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권. 전면전 (155/225)
  • ┃전면전

    ‘이래서 그랬었구나.’

    무드크가 왜 그렇게 강하게 느껴졌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나랑 비슷한 타입이었어.’

    현성은 비슷한 수준의 강자 한 명과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것보다 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강자 다수를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이제 보니 그것은 무드크도 마찬가지였다.

    ‘약자한테 강하고 강자한테 애매한 타입이었어.’

    자신감이 올라갔다.

    현성이 일단 예를 눌러 마력 필드 스킬을 익혔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할 만해.’

    마력 필드 스킬을 익히기 전까지는 무드크와 그 수하들을 상대로 다시 싸워도 이길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긴다는 확신은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는 승산이 생겼다.

    이게 바로 초월 등급 스킬의 힘이었다.

    ‘하긴 차원의 이면만 해도 엄청난 스킬이지.’

    차원의 이면이 없었다면 그렇게 손쉽게 수많은 하급 영주들을 제거할 수 없었을 터였다.

    ‘더 강해질 수 있어.’

    아직도 전리품은 많이 남았다.

    남은 전리품 중에 초월 등급 스킬북이 얼마나 나올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한두 개만 더 나와도 현성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이득이었다.

    거기다 신화 등급 스킬북이 나온다고 해서 현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초월 등급보다는 효과가 떨어지지만, 신화 등급 스킬 역시 현성의 전투력을 올려 주니까 말이다.

    만약 현성이 익히고 있는 성장형 스킬들과 같은 계열이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성장형 스킬들을 성장시켜 주는 질 좋은 재료가 된다.

    어디 그뿐인가?

    무드크와 그 수하들이 착용하고 있던 아이템들은 대부분이 신화나 준신화 등급이었다.

    지구의 플레이어들에게 전해 준다면, 제대로 전력 강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제대로 대박을 쳤네.’

    단 한 번의 전투로 엄청나게 많은 전리품을 얻었다.

    ‘차라리 또 한 무더기 보내 줬으면 좋겠네.’

    아크사 대영주가 오판을 해서 다시금 대규모 토벌군을 보낸다면?

    그들은 현성을 강화시켜 주는 맛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현성에게는 강한 적을 손쉽게 무력화할 수 있는 자력 결계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 * *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꽝!

    아크사 대영주가 분노 어린 외침과 함께 집무실 책상을 산산조각 냈다.

    “무슨 일이십니까, 주군?”

    갑작스럽게 진노한 아크사 대영주의 모습에 신하들이 놀라 물었다.

    “무드크와 그 수하들이 모두 죽었다.”

    “예? 어떻게 그런 일이?”

    신하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무드크와 그 수하들은 아크사 대영주 세력의 핵심 무력 부대 중 하나였다.

    고작 하급 영지를 복구하러 갔다가 죽을 이들이 아닌 것이다.

    이건 하급 영지 열몇 개가 날아간 것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의 큰 타격이었다.

    “그것도 순식간에 전멸당했다. 고작 10초 안 되는 시간에 말이다.”

    아크사 대영주의 말에 신하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드크와 그 수하들은 대영주들 간에 전면전이 벌어진다고 해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강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불과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전멸했다는 것은…….

    “다른 대영주의 함정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당장 대비를 해야 합니다.”

    신하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무드크와 그 수하들이 하급 영지를 무단으로 점령한 부랑자에게 죽었을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럼 답은 하나였다.

    바로 다른 대영주의 함정.

    휘하 수하 중 하나를 부랑자로 위장시켜 아크사 대영주의 하급 영지를 점령한다.

    그 후 그걸 미끼 삼아 아크사 대영주의 주력인 무드크와 그 수하들을 일거에 쓸어버린다.

    이게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으득!

    아크사 대영주가 이를 악물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확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짐작이 가는 인물은 있었다.

    ‘코디기 놈이 분명해.’

    아크사 대영주의 영지와 인접해 있는 영지들의 주인은 둘이다.

    대영주 세키라와 대영주 코디기.

    아크사 대영주는 둘 모두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코디기 대영주와는 몇 년 전 전면전에 준하는 전투가 벌어졌을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

    아크사 대영주는 그 전투에서 승리해 꽤 큰 이득을 봤다.

    반면 코디기 대영주는 큰 손해를 봤다.

    그 후 코디기 대영주는 아크사 대영주를 향해 이를 박박 갈고 있었다.

    조만간 복수를 할 거라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기도 했다.

    “코디기 놈의 짓이 분명하다.”

    아크사 대영주가 이를 박박 갈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럴 확률이 높아 보이옵니다.”

    “코디기 그 음흉한 자가 일을 벌인 것입니다.”

    신하들도 아크사 대영주의 말에 동의했다.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사이가 나쁘기도 했고 다른 대영주인 세키라의 경우 다른 대영주와 분쟁 중이기에 허튼짓을 할 여력이 없었다.

    “싸움을 걸어온다면 받아 줘야지. 출정을 준비하라.”

    아크사 대영주의 말에 신하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출정이라니?

    “코디기 놈에게 본때를 보여 줄 것이다!”

    아크사 대영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주, 주군, 참으시옵소서!”

    “아직은 때가 아니옵니다!”

    몇몇 신하들이 질색하며 반대를 했다.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뭐가 때가 아니라는 말이오? 우리는 항상 싸워 이길 준비가 되어 있소!”

    “맞소, 코디기 놈들이 뭐가 무섭다는 말이오?”

    신하들이 두 패로 갈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싸우자는 쪽이 우세했다.

    “당하고 가만히 있으면 비웃음거리가 될 뿐이오.”

    “맞소, 당했으면 당한 만큼 갚아 주어야지.”

    전쟁은 위험하다.

    하지만 반대로 기회이기도 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많은 전리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전리품을 바탕으로 강해질 수 있다.

    결정적으로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들은 과거 코디기 대영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억이 있었다.

    “모두 그만. 난 이미 결정을 내렸다.”

    아크사 대영주의 말에 신하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

    “나도 그대들의 걱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크사 대영주가 전쟁을 반대하는 신하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무드크가 당할 정도면 꽤 큰 전력을 변방으로 뺐을 것이다.”

    아크사 대영주는 바보가 아니었다.

    무드크와 그 수하들은 아군의 주력이다.

    그런 이들을 순식간에 제거할 정도라면, 코디기 대영주 역시 적지 않은 세력을 변방으로 보냈다는 말이 된다.

    지금 기습을 가한다면?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리고 손해를 본 상태에서 가만히 있으면 코디기 대영주의 세력만 강성해질 뿐이다.

    내가 손해를 봤다면 상대도 손해를 보게 해야 했다.

    “지금 기습을 가한다면,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가?”

    아크사 대영주의 말에 전쟁을 반대하던 신하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반면 전쟁을 찬성하던 신하들은 신이 나서 입을 놀렸다.

    “맞는 말씀이옵니다.”

    “시간을 끌수록 상황은 아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입니다.”

    “당장 공격을 해야 하옵니다.”

    신하들의 말에 아크사 대영주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당장 출발한다.”

    아크사 대영주의 명령과 함께 전쟁이 시작되었다.

    * * *

    아크사 대영주는 당장 소집할 수 있는 병력을 총동원해 기습적으로 코디기 대영주의 영토를 급습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코디기 대영주는 큰 피해를 입었다.

    사실 코디기 대영주가 큰 피해를 입은 것은 기습을 당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현성 때문에 전력의 상당 부분을 변방에 배치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크사 대영주는 현성을 토벌하기 위해 무드크와 그 수하들을 변방으로 보냈다.

    그 사실을 파악한 코디기 대영주는 무드크와 그 수하들이 이번 기회에 변방 하급 영지들을 대대적으로 침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군 하급 영지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전력을 변방으로 보냈다.

    하급 영지도 지키고 운이 좋다면 무드크와 그 수하들을 제거해 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한데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기습을 당한 것이다.

    코디기 대영주는 자신이 아크사 대영주가 판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길길이 날뛰었다.

    그리고 변방에 보낸 병력을 회수해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했다.

    사실 말이 반격이지 전 병력을 총동원한 전면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코디기 대영주가 병력을 끌어모으자 아크사 대영주도 병력을 끌어모았다.

    대영주들 간의 전면전이 시작된 것이다.

    * * *

    “전쟁?”

    현성이 황당한 표정으로 부하 사자 인간에게 물었다.

    “예, 주군.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하하하하.”

    현성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전쟁이라니?

    대영주들 간의 분쟁이 생길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전쟁까지 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긴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사이가 엄청 안 좋기는 했지.’

    메모리 스틸로 얻은 정보에 따르면 둘은 언제고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사실 의도치 않게 둘의 싸움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해 왔던 세키라 대영주가 다른 대영주와 분쟁이 생긴 순간부터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는 한판 붙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현성이 등장해 두 세력의 충돌을 앞당긴 것이다.

    현성으로서는 전혀 나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나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현성이 차원 게이트를 넘은 목적은 스스로가 강해지는 것도 강해지는 거지만, 침략자 차원의 전력을 깎으려는 것도 있었다.

    한데 의도치 않게 그 목적을 손쉽게 이뤄 버렸다.

    ‘잘만 이용하면 더 큰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겠어.’

    호전적인 대영주들의 세력을 충동질하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루시아의 차원은 영지와 영지 그리고 왕국과 왕국 간의 불화로 너무 허무하게 무너졌다.

    카렌 역시 지구의 국가들을 분열시켜 서로 싸우게 만들려고 했다.

    ‘나라고 못 할 건 없어.’

    침략자들이 지구에서 했던 짓을 그대로 갚아 주면 그만이다.

    ‘한번 해 보자.’

    현재 현성은 고작 하급 영지 몇 개를 가지고 있는 하급 영주에 불과했다.

    그런 현성이 대영주들끼리 싸움을 붙였다.

    현성의 세력이 더 커진다면?

    ‘국가 간의 전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어.’

    제대로 분탕질을 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현 상황은 어떻지?”

    “아크사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주들과 코디기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주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침략자 차원의 플레이어들은 상당히 호전적이었다.

    그리고 영지전을 본인의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뭐, 과거의 지구도 마찬가지였지.’

    전쟁은 리스크가 큰 만큼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컸다.

    “전투를 준비해라.”

    “예?”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

    그동안은 다른 대영주와 척을 지지 않기 위해 아크사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지들만 공격했다.

    하지만 전면전이 벌어진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크사 대영주 휘하의 영지든 코디기 대영주 휘하의 영지든 닥치는 대로 공격해 점령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둘 다 직접 못 와.’

    현성이 가장 경계하는 하는 일은 단 하나.

    바로 대영주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현성이 있는 변방으로 오는 것이었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해야 하기에 그럴 일이 벌어질 확률은 낮았다.

    하지만 완전히 제로는 아니었다.

    확률은 낮지만 서로 화해를 할 수도 있고 손을 잡을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제 그럴 확률이 완전히 제로가 되어 버렸다.

    왜? 서로 전면전을 벌이고 있으니까.

    ‘주력을 이끌고 전면전을 벌이는 대영주가 한가하게 변방 영지의 일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겠지.’

    물론 적당한 수준의 지원군을 보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나한테 땡큐지.’

    적당한 수준의 지원군이 온다면?

    자력 결계를 사용해 통째로 삼켜 버리면 그만이다.

    * * *

    “공격! 공격하라!”

    하급 영주들이 고래고래 목소리를 높였다.

    “와아아아아아!”

    그와 함께 수천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어 창과 칼을 휘둘렀다.

    챙! 챙!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화르르르륵!

    꽈아아아앙!

    그뿐 아니라 온갖 공격 스킬들이 전투를 치르는 플레이어들을 공격했다.

    불과 며칠 전.

    군주의 외침으로 인해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주들에게 전쟁 소식이 전해졌다.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주들은 군주의 외침을 듣자마자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이건 절호의 기회였다.

    전쟁을 통해 휘하 신하들의 숫자를 늘릴 수 있고 지배하는 영토를 더 넓게 늘릴 수도 있다.

    또 전리품을 손에 넣어 자신과 신하들의 전투력을 상승시킬 수 있었다.

    전투준비를 마친 하급 영주들은 곧바로 전쟁을 시작했다.

    단순히 하급 영지 하나와 다른 하나의 충돌이 아니었다.

    수십 개의 영지가 하나로 모여 연합군을 형성해 적과 싸웠다.

    ‘장관이네.’

    차원의 이면 스킬을 사용한 상태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성이 입을 쩍 하고 벌렸다.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가 이렇게 대규모로 맞붙은 전투는 난생처음 봤다.

    ‘확실히 몬스터를 상대하는 거랑은 다르네.’

    공격 스킬과 방어 스킬이 난무한다.

    진형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힐러를 제거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들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확실히 침략자 차원과 전면전이 벌어지면, 지구가 불리하겠어.’

    지구는 플레이어들끼리의 전투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한데 침략자 차원의 플레이어들은 같은 플레이어와의 전투 경험이 상당히 풍부했다.

    ‘혹시 모르니까 녹화해 놔야지.’

    현성은 마석으로 작동하는 캠코더를 꺼내 전장이 잘 보이는 장소에 설치했다.

    ‘현대 물품이 잘 작동해서 다행이야.’

    본래 폭탄을 비롯한 전자 기기는 던전 안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침략자 차원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한 것이다.

    ‘도대체 던전 안에서는 왜 작동을 안 하는 걸까? 차원 게이트와 차원 게이트 사이에 있는 공간이라서 그런가?’

    던전 안에서 현대 병기의 사용이 가능했다면, 몬스터 사냥이 더 손쉬웠을 것이다.

    ‘뭐, 일단 침략자 차원에서는 잘 작동하니, 그것만 해도 다행이지.’

    사실 정상적으로 작동할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다.

    현성이 그동안 타 차원에 팔아먹은 전자 기기들이 멀쩡하게 잘 작동했으니까 말이다.

    ‘무드크 같은 고레벨 플레이어들에게는 통하지 않겠지만…….’

    저 정도 수준이라면 현대 병기도 충분히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현대 병기를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현성에게는 암살이라는 손쉬운 해결책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 * *

    날이 저물고 전투가 끝났다.

    치열하게 접전을 벌인 양군은 휴식에 들어갔다.

    “조금만 더 밀어붙였다면 승기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을!”

    코디기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주 하나가 아쉬운 듯 목소리를 높였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시오. 전체적인 전황은 아군에게 유리하오.”

    다른 하급 영주가 그를 달랬다.

    “맞소이다! 이번 전쟁은 이미 우리가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요!”

    코디기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주들은 승리를 확신했다.

    사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게 당연했다.

    적인 아크사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주들 중 현성의 손에 목숨을 잃은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심하지는 마시오. 그놈들이 언제 참전할지 모르니까.”

    한 하급 영주의 발언에 좋던 분위기가 산산조각 났다.

    “음,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아직까지는 조용하다고 하던데…….”

    “그놈들은 우리의 적이오. 그 점을 명심하셔야 하오.”

    “알고 있소.”

    하급 영주들이 긴장감을 높였다.

    여기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그놈들은 바로 현성과 그 휘하 세력이었다.

    코디기 대영주 측 하급 영주들은 현성이 점령한 14개의 영지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현성이 벌인 일이 아크사 대영주의 함정이었다는 코디기 대영주의 전언 때문이었다.

    여기서 웃긴 것은 아크사 대영주 휘하의 신하들 역시 현성을 코디기 대영주의 세력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코디기 대영주와 아크사 대영주 모두 현성이 한 일을 서로의 함정이라고 생각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하하! 무엇을 그리 걱정하시오? 이미 우리가 승기를 잡았소. 그놈들이 합류한다고 해 봐야 크게 달라질 것은 없소이다.”

    한 하급 영주가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외쳤다.

    “맞는 말이오. 로텐다 영주님이 우리와 함께하는 한 이번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날 것이오.”

    “하긴 로텐다 영주님이 계신데 무엇이 두렵겠소?”

    하급 영주들이 영주 한 명을 띄워 줬다.

    그러자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로텐다 영주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로텐다는 이곳에 모인 하급 영주들의 수장이었다.

    레벨도 가장 높았고 전투 능력도 가장 뛰어났다.

    또 휘하 신하들 역시 일반적인 하급 영지의 신하들보다 월등히 강했다.

    쉽게 이야기해서 다른 하급 영주들과 비교하면 독보적인 수준의 레벨과 세력을 가진 강자라는 뜻이었다.

    뭐, 그래 봤자 도토리 키 재기였다.

    대영주 휘하에는 로텐다 영주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수하들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말이다.

    “로텐다 영주님은 아마 이번 전쟁이 끝나면 대영주님의 부름을 받고 영전하실 것이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하급 영주들이 사방에서 로텐다 영주를 향한 아부를 쏟아 냈다.

    로텐다 영주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비록 임시직이라고는 하지만 다수의 하급 영주들을 거느리고 전쟁을 치르다 보니 마치 대영주나 왕이 된 기분이었다.

    “하하하, 이게 어찌 나 혼자만의 공이겠소? 모두가 힘을 합쳐 도와주었기에 이룰 수 있었던 결과…….”

    서걱!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공치사를 하던 로텐다 영주의 목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어?”

    “이게 무슨?”

    하급 영주들이 잔뜩 당황했다.

    현성은 당황한 하급 영주들을 향해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사용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자신들을 향해 공격이 날아오자, 하급 영주들이 다급하게 마력을 끌어 올려 방어 스킬을 시전했다.

    하지만…….

    “도대체 왜?”

    평소 수족처럼 움직이던 마력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익! 흑룡의 비늘!”

    하급 영주들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애써 마력을 끌어 올려 방어 스킬을 시전했다.

    한데 뭔가가 이상했다.

    “아, 아니? 이게 왜 이래?”

    스킬의 때깔(?)이 평소와 달랐다.

    아주 짙은 검은색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흐릿한 게 제대로 적의 공격을 막아 줄 것 같지 않았다.

    꽈아아아앙!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가 하급 영주들이 만든 방어 스킬을 찢어발기고 그들의 몸을 강타했다.

    “크아아아악!”

    하급 영주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갔다.

    하지만 모두 죽은 건 아니었다.

    “도, 도망쳐야 해!”

    “여봐라! 밖에 아무도 없느냐!”

    가까스로 살아남은 일부 하급 영주들이 도망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수하들을 불렀다.

    하지만 너무 늦어 버렸다.

    현성은 차원의 이면 스킬이 풀리자마자 아공간을 오픈했다.

    그리고 아공간에서 뛰쳐나온 현성의 휘하 플레이어들이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비켜라, 이놈!”

    하급 영주 하나가 마력을 끌어 올려 공격 스킬을 시전했다.

    하지만…….

    꽈아아앙!

    현성 휘하의 플레이어가 가볍게 하급 영주의 공격을 소멸시켜 버렸다.

    “이럴 수가?”

    공격을 감행한 하급 영주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공격 스킬의 위력이 평소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단번에 적의 몸을 박살 냈을 것이다.

    한데 지금은 날아가는 와중에 위력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더니, 나중에 가서는 그 위력이 거의 반의반 토막이 나 버렸다.

    서걱!

    현성이 검을 휘둘러 포위망에 갇혀 있는 하급 영주들의 숨통을 끊어 나갔다.

    하급 영주들이 기를 쓰고 반항했지만, 이미 승기는 기울어 버렸다.

    현성과 휘하 플레이어들은 힘을 합쳐 하급 영주 전원을 제거했다.

    ‘좋아.’

    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회의장 내부에 있던 하급 영주들을 제거하는 데 불과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현성은 확실히 강해졌다.

    특히 무드크를 제거하고 손에 넣은 마력 필드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 줬다.

    하급 영주들 중 현성보다 마력 스텟이 높은 이는 없었다.

    당연히 하급 영주 전원이 마력 필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마력 필드의 디버프를 받은 하급 영주들은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몰살당했다.

    하급 영주들은 마력 역장을 펼쳐 공간 이동 스킬과 승전 대군주의 부름 스킬의 발동을 막았다.

    하지만 차원의 이면 스킬과 현성의 아공간 속에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던 플레이어들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군을 장악하라!”

    현성의 명령에 휘하 플레이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군주를 잃은 플레이어들은 갈팡질팡했다.

    휘하 플레이어들은 우선적으로 현성의 휘하에 들기를 거부하고 등용을 철회한 플레이어들을 제거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살기 위해서 복종을 선택했다.

    모두가 동시에 등용을 철회하고 주군의 원수를 갚겠다며 현성에게 대항했다면 골치가 아팠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군을 완벽하게 장악했습니다, 주군.”

    휘하 플레이어의 대답에 현성이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휘하 플레이어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무려 군주의 깃발 버프 효과가 1% 늘어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현성은 이 정도에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반대쪽도 다 쓸어버려야지.’

    현성은 이번 전쟁을 통해 하급 영주들의 세력을 모조리 쓸어 담을 계획이었다.

    ‘그럼 가 볼까?’

    현성이 휘하 플레이어들을 아공간에 넣었다.

    그 후 차원의 이면 스킬을 사용한 상태로 아크사 대영주 소속의 하급 영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날 밤 현성은 둘로 나뉘어 전쟁을 벌이고 있던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 휘하 하급 영주들의 목을 전부 베고 그들의 세력을 손에 넣었다.

    * * *

    침략자 차원의 군주들은 상당히 호전적이었다.

    또 문화 자체가 강자를 숭상했다.

    그래서 침략자 차원에서는 항상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플레이어 간의 전쟁이 자주 벌어지다 보니, 침략자 차원의 플레이어의 숫자가 늘어나기는커녕 줄어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살아남은 플레이어의 질은 올라갔다.

    전쟁 승리에 대한 반대급부도 있고 더 좋은 사냥터도 확보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강자 독식.

    그게 바로 침략자 차원의 규칙이었다.

    문제는 전쟁에서 패배한 플레이어들이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플레이어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적에게 굴복할 것인지, 최후까지 저항하다 죽을 것인지.

    그게 아니면…….

    “주군, 포위망이 점점 좁혀지고 있습니다.”

    푸른 피부에 3미터가 넘는 큰 키를 가진 상처투성이 거인이 전신을 붉은 피로 물들이고 있는 거인에게 말했다.

    “크윽!”

    전신이 붉은 피로 물든 거인이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붙잡힐 수는 없다.’

    하지만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마력 역장이 사방에 펼쳐져 있고 포위망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저게 유일한 희망인가?’

    전신이 붉은 피로 물든 거인이 눈앞에 일렁거리고 있는 차원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차원 게이트를 넘는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차원 게이트를 넘으면 타 차원이 나온다.

    문제는 그 타 차원을 지키고 있는 안전 결계였다.

    통과하면 다행이다.

    하지만 안전 결계를 통과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면?

    차원의 미아가 되어 더욱더 고통스럽게 죽어 갈 수밖에 없다.

    “차원 게이트를 넘는다.”

    피투성이 거인의 말에 다른 거인들이 이를 악물었다.

    현재 아군 차원이 침공 중인 차원은 신생 차원이다.

    즉, 자신들 중 대다수는 차원의 미아가 될 확률이 높았다.

    “적들에게 사로잡혀 조롱거리가 되거나 죽어서 적들의 힘을 키워 주는 양분이 되느니, 차리라 나는 차원의 미아가 되겠다.”

    “신들도 같은 생각이옵니다, 주군!”

    군주의 말에 신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가자!”

    피투성이의 거인이 그 말과 함께 차원 게이트로 발을 디뎠다.

    그와 동시에 피투성이 거인을 따르는 1백여 명의 거인들도 일제히 차원 게이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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