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권. 가속화 (135/225)
  • ┃가속화

    “주군을 뵙습니다.”

    파르티샤가 현성에게 깍듯하게 예를 갖춰 군례를 올렸다.

    현성과 파르티샤가 만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도 파르티샤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반갑습니다, 파르티샤 님.”

    “사냥을 하러 오신 겁니까?”

    파르티샤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럴 생각이에요. 아, 그리고 따로 드릴 선물도 있고요.”

    “선물이라 하시면?”

    “업적이죠.”

    현성의 말에 파르티샤의 눈이 반짝였다.

    파르티샤는 강해지기 위해 수없이 노력했다.

    현성도 1레벨 플레이어고 파르티샤도 1레벨 플레이어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큰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의 원인은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업적 차이도 분명히 존재했다.

    1레벨 플레이어가 가장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업적이니까 말이다.

    현성이 속박의 서를 아공간에서 꺼냈다.

    “창조 등급 아이템입니다.”

    현성의 말에 파르티샤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차, 창조 등급요?”

    파르티샤로서는 상상조차 못 한 등급의 아이템이었다.

    파르티샤의 경우 순수하게 자력으로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의 한계는 전설 등급이었다.

    준신화 등급 몬스터만 떠도 피해 다니기 바빴다.

    그런 파르티샤의 입장에서 창조 등급 아이템은 평생 구경조차 하기 힘든 귀물이었다.

    “네, 초월 등급 최초 업적을 주더군요. 거기다 유일 등급입니다. 총스텟이 3,200 정도 늘어나더군요.”

    파르티샤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파르티샤의 스텟 총합은 고작 3,000 남짓에 불과했다.

    파르티샤의 입장에서는 총스텟이 두 배 이상 늘어나는 꼴이었다.

    “주군의 크나큰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신 파르티샤! 목숨을 다 바쳐 주군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파르티샤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다시 한번 현성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뭐, 루시아 때도 비슷했지.’

    현성의 입장에서도 두 사람의 이런 태도가 이해가 갔다.

    창조 등급 아이템이 주는 업적의 스텟 증폭치는 그만큼 엄청났다.

    ‘뭐, 최초 업적이라서 한 차원에서 단 한 명밖에 받을 수 없다는 게 단점이지만.’

    하지만 여러 명에게 줄 수 있다면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지도 않았을 것이고 업적 보상으로 이렇게 많은 스텟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받으세요.”

    현성이 파르티샤에게 속박의 서를 넘겨줬다.

    파르티샤가 공손히 속박의 서를 받아 들었다.

    파르티샤는 업적을 획득한 후 속박의 서를 다시 현성에게 공손히 넘겼다.

    “주군께서 제게 보여 주신 은혜와 신뢰는 영원토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현성의 눈에 파르티샤의 충성심 수치가 맥스를 찍은 게 보였다.

    파르티샤는 업적도 업적이지만 현성이 무려 창조 등급 아이템을 잠시라도 자신에게 넘겨줬다는 사실에 크게 감격했다.

    현성은 용병이고 파르티샤는 현재 존재하는 차원의 원주민이다.

    파르티샤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창조 등급 아이템을 받고 현성을 본래의 차원으로 추방하는 것 역시 가능했다.

    현성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창조 등급 아이템을 넘겨줬다는 것은 현성이 파르티샤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주군의 신뢰를 얻었으니 그에 보답하는 일만 남았다.’

    파르티샤는 자기 차원에 존재하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현성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렇기에 막대한 스텟보다도 현성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이제 그럼 저는 사냥을 하러 가 보겠습니다.”

    슈욱!

    현성이 그 말과 함께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모습을 감췄다.

    ‘여기는 여전하구나.’

    파르티샤의 차원에서 방어벽 밖은 완벽한 몬스터 천국이었다.

    던전이 없어 차원 게이트에서 무한정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쯤 이 차원을 정상화시킬 수 있을까?’

    모든 차원 게이트를 봉인하고 던전화시킨다.

    쉽지 않아 보였다.

    플레이어 숫자도 많이 부족했다.

    ‘최소한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겠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파르티샤의 왕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일반인들의 플레이어 각성 비율이 높다는 점이었다.

    특히 10~20대의 플레이어 각성 비율이 무척이나 높았다.

    ‘각 차원마다 할당량이라도 있는 건가?’

    지구는 인구가 많다.

    당연히 플레이어의 숫자도 많다.

    하지만 비율로 따지만 파르티샤의 차원이 압도적이다.

    단순히 인류가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려서는 아니었다.

    과거 파르티샤에게 한국 정도 규모를 가진 왕국의 전성기 시절 플레이어 비율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플레이어의 숫자가 많았다.

    ‘뭐, 그래도 총량은 당연히 인구가 많은 지구가 많지만…….’

    현성은 각 차원별로 할당되는 플레이어의 숫자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추측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최대한 많은 숫자의 플레이어를 확보하고 그렇게 확보한 플레이어들의 질을 높이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아아아아아!”

    현성이 커다란 함성을 터트렸다.

    함성에 섞인 광역 도발 스킬이 사방에 흩어져 있던 몬스터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두두두두두!

    -크아아아앙!

    -캬아아아아!

    현성의 도발 스킬에 이끌린 몬스터들이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러다가 현성을 발견하고는…….

    -끼이이잉.

    -갸우우웅.

    겁에 질린 개처럼 머뭇거렸다.

    현성이 아공간을 열어 언데드 몬스터들을 꺼냈다.

    ‘워터 브레스.’

    그 후 워터 브레스를 사용해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콰콰콰콰콰콰!

    시원스럽게 뻗어 나간 워터 브레스가 현성에게 달려든 몬스터들을 일거에 쓸어버렸다.

    ‘처음에는 참 쓸모없다고 생각했는데.’

    워터 브레스 스킬이 참 효자 중에 효자였다.

    제대로 적중시키면 신화 등급 몬스터라도 한 방에 보내 버릴 수 있는 스킬이 바로 워터 브레스였다.

    물론 그만큼의 출력을 뽑아내려면 마력 소모가 어마무시하게 크기는 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몬스터들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흡수한 체력과 마력이 워터 브레스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도 남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산된 잉여 마력은 오랜 시간 방치되어 마력이 고갈되어 있던 언데드 몬스터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전달해 주었다.

    ‘한 며칠은 죽치고 사냥만 해야겠네.’

    다른 녀석들은 금방 보충이 되지만 초월 등급 언데드 레비아탄에게는 꽤 많은 양의 마력이 필요했다.

    그렇게 현성이 파르티샤의 차원에서 한창 사냥에 열중하고 있을 무렵…….

    지구에서는 또 한 번의 이변이 발생하고 있었다.

    * * *

    미국 동부에 위치한 뉴욕의 한 영웅 등급 던전의 내부.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사냥에 열중하고 있었다.

    3차 대격변이 일어나고 이계의 플레이어가 등장해도 아침 해는 뜨고 출근은 해야 한다.

    그건 일반인이나 플레이어나 마찬가지였다.

    플레이어들은 영웅 등급 던전에 자리를 잡고 있는 드레이크 사냥에 열중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아무리 열심히 드레이크를 잡아도 드레이크가 부족할 일은 없었다.

    던전 끝에 자리한 차원 게이트에서 계속해서 드레이크들을 토해 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화악!

    이계의 존재가 차원 게이트를 넘어왔다.

    한데 그 이계의 존재는 몬스터인 드레이크가 아니었다.

    인간과 대등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 이계의 플레이어였다.

    ‘성공했군.’

    차원 게이트를 넘어온 이계의 플레이어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왜 갑자기 성공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다.’

    큰 공을 세울 절호의 기회였다.

    이제 업적만 뜨면…….

    ‘응?’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최초 업적이 뜨지 않았다.

    그 말은 아군 중에 자신보다 먼저 이 차원에 진입한 이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망할.’

    최초 업적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위험한 모험에 도전했다.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기대했던 것이다.

    한데 어떤 쥐새끼가 자신의 최초 업적을 가로챘다.

    고위험은 고스란히 남고 고수익은 빼앗긴 꼴이었다.

    ‘이젠 돌아갈 수도 없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다른 방법으로 공을 세우는 수밖에 없겠군.’

    하지만 마음이 조급했다.

    먼저 온 쥐새끼가 자신이 가져가야 할 업적을 모두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계의 플레이어가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어? 왜 여기 저놈이 있어?”

    던전에서 드레이크 사냥에 한창이던 한 파티가 이계의 플레이어를 보고 중얼거렸다.

    차원 게이트를 넘어온 이계의 플레이어는 인간과 악어를 반쯤 섞어 놓은 것 같은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악어처럼 툭 튀어나온 주둥이와 길게 뻗은 꼬리.

    겉으로 보기에는 영웅 등급 몬스터인 크로커다일맨과 큰 차이가 없었다.

    즉, 겉모습 자체로는 완벽한 몬스터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크로커다일맨은 영웅 등급 최하위에 위치한 몬스터다.

    반면 이곳은 영웅 등급 최상위에 위치한 몬스터인 드레이크 던전이었다.

    “잘못 딸려 들어왔나 보지. 아니면 드레이크에게 쫓기는 중이었거나.”

    플레이어들은 이계의 플레이어를 몬스터라고 판단했다.

    -크르르르릉!

    타 차원의 플레이어들을 발견한 이계의 플레이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계의 플레이어는 스스로의 외형이 크로커다일맨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그로 끌렸나 보네. 일단 잡자.”

    “드레이크나 있을 것이지 웬 크로커다일맨이야? 무료 봉사하게 생겼네.”

    플레이어들의 레벨은 크로커다일맨보다 월등히 높았다.

    당연히 20레벨의 법칙 때문에 경험치와 전리품을 얻을 수가 없었다.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무보수 사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냥 내가 가볍게 정리할게.”

    타악!

    파티에 속해 있던 근거리 딜러가 가볍게 몸을 날렸다.

    근딜은 물몸이다.

    크로커다일맨의 꼬리에 제대로 적중당하면 그대로 곤죽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파티의 근딜은 자신의 민첩 스텟을 믿었다.

    던전의 환경이 크로커다일맨에게 유리한 늪지대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이렇게 홀로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드레이크 던전이었다.

    크로커다일맨이 몸을 숨길 만한 늪지대 따위는 없었다.

    콰드득!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던전 안에 울려 퍼졌다.

    -크르르르!

    크로커다일맨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입가를 씰룩거렸다.

    ‘또 최초 업적이 뜨지 않는다.’

    대략 300~400레벨로 추정되는 플레이어를 죽였다.

    한데 역시나 아무런 업적도 뜨지 않았다.

    자신이 조금 뒤처진 게 아닌 모양이었다.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다.’

    이계의 플레이어가 속으로 이를 빡빡 갈았다.

    그러는 사이 죽임을 당한 딜러의 파티원들은 이계의 플레이어를 상대로 완벽한 포위망을 갖춘 상태였다.

    “조심해 보통 놈이 아니야.”

    “밀러 자식이 너무 방심한 거겠지.”

    “맞아. 그 자식 날뛰는 꼴을 보고 내가 언제 한번은 사고 칠 거라고 했잖아.”

    “그러게 결국 그 대가를 목숨으로 치렀네.”

    동료의 죽음에도 파티원들은 별다른 긴장감 없이 태연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던전에서 동료가 죽는 경우가 종종 나왔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 죽음의 원인이 대부분 방심이었기 때문이다.

    파티원들이 보기에는 죽은 근딜이 스스로 크로커다일맨의 손으로 뛰어든 것 같았다.

    ‘저놈들은 제거하는 게 좋겠지.’

    이계의 플레이어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은밀하게 움직일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격자를 깔끔하게 제거해야 했다.

    다행히 주변에 다른 플레이어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은 곧 눈앞의 플레이어들만 제거하면 된다는 소리였다.

    타악!

    결정을 내린 이계의 플레이어가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 나가며 칼날 같은 손톱을 휘둘렀다.

    서걱!

    전위에 서 있던 탱커의 몸이 갑옷과 함께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갔다.

    -크아아아앙!

    몬스터처럼 사나운 포효를 터트린 이계의 플레이어가 나머지 플레이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직!

    탱커의 뒤를 이어 전위에 서 있던 전사들이 무차별적으로 죽어 나갔다.

    “히이익!”

    “도망쳐!”

    여유 만만했던 플레이어들의 눈빛이 공포로 물들었다.

    싸울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플레이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몸을 돌려 전력으로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동료였던 근딜 플레이어가 일격에 죽은 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근딜의 몸은 유리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탱커는 사정이 다르다.

    탱커 플레이어를 일격에 죽였다?

    그 말은 곧 눈앞의 크로커다일맨이 자신들이 상대할 레벨의 몬스터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어떻게 크로커다일맨이?’

    그들은 크로커다일맨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탱커 플레이어는 방패를 들어 올리거나 스킬을 발동시켜 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그건 기본 스텟 자체가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나야 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좀 데리고 가!”

    뒤처진 힐러 하나가 앞서가는 전사들을 향해 발악하듯 외쳤다.

    하지만 전사들은 힐러나 원딜 들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콰직! 콰득!

    “아악!”

    “커억!”

    민첩 스텟이 가장 낮은 힐러와 원딜 들이 가장 먼저 크로커다일맨의 손에 희생당했다.

    민첩 스텟이 높은 전사 직군의 플레이어들은 동료의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도 사력을 다해서 달리고 또 달렸다.

    ‘나라도 살아야 해.’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어.’

    저항해 봐야 이길 수 없는 적이다.

    민첩 스텟이 높은 편인 전사 직군 플레이어들도 탱커가 일격에 죽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건 크로커다일맨의 민첩 스텟이 자신들보다 월등히 앞선다는 뜻이었다.

    힘?

    단단한 탱커를 종잇장처럼 베어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정면으로 싸웠다면 불과 몇 초도 채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을 것이다.

    ‘최하 전설 이상이야.’

    ‘무조건 살아 나가서 상부에 보고를 해야 해.’

    전사 직군의 플레이어들이 오직 생존만을 목표로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콰직!

    “컥!”

    서걱!

    “크악!”

    조금 앞서서 달린 정도로는 크로커다일맨의 손아귀에서 도주할 수는 없었다.

    ‘다 잡았군.’

    크로커다일맨.

    아니, 이계의 플레이어가 자신이 직접 죽인 플레이어들의 시체를 한곳으로 모았다.

    그 후 아공간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 마력을 주입했다.

    화아아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아이템에서 흘러나온 빛이 죽은 플레이어들의 시체를 흡수했다.

    ‘으흠.’

    아이템 사용을 끝낸 이계의 플레이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차원은 조금 까다롭겠군.’

    그간 침공했던 차원들과 달리 뭔가 체계가 복잡했다.

    이계의 플레이어가 사용한 아이템은 죽은 자의 기억을 흡수해 사용자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

    ‘특히 보안 체계가 복잡해.’

    정보를 습득한 이계의 플레이어가 아공간에서 가면 형태의 다른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그 후 이계의 플레이어가 가면 형태의 아이템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그 순간.

    우득! 우득!

    크로커다일맨과 유사한 형상을 가지고 있던 이계 플레이어의 모습이 방금 전 자신이 죽인 근딜 중 하나의 외형으로 변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시체를 뒤져 자신이 모습을 훔친 플레이어의 옷과 신분증도 확보했다.

    “아아아!”

    이계의 플레이어가 입을 열어 목소리를 조정했다.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군.”

    약간의 조정을 거친 이계 플레이어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놀랍게도 이계 플레이어의 목소리는 죽은 근딜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이제 가 볼까?”

    이계의 플레이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태연하게 던전을 빠져나갔다.

    던전 출입구 관리원들은 혼자 나온 이계의 플레이어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중요도가 높은 힐러나 탱커의 경우는 사냥 중간에 파티에서 이탈하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딜러의 경우는 가끔 사냥 도중 파티를 이탈하는 경우가 있었다.

    딜러 한 명 빠진다고 사냥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던전 출입구 관리인들은 그저 파티원과 불화가 생겨 이탈했겠거니 하고 넘겼다.

    내부에서 사고가 터졌다고 보기에는 이계 플레이어의 표정이 너무도 태연했기 때문이다.

    * * *

    ‘다 채웠어.’

    현성이 자연 소실되었던 언데드 몬스터들의 마력을 완충했다.

    ‘이제 스킬 테스트를 해야지.’

    현성에게는 얼마 전에 새롭게 익힌 초월 등급 스킬이 있었다.

    죽은 이계인이 남긴 스킬북.

    고작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 스킬의 위력은 상당히 강력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페널티가 엄청 심하지.’

    현성으로서도 페널티 때문에서 섣불리 테스트하기가 꺼려졌다.

    [권속 – 초월 등급]

    -액티브 스킬북

    -몬스터의 심령을 제압해 권속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피와 살을 먹여야 합니다.

    -몬스터의 등급과 레벨이 높으면 높을수록 많은 양의 피와 살을 먹여야 합니다.

    -스킬을 사용하면 손실된 피와 살 만큼 레벨과 스텟이 하락합니다.

    -하락한 레벨과 스텟의 일부가 권속에게 흡수됩니다.

    ‘이것 덕분에 몬스터를 자유자재로 조종한 거겠지.’

    이계인은 너무도 손쉽게 너무나도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을 자유자재로 부렸다.

    현성은 그 점을 상당히 의아하게 생각했다.

    한데 이런 스킬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레벨은 손해 볼 게 없고.’

    어차피 현성의 레벨은 1이다.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레벨이 없었다.

    문제는 스텟이었다.

    ‘좀 애매하네.’

    현성은 꽤 오랫동안 오우거의 진혈이나 웨어 울프 킹의 심장 같은 페널티가 있는 소모성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용하지 못했다.

    바로 탐식의 서 때문이었다.

    탐식의 서로 늘어나는 스텟은 현성의 기본 스텟이다.

    업적을 획득해 칭호로 늘리거나 아이템으로 늘린 보너스 스텟과는 그 결이 다르다.

    오우거의 진혈이나 웨어 울프 킹의 심장 같은 페널티가 있는 소모성 아이템을 사용하면, 탐식의 서로 늘린 기본 스텟이 줄어든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탐식의 서를 사용해 애써 늘린 스텟을 날려 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소모성 아이템을 사용했을 때 다른 플레이어들과 동일하게 스텟이 손실되는 페널티를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텟이 하락하는 권속 스킬은 현성의 입장에서는 계륵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테스트해 볼 게 하나 있기는 했다.

    ‘레벨과 스텟이 하락한다라.’

    현성이 이 문구에 주목했다.

    분명히 레벨이 먼저 나오고 그 후에 스텟이 언급되었다.

    ‘어쩌면 자동으로 연동되는 걸 수도 있어.’

    레벨이 하락하는데 스텟이 그대로다?

    그럼 그 자체가 사기다.

    마음만 먹으면 현성처럼 1레벨 플레이어가 될 수도 있다.

    당연히 권속 스킬을 사용해 레벨이 하락하면 레벨 업으로 올린 스텟이 줄어드는 게 정상이다.

    현성은 여기서 한 가지 가능성을 발견했다.

    ‘어쩌면 레벨 업으로 올린 스텟만 하락하는 걸 수도 있어.’

    만약 그런 거라면?

    현성은 아무런 손해가 없다.

    현재 현성의 총스텟은 어마어마하게 높다.

    하지만 모두 비약과 업적 그리고 탐식의 서로 늘린 것이다.

    레벨 업을 통해 늘린 스텟이 단 1도 없었다.

    ‘만약 내 생각대로만 된다면…….’

    이계인이 고생고생해서 올린 레벨과 스텟을 희생시켜 가며 사용했던 스킬을 아무런 페널티 없이 사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테스트를 해 보자.’

    성공하면?

    제대로 꿀 빠는 거다.

    실패하면?

    한 자리 숫자의 스텟을 날린 셈 치면 그만이다.

    ‘최약체로 선택해야지.’

    피와 살도 아주 코딱지만큼 먹일 생각이다.

    기왕이면 소모되더라도 한 자리 숫자의 스텟이 소모되도록 말이다.

    현성이 열심히 주변을 수색했다.

    한데 일반 등급 몬스터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꿩 대신 닭이다. 아니, 닭 대신 꿩인가?’

    현성이 희귀 등급 몬스터를 테스트 대상으로 정했다.

    사실 일반 등급 몬스터나 희귀 등급 몬스터 같은 저레벨 몬스터의 경우 손실되는 레벨과 스텟 차이는 거기서 거기였다.

    그저 약하면 좀 더 쉽게 스킬에 걸려들지 않을까 해서 일반 등급 몬스터를 찾았던 것이다.

    -키이이익!

    현성을 마주한 몬스터가 비명을 지르며 벌벌 떨었다.

    ‘바다의 제왕 스킬과 시너지가 좋네.’

    바다의 제왕 스킬 때문에 몬스터는 현성을 두려워했다.

    몬스터의 정신 상태가 불안정하면?

    심령을 제압하기가 더 쉬웠다.

    ‘입을 벌려라.’

    현성이 몬스터에게 지시를 내렸다.

    몬스터가 입을 벌렸다.

    현성이 자신의 손가락을 살짝 베어 피 한 방울을 떨어트렸다.

    톡!

    현성의 피 한 방울이 몬스터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피와 살이라고 했지 꼭 둘 다 줘야 한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현성이 권속 스킬을 시전하고 그 결과를 기다렸다.

    -권속 스킬이 성공했습니다.

    -사용자의 레벨이 3 하락합니다.

    -사용자의 힘 스텟이 1 하락합니다.

    -사용자의 민첩 스텟이 4 하락합니다.

    -사용자의 체력 스텟이 5 하락합니다.

    -사용자의 마력 스텟이 3 하락합니다.

    -사용자의 정신력 스텟이 2 하락합니다.

    다행히 피 한 방울로도 권속 스킬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레벨과 스텟이 하락했다는 메시지도 떠올랐다.

    ‘피 한 방울인데 무슨 레벨이 3이나 떨어져?’

    손실 정도가 엄청 컸다.

    ‘1레벨 정도 떨어트리려고 했는데.’

    현성의 가정이 빗나간다면?

    한 자리 숫자인 5 정도의 스텟을 손해 보는 게 아니라 두 자리 숫자인 15 스텟을 손해 보게 생겼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정확히 3레벨이 하락한 만큼 스텟이 떨어졌다는 건데.’

    레벨이 3 하락하고 스텟은 정확히 15가 떨어졌다.

    현성으로서는 여기에 희망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진짜 떨어진 거면 손해가 엄청나게 큰데.’

    현성이 떨리는 마음으로 상태창을 열어 스텟을 확인했다.

    “하하하하!”

    입에서 절로 미소가 터져 나왔다.

    ‘안 떨어졌어.’

    현성의 스텟은 권속 스킬을 시전하기 전과 똑같았다.

    메시지에서는 사용자의 레벨이 3 하락한다고 나왔다.

    스텟 역시 총 15가 하락했다고 나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스텟이 단 1도 하락하지 않았다.

    ‘그럼 좀 더 정확하게 테스트를 해 보자.’

    현성이 권속으로 만든 몬스터를 대상에게 앞으로 가라는 지시를 내렸다.

    저벅저벅.

    권속이 현성의 지시대로 앞으로 걸어갔다.

    “음…….”

    권속을 움직여 본 현성은 뭔가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이건 단순한 지시가 아닌데?’

    현성이 분신술로 만든 분신을 사용하듯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현성의 눈앞에 새로운 시야가 펼쳐졌다.

    뇌리로 두 개의 정보가 전달되었다.

    첫 번째는 현성이 권속으로 삼은 몬스터를 보고 있는 시야였다.

    두 번째는 권속으로 삼은 몬스터가 현성을 보고 있는 시야였다.

    ‘마력 소모가 꽤 있기는 하네.’

    하지만…….

    -크워어우억!

    몬스터가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성대 구조상 제대로 된 발음이 나오지 않았다.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

    마력이 소모되기는 하지만 현성의 의지에 따라 권속의 몸과 정신을 자유자재로 지배할 수 있었다.

    말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마치 분신을 조종하는 것처럼 말이다.

    털썩!

    현성의 권속이 된 몬스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후 발톱을 이용해 흙바닥에 글자를 적었다.

    ‘대단해.’

    정말 놀라운 스킬이었다.

    권속.

    이건 단순히 몬스터에게 지시를 내리는 수준의 스킬이 아니었다.

    원하기만 한다면 권속의 몸을 자신의 몸처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었다.

    ‘역시 초월 등급이라 이건가.’

    스킬 등급이 높아서 그런지 단순히 지배하는 용왕의 지배력 스킬보다 월등히 효율이 좋았다.

    ‘뭐, 페널티가 워낙 심하니까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권속 스킬을 정석대로 사용해 몬스터를 지배하면 무조건 레벨과 스텟을 소모해야 한다.

    용왕의 지배력 스킬은 등급도 낮고 마력 소모도 많다.

    하지만 아무런 페널티가 없다.

    권속 스킬과 용왕의 지배력 스킬 모두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1레벨 플레이어인 현성에게는 권속 스킬의 페널티가 하나도 적용되지 않는다.

    ‘아주 쓸 만한 무기를 얻었어.’

    현성이 몬스터를 찾아 몸을 날렸다.

    페널티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니 제대로 테스트를 해 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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