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권. 테스트 (142/225)
  • ┃테스트

    현성은 꾸준히 카렌을 주시했다.

    그리고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저 사람에게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야?’

    카렌과 꾸준히 접촉하는 정치인이 하나 있었다.

    현성도 아는 얼굴이었다.

    미국의 유명한 차기 대권 주자이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위험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건 확실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카렌은 자신을 보호해 주는 보디가드들의 눈을 따돌리고 자주 외출에 나섰다.

    몰래 거리 밖으로 나온 카렌이 만나는 이들은 그녀의 휘하에 든 플레이어들이었다.

    카렌은 그들을 통해 일반인들을 만났다.

    ‘일반인을 휘하에 넣는 건가?’

    카렌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가지고 있는 이들.

    그들을 카렌 휘하의 신하 플레이어들이 데리고 오면, 카렌이 아무런 검증 없이 자신의 휘하에 넣어 버렸다.

    ‘문제가 심각해.’

    현성은 통제가 불가능한 일반인 광신도들만 자신의 휘하에 넣었다.

    현성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동경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까지 휘하에 넣었다면?

    현성의 세력은 급격히 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현성의 말에 죽음도 불사할 광신도로 변해 버린다.

    순간의 선택으로 평생 자신의 인생을 현성에게 저당 잡히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현성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한데 카렌은 달랐다.

    ‘급격하게 휘하 신하를 늘리고 있어.’

    이건 정상적인 행보가 아니었다.

    ‘거기다 이런 사실을 미국 중앙정부도 모르고 있는 것 같고.’

    미국 중앙정부는 카렌이 자신들의 감시에서 벗어나 활동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카렌은 종종 몬스터를 사냥하며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전설 등급 몬스터가 나타나면 카렌이 사라와 함께 출동해 퇴치했다.

    그 과정은 TV와 인터넷 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미국을 중심으로 카렌의 팬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카렌은 자신의 인기를 바탕으로 일반인들을 대거 휘하에 들이고 있었다.

    ‘의심스러운 점이 너무 많아.’

    가장 손쉬운 테스트 방법은 현성이 직접 카렌을 공격하는 것이다.

    아마 죽기 싫다면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야.’

    미국이 카렌을 감싸고 있다.

    현성이 카렌을 공격한다면?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미국이 현성을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카렌의 방패가 되어 줄 수는 있지.’

    미국 플레이어나 미군을 동원해 현성과 카렌의 전투를 방해할 수도 있다.

    ‘일단 미국을 믿어 보자.’

    현성은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미국 중앙정부에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미국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 * *

    “이게 뭔가?”

    윌슨 대통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카렌 플레이어의 행적에 대한 투서입니다.”

    “투서?”

    윌슨 대통령이 일단 투서라는 것을 받아 들었다.

    그 후 점점 표정이 굳어졌다.

    “이걸 누가 보냈을 것 같나?”

    “최현성 플레이어일 확률이 높습니다.”

    “위험해.”

    최현성 플레이어가 카렌 플레이어를 미행했다.

    한데 미국은 그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카렌 플레이어의 존재를 감출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게.”

    “예.”

    “그리고 일반인을 휘하 신하로 만든 것에 대해서는 하워드 상원 의원을 통해 경고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윌슨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하워드 상원 의원이 곧바로 카렌을 찾아갔다.

    “왜 그런 일을 저지른 겁니까?”

    하워드 상원 의원이 얼굴을 굳히며 카렌에게 물었다.

    윌슨 대통령은 덮으려는 것 같았지만, 하워드 상원 의원은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반인 신하들 역시 플레이어 신하들처럼 군주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한 일이에요. 또 절대다수의 미국인이 강해지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일 아닌가요?”

    카렌은 당당했다.

    본인만의 신념이 서린 눈빛으로 당당하게 하워드 상원 의원에게 맞섰다.

    “너무 위험한 생각입니다.”

    “뭐가 위험하다는 거죠?”

    “그들은 플레이어 신하들처럼 카렌 양을 맹목적으로 따를 겁니다.”

    “전 그들에게 무엇을 ‘해라.’, ‘하지 말아라.’ 하고 강요할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어요. 그저 그들이 더 건강하게 살아가길 바랄 뿐이에요. 도대체 제가 뭘 잘못했다는 거죠?”

    당당한 카렌의 말에 하워드 상원 의원은 골치가 아팠다.

    지금 당장은 카렌이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는 법이다.

    계약서를 통해 수많은 안전장치를 해 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카렌이 변하면 모든 대비책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카렌 양, 사람이라는 건…….”

    하워드 상원 의원이 최대한 카렌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설득에 들어갔다.

    “알겠어요. 앞으로는 하지 않을게요.”

    카렌의 말에 하워드 상원 의원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독 행동은 절대 삼가셔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 정부에 보고해 주세요. 이게 다 미합중국을 위한 일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제안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미합중국을 위한다는 말에 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의할게요.”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하워드 상원 의원이 자리를 떴다.

    카렌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날 감시한 건가?’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자신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는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물론 싸움이라는 건 해 봐야 아는 것이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아무리 강해도 ‘그 방법’을 사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좋지 않아.’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또 최악의 경우 최현성 플레이어가 먼저 자신을 공격하는 상황에도 만반의 대비를 해야 했다.

    막말로 지금 당장 최현성 플레이어가 건물을 부수고 들어와 자신을 공격한다면?

    혼자가 아니라 루시아, 최형규, 백우신, 신윤아 같은 지구의 강자들과 합공을 한다면?

    휘하의 언데드 몬스터와 몬스터 들을 동원한다면?

    지금의 전력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어느 정도 대비책을 세워야겠어.’

    위기의 순간 최현성 플레이어의 약점을 찌를 수 있는 비수 하나 정도는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 * *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미국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카렌의 행적을 더 철저하게 감췄다.

    ‘카렌을 믿기로 한 건가?’

    어쩌면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일 수도 있었다.

    이미 투자한 게 너무 많았으니까 말이다.

    ‘그럼 나도 어쩔 수 없지.’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미국이 이렇게 나온다면 현성으로서도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걸 다시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현성이 변신 주문서를 꺼내 들었다.

    과거 중국에서 사용한 이후로 앞으로는 사용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다시 사용해야 할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진짜 지구의 플레이어라면 적당한 수준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아니라면?

    현성 역시 전력을 다해 카렌을 제거해야 했다.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현성은 일단 카렌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던전으로 몰래 잠입했다.

    그 후 리자드맨 변신 주문서를 찢었다.

    화악!

    현성의 모습이 리자드맨으로 변했다.

    용혈검과 신혈검에 형태 변환 아이템을 바른 후 양손에 들었다.

    ‘죽기 싫다면 진짜 정체를 드러내야 할 거야.’

    리자드맨의 모습으로 변한 현성이 던전 출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놈은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야?”

    던전 출입구에 모여 있던 플레이어들이 현성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잡을게.”

    딜러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아아아아앙!

    그때 현성이 힘찬 포효와 함께 워 크라이를 발동시켰다.

    “크윽!”

    “저, 정신계 공격 스킬이다!”

    현성을 공격하려던 플레이어들이 혼비백산했다.

    그리고 그대로 던전을 빠져나갔다.

    현성이 모습을 드러낸 던전은 저레벨 던전이다.

    그곳에서 갑자기 정신계 공격 스킬을 사용하는 네임드 몬스터가 등장했다.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으니 대비하고 상부에 알리는 게 우선이었다.

    꽈아아앙!

    현성이 신혈검을 휘둘러 던전 출입구를 박살 냈다.

    물론 이렇게 하면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 수도 있다.

    ‘뭐, 저레벨 던전이니까 금방 막겠지.’

    현성이 자리를 떠나면 몬스터 웨이브가 벌어지기도 전에 다시 출입구를 틀어막을 것이다.

    ‘그럼 몬스터 흉내를 내 볼까?’

    던전 밖으로 빠져나온 현성이 다시금 힘찬 포효를 터트렸다.

    -크아아아아앙!

    리자드맨의 형상을 한 현성의 포효에 플레이어와 일반인 들의 몸이 그대로 굳어졌다.

    그리고 워 크라이의 영향이 사라지자마자 미친 듯이 뛰어 도망쳤다.

    ‘어서 와라.’

    현성이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카렌을 기다렸다.

    만약 카렌이 투입되지 않는다면?

    현성이 직접 카렌을 찾아가면 그만이었다.

    * * *

    -크아아아아앙!

    “이게 무슨?”

    몬스터의 포효 소리를 들은 카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덜컹!

    그때 카렌의 방문이 급하게 열렸다.

    “큰일입니다! 리자드맨이 던전을 빠져나왔습니다.”

    “리자드맨이요?”

    카렌의 물음에 방문자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예, 정신계 공격 스킬을 사용하는 강력한 네임드 몬스터로 추정됩니다.”

    카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자드맨은 무리 생활을 하는 몬스터.

    던전을 빠져나오더라도 혼자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뭐, 일단 가 보면 되겠지.’

    현성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최대한 은둔하기는 했지만, 카렌은 그간 미국 국민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종종 해양 몬스터나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쇼를 선보였다.

    몬스터가 던전 밖으로 빠져나왔다면?

    최대한 빨리 가서 남들이 잡기 전에 먼저 잡아 인지도를 올려야 했다.

    “바로 가죠.”

    자리에서 일어난 카렌이 무장을 갖춘 후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 카렌의 눈에 리자드맨 한 마리가 보였다.

    체격은 평범했다.

    한데 품고 있는 마력이 범상치가 않았다.

    ‘저게 리자드맨이라고?’

    리자드맨은 하급 용종 몬스터다.

    절대 저렇게까지 성장할 수가 없다.

    타악!

    그때 카렌을 발견한 리자드맨이 바닥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화르르륵!

    리자드맨의 몸에서 피어오른 검붉은 화염이 날카로운 칼날로 변해 카렌을 향해 날아왔다.

    ‘주제도 모르고.’

    카렌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리자드맨을 바라보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아무리 강해 봤자 리자드맨은 리자드맨이다.

    절대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화르르륵!

    푸른 화염이 카렌의 몸을 휘감았다.

    꽈아아아앙!

    검붉은 화염과 푸른 화염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카렌은 승리를 확신했다.

    제법 강해 보이기는 했지만, 리자드맨 따위가 자신을 이길 수는 없었다.

    화아아악!

    그때 푸른 화염을 꿰뚫고 리자드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당황한 카렌을 향해 리자드맨이 검붉은 불꽃에 휩싸인 검을 휘둘렀다.

    카렌이 재빨리 검을 들어 리자드맨의 공격을 방어했다.

    퍼엉!

    강한 충격음과 함께 카렌의 몸이 뒤로 밀려 났다.

    파강! 파강!

    리자드맨이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며 맹공을 펼쳤다.

    카렌이 이를 악물었다.

    ‘리자드맨이 아니야.’

    힘, 속도, 마력.

    무엇 하나 카렌에게 뒤지는 것이 없었다.

    이런 리자드맨이 있을 리 만무했다.

    단순히 리자드맨의 성장 한계치 때문에 부정하는 게 아니었다.

    카렌이 차원 게이트를 넘음으로 인해 지구의 안전 결계를 넘을 수 있는 몬스터와 침략자 플레이어의 수준이 월등히 낮아졌다.

    카렌급의 몬스터나 침략자 플레이어가 차원 게이트를 넘었다면?

    그건 불과 며칠 사이에 지구의 전력이 급성장했다는 뜻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어.’

    카렌은 차원 게이트를 넘고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휘하로 거두어들였다.

    지구의 전력은 약해지면 약해졌지 강해질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였다.

    ‘네놈이 최현성이구나.’

    카렌이 자신을 공격하는 리자드맨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리자드맨의 모습으로 온 걸 보면 확신은 없는 모양이군.’

    반신반의하며 찔러본 것 같았다.

    만약 최현성 플레이어가 카렌의 정체를 확신했다면?

    이런 거추장스러운 변장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여라.

    군주의 외침을 통해 미리 만들어 놓았던 작전 하나를 실행시켰다.

    ‘그럼 지구 최강의 플레이어라는 최현성의 실력 테스트나 해 볼까?’

    카렌이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푸른 불꽃과 검붉은 불꽃이 연달아 충돌하며 화려한 폭발을 일으켰다.

    카렌이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파강! 파강!

    마력을 담은 검과 검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사방으로 마력의 파편이 휘날렸다.

    빠르게 움직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연속적으로 단거리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푸른 불꽃과 검붉은 불꽃만이 아니라 온갖 스킬들이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해 날아들었다.

    ‘까다롭군.’

    카렌이 얼굴을 찌푸렸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장기라는 칠흑빛 뇌전은 이미 화염에 섞어서 사용 중이었다.

    하지만 정령술을 비롯한 주요 스킬들은 아직 꺼내지도 않았다.

    언데드 몬스터와 종속시킨 몬스터 역시 동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악! 서걱!

    “크윽!”

    결국 밀리는 건 카렌 본인이었다.

    카렌은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인간의 형상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렇기에 전투력이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성은 외형만 리자드맨으로 변했을 뿐 자신의 전투력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카렌과 현성 모두 가지고 있는 스킬을 총동원하지는 않았다.

    그저 서로서로 간을 보고 있을 뿐 전면전을 벌인 것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을 쓰지 않는 이상 이기는 건 쉽지 않겠어.’

    카렌이 숨겨 놓은 한 수가 있듯 최현성 플레이어 역시 숨겨 놓은 한 수가 있을 것이다.

    ‘지금 승부를 볼까?’

    최현성 플레이어는 현재 혼자다.

    추가로 동원해 봐야 언데드 몬스터가 한계였다.

    그에 반해 카렌은 미국에 깔아 놓은 휘하 플레이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니야.’

    아직 너무 일렀다.

    이기면 다행이지만 패배하면 그간의 노고가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자신이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라는 확신을 가지고 싸움을 걸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런 만큼 지금은 몸을 사리고 좀 더 힘을 키워야 할 때였다.

    카렌이 가진 비장의 한 수는 휘하의 신하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좀 더 빨리 움직여라.

    카렌이 군주의 외침으로 다시금 지시를 내렸다.

    꽈앙! 꽈앙!

    전투가 진행될수록 카렌의 몸이 점점 상처투성이로 변해 갔다.

    빠르게 치료되고는 있지만, 새로운 상처가 생기는 속도가 더 빨랐다.

    “카렌 님을 돕자!”

    “카렌 님은 미국의 희망이다!”

    “와아아아아!”

    그때 커다란 함성과 함께 일단의 플레이어와 일반인 들이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리자드맨으로 위장한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네가 이들을 죽일 수 있을까?’

    카렌은 최현성 플레이어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

    그저 이용당할 뿐인 이들.

    이들을 과연 최현성 플레이어가 죽일 수 있을까?

    * * *

    현성이 골치 아프다는 눈빛으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플레이어와 일반인 들을 바라보았다.

    플레이어는 그렇다고 쳐도 일반인이 도대체 왜 나선다는 말인가?

    자기가 죽을 줄도 모르고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행동에 현성은 기가 찼다.

    ‘그래도 확실히 소득은 있었어.’

    카렌과 직접 부딪친 결과 얻게 된 정보가 무려 두 개나 된다.

    이 정보를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현성에게 이득이 되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일단은 물러난다.’

    굳이 다른 플레이어나 일반인 들과 드잡이할 필요가 없었다.

    또 어디까지나 이번 공격은 카렌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한 테스트였다.

    상황이 허락했다면 아예 끝장을 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장 해결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

    장소도 문제가 많았다.

    여기서 현성과 카렌이 전력을 다해 생사결을 낸다면?

    최하 수천, 많게는 수만에서 수십만의 인명이 사라질 것이다.

    ‘당분간은 마음껏 날뛰어 봐라.’

    화르르르륵!

    현성이 강력한 화염을 흩뿌린 뒤 후방으로 몸을 날렸다.

    슈욱!

    그 후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 * *

    “와아아아아!”

    “카렌 님이 몬스터를 물리치셨다!”

    “카렌 님 만세!”

    광신도들이 커다란 환호성을 터트렸다.

    ‘결국 물러났구나.’

    카렌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상대의 약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했다.

    ‘차라리 이들을 모두 죽이는 한이 있어도 이 자리에서 날 쓰러트렸어야 했어.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겠지.’

    카렌 자신을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라고 확신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끝장을 본다?

    결단력이 있는 인물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일단 위험 요소는 제거하는 게 좋으니까.

    카렌이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든 아니든 최현성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경쟁자이자 방해물이었다.

    당연히 제거하는 게 좋다.

    하나 카렌이 판단한 현성은 그렇게 결단력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강자에게는 강하지만 약자에게는 그렇지 않지.’

    카렌은 앞으로 더 많은 숫자의 플레이어와 일반인 들을 휘하에 넣을 생각이었다.

    카렌은 그들을 자신의 방패막이이자 힘의 원천으로 삼을 것이다.

    ‘오늘 물러난 것을 평생 후회하게 해 주마.’

    카렌은 오늘 자신이 차원 게이트를 넘은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다.

    * * *

    현성은 다시금 한국으로 돌아왔다.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해.’

    실수 없이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려 숨통을 끊어야 했다.

    ‘생각보다 수확이 많았어.’

    카렌과 직접 부딪쳐서 얻은 두 가지 소득을 떠올렸다.

    그중 하나가 바로 카렌의 정체였다.

    ‘용혈검이 반응했어.’

    용종의 피만 탐하는 용혈검이 카렌의 피를 마시고 성장했다.

    이는 카렌이 지구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카렌이 용종이 아니라 다른 종이었다면 정체 파악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용종이었던 덕에 용혈검이 정확하게 카렌의 정체를 판별해 주었다.

    나머지 한 가지 소득은 바로 6차 전직 퀘스트의 시작이었다.

    ‘5차 전직을 마무리하고 군주와 직접 싸워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

    사실 그 전에도 엘프족의 군주 엘로프와 잠시 놀아(?) 준 것을 제외하면 군주라는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와 충돌한 적이 없었다.

    군주와의 전투.

    그게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 알지도 못했던 6차 전직 퀘스트를 발동시키는 열쇠가 되어 주었다.

    ‘마음껏 승리의 기쁨을 만끽해라.’

    아마 다음에 만날 때 카렌은 차라리 오늘 현성과 승부를 보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할 것이다.

    * * *

    “정말 큰일이 났군.”

    윌슨 대통령이 얼굴을 찌푸렸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그러게 말입니다. 설마 카렌 플레이어가 패배할 줄은…….”

    “패배라니요? 이건 어디까지나 무승부입니다.”

    “그만들 하게!”

    장관들의 다툼에 윌슨 대통령이 목소리를 높였다.

    “리자드맨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아냈나?”

    “전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오리지널 호루스의 눈을 미국이 보유하고 있었다면?

    아마 추적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가지고 있는 건 다운그레이드판뿐이었다.

    오리지널 호루스의 눈을 가지고 있는 건 전 세계를 통틀어 최현성 플레이어밖에 없었다.

    “그놈이 다른 지역에 나타나서 난동을 부린다면, 꽤 골치 아프겠군.”

    윌슨 대통령의 말에 참모와 장관 들이 얼굴을 굳혔다.

    아마 골치 아픈 정도가 아니라 난리가 날 것이다.

    카렌 플레이어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파괴를 목적으로 움직인다면?

    미국의 대도시들이 불바다로 변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리자드맨이 그렇게 강할 수가 있을까요?”

    “맞습니다. 거기다 유리한 상황에서 먼저 물러났습니다. 몬스터라고 보기에는 행동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혹시 그 리자드맨이 최현성 플레이어가 경고했던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가 아닐까요?”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중동과 터키는 과거 모습을 드러냈던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 때문에 실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 피해를 미국이 입는다면?

    미국의 경제가 족히 몇십 년은 후퇴할 수도 있었다.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호루스의 눈 때문이라도 최현성 플레이어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의 말에 윌슨 대통령이 표정을 굳혔다.

    카렌을 시작으로 자주국방을 이루려던 윌슨 대통령의 입장에서 다시금 최현성 플레이어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껄끄러운 일이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우리를 도와주겠나?”

    최현성 플레이어가 바보도 아니고 그간 미국이 자신을 견제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과연 최현성 플레이어가 순순히 도움을 줄까?

    최현성 플레이어의 화를 풀려면 미국은 막대한 조공을 바치는 것은 물론, 그간의 무례에 대해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 일은 너무 심각합니다. 카렌 플레이어가 완벽하게 리자드맨을 제압했다면 모르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목격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리자드맨은 분명 카렌 플레이어를 압도했다.

    솔직히 말해 다음에 다시 리자드맨과 카렌 플레이어가 충돌한다면?

    카렌 플레이어가 패배할 확률이 더 높았다.

    “으흠…….”

    윌슨 대통령을 비롯한 참모와 장관 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심에 고심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만약 다음 전투에서 카렌 플레이어가 리자드맨의 손에 죽기라도 한다면?

    당장 미국의 대도시에 나타나 리자드맨이 난동을 부리기라도 한다면?

    미국으로서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똑똑똑!

    한창 회의 중인 상황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보좌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인가?”

    윌슨 대통령의 물음에 보좌관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카렌 양이 대통령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직접 만나 뵙기를 청했습니다.”

    “카렌 양이?”

    윌슨 대통령은 첫 대면 이후 카렌을 직접 만난 적이 없었다.

    그저 하워드 상원 의원을 통해 관리하고 보고받았을 뿐이다.

    “음, 만나 보지.”

    직접 요청했는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또 이번 일로 충격을 받았다면 적당히 다독여 줘야 했다.

    카렌은 미국의 보물이었으니까 말이다.

    잠시 후.

    달칵!

    문이 열리며 카렌이 백악관 회의실 내부로 진입했다.

    “반갑습니다, 카렌 양.”

    윌슨 대통령이 웃는 얼굴로 카렌을 반겼다.

    “저도 반갑습니다, 윌슨 대통령님.”

    카렌이 약간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카렌 양은 점점 더 강해질 겁니다. 당장은 팽팽한 무승부였지만, 시간이 흐르면 카렌 양이 무조건 이길 겁니다.”

    윌슨 대통령이 지레짐작으로 카렌을 위로했다.

    “과연 그럴까요? 제가 성장하는 만큼 그 사람도 성장할 텐데요?”

    “그 사람이라고요?”

    윌슨 대통령이 카렌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몬스터인 리자드맨을 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인간형 몬스터라고 해도 몬스터는 몬스터다.

    “네, 그 사람은 저보다 강합니다. 그리고 저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강해질 겁니다.”

    “리자드맨이 역시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였던 겁니까?”

    윌슨 대통령이 고심 끝에 질문을 던졌다.

    몬스터에게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요. 그 사람은 지구의 플레이어입니다. 윌슨 대통령님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죠.”

    윌슨 대통령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윌슨 대통령은 지금 카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얼마 전 난동을 부렸던 리자드맨은 몬스터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도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누구라는 말입니까?”

    윌슨 대통령의 물음에 카렌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한국의 최현성 플레이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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