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차원이 소멸했다고요?”
현성의 물음에 게스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년한테는 돌아갈 고향도 가족도 친구도 없어. 거기다 삶에 대한 미련도 없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바로 잃을 게 없는 사람이다.
“평소에는 정상인처럼 보이지만, 언제 미친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몰라.”
“혹시 전에 그런 적이 있었나요?”
“있었지. 다행히 협약을 깬 건 아니었어. 아군을 상대로 이득이 아니라 피해를 입힌 일은 협약이 아니라 규율의 제재를 받으니까.”
게스피트의 말에 현성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규율을 깬 대가로 족히 몇백 년은 봉인되어 있었을 텐데, 벌써 풀려난 모양이야.”
‘이런 미친.’
아군을 상대로 피해를 입힌 전적이 있단다.
이건 완전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를 짊어지고 있는 꼴이었다.
‘이건 득보다 실이 더 크잖아.’
초월 등급 스킬북 하나 얻었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지구가 제나의 손에 박살이 날 수도 있다.
“그런데 제가 제나 님을 처음 만난 곳은 제가 살던 차원이 아닙니다. 다른 차원이었는데 절 따라온 겁니다.”
“널 따라왔다고?”
게스피트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예.”
“포인트까지 써 가면서 갔다?”
게스피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실 게스피트도 마음만 먹으면 현성이 사는 차원으로 갈 수 있었다.
문제는 안전 결계로 보호되는 차원에 가기 위해서는 게스피트로서도 쉽게 감당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포인트를 소모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포인트를 소모해서 가도 게스피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게스피트 역시 제나와 마찬가지로 협약과 규율에 얽매여 있는 몸이었으니까 말이다.
‘진짜 어중간한 놈들이 가장 편하다니까.’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이들은 대가를 지불하고 차원 게이트를 통과하면 아무런 제약이 없다.
하지만 굴레를 벗어던진 게스피트는 아니었다.
가끔 현성에게 차원 게이트 열어서 쳐들어간다고 강짜를 놓는 놈들이 바로 그 ‘어중간한’ 놈들이었다.
“최대한 조심하고. 그 미친년이랑 만나는 일은 최대한 피해 언제 미친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웬만하면 미친년이 협약을 깨지 못하도록 해. 협약이 깨지면 바로 전면전이니까.”
“전면전요?”
“그래, 전면전이 벌어지면 안전 결계고 나발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 아마 지구 같은 신생 차원은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그대로 소멸해 버릴 거야.”
“헉!”
게스피트의 말을 들은 현성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지구가 소멸할 위기인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협약을 깨지 못하도록 막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거야. 너한테 공짜로 뭐 챙겨 주거나 도움 준다고 해도 절대 받지 마. 무조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저기, 그런데 그렇게 위험한 인물이면 왜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겁니까?”
현성은 그게 의문이었다.
언제 협약을 깨고 전면전을 일으킬지 모르는 시한폭탄.
그런 위험인물이라면 잡아 가두는 한이 있더라도 제재를 가하는 게 옳았다.
현성의 물음에 게스피트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모두가 지금 상황에 만족하는 게 아니니까. 아마 아군 중에서도 그 미친년이 사고 좀 쳐 줬으면 하고 바라는 놈들이 꽤 많을 거야.”
“아!”
현성은 그제서야 현 상황이 이해가 갔다.
아군 중에는 협약이 깨지지 말았으면 하는 이들도 있지만, 협약이 깨져 전면전을 치렀으면 하는 이들도 있다.
문제는 협약을 깼을 때의 페널티다.
“자기가 직접 협약을 깨기에는 페널티가 무서우니 협약을 깰 가능성이 높은 제나 님에게 힘을 실어 준 거군요.”
“정답이다.”
현성의 물음에 게스피트가 다시 피식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절대 협약이 깨져서는 안 돼.’
지구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현성이 그 말을 끝으로 용병 고용을 취소했다.
슈욱!
현성은 다시금 지구로 귀환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목적대로 제나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파악하는 데는 성공했다.
다행히 진실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제나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협약과 규율을 언제든지 깨 버릴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었지만 말이다.
제나가 규율을 어겼다?
그건 제나의 손에 지구가 개박살이 난다는 뜻이다.
제나가 협약을 깼다면?
전면전이 벌어지고 그에 휩쓸린 지구가 소멸한다.
“하아!”
현성의 입장에서는 절로 한숨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 * *
제나는 집순이가 되었다.
넓은 집을 샀고, 그 집을 온갖 전자 기기로 가득 채웠다.
그 후에는 집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간 제나의 여행 스타일과는 상당히 상반된 행동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 세계는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나라였다.
집에 틀어박혀서 컴퓨터 게임과 콘솔 게임만 해도 지루할 틈이 없는 것이다.
제나는 현성이 초월 등급 스킬북의 대가로 준 돈을 통장에 넣어 놓은 채로 게임에 열중했다.
현성으로서는 상당히 다행스러운 상황이었다.
괜히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고가 터질 확률이 줄어든 셈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제나의 등장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강대국이라고 할 만한 나라들은 모두 제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발악했다.
제나가 지구에 와서 한 일이라고는 스킬북 하나를 판매한 것밖에 없다.
하지만 그 일 자체가 엄청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현성이 제나라는 여자에게 자신의 재산을 뚝 떼어 준 것처럼 보일 테니까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아끼면 그렇게 큰 재산을 주는 거야?
-가족한테도 그 정도로 큰돈을 주지는 않았어.
-최현성 플레이어의 여자가 틀림없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그 여자에게 푹 빠져 있다더라.
-어쩌면 그간 최현성 플레이어가 키운 비밀 병기일지도 모른다.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추측은 제나가 현성의 여자 친구 혹은 약혼녀라는 쪽에 쏠려 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바로 현성이다.
하지만 그간 여자관계는 나름 깨끗(?)했다.
그런 현성의 혼을 쏙 빼놓은 여자가 등장했다.
당연히 만인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제나를 이용해 현성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이들도 있었고, 반대로 제나를 이용해 현성의 흠을 잡으려는 이들도 존재했다.
당연히 이런 사실은 현성의 귀에 들어갔다.
“이런 미친!”
현성의 입장에서 제나를 이용하려는 이들은 터지기 직전인 화약고를 자극하고 있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당장 경계를 강화하세요. 그리고 절대 그녀와 접촉하지 말라고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현성의 말에 강선영 길드장이 재빨리 대답했다.
하지만 강선영 길드장도 제나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건 신윤아나 루시아를 포함한 현성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그 제나라는 아가씨의 정체가 뭔데 그러냐?”
현성의 아버지인 최형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모르시는 게 속 편해요, 아버지.”
“궁금해서 그런다. 혹시 며느릿감이냐?”
최형규의 말에 신윤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루시아 역시 살짝 움찔했다.
“절대 아닙니다.”
“그럼?”
아버지 최형규를 비롯해 강선영 길드장과 신윤아 그리고 루시아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하아!”
아무래도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제나 님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플레이어입니다.”
“뭐?”
“그럼 적 아닙니까?”
당연히 모두가 기겁을 했다.
“적은 아닙니다. 제나 님은 침략자 플레이어가 아니라 아군 플레이어니까요.”
“아군?”
최형규가 눈을 꿈뻑이며 물었다.
“예.”
“그럼 그냥 친하게 지내면 되는 거 아니냐?”
최형규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나 님은 저보다 월등히 강한 플레이어입니다. 저와는 격이 달라요.”
현성의 말에 모두가 입을 쩍 하고 벌렸다.
현성은 세계 최강의 플레이어다.
그런 현성보다 월등히 강하다니?
격이 다르다니?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얼마나 강한지 도저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분이 그렇게 강한 플레이어라는 말씀이십니까?”
강선영 길드장이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은 얌전히 지내고 있지만, 수틀리면 혼자서 지구를 멸망시킬 수도 있습니다.”
현성의 말에 강선영 길드장을 비롯한 모두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부, 분명히 아군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강선영 길드장의 말에 현성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군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습니다. 아니, 도움을 준다고 해도 받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해를 끼칠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조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강선영 길드장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강선영 길드장을 비롯해서 현성에게 우호적인 국가들은 적당히 경고하면 알아들을 것이다.
문제는 미국을 주축으로 슬슬 현성과 대립각을 세우는 국가들이었다.
‘경계를 더 강화해야겠어.’
미국의 수작질에 제나가 다칠 일은 없다.
문제는 제나에게 깝죽거리다가 미국이 개박살 나는 것이었다.
미국의 플레이어 전력은 한국을 제외하면 가장 뛰어났다.
또 단순히 플레이어 전력만이 아니라 군사력과 경제력으로도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국이 무너지면?
지구 전력에 심각한 공백이 발생한다.
‘어차피 결국에는 끌어안아야 해.’
따끔한 몽둥이찜질 정도는 몰라도 미국이 무너지는 일은 막아야 했다.
* * *
“아직 정체가 파악되지 않았나?”
윌슨 대통령이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대통령님.”
CIA 국장의 대답에 윌슨 대통령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니, 도대체 왜!”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과거의 행적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혹시 최현성 플레이어가 만든 가짜 신분일까?”
몬스터로도 변신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성별이 다른 인간으로 변신하지 못할 리는 없다.
“그럴 가능성도 있긴 하겠지만, 그리 높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왜 그렇지?”
“제3의 인물을 만들어 재산을 분할하는 일이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이득이 되기는커녕 마이너스만 되기 때문입니다.”
“으흠.”
CIA 국장의 말에 윌슨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거기다 이모탈 길드에서 저택을 철통같이 경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최현성 플레이어의 가짜 신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그 소문이 맞는 건가?”
“확률이 낮기는 하지만,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골치가 아프군. 도대체 무슨 속셈인 거야?”
진짜 여자 친구나 약혼녀라면 꼭꼭 숨기는 게 더 안전했다.
아니면 자신의 집에 들이거나 말이다.
“정보원들을 좀 더 투입시키겠습니다.”
“괜히 최현성 플레이어를 자극하지 않도록 하게.”
“본국과의 연결 고리를 완벽히 끊겠습니다.”
“알겠네.”
미국은 일단 정보를 탐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백악관과는 다르게 좀 더 과격한 결정을 내린 사람이 있었다.
* * *
‘도대체 뭐 하는 짓이지?’
카렌은 최근 최현성 플레이어의 행보가 상당히 수상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라고 확신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렇게 방치하는 건 상식에 맞지 않았다.
카렌이 지구의 플레이어든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든 최현성 플레이어의 경쟁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데 그 경쟁자가 휘하 신하들을 늘리며 급격하게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
그러면 당연히 막으려고 하는 게 상식이었다.
한데 최현성 플레이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웬 여자에게 빠져서 엉뚱한 짓거리를 벌이고 있었다.
‘한번 찔러봐야겠어.’
미국 정부는 상당히 소심하다.
이런 상황이 되어서도 최현성 플레이어와의 충돌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카렌은 아니었다.
‘이제 준비는 끝났어.’
통솔력의 한계치까지 휘하 신하들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더 이상 레벨을 올릴 수 없는 카렌의 입장에서는 슬슬 최현성 플레이어와의 싸움을 시작할 때였다.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 수 있는지 지켜보마.’
카렌이 미소를 지으며 군주의 외침 스킬을 시전했다.
-시작해라.
카렌의 지시를 받은 휘하 신하들이 미리 준비된 작전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 * *
중국은 나름 평화로웠다.
이무기와 랫맨 사태 이후 큰 문제 없이 차원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한국에 너무 저자세로 나가고 있는 마분석 부주석에 대한 불만이 꽤 크기는 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언론을 정부가 꽉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상한 소문 하나가 베이징을 중심으로 중국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무기는 최현성 플레이어의 지시를 받는 몬스터였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이무기를 이용해 중국을 공격했다.
-랫맨도 마찬가지다.
-랫맨의 정체는 바로 몬스터로 변신한 최현성 플레이어였다.
-마분석 부주석이 최현성 플레이어와 손을 잡고 정적들을 척살한 거다.
-마분석 부주석은 최현성 플레이어의 개다.
-마분석 부주석을 몰아내야 한다.
-마분석 부주석이 정권을 잡고 있는 한 중국은 영원히 한국의 노예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진정한 중화인민의 힘을 보여 주자.
중국 내부에서, 그것도 플레이어와 일반인 사이에서 이무기를 최현성 플레이어가 조종했다는 소문과 랫맨이 최현성 플레이어였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중국이 들끓었다.
차원 게이트가 열리고 생긴 문제들을 중국은 차근차근 극복해 나갔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플레이어 세계 최강국이라며 자부했다.
그 자부심이 무참히 깨진 것이 바로 이무기 사태와 랫맨 사태였다.
한데 그 일의 주범이 최현성 플레이어였다면?
최현성 플레이어는 중국의 영웅이 아니라 중국의 원수였다.
반한 감정을 가진 중국인들이 들고일어났다.
원래 중국은 한국에 대한 반한 감정이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무너지며 중국과 한국이 국경을 마주하게 된 상태에서 최현성 플레이어로 인해 한국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자 불안감이 강해졌다.
중국이 한국에 질질 끌려다닌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중국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던 중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마분석 부주석은 국영방송을 통해 최현성 플레이어가 있는 한국은 절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사실을 세뇌하듯 중국 인민들에게 가르쳤다.
하지만 중국 인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중화사상이 그렇게 쉽게 잘려 나갈 리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최현성 플레이어가 이무기를 조종하고 랫맨으로 변신해 중국을 공격했다는 소식은 엄청나게 치명적이었다.
마분석 부주석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중국 인민들을 선동했고 전국에서 대대적인 반한 시위가 일어났다.
마분석 부주석으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군대를 투입해야겠습니다.
마분석 부주석의 말을 들은 현성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건 끓는 물에 기름을 붓는 짓이야.”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시위 규모가 점점 커집니다. 시위대는 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시위대에게 있어서 마분석 부주석은 현성의 개에 불과했다.
당연히 중국 내부에서는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지우려면 현성의 개인 마분석부터 쳐 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었다.
마분석은 군권을 움켜쥐고 있었다.
대다수의 플레이어들도 마분석을 지지했다.
마분석으로서는 군인과 플레이어 들이 동요하기 전에 문제의 싹을 잘라 버리고 싶었다.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 바로 무력 진압이었다.
“제2의 천안문 사건을 벌일 셈이냐?”
-필요하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분석의 강경한 태도에 현성은 골치가 아팠다.
마분석은 권력에 미쳐 있다.
현성이 모른 척하면 정말 제2의 천안문 사건을 벌일지도 모른다.
“기다려라.”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무조건 기다려. 일단은 말로 설득해 봐. 냉정하게 한국을 등졌을 때의 손실을 중국 인민들에게 알려.”
-아, 알겠습니다.
현성의 지시에 결국 마분석이 꼬리를 내렸다.
뚝.
현성이 전화를 끊었다.
‘이건 임시방편일 뿐이야.’
중국 인민들은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중화사상을 중심으로 한 자존심 때문에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했다.
‘이런 게 가장 무서운데.’
중국 인민들의 자존심을 꺾어야 했다.
중국보다 현성이 존재하는 한국이 더 위라는 사실을 인지시켜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힘의 차이를 보여 주는 건데.’
정신이 반쯤 나간 중국 인민들을 정신 차리게 하려면 웬만한 사건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아마 카렌의 짓이겠지.’
이런 미친 짓을 벌일 이는 카렌밖에 없었다.
‘준비가 끝났다 이건가?’
카렌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갖춘 듯했다.
‘그럼 나도 슬슬 손을 써야겠어.’
드디어 카렌의 숨통을 끊어 버릴 때가 왔다.
위이이이잉!
그때 현성의 전화기가 요란하게 진동했다.
“강선영 길드장님?”
현성이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입니까?”
-크, 큰일 났습니다. 제나 님의 숙소로 일단의 플레이어들이 쳐들어왔습니다. 곧 방어선이 뚫릴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현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그런 제나를 건드리다니?
현성이 장거리 공간 이동 스크롤을 찢었다.
화악!
밝은 빛무리에 휩싸인 현성이 제나의 숙소로 이동했다.
* * *
“막아!”
이모탈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이 사력을 다해 저항했다.
좌악!
“커억!”
하지만 중과부적이었다.
갑작스럽게 기습을 가해 온 플레이어들의 실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리고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분의 명을 이행해야 한다!”
“죽여라! 모조리 죽여라!”
기습을 가해 온 플레이어들은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맹목적으로 공격을 퍼부었으며 팔이나 다리가 잘려 나가도 멈추지 않았다.
기습을 가해 온 플레이어들은 스스로의 목숨을 초개처럼 바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나의 호위를 위해 배치되어 있던 이모탈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게임 전용 헤드셋을 착용한 제나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저기 목표물이 있다!”
“죽여라!”
광기에 휩싸인 정체불명의 플레이어들이 제나를 향해 달려들며 스킬을 난사했다.
한편 제나를 지키던 이모탈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은 마음이 답답했다.
지켜야 할 대상이 피신을 하든지 집 안에 콕 박혀 있어야지 왜 창문을 열고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며 나댄다는 말인가?
“막아!”
“무조건 지켜라!”
이모탈 길드 소속의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몸을 날려서라도 제나를 지키려고 했다.
제나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휘익!
제나가 가볍게 손을 휘둘렸다.
사아아악!
그와 동시에 정체불명의 플레이어들이 날린 공격 스킬들이 그대로 허공에서 소멸해 버렸다.
“어?”
죽을 각오를 하고 몸을 날렸던 이모탈 길드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역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가장 중요한 한타를 벌이고 있었는데…… 네놈들이 감히 나를 방해를 해? 네놈들 때문에 승급전에서 졌잖아!”
분노가 가득 담긴 제나의 외침과 함께 감히 측량조차 하기 힘든 강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유형화된 마력이 대기를 장악하며 공기를 짓눌렀다.
덜덜덜덜.
공격하던 측과 방어하던 측 할 것 없이 플레이어들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진동하기 시작했다.
제나가 한 일은 단순히 자신의 마력을 방출한 것뿐이었다.
아직까지 제나는 직접적으로 양쪽의 플레이어들에게 그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들은 다리가 풀려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털썩!
얼굴이 하얗게 질린 플레이어들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너희는 내 심부름 해 주는 놈들이고. 저놈들이 방해를 한 거지?”
제나가 반쯤 눈알을 뒤집고 손을 들어 올렸다.
콰콰콰콰콰!
유형화된 마력이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스킬로 변모해 제나의 오른팔을 뒤덮었다.
슈욱!
그때 현성이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크윽!’
도착하자마자 쉽게 감당하기 힘든 강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현성이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죽이면 안 돼.’
저들이 적이든 아군이든 제나가 직접적으로 실력 행사에 나서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제나 님!”
현성이 재빨리 제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 최현성 씨?”
반쯤 뒤집혀 있던 제나의 눈이 살짝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러시면 제나 님도 곤란해지지 않습니까? 뒷일은 저한테 맡겨 주시죠.”
“그딴 건 상관없어요! 저놈들이 시끄럽게 해서 승급전에서 미끄러졌단 말이에요!”
제나의 외침에 현성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상관이 없을 리가 없잖아!’
잘못하면 협약이 깨지고 전면전이 벌어진다.
제나는 현재 AOS 계열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현성은 아직 교류의 보석을 통해 AOS 계열 게임을 서비스하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AOS 계열은 제나로서도 난생처음 해 보는 장르의 게임이었다.
초보자였던 제나는 AOS 계열 게임에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게임 로그 기록을 보면 잠도 자지 않고 밥 먹는 시간도 아껴 가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게임 한판 졌다고 지구가 멸망할 수는 없잖아.’
현성도 한 명의 게이머로서 승급전을 하고 있는데 강제로 방해를 받은 상황에 대한 분노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해.’
게임으로 생겨난 분노는 게임으로 풀어야 했다.
“저놈들을 직접 처벌하시면 앞으로 게임을 하실 수가 없습니다!”
현성의 외침에 제나의 눈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건 그렇네요.”
“제가 말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이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흩뿌렸다.
침입자들은 흑뢰신의 숨결에 몸이 마비되고 화염의 서가 마력을 흡수해 꼼짝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아, 그런데 승급전에서 패배해서 떨어진 등급은 어떻게 복구하죠?”
제나의 말에 현성이 눈을 부릅떴다.
“제가 복구시켜 드리겠습니다.”
“현성 씨가요?”
“제 본계정 티어가 플래티넘입니다.”
“우와! 엄청 높으시네요. 전 이제 겨우 브론즈인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브론즈 부계정이 하나 있습니다. 함께 듀오하시죠.”
“좋아요!”
현성이 제나를 달래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완전 게임룸이네.’
방음 시설까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아마 침입자들이 쳐들어오지 않았다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제나가 나서는 일은 없었을 듯했다.
“여기 앉으세요.”
제나가 다섯 개의 자리 중 하나로 현성을 안내했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팀 꾸려서 같이하려고 미리 만들어 놨어요.”
제나의 말에 현성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차라리 제나 님이 프로 게이머가 되는 게 지구 평화에 도움이 되는 일이야.’
생각을 정리한 현성이 부계정으로 로그인을 하고 제나와 듀오를 맺었다.
“그럼 바로 시작하시죠.”
“알겠어요!”
현성이 제나와의 게임에 열중했다.
“악!”
“아까워!”
“다 어디 간 거야!”
“잡아요!”
“와! 이겼다!”
“다시 시작해요!”
“와, 드디어 승급했다!”
게임을 한 지 20시간 만에 드디어 승급에 성공했다.
‘힘들어 죽겠네.’
현성은 제나가 프로 게이머가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센스가 없는 거야?’
제나는 상황 판단을 더럽게 못 했다.
한타를 해야 할 때 혼자 엉뚱한 곳에 가 있거나 중립 몬스터를 쳤다.
또 한타를 피해야 할 때 혼자 한타를 걸었다.
전체적인 게임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 완전히 꽝이었다.
사실 현성의 오더만 따라 움직여도 승급하기가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나는 독불장군이었다.
도무지 현성이나 다른 팀원의 말을 들어 처먹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리더가 되어 엉뚱한 오더를 내리기 일쑤였다.
‘그나마 피지컬이 어느 정도 돼서 다행이지.’
제나의 동체 시력과 신체 능력은 독보적인 수준이다.
그 덕분에 피지컬이 자체는 상당히 뛰어났다.
뭐, 문제는 특성 선택과 아이템 구매를 더럽게 못한다는 점이었지만 말이다.
알려 주는 대로 하면 그래도 기본은 하는데, 절대 현성의 말을 들어 먹지 않는다.
거기다 선택하는 캐릭터도 꼭 패치 칼질을 당해 고인이 되어 버린 것들이다.
팀원 캐릭터나 적 캐릭터와의 상성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외형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캐릭터를 골랐다.
상향 패치도 받고 팀원과의 조합도 좋은 캐릭터를 권해 줘도 절대 그건 하지 않았다.
‘완전 고집불통이야.’
솔직히 제나와 듀오로 더 게임을 하다가는 현성이 암에 걸릴 것 같았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탈출이다.’
“왜 벌써 가세요? 전 챌린저까지 찍고 싶은데?”
온갖 트롤 짓으로 무려 20시간 만에 브론즈에서 실버로 승급한 뉴비가 챌린저까지 찍고 싶단다.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울고 싶다.’
정말 울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