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권. 무드크 (154/225)
  • ┃무드크

    아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속박의 서였다.

    속박의 서는 자력 결계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

    ‘자력 결계만이 현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야.’

    문제는 적들의 접근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었다.

    ‘내가 직접 자력 결계를 펼치는 건 무리야.’

    그럼 믿을 수 있는 이에게 맡기면 된다.

    현성은 사자 인간 플레이어 중에서 가장 레벨이 낮은 이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가장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답게 두 눈에는 현성에 대한 충성심이 줄줄 넘쳐흘렀다.

    “받아라. 그리고 지금 즉시 내장되어 있는 스킬인 자력 결계를 펼쳐라.”

    “예!”

    최저레벨 플레이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손히 속박의 서를 받아 들고 자력 결계를 펼쳤다.

    ‘시간이 문제네.’

    자력 결계가 완전히 펼쳐지기 전까지 시간을 끌어야 했다.

    -모두 모여라!

    현성이 휘하 플레이어들을 모두 끌어모았다.

    일단 대화로 시간을 끄는 게 가장 좋았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그때는 힘으로 막는 수밖에 없다.

    * * *

    “호오.”

    무드크의 눈에 흥미로운 감정이 피어올랐다.

    ‘내가 올 걸 미리 알고 있었나?’

    플레이어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모두 애송이들일 뿐이다.

    자신과 수하들이 나선다면 1시간 안에 모두 정리가 가능했다.

    플레이어들의 싸움에서 숫자의 우위는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레벨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면, 수적 우위는 꽤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레벨이다.

    막말로 1000레벨 플레이어가 나서면 100레벨 플레이어 수백 수천이 모여 있어도 순식간에 쓸어버릴 수 있다.

    대영주가 무드크를 이곳에 파견한 것도 마찬가지 이치였다.

    무드크와 그 수하들의 무력은 절대적이다.

    하급 영지는 14개가 아니라 140개 모여도 절대 무드크와 그 수하들을 이길 수 없었다.

    “누가 새로운 영주냐?”

    무드크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호오! 감히 내 말을 무시하는 거냐?”

    무드크의 전신에서 강성한 마력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무드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순식간에 대기를 장악했다.

    그리고 현성 휘하의 플레이어들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크르릉!”

    “캬웅!”

    현성의 휘하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힘없이 휘청거렸다.

    쿵!

    중, 저레벨 플레이어들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나름 버티기는 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꺾여 버렸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초조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빌어먹을. 싸우라고 명령하면 다 이탈해 버리겠군.’

    차원의 이면 스킬을 사용해 몸을 숨기고 있던 현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입맛이 썼다.

    차이가 날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맹목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중, 저레벨 플레이어들은 아예 도움이 안 된다.

    그나마 전력이 될 만한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전투를 명하면 모두 현성을 배신할 것 같았다.

    ‘처참하네.’

    하룻밤 사이 13개의 성을 점령하고 나름 자신감에 차 있던 현성의 눈빛이 참담함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아직 마지막 한 수가 남아 있기는 했다.

    ‘거의 접근했어.’

    새롭게 등장한 적은 엄청나게 강했다.

    하지만 차원의 이면 스킬을 꿰뚫어 보지는 못했다.

    “어서 답하지 못하겠느냐!”

    적이 노성을 터트렸다.

    현성이 조심스럽게 적의 등 뒤를 점했다.

    그 후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로 뒤덮인 신혈검을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현성은 이미 용인화 스킬과 영역 선포까지 사용한 상태였다.

    어디 그뿐인가?

    미리 체력을 소모시켜 광폭화와 천뢰신의 갑옷도 발동시킨 상태였다.

    현성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전력을 다한 것이다.

    신혈검이 적의 목을 향해 날았다.

    좌악!

    붉은 선혈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현성의 안색은 그리 밝지 못했다.

    적의 반응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신혈검이 적의 목에 닿기도 전에 미리 몸을 비틀었다.

    그 덕분에 신혈검은 적의 목을 완전히 베어 내지 못했다.

    ‘아직 늦지 않았어.’

    현성이 신혈검을 비틀어 다시금 적의 목을 노렸다.

    꽈아아아앙!

    그 순간 커다란 폭음과 함께 현성이 몸이 힘없이 뒤로 밀려 났다.

    ‘실패다.’

    적의 몸은 어느새 황금빛 방어막으로 뒤덮여 있었다.

    현성이 휘두른 신혈검은 적의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사아아악!

    목에 나 있던 상처 역시 순식간에 아물어 버렸다.

    “제법이구나.”

    적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놀랍구나. 도대체 무슨 스킬을 사용해 나에게 접근한 것이냐?”

    적의 말에 현성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몸을 뒤로 날려 거리를 벌렸다.

    “으흠, 순순히 내 말에 대답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구나. 그럼 대답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주마.”

    휘익!

    적이 순식간에 현성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차원의 이면.’

    현성이 차원의 이면 스킬을 사용해 다시금 몸을 숨기려고 했다.

    -마력의 흐름이 뒤틀린 장소입니다. 액티브 스킬 차원의 이면 – 초월 등급의 발동이 캔슬되었습니다.

    ‘이럴 수가?’

    현성은 크게 놀랐다.

    지금까지 차원의 이면 스킬이 주변 마력의 영향으로 캔슬된 적은 단 한 번 없었다.

    한데 처음으로 예외가 생겨 버렸다.

    “이런 이런, 또 그 은신 스킬을 사용하려고 했느냐? 하지만 소용없다. 이 주변은 오직 나의 마력만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니.”

    사실 차원의 이면 스킬이 캔슬된 이유는 간단했다.

    차원의 틈으로 갈 수 있는 문을 만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원의 이면은 은신 스킬임과 동시에 차원의 벽을 넘는 공간 이동 계열 스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적의 마력에 방해를 받은 것이다.

    상대의 마력이 가진 질이 낮았다면 가볍게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마력이 너무 강성했다.

    ‘마력의 흐름이 불안정한 게 아니라 뒤틀렸다니?’

    현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로 전신을 뒤덮었다.

    휘익!

    현성이 몸을 뒤로 날려 거리를 벌리며 적을 향해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날렸다.

    하지만 날아가는 와중에 빠르게 그 위력이 줄어들었다.

    퍼어어어엉!

    그러더니 상대의 몸을 뒤덮고 있던 황금빛 방어막에 가볍게 막혀 버렸다.

    “소용없다. 이곳은 온전한 나의 영역이다.”

    현성이 이를 악물었다.

    주변이 적의 마력으로 뒤덮여 있다.

    사방이 적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인 것이다.

    “이제 그만 포기하고 순순히 무릎을 꿇거라. 그럼 나의 주군이신 아크사 대영주님의 신하가 될 자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미친.’

    현성은 상대가 아크사 대영주라고 생각했다.

    엄청나게 강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한데 아니었다.

    상대는 아크사 대영주가 아니라 대영주의 수하였다.

    ‘그럼 대영주는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대로 잡혀갈 수는 없지.’

    좀 더 시간을 끌어야 했다.

    -콰콰콰콰콰콰!

    현성이 입을 벌리고 화염 브레스를 쏘아 냈다.

    꽈아아아앙!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소용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워터 브레스.’

    -콰콰콰콰콰콰!

    이번에는 관통력이 강한 워터 브레스를 날렸다.

    꽈아아아앙!

    하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현성의 공격은 적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화염 브레스와 워터 브레스가 마치 장벽이라도 만난 듯 빠르게 위력이 줄어들다가 황금빛 방어막에 막혀 완전히 소멸했다.

    “제법 끈질기구나. 하지만 네가 나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지막 기회다. 순순히 무릎을 꿇어라. 만약 거절한다면 네놈의 사지를 자른 후 아크사 대영주님께 끌고 갈 것이다.”

    적의 경고에 현성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모든 스킬을 다 사용했는데.’

    영역 선포, 용인화, 광폭화.

    사용할 수 있는 버프 스킬을 다 끌어모아서 현성이 가진 초월 등급 스킬을 다 퍼부었다.

    한데 상대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나를 아크사라는 대영주의 신하로 삼을 생각인가?”

    현성이 적에게 물었다.

    일단 대화로라도 시간을 끌어 볼 생각이었다.

    “그렇다.”

    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의외로군. 휘하 군주를 죽였으니 제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놈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 이 자리에서 내 손에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은신 스킬은 꽤 쓸모가 있어 보이는구나. 거기다 변신 스킬과 공격 스킬도 꽤 강력해 보이고 말이다. 네놈이 가진 재주는 주군께 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여 아량을 베푸는 것이다.”

    쉽게 말해 쓸모가 많아 보이니 데려가서 부려 먹겠다는 뜻이었다.

    ‘휘하에 들어가기만 하면 끝이라는 듯이 말하는군. 어쩌면 당연한 건가?’

    저렇게 강력한 적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받는 대군주 아크사는 상당히 강력한 플레이어가 확실했다.

    현성과 주종 관계를 맺는다면 일방적으로 종속될 확률이 높아 보였다.

    “내가 아크사 대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무엇을 얻게 되지?”

    “주군은 공정하신 분이시다. 네놈이 높은 공을 세운다면 충분히 그에 합당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현성이 계속해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시간을 끌었다.

    다행히도 현성을 포섭할 생각이 있었던 적은 나름 친절하게 현성의 질문에 모두 답해 주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지자 적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계속해서 대화로 시간을 끄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 봐야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순순히 복종해라.”

    적의 말에 현성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적은 그런 자신감을 가질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혼자서도 현성과 휘하 신하들을 모두 쓸어버릴 무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럴 만했다.

    ‘거기다 수하들까지 있고 말이야.’

    이제 현성이 믿을 구석은 자력 결계밖에 없었다.

    ‘지금쯤이면 완성이 되었을 거야.’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들을 어떻게 자력 결계가 있는 장소까지 유인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겠나? 내일쯤 결정을 내리지.”

    “헛소리하지 말거라.”

    “원한다면 날 포위하고 감시해도 좋다.”

    “그 재능을 높이 사 좋게 봐 줬더니 정말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구나. 사지가 잘려 벌레처럼 기어서 주군께 가고 싶지 않다면, 더 이상 헛소리는 하지 말거라.”

    “그래? 그럼 어쩔 수가 없네.”

    현성이 아공간을 오픈했다.

    그리고 언데드 몬스터들을 꺼내 총공격을 명령했다.

    -크아아아아앙!

    죽음의 공포를 모르는 언데드 몬스터들이 사나운 포효와 함께 적에게 달려들었다.

    ‘뚱이, 덕구.’

    정령인 뚱이와 덕구도 소환했다.

    언데드 몬스터와 정령 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린 현성이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어리석은 놈.”

    무드크가 얼굴을 찌푸렸다.

    앞으로 자신의 동료가 될 것 같아 나름 좋은 관계를 맺고자 했다.

    한데 끝까지 주제를 모르고 도주를 시도했다.

    ‘그래 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거늘.’

    역시 부랑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자신의 주제를 잘 파악하지 못했다.

    휘익!

    무드크가 손을 휘저었다.

    꽈아아아아앙!

    강대한 육체를 지닌 언데드 몬스터들의 육체가 수수깡처럼 부서져 나갔다.

    하지만 언데드 몬스터들의 저항은 끈질겼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 만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육체가 대부분 파괴되었음에도 끝까지 무드크 일행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며 시간을 끌었다.

    “이잉.”

    무드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이건 무의미한 저항일 뿐이었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꽈아앙! 꽈아앙!

    무드크와 수하들이 공격을 가할 때마다 언데드 몬스터들이 힘없이 바스러졌다.

    뚱이와 덕구가 언데드 몬스터들과 합을 맞춰 열심히 저항해 봤지만, 무드크와 그 수하들의 몸에 작은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데드 몬스터들이 모두 박살 났다.

    뚱이와 덕구 역시 역소환되어 버렸다.

    “가자.”

    방해물들을 처리한 무드크가 수하들을 이끌고 현성의 뒤를 추격했다.

    현성은 언데드 몬스터들과 정령들이 벌어 준 시간을 살리고자 전력을 다해 이동했다.

    ‘공간 이동 스킬만 사용할 수 있었어도.’

    용인의 등에 달린 세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전력으로 이동했지만, 아직 상대의 마력 필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점점 마력 필드의 중심권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적이 순식간에 언데드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현성의 뒤를 추격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현성 역시 마력 역장을 펼쳐 적의 공간 이동 스킬을 봉쇄했다는 점이었다.

    ‘마력 역장을 펼치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따라잡혔을 거야.’

    하지만 나름 대비를 했음에도 현성과 적들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

    후방을 향해 연달아 워터 브레스와 화염 브레스를 날렸다.

    꽈아아앙!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적들은 워터 브레스와 화염 브레스를 순식간에 분쇄해 버리고 추격을 계속했다.

    지이잉! 퍼억!

    기이한 소음과 함께 용인으로 변해 있던 현성의 날개 한 장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크윽!”

    현성이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날갯짓을 했다.

    하지만 적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퍼억! 퍼억!

    관통력이 높은 원거리 스킬들이 무차별하게 현성의 몸을 꿰뚫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머리와 심장을 향해서는 날아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날 생포하겠다 이거지?’

    공격은 현성의 날개와 팔 그리고 다리를 향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사지를 잘라 끌고 가겠다는 말을 그대로 실현시킬 생각인 것 같았다.

    ‘고맙다.’

    현성이 이를 악물며 계속해서 날갯짓을 했다.

    불사의 서는 체력만 충분하다면, 현성의 육체를 무한대로 복구시킬 수 있었다.

    복구 속도 역시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지속적으로 몸에 상처가 생겼다 아물기를 반복했다.

    적들은 현성의 체력이 고갈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바로 적들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현성은 적의 기세에 눌려 전투 불능이 된 신하들을 통해 막대한 양의 체력과 마력을 보충받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예, 쓸모가 없지는 않네.’

    실제 전투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체력과 마력 배터리 역할을 톡톡히 해 줬다.

    그렇지만 안심할 수만은 없었다.

    지금도 적들과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 * *

    “꽤 끈질기군.”

    무드크가 얼굴을 찌푸렸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거늘…….”

    힘의 차이는 명확하다.

    아무리 전력을 다해 도망쳐도 결국은 자신들의 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머리를 날려 죽여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간 보여 준 은신 스킬과 전투 능력이 상당히 뛰어났다.

    또 도주하는 와중에 보여 준 놀라운 자가 회복 능력 역시 꽤 탐이 났다.

    ‘처음에는 암살자로 쓸 생각이었는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겠어.’

    암살이면 암살, 공격이면 공격, 방어면 방어.

    말 그대로 써먹을 방법이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응?”

    그때 무드크의 얼굴에 이채가 서렸다.

    적이 영지 밖에 아니라 내성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비밀 통로라도 이용할 생각인가?’

    무드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죽일 생각이라면 내성을 통째로 붕괴시켜 버리겠지만, 생포할 생각이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일이 조금 귀찮아지겠어.’

    술래잡기를 조금 더 오래 지속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헉헉헉!”

    현성이 거친 숨을 내쉬며 내성으로 들어갔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수도 없이 팔이 날아가고 다리와 날개가 찢겨져 나갔다.

    ‘손해가 막심한데.’

    용인화 스킬을 너무 오래 유지했다.

    그 때문에 엄청난 포인트가 소모되었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이곳까지 왔어.’

    용인화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이곳까지 오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스킬은 발동되었나?”

    현성이 지시를 내린 사자 인간에게 물었다.

    “예, 주군, 발동되었습니다.”

    사자 인간이 재빨리 대답했다.

    “휴!”

    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발동했을 거라고 짐작하기는 했다.

    하지만 짐작은 어디까지나 짐작이지 확신이 아니었다.

    ‘다행이다.’

    임무를 맡긴 사자 인간의 확답을 들으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설마 자력 결계까지 어찌하지는 못하겠지.’

    자력 결계까지 무시할 수 있는 강자라면, 현성으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꽈아아앙!

    그때 문이 산산조각 났다.

    저벅저벅.

    그와 동시에 일단의 플레이어들이 내부로 진입했다.

    현성을 추격해 온 무드크와 그 수하들이었다.

    “쥐새끼처럼 잘도 도망치더구나.”

    무드크가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그래 봤자 여기가 한계인 것 같지만 말이다.”

    무드크는 현성의 체력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현성은 도망치는 와중에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았다.

    물론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하기는 했지만, 소모되는 마력과 체력이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현재 현성은 용인화 스킬을 해제한 상태였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용인화 스킬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서 해제한 것이다.

    하지만 무드크는 체력과 마력이 고갈되어 변신 스킬이 자동으로 해제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 무드크는 현성이 더 이상 도주할 여력이 없어서 이동을 멈췄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 아까 이야기했던 대로 네놈의 사지를 잘라 벌레처럼 끌고 가야겠다.”

    무드크가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스킬을 사용해 사지를 자른 후 완벽하게 포박할 생각이었다.

    파지지지직!

    그 순간 작은 스파크와 함께 강대한 마력이 무드크의 몸을 짓눌렀다.

    “이게 무슨?”

    당황한 무드크가 마력을 더 많이 끌어올렸다.

    그게 무드크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무드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자신의 주인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무드크 님!”

    당황한 수하들이 무드크를 돕기 위해 일제히 마력을 끌어 올렸다.

    파지지지직!

    그 순간 다시금 스파크가 일어나며 수하들의 마력이 수하들의 몸을 옭아매었다.

    “다행히 잘 작동하네.”

    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자력 결계가 통하지 않았다면 모든 게 끝이었다.

    한데 다행히 자력 결계가 통했다.

    “결계? 하지만 이런 종류의 결계가 나를 속박할 수는 없거늘?”

    무드크의 얼굴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스르르릉.

    신혈검을 뽑아 든 현성이 한 걸음 한 걸음 무드크와 그 수하들을 향해 다가갔다.

    “크윽!”

    무드크와 수하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결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저항했다.

    하지만 더 강하게 저항하면 할수록 자력 결계의 힘이 더해지는 결과만 가지고 왔다.

    “이, 이런 종류의 결계는 자력 결계뿐인데?”

    무드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마 네놈, 자크샤 일족의 생존자였느냐?”

    무드크의 물음에 현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력 결계는 최초로 지구를 침략한 침략자 플레이어를 제거하고 얻어 낸 전리품일 뿐이다.

    자크샤 일족인지 뭔지 현성이 알 바가 아니었다.

    “네 이노오오옴!”

    무드크가 커다란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왕의 허락 없이 아군에게 자력 결계를 사용하는 것은 금기 중에 금기다.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무드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현성은 어디서 개가 짖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좌악! 푸욱!

    무드크의 수하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어 갔다.

    “당장 멈춰라! 멈추란 말이다!”

    무드크가 뭐라고 하든 현성은 묵묵히 신혈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수하들을 모두 정리한 현성이 차분한 표정으로 무드크 앞에 섰다.

    “가, 감히 이런 무도한 짓을 벌이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자크샤 일족은 왕명에 의해 완전히 멸족될 것이다! 네놈은 그게 두렵지도 않느냐!”

    무드크가 발악하듯 외쳤다.

    “응, 괜찮아.”

    현성이 해맑게 웃으며 신혈검을 휘둘렀다.

    서걱!

    감히 대적할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강자.

    무드크의 목이 너무도 손쉽게 잘려 나갔다.

    툭!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무드크의 머리가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휴!”

    모든 적을 처치한 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현성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초월 등급]

    -최초로 20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적 차원의 플레이어를 쓰러트리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침략자 - 초월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초월 등급]

    -단독으로 20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위 레벨의 플레이어를 쓰러트리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반란자 - 초월 등급]

    “하하하!”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초월 등급 업적을 두 개나 손에 넣었다.

    ‘도대체 이게 다 몇 개야?’

    현성이 차원 게이트를 넘은 이후 손에 넣은 초월 등급 업적만 무려 다섯 개였다.

    초월 등급 하나에 총스텟 800 증가이니, 총 4,000에 달하는 스텟이 증가한 것이다.

    레벨 업을 통해 4,000의 총스텟을 얻으려면, 족히 800레벨은 올려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그 이하의 업적들도 대거 손에 넣었다.

    ‘확실히 성과가 엄청나.’

    현성은 차원 게이트를 넘은 대가로 엄청난 보상을 쓸어 담을 수 있었다.

    사실 지구에 있는 동안에는 늘릴 수 있는 업적이 단일 종 몬스터 사냥밖에 없었다.

    한데 차원 게이트를 넘어오니 말 그대로 업적이 쏟아졌다.

    ‘문제는 이게 거의 한계치라는 건데…….’

    적 플레이어를 쓰러트려 얻을 수 있는 업적은 사실 거의 다 긁어모았다고 해도 무방했다.

    또 방금 전 얻은 초월 등급 업적 두 개는 자력 결계의 도움으로 거저먹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이라면 저자들을 이길 수 있을까?’

    현성은 목이 잘려 나뒹굴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두셋 정도는 몰라도 저 정도 숫자는 확실히 무리야.’

    현성은 초월 등급 업적을 무더기로 손에 넣으며 확실히 강해졌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저들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을 뿐이다.

    저 정도 강자들이 지금처럼 단체로 몰려온다면?

    모든 스킬을 총동원한다고 해도 승리하기는 어려웠다.

    ‘일단 정보부터 수집하자.’

    죽은 플레이어들의 시신은 대부분 아이템으로 변했다.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시신을 온전히 남긴 이들이 있었다.

    현성은 아이템화가 진행되지 않은 시신을 대상으로 스킬을 시전했다.

    ‘메모리 스틸.’

    죽은 플레이어들이 가지고 있던 지난 한 달간의 기억이 현성의 머릿속으로 전해졌다.

    그 덕분에 현성은 꽤 많은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네.’

    현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무드크와 그 수하들은 아크사 대영주 휘하에 있는 최고 레벨의 플레이어들이었다.

    물론 아크사 대영주의 휘하에는 무드크와 비슷한 레벨의 수하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무드크가 당한 이상 쉽게 다른 수하들을 보내지는 못할 것이다.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아크사가 직접 오는 거지만, 그건 다른 대영주들 때문에 힘들겠지.’

    정보를 제공해 준 시신들의 주인이 최고 레벨의 플레이어들이었기에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상당히 많았다.

    ‘당분간 아크사 대영주의 추가 공격은 피할 수 있겠어. 이제 전리품 수집이나 해 볼까?’

    사실 그간 쓰러트렸던 하급 영주들은 냉정하게 평가해서 카렌보다 급이 낮았다.

    토해 낸 스킬이 고작해야 신화 등급이 최고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무드크와 그 수하들은 다를 것이다.

    충분히 초월 등급 스킬북을 기대해 볼 만했다.

    초월 등급 업적을 통해 하드웨어인 기본 스텟을 확실하게 업그레이드했다.

    여기에서 전리품으로 얻은 초월 등급 스킬들을 익힌다면?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하드웨어에 걸맞은 소프트웨어를 손에 넣는 셈이었다.

    현성은 가장 먼저 무드크가 토해 낸 전리품을 살펴봤다.

    [마력 필드 - 초월 등급]

    -액티브 스킬

    -습득자의 마력을 기반으로 강력한 마력 필드를 구성합니다.

    -마력 필드 안에 있는 플레이어와 몬스터 들의 전의를 꺾습니다.

    -마력 필드 안에 있는 플레이어와 몬스터 들의 마력 운용이 어려워집니다.

    -마력 필드 안에 있는 플레이어와 몬스터 들의 스킬 위력이 감소합니다.

    -습득자의 마력을 기반으로 하기에 습득자보다 마력이 높은 플레이어나 몬스터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액티브 스킬북 마력 필드 - 초월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스킬북을 확인한 순간,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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