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 확장
“성으로 돌아간다.”
현성의 말에 사자 인간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정을 내렸으니 이제 사자 인간들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아야 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임시야.’
사자 인간들이 현성에게 복종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현성이 사자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일족이라 이거지.’
지구에도 인종차별이라는 게 존재한다.
또 같은 동양인이라도 국적에 따라 차별이 존재한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현성이 사자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사자 인간들이 이렇게 쉽게 현성을 인정할 리가 없었다.
‘카렌처럼 행동한다.’
카렌은 미국인의 탈을 뒤집어쓰고 미국의 호의를 얻고 세력을 키웠다.
지금은 현성도 그렇게 해야 했다.
사자 인간의 탈을 쓰고 사자 인간들의 호의를 받아야 했다.
‘내가 타 차원의 플레이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끝장이야.’
그럼 아마 복종의 뜻을 표했던 플레이어들 중 대다수가 현성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적 차원의 플레이어를 섬긴다는 것은 이 차원에 존재하는 모든 플레이어들을 적으로 돌린다는 뜻이었으니까 말이다.
현성은 태연한 표정으로 성으로 복귀했다.
성문을 지키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현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 역시 현성이 자신들의 새로운 군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성은 태연하게 영주 성으로 들어갔다.
“크르르릉!”
성 내부로 들어가자 수십 명의 사자 인간들이 포박되어 있었다.
‘원래 군주의 가족들이군.’
저들은 모두 일반인이었다.
원래 군주의 가족들 중 플레이어였던 이들은 친위대에 포함되어 있었고, 현성의 휘하에서 나가 도주하다가 죽었다.
“폐주의 가족들을 어찌하시겠사옵니까?”
사자 인간 중 하나가 공손히 현성에게 물었다.
“율법에 따라 성 밖으로 추방하라. 저들은 더 이상 플레이어의 혈족이 아니다.”
플레이어의 혈족만이 귀족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가족 중에 플레이어가 모두 죽으면?
당연히 평범한 일반인의 신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알겠사옵니다.”
현성의 한마디에 따라 폐주 가족들의 신분이 귀족에서 일반인으로 강등되었다.
‘죽이는 게 깔끔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지.’
폐주는 꽤 오랜 시간 이 영지를 다스렸다.
그러다 보니 폐주의 가족들과 휘하 플레이어들 간에 혼사도 잦았다.
‘모두 죽이면 괜한 반발을 살 수 있어.’
아마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인척이 있다면, 그들 중 일부가 저들을 거둬 줄 것이다.
만약 그런 이들이 없다면?
일반인이라고 부르고 노예라고 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크르르릉. 군주님, 어느 쪽에 파발을 보낼까요?”
신하 하나가 현성에게 물었다.
“파발이라.”
사자 인간의 영토는 보잘것없는 하급 영지에 불과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드넓은 영지를 다스리는 대영주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그 세력권 안으로 들어가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일반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새로운 군주가 된 이들 역시 대영주에게 몸을 의탁했다.
“폐주가 모시던 아크사 대영주님께 파발을 보낼까요, 아니면 세키라 대영주님이나 코디기 대영주님께 보낼까요?”
셋 모두 사자 인간들의 영토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영주들이었다.
‘일반적이라면 셋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맞겠지만 난 그럴 수가 없어.’
현성은 누군가에게 충성 맹세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파발은 보내지 않을 것이다.”
현성의 말에 사자 인간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말씀은?”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
“쉽지 않을 것이옵니다.”
사자 인간들의 표정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독자적인 세력을 키운다는 말은 주변 모든 영지를 적으로 돌린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또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하지만, 폐주가 모시던 아크사 대영주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몰려올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모두 물러가라.”
현성의 말에 사자 인간들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몇 명 더 이탈할지도 모르겠어.’
중, 저레벨 플레이어들은 현성의 말에 맹목적으로 따를 것이다.
하지만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다르다.
현성이 위험한 모험을 선택한 이상 휘하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농후했다.
‘싹 물갈이한다.’
배신 가능성이 높은 놈들은 미리 처리하는 게 나았다.
물론 현성도 대영주가 직접 출두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도 해결책은 있었다.
‘그럼 그냥 사자 인간들을 데리고 지구로 도망가면 그만이야.’
현성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중, 저레벨 플레이어들과 일반인들을 이끌고 지구로 튀면 된다.
현성의 휘하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시스템에 의해 지구 측 전력으로 분류된다.
즉, 안전 결계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근처에 차원 게이트가 있는 것도 확인했고.’
침략자 차원의 차원 게이트는 오직 지구하고만 연결되어 있다.
여차하면 사자 인간들의 세력권 내부에 있는 다른 차원 게이트를 타고 지구로 넘어가면 된다.
물론 사자 인간들의 세력권 내부에 있는 차원 게이트는 한국이 아니라 타국과 연결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건 문제 될 게 없어.’
지구 전체가 이미 현성의 수중에 들어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전력 판단이 어떻게 될지 살짝 걱정되기는 하는데…….’
지구의 전력이 늘었으니 침략자 차원에서 안전 결계를 넘을 수 있는 전력도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카렌 같은 녀석이 한둘이 아니라 무더기로 넘어갈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어.’
현성은 카렌을 처리한 후 그 휘하에 있던 신하들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그 후 꽤 오랜 시간 지구에 머물렀음에도 침략자 플레이어들이 대량으로 등장하지는 않았다.
쉽게 말해 현성의 휘하에 있더라도 침략자 차원에 머물고 있는 한 안전 결계가 아군 방어 전력으로 판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네.’
머릿속이 복잡했다.
침략자 플레이어들의 정보를 꽤 많이 습득했지만, 아직은 아는 것보다도 모르는 게 더 많았다.
어쩌면 침략자 플레이어들이 대량으로 지구에 침입했지만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정체만 드러나면 바로 제거할 수 있어.’
지구에 침략자 플레이어가 등장하면, 바로 현성에게 연락이 온다.
그럼 바로 지구로 귀환해 제거할 수 있었다.
현재 현성의 무력이라면 카렌 수준의 플레이어들은 순식간에 정리가 가능했다.
‘여차하면 루시아에게 승전 대군주의 축복을 사용해도 그만이야.’
어차피 반격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럼 그대로 밀고 나가면 그만이었다.
현성은 하인들의 안내를 받아 잠자리에 들었다.
‘이건 편하네.’
내성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다 현성의 휘하에 있는 신하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굳이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
‘일주일 안에 모두 정리한다.’
사자 인간들을 지배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은 세력은 조기에 쓸어버리는 게 좋았다.
물론 그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난 현성이 차원의 이면 스킬을 쓴 상태에서 내성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뒷골목으로 향했다.
* * *
“겨우 이것뿐이냐? 이런 머저리 같은 것들!”
퍼억! 퍼억!
사자 인간 하나가 얼굴을 찌푸리며 어린 사자 인간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여전히 쓰레기 같은 삶을 사는구나.’
현성이 건달 사자 인간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화륵!
작은 불꽃 하나가 허공에서 피어올랐다.
그리고 건달 사자 인간의 머리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 순간.
화르르륵!
작은 불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건달 사자 인간의 전신을 휘감았다.
순식간에 건달 사자 인간의 몸이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찍소리 조차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걸로 됐어.’
겉모습의 원래 주인이 죽었다.
이놈은 어린아이들에게 앵벌이나 시키는 쓰레기였기에 얼굴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얼굴을 아는 놈들은 휘하에 들이면 되고 같은 조직 놈들은 모두 제거해 버리면 그만이야.’
그럼 현성이 외형을 빌린 사자 인간의 과거가 말끔하게 정리가 된다.
현성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일단 건달 사자 인간이 속한 조직을 말끔하게 몰살시켜 버렸다.
그리고 건달 사자 인간을 알고 있는 이들을 모두 휘하에 넣어 버렸다.
거부하는 일반인들은 없었다.
그들 입장에서 군주의 휘하에 들어간다는 것은 신분 상승을 의미했으니까 말이다.
* * *
“대영주님을 모시지 않겠다니? 이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발상이 아니오.”
“맞소. 부랑자 출신답게 생각이 너무 위험하오.”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도 같이 죽을 거요.”
고레벨 사자 인간 셋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난 이곳을 떠나겠소.”
“어디로 갈 생각이오?”
“아크사 대영주님께 가겠소.”
“음, 나쁜 생각은 아니군. 나도 함께하겠소.”
“난 세키라 대영주님께 갈 것이오.”
고레벨 사자 인간 셋이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독자적인 세력으로 남겠다는 신임 영주의 결정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이 셋은 아마 현성이 대영주 중 한 명에게 충성 맹세를 하겠다고 했다면 그대로 남았을 것이다.
현성이 가지고 있는 군주 전용 버프 효과가 상당히 좋기도 했고 폐주에 대한 충성심도 그리 깊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겠다는 발표를 한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어이없게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지.’
영지전에서 영주끼리 일대일 일기토를 벌이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당연히 영지의 플레이어들이 총동원된 전쟁이 벌어진다.
그럼 사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상자 명단에 자신들이 포함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고레벨 사자 인간 셋이 조용히 내성을 빠져나가 외성으로 향했다.
화륵!
그때 그들의 머리 위에서 작은 불꽃이 일렁거렸다.
그 후.
화르르륵!
작은 불꽃이 순식간에 커지며 고레벨 사자 인간들의 몸을 휘감았다.
“크어어어엉!”
고레벨 사자 인간들이 방어 스킬을 가동시키며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노력했다.
서걱!
하지만 현성이 휘두른 신혈검을 피할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고레벨 사자 인간 셋의 목숨이 사라졌다.
‘음, 이제 정리는 끝난 건가?’
배신자들을 정리한 현성이 차분히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지.’
내부를 정리했으니 이제는 영지전을 걸 차례였다.
‘누가 좋을까?’
아무에게나 영지전을 걸 수는 없다.
자칫 잘못하면 주변의 영지들을 모두 적으로 돌릴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크사 대영주 휘하의 영주가 좋겠어.’
폐주가 모시던 군주가 아크사 대영주다.
그는 아마 휘하 군주의 죽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폐주는 아크사 대영주 휘하에 있는 수많은 하급 영주들 중 하나일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척을 지게 될 거야.’
충성 맹세를 하지 않으면 결국 휘하 하급 영주들을 시켜 현성을 공격할 것이다.
어차피 싸우게 될 거라면 선빵을 날리는 게 좋았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다른 대영주들의 비호를 받을 수도 있어.’
특히 아크사 대영주와 사이가 좋지 않은 세키라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라면 은근슬쩍 현성의 편을 들어 줄 확률이 높았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운이 좋을 경우다.
‘최대한 판을 벌여 본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휘하에 넣은 세력들을 데리고 지구로 귀환하면 그만이었다.
* * *
다음 날 밤.
현성은 은밀히 사자 인간들의 영지를 벗어났다.
그 후 폐주와 같이 아크사 대영주의 휘하에 있던 영지 중 하나에 잠입했다.
‘여기는 표범 인간이네.’
영지 내에는 표범 인간들이 우글거렸다.
하지만 차원의 이면 스킬을 사용한 현성을 감지한 플레이어는 없었다.
‘말끔하게 접수해 주마.’
군주전에서 가장 손쉽게 승리를 거두는 방법은 간단했다.
바로 상대 군주를 암살하는 것이다.
현성에게는 제나에게 받은 초월 등급 은신 스킬인 차원의 이면이 있다.
차원의 이면은 최고의 암살 스킬이었다.
현성은 손쉽게 영지의 내성으로 잠입했다.
현성은 표범 인간들의 군주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폐주가 표범 인간들의 군주와 동맹 관계였기 때문이다.
‘찾았다.’
현성이 표범 인간들의 군주와 그 수하들을 찾아냈다.
“크르르릉, 출정 준비는 끝났느냐?”
“예, 이틀 후 출정할 것입니다.”
“멍청한 레바 녀석, 고작 부랑자 따위에게 패배하다니.”
레바는 현성의 손에 죽은 폐주의 이름이었다.
“그래도 잘되지 않았사옵니까?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면 주군의 영지가 더더욱 넓어질 것이옵니다.”
“그건 그렇지. 그 부랑자 놈이 충성 맹세를 하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해.”
대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한 하급 영주는 쉽게 건드릴 수가 없다.
같은 세력권에 속한 하급 영주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표범 인간들의 군주는 길목에 휘하 플레이어들을 배치했다.
사자 인간 영지를 장악한 새로운 군주가 다른 대영주의 휘하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직까지 빠져나간 놈은 없겠지?”
“예, 내부 장악이 늦어지는지 아직 파발을 띄우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
파발이 오가고 직접적인 충성 맹세가 이루어지기 전에 치기만 하면 끝이었다.
“크하하하하! 멍청한 레바 녀석 덕분에 손쉽게 영지 하나를 얻겠구나!”
표범 인간들의 군주가 커다란 폭소를 터트렸다.
그 순간.
서걱!
허공에서 솟아난 검 한 자루가 표범 인간 군주의 목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이, 이게 무슨?”
“적이다!”
표범 인간들이 당황하며 현성을 노려봤다.
-휘하 신하 푸트가 등용을 철회했습니다.
-휘하 신하 베크소가 등용을 철회했습니다.
-휘하 신하 수가즈날이 등용을 철회했습니다.
……후략……
현성의 눈앞에 연속적으로 등용을 철회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많아.’
당장 등용을 철회한 신하의 숫자만 20명이 넘었다.
한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등용을 철회하는 신하의 숫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일족이 다르다 이거지.’
같은 수인족이기는 하지만 사자 인간과 표범 인간은 엄연히 차이가 있었다.
그런 만큼 휘하 신하들의 반발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모조리 쓸어버리면 그만이야.’
현성이 곧바로 등용을 철회한 신하들에게 흑뢰신의 숨결을 날렸다.
파지지직!
칠흑빛 뇌전이 연달아 떨어지며 등용을 철회한 신하들을 덮쳤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승전 대군주의 부름.’
직업 전용 스킬인 승전 대군주의 부름을 이용해 과거 폐주의 휘하에 있었던 친위대를 소환했다.
슈욱! 슈욱!
대군주의 부름에 따라 사자 인간들이 연달아 모습을 드러냈다.
“크아아아앙!”
“배신자들을 죽여라!”
사자 인간들이 사나운 포효와 함께 등용을 철회한 표범 인간들을 공격했다.
현성과 사자 인간들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기습이었다.
거기다 등용을 철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표범 인간들이 많았기에 진압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배신자들을 죽여라!
현성이 승전 대군주의 외침 스킬을 사용해 새롭게 휘하에 들어온 표범 인간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현성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한 중, 저레벨 표범 인간들이 고레벨 표범 인간들에게 덤벼들었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것이다.
“왜 내 명령을 따르지 않는 거지? 네놈들도 배신할 생각이냐?”
현성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던 고레벨 표범 인간들에게 물었다.
“따, 따르겠습니다!”
고민하던 고레벨 표범 인간들이 결국 현성의 명령에 따라 방금 전까지 동료였던 이들을 공격했다.
사실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자리에서 등용을 철회하고 반항했다가는 그대로 죽을 게 뻔했으니까 말이다.
표범 인간들의 영지가 빠른 속도로 점령되었다.
등용을 철회한 표범 인간들만 제거하면 되니 점령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성공이다.’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전투준비를 갖추고 있어라. 또 부를 것이다.”
그 말과 함께 현성이 다른 영지를 향해 이동했다.
‘최대한 뽕을 뽑아야지.’
현성은 오늘 밤 이 근처에 있는 아크사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지들을 모조리 점령할 생각이었다.
* * *
하룻밤이 지났다.
그리고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총 13개에 달하는 영지의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급 영지들이라고는 하지만, 13개라는 숫자는 절대 무시할 수가 없었다.
사자 인간 영지의 주인이 바뀔 때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거나, 무주공산이 된 사자 인간 영지를 노리고 있던 주변 하급 영주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재빨리 자신이 모시는 대영주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 * *
“이게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이지?”
대영주 아크사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하룻밤 사이에 휘하 군주가 무려 13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얼마 전 휘하 군주 하나가 죽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곧 자신에게 충성 맹세를 하러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도대체 어느 놈이!”
대영주 아크사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총 14개의 하급 영지를 빼앗겼다.
물론 대영주 아크사에게 있어서 크게 비중이 있는 영지들은 아니었다.
백여 개가 넘는 많고 많은 하급 영지들 중 일부였을 뿐이다.
문제는 체면이었다.
“감히 대놓고 나의 영지를 빼앗아!”
대영주 아크사가 분노가 가득 담긴 일갈을 토해 냈다.
“무드크!”
대영주 아크사의 외침에 신하 하나가 공손히 시립했다.
“예, 주군.”
“네가 직접 가라. 가서 이번 일을 벌인 놈을 죽이든지, 그게 아니라면 내 앞에 끌고 와라.”
“명을 받드옵니다.”
신하가 공손히 일어난 뒤 물러났다.
“망할 놈 같으니라고!”
대영주 아크사가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찾아가 목을 베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직접 움직이면 다른 대영주들이 자신의 본진을 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놈의 짓이지?’
대영주 아크사는 이번 일을 다른 대영주들이 부린 수작이라고 생각했다.
‘꼭 당한 만큼 갚아 주마.’
대영주 아크사는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다.
* * *
‘성공이다.’
현성은 하룻밤 사이에 총 13개의 하급 영지를 빼앗았다.
하급 영주들의 수준이 비슷비슷했기에 비교적 손쉽게 영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고레벨 플레이어의 숫자가 많아.’
지구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느낄 정도로 큰 수준 차이가 났다.
침략자들의 차원에서 하급 영주들의 위치와 무력은 권력의 말단 중에 최말단이다.
한데 그 최말단인 하급 영주의 휘하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무력이 범상치가 않았다.
‘하급 영지의 병력이 지구로 몰려가기만 했어도 난리가 났을 거야.’
현성이 없는 상태라면 지구가 그대로 멸망할 판이었다.
‘지구 플레이어들의 성장 속도를 더 빠르게 끌어올려야 해.’
안전 결계가 존재하는 한은 그렇게 해야 했다.
‘그래도 정말 안전 결계 덕을 많이 보네.’
사실 차원 게이트를 넘기 전까지 현성은 안전 결계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침략자 차원으로 넘어와 본 결과, 안전 결계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졌다.
‘양측의 수준이 비슷해지거나 완전히 승패가 갈려야 안전 결계가 소멸된다.’
지구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침략자 차원과 비슷한 수준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당분간 안전 결계가 사라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물론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더 강하고 더 많은 숫자의 침략자 플레이어들이 안전 결계를 넘어올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뭐, 루시아의 차원이나 파르티샤의 차원처럼 몬스터만 넘어왔는데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몬스터는 침략당하는 차원에 있어서 계륵 같은 존재였다.
몬스터가 있기에 플레이어가 강해질 수 있다.
그리고 몬스터의 존재는 더 많은 숫자의 강한 침략자 플레이어들이 넘어오는 것을 막아 준다.
‘큰 고비는 넘겼어.’
지구는 더 이상 몬스터의 침공에 무너질 정도로 약한 차원이 아니었다.
오히려 차원 게이트를 넘어오는 몬스터를 영양분 삼아 빠르고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일단 내부를 정비하고 추가로 전투를 건다.’
하룻밤 사이 새롭게 현성의 휘하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당연히 중간에 등용을 철회하고 현성의 손에 죽은 이들도 많았다.
다시 재정비해야 했다.
재정비가 끝나면?
‘다시 전쟁을 시작해야지.’
기왕 차원 게이트를 넘어온 거 제대로 뽕을 뽑을 생각이었다.
* * *
무드크는 대영주 아크사의 명을 받들어 자신의 수하들을 이끌고 분쟁이 생긴 지역으로 향했다.
‘어떤 놈일지 기대가 되는구나. 부랑자 출신 주제에 이런 대형 사고를 치다니.’
부랑자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왕의 휘하에 들지 않은 플레이어에 대한 통칭이었다.
왕과 군주들은 휘하 영지를 철저하게 관리한다.
하지만 완벽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갓 각성한 신규 플레이어를 놓치는 경우도 생긴다.
대부분은 몬스터의 손에 죽지만, 운 좋게 부랑자 무리에 들어가 성장을 지속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 대규모 전쟁에서 부랑자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군주전에서 패배한 쪽 신하 플레이어가 새로운 군주와의 충성 맹세를 철회하고 자유인으로 돌아가는 경우였다.
‘꽤 쓸 만한 놈이어야 할 텐데.’
군주들의 입장에서 부랑자들은 그리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언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는 반골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꽤 쓸 만한 실력을 지닌 부랑자의 경우, 굴복시키기만 하면 세력을 키우는 데 상당히 큰 도움이 된다.
무드크는 문제를 일으킨 부랑자가 꽤 쓸 만한 놈이기를 바랐다.
그래야 자신이 모시는 대영주 아크사의 수하로 삼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만약 기대에 못 미치는 놈이라면?
가차 없이 죽여 버릴 것이다.
* * *
현성이 호루스의 눈을 사용했다.
침공할 영지의 수준도 보고 혹시 모를 강자의 등장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뭐야?’
엄청나게 강대한 마력을 가진 존재들이 빠른 속도로 현성이 있는 곳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하급 영주들보다 강하잖아.’
거기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의 무력은 감히 측량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났다.
‘망할. 대영주가 친위대를 이끌고 직접 오기라도 한 건가?’
언젠가 올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전력으로는 무리야.’
현성의 휘하에 든 플레이어들과 언데드 몬스터를 총동원하고 용인화와 패시브 스킬들을 모조리 사용해도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을 정도의 강적이었다.
아,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했다.
바로 신의 힘을 빼앗아 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현성이 원할 때 마음대로 빼앗아 올 수 있는 종류의 힘이 아니었다.
‘지구로 후퇴해야 하나?’
후퇴하기에는 얻은 영지들이 너무 아까웠다.
거기다 중, 저레벨 플레이어라면 몰라도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현성의 정체를 아는 순간 충성 맹세를 철회할 확률이 높았다.
‘믿을 건 이것뿐이다.’
현성이 아공간을 열고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