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권. 속박의 서 (134/225)

┃속박의 서

‘너무 손해가 크다.’

무인도에 위치한 동굴로 몸을 피한 이계인이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일단 신체부터 복구한다.’

우득! 우득!

이계인이 스킬을 발동시켜 손실된 신체를 수복해 나갔다.

레비아탄에게 먹이로 주며 잘려 나간 오른팔은 이미 팔꿈치 부분까지 수복이 된 상태였다.

‘반나절 정도면 신체 수복은 완료된다.’

하지만 손실된 레벨과 스텟을 수복시킬 수는 없었다.

‘손해가 크지만 어차피 목표치에는 도달했다.’

이계인이 상태창에 비친 자신의 레벨을 확인했다.

[플레이어 레벨 - [689]]

1000레벨에 근접했던 레벨이 어느새 600레벨 후반대까지 하락했다.

‘아쉽군.’

잃어버린 레벨을 복구하려면 몇 년 정도의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최현성 플레이어라는 대어를 잡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했다.

‘업적만 얻으면 된다.’

손실된 레벨과 스텟은 사냥을 해서 다시 올리면 그만이다.

‘드디어 이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다.’

이계인이 속한 일족의 보물.

무려 창조 등급의 아이템.

속박의 서.

속박의 서는 자력 결계라는 무척 특별한 효과를 가진 스킬을 발동시킬 수 있다.

속박의 서에 내장되어 있는 스킬 자력 결계를 발동시키는 원동력은 사용자의 체력과 마력 그리고 결계 안에 들어온 700레벨 이상 되는 플레이어의 체력과 마력이다.

일단 자력 결계가 펼쳐진 장소에 들어오면 70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자신이 가진 체력과 마력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결계가 되기 때문이다.

‘초월 등급 플레이어라면 먹히지 않겠지만…….’

이계인이 겪어 본 결과 최현성 플레이어는 강하기는 했지만 고작해야 전설 등급에서 신화 등급 사이였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초월 등급 플레이어였다면?

이계인의 숨통은 진작에 끊어졌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준비한다.’

자력 결계는 무척이나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제약도 많다.

일단 아무 때나 즉시 발동시킬 수가 없다.

장시간 마력과 체력을 불어 넣어야 하고 모든 조건이 완료되어도 캐스팅 시간이 무척이나 길었다.

그런 주제에 발동 시간은 고작해야 1,000초에 불과했고 쿨타임은 무려 100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한번 발동되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

모든 굴레를 벗어난 초월 등급 이상의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말이다.

‘제발, 제발.’

이계인은 속박의 서에 내장된 자력 결계 스킬을 발동시키며 간절히 소망했다.

제발 현성이 빨리 도착하지 않기를 말이다.

약간의 시간이라도 벌어 볼 요량으로 속박의 서에 내장된 자력 결계 스킬을 발동시키며 열심히 방어 스킬을 깔았다.

또 아공간에 보관하고 있던 몬스터들도 모두 꺼내 동굴 입구에 배치했다.

이계인의 간절한 소망 덕분일까?

자력의 결계 스킬이 서서히 발동 준비를 마치기 시작했다.

끄때였다.

꽈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강력한 마력의 폭풍이 이계인이 만들어 놓은 방어 스킬들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이계인은 피가 마를 것 같았다.

이제 거의 다 끝났다.

스킬 발동까지 불과 몇 초도 남지 않았다.

한데 위기가 찾아왔다.

-캬아아아악!

-키이이이익!

이계인이 배치한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제발 조금만 더 천천히.’

이계인이 체력과 마력을 불어 넣으며 간절히 소망했다.

꽈아아앙!

그 순간 모든 방어 스킬이 산산조각 났다.

심령을 제압해 둔 몬스터들은 이미 숨통이 끊어진 상태였다.

다행히 마력 역장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마력 역장은 그저 통신 스킬과 텔레포트 스킬을 막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타악!

이계인의 눈에 허공을 가로지르는 현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0.3초.

현성이 자력 결계의 영역에 도달했다.

0.2초.

현성이 이계인의 코앞까지 도착했다.

0.1초.

화아아아아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자력 결계가 발동했다.

“하하하하하!”

이계인이 광소를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이 미친놈이 왜 저러는 거야?’

현성은 정신없이 이계인이 남긴 마력의 파장을 따라 이동했다.

며칠 정도가 아니라 몇 달이 걸리더라도 꼭 잡아서 족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계인의 마력 파장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강력한 방어 결계와 몬스터들이 현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현성은 당연히 힘으로 그 모든 것을 때려 부수며 전진했다.

그 후 곧바로 눈앞의 이계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데 이 미친놈이 갑자기 광소를 터트리는 게 아닌가?

‘일단 양팔을 자른다.’

이놈에게 물어볼 정보가 상당히 많았다.

생포가 여의치 않으면 죽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생포가 가능하다면 그렇게 할 계획이었다.

휘익!

현성이 신혈검을 휘둘렀다.

이계인이 마력을 가득 담아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오른팔을 현성에게 휘둘렀다.

꽈아아앙!

현성이 휘두른 신혈검과 이계인의 오른팔에 담긴 마력이 부딪치며 폭발했다.

“크아아아악!”

이계인이 처절한 비명을 터트렸다.

신혈검과 이계인의 오른팔이 충돌한 결과는 너무도 일방적이었다.

이계인의 오른팔이 반쯤 잘려 나갔고 몸은 마력 폭발을 견디지 못하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이계인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놈이 미쳤나?’

공격을 하는 현성도 내심 긴장을 했다.

그간 도망만 치던 이계인이 자신만만하게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무언가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신안에는 아무런 함정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혹시 모른다는 마음에 전심전력을 다해 신혈검을 휘둘렀다.

한데 이계인이 숨겨 놓은 패는 아무것도 없었다.

현성의 공격 한 번에 이계인의 오른팔이 날아갔고 몸은 마력 폭발을 견디지 못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너, 도대체 뭘 믿고 여기서 날 기다린 거냐? 그것도 마력 역장까지 펼쳐 놓고?”

현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마력 역장은 현성의 공간 이동 스킬을 봉인함과 동시에 이계인의 공간 이동 스킬까지 봉인해 버린다.

말 그대로 완벽한 자충수를 둔 것이다.

“이,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는데?”

이계인은 이계인대로 잔뜩 당황한 상태였다.

이계인이 다시금 자력 결계를 확인했다.

하지만 자력 결계는 정상적으로 작동 중이었다.

자력 결계의 매개체인 속박의 서 역시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이계인이 고함을 지르며 현성을 향해 왼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서걱!

신혈검이 가볍게 이계인의 왼팔을 잘라 냈다.

“왜? 도대체 왜?”

양팔을 잃은 이계인이 황당한 눈빛으로 완벽하게 펼쳐진 자력 결계를 바라보았다.

자력 결계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인 현성의 체력과 마력을 전혀 빼앗지 못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현성이 자력 결계로 속박할 수 없는 초월 등급 플레이어일 리는 없다.

그랬다면 자신은 진작에 잡혀 죽었을 것이다.

설사 현성이 그간 자신을 농락하며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된다.

초월 등급 플레이어가 자력 결계를 깨는 방법은 막대한 마력을 투사해 자력 결계가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과부하로 파괴되게 하는 것뿐이다.

한데 이계인은 현성이 막대한 마력을 발산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파괴되었어야 할 자력 결계도 멀쩡했다.

“도대체 왜! 왜! 왜!”

이계인이 왜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계인은 지금의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물론 한 가지 가능성이 있기는 했다.

그건 적인 현성의 레벨이 700레벨 아래일 경우다.

그럼 현성과 이계인 모두 자력 결계의 방해 없이 온전한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계인의 현재 레벨은 689.

스텟의 총합은 3,821이었다.

한데 그런 이계인이 현성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계인이 볼 때 현성의 스텟 총합은 최하 7,000 이상이었다.

그럼 최대 1200레벨, 아무리 전직과 업적으로 스텟이 늘어났다고 해도 최하 1000레벨이어야 한다.

“왜 발동하지 않는 거야!”

이계인이 처절한 외침을 토해 냈다.

“진짜 미쳐 버렸냐?”

현성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계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도 대충 사정은 알 것 같았다.

놈이 무언가 수작을 부리려다가 실패한 것이다.

“그러게 함정을 파려면 잘 팠어야지.”

그 말과 함께 현성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이계인의 오른쪽 다리가 잘려 나갔다.

이계인은 자신의 다리가 잘려 나갔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현성이 무심하게 한 번 더 신혈검을 휘둘렀다.

서걱! 두둑!

이계인의 왼쪽 다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단 네 번의 검격으로 상대를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든 셈이었다.

그간 현성을 엄청나게 고생시킨 것에 비하면 무척이나 손쉬운 제압이었다.

“너한테 물어볼 게 아주 많아.”

현성이 흉흉한 살기가 담긴 눈빛으로 이계인을 노려보았다.

상대의 정체가 무엇인지?

차원 게이트는 왜 생겨나는지?

몬스터들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4차 대격변과 5차 대격변은 언제 찾아오는지?

물어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놈 같은 녀석들이 대량으로 몰려오면 상당히 위험해.’

차라리 초월 등급 몬스터 두세 마리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게 낫지 이렇게 지능이 높은 녀석이 등장하는 건 더 위험하다.

중동에서처럼 고의적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킬 수도 있고 각국의 수장들이나 최상위 플레이어들을 암살할 수도 있다.

중동에서 일어났던 일이 전 세계에서 동시에 벌어졌다면?

‘정말 인류가 멸망해 버렸을 수도 있어.’

아무리 현성이라고 해도 몸은 하나다.

혼자서 전 세계를 지킬 수는 없다.

“도대체 왜 작동하지 않는 거야, 왜…….”

사지를 잃은 이계인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현성도 궁금하기는 했다.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기고만장했던 거야?’

그런 현성의 눈에 이계인의 곁에 있던 아이템 하나가 들어왔다.

책 형태의 아이템이었다.

현성이 그 아이템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현성의 눈앞에 많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초월 등급]

최초로 창조 등급 무기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창조 등급 무기를 손에 넣은 자 - 초월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초월 등급]

최초로 유일 창조 등급 무기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유일 창조 등급 무기를 손에 넣은 자 - 초월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초월 등급]

-최초로 창조 등급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창조 등급 스킬을 손에 넣은 자 - 초월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초월 등급]

-최초로 유일 창조 등급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유일 창조 등급 스킬을 손에 넣은 자 - 초월 등급]

‘어?’

현성은 반쯤 얼이 나가 버렸다.

‘이게 무슨?’

순식간에 최초 업적이 네 개나 떴다.

그것도 무려 초월 등급이었다.

당황한 현성의 눈앞에 아이템 정보가 떠올랐다.

[속박의 서 – 유일 창조 등급]

-플레이어 바스토가 스스로의 몸을 희생시켜 창조한 무기다.

-공격 스킬의 위력을 미약하게 증폭시켜 줍니다.

-액티브 스킬 – 자력 결계 사용 가능.

[자력 결계 – 유일 창조 등급]

-액티브 스킬

-자력 결계를 펼칩니다.

-자력 결계의 영역에 들어온 70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의 체력과 마력을 흡수합니다.

-차력 결계의 영역에 들어온 70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를 속박합니다.

-발동하면 1,020초 동안 유지됩니다.

-한번 발동하면 100일의 쿨타임을 가집니다.

새롭게 손에 넣은 아이템의 등급과 성능을 확인한 현성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대박!’

설마 이렇게 손쉽게 창조 등급 아이템과 스킬을 손에 넣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창조 등급.

현성이 현재까지 파악한 스킬 및 아이템 등급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것도 그냥 창조 등급도 아니고 유일 창조 등급이다.

‘스킬까지 유일 창조 등급이라니.’

현성의 입장에서는 수지맞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이템 하나를 획득해서 초월 등급 업적을 무려 네 개나 손에 넣었으니까 말이다.

‘루시아와 파르티샤에게도 충분히 적용시켜 줄 수 있어.’

초월 등급 칭호의 스텟 증폭치는 무려 모든 스텟 160 증가였다.

창조 등급 칭호인 모든 스텟 320 증가보다는 못했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현성의 경우 운으로 제1차 스× 크××트 보상으로 받은 것을 제외하면 창조 등급 업적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 정도면 초대박이지.’

업적 하나당 총스텟이 8백씩이나 증가했다.

총 네 개의 업적을 얻었으니 3,200이라는 엄청난 수치의 스텟이 증가한 것이다.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역시 고생한 만큼 보상을 주는구나.’

현성은 이계인을 잡기 위해 몇 달 동안 생고생을 했다.

이계인과 술래잡기를 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사냥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데 그간의 노력을 이 아이템 하나로 완벽하게 보상받았다.

‘아이템 자체의 효과도 엄청나게 좋아.’

속박의 서는 창조 등급 무기로 분류되지만, 공격 스킬의 위력을 미약하게 증폭시켜 주는 보잘것없는 효과가 전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진짜는 속박의 서에 담겨 있는 스킬 자력 결계였으니까 말이다.

‘70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를 속박한다라.’

현성은 이제야 일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아차렸다.

아마 적은 현성을 1000레벨 이상의 고레벨 플레이어로 판단했을 것이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현성의 스텟은 정상적으로 레벨 업을 했다면 1000레벨을 훌쩍 넘겨야 달성할 수 있는 수치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현성은 정상적인 코스를 밟아 성장한 평범한 플레이어가 아니다.

1레벨 플레이어.

현성의 레벨은 고작 1에 불과하다.

당연히 자력 결계의 영향을 눈곱만큼도 받지 않았다.

‘나중에 이놈 같은 녀석들이 대규모로 등장할 때 꽤 도움이 되겠어.’

속박의 서를 잘만 사용하면 현성보다 강한 플레이어들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몬스터한테 적용할 수 없다는 게 살짝 아쉽기는 한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플레이어 한정이라고 해도 스스로를 희생해 이런 엄청난 아이템을 창조해 낸 인물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속박의 서를 만들어 낸 당사자가 이 광경을 봤다면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스스로의 육신을 희생해서 만든 아이템이 아군이 아닌 적의 손에 들어갔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자신의 후손을 묵사발로 만들어 놓은 후에 말이다.

“크윽!”

선조가 스스로의 몸을 희생해 만든 아이템을 빼앗긴 이계인이 굴욕 섞인 표정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계인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가장 강력한 적을 제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 일족은 끝장이다.’

스스로의 안위만이 문제가 아니다.

훗날 침공에서 저 인간이 속박의 서를 사용한다면?

‘배신자로 몰려 일족이 몰살당할 수도 있다.’

이계인의 두 눈이 진한 독기로 물들었다.

적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속박의 서는 파괴해야 한다.’

이계인은 죽음을 각오했다.

그와 동시에 습득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발동시키지 않았던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이 사용된 순간 몸속의 마력이 빠르게 역행하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순서가 아니라 역순으로 돌기 시작한 마력은 이계인의 몸에 엄청난 과부하를 걸었다.

“이 미친놈이!”

현성이 그런 이계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현성이라도 타인의 마력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었다.

‘망할 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도 못 쓰는 상황인데.’

설상가상 마력 역장은 아직 펼쳐져 있었다.

타악!

현성이 속박의 서를 챙겨 동굴 밖으로 몸을 날렸다.

툭!

“어?”

그런데 속박의 서가 자력 결계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투명한 막에 걸리기라도 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력 결계는 속박의 서를 매개체로 펼쳐지는 스킬이다.

당연히 자력 결계와 속박의 서는 한 몸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직 자력 결계의 발동 시간이 남아 있었다.

당연히 속박의 서는 자력 결계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망할.’

아공간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억지로 빼내려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지만…….

‘망가질 수도 있어.’

현성으로서는 선택을 해야 했다.

속박의 서를 버려두고 혼자 몸을 피하든지…….

그게 아니라면 충격을 직접 막아 내면서 속박의 서를 지키든지…….

‘이런 아이템을 포기할 수는 없지.’

현성은 속박의 서를 지키는 선택을 했다.

꽈아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엄청난 대폭발이 현성의 전신을 뒤덮었다.

그 이후.

쿠우웅! 쿠웅!

동굴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투둑! 투두둑!

무너진 돌의 잔해들이 꿈틀거렸다.

꽈아앙!

그리고 작은 폭발과 함께 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큰일 날 뻔했네.’

상대가 설마 자폭 스킬을 익히고 있을 줄은 몰랐다.

위력 자체도 상당히 강력했다.

그나마 폭발의 진원지에서 벗어나서 다행이었다.

‘지켰다.’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품 안에 얌전히 자리하고 있는 속박의 서를 바라보았다.

무려 최초로 등장한 창조 등급 무구다.

‘앞으로 잘 써먹어 주마.’

이계인을 심문하지 못한 건 살짝 아쉬웠다.

하지만 그런 현성을 위해 나름의 보상이 주어지기도 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초월 등급]

-최초로 이계의 침입자를 제거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승리자 – 초월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일반 등급]

-최초로 1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위 레벨의 이계의 침입자 플레이어를 쓰러트리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진압자 - 일반 등급]

……중략……

[믿을 수 없는 업적 – 준신화 등급]

-최초로 6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위 레벨의 이계의 침입자 플레이어를 쓰러트리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진압자 - 준신화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준신화 등급]

-단독으로 6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위 레벨의 플레이어를 쓰러트리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반란자 - 준신화 등급]

최초의 반란자는 그러려니 했다.

과거에 받아 본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최초의 승리자와 최초의 진압자라는 칭호는 난생처음 받아 보는 것이었다.

‘아군이 아니라 적으로 침공한 다른 차원의 플레이어라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동일 차원 플레이어를 쓰러트렸을 때 주는 보상과 별도로 침공한 다른 차원의 플레이어라고 추가 업적이 있는 것 같았다.

거기다 현성이 획득한 보상은 업적과 속박의 서만이 아니었다.

무너진 동굴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현성은 호루스의 눈을 통해 이계인이 남긴 스킬북 하나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 스킬북의 등급은 무려 초월 등급이었다.

‘아주 선물 보따리를 줄줄이 풀어 주고 가는구나.’

확실히 차원 게이트를 통해 강한 존재가 나오면 그만큼의 보상이 있었다.

강한 적이 등장하면 인류는 많은 피해를 입는다.

하지만 그 강한 적을 제압하면 인류는 그만큼 큰 보상을 얻는다.

아, 물론 지금처럼 현성이 독식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일단은 돌아가서 좀 쉬자.’

현성도 그간 이계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 만큼 휴식이 간절했다.

찌이익!

현성이 장거리 공간 이동 스크롤을 찢어 한국으로 귀환했다.

* * *

한국으로 돌아온 현성은 바로 쉴 수가 없었다.

일단 중동 사태를 일으킨 적이 지능이 높은 몬스터가 아니라 타 차원의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세계 각국에 알려야 했다.

업적에서도 나타났듯이 적은 몬스터가 아닌 이계의 플레이어였다.

현성이 전달한 소식을 전해 들은 세계 각국의 지도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

-몬스터가 아닌 플레이어였다니?

-거기다 지구를 점령할 목적을 가진 이계의 플레이어다.

-자칫 잘못하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

-대비를 해야 한다.

차원 게이트에서 이계의 몬스터가 아닌 이계의 플레이어가 넘어왔다.

이건 초비상사태였다.

세계 각국의 지도부들은 은연중에 플레이어의 힘과 군대의 힘을 비교해 왔다.

소말리아의 경우처럼 국가 자체가 플레이어에게 전복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플레이어 중에는 극단적인 플레이어 우월주의자들이 존재했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플레이어들을 분열시키고 그들이 정치의 영역에 들어올 수 없도록 철저하게 배제했다.

아, 물론 현성의 등장으로 인해 모든 게 박살 나기는 했다.

현성은 자국의 대통령을 두 번이나 갈아치웠고 마음만 먹으면 타국의 정권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힘과 영향력을 갖춘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같은 지구의 플레이어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과 지구를 점령할 목적을 가진 이계의 플레이어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그 무게감 자체가 달랐다.

이계에서 지구로 넘어온 몬스터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흉포한 존재지만…….

이계에서 지구로 넘어온 플레이어는 인류 이상의 힘과 지식을 갖추고 있는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세계 각국이 이계의 플레이어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을 무렵…….

“하하하하!”

현성은 태연하게 웹소설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간의 노고를 보상이라도 받을 작정인지 현성은 푹 쉬었다.

웹소설이나 웹툰을 보고 뒹굴거렸고, 그간 나온 드라마나 영화를 정주행했다.

‘사람이 스트레스도 풀고 살아야지.’

이계인을 쫓아다니던 시간은 현성에게도 악몽 같았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고 편하게 밥도 먹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달칵!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현성의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루시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넌 언제까지 집에서 빈둥거릴 거야? 던전으로 사냥 안 가냐?”

“아직 일주일밖에 안 됐거든.”

누나 최현지의 물음에 현성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언제까지 쉴 생각인데?”

“글쎄? 대충 한 달 정도?”

“그 백수 짓을 3주나 더 하겠다고?”

누나 최현지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만해라. 현성이도 오랜만에 쉬는 건데.”

어머니가 현성의 편을 들으며 말했다.

어머니가 나서자 누나 최현지가 입술을 삐죽이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좀 오래 쉬기는 했지.’

지난 일주일 동안 던전 출입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제 슬슬 움직이기는 해야지.’

아직 클리어해야 할 한국의 던전들이 많았다.

또 아공간에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에게도 마력을 보충해 줘야 했다.

‘파트리샤의 차원도 들러야 하고.’

루시아는 속박의 서를 통해 업적을 획득했다.

당연히 현성처럼 엄청난 스텟을 선물로 받았다.

이제는 그 축복을 파르티샤에게도 내려 줘야 할 때였다.

현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아이템을 착용한 뒤 파르티샤에게 자신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고용주 파르티샤 님이 용병 최현성 님의 고용을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현성은 곧바로 예를 눌렀다.

화악!

밝은 빛무리와 함께 현성의 모습이 지구에서 말끔하게 사라졌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