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시즈라 왕국에 대한 정보는 현성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와 동시에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만 하면 똥을 잔뜩 뿌릴 수 있겠어.’
침략자 차원의 교육 수준은 상당히 낮다.
아니, 낮다는 수준을 넘어서 처참했다.
침략자 차원은 모든 초점이 무력에만 맞춰져 있었다.
‘그 말은 선동하기 쉽다는 뜻이지.’
지구에는 단순히 앞선 과학기술로 만든 최신 전자 제품만 있는 게 아니다.
온갖 사상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모두 현 침략자 차원의 기득권층에게 독이 될 수밖에 없는 사상이다.
‘어차피 모두 적이야.’
침략자 차원에 있는 이들의 목적은 지구 침공과 점령이다.
‘지구에는 눈도 돌리기 힘들게 만들어 주마.’
과거 지구에는 수많은 사상들이 대립했다.
파시즘, 민족주의와 국수주의, 전체주의 등등.
그 결과 지구에서는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냉전 시대를 불러왔다.
‘이곳에서 그런 식의 대립과 전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지.’
물론 군주와 플레이어라는 초월적인 존재들이 있기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잘만 하면 일부 세력을 지구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가능할 것 같고.’
톡 까놓고 말해서 설사 실패하더라도 현 침략자 차원의 정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수만 있다면 무조건 이득이었다.
‘기왕이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득세했으면 좋겠는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말로만 들었을 때는 상당히 이상적이었다.
특히 지배계급에게 수탈당하는 피지배계급의 귀를 달콤하게 적셔 준다.
하지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무조건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는, 근본부터 잘못된 사상이다.
그런 망조가 든 사상이 침략자들의 차원에 퍼져 나간다면?
언젠가 침략자 차원과 정면으로 승부를 벌여야 하는 지구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이득이었다.
‘해 보자.’
현성과 지구의 입장에서는 시도해도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는 일이었다.
현성은 자신의 지시에 절대복종할 수밖에 없는 휘하 플레이어들을 교육시킨 후 사방으로 흩뿌렸다.
지시를 받은 신하들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영토였다.
하지만 현성은 그 정도에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현재 현성이 활동하고 있는 그라도 왕국 전역은 물론 주변에 인접해 있는 하루크 왕국과 프로드 왕국을 넘어서 침략자들의 차원 전역으로 퍼트려 볼 생각이었다.
‘성공만 하면 대박이야.’
물론 실패한다고 해도 현성과 지구가 손해 볼 일은 없었다.
* * *
현성은 교육을 마친 휘하 플레이어들을 침략자 차원 전역에 흩뿌린 후에도 정복 전쟁을 계속했다.
현재 현성의 위치는 그라도 왕국의 최변방이었다.
현성은 변방에 존재하는 하급 영지를 모두 접수한 후 천천히 중앙 지역으로 이동했다.
중앙 지역으로 갈수록 하급 영주들의 레벨이 점점 올라갔다.
‘운이 좋았네.’
차원 게이트를 통해 왕국 변방으로 온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중앙 지역으로 갔었다면?
꽤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중앙 지역으로 갈수록 하급 영주와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빠르게 상승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
현성은 차원 게이트를 넘은 이후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그 덕분에 이동할 때마다 하급 영주들의 레벨이 계속 올라가더라도 별다른 부담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럼 이번에도 말끔하게 끝내자.’
현성이 차원의 이면 스킬을 사용해 아크사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주들을 쓸어버렸다.
그 후 현성은 다시금 차원의 이면 스킬을 사용해 코디기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주 진영에 잠입했다.
‘여기는 똘똘 뭉쳐 있네.’
아크사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주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었기에 모두 처리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한데 다행히 코디기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주들은 회의라도 하는지 한자리에 모두 모여 있었다.
‘나야 좋지.’
현성의 입장에서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하급 영주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는 것보다 한자리에 모여 있는 하급 영주들을 한 번에 처리하는 게 더 편했다.
‘뒷수습하기도 좋고.’
현성은 편안한 마음으로 회의실에 잠입했다.
그 후 신혈검을 뽑아 들었다.
가장 높은 레벨의 하급 영주를 제거하고 나머지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휘익!
현성이 신혈검을 휘둘렀다.
서걱!
하급 영주 하나의 목이 가볍게 베어졌다.
현성은 마력 필드 스킬을 사용한 후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사용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암살자다!”
“헬파이어!”
“수호의 장벽!”
하급 영주들이 마력을 끌어 올려 공격 스킬과 방어 스킬을 사용했다.
하지만 마력 필드 때문에 제대로 스킬을 발동시키지 못했다.
‘무난하네.’
이번에도 손쉽게 장악이 가능할 것 같았다.
푸욱!
그 순간 날카로운 단도 하나가 현성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컥!”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그와 함께 온갖 메시지가 떠올랐다.
-신체가 극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신체가 마비됩니다.
-신체가 녹아내립니다.
-마력의 흐름이 뒤엉킵니다.
‘기습?’
현성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습격 전에 미리 호루스의 눈으로 코디기 대영주 휘하 하급 영주 진영의 정찰을 다 끝냈다.
신안에도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한데 갑자기 기습을 당했다.
기습을 하러 왔다가 반대로 기습을 당한 것이다.
‘반격을 해야 해.’
당장 신혈검을 휘둘러 싸워야 했다.
문제는 극심한 통증만 느껴질 뿐 몸과 마력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현성의 심장에 단도를 박아 넣은 뱀 인간이 이번에는 장검을 뽑아 들었다.
서걱!
그 후 곧바로 장검을 휘둘러 현성의 목을 베어 버렸다.
털썩!
심장에 단도가 틀어박히고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현성의 몸이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생각보다 손쉽게 끝났군.”
현성의 목을 날려 버린 뱀 인간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혀를 날름거렸다.
뱀 인간은 주군인 코디기 대영주의 명령을 받고 아군 하급 영지들을 보호하며 아크사 대영주의 하급 영지를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다.
한데 하급 영지에 와 보니 상황이 뱀 인간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아군 하급 영주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당연히 아크사 대영주의 부하인 무드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랑자 하나가 기습 공격으로 코디기 대영주와 아크사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있었다.
이에 뱀 인간은 기습에는 기습으로 대응해 주기로 했다.
뱀 인간은 과거 주군인 코디기 대영주에게 하사받은 초월 등급 아이템을 사용했다.
초월 등급 아이템에는 초월 등급 은신 스킬이 내장되어 있었다.
뱀 인간은 차분히 기다렸다.
그 후 적이 모습을 드러내자,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상대의 심장에 초월 등급 단검을 꽂아 넣었다.
그 결과 손쉽게 문제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었다.
“역시 아드모 님이십니다.”
“아드모 님이 아니었다면 모두 죽었을 겁니다.”
하급 영주들이 목소리를 높여 뱀 인간을 칭송했다.
“무드크도 아니고 고작 이런 녀석에게 그렇게 큰 피해를 입다니, 실로 한심하구나.”
뱀 인간이 짐짓 얼굴을 찌푸리며 하급 영주들을 질책했다.
무드크를 쓰러트려 큰 공을 세울 생각이었다.
한데 고작 부랑자 하나 잡고 끝나게 생겼다.
“그, 그게 저희들의 실력이 부족하여…….”
“송구합니다, 아드모 님.”
하급 영주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이런저런 변명을 했다.
“시끄럽다! 너희들의 실책을 내가 직접 주군께 아뢸 것이다.”
큰 공을 세울 기회를 잃어버려 기분이 나빠진 뱀 인간의 말에 하급 영주들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파지지직!
그때였다.
갑자기 피어오른 강대한 마력과 함께 칠흑빛 뇌전이 방심한 뱀 인간과 하급 영주들을 덮쳤다.
“크아아악!”
“살려 줘!”
하급 영주들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죽어 나갔다.
“크윽!”
다행히 뱀 인간은 죽지 않았다.
하급 영주들을 방패막이 삼아 몸을 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기가 흐르던 검은 비늘이 산산조각 나 있었고, 몸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것이 꽤 큰 타격을 입은 듯 보였다.
“어, 어떻게?”
갑작스러운 공격의 진원지를 파악한 뱀 인간이 당혹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뱀 인간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떨어진 목을 다시 붙인 현성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죽을 뻔했네.’
진짜 죽을 뻔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을 받은 현성은 마비된 몸과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마력 때문에 반격을 할 수가 없었다.
만약 뱀 인간이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현성의 몸에 범위 스킬을 시전했다면?
현성은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다행히 뱀 인간은 현성의 심장을 파괴하고 목을 베어 내는 수준에서 승리를 확신했다.
‘불사의 서 덕분에 살았어.’
불사의 서에는 ‘신체가 완벽하게 소멸되지 않는 한 죽지 않습니다.’라는 옵션이 붙어 있다.
이 옵션 덕분에 현성은 심장이 박살 나고 머리가 날아가더라도 죽지 않는다.
현성을 죽이기 위해서는 신체를 살점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소멸시켜야 했다.
한데 뱀 인간은 방심했다.
현성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절주절 떠들며 하급 영주들을 갈궜다.
그 시간 동안 현성은 마비된 신체를 회복시켰다.
스킬 저항력이 발동하고 불사의 서가 사력을 다해 몸을 회복시켰다.
그 결과 마비가 풀렸고 마력도 자유롭게 움직였다.
육체의 상처는 그리 크지 않았다.
소멸된 신체도 없었다.
그저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고 심장에 단도가 틀어박혔을 뿐이다.
이 정도 작은 상처는 불사의 서로 인해 순식간에 회복이 가능했다.
신체의 자유를 되찾은 현성은 곧바로 반격을 가했다.
그 후 심장에 박힌 단도를 뽑아내고 떨어진 머리와 몸통을 다시 하나로 합쳤다.
‘목숨 하나 날릴 뻔했네.’
설사 신체가 완벽하게 소멸되더라도 불사의 서에 내장된 부활의 권능으로 인해 다시 되살아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겨우 초월 등급으로 업그레이드시킨 불사의 서가 다시 신화 등급으로 다운그레이드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경이로운 수준의 회복 스킬을 가지고 있구나.”
뱀 인간은 무척 놀란 듯 보였다.
사실 당연했다.
불사의 서는 유일 초월 등급.
불사의 서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직 현성뿐이었다.
“다시 죽여 주마. 그리고 그 스킬을 주군께 바쳐야겠다.”
뱀 인간이 장검을 뽑아 들고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현성은 신혈검 대신 용혈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뱀 인간을 향해 달려들었다.
꽈아아앙!
현성의 손에 들린 용혈검과 뱀 인간의 손에 들린 장검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용혈검과 장검에 담긴 마력이 서로 충돌하며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가진 마력의 파편을 사방으로 토해 냈다.
‘뚱이, 덕구.’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이 정령을 소환했다.
‘용인화. 영역 선포.’
용인화 스킬과 영역 선포 스킬도 사용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 것이다.
아무리 기습이라고 해도 현성의 심장을 꿰뚫고 머리를 날려 버린 녀석이었다.
당연히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렇지만 상대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상당히 강했다.
‘그럼 나도 그에 맞게 대응을 해 줘야지.’
현성은 흑뢰신의 숨결을 연속해서 최대치로 사용했다.
뚱이와 덕구도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두르고 맹공을 퍼부었다.
상대의 방어가 탄탄했기에 유효타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현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현성의 목표는 체력 소모였으니까 말이다.
체력 소모가 큰 흑뢰신의 숨결을 남발하자, 현성의 체력이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그리고…….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패시브 스킬 광폭화 - 초월 등급 스킬이 발동합니다.
-힘, 민첩, 마력, 정신력 스텟이 100% 증가합니다.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50% 감소했습니다.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패시브 스킬 천뢰신의 갑옷 – 유일 초월 등급 스킬이 발동합니다.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5배 상승합니다.
조건을 만족시킨 두 개의 초월 등급 패시브 스킬이 발동했다.
패시브 스킬이 발동한 현성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뱀 인간을 밀어붙였다.
꽈앙! 꽈앙!
나름 팽팽하던 대결이 일방적으로 바뀌어 버렸다.
뱀 인간도 이런저런 스킬들을 사용해 현성에게 대항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악을 해 봐야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거기다 용혈을 탐하는 용혈검의 능력까지 뱀 인간을 괴롭혔다.
‘뱀 인간도 용종으로 들어가는구만.’
파충류의 외형을 가지고 있는 걸 보고 신혈검 대신 용혈검을 뽑아 들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현성은 전신에 용의 혈갑을 두르고 용의 혈조까지 사용하면서 여유롭게 뱀 인간을 몰아붙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꽈아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뱀 인간의 팔 하나가 날아갔다.
“크윽!”
뱀 인간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렀다.
‘어떻게 이런?’
뱀 인간은 지금의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자신이 부랑자 따위에게 밀릴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눈앞에 드러난 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정말 강하구나. 코디기 대영주님의 휘하에 들어라. 그러면 그분께서 너에게 상상도 하기 힘든 보상을 내리실 것이다.”
뱀 인간이 회유를 시도했다.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미친놈.”
현성이 얼굴을 찌푸리며 더 강력한 맹공을 퍼부었다.
뱀 인간의 몸이 피투성이로 물들었다.
“거절인가?”
뱀 인간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현성은 굳이 대답할 가치를 못 느꼈다.
현성이 다시금 맹공을 퍼부었다.
“생포하기는 힘들 것 같고……. 그럼 죽이는 수밖에 없겠군.”
사아아아악!
뱀 인간이 아공간을 열었다.
슈슈슈슉!
그 안에서 플레이어들이 무더기로 등장했다.
“저놈을 죽여라.”
뱀 인간의 명령을 받은 플레이어들이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숫자는 무려 2백 명이 넘었다.
신안으로 살펴본 결과 레벨은 다양했다.
하지만 모두 기본으로 1500레벨은 넘어 보였다.
2000레벨을 넘어선 강자들의 숫자도 서른 이상으로 보였다.
‘가능할까?’
가장 안전한 해결 방법은 승전 대군주의 부름으로 타무그를 소환하는 것이다.
타무그를 소환하면 그 뒤에는 게임 끝이다.
타무그가 직업 전용 스킬을 사용해 자신의 수하들을 부를 테니까 말이다.
그럼 아주 손쉽게 승리할 수 있다.
굳이 타무그를 소환하지 않더라도 아공간에 있는 신하들과 방금 전 하급 영주들을 죽이면서 손에 넣은 플레이어들을 동원한다면 큰 피해 없이 저들을 전멸시킬 수 있다.
‘가능할 것도 같은데.’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현성 혼자서 저들 모두 전멸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번 해 보자.’
타무그를 소환하거나 플레이어들을 동원하는 건 이기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뒤에 해도 늦지 않았다.
타악!
현성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용혈검을 휘둘렀다.
꽈아아아앙!
용혈검에 담겨 있던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가 뱀 인간의 수하들을 휩쓸었다.
하지만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1000레벨대 플레이어들이 피해를 조금 봤을 뿐이다.
‘확실히 만만치 않아.’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현성의 머릿속에서는 패배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꽈앙! 꽈앙! 꽈앙!
온갖 스킬이 난무했다.
마력의 파편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피와 살이 튀는 접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현성은 휘하 신하들이 보내 주는 체력과 마력을 바탕으로 미친 듯이 날뛰었다.
2백 명에 달하던 적들의 숫자가 1백 명으로 줄어들었다.
1백 명 정도 남아 있던 적들의 숫자가 50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뱀 인간을 포함해 고작해야 20명 정도의 플레이어들뿐이었다.
퇴로는 없다.
현성은 새롭게 신하가 된 플레이어들을 이용해 마력 역장을 펼쳐 놨다.
또 그들을 이용해 포위망을 구축했다.
‘진짜 이겼네.’
현성의 몸은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하지만 상처는 불사의 서로 인해 모두 회복된 상태였다.
반면 적들의 모습은 완전히 만신창이였다.
‘끝을 보자.’
현성이 공격을 시작했다.
서걱!
“커억!”
파지지직!
“크아아악!”
현성이 용혈검을 휘두르고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착실하게 적의 숨통이 끊어졌다.
그때였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일반 등급]
-최초로 상위 레벨의 적 플레이어 300명을 쓰러트리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적 플레이어 사냥꾼 - 일반 등급]
‘어?’
전혀 예상치 못한 업적이 떠 버렸다.
‘이게 정말 가능하다고?’
사냥꾼이라는 업적은 현성에게 있어서 상당히 익숙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동일종의 몬스터 3백 마리를 사냥하면 주는 업적의 명칭이 바로 사냥꾼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몬스터가 아니라 적 플레이어를 쓰러트려도 동일 업적을 준 것이다.
‘큰 의미가 없기는 한데.’
일반 등급 업적인 사냥꾼이 주는 스텟은 고작 1이다.
그것도 모든 스텟도 아니고 다섯 개의 스텟 중 하나만 1이 올라간다.
한데 뭔가 좀 달랐다.
‘분명히 그래야 하는데.’
크지는 않지만 스텟이 늘어난 느낌이 났다.
고작 1이 늘어났다면 절대 느낄 수 없는 변화였다.
‘도대체 뭐지?’
현성이 전투를 이어 나가며 상태창을 열었다.
그리고 칭호 [적 플레이어 사냥꾼 - 일반 등급]의 정보를 확인했다.
[적 플레이어 사냥꾼 - 일반 등급]
-모든 스텟 5 증가.
‘어라?’
이건 기존에 현성이 알고 있던 사냥꾼 업적의 보상이 아니었다.
‘모든 스텟 5증가라니?’
단일 스텟 1증가가 무려 모든 스텟 5증가로 늘어나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희귀 등급으로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없어.’
원래는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일반 등급 사냥꾼 업적이 희귀 등급 포식자로 바뀌어야 했다.
‘설마?’
그때 현성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현성이 과거 획득했던 업적과 방금 전 획득한 업적을 비교해 봤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전설 등급]
-단독으로 상위 레벨의 몬스터 블러드 폭스 10,000마리를 사냥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블러드 폭스 학살자 - 전설 등급]
‘달라.’
문구가 달랐다.
같은 믿을 수 없는 업적이기는 하지만 기존에 몬스터를 사냥했을 때는 단독으로라는 단서가 붙었다.
즉, 다른 이들도 조건만 맞추면 현성과 동일한 업적을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방금 뜬 믿을 수 없는 업적은 ‘단독’이 아니라 ‘최초’였다.
‘그럼 이해가 되네.’
일반 등급 최초 업적 보상은 모든 스텟 5 증가였다.
‘그럼 앞으로 희귀, 영웅, 전설을 모두 독점할 수 있다는 뜻이네.’
놀라웠다.
또 단독이 아닌 최초 업적인 만큼 전설이 끝이 아니라 준신화, 신화, 초월, 창초까지 이어질 확률이 높았다.
‘억지로 하지는 말자.’
업적을 빠르게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냥 침략자 차원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현성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적으로서 침략자 차원의 플레이어들과 싸워야 할 때는 싸울 것이다.
전투가 벌어지면 일절 자비도 없이 그들의 목숨을 거둘 것이다.
하지만 업적 획득을 위해 억지로 침략자 차원의 플레이어들을 죽이는 살인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군주만 쓰러트리고 휘하 세력을 흡수하는 식으로도 충분해.’
생각을 정리한 현성이 계속해서 검을 휘둘러 적 플레이어들을 쓰러트렸다.
서걱!
용혈검이 플레이어 하나의 목을 말끔하게 베어 냈다.
저벅저벅.
현성이 마지막 남은 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도, 도대체 어떻게?”
뱀 인간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적은 단 한 명이었다.
한데 그 한 명에게 자신의 수하들이 전멸당했다.
“그냥 얌전히 죽어라.”
현성이 그 말과 동시에 용혈검을 휘둘렀다.
좌악!
뱀 인간의 몸이 두 동강 났다.
사실 뱀 인간은 현성에게 저항할 만한 여력도 없는 상태였다.
‘끝났네.’
이제는 뒷수습을 할 때였다.
현성은 일단 사체에서 나온 아이템을 회수하고 아이템으로 변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의 시신에서 정보를 추출했다.
‘전쟁이 꽤 치열하네.’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전쟁이 장기전으로 흘러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나야 나쁠 게 없지.’
현성의 입장에서는 두 대영주의 전쟁이 장기화되어야 제대로 꿀을 빨 수 있었다.
‘더 빠르게 움직이자.’
전쟁이 종결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하급 영지들을 함락시키고 휘하 플레이어들의 숫자를 늘려야 했다.
* * *
“이게 무슨?”
코디기 대영주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하급 영지를 지키고 더 나아가 빼앗기 위해 아드모를 파견했다.
한데 아드모와 그 수하들이 모두 전멸했다.
‘추가로 전력을 투입한 건가?’
그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아크사 대영주가 하급 영주들에게 파견한 무드크는 강하다.
하지만 아드모 역시 그에 못지않은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
어디 그뿐인가?
아드모는 암살에 활용하기 좋은 초월 등급 아이템을 두 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런 아드모가 당했다니?
코디기 대영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더 많은 전력을 지방 영지로 파견해야 하나? 아니면 지금 승부를 봐야 하나?’
코디기 대영주의 고민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덜컹!
그때 코디기 대영주의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주군, 큰일입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아크사 대영주가 직접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뭐?”
대영주는 그 영지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대영주만 살아 있으면 휘하 수하들이 수없이 죽어 나가더라도 얼마든지 전쟁을 진행할 수 있다.
반대로 대영주만 잡으면 큰 희생 없이 조기에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다.
과거 벌어졌던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전쟁에서 아크사 대영주가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도 코디기 대영주가 꽁꽁 숨어서 수하들에게 결사 항전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수하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고 대영주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결국 물러난 것이다.
계속 전쟁을 이어 나갔다면 아크사 대영주는 아마 코디기 대영주의 세력을 완전히 전멸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그 과정에서 아크사 대영주의 세력도 엄청난 손해를 봤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적당한 이득을 봤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전쟁을 마무리하고 물러난 것이다.
코디기 대영주는 이번에도 비슷한 전략을 사용했다.
자신은 꽁꽁 몸을 숨기고 수하들만 전장으로 내보냈다.
사실 그건 아크사 대영주도 마찬가지였다.
대영주가 암살이라도 당하면 큰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한데 아크사 대영주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군이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었습니다. 아크사 대영주가 영역 선포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신하의 말에 코디기 대영주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도대체 왜?’
유리한 상황인 아크사 대영주가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군!”
신하의 말에 코디기 대영주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크사 대영주가 암살의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전장에 나서서 군주 전용 스킬을 사용했다.
이에 맞대응하기 위해서는 코디기 대영주 역시 암살의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전장에 나서야 했다.
“가자.”
코디기 대영주는 어쩔 수 없이 전장으로 향했다.
전처럼 몸을 숨기고 웅크린 채로 있다가는 완전히 밀릴 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아크사 대영주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을까? 나를 유인하기 위해서인가?’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 가면서 자신을 유인할 필요가 없었다.
하급 영지를 대거 빼앗은 이상 무난하게 장기전을 이어 가면 무조건 아크사 대영주가 유리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잘된 일이다.’
아드모와 그 수하들이 전사한 이상 장기전은 승산이 없었다.
그럼 이길 확률이 낮더라도 단기전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