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권. 데뷔전 (141/225)
  • ┃데뷔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카렌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의 발발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그건 미국 중앙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라를 통해 현 상황을 전달받은 미국 중앙정부는 일단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음 기회를 노리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사라의 말에 카렌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도대체 왜 저렇게 강한 거야?’

    크리스라는 이름의 영국 플레이어의 전투력은 꽤 높은 편이었다.

    물론 아무리 그래 봐야 카렌이 직접 나서면 당연히 압승을 거둘 수 있다.

    문제는 크리스라는 이름의 플레이어가 듣도 보도 못한 약체라는 점이다.

    ‘지구 플레이어 서열 2위인 루시아가 저 정도 수준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하나 사라에게 들은 정보로 파악한 플레이어 크리스는 세계 랭킹 20위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인물이다.

    ‘마크보다 훨씬 강해.’

    카렌의 휘하에는 세계 랭킹 20위권 안에 속해 있는 플레이어들이 다섯 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카렌은 휘하에 든 플레이어들을 바탕으로 나름 전 세계 플레이어들의 수준을 추측했었다.

    한데 한순간에 그 추측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가시죠.”

    사라의 말에 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슈욱!

    사라와 카렌이 조용히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

    현성이 대군주의 축복 스킬을 거둬들였다.

    “어?”

    영국 플레이어 크리스가 몸을 휘청거렸다.

    그러더니 허탈감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다 사라졌네.”

    크리스가 허무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현성이 대군주의 축복 스킬을 취소하자, 크리스는 다시금 본래의 실력으로 돌아왔다.

    천외천의 힘을 경험한 크리스의 입장에서는 하늘 위를 날다가 지상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더 열심히 사냥하자.’

    크리스가 눈을 반짝였다.

    그는 허탈감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릴 정도로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강했던 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더 이를 악물고 수련할 정도의 독종이었다.

    * * *

    영국에서 펼쳐진 크리스의 활약은 전 세계 알려졌다.

    영국은 크리스를 조국을 구한 영웅이라고 추켜세웠다.

    하지만 크리스는 이 모든 게 최현성 플레이어의 공이라는 인터뷰를 했다.

    그 인터뷰를 본 카렌은 그제야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신하를 강화시켜 주는 종류의 스킬을 쓴 건가?’

    과거 그런 스킬을 사용하는 대군주들을 종종 본 적이 있었다.

    ‘위험해.’

    카렌은 더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본인이 직접 강림한 것도 아니고 그저 직업 스킬 하나를 사용했을 뿐이다.

    한데 그 직업 스킬의 대상자인 플레이어가 격을 한 단계 뛰어넘을 정도로 강해졌다.

    이건 좋지 않았다.

    군주 직업의 단일 버프 스킬은 군주 본인의 강함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최현성 플레이어라는 자는 얼마나 강한 거야?’

    처음에는 자신보다는 약할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나보다 강할 수도 있어.’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섣불리 승리를 장담하고 정체를 드러내며 최현성 플레이어를 제거하려 했었다면?

    오히려 자신이 궁지에 몰렸을 수도 있었다.

    ‘세력을 더 키워야겠어.’

    방패가 되어 줄 신하들의 숫자를 더 많이 늘려야 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더라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할 충신들이 필요했다.

    ‘조금 무리를 해야겠어.’

    일반인으로 이루어진 신하 집단을 조금 더 빠르게 양성해야 할 것 같았다.

    * * *

    현성은 크리스를 대상으로 한 테스트 이후 지속적으로 대군주의 축복 스킬을 테스트했다.

    크리스의 경우 현성이 직접 지켜본 게 아니라 어느 정도로 강해진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루시아가 그 말과 함께 무장을 갖추고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꽈아아아아앙!

    루시아가 던전을 무너트리기라도 할 듯한 기세로 날뛰며 몬스터들을 때려잡았다.

    ‘확실히 루시아한테는 버프 효과가 커.’

    루시아는 지구와 파르티샤의 차원을 통틀어 현성을 제외하면 가장 강한 플레이어다.

    그래서 그런지 확실히 대군주의 축복으로 인한 버프 효과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났다.

    “이제 그만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현성의 말에 루시아가 물러났다.

    “우신아.”

    “히히히히히!”

    현성의 부름에 이번에는 백우신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꽈아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몬스터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

    백우신이 사나운 맹수처럼 날뛰며 몬스터들을 몰살시켰다.

    백우신은 탱커다.

    한데 지금은 딜러 플레이어를 능가하는 위력의 공격력을 보여 주었다.

    방어력은 더욱 단단해졌다.

    ‘확실히 증폭치가 높아.’

    진짜 현성보다는 약하다.

    하지만 그에 준하는 수준의 무력을 보여 주었다.

    물론 그 정도로 과도한 힘을 뽑아낼 때는 현성에게 가해지는 체력, 마력, 정신력 소모도 상당히 커졌다.

    ‘일반인도 테스트를 해 봐야지.’

    현성이 대군주의 축복을 내릴 수 있는 대상은 플레이어만이 아니다.

    휘하에 있는 신하라면 일반인에게도 대군주의 축복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현성은 일본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일본 던전에서 일반인 광신도를 대상으로 대군주의 축복 스킬을 테스트했다.

    “몸에서 힘이 넘쳐흐르옵니다! 카미사마!”

    대군주의 축복을 받은 광신도는 갑자기 생긴 힘에 잔뜩 흥분한 눈치였다.

    “몬스터들을 사냥해 봐라.”

    “예, 카미사마!”

    현성의 말에 일반인 광신도가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꽈아아앙!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에 불과한 광신도가 고레벨 플레이어 수준의 무위를 선보이며 무차별적으로 몬스터를 때려눕혔다.

    ‘내가 나설 필요는 없겠네.’

    대군주의 축복 스킬의 효율이 너무 낮아서 일반인 광신도가 위험해지면 현성이 개입해 구조할 생각이었다.

    한데 그럴 필요 자체가 없었다.

    마땅한 공격 스킬이 없어 육탄전밖에 벌이지 못했지만, 그래도 기본 육체 스펙 자체가 급증했기에 별다른 무리 없이 몬스터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확실히 약하긴 하네.’

    일반인의 경우 대군주의 축복을 받더라도 플레이어보다 힘이 증폭되는 정도가 상당히 낮았다.

    ‘축복을 받는 대상의 육체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은데…….’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한계가 없는 무한한 버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현성이 강한 적에게 묶여 있는 상황에서 휘하 신하들을 통해 적재적소에 힘을 분배할 수 있다.

    또 현성이 전투 중이라 가족들이 위험에 빠졌는데도 대군주의 부름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도 대군주의 축복을 통해 지켜 줄 수 있었다.

    ‘대상이 한 명이라는 게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애초에 워낙 사기적인 스킬이니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뭐, 더 성장할 가능성도 있고.’

    군주의 깃발처럼 리미트가 늘어나는 경우가 있으니,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었다.

    * * *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백악관.

    미국 중앙정부는 카렌의 데뷔가 무산된 것보다 영국 랭커 크리스의 급격한 파워 업에 관심을 가지고 정보를 캐냈다.

    그 결과 최현성 플레이어의 직업이 성장했고 새로운 직업 스킬이 생겼음을 알아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더 강해졌군.”

    윌슨 대통령이 착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얼마 전이었다면 최현성 플레이어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지구 전체가 안전해지는 일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을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어 카렌이라는 최현성 플레이어를을 대신할 수 있는 카드가 등장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카렌보다 더 빨리 강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든 것이다.

    “이모탈 길드 측에서 사라 플레이어의 투입이 늦은 것에 대해서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외교부 장관의 말에 윌슨 대통령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심각하게 문제 삼는 수준인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저 다음부터는 이런 실수를 하지 말라고 가볍게 질책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질책이라.”

    윌슨 대통령은 헛웃음이 나왔다.

    자국의 일도 아니고 타국의 일에 제때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질책을 받다니?

    미국이 이런 수모를 당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런 방자함도 오래가지는 못할 거다.’

    윌슨 대통령의 두 눈에 진한 독기가 서렸다.

    카렌이라는 대체자가 없을 때는 이런 마음을 품지도 못했다.

    현성과 대립하면 미국만 손해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카렌 플레이어가 데뷔하는 순간, 사정이 달라질 거다.’

    카렌이라는 대항마가 등장해도 최현성 플레이어를 몰락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고 질책을 당하는 수모를 겪을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 없게 만들 생각이었다.

    ‘우리에게는 카렌 플레이어가 있다.’

    윌슨 대통령은 카렌이 미국의 구원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나 그런 윌슨 대통령의 생각 때문에 미국은 카렌이 만든 수렁에 점점 더 깊게 빠져들어 갔다.

    카렌이 현성을 압도하든 대항마가 되든 미국에게 득이 될 일은 없었다.

    오히려 카렌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미국이라는 나라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윌슨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의 정계 인사들은 그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현성은 사냥에 열중하며 파르티샤의 차원에서 사로잡은 반인반룡의 심문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하지만 획득할 수 있는 정보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와는 반대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점점 줄어들었다.

    반인반룡의 정신이 망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체적인 손상과 용혈검으로 인한 스텟 하락.

    거기다 적에게 정보를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책감.

    이 모든 게 반인반룡의 정신을 망가트렸다.

    ‘차라리 무너졌으면 좋았을 것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순히 정보를 불었다면, 반인반룡에게도 좋고 현성에게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반인반룡은 정신을 놓는 대신 망가져 버렸다.

    반인반룡에게서 강제로 정보를 빼낼 방법이 있다면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혼돈의 결계를 통한 설득(?)으로 정보를 빼내고 있던 현성의 입장에서 반인반룡의 정신이 망가진 건 상당히 큰 타격이었다.

    “…….”

    아무리 심문을 하고 설득을 해도 반인반룡은 입도 뻥긋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현성은 고민에 빠졌다.

    ‘죽일까?’

    죽이면 업적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인반룡이 죽으면 새로운 침략자 플레이어가 차원 게이트를 넘을 것이다.

    ‘살려 놔?’

    반인반룡을 죽이지 않고 살려 놓으면 새로운 침략자 플레이어가 등장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설사 등장한다고 해도 반인반룡보다 약한 침략자 플레이어가 차원 게이트를 넘을 확률이 높았다.

    현성이 고심에 고심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곧이어 결정을 내렸다.

    ‘내가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반인반룡보다 더 강한 침략자 플레이어가 등장한다?

    모든 힘을 동원해서 때려잡으면 그만이다.

    ‘더 강한 침략자 플레이어가 오면 쓰러트렸을 때의 보상도 커진다.’

    현성은 과거 이계인을 잡았을 때 6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위 레벨의 이계 침입자 플레이어를 쓰러트렸을 때 주는 최초의 진압자와 6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위 레벨 플레이어를 쓰러트렸을 때 주는 최초의 반란자 업적을 획득했다.

    반인반룡을 죽이면?

    아마 더 상위의 최초의 진압자와 최초의 반란자 업적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반인반룡이 죽고 더 강한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가 넘어오면?

    ‘잡으면 그만이야.’

    그들을 쓰러트리고 더 상위 업적을 획득해 강해지면 그만이었다.

    ‘거기다 덤도 있고.’

    현성은 반인반룡이 보유하고 있던 아이템을 회수했다.

    그중에는 초월 등급 아이템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면 돌파다.’

    위기를 피하기만 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위기를 헤쳐 나가야지만 더 성장할 수 있다.

    현성이 반인반룡의 몸에 꽂혀 있는 용혈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좌악!

    현성이 용혈검을 휘둘러 반인반룡의 숨통을 끊었다.

    그 순간 현성의 눈앞에 두 개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신화 등급]

    -최초로 10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위 레벨의 이계의 침입자 플레이어를 쓰러트리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진압자 - 신화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신화 등급]

    -단독으로 10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위 레벨의 플레이어를 쓰러트리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반란자 - 신화 등급]

    최초의 진압자와 최초의 반란자가 모두 신화 등급 업적을 획득했다.

    총 두 개의 업적을 획득한 것이다.

    ‘1000레벨 남짓이었던 건가?’

    반인반룡은 1000레벨치고는 상당히 강했다.

    직업 스킬과 종족 특유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도 생각보다 레벨이 낮아 보였다.

    ‘어쩌면 레벨이 떨어진 걸 수도 있고.’

    용혈검이 상대의 스텟만 빨아 먹는지 아니면 레벨까지 함께 빨아 먹는지는 현성으로서도 파악이 불가능했다.

    ‘그게 아니라면…….’

    신화 등급을 넘어서 초월 등급 업적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1000레벨을 가뿐하게 넘는 높은 레벨의 침략자 플레이어를 사냥해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도 엄청나네.’

    순식간에 신화 등급 최초 업적을 두 개나 손에 넣었다.

    ‘그런데 지구에서는 왜 침략자 플레이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거지?’

    현성은 반인반룡을 통해 침략자 플레이어가 안전 결계를 통과할 수 있는 기준을 알아냈다.

    반인반룡을 죽였으니 분명 파르티샤의 차원에 또 다른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가 등장할 것이다.

    지구의 경우는?

    이미 등장했을 확률이 높았다.

    ‘몸을 숨기고 있는 건가?’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처음으로 쓰러트렸던 이계인의 경우 인간의 모습으로 위장해 혼란을 일으키려 했었으니까 말이다.

    ‘전 세계에 경고를 해야겠어.’

    이전에 죽은 이계인과 같은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가 지구에서 암약하고 있다.

    그 사실을 알리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 * *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라.”

    윌슨 대통령이 이모탈 길드를 통해 들어온 전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대비를 해야 합니다. 과거 중동과 터키에서 있었던 것 같은 인위적인 몬스터 웨이브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위적인 몬스터 웨이브.

    이건 미국으로서도 쉽게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뒷수습을 해도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에게는 카렌 양이 있네. 그녀가 있는 이상 문제가 생겨도 전처럼 최현성 플레이어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어.”

    윌슨 대통령은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가 미국을 타깃으로 삼아 침공해도 카렌의 힘이라면 충분히 방어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대비는 해야 했다.

    “던전 출입구 관리를 더욱 강화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윌슨 대통령은 카렌이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카렌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었고 각성 이후 줄곧 미국에서 활동해 왔다.

    과거 카렌과 함께 활동했던 플레이어들은 물론 가족도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윌슨 대통령이 직접 카렌의 상태창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카렌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증거가 사방에 널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카렌을 의심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카렌을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윌슨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계 인사들은 카렌을 미국의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희망을 의심하고 불신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설사 카렌을 미심쩍게 생각하는 이가 있다 해도 다른 이들의 눈치가 보여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사람이 사기를 당하는 이유는 멍청하거나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그저 욕심에 눈에 멀었을 뿐이다.

    그건 윌슨 대통령과 미국 정계 인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 * *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의 공격에 대비하라고요?”

    카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예, 최현성 플레이어가 그렇게 경고했습니다. 그런 만큼 카렌 양도 더 빠르게 힘을 키우셔야 합니다.”

    하워드 상원 의원의 말에 카렌이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당사자 앞에서 저런 말을 하다니?

    웃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미국은 정말 날 믿고 싶은 모양이야.’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카렌의 진짜 정체는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

    그런 자신을 미국이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아니,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은 걸 투자했지.’

    카렌의 휘하에 들어온 플레이어의 숫자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사실상 미국의 최상위 랭커들은 현성의 휘하에 있든지 카렌의 휘하에 있든지 둘 중 하나였다.

    그런 카렌을 의심한다?

    그건 미국의 미래를 의심하는 것과 같았다.

    카렌의 입장에서는 절대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휘하 플레이어 숫자를 더 빠르게 늘려야겠군요. 그래야 미국 전역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카렌의 말에 하워드 상원 의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렌 양의 통솔력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신중해야 합니다.”

    “신중해야 한다고요?”

    “예, 군주의 깃발 버프를 받을 수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휘하 신하들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현재 미국 정부는 타국의 랭커들을 카렌 양의 휘하에 넣기 위한 로비에 착수했습니다.”

    하워드 상원 의원의 말에 카렌이 속으로 환호성을 터트렸다.

    ‘기특한 놈들.’

    카렌도 자신의 영향력을 미국이 아닌 타국까지 확장시키고 싶어 했다.

    한데 방법이 없어서 일단은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이 알아서 방법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럼 미국을 수호하는 데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카렌이 속마음과 달리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하워드 상원 의원에게 물었다.

    “미국은 강합니다. 지금의 전력으로 충분히 본토를 수비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최현성 플레이어게 빼앗긴 타국에 대한 영향력을 되찾는 것이 먼저입니다.”

    “제게는 좀 복잡한 이야기군요.”

    카렌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알아서 진행해 주세요. 저는 그저 플레이어이자 미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조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뿐이니까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워드 상원 의원이 미소를 지으며 카렌을 바라봤다.

    ‘역시 카렌 양은 우리 미국에 꼭 필요한 인재야.’

    미국 정계 인사들이 카렌을 신뢰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순종적인 모습이었다.

    카렌은 자신의 의견과 미국 중앙정부의 의견이 충돌할 때 항상 자신의 뜻을 꺾었다.

    스스로의 위신이나 자존심 때문에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적이 없었다.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말을 잘 듣는 꼭두각시를 얻은 꼴이었다.

    정부의 지시에 온전히 순종하는 플레이어.

    카렌은 미국 정계 인사들이 꿈꿔 오던 가장 이상적인 플레이어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하고 있었다.

    카렌과 하워드 상원 의원은 그 이후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카렌은 복잡한 정치 이야기보다는 흥미로운 가십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주도했다.

    카렌은 하워드 상원 의원을 만나면 최대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했다.

    ‘편하게 이야기할 대상이 없어서 답답한 거겠지.’

    하워드 상원 의원은 카렌의 말 상대를 해 주기 위해 일부러 가십거리에 대한 기사를 꾸준히 탐독했다.

    카렌과 두터운 친분을 쌓으면 그 자체가 하워드 상원 의원의 힘이 된다.

    하지만 하워드 상원 의원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카렌이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정신 지배 스킬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카렌도 가십거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미국 정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또 하워드 상원 의원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가십거리라는 수단을 선택한 것뿐이었다.

    위이이잉!

    그때 카렌과 하워드 상원 의원의 전화가 동시에 진동을 했다.

    ‘뭐지?’

    카렌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씨익!

    카렌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혔다.

    미국에 규격 외 몬스터가 등장했다.

    다시금 데뷔 기회를 손에 넣은 것이다.

    ‘미국 영토에서 벌어진 일이니만큼 최현성 플레이어나 이모탈 길드 소속 플레이어들의 방해를 받을 일도 없겠어.’

    카렌의 데뷔 기회를 노리고 있던 미국은 최현성 플레이어나 이모탈 길드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다.

    슈욱!

    사라가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제 손을 잡으세요!”

    사라의 말에 카렌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잡았다.

    슈욱!

    두 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쩌저저저적!

    미국 북부에 위치한 몬타나주가 얼음 왕국으로 변했다.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는 하얀 털을 가진 털북숭이 몬스터 때문이었다.

    -캬아아아앙!

    털북숭이 몬스터가 괴성을 토해 내며 차가운 냉기를 뿜어냈다.

    몬타나주 소속의 플레이어들은 털북숭이 몬스터의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했다.

    가까이 다가갔던 동료들이 공격 스킬을 발동시키기도 전에 얼음덩어리로 변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모탈 길드의 지원은 언제 오는 거야?”

    몬타나주 소속 플레이어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미국 최상위 랭커는 대부분이 이모탈 길드 소속이었다.

    당연히 미국의 주 중 하나에서 감당하기 힘든 사고가 터지면, 이모탈 길드 소속의 플레이어들이 나서서 도움을 준다.

    “최현성 플레이어를 불러오느라 늦는 게 아닐까?”

    동료의 말에 처음 말을 꺼냈던 플레이어가 반색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비록 제대로 된 접전을 펼친 건 아니지만, 털북숭이 몬스터가 뿜어내는 냉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제대로 된 공격조차 해 보지 못하고 얼음덩어리가 되었으니, 랭커들이 온다고 해도 사냥이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슈욱!

    그때 몬타나주 소속 플레이어들의 눈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최현성 플레이어?”

    “아, 아니잖아?”

    잔뜩 기대하고 있던 몬타나주 소속 플레이어들의 눈이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한편 공간 이동 스킬을 통해 도착한 카렌은 몬타나주 소속 플레이어들의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렸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그림자가 상당히 짙어.’

    최현성 플레이어의 명성은 미국에서도 상당히 높았다.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최현성 플레이어를 동경했고 그처럼 되고 싶어 했다.

    ‘오늘부터 달라질 거다.’

    전 세계 플레이어들의 롤모델을 최현성 플레이어에서 자신으로 바꿔야 했다.

    아니, 양분만 해도 이득이었다.

    ‘신화 등급이군.’

    카렌은 몬스터를 보자마자 수준을 파악했다.

    초월 등급 아닌 것이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타악!

    카렌이 몸을 날려 털북숭이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어? 어?”

    “돌아와! 위험해!”

    “가까이 가기만 해도 얼음덩어리로 변한다고!”

    몬타나주의 플레이어들이 카렌을 향해 외쳤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듣고 카렌이 움직임을 멈출 리가 없었다.

    “아, 시끄러워! 가만히 구경하기나 해요!”

    사라가 몬타나주 플레이어들의 말을 끊으며 외쳤다.

    몬타나주의 플레이어들이 사라와 카렌을 미친 사람처럼 바라봤다.

    그때였다.

    화르르륵!

    카렌의 몸이 푸른 불꽃으로 휩싸였다.

    스르르륵!

    얼음으로 변했던 도시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크아아아아앙!

    털북숭이 몬스터가 괴성을 터트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털북숭이 몬스터의 마력이 냉기의 칼날이 되어 카렌을 향해 날아갔다.

    “흥!”

    가볍게 코웃음을 친 카렌이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화르르륵!

    푸른 불꽃으로 이루어진 검기가 냉기의 칼날을 순식간에 녹여 버렸다.

    그 후에도 기세를 잃지 않은 푸른 불꽃으로 이루어진 검기가 털북숭이 몬스터를 향해 날았다.

    서걱!

    짧은 절삭음과 함께 털북숭이 몬스터의 몸이 둘로 갈라졌다.

    쿠우우웅!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털북숭이 몬스터의 사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이게 무슨?”

    이 모습을 지켜본 몬타나주의 플레이어들이 입을 쩍 하고 벌렸다.

    놀란 이들은 몬타나주의 플레이어들만이 아니었다.

    미국인을 포함한 전 세계인들이 모두 놀랐다.

    갑작스러운 털북숭이 몬스터의 등장에 이를 촬영하던 방송국 카메라와 개인 방송 카메라가 적지 않았다.

    그들이 촬영한 영상을 통해 카렌이 털북숭이 몬스터를 일 검에 베어 버리는 광경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달되었다.

    -저 여자는 누구?

    -루시아 플레이어 아님?

    -아님, 체형도 다르고 머리색과 길이도 다름.

    -최현성 플레이어와 루시아 플레이어 말고도 저 정도 수준의 플레이어가 있었나?

    -그냥 몬스터가 약한 거 아닐까?

    -500레벨 넘은 고레벨 플레이어 파티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사망했다. 무조건 전설 등급 이상이다.

    -최현성 플레이어와 루시아 플레이어만 사냥이 가능하다는 규격 외 몬스터가 맞는 듯.

    -도대체 정체가 뭐야?

    -누가 좀 알려 줘!

    카렌에 대한 미국인들과 전 세계인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미국 중앙정부는 그 즉시 정보를 풀어 대중의 호기심을 적당히 해소시켜 주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미국 중앙정부는 카렌의 성장을 최대한 자신들의 업적으로 포장했다.

    미국 중앙정부가 오랜 시간 플레이어들에게 막대한 투자를 해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최현성 플레이어급은커녕 세계 랭킹 5위인 신윤아 플레이어 수준의 플레이어도 키워 내지 못했다.

    미국 국민들 중에서는 이런 미국 중앙정부의 투자를 어리석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미래를 위해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하나 플레이어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찬성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미국에서 최현성 플레이어급의 플레이어가 등장하기는 힘들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한데 갑자기 최현성 플레이어급으로 추정되는 미국 플레이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카렌 플레이어가 최현성 플레이어급이라는 건 너무 과장 아님?

    -맞음. 고작 몬스터 한 마리 잡았을 뿐인데 너무 설레발을 치고 있음.

    -하! 고레벨 플레이어 파티가 접근도 못 하고 전사한 털북숭이 몬스터를 일 검에 베어 버리는 거 못 봤음?

    -내가 봤을 때는 최현성 플레이어급이 아니라 오히려 넘어섰다!

    -헛소리하지 마라.

    -헛소리? 너 인류의 수호신교 광신도지?

    -아니거든!

    -아니긴 맞구만.

    인터넷에서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미국은 의도적으로 카렌을 띄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미국 내부에서 카렌의 실력이 최현성 플레이어급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달랐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미국인들을 허풍선이 취급했다.

    -몬스터가 자폭한 거 아니냐?

    -규격 외는 무슨? 대충 보니까 높게 쳐줘 봐야 전설 등급 정도더만.

    -위 사람 말이 맞다. 미국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떨어져서 강해 보일 뿐 사실 약한 몬스터였다.

    -한국 랭커들이었으면 그냥 잡았을 듯.

    -미국 플레이어 수준이 떨어지다 보니 전설 등급 몬스터도 규격 외로 보이나 보다.

    한국과 일본 네티즌들이 카렌의 실력을 깎아내렸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타국 역시 카렌이 최현성 플레이어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 최현성 플레이어급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실력자로 평가했다.

    인터넷에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각국의 정치인들 역시 카렌에 대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미국이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카렌 플레이어는 최현성 플레이어와 마찬가지로 군주라는 전설 등급 직업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발표에 전 세계가 뒤집어졌다.

    * * *

    ‘군주라.’

    현성이 굳은 표정으로 카렌이 털북숭이 몬스터를 일 검에 베어 버리는 영상을 바라보았다.

    ‘지구의 플레이어들이 절대 얻을 수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현성이 전설 등급 직업인 군주를 얻은 건 기사인 루시아의 충성 맹세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단 지구에는 기사라는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뭐, 다른 방법으로 군주가 될 수도 있기는 하지.’

    파르티샤의 차원에서 휘하로 들인 군주들은 일족들의 충성 맹세를 받은 후에야 군주라는 직업을 획득했다고 했다.

    즉, 군주 직업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기사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의 충성 맹세를 받든가 그게 아니라면 세력 구성원 대다수의 충성 맹세를 받아야 했다.

    충성 맹세.

    그게 핵심이었다.

    ‘지구에서는 둘 다 쉽지 않아.’

    일단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에게 진심 어린 충성 맹세를 하는 경우가 없었다.

    플레이어들이 길드에 들어가도 길드 마스터에게 충성 맹세를 하지는 않는다.

    플레이어 입장에서 길드에 들어가는 것은 직장인이 고용계약서를 쓰고 회사에 입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입사와 동시에 회사 사장에게 충성 맹세를 하는 직장인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내가 모르는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어쩌면 군주 직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다 찾아냈을 수도 있다.

    ‘뭐, 어찌 되었든 나쁠 건 없어.’

    현성이 권력욕에 빠진 악당도 아니고 자신과 같은 직업을 가진 경쟁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현성과 비견되는 실력의 플레이어가 나타났다면?

    오히려 지구의 전력이 올라갔으니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단, 그 플레이어가 정말 순수한 지구의 플레이어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이상해.’

    현성이 비상식적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시스템 상점이 있다.

    현대 물품을 판매해 포인트를 벌고 그 포인트로 비약을 비롯한 고가의 아이템을 구입해 빠르게 강해졌다.

    또 1레벨 플레이어라는 장점을 살려 엄청나게 많은 업적을 획득해 스텟을 늘렸다.

    최초 업적 역시 사실상 독식하다시피 했다.

    루시아가 공식적으로 랭킹 2위가 된 이유도 현성과 같은 1레벨 플레이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아버지와 우신이도 저 정도는 아닌데.’

    현성의 아버지 최형규와 의동생 백우신.

    그 둘 모두 비약을 통해 총스텟 2,500을 만든 후 레벨 업을 통해 얻은 미분배 스텟을 찍었다.

    거기다 획득할 수 있는 업적도 최대한 긁어모았다.

    그런 두 사람조차 신화 등급으로 추정되는 털북숭이 몬스터를 일격에 쓰러트릴 수는 없었다.

    최초 업적을 쓸어 담은 현성과 루시아와는 다르게 최형규와 백우신은 최초 업적을 하나도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발 주자인 카렌 플레이어가 신화 등급 몬스터를 일 검에 쓰러트렸단 말이지.’

    이건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 물론 카렌의 레벨이 엄청나게 높다면 가능하다.

    하지만 지구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을 사냥해 올릴 수 있는 레벨에는 한계가 있다.

    ‘일단 한번 만나 봐야겠어.’

    직접 만나서 확인하는 게 가장 확실했다.

    * * *

    “최현성 플레이어가 카렌 플레이어와의 만남을 요구했다고?”

    윌슨 대통령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공식적으로 요청을 해 왔습니다.”

    “으흠, 거절하는 게 좋겠지?”

    윌슨 대통령의 물음에 외교부 장관과 차원 게이트 관리부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렌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미국 중앙정부가 현성의 요청을 거절하는 일 따위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최악의 경우 최현성 플레이어가 카렌 플레이어를 제거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비약이 심하기는 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장관들의 말에 윌슨 대통령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카렌 플레이어에게 악감정을 품고 공격한다면?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카렌이 승리하기만을 바라야 하고, 만약 패배한다면 미국은 다시 전처럼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거절하도록 하게. 그리고 카렌 플레이어의 이동 경로에 대한 보안을 더 철저하게 하게.”

    윌슨 대통령은 최현성 플레이어가 정체를 숨기고 카렌 플레이어를 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기존의 강자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만한 싹을 제거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윌슨 대통령 자신도 그랬고 미국도 그랬다.

    그러니 최현성 플레이어도 그럴 것이다.

    이게 윌슨 대통령과 미국의 판단이었다.

    * * *

    “으흠.”

    현성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생각보다 까칠하게 나오네.’

    그저 얼굴 한번 보자고 했을 뿐이다.

    아무런 악의도 없었다.

    한데 미국은 마치 갓 태어난 새끼를 품에 안은 어미 곰처럼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를 경계한다 이거지?’

    현성도 미국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더 기분이 나빴다.

    ‘도대체 사람을 뭐로 보고.’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꽁꽁 감춘다고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현성이 아공간에서 장거리 공간 이동 스크롤을 꺼내 그대로 찢어 버렸다.

    화악!

    현성이 밝은 빛무리에 휩싸여 그대로 사라졌다.

    ‘저 사람이 맞는 것 같은데.’

    장거리 공간 이동 스크롤을 사용해 미국으로 온 현성의 목적은 단 하나.

    카렌이라는 이름의 플레이어를 만나 보는 것이었다.

    현성은 정체를 감추고 호루스의 눈을 이용해 카렌을 찾았다.

    미국이 이 사실을 알면 경기를 일으킬 것을 알기에 은신 스킬을 사용했고 변장도 했다.

    ‘저 사람인가?’

    현성이 카렌을 발견했다.

    미국이 꽁꽁 감춰 놓기는 했지만 호루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엄청나게 강하다.’

    현성은 카렌을 본 순간 긴장했다.

    호루스의 눈이 파악한 것도 그랬고 현성이 익힌 스킬 신안이 보여 주는 마력의 흐름 역시 범상치가 않았다.

    ‘미국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잖아.’

    카렌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이 더 커졌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강할 수 있는 거지?’

    상식적으로 지구에서는 저렇게 강한 플레이어가 탄생하는 게 불가능했다.

    ‘이계의 플레이어일 확률이 높아.’

    처음에는 그저 직접 만나 확인해 보자는 차원에서 접근했다.

    한데 지금은 아니었다.

    카렌이 강한 것도 강한 것이고, 처음 쓰러트렸던 이계인 이후 다른 이계의 플레이어가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카렌이 아군이라면 더 강한 이계의 플레이어가 등장해도 이상할 게 없어. 그런데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어.’

    반인반룡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었다.

    반인반룡이 알려 준 정보대로라면?

    현성과 카렌의 힘을 합친 정도로 강한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가 등장해야 했다.

    ‘그 정도 힘을 가진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가 지금까지 가만히 있을 이유가 있을까?’

    현성과 카렌을 각자 각개격파하면 그만이다.

    ‘일단은 지켜보자.’

    아직은 심증일 뿐이다.

    하지만 심증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현성은 카렌이라는 플레이어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를 제거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 지구가, 아니 미국이 더 큰 피해를 입기 전에 말이다.

    문제는 제거 방법이었다.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는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다.

    미국이 카렌을 보호하고 있다.

    ‘게다가 군주라는 직업을 가졌어.’

    이것도 문제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카렌의 세력은 강해질 것이다.

    현성 역시 군주이기에 휘하 신하들이 군주에게 가지는 절대적인 충성심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지구 플레이어들끼리 내전이 벌어질 수도 있어.’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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