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권. 제나 (144/225)
  • ┃제나

    “그게 정말인가?”

    영국 총리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미국도 증거는 없다고 합니다. 단순한 심증일 뿐입니다.”

    “아무리 심증이라도 그렇지.”

    영국 총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몬스터의 탈을 뒤집어쓰고 경쟁자를 제거하려 했고 개인적인 원한을 해결했다.

    이건 절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랫맨과 리자드맨이 정말 최현성 플레이어라면, 이거 정말 큰일 아닌가?”

    최현성 플레이어와 영국의 사이가 틀어지면 당장 영국에도 랫맨이나 리자드맨이 등장할 수 있었다.

    아니,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최현성 플레이어가 비공식적으로 심령을 제압한 몬스터를 모르는 척 영국에 풀어놓을 수도 있었다.

    “그렇습니다.”

    “미국 측 정보가 거짓일 가능성은?”

    사실 증거도 없는 만큼 미국이 혼자 소설을 쓰고 있을 확률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물론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사례를 보자면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적대적인 정치인들이 싹 다 죽었다.

    그리고 친최현성 플레이어 파벌이 권력을 잡았다.

    “그래, 어쩌면 중국과 일본이 시작일 수도 있어.”

    중국과 일본을 시작으로 하나하나 세계 각국을 점령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무조건 막아야 했다.

    ‘최현성 플레이어만 믿고 있는 것보다는 선택지를 하나 더 늘리는 게 낫지.’

    카렌은 현재 무섭게 성장 중이다.

    카렌이 최현성 플레이어와 대등한 수준으로 성장한다면?

    세계는 최현성 플레이어를 보유한 한국과 카렌 플레이어를 보유한 미국의 세상이 될 것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끌려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양쪽 모두를 선택한다면?

    ‘우리 영국이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어.’

    영국 총리는 영국인이다.

    당연히 영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제안을 수락한다고 전하게.”

    “최현성 플레이어가 알게 되면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최현성 플레이어가 영국의 플레이어들을 모두 휘하에 들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

    “미국과 손을 잡으면 최현성 플레이어도 우리를 함부로 할 수 없을 거야.”

    영국 총리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비밀리에 자국 플레이어들을 미국으로 보냈다.

    이런 일이 세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 * *

    “캐나다, 영국, 호주, 멕시코, 프랑스, 독일 등등 아메리카와 유럽 지역의 국가들이 비밀리에 미국으로 플레이어들을 파견했습니다. 아마 그들 모두가 카렌 플레이어의 휘하에 들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강선영 길드장의 말에 현성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 숫자가 워낙 많아지자, 나중에 와서는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도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은 흔들리지 않은 모양이군요.”

    “예, 그렇지만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손쉬운 문제다.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현성만 믿고 있는 것보다는 미국과 현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게 나았다.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강선영 길드장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어떤 조치 말입니까?”

    “이모탈 길드 지부를 철수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이모탈 길드 지부가 철수하면, 각국의 최상위 랭커들이 증발해 버린다.

    이건 엄청나게 큰 문제였다.

    당장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거나 차원 게이트가 열렸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다.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더욱더 미국 측에 붙을 겁니다.”

    이모탈 길드가 사라짐으로 인해서 생긴 공백은 카렌과 미국이 메워 줄 것이다.

    설사 카렌과 미국이 모든 공백을 메워 주지 못하더라도 현성에게 손을 내밀지는 않을 것이다.

    현성에 의해 자국의 안전이 위협받은 상황이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계속 발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설사 큰 피해를 보더라도 현성에게 등을 돌리고 미국에 더욱 의지할 것이다.

    이모탈 길드 지부 철수는 현성의 평판만 깎아 먹고 적을 늘리는 악수가 되기에 딱 좋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가만히 내버려 두십시오. 지금 당장 문제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현성의 말에 강선영 길드장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통솔력에는 한계치가 있지.’

    카렌은 아마 통솔력을 모조리 사용한 뒤 현성에게 싸움을 걸 것이다.

    현성은 그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생각이었다.

    ‘기다려라. 때가 되면 네가 뒤집어쓰고 있는 가면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벗겨 주마.’

    그날이 오면 둘로 나뉜 지구의 플레이어 세력이 다시 하나로 합쳐질 것이다.

    * * *

    ‘정말 신기한 게 많네.’

    제나는 평범한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한국 곳곳을 여행했다.

    높게 치솟은 빌딩 숲과 땅 위를 달리는 자동차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까지.

    한국은 제나가 지금까지 여행한 수많은 차원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문화를 이룩하고 있었다.

    ‘게임도 엄청나게 많아.’

    오락실, PC방을 비롯해 즐길 수 있는 게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또 영화, 뮤지컬, 연극 등등 눈과 귀로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

    제나는 한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런 세상이 있었다니!’

    제나는 제국의 황제도 지구에 살아가는 평범한 일반인만큼의 문화생활을 즐기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들어.’

    그간 현성이 시스템 상점에 판매해 제나가 즐겼던 것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지구라는 별에는 정말 즐길 거리가 많았다.

    문제가 있다면 신분증이었다.

    ‘이곳은 까다로운 게 많아.’

    신분증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게임에 회원 가입을 하려고 해도 신분증이 필요했다.

    마석을 돈으로 바꾸는 데도 신분증이 필요했다.

    스마트폰을 개통하기 위해서도 신분증이 필요했다.

    하다못해 야간에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도 신분증이 필요했다.

    ‘한번 만나러 가 볼까?’

    이 차원의 문명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신분증과 돈이 필요했다.

    * * *

    현성은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몬스터를 사냥하고 포인트를 모은다.

    장사를 해서 포인트를 모은다.

    그렇게 모은 포인트로 스킬북을 구입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성장형 스킬들을 성장시킨다.

    ‘슬슬 등급이 올라갈 때가 된 것 같은데.’

    이제는 초월 등급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는 권한을 받을 만큼 누적 포인트가 쌓인 것 같은데,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부지런히 움직이자.’

    현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부지런히 사냥과 장사를 해 포인트를 모으는 것뿐이었다.

    “크아아아앙!”

    현성의 도발 스킬에 걸려든 해양 몬스터들이 무더기로 달려들었다.

    파지지지직!

    현성이 가볍게 흑뢰신의 숨결을 뿌렸다.

    -캬아아앙!

    몬스터들이 구슬픈 비명을 터트리며 죽어 나갔다.

    현성은 마석과 아이템을 회수한 뒤 다시금 몸을 날렸다.

    그리고 같은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그때 현성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화들짝 놀란 현성이 몸을 돌렸다.

    그런 현성의 눈에 비친 것은 절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현성이 경악한 눈빛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제나를 바라봤다.

    ‘파르티샤의 차원에 있는 거 아니었어?’

    당황한 현성이 호루스의 눈을 착용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호루스의 눈은 현성의 바로 앞에 있는 제나의 마력을 전혀 감지해 내지 못했다.

    ‘신안 스킬도 마찬가지야.’

    호루스의 눈과 신안 스킬 모두 먹통이었다.

    “당하는 건 한 번이면 족하죠. 사실 그때는 그 차원에 아이템이 있는 줄 모르고 방심했으니까 걸린 거고요.”

    제나의 말에 현성은 맥이 탁 하고 풀려 버렸다.

    현성이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의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감지조차 할 수 없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절 따라오신 겁니까?”

    현성의 물음에 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게스피트도 현성을 만났다.

    하지만 지구로 넘어온 적은 없었다.

    “쉽지는 않은데,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어요.”

    “다시 돌아가 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되겠는데요.”

    제나의 대답에 현성이 할 말을 잃었다.

    ‘그래, 내가 뭐라고 하든 들을 사람이 아니지.’

    현성이 강제로 제나를 내쫓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피해는 일절 끼치지 않을 거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가 이 차원에 있다고 해서 최현성 씨가 손해 볼 일은 없을 거예요.”

    제나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사실 현성이 손해 볼 일은 없었다.

    “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현성이 제나를 보며 물었다.

    제나는 현대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복장을 걸치고 있었다.

    이미 지구에 대해 어느 정도 적응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몇 가지 부탁할 게 있어서요. 그런데 얼마 전에 저한테 하신 말들이 전부 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네요?”

    제나가 눈을 날카롭게 뜨며 물었다.

    “예?”

    “게임이나 영화를 제작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래서 그 손해를 메꾸려면 그 정도 포인트는 받아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그, 그게…….”

    얼마 전에 했던 거짓말이 바로 들켜 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 마석으로 작동하는 컴퓨터나 TV가 있었네요? 그리고 경유도 생각보다 엄청 싸고요.”

    “하하하.”

    현성은 다시 멋쩍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제나가 이 사실을 게시판에 올리면 아마 난리가 날 거다.

    그간 현성이 취한 폭리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꼴이니까 말이다.

    “뭐, 제 부탁만 들어주시면 조용히 있어 드릴게요.”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결국 현성이 백기를 들었다.

    “신분증 좀 만들어 주세요. 돈도 좀 주시고요.”

    마치 맡겨 놓은 물건을 달라고 하는 것처럼 당당했다.

    하지만 현성은 제나의 부탁을 절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 물론 공짜는 아니에요. 제가 이 세계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도와주시면 이걸 드릴게요.”

    제나가 아공간을 열어 무언가를 꺼냈다.

    “스킬북?”

    아공간 속에서 나온 물건은 스킬북이었다.

    “확인해 보세요.”

    제나의 말에 현성이 스킬북을 건네받았다.

    [차원의 이면 – 초월 등급]

    -액티브 스킬

    -암흑 계열 마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착용자의 모습과 마력을 감춰 줍니다.

    -액티브 스킬북 차원의 이면 – 초월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하!”

    현성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신화 등급 스킬북이었다면 현성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포인트만 있으면 현성도 신화 등급 스킬북 정도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초월 등급 스킬북은 아니었다.

    현재 현성에게 초월 등급 스킬북은 아무리 많은 포인트가 있어도 절대 구할 수 없는 보물 중에 보물이었다.

    “이걸 저에게 주시겠다고요?”

    현성의 물음에 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공짜는 아니에요. 신분증이랑 스킬북의 가치만큼의 돈을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성이 재빨리 대답했다.

    초월 등급 스킬북은 현재의 현성으로서는 돈이나 포인트가 아무리 많아도 살 수 없는 물건이었다.

    한데 그런 물건을 포인트도 아니고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더군다나 현성은 현재 제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냥 부려 먹어도 따라야 할 처지에 이런 대가를 주니 안 들어줄 수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해 주세요.”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그 전까지 임시로 머물 곳이 필요한데.”

    “한국 최고의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그럼 안내하세요.”

    “예.”

    현성은 제나를 호텔로 안내했다.

    당연히 계산은 현성이 했다.

    또 당분간 제나가 사용할 수 있도록 현성의 명의로 된 카드도 한 장 넘겨줬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제나의 부탁을 뒤로하고 현성이 호텔을 빠져나왔다.

    ‘좋은 거래를 했어.’

    현성이 아공간 속에 들어 있는 스킬북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거래는 현성의 입장에서도 이득이었고 제나의 입장에서도 이득이었다.

    ‘아마 나에게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무언가를 받아 낼 수는 없는 모양인데.’

    현성과 제나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제나가 갑이다.

    제나가 현성을 협박했다면?

    현성은 제나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한데 제나는 굳이 대가를 지불하고 정당한 거래를 희망했다.

    ‘제약이 있는 게 확실해.’

    정당한 대가를 주고받는 거래에는 제약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얻는 이득이나 손해는 제약에 걸린다.

    물론 이건 단순한 현성의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 추측이 정답일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게스피트 님과 비약을 거래했을 때도 이랬었지.’

    현성은 과거 게스피트에게 포인트를 주고 비약을 손에 넣은 적이 있었다.

    다음 대격변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던 게스피트였다.

    하지만 포인트를 받고 비약을 대신 구매해 주는 일은 해 주었다.

    ‘정당한 대가라.’

    그 정당한 대가가 굳이 포인트가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기왕이면 더 많이 뽑아 먹어야지.’

    제나에게 돈을 주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아이템을 얻는다면?

    이건 현성에게 있어서 최고의 거래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것부터 확인해 보자.’

    현성이 제나와의 거래로 손에 넣은 차원의 이면 스킬을 습득했다.

    ‘차원의 이면.’

    익히자마자 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음?’

    딱히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았다.

    ‘테스트를 해 봐야지.’

    일단 가까운 던전에 들어갔다.

    -크우우우.

    몬스터의 숨소리가 코앞에서 들렸다.

    하지만 몬스터는 현성을 공격하지 않았다.

    아니,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 한번.’

    현성이 신혈검을 뽑아 들고 그대로 몬스터의 향해 찔러 넣었다.

    콰직!

    -캐액!

    몬스터가 즉사했다.

    -크아아아앙!

    -캬아아아아!

    그제야 현성의 존재를 알아차린 몬스터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파지지지직!

    현성이 흑뢰신의 숨결을 흩뿌려 몬스터들을 정리했다.

    ‘기본적인 은신 스킬의 속성을 벗어나지는 못하네.’

    초월 등급이기는 하지만 공격을 하면 정체가 드러난다는 단점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하긴 되면 그건 사기지.’

    현성은 다시금 차원의 이면 스킬을 사용했다.

    그 후 이모탈 길드의 본부로 향했다.

    ‘이 정도 보안은 가볍게 무시한다 이건가?’

    이모탈 길드의 본부는 최고 수준의 보안장치가 되어 있다.

    한데 그 보안장치들이 현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건 이모탈 길드 안에 있는 플레이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플레이어들이 현성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성이 느긋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고층으로 이동했다.

    ‘윤아 씨네.’

    최고층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만난 플레이어는 신윤아였다.

    하지만 그녀는 현성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건 강선영 길드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현성이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보안이 상당히 허술하네요?”

    현성의 말에 강선영 길드장이 바로 마력을 끌어 올려 방어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와 동시에 신윤아가 허리의 검을 뽑아 들고 그대로 현성이 있는 방향을 향해 찔러 넣었다.

    ‘반응 참 빠르시네.’

    현성이 신혈검을 들어 신윤아의 공격을 막으려고 했다.

    슈욱!

    한데 신윤아의 검이 신혈검을 무시하고 그대로 현성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어?’

    현성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신윤아의 검과 신혈검은 마치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처럼 어긋났다.

    현성이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분명히 신윤아의 검이 몸을 베었다.

    한데 아무런 고통도 없었고 상처도 없었다.

    슈욱! 슈욱!

    신윤아가 연달아 검을 휘둘렀다.

    현성은 신혈검으로 신윤아의 공격을 다시금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신혈검과 신윤아의 검은 서로 부딪치지 못했다.

    또한 신윤아의 검 역시 현성의 몸에 아무런 상처를 내지 못했다.

    ‘대박.’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역시 초월 등급 스킬은 초월 등급 스킬이었다.

    ‘단순히 모습을 감춰 주는 은신 스킬이 아니었어.’

    차원의 이면이라는 이름처럼 현성의 존재 자체를 차원의 이면으로 감춰 버렸다.

    ‘방어 스킬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겠어.’

    피하기 힘든 공격이 날아올 때 차원의 이면 스킬을 사용하면?

    현성은 순간적으로 무적 상태가 된다.

    “뭐죠?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아니, 나도 분명히 들었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신윤아와 강선영 길드장이 주변을 경계했다.

    ‘내가 장난이 너무 심했네.’

    현성이 차원의 이면 스킬을 해제했다.

    “자문위원장님?”

    “현성 씨?”

    강선영 길드장과 신윤아가 현성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놀라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새롭게 얻은 은신 스킬을 테스트해 보느라고요.”

    현성의 말에 강선영 길드장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은신 스킬이라고요?”

    “예.”

    “그럼 혹시 계속 한국에 있으셨던 겁니까?”

    “그런데요?”

    “정말 놀랍군요.”

    “뭐가 놀랍다고 하시는 건지?”

    “얼마 전에 호루스의 눈으로 한반도 전역을 탐지했습니다. 그런데 자문위원장님의 존재가 감지되지 않았었습니다.”

    “예?”

    “그래서 저는 자문위원장님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 줄 알았습니다.”

    “혹시 호루스의 눈을 다시 사용해 주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강선영 길드장이 호루스의 눈을 착용했다.

    “지금은 자문위원장님의 위치가 확실하게 파악되고 있습니다.”

    “잠시만요.”

    현성이 차원의 이면 스킬을 시전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군요. 호루스의 눈에서 자문위원장님의 존재가 사라졌습니다.”

    강선영 길드장의 말에 현성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혔다.

    ‘이거 상당히 큰 도움이 되겠어.’

    호루스의 눈조차 감지할 수 없는 초월 등급의 은신 스킬.

    이 스킬 덕분에 카렌을 잡는 일이 상당히 손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받으시죠.”

    “예상보다 빠르네요. 고마워요.”

    현성은 불과 며칠 만에 새로운 신분증을 만들었다.

    당연히 마분석의 도움을 받았다.

    “차원의 이면 스킬북의 대가 역시 확실하게 입금해 드렸습니다.”

    현성이 생각하는 초월 등급 스킬북의 가치를 측정해 돈으로 바꿨다.

    이 돈을 마련하느라 현성도 허리가 휠 뻔했다.

    “이거면 실컷 즐길 수 있겠네요.”

    실컷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살 수 있을 정도의 거금이었다.

    “그럼 다음에 봐요.”

    제나가 그 말과 함께 호텔을 나섰다.

    ‘감시를 붙이는 건 무리겠지?’

    아마 어떤 감시를 붙여도 제나를 추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대체 제나의 정체가 뭘까?’

    왜 차원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는지…….

    그녀가 했던 말들이 모두 진실인지…….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럼 물어봐야지.’

    다행히 현성에게는 궁금증을 해결해 줄 만한 지인이 있었다.

    현성이 스마트폰을 꺼내 단축 번호를 누른 후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냐?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 봐라.

    “혹 차원 여행을 즐기는 1레벨 플레이어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있으십니까?”

    -방금 뭐라고 했지?

    “차원 여행을 즐기는 1레벨 플레이어에 대해 물었습니다.”

    -설마 그 미친년이 네가 사는 차원에 있는 거냐?

    게스피트는 제나를 알고 있는 듯했다.

    “예.”

    -당장 이리 와라.

    -고용주 게스피트 님이 용병 최현성 님의 고용을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게스피트가 곧바로 현성을 고용했다.

    현성은 바로 예를 눌러 게스피트의 차원으로 넘어갔다.

    “왔느냐?”

    현성이 도착하자마자 게스피트가 물었다.

    “예, 혹시 게스피트 님도 제나 님을 알고 계십니까?”

    “제나라. 거기서는 그 이름을 쓰는 모양이구나.”

    “알고 계신 거군요.”

    현성의 얼굴이 밝아졌다.

    드디어 제나가 차원 여행을 하는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나 님은 자신이 도움도 위해도 끼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정말입니까?”

    그게 가장 중요했다.

    사실 제나의 말이 맞다면?

    현성은 굳이 제나를 경계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런저런 정보도 얻고 현재 구할 수 없는 초월 등급 스킬북이나 아이템을 뽑아 먹으면 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네?”

    “굴레를 벗어난 자들은 협약과 규율에 묶여 있다. 정당한 거래가 아니라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고 해를 끼칠 수도 없지.”

    “어떠한 형태로든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그럼 안심이었다.

    사실 현성도 제나의 무력이 탐이 났다.

    하지만 제나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지구를 지킬 자신이 있었다.

    오히려 걱정되는 점은 제나가 깽판을 치는 것이었다.

    제나가 날뛰기 시작하면 막을 방법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다행이군요.”

    현성이 안심한 표정을 짓자, 게스피트가 코웃음을 쳤다.

    “문제는 그 미친년이 언제 협약이나 규율을 깰지 모른다는 점이지만.”

    “예?”

    현성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방금 분명히 굴레를 벗어난 자들은 협약과 규율에 묶여 있다고 했다.

    그런데 협약과 규율을 깰지도 모른다니?

    “혹시 그 협약이나 규율이라는 걸 깼을 때 아무런 페널티도 없는 겁니까?”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게스피트나 백화 같은 강자들이 얌전히 협약을 지킬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상당히 큰 페널티가 있다. 협약을 깨는 순간,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외톨이가 될 테니까. 어쩌면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다. 규율을 어긴 경우에도 손해가 크다.”

    ‘이쪽과 저쪽이라면?’

    현성이 속해 있는 세력과 그에 적대하는 세력이 분명했다.

    ‘그럼 완전히 끝장인데?’

    현성이 판단하기로 지구는 아군 세력에 속해 있는 신생 차원이다.

    아마 양 세력에는 수많은 차원과 강자 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양쪽 세력 모두의 적이 되어 버린다면?

    그건 사실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협약이나 규율을 깰 리가 없지 않습니까?”

    미친 게 아니라면, 죽고 싶어 환장한 게 아니라면 그럴 리가 없었다.

    “정상인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나? 그년은 미친년이라고.”

    “멀쩡해 보이시던데요?”

    심지어 현성에게 나름 편의를 봐주기도 했다.

    사실 신화 등급 스킬북 하나 던져 주고 거래를 했다고 해도 현성은 받아들였을 것이다.

    한데 제나는 현성이 구할 수 없는 초월 등급 스킬북을 건네줬다.

    거기다 고맙다는 말도 했다.

    또 협약을 깨거나 규율을 어기지 않기 위해 나름 조심하는 것 같았다.

    “그건 그년 상태가 지금 좋아서 그런 거지. 애초에 차원 이동을 하는 것 자체가 미친 거야.”

    “차원 이동을 하는 것도 페널티가 있는 건가요?”

    “페널티라기보다는 대가를 치르는 거지. 하지만 그년이 차원 이동을 하는 방식은 랜덤이야.”

    “랜덤요?”

    “정식으로 차원 게이트를 열어서 원하는 차원에 가기 위해서는 정확한 좌표와 막대한 포인트가 필요해. 그런데 그게 아니라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랜덤으로 이동할 수도 있어.”

    “아!”

    현성의 머릿속에 루시아가 떠올랐다.

    그녀 역시 위기 상황에서 차원 이동 스크롤을 찢었고, 그 결과 차원의 틈에 갇혀 버렸다.

    “엄청 위험한 거네요.”

    “당연하지. 차원의 미아가 될 수도 있고,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소멸할 수도 있으니까.”

    “도대체 왜 그런 위험한 행동을?”

    현성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친년이니까 그렇지. 그년은 저번 전쟁에서 자신이 살던 차원이 소멸한 이후에 완전히 정신 줄을 놨어.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 수틀리면 그년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게스피트의 말을 들은 현성의 얼굴에서 핏기가 쫙 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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