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권. 대군주의 축복 (140/225)
  • ┃대군주의 축복

    현성은 계속해서 파르티샤의 차원에 머무르며 사냥과 정보 수집에 열중했다.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성과가 있어.’

    현성은 반인반룡을 통해 꽤 많은 정보를 확보했다.

    한 번에 많은 정보를 빼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야금야금 정보를 수집해 하나로 모으면 꽤 큰 도움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반인반룡의 정신력이 많이 약해지면서 혼돈의 결계를 통해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점점 늘어났다.

    ‘안전 결계가 가장 중요해.’

    지구와 파르티샤의 차원이 대대적인 침공을 받지 않은 이유는 안전 결계의 존재 때문이다.

    안전 결계가 유지되고 있으면 차원 게이트를 통해 넘어올 수 있는 몬스터나 플레이어의 숫자가 제한된다.

    안전 결계의 힘 덕분에 침공당하는 차원의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침공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힘을 합쳐 대항했을 때야.’

    루시아의 차원과 파르티샤의 차원처럼 각국의 플레이어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서로 대립한다면?

    충분히 감당이 가능한 수준의 적이 쳐들어왔음에도 패배와 멸망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는 안전하다.’

    지구의 플레이어들과 국가들은 현성의 깃발 아래 하나로 뭉쳐 있다.

    그런 만큼 루시아의 차원이나 파르티샤의 차원에서 벌어졌던 참상이 재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대비는 해야 해.’

    지구의 전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안전 결계는 점점 약해진다.

    그리고 종국에는 완전히 소멸한다.

    ‘참 아이러니하네.’

    지구의 플레이어들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사냥을 하고 강해진다.

    한데 플레이어들이 강해지면 더 강한 몬스터가 차원 게이트를 넘어온다.

    그렇다고 힘을 키우지 않고 현재에 머물러 있다면?

    차원 게이트를 넘어오는 몬스터의 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무너질 것이다.

    ‘어차피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황이야.’

    대비를 하든 하지 않든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안전 결계는 소멸한다.

    그렇다면 안전 결계의 비호가 있을 때 최대한 많은 숫자의 플레이어를 확보하고 전력을 늘려 대대적인 침공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현성은 사냥에 더 박차를 가했다.

    자신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더 강한 적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강한 적을 쓰러트리면 쓰러트릴수록 현성 역시 더 강해진다.

    ‘계속 이기면 돼.’

    이무기를 시작으로 전설 등급, 준신화 등급, 신화 등급, 초월 등급, 이계의 플레이어까지…….

    아무리 강하고 다양한 형태의 적이 등장해도 지금까지처럼 계속해서 승리한다면 지구는 무사할 것이다.

    * * *

    지구는 평화로웠다.

    1차 대격변, 2차 대격변을 잘 극복해 냈고, 바다 자체가 거대한 던전으로 변한 3차 대격변 역시 훌륭하게 막아 냈다.

    레비아탄의 가호로 인해 세계 각국은 자유롭게 선박을 띄워 물자를 운송했고,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하면 각국의 플레이어들을 동원해 사냥했다.

    그 덕분에 일반인들은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며 평소와 다름없는 평화를 누렸다.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였다.

    3차 대격변까지 진행되면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국가 체계가 무너지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말이다.

    ‘이게 모두 최현성 플레이어라는 자의 덕이겠지.’

    카렌은 현재의 지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연합에 합류하면 훗날 큰 장애물이 될 거야.’

    침략자인 카렌의 입장에서는 지구라는 차원을 만신창이로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이제 슬슬 때가 된 것 같은데…….’

    카렌이 미국과 손을 잡은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현재 카렌이 공개한 레벨은 무려 1200이었다.

    단시간에 엄청난 레벨을 올린 것처럼 보여 준 것이다.

    미국 중앙정부 역시 카렌을 대중에게 공개할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충분히 자신감이 붙었다는 뜻이었다.

    똑똑똑.

    카렌의 방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죠?”

    “하워드 상원 의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들여보내 주세요.”

    카렌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워드 상원 의원의 방문을 수락했다.

    하워드 상원 의원은 현 여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였다.

    ‘윌슨 대통령의 임기도 얼마 안 남았어.’

    하워드 상원 의원은 카렌이 가장 먼저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할 인물이었다.

    “오래간만입니다, 카렌 양. 혹시 지내시는데 불편하신 점은 없으십니까?”

    하워드 상원 의원이 미소를 지으며 카렌에게 물었다.

    미국 중앙정부는 하워드 상원 의원을 카렌의 전담으로 붙여 주었다.

    현 정권 역시 카렌과 차기 정권과의 연계를 염두에 두었다는 반증이었다.

    “신경 써 주신 덕분에 크게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다만 하루라도 빨리 국민 여러분께 제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 드리고 싶네요.”

    “조만간 기회가 올 겁니다.”

    미국 정부는 전설 등급 이상의 규격 외 몬스터가 등장하면, 현성보다 먼저 카렌을 투입시켜 사냥할 생각이었다.

    규격 외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현성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기 위해서였다.

    “최대한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위대한 미국이 언제까지나 최현성 플레이어라는 동양인에게 끌려다닐 수는 없잖아요?”

    카렌의 말에 하워드 상원 의원이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계의 플레이어는 카렌이라는 껍데기의 컨셉을 열렬한 미국 우월주의자로 잡았다.

    그게 미국 중앙정부 인사들의 신뢰를 사기 쉽고 자연스럽게 최현성 플레이어와의 대립 구도를 만들 수 있는 방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후에도 최현성 플레이어와 직접적으로 대립하시는 건 피하셔야 합니다.”

    “물론이에요. 전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최현성 플레이어를 누를 겁니다.”

    카렌의 말에 하워드 상원 의원이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카렌과 하워드 상원 의원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하워드 상원 의원이 카렌을 찾아온 이유는 그녀를 관리하고 탐색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하워드 상원 의원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플레이어 카렌의 모든 것이 거짓투성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 연락해 주십시오.”

    하워드 상원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다음에 또 뵈어요.”

    카렌이 미소를 지으며 하워드 상원 의원을 배웅했다.

    ‘조금만 더 하면 넘어오겠어.’

    카렌이 멀어지는 하워드 상원 의원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워드 상원 의원은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이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영웅 등급 방어 아이템을 몇 개 착용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는 카렌이 사용하는 정신 지배 스킬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미국의 대통령을 내 수족으로 만든다.’

    또 가능하다면 미국을 넘어서 타국의 수장들도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보다 어서 데뷔 기회가 왔으면 좋겠는데.’

    최현성 플레이어.

    그를 직접 만나 판단해 보고 싶었다.

    그가 얼마나 강한지.

    어느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카렌의 생각보다 약하다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 제거해 버리면 그만이야.’

    최현성 플레이어만 사라지면 이 지구라는 차원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 * *

    영국은 섬나라다.

    그 때문에 3차 대격변 당시 적지 않은 시간 완벽하게 고립당한 전적이 있었다.

    영국은 레베이탄의 가호 구입에 많은 돈을 쏟아부었고, 그 결과 상당히 많은 수량을 구입해 안정적으로 선박을 운행했다.

    한데 그런 영국의 내륙에 문제가 생겼다.

    전설 등급을 넘어서는 규격 외 몬스터가 등장한 것이다.

    -콰라라라라!

    푸른 비늘의 비룡이 하늘을 활공하며 지상을 향해 뇌전 브레스를 뿜어냈다.

    파지지지직!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건물이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뇌전 브레스는 전자 장비를 무력화시켰고 도시는 순식간에 암흑으로 물들었다.

    영국의 플레이어들이 푸른 비늘의 비룡을 쓰러트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군 플레이어의 피해만 늘어날 뿐 푸른 비늘의 비룡을 쓰러트릴 수는 없었다.

    현성의 휘하에 들어 있던 이모탈 길드 영국 지부 소속 플레이어들이 투입되었지만, 결국 푸른 비늘을 가진 비룡 토벌에는 실패했다.

    영국 자체적으로는 규격 외 몬스터의 레이드가 불가능한 상황.

    영국이 할 수 있는 조치는 단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당장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영국 총리의 외침에 곧바로 한국에 연락이 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미국으로도 연락이 갔다.

    미국은 영국의 동맹국으로,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되어 있었다. 규격 외 몬스터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 * *

    “카렌 님! 기회가 왔습니다!”

    미국 정부와의 연락책 역할을 하는 플레이어의 외침에 카렌이 눈을 반짝였다.

    ‘드디어 기회가 온 건가?’

    최현성 플레이어는 자신보다 먼저 사건 현장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그간 최현성 플레이어의 이동을 담당하던 사라가 자신에게 붙었으니까 말이다.

    “당장 가야겠네요.”

    “예, 던전 밖에 사라 양이 대기 중입니다.”

    “가죠.”

    카렌이 재빨리 던전 밖으로 빠져나갔다.

    “가시죠.”

    던전 밖에서 대기 중이던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 사라가 카렌을 보자마자 손을 내밀었다.

    카렌이 미소를 지으며 사라의 손을 붙잡았다.

    ‘단숨에 죽여 버린다.’

    카렌은 규격 외 몬스터를 순식간에 사냥해 대중에게 단단히 눈도장을 받을 생각이었다.

    슈욱!

    두 사람이 미국에서 영국으로 이동했다.

    카렌은 곧바로 무기를 뽑아 들고 몬스터를 제거할 준비를 했다.

    “어?”

    그런데 뭔가 상황이 좀 이상했다.

    -캬아아아앙!

    영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토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푸른 비늘을 가진 비룡이 처절한 비명을 토해 내며 죽어 가고 있었다.

    그것도 단 한 명의 플레이어에게 말이다.

    “저 사람이 최현성 플레이어인가요?”

    카렌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라에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저 사람은 영국 랭킹 1위 플레이어인 크리스입니다.”

    “크리스요?”

    카렌으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플레이어였다.

    “크, 크리스의 실력이 저 정도일 리가 없는데.”

    사라 역시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영국 랭킹 1위라고는 하지만 전 세계 랭킹으로 따지자면 20위권 안에도 들지 못하는 플레이어가 바로 크리스다.

    그런 그가 홀로 규격 외 몬스터를 압도적으로 두들겨 패고 있었다.

    아니, 두들겨 패는 수준을 넘어서…….

    푸욱!

    -캬아악!

    홀로 규격 외 몬스터를 사냥해 버렸다.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고 데뷔전을 준비하던 카렌의 입장에서는…….

    졸지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 * *

    ‘음, 생각보다 효율이 좋네.’

    현성은 놀란 표정으로 처음 사용해 본 직업 전용 스킬 대군주의 축복이 가진 위력에 감탄했다.

    대군주의 축복은 휘하 신하 한 명에게 축복을 내려 현성이 가진 힘의 일부를 빌려주는 스킬이다.

    현성은 영국에 규격 외 몬스터가 등장했다는 연락을 받고 지구로 귀환했다.

    한데 현성의 전용 콜택시(?)인 사라가 오지 않았다.

    현성은 다급한 마음에 영국에 있는 이모탈 길드 소속 플레이어 크리스를 대상으로 대군주의 축복 스킬을 사용해 봤다.

    ‘직접 만나서 걸어 줘야 하는 게 아니어서 다행이야.’

    그냥 휘하 플레이어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리고 스킬을 사용하면 그대로 적용이 되었다.

    스킬 발동과 동시에 현성은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상태창으로 확인한 결과 스텟이 줄어드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전투를 치르지도 않았는데 체력, 마력, 정신력이 지속적으로 소모되어 피로한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이거 상당히 좋은데.’

    유사시 평범한(?) 랭커 하나를 규격 외의 강자로 만들어 써먹을 수 있을 듯했다.

    아, 물론 대군주의 축복 스킬을 사용한 뒤 직접 전투를 치르면 현성의 체력, 마력, 정신력이 몇 배는 빠르게 고갈된다.

    하지만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현성은 소모되는 체력, 마력, 정신력을 회복할 수 있는 스킬과 아이템을 잔뜩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현성은 자신이 잔뜩 기대하고 있던 이계 플레이어의 데뷔전을 망쳤다는 사실도 모른 채 처음 사용한 직업 전용 스킬의 위력에 뿌듯해했다.

    ‘앞으로도 종종 써먹어야겠어.’

    루시아 같은 강자에게 대군주의 축복을 사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가 되었다.

    ‘대군주의 축복 스킬을 더 성장시켜야 해.’

    지금은 고작 한 명을 대상으로 대군주의 축복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숫자가 하나가 아니라 다섯이나 열로 늘어난다면?

    그들이 어떤 위용을 보여 줄지 스킬 사용자인 현성의 입장에서도 도저히 예측이 되지 않았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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