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권. 5차 전직 (139/225)
  • ┃5차 전직

    ‘왜 이렇게 놀라는 거야?’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엘프족들을 바라봤다.

    그저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이다.

    그런데 악귀라도 만난 것처럼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린 엘프들의 경우는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털썩!

    엘프 플레이어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건 다른 엘프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성과 반인반룡의 싸움을 보기 전이었다면 저항하거나 도망칠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현성과 반인반룡 같은 규격 외의 괴물과 자신들의 차이를 알게 된 엘프족들은 도주를 포기했다.

    “농락하지 말고 깔끔하게 죽여라.”

    엘프 플레이어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외쳤다.

    다른 엘프족들도 서로를 부둥켜안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이 찾아오지 않았다.

    엘프족들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런 엘프족들의 눈에 보인 것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현성의 모습이었다.

    ‘이것들이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현성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기껏 죽을 위기에서 구해 줬더니 감사 인사는커녕 자신을 몬스터 취급하고 있었다.

    “너한테는 대충 사정을 설명해 준 것 같은데?”

    현성이 엘프 플레이어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를 죽이지 않는 거냐?”

    “내가 너희를 왜 죽여?”

    “저, 정말 침략자 플레이어가 아닌 건가?”

    “아니야. 일단 자세한 사정은 파르티샤나 헤파트한테 들어 금방 만나게 해 줄 테니까.”

    현성이 그 말과 함께 아공간을 열어 공중형 전설 등급 언데드 몬스터들을 꺼냈다.

    -캬아아아앙!

    -크르르르릉!

    뼈만 남은 언데드 몬스터들이 등장하자 엘프족들이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언데드 몬스터들은 완벽하게 현성의 통제하에 있었다.

    언데드 몬스터들이 몸을 낮춰 엘프족들에게 자신들의 등을 내밀었다.

    “타.”

    “이, 이걸 타라고?”

    엘프 플레이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빠를 거다.”

    현성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엘프 플레이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식적으로 현성이 자신들을 죽일 생각이라면 그냥 죽이면 된다. 거짓말로 자신들을 현혹해 속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단 믿어 보자.’

    이미 죽음을 각오했다.

    최악의 상황에 빠진 만큼 더 나빠질 상황도 없었다.

    엘프족들이 얌전히 언데드 몬스터들의 등에 올라탔다.

    현성이 꼼꼼하게 방어 스킬을 걸어 준 뒤 언데드 몬스터들을 출발시켰다.

    -캬아아아앙!

    힘찬 포효와 함께 언데드 몬스터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현성은 엘프족들을 등에 태운 언데드 몬스터들을 데리고 파르티샤가 이끄는 인간족과 헤파트가 이끄는 드워프족이 있는 방어벽 너머로 향했다.

    ‘이렇게 큰 규모의 생존자 집단이 있을 줄이야?’

    ‘이 정도면 도시가 아니라 나라 수준이잖아?’

    언데드 몬스터의 등 위에서 방어벽 너머에 만들어진 도시를 목격한 엘프족들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캬아아아앙!

    긴 포효를 터트린 언데드 몬스터들이 착지했다.

    지상에 있는 인간과 드워프 들은 언데드 몬스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묘하게 반기는 분위기였다.

    “엘프족들을 데리고 오셨군요.”

    파르티샤가 웃으며 현성을 반겼다.

    “네, 우연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파르티샤 님!”

    현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생존한 엘프족들의 우두머리인 엘프 플레이어가 파르티샤를 불렀다.

    “엘로프 님!”

    파르티샤 역시 엘프 플레이어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 엘프와 아는 사이십니까?”

    현성의 물음에 파르티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엘로프 님은 엘프족들을 이끄는 하이 엘프 중 한 분이십니다.”

    “하이 엘프요?”

    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엘프와 별다른 차이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 애송이 오래간만이군.”

    엘프족들이 왔다는 소식에 드워프족의 왕인 헤파트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파르티샤와 헤파트만이 아니라 엘프족과 친분이 있는 이들이 잔뜩 몰려들었다.

    “크신 은혜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이 엘프 엘로프가 현성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파르티샤와 헤파트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현성을 오해했음을 인지한 것이다.

    “비록 그 수가 많지는 않으나 엘프족들은 분명 최현성 님께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거두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만 허리를 펴세요.”

    엘로프의 간청에 현성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투도 존대로 바꿨다.

    ‘어차피 품으려고 했었어.’

    엘프족들이 있어야 비약 및 아이템 제조가 빨라진다.

    “감사합니다. 신 엘로프 미약하나마 엘프족의 군주로서 최현성 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군주 3명의 충성 맹세를 받으셨습니다.

    -5차 전직 퀘스트 대군주의 길을 완료하셨습니다.

    -준신화 등급 직업 대군주로 전직하셨습니다.

    화아아악!

    여러 메시지가 떠오르더니 현성의 몸이 환한 빛에 휩싸였다.

    -모든 스텟이 40 증가합니다.

    -직업 전용 스킬이 추가되었습니다.

    -휘하 신하들에 대한 통제력이 강해집니다.

    -휘하에 든 군주의 신하들이 대군주의 지배력에 영향을 받습니다.

    -군주의 깃발 스킬의 버프 리미트가 20%까지 확대됩니다.

    ‘엘로프가 엘프족의 군주였구나.’

    드디어 오랜 시간 완료하지 못했던 5차 전직 퀘스트를 완료했다.

    한동안 군주로 고정되어 있던 직업도 대군주로 바뀌었다.

    ‘다른 건 다 이해가 가는데…… 휘하에 든 군주의 신하들이 대군주의 지배력에 영향을 받는다는 건 뭐지?’

    이게 살짝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현성은 불과 몇 시간 만에 그 효과를 알게 되었다.

    “대군주님을 뵙습니다!”

    “오오오! 대군주님!”

    “대군주님, 무엇이든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전에는 가볍게 예만 표하던 사람이 과도한 수준의 충성심을 보였다.

    그건 무뚝뚝한 드워프족도 마찬가지였고, 은연중에 현성을 두려워했던 엘프족도 마찬가지였다.

    ‘대군주의 지배력에 영향을 받는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인간족 군주 파르티샤, 드워프족 군주 헤파트, 엘프족 군주 엘로프.

    이 셋의 휘하에 든 신하들이 대군주인 현성을 자신의 군주 대하듯 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직접 충성을 맹세한 군주보다 더 과한 충성심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좋아.’

    현성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이득이었다.

    군주에게 휘하에 든 신하들은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 아군이다.

    그 아군의 숫자가 대폭 늘어났다.

    ‘파르티샤 차원의 플레이어들을 지구로 데리고 가도 사고 칠 일은 없겠어.’

    아마 현대 문물을 접하더라도 현성을 속이고 이득을 취할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천천히 진행하고.’

    이제는 아공간에 갇혀 있는 놈을 심문할 차례였다.

    * * *

    주변에 해양 몬스터밖에 없는 무인도.

    현성은 무인도 내부에 작은 감옥을 만들었다.

    드워프족의 기술과 엘프족의 비술이 동원되었고, 현성도 보유하고 있는 스킬들을 총동원해 이중삼중으로 감옥을 강화했다.

    마력 역장도 다섯 겹으로 중복해서 쳐 놨다.

    ‘자, 나와라.’

    만반의 준비를 갖춘 현성이 반인반룡이 들어 있는 아공간을 열었다.

    타악!

    아공간이 열리자마자 용혈검을 움켜쥔 반인반룡이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소환.’

    현성이 용혈검의 옵션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반인반룡이 움켜쥐고 있던 용혈검이 사라지더니 현성의 손에 쥐어졌다.

    -크아아아앙!

    반인반룡은 무기를 잃었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남은 마력을 모두 끌어 올려 현성을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서걱!

    현성이 가볍게 용혈검을 휘둘러 반인반룡의 오른팔을 베어 냈다.

    -크아아아악!

    반인반룡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용케 용혈검을 뽑았네?”

    현성은 반인반룡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정신을 차렸고 어느 정도 체력과 마력까지 회복해 용혈검을 뽑아 버린 모양이었다.

    -크윽!

    반인반룡이 다시금 마력을 끌어 올렸다.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하려는 듯 보였다.

    파삭!

    하지만 마력 역장이 다섯 개나 깔려 있는 상황에서 공간 이동 스킬이 발동할 리가 없었다.

    “그제 그만 포기하지?”

    현성의 말에 반인반룡이 주변을 살폈다.

    강한 마력을 품은 아이템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탈출은 불가능해 보였다.

    -크르르르!

    낮게 으르렁거리던 반인반룡이 남은 왼팔을 자신의 심장을 향해 찔러 넣었다.

    서걱!

    현성이 용혈검을 휘둘러 반인반룡의 왼팔도 베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미리 준비해 놓은 아이템을 발동시켰다.

    촤르르륵!

    아이템에서 뿜어져 나온 검푸른 빛깔의 사슬이 반인반룡의 몸을 휘감았다.

    -캬아아아앙!

    반인반룡이 비명을 지르며 날개와 꼬리를 휘둘렀다.

    하지만 현성의 마력을 원천으로 삼는 마력 사슬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포기해. 스킬 발동도 막혔다.”

    현성은 이전에 이계인을 놓쳤던 때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거금을 투자해 플레이어의 마력을 봉인하는 아이템을 구입했다.

    물론 상대 플레이어의 마력을 봉인하기 위해서는 마력 싸움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그다지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기는 했지만, 반인반룡의 몸은 아직도 만신창이였으니까 말이다.

    “죽여라.”

    반인반룡의 외침에 현성이 고개를 휘휘 가로저었다.

    “그럴 수는 없지. 너한테 묻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거든.”

    “나에게서 얻어 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 말과 함께 반인반룡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절대 입을 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너만 괴로워질 뿐이야.”

    현성이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오세요.”

    현성의 말에 인간, 드워프, 엘프로 이루어진 심문 전문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녀석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정보를 끄집어내셔야 합니다. 하지만 절대 죽여서는 안 됩니다.”

    현성의 말에 심문 전문가들이 눈을 번뜩였다.

    특히 엘프족을 대표해서 온 엘로프의 경우는 두 눈이 살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대군주님.”

    “이름, 나이, 레벨, 직업을 포함해 저놈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정보를 끄집어내겠습니다.”

    “놈에게 절대 편안한 안식을 선물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살기등등한 심문 전문가들의 모습에 현성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용혈검을 뽑아 들었다.

    푸욱!

    현성이 용혈검을 반인반룡의 몸에 찔러 넣었다.

    -크아앙!

    반인반룡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터트렸다.

    용혈검은 단순한 검이 아니다.

    용혈을 통해 체력과 마력을 빨아 먹는 탐욕스러운 포식자였다.

    현성은 용혈검을 남겨 둔 채 자리를 떠났다.

    * * *

    ‘직업 전용 스킬이나 살펴보자.’

    현성이 상태창을 열었다.

    ‘대부분은 이름만 바뀌었구나.’

    쉽게 예를 들자면 군주의 깃발이 대군주의 깃발로 바뀌고 효과가 올라간 정도의 변화였다.

    새롭게 생긴 스킬은 세 개밖에 되지 않았다.

    [대군주의 부름 – 직업 전용 스킬]

    -휘하에 거둔 신하들을 소환합니다.

    -신하들과의 거리와 숫자에 따라 마력이 소모됩니다.

    [대군주의 축복 – 직업 전용 스킬]

    -휘하 신하 1명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축복을 받은 신하는 대군주가 가진 힘의 일부를 빌려 올 수 있습니다.

    [대군주의 자비 – 직업 전용 스킬]

    -휘하 신하들의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킵니다.

    -스킬 사용 대상의 숫자와 범위에 따라 대군주의 체력과 마력이 소모됩니다.

    현성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은 대군주의 부름뿐이었다.

    대군주의 축복과 대군주의 자비 같은 경우는 현성이 아니라 신하들을 위한 스킬이었다.

    ‘대군주의 부름도 별다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내심 군주의 깃발이나 영역 선포처럼 군주와 신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직업 전용 스킬을 원했던 현성으로서는 살짝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뭐, 앞으로 차차 늘어나겠지.’

    뭐든지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또 루시아의 경우 소환했을 때 확실히 도움이 되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면 신하들이 이계인의 함정에 빠졌을 때처럼 위기에 빠진 신하들을 구원하는 용도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반인반룡은 심문 전문가들의 계속되는 설득(?)에도 끈질기게 저항하며 버텼다.

    ‘탱커형 플레이어라 그런지 정신력 스텟이 상당히 높아 보였으니까.’

    정신력 스텟은 단순히 스킬 저항력과 스킬 캐스팅 속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다.

    정신력 스텟이 올라가면 심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강인해진다.

    ‘그래도 오래 버티기는 힘들 거다.’

    용혈검은 용종의 피를 빨아 먹으며 체력과 마력을 빼앗는다.

    하지만 단순히 회복되는 체력과 마력만 빼앗아 먹는 것은 아니다.

    ‘아마 스텟 손실에도 영향을 줄 거야.’

    용혈검을 통해 피를 잔뜩 빨린 몬스터는 등급에 맞는 아이템을 뱉어 내지 않는다.

    미국에서 잡았던 레드 드래곤의 경우 너무 많은 피를 빨린 나머지 전설 등급임에도 희귀 등급 아이템 하나를 뱉어 내는 데 그쳤다.

    이건 용혈검이 단순히 회복이 가능한 체력과 마력만 빨아들이는 게 아니라 스텟 자체를 흡수한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시간문제일 뿐이야.’

    방법은 많았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반인반룡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심문 전문가들을 투입한 것은 반인반룡의 체력과 정신력을 소진시키는 예비 작업에 불과했다.

    일주일 후.

    현성이 다시금 반인반룡을 봉인해 놓은 감옥을 찾았다.

    -크르르릉!

    반인반룡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성을 본 순간,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많이 상했네.’

    단순히 몸만 상한 것이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많이 지쳐 있었다.

    “아직도 입을 열지 않았나요?”

    “송구합니다, 대군주님.”

    “괜찮습니다.”

    현성이 차분한 표정으로 반인반룡을 바라보았다.

    ‘될까?’

    안 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시도는 해 볼 필요가 있었다.

    ‘용왕의 지배력.’

    하위 용종 몬스터를 지배하는 스킬.

    플레이어를 상대로는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실패네.’

    아무리 기다려도 스킬이 성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다음은…….’

    권속 스킬을 사용해 볼 참이었다.

    현성이 자신의 피를 반인반룡의 입에 떨어트렸다.

    반인반룡은 오랜 시간 굶주렸는지 현성의 피를 정신없이 먹어 치웠다.

    ‘권속.’

    현성이 권속 스킬을 사용했다.

    하지만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몬스터를 대상으로 하는 스킬은 아무런 효과가 없는 건가?’

    용종이기는 하지만 몬스터가 아닌 플레이어이기에 스킬이 발동되지 않는 듯했다.

    ‘등용.’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등용도 해 봤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역시 그것밖에 방법이 없는 건가?’

    현성이 시스템 상점을 열고 새로운 스킬북 하나를 구입했다.

    [혼돈의 결계 – 신화 등급]

    -액티브 스킬북

    -적과 아군의 구분을 뒤바꿉니다.

    스킬 설명 자체는 간단했다.

    후기에 담긴 게시글을 통해 알아본 효과도 간단했다.

    전투 중 적과 아군의 구분을 뒤바꿔 주는 정신계 공격 스킬이다.

    ‘일반적으로는 대규모 전투 중에 사용하는 거지만.’

    지금 상황에서도 충분히 사용이 가능했다.

    현성이 혼돈의 결계 스킬북을 구매한 뒤 익혔다.

    ‘한숨 자라.’

    파지지직!

    현성이 흑뢰신의 숨결을 사용해 반인반룡을 기절시켰다.

    그 후 바로 반인반룡을 대상으로 혼돈의 결계 스킬을 발동시켰다.

    혼돈의 결계를 사용하는 올바른 방법은 적이 아군을 적으로 인지해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반인반룡의 아군은 없다.

    모두 적들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혼돈의 결계를 사용하면?

    “크르르릉! 바, 바트로 님!”

    반인반룡은 현성을 적이 아닌 아군으로 인지하게 된다.

    “임무는 어떻게 되었느냐?”

    “실패했습니다. 엄청나게 강한 인간이 있었습니다.”

    현성의 물음에 반인반룡이 반쯤 풀린 눈동자로 대답했다.

    “점령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말이냐?”

    “아닙니다. 안전 결계가 완벽하게 무력화되고 본대가 진입한다면, 충분히 점령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안전 결계가 무력화되면?”

    “예, 그렇습니다. 사실 협약만 아니라면 진작 정복하고도 남았을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진 차원이었습니다.”

    “안전 결계가 언제쯤 무력화될까?”

    “예? 그건 각 차원의 상황에 따라 다른지라 저도 정확하게는…….”

    “정말 안전 결계가 무너지면 확실하게 정복할 수 있는 것이냐?”

    “물론입니다. 이 차원에는 생존자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연합 녀석들도 이 차원을 구원하기 위해 차원 게이트를 열고 병력을 파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연합? 우리의 아군이라는 뜻인가?’

    현성이 습득한 정보를 해석하며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다른 차원에 대한 침공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지?”

    “예? 그건 우리 용인 일족과 동맹들의 관할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 정보는 파악하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

    “송구합니다. 아마 우리와 비슷할 것으로 파악됩니다.”

    “아군의 전력을 다시 점검해 봐야겠다. 네가 속한 부대의 전력은 어느 정도지?”

    “1000레벨 이하의 플레이어가…….”

    현성의 물음에 대답하던 반인반룡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반쯤 풀려 있던 눈동자가 다시금 총기를 찾았다.

    -크아아앙!

    반인반룡이 괴성과 함께 몸을 마구 비틀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혼돈의 결계.’

    현성이 다시금 혼돈의 결계 스킬을 사용했다.

    하지만 반인반룡은 이성을 잃고 날뛰기만 할 뿐이었다.

    ‘일단 오늘 여기까지 해야겠어.’

    큰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작은 성과는 얻었다.

    ‘안전 결계 그리고 연합과 동맹이라.’

    지구와 파르티샤의 차원은 안전 결계의 보호를 받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파괴될 것 같았다.

    연합.

    지구와 파르티샤의 차원은 연합이라는 곳에 속해 있는 것 같았다.

    ‘게스피트 님과 백화 님 같은 분들도 연합이라는 곳 소속이겠지.’

    현성이 시스템 상점과 용병 고용 시스템을 통해 만날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 아군으로 분류되는 이들인 것 같았다.

    ‘저 녀석들도 아군이 있는 것 같고.’

    반인반룡은 동맹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그 말은 반인반룡이 속한 세력 역시 거대한 연합 세력의 일부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차원 전쟁이라도 벌어지고 있는 건가? 그런데 도대체 왜 지구가 휘말린 거지?’

    갑작스러운 차원 게이트와 몬스터의 등장, 1차, 2차, 3차 대격변까지…….

    아직 반인반룡에게 물어볼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네놈이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빼앗아 주마.’

    아직은 사소한 정보 몇 개밖에 뽑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몇 주, 몇 달, 몇 년의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적들에 대한 정보를 모두 뽑아낸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당장 현성의 입장에서는 적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게 가장 중요했다.

    * * *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백악관.

    “하하하하!”

    윌슨 대통령이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어떻게 벌써 1000레벨을 넘을 수 있지?”

    “카렌 양이 가진 고유 스킬의 힘이 정말 강력한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제로 사냥한 몬스터의 레벨과 스텟을 빼앗아 오다니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카렌 양이 최현성 플레이어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뛰어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백악관에 모인 참모와 장관 들이 모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모두 카렌 덕분이었다.

    카렌은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던 미국 정부에게 있어서 빛과 소금 같은 존재였다.

    “카렌 양의 휘하에 들어간 플레이어들의 상태는 어떤가?”

    윌슨 대통령이 차원 게이트 장관에게 물었다.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대단합니다. 또 사냥에도 아주 열성적입니다. 먹고 자는 시간만 빼놓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사냥에 투자하고 있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최현성 플레이어 휘하의 플레이어들과 같은 모습이군.”

    군주라는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의 영향력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카렌 양만 꽉 잡고 있으면 된다.’

    카렌을 미국 정부가 제어할 수 있다면, 휘하 플레이어들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었다.

    ‘막대한 부와 명예를 준다.’

    미국에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타국으로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게끔 만들어 놓을 생각이다.

    “군주의 깃발로 인한 스텟 증폭치는?”

    “아직은 최현성 플레이어보다 낮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카렌 양 휘하의 플레이어를 지속적으로 늘려 나간다면, 역전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좋군, 아주 좋아. 본국의 국적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계속해서 카렌 양의 휘하에 넣어 주게. 당장은 최현성 플레이어의 세력을 넘어서기 힘들겠지만, 나중에는 사정이 달라질 수 있지 않겠나?”

    “저는 본국 국적의 플레이어만 받아들이기보다는 타국의 플레이어들도 받아들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타국에 대한 영향력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미국은 경제와 무력 양쪽 모두에서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였다.

    하지만 최현성 플레이어의 등장 이후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타국에도 아군 플레이어를 만들어야 합니다.”

    “음, 그들이 쉽게 받아들일지 의문이군.”

    최현성 플레이어의 직업인 군주의 효과에 대해서는 타국 역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최현성 플레이어에게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자국의 최상위 랭커들을 넘겼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타국들이 과연 한국 국적의 최현성 플레이어도 모자라 미국 국적의 카렌 플레이어에게 자국의 플레이어들을 넘기려고 할까?

    “압박을 해서라도 그렇게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압박이라…….”

    “일단 아국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친미 성향의 국가들부터 시행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일단 한번 설득해 보겠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의 최상위 랭커들이 최현성 플레이어의 수족이 되어 불안감을 느꼈던 것처럼 타국 정부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할 수 있으니, 절대 나쁜 선택이 아니다.

    타국 입장에서도 한국에게만 매여 끌려다니는 것보다는 미국이라는 선택지를 늘려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적당히 줄타기를 하는 것이 더 유리했다.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 * *

    ‘점점 숫자가 많아지는군.’

    카렌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휘하에 든 신하의 숫자가 벌써 1천 명을 넘어섰다.

    대부분이 5차 전직을 마친 고레벨 플레이어들이었다.

    ‘아직 부족해.’

    아무리 고레벨 플레이어라고 해도 고작해야 1천여 명에 불과하다.

    물론 그 1천여 명의 플레이어를 따르는 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카렌에게는 확실한 자기편이 필요했다.

    설사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더라도 자신의 편을 들어 줄 확실한 아군이 말이다.

    ‘일반인들도 포섭을 해야 할 텐데.’

    미국 정부가 쉽사리 자신을 노출시키려 하지 않았다.

    ‘최현성 플레이어라는 자를 정말 많이 두려워하는군.’

    미국은 플레이어 카렌이 최현성 플레이어와 대등한 실력을 가졌다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을 계획인 것 같았다.

    ‘하긴 한국의 독주가 너무 크긴 하지.’

    한국은 원래 플레이어 강소국이었다.

    한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세계 랭킹 1위부터 5위까지가 모두 한국인이었다.

    랭킹 1위는 최현성 플레이어.

    랭킹 2위는 우시아 플레이어.

    랭킹 3위는 최현성 플레이어의 아버지인 최형규 플레이어.

    랭킹 4위는 최현성 플레이어의 의제인 백우신 플레이어.

    랭킹 5위는 신윤아 플레이어.

    랭킹 1위부터 5위까지가 모두 한국인이었고 현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었다.

    ‘일단 성장 속도를 좀 더 올려야겠어.’

    미국 정부에게 플레이어 카렌의 실력이 최현성 플레이어와 대등하다는 인상을 심어 줘야 했다.

    ‘데뷔전도 화려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준신화 등급이나 신화 등급 몬스터를 확실하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초월 등급 몬스터가 등장하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아마 자신이 있는 이상은 힘들 것 같았다.

    지구의 전력은 과거보다 더 낮게 평가되고 있을 것이다.

    카렌의 휘하에 든 신하들이 지구의 전력에서 이탈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휘하의 플레이어들도 좀 더 성장시켜야 해.’

    랭커라고는 하지만 최현성 플레이어 휘하의 신하들에 비해 숫자도 적고 전력도 떨어졌다.

    ‘최악의 경우 직업 전용 스킬을 발동시키면 되기는 하지만…….’

    그건 정말 최악의 경우에만 사용해야 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