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
‘이런 젠장.’
현성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힘의 우위는 확실했다.
카렌이 숨겨 놓은 한 수가 있다고 해도 현성 역시 패시브 스킬 발동과 용인화 같은 수를 숨겨 놓았다.
문제는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수없이 카렌을 쓰러트려도 이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카렌 휘하에 든 신하들을 모두 죽이지 않으면 이길 수 없어.’
하지만 그렇게 하면 현성이 지구의 최상위 플레이어 수천 명을 학살하는 꼴이 된다.
또한 카렌의 통솔력을 소모시켜 피해 없이 흡수해 아군 전력으로 만들려고 했던 이들을 모두 잃게 된다.
지구의 전력이 대폭 감소하는 것이다.
‘생포하는 게 최선인데.’
반인반룡처럼 전투 불능 상태를 만들어 잡아 가두는 게 현재로서는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문제는 카렌의 전투력이었다.
‘강해.’
카렌은 절대 약하지 않다.
현성이 일방적으로 잡아 생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현성의 체력과 마력이었다.
카렌은 체력과 마력이 사실상 무한한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많은 체력과 마력을 소비했어도 죽은 후 부활하면 체력과 마력이 완벽하게 회복된다.
반면 현성의 체력과 마력은 점점 고갈되고 있었다.
주변에 몬스터가 없으니 체력과 마력을 회복할 수단이 없었다.
그나마 카렌과 전투를 치르며 용혈검과 스킬들의 도움으로 체력과 마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는 있다.
하지만 회복되는 체력과 마력이 전투로 소모하는 체력과 마력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다.
‘이대로 가면 내가 진다.’
카렌을 끊임없이 죽여 제거하기 전에 현성이 먼저 체력과 마력 고갈로 죽을 판이었다.
평소 현성의 장기이던 장기전이 카렌을 상대로는 전혀 먹히지 않는 것이다.
현성의 공격이 소극적으로 변했다.
최대한 체력과 마력을 보존하며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물러나야 하나?’
지금 당장은 카렌을 죽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투를 지속하면 지속할수록 점점 현성만 불리해진다.
일단 물러난 후 시스템 상점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 게 좋아 보였다.
-도망갈 생각이냐?
카렌이 히죽거리며 물었다.
-그럴 수는 없을 거다.
카렌의 말에 현성의 표정이 구겨졌다.
‘설마?’
현성이 공간 이동 스킬을 시전했다.
카렌과의 거리를 벌리려는 목적도 있었고 일종의 테스트이기도 했다.
하지만…….
파직!
-마력의 흐름이 불안정한 장소입니다. 액티브 스킬 블링크 – 영웅 등급의 발동이 캔슬되었습니다.
공간 이동 스킬이 작동하지 않았다.
“마력 역장…….”
-크하하하하하!
현성의 중얼거림에 카렌이 광소를 터트렸다.
카렌과 현성을 둘러싸고 있는 미국 소속 플레이어들은 단순한 몸으로만 장벽을 만든 게 아니었다.
마력 역장을 통해 현성의 도주로도 차단했다.
‘미국이 배신을 했어.’
현재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이들은 미국 소속 플레이어들과 군인들이었다.
저들은 아직 현성의 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카렌이 원하면 언제든 현성의 적이 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가장 좋은 방법은 현성의 휘하에 속해 있는 이모탈 길드의 플레이어들을 끌어모아 전면전을 펼치는 것이다.
그럼 현성은 카렌의 목숨 줄인 휘하 플레이어들의 숫자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문제는 그게 바로 카렌이 원하는 바라는 사실이다.
‘누가 이기든 지구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진다.’
패배하면 지구는 그대로 카렌의 지배하에 놓일 것이다.
설사 현성이 승리하더라도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대폭 줄어들어 추가 침공에 취약해진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점점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현성의 체력과 마력이 바닥을 드러냈다.
마력 역장을 뚫고 나가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그건 카렌이 용납하지 않았다.
카렌은 현성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강자다.
그런 강자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달려들다 보니 현성으로서도 쉽게 마력 역장이 펼쳐진 지역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거기다 마력 역장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현성과 카렌이 이동을 하면 마력 역장 역시 함께 이동했다.
지상에 포위망을 갖추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쓸어버리지 않는 한 탈출이 요원한 상황인 것이다.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패시브 스킬 광폭화 - 전설 등급 스킬이 발동합니다.
-힘, 민첩, 마력, 정신력 스텟이 40% 증가합니다.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50% 감소했습니다.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패시브 스킬 천뢰신의 갑옷 - 신화 등급 스킬이 발동합니다.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3배 상승합니다.
패시브 스킬들이 일제히 발동했다.
평소라면 좋아했을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더 이상은 무리야.’
체력과 마력이 10% 이하로 떨어졌다.
한데 체력과 마력을 회복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포위망을 뚫어야 했다.
현성이 아공간을 열었다.
-크아아아아앙!
아공간 속에서 언데드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현성의 부름에 따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전설 등급 몬스터들이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워싱턴 D.C로 모여들었다.
-꽤 현명한 선택을 했구나.
카렌은 현성이 전면전을 준비한다고 생각했다.
카렌은 자신이 패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설사 이 자리에 있는 휘하 플레이어들을 다 죽여도 카렌은 죽지 않는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세계 각국에 흩뿌려 놓은 신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전면전을 치르면 결국 불리한 건 현성이었다.
-크아아아앙!
언데드 몬스터들이 포효와 함께 카렌을 공격했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카렌은 차분하게 언데드 몬스터의 숫자를 줄여 나갔다.
현성은 카렌을 완벽하게 제압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포위망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카렌은 쉽게 제압당하지 않았다.
제압당할 것 같으면 자살에 가까운 방법으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새롭게 부활했다.
또 자신의 목숨을 물 쓰듯이 써 가며 현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순식간에 카렌이 20번 넘게 목숨을 잃었다.
그렇지만 카렌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사납게 날뛰었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체력과 마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에서 한 시도였다.
한데 모두 실패했다.
언데드 몬스터들은 반파되었고 몬스터들은 너무 쉽게 죽어 버렸다.
현성은 언데드 몬스터들을 다시 아공간에 넣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 봤다.
하지만 눈앞에 닥친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하하하하! 나의 승리다!
카렌이 자신감 어린 어조로 외치며 현성에게 맹공을 가했다.
‘큭!’
현성의 몸에 하나둘 상처가 늘어났다.
물론 그 와중에 카렌은 몇 번씩이나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결국 불리한 것은 현성이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데.’
현성의 생존 본능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패시브 스킬들이 발동되려 했다.
‘절대 안 돼.’
현성은 애써 패시브 스킬의 발동을 억눌렀다.
패시브 스킬이 발동되면 폭주한 현성이 무차별적으로 카렌과 그 휘하의 신하들을 죽여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모든 게 끝장이다.
‘분명히 대비책을 세워 놨을 거야.’
이 자리에 있는 휘하 신하들이 전부일 리가 없었다.
이곳에 있는 카렌 휘하 신하들을 모두 죽여도 카렌은 끊임없이 되살아날 것이다.
‘카렌과 휘하 신하들의 연결 고리만 잘라 내면 되는데.’
그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좌악!
현성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 늘어났다.
체력과 마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그에 반해 카렌은 처음과 다름없이 쌩쌩한 모습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주변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공격해 그들의 체력과 마력을 흡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성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포위망을 갖추고 있는 이들은 카렌의 휘하 플레이어들로만 이뤄져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이 자리에 모여든, 아무것도 모르는 죄 없는 플레이어들이 더 많았다.
“크윽!”
몸이 피투성이로 변했다.
체력과 마력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본능에 따라 자꾸만 패시브 스킬들이 발동되려고 했다.
현성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완전히 코너에 몰려 버렸다.
카렌이 파 놓은 함정에 완벽하게 빠져 버렸다.
지금의 현성으로서는 자력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가 없었다.
-큭큭큭큭! 숨통을 끊어 주마!
카렌이 현성을 향해 마력을 듬뿍 머금은 손톱을 휘둘렀다.
좌악!
현성의 몸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빌어먹을…….’
좌악!
다시금 카렌의 손톱이 현성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젠장.’
이대로는 죽는다.
힘.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힘이 필요했다.
‘누가 좀 도와줘.’
현성이 이렇게 코너에 몰린 건 처음이었다.
그런 만큼 지금처럼 간절하게 누군가의 도움을 원한 것도 처음이었다.
-힘이 필요한가?
그때 누군가의 의지가 현성의 뇌리에 틀어박혔다.
-나에게 복종해라. 그러면 힘을 주마.
‘뭐지?’
환청은 아니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의 의지였다.
-나에게 굴복해라. 그럼 눈앞의 적을 찢어 죽일 수 있는 힘을 주겠다.
달콤한 유혹.
강한 의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현성을 유혹했다.
그와 동시에 현성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지하지 못했던 초월적인 힘의 존재가 느껴졌다.
그 초월적인 힘에 비하면 지금 현성과 카렌이 벌이고 있는 전투는 어린애들 장난이나 마찬가지였다.
놀랍게도 그 초월적인 힘은 현성과 미약하게나마 연결되어 있었다.
‘줘!’
현성은 힘을 원했다.
하지만 존재의 의지는 쉽게 힘을 빌려주지는 않았다.
-넌 아직 나의 것이 아니다. 복종하고 굴복해라. 그럼 너에게 힘을 주겠다.
존재의 의지가 계속해서 현성을 유혹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존재의 의지에 굴복하면 현성은 그에게 종속된다.
‘싫어.’
현성은 누군가에게 종속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계속해서 삶을 이어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복종하지 않으면, 종속되지 않으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방법을 제외하면 말이다.
‘내놔!’
현성의 의지가 존재의 의지를 밀어냈다.
‘내놓으라고!’
마음속의 외침과 함께 현성이 미약하게나마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초월적인 힘을 강제로 끌어왔다.
복종하지 않고 힘을 얻는 방법.
그것은 상대의 힘을 강제로 빼앗아 오는 것뿐이었다.
파직!
존재의 의지가 가지고 있던 초월적인 힘이 현성의 의지에 반응했다.
-이번에는 포기하지. 하지만 그 힘을 맛본 이상 넌 더욱더 나에게 의지하게 될 거다.
존재의 의지가 그 말을 끝으로 완벽하게 자취를 감췄다.
그와 동시에 존재의 의지가 가지고 있던 초월적인 힘의 극히 일부가 현성의 몸에 강림했다.
파지지지직!
현성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빛 뇌전이 하늘과 땅을 뒤덮었다.
“으아아악!”
“살려 줘!”
칠흑빛 뇌전이 만들어 낸 후폭풍에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었던 미국 국적의 플레이어들이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마력 역장 역시 후폭풍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게 무슨?
승리를 확신했던 카렌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하늘과 땅을 뒤덮었던 칠흑빛 뇌전은 어느새 다시금 현성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저벅저벅.
현성이 한 걸음 한 걸음 카렌을 향해 다가갔다.
-크윽!
카렌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존재는 더 이상 자신과 같은 선상에 있던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탄생한 플레이어와 격이 다른 초월적인 무언가로 다시 태어났다.
-난 죽지 않아!
카렌이 분노한 표정으로 외쳤다.
상대가 시스템에 속한 존재든 벗어난 존재이든 상관없었다.
자신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불사신이었다.
-크아아아아앙!
카렌이 커다란 포효와 함께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현성의 눈에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카렌의 모습이 들어왔다.
휘익!
카렌이 현성을 향해 갈고리 같은 손톱을 휘둘렀다.
파강!
현성이 용혈검을 이용해 가볍게 카렌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와 동시에 새롭게 손에 넣은 힘을 사용했다.
파지지직!
현성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빛 뇌전이 용혈검을 타고 카렌의 몸을 강타했다.
-캬아아아아앙!
카렌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터트리며 뒤로 물러났다.
파직! 파직!
현성이 카렌을 향해 칠흑빛 뇌전에 휩싸인 용혈검을 휘둘렀다.
휘익!
카렌이 재빨리 몸을 피했다.
꽈아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카렌이 있던 장소가 말끔하게 증발해 버렸다.
‘아직은 좀 미숙하네.’
지금 현성이 사용하는 힘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존재의 의지에게서 강제로 빼앗아 온 힘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힘의 컨트롤이 잘되지 않았다.
‘그렇게 많지는 않아.’
현성이 강제로 빼앗아 온 존재의 의지가 가진 초월적인 힘의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마 길어야 5분, 힘을 과하게 사용하면 고작해야 1~2분 정도면 완전히 소모될 것이다.
하지만 현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 현성이 새롭게 손에 넣은 힘은 그 격이 달랐으니까 말이다.
-크윽! 왜 회복이 되지 않는 거지?
현성에게 달려들었다가 칠흑빛 뇌전에 부상을 입은 카렌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칠흑빛 뇌전에 그을리고 불탄 상처가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악!
현성이 가볍게 몸을 날렸다.
그 후 칠흑빛 뇌전에 휩싸인 용혈검을 휘둘렀다.
서걱!
용혈검이 카렌의 오른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반쯤 잘린 카렌의 오른팔이 덜렁거리며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현성은 계속해서 맹공을 가했다.
카렌은 오른팔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고 몸 곳곳에 적지 않은 부상을 입었다.
부상으로 인해 기동성이 상실되고 상처가 회복되지 않자 카렌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서걱!
카렌이 스스로 자신의 목을 날려 버렸다.
자살을 한 것이다.
사아아아악!
죽은 카렌의 몸이 다시금 재구성되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죽음에서 부활한 카렌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잘려 나간 오른팔은 다시 복구되지 않았고 몸에 난 상처 역시 하나도 회복되지 않았다.
분명 휘하 플레이어 한 명의 생명을 희생해 다시 부활했다.
그럼 체력과 마력을 비롯해 모든 부상이 완벽하게 치료된 상태가 되어야 했다.
한데 죽음에서 부활했음에도 카렌의 몸에는 그 전에 현성에게 입었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카렌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현성이 아무리 강한 힘을 손에 넣어도 불사의 힘을 손에 넣은 자신이 무조건 이기리라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카렌이 믿고 있던 불사의 힘이 너무도 손쉽게 무력화되어 버렸다.
“난 단순히 네 육체를 베어 상처를 입힌 게 아니야. 네 근본을 베어 버린 거지.”
-근본?
카렌은 현성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죽어라.”
현성은 카렌에게 자신이 지금 사용하는 힘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해 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카렌은 적.
죽여 없애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타악!
현성이 다시금 몸을 날리며 용혈검을 휘둘렀다.
-크윽!
카렌의 움직임이 필사적으로 변했다.
방금 전까지 카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으니 죽음을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칠흑빛 뇌전에 휩싸여 있는 현성의 검에 숨이 끊어지면?
진짜로 죽는다.
부상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처럼 끊어진 목숨도 다시 부활하지 못할 것이다.
‘말 그대로 초월적인 힘이네.’
현성은 존재의 의지가 가지고 있던 힘 중 극히 일부만을 빼앗아 왔을 뿐이다.
하지만 그 극히 일부만으로도 엄청난 권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육체와 정신을 만드는 근본.
그 근본을 베어 버릴 수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이 힘을 사용해 현성을 공격한다면?
현성도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근본이 손실당하면 제아무리 불사의 서라고 해도 상처를 치료할 수 없었다.
‘이게 신의 힘인가?’
현성은 자신이 빼앗아 온 힘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신.
현성은 흑뢰신의 숨결을 통해 신의 힘을 빼앗아 올 수 있었다.
‘게스피트 님이 하셨던 말씀의 진짜 뜻이 이거였어.’
신의 힘을 빌려 올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신들은 자신의 힘을 넘겨주지 않는다.
강제로 빼앗아 와야 한다.
현성이 만약 존재의 의지에게 굴복했다면?
역시 마찬가지로 신의 힘을 사용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현성은 신에게 종속된 존재로 살아가야 했다.
‘또 할 수 있을까?’
한 번 성공하기는 했지만 계속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아마 이게 종속 대신 자유를 선택한 대가이리라.
‘하지만 지금은 이걸로도 충분해.’
지금 가지고 있는 힘이라면 카렌을 완전히 소멸시켜 버릴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앙!
카렌이 애써 아껴 놓고 있던 힘을 이끌어 냈다.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듦과 동시에 신체 능력이 올라갔고, 마력이 증폭됐다.
하지만 그래 봤자 현성의 손바닥 안이었다.
화르르르륵!
카렌이 뿜어낸 푸른 화염이 현성의 몸에 도달했다.
원래대로라면 현성으로서도 쉽게 당해 내기 힘든 강력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방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파지지직!
현성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빛 뇌전이 가볍게 푸른 화염을 집어삼켰다.
타악!
앞으로 달려 나간 현성이 용혈검을 휘둘렀다.
좌악!
용혈검이 카렌의 왼팔을 베어 냈다.
현성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서걱! 서걱!
용혈검이 카렌의 꼬리와 오른발을 잘라 냈다.
털썩!
만신창이가 된 카렌이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도,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카렌은 왜 갑자기 상황이 반전되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자신이 이기고 있었다.
현성에게 숨겨 놓은 한 수가 있다고 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데 갑자기 상황이 반전되어 버렸다.
-왜 회복되지 않는 거야!
카렌이 절규와 함께 몸속에 있던 자신의 마력을 역류시켰다.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카렌의 몸이 산산조각 났다.
사아아아악!
마력이 모여들어 다시금 카렌의 몸을 재구성했다.
하지만 부활한 카렌의 몸은 여전히 만신창이였다.
양팔이 없었고 오른발과 꼬리가 없었다.
몸에 난 상처도 그대로였다.
저벅저벅.
현성이 한 걸음 한 걸음 카렌에게 다가갔다.
-으으으으.
카렌의 눈동자가 공포심으로 물들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던 불멸자가 죽음의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필멸자가 되었다.
카렌이 자신의 생에 종지부를 찍을 사신을 피해 필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카렌과 사신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 나를 도와라!
카렌의 외침과 함께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던 휘하 플레이어들이 달려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멀리 있었고 현성은 바로 코앞에 있었다.
“이미 늦었어. 잘 가라.”
현성이 용혈검을 들어 올랐다.
-안 돼!
카렌이 처절한 비명을 터트렸다.
하지만 현성은 카렌의 비명을 무시하고 그대로 용혈검을 내려찍었다.
푸욱!
용혈검이 카렌의 심장을 관통했다.
-커억!
카렌의 심장을 관통한 용혈검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빛 뇌전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파지지직!
카렌의 몸이 순식간에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렸다.
-적 군주를 쓰러트렸습니다.
-6차 전직 퀘스트 군주전을 완료하셨습니다.
-준신화 등급 직업 승전의 대군주로 전직하셨습니다.
전직 완료 메시지와 함께 현성의 몸이 환한 빛에 휩싸였다.
-모든 스텟이 20 증가합니다.
-군주의 깃발 스킬의 버프 리미트가 30%까지 확대됩니다.
‘소소하네.’
준신화 등급에서 신화 등급으로 전직하는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그저 준신화 등급 대군주에서 같은 등급인 준신화 등급 승전의 대군주로 전직했을 뿐이다.
스킬이 추가로 늘어나지도 않았다.
‘7차 전직 퀘스트를 마무리하면 신화 등급이 될 수 있는 걸까?’
그건 현성도 알 수가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초월 등급]
-최초로 군주전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군주전 승리자 - 초월 등급]
현성은 추가로 떠오를 업적 메시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추가 업적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게 끝인가?’
현성이 원한 것은 초월 등급 최초의 진압자와 최초의 반란자 업적 메시지였다.
그렇지만 둘 다 떠오르지 않았다.
‘반인반룡을 잡았을 때는 떠올랐는데.’
그때는 신화 등급 최초의 진압자와 최초의 반란자 업적을 획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잠잠했다.
‘초월 등급 업적을 얻기에는 무리였다는 건가?’
카렌의 레벨이 초월 등급 업적을 선물해 줄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뭐, 이득은 충분히 얻었으니까.’
6차 전직 퀘스트를 완료했고 초월 등급 업적도 하나 얻었다.
셋이 아닌 하나라는 사실이 살짝 아쉽기도 했지만, 사실 초월 등급 업적 하나를 손에 넣은 것도 실로 엄청난 성과였다.
그리고 현성이 카렌을 쓰러트림으로 인해서 얻은 것은 업적만이 아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카렌 님은 어디 가신 거지?”
현성의 눈에 무기를 뽑아 들고 달려들다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들어왔다.
카렌의 휘하에 있던 플레이어들이었다.
-꿇어라.
현성이 군주의 외침으로 카렌의 휘하에 있던 플레이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쿵!
명령과 동시에 카렌 휘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현성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의 자유의지가 아니었다.
그저 현성의 말을 듣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내가 왜?”
“최현성 플레이어는 카렌 님의 적인데?”
카렌 휘하 플레이어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왜 현성의 말에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이는지 알 수도 없었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만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시스템의 지배를 받는 플레이어들의 몸과 마음은 이미 현성을 자신이 모셔야 하는 군주로 인지하고 있었다.
-카렌은 너희들을 이용한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였다. 난 카렌을 죽이고 너희들을 해방시켜 준 것뿐이다.
현성이 군주의 외침으로 정말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카렌, 그 간악한 침략자가!”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현성 플레이어님!”
“최현성 플레이어님은 우리의 구원자십니다!”
“최현성 플레이어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카렌 휘하의 플레이어들이 바로 상황을 인식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자신들이 충성스럽게 따랐던 카렌을 욕했다.
설득할 필요도 자세히 상황을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휘하 플레이어들과 현성의 스텟 차이는 압도적이다.
그런 만큼 현성이 하는 말 한마디가 휘하 플레이어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현성의 말은 세상의 진리이자, 절대 어길 수 없는 법칙이었다.
‘내 지배를 받고 있어.’
현성은 자신 앞에 무릎 꿇은 플레이어들을 보면서 뿌듯함보다는 공포를 느꼈다.
만약 현성이 패배했다면?
현성 휘하의 플레이어들이 카렌의 충성스러운 종이 되었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초월적인 힘.’
시스템의 한계를 초월해 근본과 존재를 바꾸어 버리는 힘.
‘그 힘을 손에 넣어야 해.’
그래야만 진정한 자유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쩌면 그게 게스피트 님이 말씀하셨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짜 조건일지도 몰라.’
이건 어디까지나 단순한 현성의 추측이었다.
하지만 현성은 왠지 자신의 추측이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