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권. 술래잡기 (133/225)

┃술래잡기

‘망할.’

신화 등급 은신 스킬까지 구입했지만 현성은 결국 놈을 잡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작은 실마리는 얻었다.

‘아직 완전히 놓친 건 아니야.’

분탕질을 치는 존재의 마력 파장을 확실하게 확인했다.

터키같이 이미 분탕질을 친 곳에서 마력의 파장을 추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완전히 말끔한 백지라면?

‘얼마든지 추적이 가능하지.’

물론 지구는 넓다.

놈이 어디서 다시 모습을 드러낼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간의 동선을 보면 놈의 이동 거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최대한 인간의 눈을 피해서 움직이고 있어.’

비행기나 배를 이용해 국경을 넘어가는 경우 마력 탐지는 물론 신분 검사 또한 상당히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아마 도보나 스킬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서 일을 벌일 거야.’

당분간 조금 귀찮아질 것 같았다.

수색해야 하는 범위가 상당히 넓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놈을 잡으려면 그 정도 귀찮음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했다.

* * *

‘겨우 따돌렸다.’

이계인의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렸다.

원래부터 정면으로 붙어도 자신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한데 그간 권속들을 만드느라 많은 레벨과 스텟을 희생했다.

만약 잡혔다면?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계획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최대한 조심해서 움직여야 한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현성이라는 적의 마력이 말끔하게 사라졌다는 것이다.

‘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한 게 아니라면…….’

은신 스킬을 사용한 게 확실했다.

‘더 위험해졌어.’

그동안은 현성이 모습을 드러내면 미리 존재를 파악하고 몸을 피할 수 있었다.

한데 앞으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더 빨리 레벨과 스텟을 낮춰야 하는데.’

계획한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레벨을 700레벨까지는 낮춰야 했다.

‘최현성과 루시아만 제거하면 된다.’

그 둘만 제거하면?

700레벨의 스텟과 수많은 권속만으로도 충분히 지구 정복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가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것 말고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하지만…….

‘망할!’

이계인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지난 일주일간 현성과 이계인은 치열한 술래잡기 놀이를 했다.

목표를 잡지 못하는 술래의 입장도 답답하기는 하다.

하지만 술래에게 쫓겨 다니는 목표물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걸 넘어서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왜?

이 숨바꼭질이 끝나면 목표는 술래에게 죽는다.

‘저놈은 할 일이 그렇게 없나?’

이계인은 현성이라는 존재에 대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아니, 막대한 명예, 부, 권력, 무력을 가졌으면 좀 방탕한 생활도 하고 게으르게 퍼질러져서 놀기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다른 권력자들은 잘만 그런다.

한데 이 현성이라는 놈은 너무 성실하다.

자기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 가며 이계인의 흔적을 추적하고 있었다.

‘왜 직접 움직이는 거야?’

현성이 아닌 다른 추적자라면 얼마든지 따돌릴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현성 이놈은 절대 자신의 일을 다른 누군가에게 미루지 않았다.

‘작업 속도가 너무 느려.’

자신의 뒤를 추적하는 현성을 피해 움직이다 보니 작업이 너무 더디게 진행되었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이계인이 이를 악물었다.

현성이 이기든 자신이 이기든 결판이 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 * *

‘음.’

현성이 새로운 마력의 흔적을 찾아 움직였다.

놈이 움직이는 동선은 주로 던전이었다.

현성은 놈의 흔적이 발견된 던전으로 직접 들어갔다.

그 후 던전 안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를 말끔하게 쓸어버렸다.

‘이렇게 하면 무슨 수작을 부려 놨든 무용지물이 되지.’

현성은 이계인의 흔적을 추적하며 던전을 청소했다.

덕분에 나름 포인트도 올리고 아이템도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어라?’

이계인의 흔적이 바다로 향했다.

현성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설마 수중 차원 게이트를 노리는 건가?’

수중 차원 게이트는 인류의 관리 밖에 있다.

그 많은 수중 차원 게이트를 던전화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류는 바다 자체를 거대한 던전 삼아 사냥에 열중했다.

쉽게 말해 해안가에 플레이어들이 진을 치고 바다로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한다는 뜻이었다.

‘물속이라고 못 쫓아갈 줄 아냐.’

현성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일단 청소부터.’

콰콰콰콰콰콰!

현성이 워터 브레스를 이용해 주변 몬스터들의 씨를 말렸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수중 차원 게이트로 들어가 내부에 있는 몬스터도 씨를 말렸다.

그 후 차근차근 마력의 파장을 따라 추적을 이어 나갔다.

* * *

이계인은 바다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푸른 비늘을 가진 파충류.

물속을 누비며 해양 몬스터들을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었고 그 후에는 사방으로 흩뿌렸다.

또 무의미하게 수중 차원 게이트에 들어가 흔적을 남기거나 권속으로 만들지 않은 해양 몬스터들의 심령을 지배해 사방으로 흩뿌리기도 했다.

현성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권속이 한 마리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행동이었다.

‘지독한 놈.’

자신을 죽이기 전까지는 절대 멈추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추적의 고삐를 조여 오고 있었다.

이런저런 방법을 써서 자신을 추적하는 현성이 좀 더 많은 수고를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는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초월 등급 스킬로 추정되는 강력한 공격 수단을 이용해 한 번에 수천 마리의 해양 몬스터들을 쓸어버린다.

차원 게이트 내부에 존재하는 해양 몬스터들도 그 스킬을 사용해 순식간에 정리해 버렸다.

‘놈을 잠시라도 떼어 놔야 하는데.’

그러기 위한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이계인에게는 자신을 도와줄 조력자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슈욱!

이계인이 수중 차원 게이트로 진입했다.

또 장난질을 쳐 현성의 추적을 늦출 생각이었다.

‘어?’

수중 차원 게이트 내부로 진입한 이계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르르르!

거대한 덩치의 레비아탄 한 마리가 이계인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화 등급인가?’

전설 등급 레비아탄보다 월등히 큰 덩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대한 마력까지.

‘기회다.’

이계인이 거대한 레비아탄에게 다가갔다.

-크아아아아앙!

거대한 레비아탄이 이계인을 향해 성난 포효를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몬스터의 입장에서는 지구의 플레이어든 타 차원의 플레이어든 동일한 먹잇감일 뿐이었다.

콰직!

이계인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레비아탄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게 시작이었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이계인이 온갖 스킬을 총동원해 신화 등급 레비아탄을 두들겨 팼다.

그와 동시에 이계인의 두 눈에서 마안 스킬이 발현되었다.

-캬아아아앙!

레비아탄은 자신이 신화 등급 몬스터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쉽게 심령을 제압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전투의 추가 기울어질수록 레비아탄의 눈에 서려 있던 흉성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꽈아앙!

-끼이잉!

레비아탄의 입에서 사나운 포효가 아닌 자지러지는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나중에 가서는 공격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낑낑거리기만 했다.

‘이번에는 꽤 많은 투자를 해야겠어.’

이계인이 레비아탄에게 자신의 오른팔을 내밀었다.

‘먹어라.’

이계인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안이 빛을 발하며 레베아탄의 심령을 제압했다.

콰직!

레비아탄이 명령대로 입을 쩍 벌려 이계인의 오른팔을 물어뜯었다.

꿀꺽!

그 후에는 이계인의 오른팔을 씹지도 않고 삼켰다.

레비아탄이 먹어 치운 이계인의 오른팔이 빠른 속도로 분해되었다.

피와 살로 변한 이계인의 오른팔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레비아탄의 체내에 흡수되었다.

‘나에게 복종해라.’

이계인의 마안이 점점 더 진해졌다.

그 순간 레비아탄의 눈빛이 주인을 바라보는 강아지처럼 온순하게 바뀌었다.

-크르르릉.

이계인의 권속으로 거듭난 거대한 레비아탄이 그르렁거리며 주인에게 애교를 피웠다.

‘가라.’

이계인의 명령에 레비아탄이 수중 차원 게이트를 빠져나가 빠른 속도로 바다를 가로지르며 모습을 감췄다.

* * *

‘이 자식은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몬스터를 조종하는 거야?’

현성 역시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는 신화 등급 스킬 용왕의 지배력이 있었다.

용종에 한해서이기는 했지만 하위 등급의 몬스터를 지배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소모되는 마력이 너무 컸다.

쉽게 말해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스킬이라는 뜻이었다.

한데 이계인은 거의 제약이 없다는 듯이 하위 등급 몬스터들을 지배해 조종했다.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는 초월 등급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현성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사기잖아.’

아무리 초월 등급 스킬의 효율이 좋다고 해도 그 정도 숫자의 몬스터들을 조종하려면 현성보다 월등히 많은 마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럼 또 말이 이상해진다.

‘그럼 굳이 나를 피해서 도망칠 필요가 없잖아.’

초월 등급 스킬이 있다면 신화 등급 스킬도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방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도망칠 필요가 없다.

현성과 정면 대결을 해서 이기면 되니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이계인이 피와 살 그리고 레벨과 스텟을 희생해 권속을 늘린다는 것을 모르는 현성으로서는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의문이었다.

‘어?’

그때 강대한 마력을 가진 몬스터가 새롭게 등장했다.

‘도대체 뭐야?’

현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루시아에게 맡겨?’

혼자서는 살짝 불안했다.

무려 신화 등급 몬스터로 추정되는 개체였으니까 말이다.

-루시아.

현성이 군주의 외침 스킬을 통해 루시아를 불렀다.

-신화 등급 몬스터가 나타났어요. 제가 처리하기 힘드니 이모탈 길드의 최상위 랭커들을 동원해 대신 처리해 주세요.

현성이 그 말과 함께 추적을 이어 나갔다.

* * *

좌아아아악!

거대한 레비아탄이 바다를 가로지르며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슈욱!

거대한 레비아탄 앞에 루시아를 비롯한 이모탈 길드의 최정예 랭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성의 연락을 받고 바로 출동한 것이다.

랭커들 중에는 다 죽어 가는 표정의 사라도 끼어 있었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랭커들을 가장 빠르게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사라의 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뿐이었다.

‘제발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다.’

만약 레이드가 힘들게 돌아가면?

사라는 다시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현성을 불러와야 했다.

사라는 제발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랐다.

한편 소집된 루시아와 랭커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정면을 주시했다.

루시아는 홀로 준신화 등급 몬스터는 거뜬히 쓰러트릴 수 있다.

하지만 신화 등급 몬스터를 상대로는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타 랭커들의 경우 전설 등급이나 준신화 등급 몬스터는 몰라도 신화 등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길 수 있어.’

루시아가 강한 투지를 드러냈다.

혼자라면 모르지만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가 가능한 이모탈 길드의 최정예 랭커들이 함께였다.

수중 레이드라는 점이 살짝 걸리기는 하지만, 그간 루시아와 이모탈 길드의 랭커들은 많은 경험을 쌓았다.

전설 등급 해양 몬스터 사냥에 성공한 만큼 약간의 부족함은 있겠지만 신화 등급 해양 몬스터 사냥도 충분히 가능했다.

‘와라!’

루시아가 도발 스킬을 시전하며 신화 등급 레비아탄의 어그로를 끌었다.

-캬아아아앙!

신화 등급 레비아탄이 루시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신화 등급 레비아탄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레이드는 나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루시아가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고 이모탈 길드 랭커들의 딜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전투가 치열하게 진행되다 보니 어느 정도 피해도 발생했다.

갑옷이 부서지고 하나둘 부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힐러들이 든든히 버텨 준 덕에 레이드 자체에 문제는 없었다.

단 물속에서의 호흡과 서로 간의 대화를 위해 준비해 온 수중 헬멧과 통신 장비들이 강력한 충격파에 의해 모두 파괴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레이드 인원 모두가 애초에 수중 호흡이 가능한 아이템을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중 헬멧을 준비한 이유도 호흡보다는 통신 장비를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서로 간의 의사소통 수단이 파괴되었지만 레이드에 큰 지장은 없었다.

루시아를 비롯한 이모탈 길드 소속 최정예 랭커들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서로 간에 호흡을 정확히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능수능란한 베테랑들이었기 때문이다.

‘어?’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레비아탄이 강력한 마력 역장을 전개한 것이다.

‘레비아탄이 이런 스킬도 쓸 수 있나?’

‘쓸 수 있다고 해도 도대체 왜 쓴 거야? 의미가 없잖아?’

마력 역장은 통신 마법과 공간 이동 마법을 차단한다.

현 상황에서는 쓸데없는 마력 낭비에 불과한 것이다.

그때였다.

슈욱!

쩍 벌어진 레비아탄의 입에서 난생처음 보는 종의 외팔이 몬스터가 등장했다.

* * *

‘걸려들었군.’

이계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레비아탄의 입속에 몸을 숨겼었다.

현성이 직접 왔다면 이계인의 도박은 실패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계인의 예상대로 현성은 직접 오는 대신 지구의 최상위 랭커들을 소환해 레비아탄을 상대하게 했다.

‘최대한 많이 죽여야 한다.’

루시아를 비롯해 지구의 최상위 랭커들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였다.

좌아아아악!

이계인이 수계 공격 스킬을 시전해 후방의 힐러들을 노렸다.

탱커들이 몸을 날려 공격을 막으려 했다.

-캬아아아앙!

하지만 그 순간 레비아탄이 꼬리를 휘둘러 탱커들을 후려쳤다.

공격을 당하게 된 힐러들이 재빨리 방어 스킬을 시전했다.

하지만…….

꽈아아아앙!

이계인이 날린 수계 공격 스킬이 힐러들의 방어 스킬을 가볍게 박살 내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힐러들의 절반가량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치료 스킬을 받아 몸을 회복할 틈도 없이 그대로 녹아내린 것이다.

‘저 괴물은 뭐야?’

‘너무 강해.’

‘어떻게 레비아탄을 조종하는 거지?’

랭커들이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저놈을 막아야 해.’

위기감을 느낀 루시아가 이계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계인은 루시아를 피해 최상위 랭커들을 공격했다.

레비아탄 역시 이계인의 공격에 호응해 거칠게 날뛰며 루시아와 랭커들을 압박했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이계인이 공격 스킬을 시전할 때마다 지구 최고의 실력을 가진 최상위 랭커들이 너무도 허무하게 죽어 나갔다.

루시아가 사력을 다해 이계인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계인에게는 도발 스킬 자체가 먹히지 않았다.

탱커의 생명은 도발 스킬이다.

도발 스킬이 먹히지 않으면?

힐러가 가장 먼저 죽고 그 뒤에 원거리 딜러들과 근거리 딜러들이 몰살당한다.

레이드의 기본 구성이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루시아와 랭커들의 전력은 신화 등급 레비아탄을 약간 앞서는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규격 외의 강자가 끼어들어 난동을 부리니 일방적으로 쓸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랭커들이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루시아는 끈덕지게 이계인에게 달라붙으며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이계인의 방어는 너무 탄탄했다.

탱커 계열인 루시아의 공격을 끈덕지게 버티며 랭커들을 학살했다.

그때였다.

콰콰콰콰콰콰!

멀리서부터 강력한 마력을 품은 워터 브레스가 날아왔다.

꽈아아아앙!

그리고 그대로 신화 등급 레비아탄의 몸을 꿰뚫었다.

-캬아아아앙!

신화 등급 레비아탄이 고통에 겨운 비명을 토해 냈다.

‘어떻게?’

이계인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모든 계획은 완벽했다.

통신 장비도 파괴했고 마력 역장도 설치했다.

물론 현성이 나타날 거라는 사실은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현성의 등장이 너무 빨랐다는 점이다.

이계인이 재빨리 마력 역장을 해제했다.

슈욱!

그리고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황급히 몸을 피했다.

* * *

‘이 빌어먹을 놈.’

현성이 이를 빠득빠득 갈며 바다를 가로질렀다.

‘마력 역장이 사라졌다.’

마력 역장이 소멸된 것을 확인한 현성이 곧바로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캬아아아앙!

몸이 꿰뚫린 신화 등급 레비아탄이 거칠게 날뛰며 랭커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워터 브레스.’

콰콰콰콰콰콰! 꽈아아앙!

강력한 위력의 워터 브레스가 신화 등급 레비아탄의 머리를 강타했다.

신화 등급답게 일격에 즉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턱이 박살 나고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푸욱!

현성이 용혈검을 찔러 넣어 신화 등급 레비아탄의 숨통을 끊었다.

‘절대 놓치지 않는다.’

레비아탄의 숨통을 끊은 현성이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이계인의 뒤를 추적했다.

현성은 방금 전까지 이계인의 마력 파장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력의 파장이 상당히 희미해지더니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현성은 갑자기 사라진 이계인의 마력 파장 때문에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다.

그러다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수색을 했고 그 결과 희미한 마력의 파장이 신화 등급 레비아탄의 이동 경로를 따라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현성은 그제서야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후 황급히 루시아로 위치가 지정된 장거리 공간 이동 스크롤을 찢었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마력 역장 때문에 장거리 공간 이동 스크롤이 무효화된 것이다.

현성은 레비아탄의 이동 경로를 따라 공간 이동 스킬을 연달아 시전했다.

그러면서 통신 장비를 통해 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 사용이 가능한 사라를 애타게 불렀다.

하지만 아무리 불러 봐도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현성의 마음이 점점 초조해졌다.

현성과 휘하 플레이어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현성이 열심히 이동하고 있을 무렵 휘하 신하들의 죽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현성이 도착할 즘에는 이미 루시아를 제외한 다른 플레이어들은 모두 전멸했을 수도 있었다.

이동하는 와중에도 메시지를 통해 계속해서 휘하 신하들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그때 사라가 현성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성이 황급히 사라의 손을 붙잡았고 마력 역장이 펼쳐진 끝자락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사라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사라는 비전투 요원이다.

지구 어느 곳이라도 갈 수 있는 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을 보유했지만, 신화 등급 레비아탄 레이드에 참여할 실력은 되지 못했다.

당연히 사라는 멀리서 신화 등급 레비아탄 레이드 상황을 지켜봤다.

그 후 마력 역장이 펼쳐지고 아군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자 사력을 다해 헤엄을 쳐서 마력 역장이 펼쳐진 지역을 벗어나 현성에게로 공간 이동을 했다.

그 덕분에 현성은 이계인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사건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슈욱! 슈욱!

공간 이동 스킬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신안이 마력의 파장을 확인하고 그곳으로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한다.

하지만 놈은 이미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자리를 뜬 후였다.

그럼 현성은 다시 신안으로 마력의 파장이 알려 주는 길을 따라 공간 이동 스킬을 시전했다.

‘절대 안 놓친다.’

놈은 상당히 약았다.

또 속임수를 쓸 정도로 지능도 높다.

여기서 놓친다면 지금까지 입었던 피해보다 더 큰 피해를 볼 확률이 농후했다.

* * *

‘얼마 죽이지도 못했는데.’

현성의 출현으로 갑자기 도망치게 된 이계인은 억울했다.

팔 하나를 희생했다.

막대한 레벨과 스텟도 투자했다.

그렇게 엄청난 투자를 해서 만든 권속 레비아탄을 너무나도 허무하게 잃었다.

어디 그뿐인가?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며 만든 함정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많은 것을 희생한 이계인으로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였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따라잡힌다.’

최대한 혼선을 주며 추적을 따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전과 달리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현성이 예상보다 너무 빨리 도착해 미리 도주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어쩔 수 없다.’

레벨과 스텟을 소모하는 대신 많은 국가에 최대한 큰 피해를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작전은 실패했다.

중동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터키처럼 강행한다고 해도 큰 피해를 주기 힘든 상황이었다.

‘아깝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다.’

이계인이 아공간을 열었다.

-크르르르.

아공간 안에서 이계인과 비슷한 체구의 해양 몬스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먹어라.’

이계인이 몬스터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 줬다.

우적! 우적!

몬스터가 이계인의 몸을 절반 가까이 먹어 치웠다.

‘막아라.’

지시를 내린 이계인이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몸을 피했다.

잠시 후.

마력의 파장을 추적해 온 현성이 이계인이 사라진 장소에 도착했다.

-캬아아아앙!

이계인의 피와 살을 대량으로 먹어 치운 몬스터가 사나운 흉성을 터트리며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이건 뭐야?’

처음에는 자신이 쫓던 목표라고 생각했다.

외형과 마력의 파장이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호루스의 눈은 눈앞의 존재를 몬스터로 규정하고 있었다.

‘워터 브레스.’

콰콰콰콰콰콰!

현성이 워터 브레스 스킬을 사용했다.

슈욱!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몬스터는 거구였던 레비아탄과 달리 상당히 민첩했다.

워터 브레스 스킬을 피한 몬스터가 현성을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현성이 신혈검을 뽑아 들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바닷속에서 연달아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귀찮게 하네.’

현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나 있는 이 인간형 해양 몬스터는 상당히 재빨랐다.

또 레벨이 꽤 높은지 전투력이 꽤 높았다.

‘시간이 없어.’

파지지지직!

현성이 전력으로 흑뢰신의 숨결을 사용했다.

강력한 칠흑빛 뇌전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캬아아아앙!

몬스터가 괴성을 터트리며 괴로워했다.

현성은 계속해서 흑뢰신의 숨결을 사용했다.

바닷속이라는 환경 때문에 마력과 체력 낭비가 심하기는 했지만 현성에게는 시간이 더 중요했다.

‘어차피 바다의 제왕 스킬이 있으니까.’

물속에서 체력과 마력 회복 속도가 40% 상승하는 바다의 제왕 스킬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흑뢰신의 숨결에 적중당한 몬스터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졌다.

마비 옵션이 발동한 것이다.

-크르르르르!

서걱!

현성이 낮게 으르렁거리며 저항하는 몬스터를 향해 신혈검을 휘둘렀다.

몬스터의 몸이 둘로 갈라졌다.

‘끝났다.’

현성이 신안 스킬을 사용해 마력의 파장을 확인하려고 한 그 순간.

꽈아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둘로 나뉜 몬스터의 몸속에 있던 마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뭐야?’

피해는 크지 않았다.

위력 자체도 소리만 요란할 뿐 그리 강하지 않았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계인이 가지고 있던 마력의 파장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는 점이었다.

‘이런 망할.’

애초부터 이 몬스터와 이계인은 외형도 상당히 닮았고 마력의 파장도 꽤나 비슷했다.

하지만 호루스의 눈을 이용해 충분히 구분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폭발한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지만 몬스터의 몸속에서 폭발한 마력은 이계인의 마력과 완전히 동일했다.

‘지가 복제 양 돌리야 뭐야?’

현성이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건 이계인으로서도 자기 육체의 절반을 희생하는 큰 손해를 감수하고 사용한 고육지책이었다.

이계인이 몬스터에게 먹인 피와 살은 마력을 보존한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몬스터의 죽음과 함께 폭발한 것이다.

도마뱀은 위기를 느끼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친다.

꼬리가 미끼가 되는 것이다.

이계인은 꼬리 대신 자기 육신의 절반을 희생해 만든 몬스터를 미끼로 삼아 현성을 따돌리고자 했다.

‘이런다고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냐?’

현성이 연속적으로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하며 정신없이 신안 스킬을 사용했다.

폭발 장소에는 동일한 마력의 파장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

당연히 본체가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하고 난 후 남은 마력의 파장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새로운 마력 파장을 찾으면 그만이야.’

이계인의 공간 이동 스킬의 이동 거리는 현성보다 약간 부족하다.

‘폭발 반경을 중심으로 싹 다 뒤져 주지.’

이계인이 도주할 수 있는 최대 거리부터 역순으로 신안을 발동하며 조사하면?

충분히 새로운 마력의 파장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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