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권. 분열 (14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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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최현성 플레이어?”

    윌슨 대통령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아니, 왜 여기서 갑자기 최현성 플레이어의 이름이 나온다는 말인가?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상대는 인간이 아닌 리자드맨이었지 않습니까?”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의 말에 카렌이 피식하고 미소를 터트렸다.

    “플레이어가 몬스터로 위장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실제로 몬스터로 변신하는 스킬을 사용하는 플레이어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사실이었다.

    플레이어들 중에는 종종 몬스터로 변신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또 드물게 몬스터로의 변신이 가능한 아이템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 그 리자드맨이 변신 스킬을 사용한 최현성 플레이어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카렌의 말에 윌슨 대통령을 비롯한 참모와 장관 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카렌 양, 혹시 방금 한 발언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있으십니까?”

    윌슨 대통령의 물음에 카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변신 스킬이나 아이템의 지속 시간이 끝났다면 모르겠지만요.”

    “으흠, 증거는 없다.”

    “하지만 확신합니다. 그 리자드맨의 무력은 규격 외 등급의 몬스터를 아득히 넘어섰습니다. 하급 몬스터인 리자드맨이 그 정도까지 성장하는 게 가능할까요?”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일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하!”

    윌슨 대통령의 말에 카렌이 코웃음을 쳤다.

    “윌슨 대통령님께서는 정말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가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중동과 터키의 사례를 보면 있는 게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는 확실히 몬스터와는 달랐다.

    인간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고 또 물러날 때와 싸울 때를 확실하게 구분했다.

    ‘그 멍청한 놈이 끝까지 내 골치를 썩이는군.’

    카렌은 자신의 업적을 도둑질해 간 멍청한 선배(?)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걸 내색할 수는 없었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말대로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가 있다고 치죠. 그자들이 또 지구를 침공할 거라고 확신하십니까?”

    “최현성 플레이어의 말에 따르면…….”

    “도대체 언제까지 최현성 플레이어의 말만 믿고 있으실 생각이십니까? 최현성 플레이어가 진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최현성 플레이어는 도대체 어디서 또다시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가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정보를 얻었을까요?”

    카렌의 말에 윌슨 대통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자신이 쓰러트린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를 통해 알아낸 정보라고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이 많았다.

    ‘왜 뒤늦게 그 사실을 알려 줬을까?’

    처음으로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를 쓰러트린 건 한참 전이다.

    그럼 그 전에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현성 플레이어는 그 후에 갑자기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가 또 지구로 넘어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

    윌슨 대통령은 최현성 플레이어를 견제했다.

    하지만 최현성 플레이어가 넘겨준 정보를 거짓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그 이유는 그간 최현성 플레이어가 넘겨준 정보가 대부분 인류의 수호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는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를 쓰러트린 최현성 플레이어가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거짓된 정보를 퍼트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현성 플레이어가 이득을 볼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지금처럼 몬스터로 변신해 자신이 원하는 대상을 제거할 수 있죠.”

    카렌의 말에 윌슨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에서 랫맨이 나타나 큰 피해를 입혔다고 들었습니다. 특이하게도 한자리에서 난동을 부린 게 아니라 은신 스킬을 사용해 숨어 다니며 난동을 피웠다지요?”

    카렌의 말에 윌슨 대통령을 포함한 참모와 장관 들의 머릿속에 중국 참사가 떠올랐다.

    그 사고로 중국의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죽었다.

    어디 플레이어뿐일까?

    당시 국가 주석을 포함한 수많은 중국의 정치인들이 랫맨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 당시 중국 정계가 붕괴되고 랫맨을 쓰러트린 플레이어 마분석이 부주석 자리에 오르며 실권을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카렌의 말을 들은 윌슨 대통령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사실 그 일은 미국으로서도 의문이 많은 사건이었다.

    랫맨에게 죽은 정치인들이 반마분석파였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강력한 규격 외 몬스터 랫맨을 마분석이 혼자 쓰러트렸다는 사실에도 의문이 많았다.

    결정적으로…….

    “최현성 플레이어와 중국은 그 당시 사이가 좋지 않았어.”

    중국이 벌인 최현성 플레이어 가족의 납치 시도 때문이었다.

    윌슨 대통령은 무력으로 보복하지 않은 최현성 플레이어를 상당한 인격자라고 생각했다.

    물론 최현성 플레이어의 도움을 받지 못했기에 중국은 랫맨에 의해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윌슨 대통령은 그런 중국의 피해를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게 아니라면?

    랫맨이 몬스터가 아니라 최현성 플레이어가 변신 스킬을 사용해 둔갑한 모습이었다면?

    무력으로 보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대놓고 보복을 한 것이었다면?

    모든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현재 마분석 부주석이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설설 기고 있다죠?”

    카렌의 말에 윌슨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는 그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따르는 것은 절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마분석 부주석은 플레이어였지.”

    윌슨 대통령이 낮게 중얼거렸다.

    마분석 부주석은 랫맨이 반대파를 제거해 준 덕분에 권력을 잡았다.

    그런데 그런 랫맨이 어처구니없게도 마분석 부주석에게 죽었다.

    그것도 합공이 아닌 일대일 대결에서 말이다.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군.”

    그 전까지는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이 크게 휘청거린 덕분에 미국도 제법 꿀을 빨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마분석 부주석은 랫맨의 손에 죽은 주석보다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다.

    나름 국제 질서를 잘 따랐고 막무가내가 아니라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중국을 이끌었다.

    쉽게 말해 미국에 도움이 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제 예상이 맞다면 아마 마분석 부주석은 최현성 플레이어의 휘하 신하가 되는 조건으로 살아남았을 겁니다.”

    “그럼 한중일 삼국이 모두 최현성 플레이어의 소유나 마찬가지겠군.”

    “확실합니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자신을 건드린 중국을 응징하고 손에 넣기 위해서 모두를 속인 겁니다.”

    카렌의 말을 들은 윌슨 대통령의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

    사실 윌슨 대통령은 카렌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최현성 플레이어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그게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이기도 했지만, 최현성 플레이어를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면?

    ‘그 모든 게 거짓이었다면? 연기였다면? 최현성 플레이어가 단지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와 이익을 위해 수많은 인명을 학살하고 직접 손에 피를 묻힐 수 있는 잔인한 이라면?’

    윌슨 대통령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것은 카렌의 이야기를 들은 참모와 장관 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마 제가 없었다면 최현성 플레이어의 계획은 완벽하게 진행되었을 겁니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지구의 황제가 되었겠죠.”

    맞는 말이었다.

    카렌이 없었다면 미국도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설설 기었을 것이다.

    “한데 제가 나타났습니다. 당연히 제거하려고 했겠죠. 아마 제가 조금만 더 약했다면, 최현성 플레이어는 몬스터의 탈을 뒤집어쓰고 저를 죽였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 분신 스킬을 쓰든 대역을 내세우든 해서 자기 자신을 죽이고 미국의 영웅이 되었겠죠.”

    카렌의 말에 회의실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증거는 없다.

    그저 심증만 있을 뿐이다.

    사실 카렌의 주장은 자신의 ‘뇌피셜’로 끼워 맞춘 망상에 가까웠다.

    한데 그 망상이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렸다.

    증거만 없다 뿐이지 모든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악으로 놓고 보면 빈틈없이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당연히 윌슨 대통령을 비롯한 참모와 장관 들은 자신도 모르게 카렌의 주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 * *

    위이이잉!

    현성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지구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아니었다.

    타 차원의 플레이어와의 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스마트폰이었다.

    “여보세요.”

    -주군, 저 파르티샤입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요?”

    -이계 침략자 플레이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파르티샤의 말에 현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바로 고용해 주세요.”

    뚝!

    현성이 전화를 끊자마자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고용주 파르티샤 님이 용병 최현성 님의 고용을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현성이 예를 선택했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현성이 지구에서 파르티샤의 차원으로 이동했다.

    “주군을 뵙습니다.”

    현성이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파르티샤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는 어디 있습니까?”

    현성의 물음에 파르티샤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현재 도시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시 내부에요?”

    “예, 그렇습니다.”

    파르티샤가 현성에게 호루스의 눈을 건넸다.

    현성은 반인반룡이 등장한 이후 파르티샤에게 호루스의 눈 하나를 구입해 넘겨주었다.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를 가장 손쉽게 찾아낼 수 있는 수단이 바로 호루스의 눈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중앙정부가 꼭꼭 숨기고 있던 카렌을 손쉽게 찾아낼 수 있었던 이유도 호루스의 눈 덕분이었다.

    ‘강하다.’

    호루스의 눈을 받아 든 현성은 곧바로 상당히 강력한 힘을 가진 플레이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규격 외의 강자다.’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가 확실한 것 같았다.

    이렇게 강한 아군 플레이어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최대한 아군의 피해를 줄여야 해.’

    일단 놈의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했다.

    하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반인반룡만 해도 도시 밖에서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도시 내부에서 현성과 싸웠다면?

    실로 엄청난 물적 인적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이 녀석을 한번 사용해 볼까?’

    현성이 품에서 속박의 서를 꺼내 들었다.

    습득한 이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한번 써 보자.’

    만약 놈이 함정에 걸려 준다면?

    현성은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었다.

    ‘제대로 된 환경이 만들어졌을 때 써먹어야지.’

    놈이 함정에 걸리지 않으면?

    그때는 물적 피해를 감수하고 인적 피해를 최소화는 방향으로 전투를 치러야 했다.

    현성이 조심스럽게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로 짐작되는 이에게 접근했다.

    ‘변신 스킬을 사용한 건가?’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로 추정되는 인물은 평범한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관광객 같군.’

    녀석은 느긋하게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먹고, 마차도 타고, 배도 타며 풍경을 즐겼다.

    마치 유람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본때를 보여 주마.’

    현성은 외부와의 마력을 차단한 상태로 속박의 서를 발동시켰다.

    상대가 발동 범위 안에 있었기에 눈치를 채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는 마음이 켰다.

    한데 상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마력 차단이 제대로 된 모양이었다.

    현성은 차분하게 마력을 불어 넣으며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속박의 서에 내장된 스킬인 자력 결계가 완벽하게 펼쳐졌다.

    상대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드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됐다.’

    자력 결계가 안정적으로 발동한 것을 확인한 현성이 신호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대대적인 소개령이 내려졌다.

    방금 전까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플레이어와 일반인 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카드 게임을 즐기던 목표물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틈에 섞여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 했다.

    ‘오는 건 마음대로지만 가는 건 아니야.’

    목표물은 현성이 판 함정에 걸려들었다.

    한데 그런 목표물이 태연히 걸어서 함정 밖으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현성이 그 꼴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현성이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목표물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

    목표물은 갑자기 나타난 현성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더니 다시금 발걸음을 옮겨 함정을 벗어나려 했다.

    현성이 재빨리 움직여 그런 목표물의 앞을 다시금 가로막았다.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죠?”

    목표물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현성에게 물었다.

    “그건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전 그쪽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목표물의 목소리는 너무 천진난만했다.

    순간적으로 현성의 머릿속에 ‘내가 뭘 착각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차원 게이트를 넘어온 이계의 플레이어 아닌가?”

    “어머!”

    현성의 물음에 목표물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죠? 이곳 플레이어들의 수준을 보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데?”

    목표물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현성은 목표물의 물음에 대답해 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상대를 100%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순순히 그 사실을 인정했다.

    ‘제대로 정보를 뽑아내 주마.’

    반인반룡에게 정보를 뽑아냈던 것처럼 눈앞의 목표물에게서도 제대로 정보를 뽑아낼 생각이었다.

    스르릉!

    현성이 신혈검을 뽑아 들었다.

    휘익!

    그 후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마력도 전력으로 끌어올려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발동시켰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칠흑빛 뇌전과 화염에 휩싸인 신혈검이 빛살 같은 속도로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다.

    탁!

    한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목표물이 맨손으로 현성이 휘두른 신혈검을 붙잡은 것이다.

    “이게 무슨 짓이죠?”

    목표물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현성이 신혈검을 회수하려고 했다.

    “윽!”

    그런데 아무리 힘을 써도 신혈검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마력을 더 강하게 불어 넣어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발동시켰다.

    하지만 목표물의 손에 붙잡힌 신혈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 역시 상대의 몸을 뒤덮기는커녕 신혈검과 함께 상대의 손에 잡혀 버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현성은 스스로의 무력에 꽤 강한 자부심이 있었다.

    더군다나 이곳에는 자력 결계가 펼쳐져 있다.

    상대가 온전히 자신의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호오, 꽤 강하네요. 음?”

    목표물, 아니 정체불명의 여인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그러고 보니 당신도 이계의 플레이어군요. 어떻게 넘어온 거죠? 당신같이 애매한 수준의 플레이어는 이곳에 있을 수가 없을 텐데?”

    ‘애매한 수준?’

    현성은 기가 찼다.

    이런 평가는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서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더 박한 평가를 받더라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전력을 다해 휘두른 신혈검이 상대의 손에 잡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 혹시 용병 고용 시스템을 이용한 건가?”

    정체불명의 여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용병 고용 시스템을 알고 있는 거지?’

    용병 고용 시스템은 1레벨 플레이어들만이 알 수 있는 정보다.

    한데 상대가 어떻게 그 정보를 알고 있다는 말인가?

    ‘혹시 침략자 플레이어 중에도 1레벨 플레이어가 있는 건가?’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아군 측 1레벨 플레이어들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적군 측에도 1레벨 플레이어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진작 승기가 한쪽으로 쏠려 버렸을 테니까 말이다.

    ‘상대가 1레벨 플레이어라면?’

    자력 결계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현성이 1레벨 플레이어이기에 자력 결계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상대 역시 자유로울 테니까 말이다.

    거기다 정체불명의 여인이 게스피트나 백화같이 굴레를 벗어던진 강자라면?

    현성은 절대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제 짐작이 맞나 보네요.”

    정체불명의 여인이 환한 미소를 띠며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상황은 전혀 상정하지 못했다.

    ‘도대체 왜 이런 존재가 갑자기 나타난 거야?’

    반인반룡이 전해 준 정보가 사실이라면, 이 정도 강자는 절대 안전 결계를 통과할 수가 없다.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전 적이 아니니까.”

    “적이 아니라고요?”

    “네.”

    “그럼 혹시 저와 같은 연합 소속인 겁니까?”

    현성의 말에 정체불명의 여인이 화들짝 놀랐다.

    “당신 설마 연합에 대한 정보까지 알고 있었나요? 성장 속도는 물론 정보 습득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네요.”

    “대답해 주시죠. 연합 소속이신 겁니까?”

    현성이 다시금 물었다.

    그에 정체불명의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현성은 몸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이 탁 하고 풀리는 것 같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상대가 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맥이 풀려 버렸다.

    “절 적으로 오해하셨던 모양이네요?”

    여인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하네요, 하하하. 미안해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여인이 웃음을 터트리며 태평하게 사과를 했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정말 정말 미안해요. 전 그저 놀러 왔을 뿐인데 쓸데없이 폐를 끼쳤네요.”

    “놀러 왔다고요?”

    현성은 여인의 대답을 듣고 황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네.”

    반면 여인은 태연했다.

    “안전 결계는 적뿐만 아니라 아군의 개입도 막아 줄 텐데요?”

    현성이 반인반룡을 통해 얻어 낸 정보는 대부분이 안전 결계에 대한 내용이었다.

    현성이 알기로 안전 결계는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는다.

    “꽤 많은 정보를 습득하셨네요.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겁니까?”

    “약간의 우연이 겹쳤을 뿐이에요.”

    “그럼 혹시 아군인 우리를 도와줄 수 있으십니까?”

    현성이 판단하기로 눈앞의 여인은 게스피트나 백화에 준하는 수준의 강자였다.

    그런 강자가 현성을 도와준다면?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들을 더 손쉽게 막아 낼 수 있게 된다.

    “그건 곤란해요. 전 단순한 방관자니까요.”

    “그 협약이라는 것 때문입니까?”

    “맞아요.”

    “그럼 아무런 정보도 알려 주실 수 없겠군요?”

    “정확해요.”

    현성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강자가 적이 아니라는 사실은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아군으로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면, 눈앞의 여인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현성으로서는 괜히 시간과 심력만 쏟은 꼴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대놓고 실망한 표정을 짓지 마세요. 적절한 대가만 있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이득이 될 만한 거래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요.”

    “적절한 대가요?”

    현성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저 정도 강자를 아군으로 얻을 수 있다면?

    그 어떠한 대가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아, 정보를 알려 주는 건 불가능해요. 무력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천문학적인 수준의 포인트가 필요할 거예요. 아마 수수료만 없다 뿐이지 용병 고용과 별반 차이가 없을 거예요.”

    여인의 말에도 현성은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아무리 포인트가 많아도 내 등급으로는 저 정도 수준의 용병을 고용하는 건 불가능해.’

    현성이 고용할 수 있는 용병 등급은 준신화 등급 정도다.

    한데 초월 등급 정도로 추정되는 여성을 고용할 수 있는 연결 고리가 생겼다.

    거기다 수수료도 없다고 한다.

    ‘또 친분을 쌓으면 최소 비용으로 고용이 가능해진다.’

    같은 등급에 동일한 수준의 무력을 가진 용병이라도 당사자가 몸값을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따라 들어가는 포인트는 천양지차였다.

    “실망하지 않는 걸 보니 제 예상보다 포인트가 꽤 많으신가 보네요?”

    “얼마를 예상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많을 겁니다.”

    현성의 말에 여인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분간 이곳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다녀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어차피 현성이 허락하지 않아도 여인이 하겠다면 말릴 힘도 없다.

    “그럼 간단히 통성명이나 하죠. 제 이름은 제나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제나 님. 제 이름은 최현성이라고 합니다.”

    현성의 말에 갑자기 제나가 눈을 부릅떴다.

    “당신이 최현성 플레이어라고요?”

    “절 아십니까?”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요. 저도 한때 당신이 판매하는 물건을 엄청나게 많이 샀다고요.”

    제나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성은 나름대로 우량 고객 명단을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제나라는 이름은 없었다.

    “아, 물론 시스템 상점이 아니라 게임 안에서지만요.”

    제나가 생글생글 웃으며 현성에게 말했다.

    “게, 게임 안에서요?”

    현성의 얼굴이 급격하게 창백해졌다.

    “예, 지금은 접었지만…… 저도 한때 게임에 미쳐서 포인트로 현질을 꽤 많이 했었거든요. 상당히 악랄하게 포인트를 쥐어짜시더라고요. 특히 랜덤 박스라는 사기에 가까운 유료템을 팔아서 말이죠.”

    말을 하는 제나는 분명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두 눈에는 차가운 냉기와 함께 은은한 분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하하하.”

    현성이 어설픈 웃음을 터트렸다.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현성은 설마 이런 곳에서 가챠 게임의 희생자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정액제 요금까지 받아먹으시면서 안 사고는 못 배길 랜덤 박스를 파셨죠? 그리고 적당히 팔렸다 싶으면 앞서 팔았던 랜덤 박스에서 나온 아이템을 쓰레기로 만드는 새로운 랜덤 박스를 바로 출시하셨고요?”

    “저, 그게…….”

    “저는 솔직히 최현성 플레이어가 이렇게 멀쩡하게 생겼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악마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사악하게 영업을 하셔서 진짜 악마인 줄 알았거든요.”

    “…….”

    이제는 대놓고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제나 앞에서 현성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 현성도 한국의 가챠 게임의 희생양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한국 게이머가 한국 게임 제작사에 얼마나 이를 박박 갈고 있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심지어 현성은 한국 게임 제작사들보다 더 악랄하게 1레벨 플레이어들의 포인트를 뽑아 먹었다.

    모든 게이머들의 공적이자 돈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XX소프트조차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지 정액제 운영을 하면 가챠 요소가 있는 유료템 판매는 나름 최소화했다.

    정액제를 하면서 부분 유료화 게임처럼 유료템을 팔면 양심 없다고 욕을 먹었으니까 말이다.

    한데 현성은 그런 것도 없었다.

    정액제도 하고 부분 유료화 게임처럼 가챠 요소가 잔뜩 섞인 유료템도 마음껏 팔아먹었다.

    “입이 있으면 한번 말을 해 보시죠, 최현성 플레이어?”

    “저, 저기, 그게 그러니까, 아하하하.”

    제나의 물음에 현성은 어색한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 * *

    현성이 난감한 상황에 빠져 있을 무렵.

    미국에서는 한창 현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최현성 플레이가 미국을 공격했습니다! 이는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국방부 장관이 진노한 표정으로 외쳤다.

    “좌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최현성 플레이어가 리자드맨이라는 공식적인 증거가 있습니까?”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의 말에 국방부 장관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지금 최현성 플레이어의 편을 드시는 겁니까?”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자는 겁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최현성 플레이어를 리자드맨이라고 공표해 보십시오, 그게 과연 본국에 유리한 일일까요?”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장관들이 서로 목소리를 높여 가며 다퉜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리자드맨이 현성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대화에 임하고 있었다.

    카렌의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기정사실화해 버린 것이다.

    “모두 조용히들 하게!”

    윌슨 대통령의 외침에 목소리를 높이던 장관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게. 우리에게는 최현성 플레이어가 리자드맨이라는 증거가 없네. 증거도 없이 최현성 플레이어를 리자드맨이라고 밀어붙였다가는 우리만 큰 손해를 볼 게 확실하네.”

    사실 현성이 리자드맨이라는 증거를 손에 넣었다고 해도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국제 여론에 호소하는 것뿐이었다.

    미국이 최현성 플레이어를 체포해 법정에 앉히거나 무력이나 경제력으로 압박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말이다.

    “그럼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국방부 장관이 억울해 죽겠다는 듯 물었다.

    “당연히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하지만 공식적으로 최현성 플레이어를 비난하며 대립하는 건 미국의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네.”

    “그럼?”

    “비공식적으로 움직여야지.”

    “비공식적으로 말씀이십니까?”

    국방부 장관의 말에 윌슨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공식적으로 각국에 최현성 플레이어가 리자드맨이라는 소문을 흘리게.”

    “과연 본국의 말을 믿어 줄까요?”

    미국이 증거를 들이밀고 공식적으로 발표를 해도 믿을까 말까 한 일이다.

    한데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것도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정보를 흘린다.

    과연 그 말을 믿어 줄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저 흔하디흔한 루머 중 하나로 취급받을 확률이 높았다.

    “일단 시도해 보게. 믿고 싶은 자는 믿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믿지 않겠지.”

    윌슨 대통령은 이미 결심을 굳혔다.

    카렌을 버리지 않는 한 미국은 최현성 플레이어와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라면 아군을 최대한 많이 늘리는 게 유리했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경계하는 건 우리 미국만이 아니야.’

    최현성 플레이어의 등장 이후 많은 강국들이 패권을 상실했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미국과 중국이었다.

    사실 미국과 중국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 최현성 플레이어의 등장으로 손해를 입은 국가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을 모두 끌어안는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리자드맨과 랫맨.

    이 둘의 존재와 최현성 플레이어를 잘 연결한다면?

    증거 없이도 충분히 타국의 협조를 끌어낼 수 있다.

    ‘리자드맨과 랫맨이 진짜 최현성 플레이어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미국이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타국이 리자드맨과 랫맨이 최현성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믿게 만들어야 했다.

    * * *

    “사정이 그렇다면 이만 넘어갈게요.”

    “감사합니다.”

    현성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한참 동안 진땀을 뺀 후에야 겨우 제나의 화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지구에 가 보고 싶어요.”

    하지만 이어지는 제나의 한마디에 그대로 돌처럼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예? 방금 뭐라고?”

    “최현성 씨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차원에 가 보고 싶다고요.”

    현성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제나가 지구로 가면?

    그간 현성이 취해 왔던 폭리의 실체가 드러난다.

    방금 전 감언이설로 넘겼던 위기 상황이 다시 발발하게 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제나는 현성과 같은 1레벨 플레이어로, 시스템 상점에 접속이 가능하다.

    쉽게 말해 현성의 장사 밑천을 송두리째 날릴 수도 있는 위험 상황인 것이다.

    “그건 좀…….”

    “곤란한가요?”

    “네, 힘들 것 같습니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용병 고용을 취소하고 지구로 도망치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알겠어요.”

    ‘어?’

    현성의 예상과 달리 제나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좀 더 생떼를 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면 협박을 하거나 말이다.

    ‘다행이네.’

    예상외로 무난하게 상황이 마무리될 것 같았다.

    ‘최대한 정보를 뽑아내야 해.’

    정보를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 자체가 정보 덩어리였다.

    “그런데 이곳에는 왜 오신 겁니까?”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놀러 온 것뿐이라고.”

    “차원 게이트를 열고 타 차원에 방문하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텐데요?”

    현성은 플레이어들이 차원 게이트를 열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전에 다른 구매자들이 차원 게이트 열고 쳐들어간다고 대놓고 협박하기도 했으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게스피트는 그때 분명히 현성에게 말했다.

    타 차원의 플레이어가 차원 게이트를 열고 쳐들어올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차원 게이트를 열기 위해서는 또 엄청나게 많은 포인트를 소모해야 한다고 말이다.

    “제 예상보다 알고 있는 정보가 많으신 것 같네요.”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현성의 물음에 제나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정식으로 차원 게이트를 넘는 건 저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일단 소모되는 포인트도 포인트지만, 정확한 좌표를 알아야 차원 게이트를 열 수 있으니까요.”

    “이곳에 온 것 자체가 우연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제나는 아까 전에 약간의 우연이 겹쳤을 뿐이라는 말을 했다.

    “맞아요. 또 전 이 차원의 일에 전혀 간섭할 수 없어요.”

    “간섭할 수 없다는 게 정확히 어떤 뜻입니까?”

    단순히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말 같지는 않았다.

    “쉽게 말씀드려서 전 방문한 차원에 도움을 줄 수도 없고 위해를 끼칠 수도 없어요.”

    “도움을 줄 수도 없고 위해를 끼칠 수도 없다고요?”

    “예, 아까 말했듯이 전 단순한 방관자니까요.”

    “그 위해의 기준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있을까요?”

    “수준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말 그대로 절대적인 규칙이니까요.”

    “절대적인 규칙?”

    “그 규칙이 없었다면 솔직히 말해서 저한테 칼을 휘두른 상대랑 지금처럼 태연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일 따위는 없었을 거예요. 반쯤 죽여 버린 후 심문했거나 아예 죽여 버렸겠죠.”

    제나의 말에 현성은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제나의 말투는 태연자약했다.

    전혀 살기가 담겨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제나의 말이 진실이라는 사실은 확실하게 인지했다.

    ‘내가 죽을 뻔했구나.’

    그 절대적인 규칙이 없었다면 현성은 죽었을 것이다.

    “너무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전 최현성 씨에게 어떤 형태로든 전혀 위해를 가할 수 없으니까요.”

    “혹시 그 위해라는 게 제 경제적인 이득을 손상시키는 것도 포함되는 겁니까?”

    현성의 물음에 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는 제가 방문한 차원의 물질이나 기술을 이용해 그 어떠한 형태의 이득도 볼 수 없어요. 단지 경험할 뿐이죠.”

    “제나 씨와 같은 분들이 많이 있나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왜 본래 사시던 차원을 떠나 여행을 하시는 거죠?”

    단순한 유희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성은 왠지 그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노코멘트할게요.”

    제나가 미소를 지으며 현성을 바라봤다.

    “혹시 더 물어볼 게 있으신가요? 그럼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답변해 드릴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해 드릴게요.”

    제나의 말에 현성이 다시금 질문을 이어 나갔다.

    제나는 본인이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은 대답해 줬다.

    제나를 통해 얻은 정보들은 현성에게 있어서 썩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분명히 나중에는 큰 도움이 될 거야.’

    현성에게 당장 급한 정보는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나 앞으로 진행될 대격변에 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에 관련된 정보가 아니라고 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좌표가 있으면 차원 게이트를 열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것만 해도 큰 수확이야.’

    지금 당장은 방법을 알지 못해 가만히 있지만…….

    현성은 훗날 루시아와 한 약속을 지켜야 했다.

    ‘루시아의 차원을 탈환해야지.’

    지금 알아낸 정보들은 훗날 현성이 차원 게이트를 열 수 있을 정도의 강자가 된 뒤에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혹시 더 물어볼 게 있나요?”

    “아닙니다.”

    제나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성이 묻고 싶은 정보는 다 물어봤다.

    “그럼 천천히 여행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종종 또 찾아오겠습니다.”

    현성의 말에 제나가 느긋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은 제나와 헤어진 후 사냥을 나갔다.

    그리고 호루스의 눈을 이용해 도시 근처를 순찰했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건가?’

    반인반룡의 뒤를 이어 침공해 올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가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었다.

    ‘뭐,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수도 있지.’

    현재로서는 파르티샤에게 호루스의 눈을 주고 감시하게 시킨 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바로 출동하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다.

    ‘일단 지구로 돌아가자.’

    현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여러 번 자신의 위치를 바꿨다.

    혹시 제나가 자신의 뒤를 따라 지구로 넘어올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온다고 해도 특별히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파르티샤의 차원에서만 제나를 만나는 게 좋을 듯했다.

    ‘감시까지 붙였으니 문제는 없겠지.’

    현성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파르티샤에게 지시를 내려 제나를 감시하게 했다.

    혹시 모를 제나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제나는 느긋하게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현성은 최종적으로 제나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장소로 이동한 뒤 용병 고용을 취소했다.

    슈욱!

    현성이 파르티샤의 차원에서 지구로 이동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심히 주변을 살폈다.

    호루스의 눈도 사용하고 신안 스킬도 사용했지만, 다행히 제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카렌을 요리할 일만 남았어.’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 카렌을 쓰러트릴 것이다.

    ‘자충수가 될 거다.’

    카렌의 편에 서기로 하고 대대적인 투자를 한 미국은 이번 일로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아니, 엄청난 타격을 넘어서 차원 게이트와 몬스터에 대한 대응 능력을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현성이 떠민 것도 아니고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그러니 그 결과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슈욱!

    현성이 공간 이동 스킬을 발동시켜 이모탈 길드의 본부로 이동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파지지직!

    현성이 사라진 자리에서 공간이 찢기며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휘익!

    차원 게이트 안에서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 여성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 여기가 최현성 플레이어가 사는 세상인가?”

    차원 게이트를 통해 지구로 온 여인.

    제나가 미소를 지으며 느긋하게 주변의 풍경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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