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권. 강자 책임론 (122/225)

┃강자 책임론

-대국이 소국에게 굽실거리는 꼴을 더는 못 보겠다.

-과거의 강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중국이 언제까지 빵즈 놈들 눈치를 봐야 하냐?

-한국 기업들이 중국 경제를 좀먹고 있다.

-한국은 당장 중국의 영토인 북한 땅을 반환하라!

중국의 반한 열풍이 점점 더 강해졌다.

거기다 멸망한 북한의 영토가 북한 멸망 당시 중국으로 피신했던 북한 주민들과 조선족들의 땅이라며 어서 반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었다.

-미국과 러시아도 한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맞다. 지금은 숙여야 할 때다.

-이무기 사태 벌써 잊었냐? 최현성 플레이어의 도움이 없으면 몬스터들의 침공을 막기 힘들다.

-다 떠나서 한국이 차원 게이트 사전 감지 장치 안 주면 어쩌려고 그러냐?

중국의 여론이 둘로 분열되었다.

물론 사건의 당사자인 한국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한국은 중국 내부 여론이 어떻든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중국이 한국을 어찌할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한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중국에서 시작된 반한 운동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이다.

-노란 원숭이들이 맞는 말을 했다.

-언제까지 하등한 동양인의 눈치를 봐야 하냐?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끼어들었다.

-인종차별은 자제해라.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중국인들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동의한다. 한국이 너무 독불장군처럼 나가고 있다.

-플레이어가 인류의 평화를 위해 몬스터를 잡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데 최현성 플레이어는 항상 과도한 대가를 받아 간다.

-차원 게이트 사전 감시 장치가 개발되면 세계 각국이 합의해 공정하게 분배해야 한다. 왜 최현성 플레이어가 독단으로 그런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나?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닌 이들도 가세했다.

미국, 러시아, 인도,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등.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반한 감정이 커졌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현성을 적대시하는 감정이 커졌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플레이어 양성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또 빈곤국에 막대한 기부를 하고 있는 건 아냐?

-최현성 플레이어는 대가로 받아 간 자금을 세계 평화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소말리아 사태 보면 모르냐? 소말리아는 최현성 플레이어가 아니었으면 나라가 망할 뻔했다. 어쩌면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최현성 플레이어가 소말리아나 아프리카 국가에 과도한 대가를 받아 갔냐?

-땡전 한 푼 안 받아 갔다. 오히려 대가는커녕 막대한 구호물자를 보냈다. 이게 최현성 플레이어의 인격이다.

-차원 게이트 사전 감시 장치도 최현성 플레이어가 아이템 제공해서 연구 중인 거다. 최현성 플레이어 아니었으면 시작도 못 했어.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놈들이 꼭 있다니까.

전 세계적으로 친최현성파와 반최현성파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물론 본격적인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전 세계 네티즌들의 인터넷 설전에 가까웠다.

문제는 이에 대처하는 각국 정부의 태도였다.

* * *

미국 워싱턴 D.C에 자리한 백악관.

“이번 일을 좀 더 키워 보게.”

윌슨 대통령의 지시에 CIA 국장이 화들짝 놀랐다.

“여론 조작을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걸리면 끝장이다.

최현성이 나설 필요도 없다.

최현성의 지지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반최현성파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고는 하지만, 미국인의 절대 다수는 친최현성파였다.

또 최현성 플레이어를 싫어하는 이들도 그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최현성 플레이어를 적대하라는 게 아니네. 세계 최고 플레이어로서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지 않나?”

반최현성파 중에는 인종차별주의자와 과격론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바보들만으로 반최현성파가 구성되어 있는 건 아니다.

나름 논리적으로 최현성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게 바로 세계 최고 플레이어로서의 의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단순히 영화 대사로만 생각할 말이 아니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영향력을 줄이고 그의 목에 족쇄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네.”

재력, 권력, 명예.

인간이 얻고자하는 욕망의 단계다.

최현성 플레이어도 인간인 이상 거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명예욕을 자극해 보게.”

“알겠습니다. 해외공작팀도 가동시킬까요?”

미국 국내 여론만이 아니라 전 세계 여론을 움직인다면,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더 강한 압박이 될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네. 어느 정도 조율이 되었으니까.”

윌슨 대통령의 말을 들은 CIA 국장은 직감했다.

이건 미국의 단독 결정이 아니다.

‘하긴, 최현성 플레이어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걸 좋아할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겠지.’

한국은 최현성 플레이어의 조국이다.

일본은 최현성 플레이어의 종속국이다.

그 두 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는?

굳이 최현성 플레이어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걸 반길 필요가 없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도움의 대가는 작으면 작을수록 좋았다.

아예 아무런 대가도 없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오히려 족쇄를 채워 필요할 때 강제로 부려 먹을 수 있다면?

세계 각국 정부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 * *

‘이거 뭔가 이상한데.’

현성은 전 세계에서 흐르는 여론의 기류에 의아함을 느꼈다.

‘갑자기 이럴 리가 없잖아.’

사실 중국에서 처음 문제가 시작되었을 때도 약간 의아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에는 중화사상에 빠져 있는 국민들이 많았으니까 말이다.

또 오래전부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저지른 전적도 많았다.

한데 그런 중국의 여론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아메리카와 유럽이 특히 더 시끄러워.’

물론 요지는 달랐다.

중국인들은 대국이 소국에게 끌려다니는 사실에 불만을 품었다.

아메리카와 유럽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동양인 비하와 이상주의자들의 강자로서의 책임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결론은 같다.

양쪽 모두 현성의 영향력을 줄이고 족쇄를 채우려고 하고 있었다.

‘우연이 아닌 것 같은데.’

아메리카와 유럽에 속한 국가들의 대응도 뭔가 미적지근했다.

언론 역시 국민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척하면서 은연중에 현성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이것들이 아주 작정을 했다 이거지.’

세계인들의 여론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현성을 압박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의 허황된 주장이나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공격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상주의자들의 강자 책임론은 상당히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었다.

현성을 지지하는 이들 역시 이상주의자들의 강자 책임론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표하고 있었다.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존재야.’

현성은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으로 많은 부를 얻었다.

하지만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고 엄청난 금액을 기부했다.

한데도 부족하다고 외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았다.

또 각국의 정부가 그런 이들을 은연중에 부추기고 있었다.

‘무시해?’

그래도 상관은 없다.

이미지 타격은 있겠지만 실질적인 타격은 없다.

‘더 많은 기부를 해?’

그래도 상관없다.

돈은 많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많은 돈을 기부해도 현성에 대한 공격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강자 책임론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현성의 무력이었다.

강자 책임론을 주장하는 이들과 그들을 은연중 지지하는 각국의 정부는 현성이 아무런 대가 없이 세계 평화를 위해 싸워 주기를 원했다.

아니, 명예라는 멍에를 씌워 현성을 자신들의 뜻대로 부리고 싶어 했다.

‘그대로 움직여 줄 수는 없지.’

현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자발적으로 하는 건 좋다.

하지만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끌려다니는 건 딱 질색이었다.

현성이 이모탈 길드 본부로 향했다.

그리고 강선영 길드장과의 상의 후 몇 군데에 전화를 돌렸다.

일주일 후 이모탈 길드에서 새로운 국제연합 기구 설립을 선언했다.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

이모탈 길드가 새롭게 만든 국제연합 기구였다.

사실 아시아 기구 설립은 그 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전 세계를 아우르는 타 국제기구보다는 한 수 아래 급수로 취급되어 왔다.

한데 상황이 달라졌다.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를 만든 이가 현성이었기 때문이다.

현성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인들이 서로 힘을 합쳐 차원 게이트와 몬스터의 습격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먼저 한국이 가입했다.

두 번째로는 일본이 가입했다.

세 번째로는 중국이 가입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예상한 결과였다.

한국과 일본은 현성의 영향력이 그 어느 나라보다 강한 곳이었으니까 말이다.

중국 역시 내부의 반대 여론이 있기는 했지만 국가 부주석이자 실권자인 마분석이 친현성파이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한데 여기에 의외의 국가들이 참여를 선언했다.

바로 러시아와 인도였다.

* * *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백악관에서 윌슨 대통령이 노성을 터트렸다.

임기 동안 수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항상 침착하게 대응하고 결코 흥분하지 않던 윌슨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미리 최현성 플레이어와 어느 정도 협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의 핵심적인 의사 규칙은?”

“아시아에서 발생하는 차원 게이트 생성과 몬스터 웨이브 발발 사태에 대해 최우선적으로 협력한다입니다.”

“최우선적으로?”

“예, 최우선적으로입니다.”

최우선.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상당히 컸다.

“빌어먹을.”

윌슨 대통령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목에 작은 멍에를 씌우려고 했다.

그 멍에는 본인이 벗고 싶다면 얼마든지 자의로 벗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웠다.

한데 최현성 플레이어는 그 작은 멍에조차 거부했다.

‘러시아와 인도가 배신을 했어.’

러시아와 인도도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작은 멍에를 씌우자는 의견에 비밀리에 동의했다.

윌슨 대통령은 러시아와 인도를 믿었다.

왜?

서로 힘을 합쳐서 손해 볼 게 없으니까.

손해를 보는 사람은 오직 현성뿐이었다.

한데 현성이 더 큰 선물을 해 줬다.

최우선적.

이 말은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 소속 국가들을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보다 우선시하겠다는 뜻이다.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 가입 조건은 알아냈나?”

“예, 아시아 국가여야 한다는 걸 제외하면, 국제연합 수호 기구와 완전히 똑같습니다.”

CIA 국장의 말에 윌슨 대통령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국제연합 수호 기구 가입국에게는 가입비와 연회비를 면제해 줬겠군.”

윌슨 대통령의 물음에 CIA 국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보다 먼저 만든 게 국제연합 수호 기구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막대한 가입비를 지불하고 국제연합 수호 기구에 가입했다.

어디 그뿐인가 매년 연회비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이 바로 차원 게이트 생성과 몬스터 웨이브 발발 사태에 대해 상호 협력한다는 조건이다.

사실상 국제연합 수호 기구와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의 설립 목적과 역할은 완전히 동일했다.

단지 상호라는 말이 최우선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최현성 플레이어는 왜 같은 역할을 하는 국제기구를 또 만들었을까?

또 왜 하필 아시아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왜 최우선이라는 단어를 넣었을까?

“협박이군.”

이건 현성의 의지에 따라 국제연합 수호 기구를 버릴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영국이 강하게 항의했다고 합니다.”

“결과는?”

“가입비와 연회비를 모두 되돌려줄 테니 불만 있으면 탈퇴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하하하!”

윌슨 대통령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 터져 나왔다.

“자칫 잘못하면 국제연합 수호 기구가 허수아비가 되겠군.”

가입비와 연회비를 모두 되돌려주겠다.

그러니까 꼬우면 탈퇴해라.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 *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의 가입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국제연합 수호 기구에 가입했던 국가들은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아무런 지출 없이 우선권을 얻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가입하겠습니다.

태국이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에 가입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몽골도 가입하겠습니다.

-베트남도 가입하고 싶습니다.

-우리 필리핀도 꼭 넣어 주십시오.

아시아의 수많은 국가들이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심지어는…….

-우리 이란도 엄연히 아시아에 자리한 국가입니다.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에 가입시켜 주십시오.

-사우디아라비아도 아시아에 있습니다.

-우리 이라크도 있습니다.

서남아시아에 포함된 중동 국가들이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에 가입을 신청했다.

현성은 모두 받아들였다.

그러자 터키도 움직였다.

-우리 터키도 아시아에 속한 국가입니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자리한 터키가 스스로를 아시아 국가라고 선언하며 가입 신청서를 냈다.

현성은 터키도 받아 줬다.

사실 중동 국가들 입장에서는 가입하면 무조건 이득이니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이 소외받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그때 소말리아가 나섰다.

-아프리카 연합 수호 기구를 만들겠다. 아시아처럼 아프리카 국가들도 서로 힘을 합치자.

소말리아가 만든 아프리카 연합 수호 기구의 역할과 가입 조건 자체는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와 동일했다.

물론 최빈국인 소말리아의 도움이 필요한 아프리카 국가는 없었다.

-소말리아는 자기 앞가림이나 해라.

-남의 도움으로 연명하는 주제에 국제기구는 무슨…….

-소말리아는 스스로의 주제 파악이나 해라.

온갖 비아냥이 쏟아졌다.

하지만…….

-아프리카 연합 수호 기구는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와 상호 동맹을 체결했다.

소말리아의 발표 하나에 상황이 뒤집혀 버렸다.

솔직히 바보가 아니라면 소말리아를 움직여 아프리카 연합 수호 기구를 만든 장본인이 누군지 모를 수가 없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뒤에 있는 거겠지.

-그렇겠지. 역시 소말리아가 주제도 모르고 나선 이유가 있었어.

-이건 최현성 플레이어의 뜻이다.

-가입만 하면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와 동일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망설이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태도가 180도 바뀌어 버렸다.

-아프리카 연합 수호 기구에 가입하고 싶습니다.

가장 먼저 이집트가 냉큼 아프리카 연합 수호 기구에 가입했다.

-콩고민주공화국도 가입하고 싶습니다.

-우리 남아프리카공화국도 꼭 가입시켜 주십시오.

-우리 모로코도…….

-알제리도…….

아프리카 국가들의 가입 신청서가 쏟아졌다.

그 결과 아프리카에 있는 모든 국가가 아프리카 연합 수호 기구에 가입하게 되었다.

겉으로만 보면 변한 건 없다.

세계 각국은 국제연합 수호 기구에 가입해 있었고 사실상 현성의 보호 아래 있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달랐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확실히 현성의 보호 아래 있었지만, 아메리카와 유럽은 그 미래가 불투명했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아메리카와 유럽 손보려는 듯.

-나도 같은 생각임.

-어쩌면 국제연합 수호 기구를 해체할지도 모름.

-영국한테는 가입비랑 연회비 환불해 줄 테니까 꼬우면 나가라고 했다는데?

-이거 100%다. 이건 최현성 플레이어가 아메리카와 유럽을 버린 거다.

-난 애초부터 아메리카 놈들이랑 유럽 놈들 맘에 안 들었음. 도움받는 주제에 너무 뻔뻔해.

아시아 및 아프리카에 속한 국가의 국민들은 여유로웠다.

하지만 아메리카와 유럽에 속한 국가의 국민들은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국제연합 수호 기구 해체한다는데 진짜임?

-진짜일 수도 있음.

-최현성 플레이어 너무한 거 아님?

-너무한 건 맞음. 근데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음?

-니들이 할 수 있는 건 징징거리는 것뿐이지.

-그러게 그냥 잘해 줄 때 입 다물고 있지 강자 책임론이니 뭐니 주장하면서 나대기나 하고.

-강한 힘을 가졌으면 그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다.

-너 미국 놈이지? 미국은 그랬냐?

-미국은 힘자랑하기 바빴지. 사실 이미지 포장을 잘한 거지 사실 다 국익 때문에 한 거임.

-영국을 포함한 유럽 놈들도 마찬가지임. 지금이야 이미지 관리해서 그렇지 몇백 년 전만 해도 완전 개양아치였음.

-맞음. 예전에는 악마 저리 가라 할 정도였음.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임 우리 아프리카를 얼마나 착취하는데.

-정당한 계약이다.

-합법적인 착취겠지.

전 세계 네티즌들이 둘로 갈라져 갑론을박을 벌였다.

하지만 대화가 이어져 가면 갈수록 아메리카와 유럽 국민들의 불안감이 올라갔다.

그때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와 중국의 랴오닝성에 새로운 차원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사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일이었다.

2차 대격변 이후 초기보다 증가 폭이 둔화되었을 뿐이지 차원 게이트는 꾸준히 열렸으니까 말이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열린 차원 게이트에서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한 것이다.

* * *

-캬아아아앙!

다리가 여섯 개 달린 사자 형태의 몬스터가 커다란 포효를 터트리며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학살했다.

몇몇 플레이어 파티가 사자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몰살당했다.

격이 달랐다.

200레벨 후반대의 중레벨 규모의 파티가 어찌할 수 있는 등급의 몬스터가 아니었다.

점점 희생자의 숫자가 늘어났다.

하지만 폴란드 정부는 그리 무능하지 않았다.

차원 게이트가 발발한 순간 최상위 랭커들을 모두 소집시켜 놓은 후였다.

더군다나 바르샤바는 폴란드의 수도.

당연히 폴란드 최고 수준의 최상위 랭커들이 다수 상주하고 있었다.

폴란드 랭커들로 이루어진 파티가 현장에 도착했다.

“화염의 속박!”

화르르륵!

원거리 딜러의 공격이 사자 몬스터의 여섯 개 다리를 꽁꽁 묶어 버렸다.

“실드 스턴!”

꽈아아앙!

탱커의 공격에 사자 몬스터가 휘청거렸다.

그 순간 랭커 파티의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크아아아앙!

사자 몬스터는 격렬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폴란드 최상위 랭커 파티는 이미 과거 전설 등급 몬스터를 한차례 사냥한 전적이 있었다.

당연히 전설 등급 아이템을 습득했고 무장도 마친 상태였다.

더군다나 폴란드의 랭커들은 이모탈 길드 소속이었다.

군주의 깃발 효과로 모든 스텟이 상승했고 그간 열심히 레벨 업을 했다.

그 결과 폴란드 최상위 랭커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을 정도까지 성장했다.

폴란드 랭커들은 단 한 차례도 수세에 몰리지 않고 계속해서 우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 결과.

-캬아아앙!

사자 몬스터의 숨통을 끊을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

“이겼다!”

폴란드 랭커들이 승리의 함성을 터트렸다.

놀랍게도 폴란드 랭커들은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이 전설 등급 몬스터 레이드에 성공했다.

사아아아악!

전설 등급 몬스터의 사체가 분해되며 잔존 마력이 아이템으로 화했다.

폴란드 정부로서는 성공적인 마무리였다.

자력으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했고 그 결과 전설 등급 아이템의 독점이 가능해졌다.

이로써 폴란드 랭커들은 더 강해질 수 있는 발판을 얻었다.

하지만 폴란드 국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 * *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한 몬스터 웨이브로 인한 사상자가 5만 명을 넘었다.

-사망자만 수천 명에 달한다고 하더라.

-난 수만 명이라고 들었는데?

-전에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했을 때는 사상자가 1,200명이고 사망자 숫자도 100명 남짓 아니었음?

-맞음.

-최현성 플레이어의 도움이 있었다면 희생자를 월등히 줄일 수 있었을 거다.

-희생자가 발생한 건 전부 최현성 플레이어의 도움을 받지 못한 무능한 정부 탓이다.

-무슨 개소리냐? 정부는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건 맞음.

-그건 그거대로 문제 아님? 이렇게 피해가 크게 발생했는데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음?

-정부의 외교 능력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님?

-정부의 무능으로 수만에 달하는 국민이 죽었음.

-동의한다. 정부는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를 밝혀라!

-왜 최현성 플레이어는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한 바르샤바에 오지 않고 영웅 등급 몬스터가 등장한 중국 랴오닝성에 간 거냐!

-중국 랴오닝성의 차원 게이트는 인명 피해가 단 1명도 없이 던전화되었다!

-정부는 왜 최현성 플레이어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지 해명하라!

-이게 다 폴란드가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와 아프리카 연합 수호 기구에 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폴란드 국민들이 들고일어났다.

특히 최현성 플레이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했다.

동시에 차원 게이트가 발발했다.

한데 중국은 인명 피해가 제로다.

반대로 폴란드는 인명 피해가 엄청나게 발생했다.

폴란드 국민들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또 최현성 플레이어의 도움만 얻었다면 폴란드도 인명 피해 제로를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폴란드 정부는 억울했다.

전에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했을 때 인명 피해가 적었던 것은 차원 게이트가 열린 장소 덕이 컸다.

인구 밀집도가 낮은 시골과 인구 밀집도가 높은 수도를 동일 선상에서 놓고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5만 명의 사상자와 7천 명의 사망자.

폴란드 정부 입장에서는 수도 한복판에 차원 게이트가 열리고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한 것치고는 상당히 적은 피해였다.

또 현성이 중국 랴오닝성 몬스터 웨이브를 진압한 것은 단순한 우연에 불과했다.

그 당시 현성은 서울에서 호루스의 눈 연구를 돕고 있었다.

그러다 차원 게이트의 생성 조짐을 감지하고 곧바로 중국으로 날아간 것이다.

애초에 폴란드는 지리적인 여건상 그런 우연한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폴란드 정부는 그 사실을 국민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았다.

* * *

‘황당하네.’

현성은 폴란드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보고를 받고 어이가 없었다.

폴란드는 자력으로 문제를 수습했다.

이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한데 비난을 받고 있다.

사실 초창기에 비해 타국에서 현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횟수는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다.

자력으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하고 전리품을 독점해 자국 플레이어들을 강화하고 싶은 정부의 욕망 때문이었다.

현성이 보기에도 그건 옳은 판단이었다.

자국의 안보를 타국도 아니고 타국인 한 명에게 의지한다는 건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세계 각국은 여력이 되는 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자력으로 사냥했고, 그 결과 자국 플레이어 전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또 그게 현실적이기도 했다.

‘부르면 가긴 했겠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는 힘들었겠지만.’

한국과 폴란드는 멀리 떨어져 있다.

미국 정부 소속 플레이어인 사라 같은 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 능력자가 없다면?

현성이 공간 이동 스킬을 연달아 쓰건 비행기를 타건 한국에서 폴란드까지 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장거리 공간 이동 스크롤도 직접 가서 대상을 지정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고.’

일회용으로 사용하기에는 가격도 비싼 편이다.

현성도 초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그래서 시스템 상점을 이 잡듯이 뒤졌다.

하지만 사라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공간과 거리의 제약이 없는 초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북은 찾지 못했다.

물론 신화 등급 스킬북 중에는 비슷한 효과를 내는 스킬북들이 몇 개 있었다.

하지만 사라의 스킬과 비교해 마력 소모와 쿨타임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아마 고유 스킬이겠지.’

사라는 미국이 보유한 고유 스킬 플레이어일 확률이 높았다.

‘내가 폴란드로 갔다면?’

아마 현성이 도착했을 때쯤 폴란드 랭커들이 자력으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처리했을 확률이 높았다.

폴란드 정부로서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아마 중국 랴오닝성에 현성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폴란드 국민들이 이렇게 들고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명 피해가 너무 극단적이야.’

동시에 발발한 차원 게이트.

한쪽은 5만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데 다른 한쪽은 인명 피해가 아예 없었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폴란드 국민들 입장에서는 분노할 만했다.

‘불씨를 더 키워야겠어.’

폴란드 국민들의 불안을 유럽 전역으로 넓힌다.

그리고 바다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도 퍼트린다.

‘냉정한 현실을 알게 해 줘야지.’

아메리카와 유럽 국가들과 현성의 관계는 결코 동등하지 않다.

현성은 아메리카와 유럽 국가들의 도움이 없어도 된다.

하지만…….

아메리카와 유럽 국가들은 현성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그 사실을 아메리카와 유럽 국가 국민들의 뇌리에 제대로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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