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권. 또 다른 침략자 (138/225)
  • ┃또 다른 침략자

    “타 차원에서 넘어온 침략자 플레이어?”

    현성의 중얼거림에 엘프 플레이어가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희는 아직 만나지 못한 모양이군. 우리 엘프족은…….”

    엘프 플레이어의 입에서 엘프족의 과거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엘프족 왕국 역시 인간족 왕국, 드워프족 왕국과 마찬가지로 몬스터들의 습격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했다.

    하지만 인간족 왕국과 드워프족 왕국이 기지를 발휘해 명맥을 이어 온 것처럼 엘프족 왕국 역시 아슬아슬하게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었다.

    물론 반격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버티는 것은 가능했다.

    엘프족들은 생존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던 중 묘인족 플레이어 하나가 순찰을 돌던 엘프 플레이어들에게 발견되었다.

    엘프 플레이어들은 묘인족 플레이어와 접촉했다.

    엘프족들은 자력으로 현 상황을 타개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타 종족과의 연계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발견한 묘인족 플레이어는 엘프족들에게 있어서 희망 그 자체였다.

    생존만 해 있다면 묘인족을 시작으로 수인족 전체와의 연계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엘프족은 인간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사 인종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엘프족 플레이어들과 접촉한 묘인족 플레이어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았다.

    그리고 엘프족의 로드를 만나고 싶어 했다.

    엘프족은 회의 끝에 묘인족 플레이어를 자신들의 본거지로 초대했다.

    그게 불행의 씨앗이었다.

    “그놈은 묘인족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침략자였다. 본거지로 들어온 놈은 묘인족의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 후에는…….”

    설명을 이어 나가던 엘프 플레이어의 두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혔다.

    “무자비한 학살이 벌어졌다.”

    엘프 플레이어의 말에 현성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구에만 이계의 플레이어들이 침공한 게 아니었어.’

    파르티샤의 차원은 지구보다 월등히 빨리 1차 대격변이 진행된 곳이다.

    이계의 플레이어가 등장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는 것이다.

    “생존자는 몇이나 되지?”

    “나도 모른다.”

    엘프 플레이어는 그 말을 끝으로 굳게 입을 다물었다.

    ‘나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군.’

    사실 이 정도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준 것도 파르티샤와 헤파트의 이름을 팔았기 때문이다.

    “그 이계의 플레이어는 지금 어디에 있지?”

    “그걸 왜 묻지?”

    “그놈을 잡아야 하니까.”

    “잡는다고?”

    “그래, 그놈에게 물어볼 게 아주 많거든.”

    전에 잡았던 이계인의 경우 스스로 자폭을 해 버려서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

    “하하하하!”

    현성의 말을 들은 엘프 플레이어가 커다란 광소를 터트렸다.

    “네가 강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혼자서 그놈을 이길 수는 없어. 그놈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괴물이니까.”

    말을 이어 나가는 엘프 플레이어의 눈에는 증오와 절망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었다.

    “그래서? 놈의 위치는 알려 주지 않을 건가?”

    현성의 물음에 엘프 플레이어가 잠시 고심하다 입을 열었다.

    “나도 모른다. 난 살아남기 위해 일족의 죽음을 뒤로하고 도망친 겁쟁이니까.”

    “으흠.”

    현성이 잠시 엘프 플레이어를 주시하다 시선을 돌렸다.

    “모른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찾아보는 수밖에……. 살고 싶다면 서남쪽으로 가라. 그곳으로 가면 파르티샤와 헤파트를 만날 수 있을 거다.”

    슈욱!

    그 말과 함께 현성이 엘프 플레이어의 눈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서남쪽?”

    현성이 사라진 자리에서 엘프 플레이어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 후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핀 엘프 플레이어가 은신 스킬을 사용한 상태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엘프 플레이어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현성이 알려 준 서남쪽 방향이 아니었다.

    ‘역시 일행이 더 있었구나.’

    현성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저 엘프 플레이어의 눈을 피해 사라진 척했을 뿐이다.

    현성이 몸을 숨기고 난 후 엘프 플레이어는 조심스럽게 은신처로 향했고, 거기서 자신의 동족들을 만났다.

    ‘생각보다 숫자가 많아.’

    끽해 봐야 열 명 미만이고 많아 봐야 수십 명 정도라고 생각했다.

    한데 현성이 만난 엘프 플레이어와 함께하는 엘프족의 숫자는 족히 400~500명은 되는 듯했다.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이다.’

    남녀를 모두 합쳐 성인으로 보이는 엘프들은 고작해야 20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스스로를 희생한 건가?’

    성인으로 보이는 엘프족들도 비교적 젊어 보였다.

    인간의 나이로 치면 대다수가 20~30대 정도의 젊은 청년들이었다.

    ‘내 말을 믿기로 한 건가?’

    엘프족들은 현성이 알려 준 서남쪽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현성이 만난 엘프 플레이어가 생존한 엘프들 중에서 꽤 영향력이 강한 모양이었다.

    ‘일단 이 녀석들부터 지켜 준다.’

    현성이 직접 나서서 도움을 준다면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하지만 현성이 모습을 드러내면 얄팍한 신뢰 관계가 깨어질 확률이 높았다.

    ‘또 나도 나름의 목적이 있고.’

    현성은 생존한 엘프족들을 몰래 뒤따르면서 보호해 줄 계획이었다.

    엘프 플레이어의 말이 맞다면…….

    ‘분명히 따라올 거야.’

    이 정도 인원이 단체로 이동하는데 흔적이 남지 않을 리 없다.

    엘프족들을 공격한 이계의 플레이어가 전투밖에 모르는 머저리가 아니라면 분명 이들의 흔적을 뒤쫓고 있을 것이다.

    ‘엘프족들을 공격한 이계의 플레이어가 모습을 드러내면, 그놈을 잡는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생존한 엘프족들을 미끼로 삼아 이계의 플레이어를 꿰어 내는 꼴이었다.

    ‘너희도 손해 볼 일은 없을 거다.’

    이계의 플레이어가 나타나지 않으면?

    엘프족 생존자들은 현성이라는 비밀 보디가드의 도움으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이계의 플레이어가 나타나면?

    원래대로라면 전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엘프족 생존자들이 전원 살아남을 수 있다.

    ‘어서 나와라.’

    현성이 신안 스킬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비밀리에 엘프족 생존자들의 뒤를 따랐다.

    * * *

    푸욱!

    키가 3미터가 넘는 거구의 반인반룡이 길게 자란 손톱으로 엘프족 장로의 심장을 꿰뚫었다.

    “으흠.”

    반인반룡이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엘프가 아니라 쥐 새끼처럼 잘 도망 다니는군.’

    첫 전투에서 대다수의 엘프들을 죽였다.

    그 결과 여러 개의 최초 업적을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반인반룡은 이 정도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더 많은 업적을 손에 넣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더 많은 이 차원의 플레이어들을 죽여야 하고, 더 고레벨의 이 차원 플레이어들을 사냥해야 한다.

    ‘일단 도망친 놈들부터 정리한다.’

    엘프족을 말끔하게 전멸시키고 그다음에는 다른 생존한 종족을 찾아 전멸시킬 계획이었다.

    ‘흐흐흐흐.’

    이계 플레이어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역시 모험을 한 보람이 있군.’

    대박 중의 대박이 터졌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이미 차원 게이트를 통해 넘어간 몬스터로 인해 전멸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은 경우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차원으로 넘어갈 경우 별다른 수고 없이 엄청난 이득을 챙길 수가 있다.

    ‘완전히 전멸하지 않아서 다행이군.’

    생존한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꽤 많았기에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반대로 생존한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극도로 적었다면?

    오히려 위험도가 올라갔을 수도 있다.

    플레이어의 숫자가 비정상적으로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계인의 방문이 허락되는 경우, 살아남은 생존자 중에 규격 외의 강자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번에는 엘프족 노릇을 해야겠군.’

    반인반룡이 아이템에 내장된 스킬을 발동시켰다.

    우득우득!

    반인반룡의 몸을 빼곡히 채우고 있던 수북한 비늘이 피부 속으로 사라졌다.

    등 뒤로 튀어나온 날개와 긴 꼬리 역시 몸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아아아!”

    완전히 변화를 마친 반인반룡이 목소리를 테스트했다.

    ‘완벽하군.’

    방금 전 자신이 죽인 엘프족 장로의 모습을 훔친 반인반룡이 추적 스킬을 발동시켰다.

    일단 엘프족들을 전멸시킨 뒤 다른 살아남은 종족이 있는지 탐색해 볼 생각이었다.

    만약 타 종족을 만난다면?

    이번에는 엘프족의 탈을 쓰고 접근해 전멸시켜 버릴 것이다.

    * * *

    ‘플레이어다.’

    현성은 엘프족 생존자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지속적으로 신안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런데 신안 스킬에 플레이어 하나가 감지되었다.

    ‘엘프족?’

    겉모습은 엘프족과 동일했다.

    한데 마력의 기질이 달랐다.

    ‘강맹하고 흉포하다.’

    껍데기는 똑같았지만 내부에 품고 있는 마력의 기운이 엘프족들과는 너무 극과 극이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인간이든 엘프든 개인의 성향이나 익히고 있는 스킬에 따라 마력의 기질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나 품고 있는 마력의 양이 너무 방대했다.

    ‘1000레벨은 넘어야 보여 줄 수 있는 마력인 것 같은데?’

    엘프족의 외형을 한 플레이어는 자신의 마력을 감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유형화된 칠흑빛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전신에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디를 그렇게 바삐 가는 게냐?”

    엘프족의 외형을 한 플레이어가 엘프족 생존자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이 망할 놈! 이젠 장로님의 탈을 뒤집어쓴 거냐?”

    현성이 만났던 엘프 플레이어가 잔뜩 흥분한 어조로 물었다.

    “그럴 생각이었다만? 아,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어린아이들이 많구나. 저 녀석들의 탈을 뒤집어쓰는 게 더 유리할 수도 있겠어.”

    엘프족 장로의 탈을 뒤집어쓴 플레이어가 어린 엘프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사아아악!

    엘프족 장로의 탈을 뒤집어쓴 플레이어의 몸을 맴돌던 칠흑빛 마력들이 하나로 뭉치며 강력한 위력을 가진 공격 스킬로 탈바꿈했다.

    “흩어져!”

    엘프 플레이어의 외침에 생존한 엘프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하하하하! 이미 늦었다!”

    엘프족 장로의 탈을 뒤집어쓴 플레이어가 광소를 터트리며 완성된 스킬을 엘프족 생존자들을 향해 흩뿌렸다.

    “큭!”

    엘프족 생존자들이 방어 스킬을 발동시키며 자신들의 몸으로 어린 엘프들을 꼭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만들어 낸 얄팍한 방어 스킬로는 적의 강맹한 공격을 막아 낼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걸 그랬나?’

    엘프 플레이어의 머릿속에 조금 전 만났던 현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완전히 믿을 수 없어 외면했다.

    하지만 이런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보니 차라리 그의 도움을 받는 게 나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꽈아아아아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마력의 파편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생존한 엘프들은 모두 죽음을 직감했다.

    “어?”

    “뭐지?”

    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기다리던 죽음이 다가오지 않았다.

    아니, 작은 통증조차 없었다.

    “이게 무슨?”

    살아남은 엘프족 생존자들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 보인 것은 한 인간이었다.

    인간 플레이어 하나가 강력한 방어 스킬을 사용해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이다.

    “괜히 엉뚱한 곳으로 이동할 생각하지 말고 이곳에 얌전히 있어. 그게 가장 안전하니까.”

    짧은 한마디와 함께 검을 뽑아 든 인간 플레이어가 엘프 왕국을 멸망시킨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이놈은 뭐야?’

    엘프족 장로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던 반인반룡은 기겁했다.

    갑자기 나타난 인간 하나가 자신이 날린 광역 공격 스킬을 가볍게 막아 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따로 마력을 투자해 단시간에 생존한 엘프족들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방어 스킬을 만들어 냈다.

    휘익!

    인간 플레이어가 휘두른 검이 손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크윽!”

    손목이 덜렁거렸다.

    검날의 길이가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그대로 손목이 날아갈 뻔했다.

    “으아아아아!”

    반인반룡의 연신 스킬을 발동시키며 상대와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꽈앙! 꽈앙! 꽈앙!

    반인반룡이 날린 스킬들이 너무도 손쉽게 파괴당했다.

    좌악! 좌악!

    반인반룡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씩 늘어났다.

    ‘엘프의 모습으로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

    최대한 빨리 본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전력을 다해야 했다.

    우득! 우득!

    엘프족 장로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던 반인반룡이 재빨리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피부가 찢겨지며 검은 비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 등 뒤에서는 한 쌍의 날개가 튀어나왔다.

    파강!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반인반룡이 손톱으로 인간 플레이어의 검을 막아 냈다.

    그와 동시에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로 날아올라 상대와의 거리를 벌렸다.

    콰콰콰콰콰콰!

    하늘로 날아오른 반인반룡이 인간 플레이어를 향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 무기인 화염 브레스를 뿜어냈다.

    현성이 자신을 향해 뿜어져 나오는 칠흑빛 화염 브레스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용종이네.’

    몬스터가 아닌 플레이어지만 용종은 용종이다.

    파지지직!

    현성의 몸이 칠흑빛 뇌전과 화염에 휩싸였다.

    촤르르르륵!

    마신의 갑주가 현성의 몸을 빈틈없이 휘감았다.

    ‘워터 브레스.’

    현성이 초월 등급 스킬인 워터 브레스를 사용했다.

    브레스는 브레스로 막아 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물론 약간의 꼼수를 부리기는 했다.

    워터 브레스에 초월 등급 스킬로 거듭난 흑뢰신의 숨결과 신화 등급 스킬의 끝자락에 머물고 있는 화염의 서도 살짝 섞어 주었으니까 말이다.

    꽈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빛 화염 브레스와 워터 브레스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첫 격돌은 현성이 우세했다.

    하지만 금방 칠흑빛 화염 브레스의 위력이 더욱 강해졌다.

    ‘좀 한다 이거지?’

    현성이 워터 브레스 스킬에 전력을 다해 마력을 불어 넣었다.

    워터 브레스가 칠흑빛 화염 브레스를 서서히 집어삼키며 전진했다.

    꽈아아아앙!

    그리고 결국은 칠흑빛 화염 브레스를 완벽하게 격파해 버렸다.

    ‘이런 미친?’

    반인반룡은 어이가 없었다.

    본래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그 후에 전력을 다해 자신의 최고 무기인 브레스를 사용했다.

    한데 이기지 못했다.

    오히려 뒤로 밀려 버렸다.

    ‘저놈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야?’

    제대로 꿀 빨 기회라고 생각했다.

    한데 훼방꾼이 나타났다.

    반인반룡이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아이템을 모두 착용했다.

    지금까지는 반쯤 장난삼아 플레이어들을 사냥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진심이었다.

    “큭큭큭.”

    반인반룡이 실소를 흘렸다.

    강한 플레이어의 등장.

    반인반룡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새롭게 얻을 보상을 떠올리자 기분이 좋아졌다.

    ‘죽여 주마.’

    반인반룡의 두 눈이 살기로 넘실거렸다.

    ‘내 최초 업적이 되어라.’

    슈우우우욱!

    반인반룡이 날개를 접고 빠른 속도로 지상을 향해 활강했다.

    ‘안 도망간다 이거지.’

    현성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났다.

    지구에서 만났던 이계인처럼 도망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다.

    한데 놈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달려들어 주면 나야 좋지.’

    현성이 비행 스킬을 사용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공중에서 현성이 휘두른 용혈검과 갈고리 모양의 공격 무기를 장착한 반인반룡의 손톱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마력의 파편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꽈앙! 꽈앙! 꽈앙!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쪼개지는 것 같은 굉음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현성과 반인반룡은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격렬하게 서로를 향해 달려들며 계속해서 무기를 휘두르고 스킬을 난사했다.

    이에 피해를 보는 것은 근처에 있던 몬스터들과 겨우 살아남은 엘프족 생존자들뿐이었다.

    * * *

    현성이 만들어 놓은 방어 스킬 덕분에 겨우 목숨을 부지한 엘프족 생존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건 엘프족 생존자들의 리더이자 현성을 만났던 엘프 플레이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 도망쳐야 해.’

    현성이 엉뚱한 곳으로 이동하지 말라고 하긴 했지만 그 말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방어 스킬이 언제까지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을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저 둘이 우리와 같은 플레이어라니.’

    엘프 플레이어는 전투를 벌이는 두 사람이 내뿜는 마력에 압도당했다.

    움직임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고 뿜어내는 마력은 하늘과 땅을 뒤덮을 정도로 방대했다.

    ‘저놈이 그간 우리를 가지고 놀았구나.’

    비참했다.

    반인반룡이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반인반룡은 엘프족들을 상대할 때 자신이 가진 진짜 힘의 10분지 1도 쓰지 않았다.

    ‘강해져야 한다.’

    레벨을 올리고 스킬을 늘려서 더 강해져야 했다.

    그래야 일족을 지킬 수 있다.

    “일단 빠져나가도록 하죠.”

    엘프 플레이어가 동족들을 불러 모았다.

    어디가 되었든 이곳을 벗어나야 살 수 있다.

    자칫 잘못해 저 경천동지할 위력의 접전에 휘말렸다가는 그대로 전멸이었다.

    엘프 플레이어가 동족들을 모았다.

    그리고 스킬로 벗어나려고 했다.

    퉁!

    그런데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어?”

    “이거 왜 이래?”

    엘프족 생존자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방어 스킬은 엘프족 생존자들이 도망갈 길을 열어 주지 않았다.

    현성이 만든 방어 스킬은 상당히 강력했다.

    이 방어 스킬의 장점이자 단점은 스킬을 발동할 때 사용한 마력이 모두 소진되기 전까지 내부와 외부를 완벽하게 차단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외부의 충격과 내부의 충격을 모두 흡수하는 것이다.

    “이럴 수가?”

    엘프 플레이어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엘프족 생존자들은 현성이 만든 방어 스킬 안에 갇혀 버렸다.

    “이익!”

    휘익!

    엘프 플레이어가 전력을 다해 창을 찔러 넣었다.

    퍽!

    하지만 둔탁한 충격음만 들릴 뿐 방어 스킬을 꿰뚫지는 못했다.

    “하하하하.”

    허탈했다.

    자신이 평생에 걸쳐 키워 온 힘이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어쩔 수 없다.’

    엘프 플레이어가 일족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차분하고 이후의 일을 대비했다.

    방어 스킬이 파괴된 후에 도주할 준비를 갖춘 것이다.

    하지만 엘프족들이 방어 스킬을 벗어날 일은 없었다.

    현성이 반인반룡을 엘프족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로 유인했기 때문이었다.

    * * *

    ‘여기서는 마음껏 힘을 써도 되겠지.’

    현성은 전투를 치르면서도 보호 스킬 안에 있는 엘프족 생존자들을 신경 쓰느라 전력을 다할 수가 없었다.

    방어 스킬에 꽤 많은 마력을 밀어 넣긴 했지만, 언제까지 버텨 줄지는 현성도 장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캬아아아앙!

    반인반룡이 거친 포효를 터트리며 현성을 밀어붙였다.

    현성이 계속해서 밀리는 모습을 보여 줬기에 반인반룡은 스스로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현성도 제대로 반격을 할 참이었다.

    ‘영역 선포.’

    -군주의 영역을 선포합니다.

    -선포된 영역 안에서 군주와 휘하 신하들의 스텟이 10% 상승합니다.

    가장 먼저 직업 전용 스킬을 사용했다.

    ‘뚱이와 덕구.’

    그다음은 정령이었다.

    파지지지직! 화르르르륵!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로 무장한 뚱이와 덕구가 반인반룡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그와 동시에 현성의 체력과 마력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고갈되었다.

    그러다 체력이 10%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패시브 스킬들이 일제히 발동했다.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패시브 스킬 광폭화 - 전설 등급 스킬이 발동합니다.

    -힘, 민첩, 마력, 정신력 스텟이 40% 증가합니다.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50% 감소했습니다.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패시브 스킬 천뢰신의 갑옷 - 신화 등급 스킬이 발동합니다.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이 3배 상승합니다.

    ‘덕구야 가라.’

    -멍!

    스킬이 발동됨과 동시에 덕구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

    몬스터들을 사냥해 체력과 마력을 지속적으로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분신술.’

    여기에 분신술 스킬까지 사용했다.

    현성과 동일한 외형을 가진 분신이 신혈검을 손에 쥐고 맹렬하게 반인반룡을 공격했다.

    갑작스러운 현성의 공세에 반인반룡은 적잖게 당황했다.

    ‘나를 속였구나.’

    반인반룡은 그제야 자신이 유인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크르르르!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 것 같으냐?”

    반인반룡이 현성을 노려보며 외쳤다.

    하지만 현성은 굳이 반인반룡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맹공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화르르르륵!

    그 순간 반인반룡의 몸이 칠흑빛 화염에 휩싸였다.

    꽈아아아앙!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로 뒤덮인 현성과 칠흑빛 화염에 휩싸인 반인반룡이 다시금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런데 방금 전과는 충격의 강도가 달랐다.

    ‘역시 강해.’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현성이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와 플레이어를 통틀어 눈앞의 반인반룡이 가장 강한 것 같았다.

    콰콰콰콰콰콰!

    반인반룡의 입에서 칠흑빛 화염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현성을 향해서 날아온 게 아니었다.

    분신술로 만든 분신을 향해 날아든 공격이었다.

    현성의 분신도 재빨리 반격을 했다.

    방어 스킬을 사용하고 워터 브레스를 사용했다.

    꽈아아아앙!

    하지만 위력 차이가 너무 컸다.

    화염 브레스가 워터 브레스를 먹어 치우고 순식간에 분신의 몸을 불살라 버렸다.

    현성은 그 틈을 노려 반인반룡의 옆구리에 용혈검을 찔러 넣으며 흑뢰신의 숨결과 워터 브레스 스킬을 발동시켰다.

    꽈아아아아아아!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반인반룡의 몸이 쭉 밀려 났다.

    하지만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

    그저 옆구리에 주먹만 한 상처가 생겼을 뿐이다.

    문제는 그마저도 순식간에 아물어 버린다는 점이었다.

    ‘엄청나게 튼튼하네.’

    현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용종에게 추가 대미지를 주는 용혈검에 초월 등급 스킬 흑뢰신의 숨결과 워터 브레스까지 때려 부었다.

    현성이 가진 가장 강력한 스킬들을 모두 발동시켜 공격한 것이다.

    하나 반인반룡은 멀쩡했다.

    ‘탱커형 플레이어라 이거지.’

    전체적인 전투력에 비해 반인반룡의 공격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이미 가장 강력한 공격 스킬인 화염 브레스가 워터 브레스에 밀린 전적이 있었다.

    하지만 방어력만큼은 천뢰신의 갑옷 스킬을 발동시킨 현성보다도 더 단단했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현성의 목적은 반인반룡의 생포.

    단단하면 단단할수록 생포하기는 더 쉬웠다.

    웬만큼 때려도 죽을 일이 없으니까 말이다.

    결정적으로…….

    -귀속 아이템 용혈검 - 유일 신화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귀속 아이템 용혈검 - 유일 신화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귀속 아이템 용혈검 - 유일 신화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중략……

    -패시브 스킬 불사의 서 - 유일 신화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불사의 서 - 유일 신화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불사의 서 - 유일 신화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후략……

    용혈검과 불사의 서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좋아, 아주 좋아.’

    초월 등급 몬스터보다 강한 용종 플레이어가 계속해서 버티며 피를 흘려 준다.

    회복력도 좋아서 불사의 서도 쭉쭉 성장한다.

    이대로 장기전을 치른다면?

    용혈검과 불사의 서를 초월 등급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크르르르!

    반인반룡이 낮게 으르렁거리며 현성을 노려보았다.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지고 있었다.

    ‘저 검이 문제야.’

    자신의 피를 흡수하는 검.

    저 검이 자신의 체력과 마력을 지속적으로 빼앗아 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어.’

    반인반룡의 특기는 탄탄한 방어를 중심으로 한 장기전이었다.

    한데 자신보다 상대가 더 장기전에 능해 보였다.

    반인반룡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에게 야금야금 자신의 체력과 마력을 빼앗기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계속 흐르면?

    ‘결국은 내가 패배한다.’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영구적인 페널티를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의 한계치를 넘어선 힘을 끌어내야 했다.

    콰콰콰콰콰콰!

    반인반룡이 칠흑빛 화염 브레스를 뿜어냈다.

    현성이 고신의 방패와 방어 스킬을 펼쳐 화염 브레스를 막아 냈다.

    파지지직!

    그와 동시에 오른손에 들린 용혈검에 마력을 집중시켜 흑뢰신의 숨결을 강화했다.

    화염 브레스가 끝나는 순간 용혈검을 휘둘러 반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그때 반인반룡의 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와 함께 반인반룡의 몸에서 강력한 마력의 폭풍이 터져 나왔다.

    콰콰콰콰콰콰!

    화염 브레스의 위력이 월등히 강해졌다.

    ‘스텟을 증폭시켜 주는 패시브 스킬이 발동한 건가?’

    현성이 거리를 벌리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

    이럴 때는 굳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달려들 필요가 없었다.

    한데 반인반룡이 화염 브레스를 멈췄다.

    현성이 반격을 위해 반인반룡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반인반룡이 아공간을 열더니 무언가를 꺼내 입에 쑤셔 넣었다.

    그 순간 반인반룡의 스텟이 급상승했다.

    파강!

    가볍게 현성의 공격을 막아 낸 반인반룡이 다시금 칠흑빛 화염 브레스를 뿜어냈다.

    현성이 이번에는 방어 대신 공격을 선택했다.

    워터 브레스 스킬로 응수한 것이다.

    꽈아아아아아!

    하지만 현성의 워터 브레스가 순식간에 화염 브레스에 휩쓸려 소멸해 버렸다.

    휘익!

    순식간에 현성에게 접근한 반인반룡의 오른팔을 휘둘렀다.

    서걱!

    마신의 갑주가 종잇장처럼 베어져 나갔고 현성의 옆구리에 큼지막한 자상이 생겨났다.

    ‘이 자식이.’

    현성이 반인반룡을 노려보았다.

    ‘패시브 스킬도 모자라서 영구적인 스텟 손실을 감수하고 소모성 아이템을 먹었다 이거지.’

    반인반룡이 아공간에서 꺼내서 먹은 건 오우거의 진혈이나 웨어 울프킹의 심장 같은 소모성 아이템으로 보였다.

    소모성 아이템은 영구적으로 스텟을 손실시킨다.

    하지만 복용한 순간만큼은 상당히 강력한 힘을 선물해 준다.

    ‘스킬빨과 아이템빨로 싸우시겠다.’

    상대는 큰 희생을 감수하고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만약 현성이 여기서 어영부영한다면?

    어어 하는 사이에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었다.

    꽈앙! 꽈앙! 꽈앙!

    반인반룡이 맹렬하게 현성을 밀어붙였다.

    현성이 소모성 아이템을 섭취할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언데드 몬스터를 동원할까?’

    하지만 상대가 너무 강해서 초월 등급 이하의 언데드 몬스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초월 등급 언데드 레비아탄의 경우에는 현성의 의지대로 완벽하게 제어할 수가 없는 데다 수중이 아니라 큰 도움이 될지 미지수.

    ‘그냥 몸으로 때우자.’

    현성이 억누르고 있던 패시브 스킬을 일제히 발동시켰다.

    -패시브 스킬 생존 본능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패시브 스킬 살인자의 광분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패시브 스킬 피의 미치광이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패시브 스킬 살육의 광기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후략……

    반인반룡처럼 현성의 눈빛 역시 핏빛으로 물들었다.

    꽈아아앙!

    현성과 반인반룡이 재격돌했다.

    “크윽!”

    하지만 현성이 밀려 났다.

    “크하하하하! 겨우 이 정도냐?”

    반인반룡이 광소를 터트리며 현성을 밀어붙였다.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이거지?’

    그럼 현성도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용인화.’

    현성이 용인화 스킬을 발동시켰다.

    우득! 우득!

    평범한 인간이던 현성의 몸에서 붉은빛의 비늘이 돋아났다.

    그와 함께 등 뒤에서는 세 쌍의 날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콰콰콰콰콰콰!

    용인의 모습을 변한 현성이 반인반룡을 향해 화염 브레스를 내뿜었다.

    꽈아아아앙!

    맹공을 퍼붓던 반인반룡이 화염 브레스를 정통으로 얻어맞고 지상으로 추락했다.

    현성이 세 쌍의 날개를 펼쳐 반인반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꽈아앙! 꽈아앙!

    붉은빛 비늘을 가진 용인과 검은빛 비늘을 가진 용인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맹렬히 서로를 공격했다.

    * * *

    엘프족 생존자들이 멍한 표정으로 멀리서 벌어지는 접전을 지켜보았다.

    두 마리의 용인이 브레스를 뿜어내고 스킬을 난사하며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저자는 정말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가 아닌 건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흉포한 마력과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와 동일한 외형까지 의심이 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도망쳐야 해.’

    엘프 플레이어는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장 탈출하죠.”

    “어떻게요? 우리는 이곳에 갇혔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감옥을 파괴하고 이곳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우리는 모두 죽을 겁니다.”

    “저자도 거짓말을 한 걸까요?”

    “그놈이 묘인족의 모습으로 우리를 속였던 걸 떠올려 보십시오. 저자는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를 속인 것일 뿐입니다.”

    엘프 플레이어의 말에 성인 엘프들이 성난 포효를 터트리며 치열하게 싸우는 두 마리의 용인을 바라봤다.

    저건 아무리 봐도 정의로운 용사가 자신들을 도와주기 위해 사악한 악당과 싸우는 게 아니었다.

    그저 사악한 악당과 악당의 다툼에 불과했다.

    * * *

    ‘도대체 어떻게?’

    반인반룡은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다.

    페널티가 있는 패시브 스킬을 발동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소모성 아이템까지 섭취했다.

    반인반룡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취했다.

    한데 상대를 이기지 못했다.

    막대한 희생을 감수했음에도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다.

    현재의 전황은 나름 팽팽했다.

    하지만 이 전투는 이미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발동시킨 패시브 스킬들과 소모성 아이템의 지속 시간이 하나둘 만료되어 갔다.

    반인반룡의 스텟이 점점 하락했다.

    물론 현성의 스텟 역시 하락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폭은 반인반룡 쪽이 월등히 컸다.

    패널티가 큰 소모성 아이템들이 반인반룡의 스텟을 영구적으로 하락시켰기 때문이다.

    팽팽하던 전투의 추가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현성이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며 거칠게 반인반룡을 공격했다.

    좌악!

    현성이 휘두른 용혈검이 반인반룡의 비늘을 박살 내고 뼈와 살을 베어 냈다.

    콰직!

    현성이 입을 벌려 반인반룡의 날개를 물어뜯었다.

    -캬아아아앙!

    반인반룡의 고통스러운 비명을 터트렸다.

    하지만 현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짐승처럼 맹렬하게 반인반룡을 공격했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용혈검과 불사의 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아니, 그런 수준을 넘어서 놀라운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귀속 아이템 용혈검 - 유일 신화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귀속 아이템 용혈검 - 유일 신화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귀속 아이템 용혈검 - 유일 신화 등급이 유일 초월 등급으로 성장했습니다.

    용혈검이 유일 신화 등급에서 유일 초월 등급으로 성장했다.

    그와 동시에 여러 업적이 떠올랐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신화 등급]

    최초로 초월 등급 무기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초월 등급 무기를 손에 넣은 자 - 신화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신화 등급]

    최초로 유일 초월 등급 무기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유일 초월 등급 무기를 손에 넣은 자 - 신화 등급]

    순식간에 신화 등급 업적 두 개를 획득했다.

    워터 브레스를 스킬을 익힐 때 얻은 ‘최초로 초월 등급 스킬을 손에 넣은 자’와 흑뢰신의 숨결로 얻은 ‘최초로 유일 초월 등급 스킬을 손에 넣은 자’를 제외한 다른 업적을 한 번에 두 개나 습득한 것이다.

    초월 등급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불사의 서 역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성은 그런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본능에 따라 눈앞의 적을 죽이기 위해 이빨과 발톱을 휘두를 뿐이었다.

    반인반룡의 전신이 상처투성이로 변했다.

    그때 미약하게나마 현성의 이성이 돌아왔다.

    정신계 방어 스킬의 발동과 패시브 스킬들의 종료 때문이었다.

    ‘새, 생포해야 해.’

    현성이 억지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적인 반인반룡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현성은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인 놈에게 물어볼 것이 많았다.

    ‘용인화 스킬부터 해제하자.’

    완벽하게 승기를 잡았다.

    더 이상 용인화 스킬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소모되는 포인트도 포인트지만, 이대로 용인화 스킬을 유지하다가는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인 놈을 그대로 죽여 버릴 것 같았다.

    현성이 용인화 스킬을 해제하자 붉은 비늘과 세 쌍의 날개가 피부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용인화 스킬이 해제되자 현성의 이성이 완벽하게 돌아왔다.

    아직 발동 시간이 남은 패시브 스킬들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정신계 스킬로 커버가 가능했다.

    ‘이거 당장 심문하기는 어렵겠어.’

    반인반룡의 몸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팔이 뜯기고 날개가 찢겼다.

    전신에는 뼈가 드러날 정도의 큰 상처가 가득했다.

    단순히 검에 찔리고 베인 상처가 아니었다.

    용혈검에 베인 상처는 얼마 되지 않았고 용인으로 변한 현성의 이빨과 손톱에 당한 상처가 대부분이었다.

    용혈검과 불사의 서에 피를 너무 많이 빼앗겼는지 상처를 자가 회복 하지도 못했다.

    ‘맹수에게 습격이라도 당한 것 같군.’

    괜스레 기분이 착잡해졌다.

    ‘마력이 아직 남아 있으니 치료를 해 주는 건 위험할 것 같고.’

    현성이 초월 등급으로 거듭난 용혈검을 들어 반인반룡의 꼬리에 찔러 넣었다.

    용혈검이 탐욕스럽게 반인반룡의 피와 마력을 탐했다.

    현성은 반인반룡의 마력이 완전히 고갈된 것을 확인하고서야 치유 스킬을 사용했다.

    ‘그레이트 힐.’

    산송장이나 다름이 없었던 반인반룡의 몸이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이 정도면 되겠지.’

    현성이 적당한 수준에서 치유 스킬을 멈췄다.

    굳이 완치시켜 줄 필요는 없었다.

    ‘용혈검이 지속적으로 체력과 마력을 빼앗고 있으니, 정신을 차리더라도 할 수 있는 건 없겠지.’

    현성이 꼬리에 용혈검이 꽂혀 있는 반인반룡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아공간에서 눈을 뜨더라도 탈출하기는 힘들 것이다.

    현성이 반인반룡을 집어넣은 준신화 등급 아공간은 공간 이동 스킬이나 아이템의 발동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엘프족들이나 데리러 가 볼까?’

    현성이 엘프족들을 보호해 놨던 장소로 몸을 날렸다.

    * * *

    퍼어엉!

    “뚜, 뚫렸다!”

    엘프 플레이어가 기쁨 가득한 함성을 터트렸다.

    드디어 자신들을 가두고 있던 감옥을 파괴했다.

    성인 엘프들은 물론 고사리손을 가진 어린 엘프들의 도움까지 받아 가며 사력을 다해 자신들을 가둔 방어 스킬을 두드린 결과였다.

    “어서 탈출합니다!”

    멀리서 벌어지던 괴성이 잠잠해졌다.

    이들은 승자가 누가 되었든 자신들에게는 이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성인 엘프들이 어린 엘프들을 인솔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슈욱!

    그런 그들의 앞에 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시는 겁니까?”

    현성이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엘프들에게 물었다.

    현성의 물음에 도주하던 엘프족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