급 영지들을 점령한 건 코디기 대영주가 아니라 현성이었으니까 말이다.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 모두 공평하게 하급 영지를 잃고 있었다.

    하지만 둘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저 자신만 하급 영지를 잃고 있고 상대는 얻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섰다.

    두 사람은 다른 선택을 했다.

    코디기 대영주는 변방 하급 영지를 구원할 병력을 파견했고, 아크사 대영주는 단기전을 선택해 빠르게 전쟁을 끝마치고자 했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였다.

    아무런 방해 없이 두 대영주의 하급 영지를 점령할 기회를 얻었다.

    또 코디기 대영주와 아크사 대영주를 둘 중 한 명은 죽을 수밖에 없는 단두대 매치에 서게 만들었다.

    침략자 차원의 전력 약화가 목적이었던 현성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

    * * *

    ‘성과가 꽤 많아.’

    현성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전리품들을 살폈다.

    뱀 인간을 쓰러트리면서 두 개의 초월 등급 아이템을 얻었다.

    바로 단검과 망토였다.

    ‘완전 암살 특화네.’

    단검은 사용자를 중독시켜 몸을 마비시키고 마력의 흐름을 어지럽히는 옵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현성조차도 잠시 동안은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

    망토의 경우는 은신 스킬을 제공해줬다.

    놀랍게도 망토의 은신 기능은 호루스의 눈을 속일 정도로 뛰어났다.

    ‘하긴 초월 등급이니까.’

    호루스의 눈은 신화 등급이다.

    신화 등급 탐지 아이템이 초월 등급 은신 스킬을 감지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암살이 더 편해지겠어.’

    망토의 경우 차원의 이면 스킬과 그 효과가 겹쳐서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단검의 경우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과거 무드크를 상대했을 때 이 단검이 있었다면?

    굳이 자력 결계를 사용하지 않았어도 무드크를 쓰러트릴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더 부지런히 움직이자.’

    당분간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견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니, 현성을 견제하겠답시고 병력을 보내면 오히려 고마울 것 같았다.

    구하기 힘든 초월 등급 아이템들을 이렇게 아낌없이 선물해 주니까 말이다.

    현성이 다시금 하급 영지 정복에 나섰다.

    정복은 순조로웠다.

    현성의 명령을 받고 침략자 차원 전역으로 흩어졌던 이들 역시 어느 정도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도 꽤 빠르게 퍼져 나갔다.

    반면 자본주의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현성은 어떤 사상이 더 빠르게 번져 나가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다양한 사상이 퍼져 나간다는 게 중요했다.

    ‘어차피 전부 다 신분제에 반대하는 사상이야.’

    왕이나 영주 같은 기득권층을 인정하지 않는 사상이니, 침략자 차원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 꽤 골치가 아플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특별한 변화 같은 건 없었다.

    침략자 차원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달라질 것이다.

    ‘사상에 빠지면 아무것도 안 보이지.’

    현성이 퍼트린 사상이 이미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군주와 그 휘하의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플레이어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일반인들과 기존의 체계를 거부한 부랑자들을 끌어들이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특히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빠르게 퍼져 나갔다.

    ‘난 내 할 일을 하면 그만이야.’

    부지런히 움직여서 하급 영지들을 모조리 쓸어 담아야 했다.

    * * *

    석 달의 시간이 흘렀다.

    현성은 그동안 부지런히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하급 영지들을 흡수했다.

    중간중간 침략자 플레이어들이 차원 게이트를 넘어왔다.

    하지만 무난하게 막아 냈다.

    타무그의 경우처럼 대규모 인원이 넘어와 큰 사건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파르티샤의 차원도 침략자 플레이어들을 훌륭하게 격퇴했다.

    그 결과.

    ‘더 이상 점령할 영지가 없네.’

    현성은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 휘하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하급 영지를 먹어 치웠다.

    물론 중앙에는 아직도 많은 하급 영지들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접근하기는 힘들었다.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주력군이 충돌하고 있는 지역과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어.’

    그간 수많은 하급 영주들을 제거하고 그들 휘하에 있던 플레이어들을 흡수하며 세력이 엄청나게 커졌다.

    하지만 대영주들이 이끄는 주력군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적당히 거리를 둬야지.’

    현성이 노리는 공격 시점은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전쟁이 끝난 후였다.

    누가 이기든 피해가 클 것이다.

    그러니 그때를 노리고 기습을 가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급 영지는 완전히 포기한 건가?’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는 하급 영지가 얼마나 쓸려 나가든 신경 쓰지 않고 전쟁을 계속했다.

    ‘전처럼 하급 영지 수복한답시고 또 수하들을 보내 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그러지를 않았다.

    ‘자력 결계 쿨 타임도 돌아왔는데 쓸 일이 없네.’

    현성의 입장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더 점령할 하급 영지가 없다.

    그렇다고 대영주들의 싸움에 끼어들자니 너무 위험했다.

    ‘다른 지역도 무난한 것 같고.’

    현성은 지구의 사상을 퍼트리기 위해 휘하 플레이어들을 풀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과의 통신이 가능한 교류의 보석이 달린 스마트폰을 주었다.

    그 결과 현성은 앉아서 침략자 차원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결과를 보고받을 수 있었다.

    위이이이잉!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현성이 스마트폰을 켜고 메신저를 통해 그 내용을 확인했다.

    “어?”

    내용을 확인한 현성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반적으로 메신저를 통해 전해지는 내용은 무난했다.

    영주가 사냥을 나가서 신화 등급 아이템을 얻었다더라, 어느 하급 영지의 영주들끼리 영지전을 벌였다더라 등등.

    현성에게 있어서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건 좀 달랐다.

    ‘세키라 대영주 휘하의 직속 병력 1천 명이 출전했다고?’

    일단 거리가 가까웠다.

    세키라 대영주의 영토는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영토와 근접해 있었다.

    ‘설마 두 대영주의 접전에 개입하려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치기에는 움직이는 병력의 규모가 너무 적었다.

    고작 1천 명에 불과하지 않은가?

    아무리 고레벨 플레이어로 꾸렸다고 해도 1천 명은 병력 규모가 너무 작았다.

    타이밍도 이상했다.

    ‘세키라 대영주가 바보는 아닐 거고.’

    세키라 대영주가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싸움에 끼어들어 이득을 볼 생각이라면, 굳이 지금 나설 필요가 없다.

    현성처럼 둘의 싸움이 끝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병력을 움직이면 그만이다.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겠어.’

    현성은 전체 메시지를 날려 세키라 대영주 휘하의 병력이 이동하는 방향을 정찰하게 했다.

    또 추가로 휘하 신하들을 흩뿌려 정보를 끌어모았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미친.”

    현성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휘하 신하들을 추가로 뿌리고 계속해서 정보를 긁어모았다.

    그리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세키라 대영주의 직속 병력이 어디를 노리는지,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마침내 알아냈다.

    ‘나를 노리고 움직이는 거잖아.’

    세키라 대영주의 직속 병력은 현성이 점령한 영토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현성은 그동안 자신에 대한 정보가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착각을 바로잡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구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전화 한 통화면 간단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침략자들의 차원에서 통신수단이라고 할 만한 건 사람이 직접 정보를 전달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군주의 외침이나 텔레파시 같은 통신 스킬을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군주의 외침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군주 두 명이 서로의 신하를 교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현성은 점령한 지역의 하급 영주들을 모두 제거했다.

    당연히 통신망이 갖춰져 있었더라도 제대로 정보가 전달 될 수 없었다.

    텔레파시 같은 통신 스킬도 무용지물이었다.

    스킬을 가진 이의 숫자가 적었고 통신을 할 수 있는 거리도 제약이 심했다.

    결정적으로 마력 역장의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현성은 타무그와 그 수하들을 이용해 지역 하급 영지의 정보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키라 대영주는 논외였다.

    애초에 현성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지방 하급 영지의 사정이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막는 것도 버거웠으니까 말이다.

    ‘고작해야 일주일 정도밖에 안 남았어.’

    그것도 세키라 대영주의 직속 병력이 여유를 부렸기 때문이다.

    세키라 대영주의 직속 병력은 하급 영지를 지나며 병력을 징집해 그 규모를 지속적으로 불려 나갔다.

    그 결과 현재는 총 7천 명에 달하는 대병으로 늘어났다.

    아마 현성이 점령한 지역에 도착할 때쯤이면 총병력이 1만 명을 넘어설 게 확실했다.

    ‘망할.’

    세키라 대영주는 현성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게 분명했다.

    직속 병력 1천.

    지방 하급 영지의 병력 1만.

    세키라 대영주 입장에서는 크게 부담되지 않는 수준의 병력이었다.

    하지만 현성의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물론 휘하에 든 플레이어의 숫자는 현성이 월등히 많다.

    하지만 세키라 대영주의 직속 병력이 문제였다.

    ‘몇백 정도는 감당이 가능하지만 1천 명이면…….’

    현성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감당이 불가능했다.

    아크사 대영주 휘하에 있던 무드크와 수하들.

    코디기 대영주 휘하에 있던 뱀 인간과 그 수하들.

    그들은 하급 영지의 플레이어와는 그 수준이 달랐다.

    그것도 전처럼 몇십 명 몇백 명이 아니라 무려 1천 명이다.

    ‘거기다 하급 영지에서 징집한 병력도 생각을 해야 해.’

    아무리 생각해도 정면으로 붙어서는 승산이 없었다.

    ‘그럼 방법을 바꿔야지.’

    정면 대결이 승산이 없다면?

    남은 건 게릴라전뿐이었다.

    * * *

    트베레오는 위풍당당하게 8천 명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행군을 이어 나갔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들러야 할 하급 영지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징집을 완료하기만 하면 족히 1만이 넘겠어.’

    1만이 넘는 대군을 이끄는 총사령관이 되었다는 사실에 얼굴 가득 미소가 피어올랐다.

    트베레오는 세키라 대영주를 섬기고 있는 플레이어였다.

    그는 그동안 세키라 대영주의 휘하에서 수많은 활약을 했다.

    하지만 이런 대병의 지휘권을 맡은 적은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보통 500~600여 명 정도의 병력을 지휘했다.

    가끔 지휘권이 늘어나도 고작해야 1천 명 정도 병력을 지휘하는 게 고작이었다.

    한데 지금은 무려 1만에 가까운 대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마치 대영주가 된 듯한 기분이군.’

    트베레오는 하급 영주였다.

    하지만 승전에 승전을 거듭해 세키라 대영주가 있는 대영주 성으로 영전했다.

    그 후 세키라 대영주의 신임을 얻어 심복 중 하나가 되었다.

    아무리 세키라 대영주의 심복이라고 해도 이런 대병을 이끌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한데 운이 좋게도 손쉬운 임무를 부여받아 대병을 이끌게 되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잘만 하면 내 직속 병력이 수만이 될 수도 있어.’

    트베레오가 이번 임무를 완수한다면?

    최소 수만에 달하는 플레이어를 직속 병력으로 부릴 수 있게 된다.

    세키라 대영주 휘하에 있다고 다 같은 신하가 아니다.

    신하라고 해도 레벨, 직업, 스텟, 스킬에 따라 지위 고하가 나뉜다.

    특히 군주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 휘하에 있는 신하들의 숫자와 레벨에 따라 그 지위가 결정된다.

    이번 일이 성공한다면?

    트베레오는 세키라 대영주의 휘하에 있는 군주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 중에서 1인자가 될 수 있었다.

    ‘부랑자 한 놈이 운이 좋았던 모양이야.’

    세키라 대영주는 꾸준히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영지전을 주시했다.

    여차하면 끼어들어 이득을 보기 위함이었다.

    문제는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세키라 대영주는 다른 대영주와 영토 분쟁 중이었다.

    다행히 전면전을 벌일 정도는 아니고 꾸준히 소규모 국지전을 벌이며 으르렁거리는 정도였다.

    하나 그것은 서로의 힘이 비등해야 가능한 일이다.

    세키라 대영주가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영지전에 개입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다면?

    적은 소규모 국지전이 아니라 대규모 전면전을 걸어올 것이다.

    세키라 대영주는 사방으로 정찰병을 보내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빈틈을 찾았다.

    그러다 우연히 부랑자 출신의 군주 하나가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전쟁을 이용해 하급 영지들을 무차별적으로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세키라 대영주는 욕심이 생겼다.

    하급 영지들이 아크사 대영주나 코디기 대영주의 소유였다면 섣불리 손을 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랑자의 영토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전쟁이 마무리된 후 아크사 대영주나 코디기 대영주가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애매했다.

    세키라 대영주는 두 대영주의 영토를 침공한 게 아니라 부랑자가 점령한 영토를 빼앗았을 뿐이니까 말이다.

    결국 세키라 대영주는 직속 병력 1천 명을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1천 명 정도의 공백은 어떻게든 감출 수 있었다.

    부족한 병력은 하급 영지에서 징집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순식간에 마무리를 지어 주마.’

    트베레오는 단숨에 부랑자 출신 군주를 제거하고 그 휘하에 있는 신하들을 빼앗을 계획이었다.

    “흐흐흐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 계획이 성공하면?

    트베레오는 세키라 대영주 휘하에 있는 군주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 중에서 1인자가 되어 온갖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릴 것이다.

    트베레오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행군을 계속했다.

    그런데…….

    “어?”

    멀리 오늘 밤 머물고 병력까지 징집해야 할 하급 영주의 성이 보였다.

    한데 뭔가 이상했다.

    하급 영주의 성이…….

    활활 불타고 있었다.

    * * *

    현성은 세키라 대영주가 병력을 움직인 순간, 게릴라전을 생각했다.

    그 후 바로 실행에 옮겼다.

    현성의 타깃은 세키라 대영주의 주력 부대가 아니었다.

    세키라 대영주의 주력 부대는 덩어리가 너무 컸다.

    거기다 1천 명에 달하는 세키라 대영주의 직속 부하들까지 있었다.

    현성은 세키라 대영주의 휘하에 있는 하급 영지를 노렸다.

    그동안 현성은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지만을 공격했다.

    세키라 대영주 휘하에 있는 하급 영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괜히 적을 늘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가 먼저 칼을 뽑아 들었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적이 될 거라면 미리 제거하는 게 낫다.’

    결정을 내린 현성은 무차별적으로 세키라 대영주의 영지들을 점령해 나갔다.

    현성이 직접 암살에 나서기도 했고, 뱀 인간을 쓰러트리며 얻은 초월 등급 은신 망토를 타무그에게 넘겨 사용하게 하기도 했다.

    세키라 대영주 휘하 하급 영지들이 무더기로 현성에게 넘어왔다.

    앞으로 적이 될 플레이어들을 아군으로 만든 것이다.

    또 적의 것이 될 식량과 군수물자도 모조리 빼돌렸다.

    빈 성은 불태우고 영지민들은 다른 영지로 이주시켰다.

    ‘그래도 여전히 많네.’

    현성이 8천 명에 달하는 적의 대병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진작 움직였어야 했는데.’

    더 빠르게 움직였다면?

    적의 병력을 절반가량인 4천 명 이하로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직은 기회가 있어.’

    현성은 초월 등급 은신 망토를 착용한 타무그와 함께 적의 본진을 지나 세키라 대영주의 영토에 더 깊숙이 진입했다.

    ‘진짜 게릴라전이 뭔지 보여 주마.’

    * * *

    “그놈이 가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네!”

    하급 영주 하나가 환한 얼굴로 술을 들이켰다.

    그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동안 진상을 부리던 상급자가 드디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저 역시 그렇사옵니다, 주군.”

    “그놈이 가고 나니 앓던 이가 쏙 빠진 것처럼 속이 시원하옵니다.”

    신하들이 하급 영주의 비위를 맞췄다.

    “어차피 그놈이나 나나 다 같이 세키라 대영주님께 충성을 맹세한 동등한 위치의 동료다. 그렇지 않느냐?”

    “맞사옵니다.”

    “한데 그놈은 어찌 동료인 나를 하급자 대하듯 한다는 말이냐!”

    하급 영주가 분노한 표정으로 외쳤다.

    “오만방자하기가 그지없는 자였사옵니다.”

    “맞사옵니다. 그런 자는 오래가지 못하옵니다. 아마 그자는 얼마 가지 않아 대영주님의 신임을 잃을 것입니다.”

    “그럼 주군께 기회가 생길 수도 있사옵니다.”

    “내게 말이냐?”

    하급 영주가 헤벌쭉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예, 그런 놈도 영전을 했는데, 인품도 훌륭하시고 실력도 뛰어나신 주군께서 영전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사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지.”

    신하들의 칭찬에 하급 영주는 기분이 좋아졌다.

    하급 영주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왕과 같은 지위를 누린다.

    영지 내에서 영주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영지만의 독자적인 법을 제정할 수도 있고 세금을 걷는 것도 자유다.

    다른 이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고개를 숙일 필요도 없다.

    대영주를 직접 영접하거나, 대영주의 지시를 받은 상급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하급 영주는 얼마 전 트베레오를 만났다.

    최대한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트베레오는 하급 영주를 무시하며 오히려 수하들 앞에서 온갖 굴욕을 주었다.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애써 키운 병력을 징발해 갔고 그것도 모자라 식량과 군수물자도 빼앗아 갔다.

    세키라 대영주의 명령이었기에 삥을 뜯기고 구박을 받아도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영지에서 왕과 같은 지휘를 누리던 하급 영주 입장에서는 굴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놈이 언제 다시 돌아올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술을 들이켜던 하급 영주가 조심스럽게 신하들에게 물었다.

    “부랑자 출신 군주를 토벌하러 가는 일이니 금방 다시 돌아오지 않겠사옵니까?”

    “끄응.”

    하급 영주가 얼굴을 찌푸렸다.

    다시 그런 개망신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푸욱!

    그때 하급 영주의 심장에 한 자루의 검이 틀어박혔다.

    “커억!”

    눈이 흐려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게 무슨?’

    방금 전에 죽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건 절대 진심이 아니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하지만 하급 영주의 생각은 그대로 끊어졌다.

    ‘간단하네.’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타무그와 함께 적의 본대를 무시하고 적진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걱정을 좀 했다.

    자칫 잘못하면 적의 본진에 고립될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경계가 소홀했다.

    하급 영주들은 방심해 있었고 그 결과 너무도 손쉽게 그들의 숨통을 끊을 수 있었다.

    ‘부지런히 움직이자.’

    휘하에서 이탈하는 신하들을 제거할 여유도 없었다.

    오늘 밤 안에 최대한 많은 숫자의 하급 영주들을 제거해야 했다.

    ‘절반으로 줄여 주마.’

    현성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몸을 움직였다.

    적의 본대 병력은 무려 8천 명.

    정면으로 부딪치면 이기기 힘들었다.

    설사 승리한다고 해도 아군의 피해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현성은 적 병력 8천 명 중 7천 명이 하급 영주들에게서 징집한 병사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하급 영주만 제거하면 게임 끝이지.’

    현성은 적의 본대가 지나갈 길목에 있는 하급 영지들을 급습해 영주들을 제거했다.

    그 결과 적의 병력이 될 뻔했던 하급 영주들의 병력을 아군으로 만들었다.

    현성의 생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단순히 편성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지.’

    그들이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하급 영주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섬기던 영주가 죽었다고 해도 그들의 영지에서 징발한 병력의 지휘권은 병력을 징집한 지휘관에게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플레이어였다.

    하급 영주를 현성이 죽이면?

    그들은 병력을 징집한 지휘관의 수하가 아니라 현성의 수하가 된다.

    ‘이게 플레이어의 맹점이지.’

    애초에 그들이 징집한 지휘관의 명령에 따르는 것 자체가 섬기던 영주의 명령 때문이다.

    섬기던 영주가 바뀌고 반대되는 명령을 내린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칼끝의 방향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

    * * *

    ‘잘근잘근 씹어 먹어 주마.’

    트베레오가 이를 박박 갈았다.

    설마 부랑자 출신 군주가 아군 하급 영지를 먼저 공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한 영지는 하나가 아니었다.

    정찰을 보내 본 결과 앞으로 들러서 병력을 징집할 계획이었던 모든 하급 영지가 텅텅 비어 있었다.

    무주공산이 되어 버린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하급 영지를 차지하기는커녕 아군 하급 영지만 대거 빼앗긴 것이다.

    아군의 피해 없이 큰 공을 세우려던 트베레오에게는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가만두지 않겠다.’

    오늘 밤이 지나면 당장 병력을 움직여 빼앗긴 하급 영지를 수복하고 부랑자 출신 군주가 지배하는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굴욕을 준 부랑자 출신 군주를 잡기만 한다면?

    자신이 느낀 굴욕감을 백배 천배로 갚아 줄 것이다.

    트베레오는 억지로 화를 가라앉히며 잠을 청했다.

    내일 낮에 부지런히 움직이기 위해서는 오늘 밤 푹 자야 했다.

    그때였다.

    좌악!

    막사 문이 거칠게 열리며 수하 하나가 허겁지겁 막사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주군, 큰일입니다!”

    수하의 말에 트베레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 적들이 기습이라도 해 온 것이냐?”

    트베레오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적들이 기습을 해 왔다면?

    당장 뛰쳐나가 일망타진해 버리면 그만이다.

    만약 부랑자 출신 군주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 기습한 거라면?

    귀찮게 찾아다닐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 그게 아니라!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뭐?”

    트베레오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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