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권. 스킬북 광풍 (113/225)

┃스킬북 광풍

이지용 대통령은 결국 현성의 요청을 수락했다.

1천조 원을 받고 다음 정권에게 개목걸이를 걸기로 한 것이다.

‘그게 독약이 될 거다.’

현성의 휘하에 든 인류의 수호신교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보 조직이 활동을 시작했다.

현성은 정보 요원들에게 비약과 함께 첩보에 중요하게 작용할 은신 스킬, 공간 이동 스킬, 사이코 메트리 스킬의 스킬북을 넘겨주었다.

플레이어와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첩보 조직이 작정하고 털면?

‘정부 비리 정도는 순식간에 끝나지.’

정치인들을 휘하로 들여 성실한 일꾼으로 만들 수 없다면?

일본처럼 모조리 물갈이를 해 버리면 된다.

‘물 쓰듯이 써라.’

정치인들이 현성이 빌려준 1천조 원이라는 눈먼 돈에 손을 대는 순간?

그들은 바로 나락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국민 여론도 좋아.’

국민들은 현성이 한성 그룹과 TS 그룹 오너 일가를 벌한 것에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온갖 갑질과 범죄를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다.

대기업 오너 일가는 법 위에 있는 존재였다.

한데 그들에게 제대로 된 정의의 철퇴가 내려졌다.

국민들은 그 이유가 현성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지나치게 강해진 현성의 위상과 권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크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대기업의 끄나풀이라고 비난했다.

현성으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포장도 예쁘게 됐어.’

현성은 정부로부터 개성의 토지를 무상으로 불하받았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걸 유상으로 불하받았다고 생각했다.

현성이 무려 1조 달러를 국가에 빌려줬기 때문이다.

빌리는 것과 주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종종 사람들은 그 둘을 동일시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마이너스 통장이 무서운 이유도 그것이다.

마이너스 통장의 돈은 남에게 빌린 갚아야 하는 돈이다.

하지만 그걸 공돈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뭐, 사실 이자 깎아 준 걸로 치면 완전히 공짜로 받은 것도 아니지. 어차피 회수할 생각도 없고.’

국민들이 정부가 현성에게 1조 달러를 받고 개성 땅을 유상 불하해 줬다고 생각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정치인들에게는 사정이 달랐다.

‘모조리 갈아엎어 주마.’

한국을 손아귀에 넣으면 현성은 동북아시아의 실권을 움켜쥐게 된다.

한국, 중국, 일본.

한중일이라는 불리는 세 개 나라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된다.

‘러시아, 동남아시아, 유럽, 중동, 아메리카, 아프리카.’

직접 현성이 실질적인 지배자가 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 창립하게 될 국제 연합 기구가 그 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구색 갖추기는 천천히 하자.’

개성 땅에 국제 연합 기구의 본부가 지어지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소모될 것이다.

하지만 국제 연합 기구에 가입할 국가들로부터 선금으로 받은 돈이 슬슬 입금되고 있었다.

‘이제 스킬북을 싹쓸이해야지.’

휘하의 플레이어들을 업그레이드할 때가 왔다.

‘바로 시작하자.’

현성은 이모탈 길드를 통해 전 세계의 스킬북의 구입을 지시했다.

이모탈 길드는 전 세계에 수많은 지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세계 각국에서 골고루 스킬북을 구매할 수 있었다.

현성은 무난하게 대량의 스킬북을 확보해 휘하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을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치고 말았다.

“겨우 이게 다라고요?”

현성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강선영 길드장에게 물었다.

“예, 그것도 아주 긍정적으로 판단한 겁니다.”

강선영 길드장의 담담한 대답에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현성이 스킬북 구매를 지시하자 강선영 길드장이 보고서를 만들어 왔다.

보고서에는 투자하는 금액.

구입할 수 있는 스킬북의 등급과 수량이 적혀 있었다.

스킬북 투자에 들어갈 돈은 엄청났다.

그건 당연했다.

현성이 그렇게 지시했으니까.

문제는 그렇게 엄청난 금액을 투자해 구매할 수 있는 스킬북의 수량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영웅 등급 스킬북의 경우 가격이 미친 듯이 올라 있었다.

‘이 정도면 시스템 상점에서 구입하는 게 이득이겠네.’

전에는 시스템 상점에서 판매하는 스킬북의 가격과 지구에서 판매하는 스킬북의 가격이 얼추 비슷했다.

가끔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20%의 수수료를 생각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데 지금은 꽤 심하게 차이가 났다.

지구의 스킬북 가격이 엄청나게 오른 것이다.

“스킬북 가격이 왜 이렇게 오른 거죠?”

현성이 의문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1차적인 이유는 최현성 자문위원장님 때문입니다.”

“제가 원인이라고요? 혹시 전에 스킬북 받았던 것 때문에 그런 건가요?”

하지만 그때 이후로 스킬북 가격이 안정화되고도 남았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게 시발점이었습니다. 문제는 최현성 자문위원장님이 스킬북을 대거 사들인 이후 세계 각국의 정부가 경쟁적으로 스킬북 구매에 뛰어들었다는 겁니다.”

“그건 알고 있지만 그것도 꽤 전이잖아요? 전 세계에서 하루에 생산되는 스킬북이 몇 개인데 그걸 커버 못 해요?”

현성이 스킬북을 원한 이후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강대국을 중심으로 스킬북을 쟁여 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목표치를 채웠을 게 분명했다.

“그게 단기간에 스킬북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습니다. 그래서 스킬북 투기 열풍이 불었습니다.”

“투기 열풍요?”

현성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단단한 몸이라는 일반 등급 스킬의 가격은 원래 원화로 2천만 원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1억이 넘습니다.”

“다섯 배나 올랐네요?”

“예, 그게 일반적인 경우고 극단적으로는 20배나 30배 이상 오른 경우도 있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요?”

“됩니다. 스킬북을 가지고 있으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플레이어는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알아 버렸으니까요.”

가지고 있으면 돈이 된다.

과거 2천만 원을 들여 단단한 몸 스킬북을 구매하던 이들은 건강을 생각하던 부자들이었다.

한데 요즘에는 일반인들도 스킬북 구매에 열을 올렸다.

본인이 익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가격이 오를 게 뻔하니 가지고 있다 되팔아 그 차액을 얻기 위해서다.

몬스터가 창궐하면 플레이어들은 강해지기 위해 더 많은 스킬북을 찾는다.

스킬북의 수요가 올라가는 것이다.

2차 대격변과 수중 차원 게이트의 등장으로 스킬북의 가격이 올라갔다.

그게 투기 열풍으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이건 상당히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스킬북은 인류의 방패인 플레이어들을 강하게 해 줄 열쇠 중 하나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스킬북을 투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인류가 스스로 자멸의 길로 굴러 들어가는 꼴이었다.

“투기 열풍이 분 이후로 스킬북 가격이 끝도 모르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마치 과거 있었던 튤립 광풍과 비트코인 광풍처럼 말입니다.”

“하!”

현성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충분히 상황을 이해했다.

은행에 적금을 넣으면 2~3%의 이자를 얻는다.

주식에 투자를 하면?

막말로 돈을 벌 확률보다 까먹을 확률이 더 높다.

부동산?

2차 대격변 이후 차원 게이트가 추가로 열리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하락세를 겪고 있다.

안정적인 투자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전 세계적으로 스킬북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차익을 노린 투자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대량의 스킬북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일반인들까지 가세했다.

심지어 십시일반으로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스킬북을 대신 구매해 주는 회사까지 생겼다.

일반인들의 경우 스킬북 구매 계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억 단위나 수십, 수백억 단위의 스킬북을 수백 명에서 수천, 수만 명이 돈을 모아 구매하는 것이다.

몇천, 몇억을 일반인들이 턱턱 투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 원 단위부터 시작해 십만 원이나 백만 원 단위부터 투자가 가능하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스킬북 물량이 어마어마하겠군요.”

스킬북은 현물이다.

개인이 구매를 했든 십시일반으로 돈을 투자해 구매를 했든 일단 현물이 있어야 한다.

플레이어들이 몬스터를 사냥해 얻어 내는 스킬북은 플레이어가 해당 스킬북을 익힘으로써 소비된다.

중간에 중복되는 스킬북이 나오거나 원치 않는 계열의 스킬북이 나오면 그걸 팔아 원하는 스킬북을 구매하면 된다.

한데 그 창구가 꽉 막혀 버렸다.

스킬북이 팔려 나가기만 할 뿐 매물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이거 문제가 심각하네요.”

스킬북은 레벨업과 함께 플레이어가 가장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이다.

한데 그 스킬북이 창고에 쌓여 있기만 한다면?

플레이어들의 성장이 심각하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

“정말 심각합니다. 심지어 길드나 파티가 사냥하면서 미래에 나올 스킬북에 대한 거래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길드나 파티가 스킬북이나 마석 판매 독점 계약을 맺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대부분의 길드나 파티가 기업들과 그런 독점 계약을 맺고 있었다.

현성의 친구인 윤성호 역시 그쪽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 독점 계약서 자체가 매매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겁니다. 잘나가는 길드나 파티의 경우에는 독점 계약서 한 장이 수백억에 거래되기도 한다더군요.”

“하!”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직 나오지도 않는 스킬북에까지 투자를 하다니?

이게 무슨 미친 짓이라는 말인가?

하지만 인간은 과거에도 종종 이런 미친 짓을 했다.

튤립 광풍 당시 사람들은 튤립의 알뿌리 하나를 가지고 그 튤립 알뿌리가 낳을 알뿌리의 권리와 또 그 알뿌리의 알뿌리가 낳을 알뿌리의 권리까지 사고팔았다.

말 그대로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인류는 지금까지 튤립 광풍 말고도 남해회사 주식, 미시시피 버블, 영국 철도 버블, 미국 대공황, 일본 부동산 버블, IT 버블, 비트코인 버블 등등 수많은 미친 짓을 해 왔다.

그런 만큼 딱히 스킬북 광풍이 불어닥친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수요 증가에 의한 가격 상승.

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의 매입.

일반인들의 구매.

이 전형적이 투기 광풍 논리가 스킬북에도 고스란히 적용된 것뿐이었다.

“막아야겠네요.”

현성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스킬북은 인류의 생존에 꼭 필요한 무기다.

한데 이 무기가 투기의 대상이 되다니?

이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예,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스킬북 구입 지시를 철회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현성 자문위원장님이 돈을 풀어 스킬북을 사들인다면, 스킬북 광풍이 더욱더 심해질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스킬북 구매 계획은 취소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뜻을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투기 심리를 잠재워야 할 것 같습니다.”

현성의 말에 강선영 길드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현재로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일단 현물이 존재하고 이번 미드호 사건으로 스킬북 가격이 한층 더 뛰어올랐습니다. 그런 만큼 쉽게 진정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현재 스킬북 광풍을 막기 위해서는 그 광풍을 가볍게 뭉개 버릴 만한 물량의 스킬북을 시장에 풀어야 한다.

수요에 비해 물량이 많으면 가격은 자연스럽게 하락한다.

그게 당연한 진리다.

하지만 스킬북 판매 독점 계약서까지 거래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스킬북이 대량으로 풀려나갈 리가 없었다.

“아마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야 이 광풍이 가라앉을 듯합니다.”

스킬북은 꾸준히 생산 중이다.

당연히 시간이 흐르면 수요를 채우고 남을 만큼의 스킬북이 시장에 풀릴 것이다.

“아뇨, 그때까지 기다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지?”

강선영 길드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현성은 방금 전까지 대량으로 스킬북을 구매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현성이 어떻게 스킬북 광풍을 잠재울 수 있겠는가?

“미국에서 받았던 스킬북 중 남은 수량이 좀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사냥해서 모아 놓은 것도 있고요. 이걸 풀어야겠습니다.”

당연 개뻥이었다.

현성에게 필요한 스킬북은 진작 다 익혀 버렸다.

중복되거나 남은 건?

모조리 시스템 상점에 팔아 버렸다.

“그걸로 스킬북 광풍을 잠재울 수 있을까요?”

“가능할 겁니다. 아니, 가능하게 만들 겁니다.”

강한 의지가 담긴 현성의 말에 강선영 길드장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대량의 스킬북을 풀 준비를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현성의 지시를 받은 강선영 길드장이 물러갔다.

전 세계를 커버하려면 엄청난 양의 스킬북이 필요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걸로는 부족하겠지?’

파르티샤의 차원을 휩쓸며 엄청난 수량의 스킬북을 얻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지구의 스킬북 경제 규모는 파르티샤의 차원과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하니까 말이다.

‘포인트 좀 풀어야겠네.’

하지만 손해는 아닐 것 같았다.

스킬북 가격이 폭등한 것은 지구지 시스템 상점이 아니다.

시스템 상점에서 현성이 스킬북을 구입하면?

현성은 폭등 전의 가격으로 지구에서 고가에 팔리는 스킬북을 구매하는 셈이 된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면 당연히 엄청난 시세 차익을 볼 수밖에 없다.

그 후 스킬북 거품이 꺼지면?

그 돈으로 천천히 스킬북을 매입해 다시 시스템 상점에 되팔아 포인트를 수복하면 된다.

‘뭐, 굳이 되팔 필요까지는 없으려나?’

포인트는 꾸준히 쌓이고 있다.

‘그때 상황을 봐서 결정하자.’

일단은 이 미친 스킬북 광풍부터 잠재우는 게 우선이었다.

* * *

현성이 시스템 상점을 열었다.

일반 등급, 희귀 등급, 영웅 등급.

현성은 세 종류의 스킬북을 집중적으로 구매했다.

화악!

툭!

화악!

툭!

현성의 발치에 스킬북들이 수북하게 쌓여 갔다.

‘영웅 등급은 금방 떨어졌네.’

시스템 상점에서도 영웅 등급 이상은 그리 물량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 등급과 희귀 등급은?

넘쳐 날 정도로 많았다.

현성이 계속 해서 구매를 이어 나갔다.

마치 시스템 상점에 있는 일반 등급과 희귀 등급 스킬북을 모조리 구매할 기세로 말이다.

수북이 쌓인 스킬북들을 등급과 종류별로 나눠 아공간에 넣어 버렸다.

‘많기는 많네.’

정말 미친 듯이 구매를 했다.

나중에는 거의 관성으로 위부터 아래까지 차례대로 구매 버튼만 연달아 눌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만약 부족하다면?

다시 한번 이 짓거리를 벌이면 그만이다.

현성은 강선영 길드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스킬북을 넘겼다.

강선영 길드장이 산처럼 쌓인 스킬북들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도, 도대체 이 많은 스킬북을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강선영 길드장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당연히 열심히 사냥해서 모았죠.”

현성이 짧게 대답했다.

“뭐, 일단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둘러대겠습니다.”

강선영 길드장의 현성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일개 개인이 모았다고 하기에는 스킬북의 수량이 많아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시장에서 동시에 풀어 주세요.”

현성의 말에 강선영 길드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시기보다는 시장 전체를 생각하시는 자문위원장님의 뜻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감사할 겁니다.”

강선영 길드장의 말에 현성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민망하신가 보군.’

강선영 길드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현성의 생각은 달랐다.

‘개인적인 이득 엄청 취하는 건데.’

시스템 상점과의 시세 차익 때문에 현성은 일단 팔기만 하면 최소 다섯 배, 많게는 수십 배의 이득을 볼 수밖에 없었다.

시세가 폭락해도 현성이 손해 볼 일은 없었다.

그때 다시 구매해서 시스템 상점에 판매하면 다시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이래도 이득 저래도 이득이었다.

‘그래도 경고는 좀 해 줘야지.’

현성은 인류의 수호신교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올린 글의 내용은 간단했다.

스킬북에 투자하지 마라.

스킬북 가격이 급등한 것은 거품에 불과하다.

지금이라도 손을 털고 나와라.

수많은 전문가들이 외쳤던 내용과 동일했다.

하지만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다.

-가격이 정상화될 때까지 전 세계 시장에 무제한적으로 스킬북 물량을 풀겠다.

현성의 말은 혼자서 스킬북 시장 전체를 안정화시키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이 없었다.

현성의 말대로 된다면 스킬북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이 돈에 미친 사람들 귀에 들릴 리가 없었다.

-개소리하네.

-맞는 말임. 아무리 최현성 플레이어라도 가격이 정상화될 때까지 스킬북을 풀 수는 없음.

대다수의 투자자와 일반인 들은 현성의 발언을 정신 나간 인간의 헛소리로 치부했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지.’

미리 스킬북 물량 푼다고 경고까지 했다.

현성으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셈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성이 강선영 길드장에게 넘겨준 스킬북들이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풀렸다.

처음에는 좋아했다.

-스킬북 물량 풀렸다!

-이모탈 길드에서 푼 거네? 이거 사도 되냐?

-최현성 플레이어 말을 믿냐? 일단 닥치는 대로 사!

-맞다! 사기만 하면 무조건 이득이다!

개인이건 단체건 할 것 없이 무조건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스킬북 물량이 많아도 너무 많았던 것이다.

-돈 다 떨어졌는데.

-물량이 언제까지 풀리는 거야?

-이러다 최현성 플레이어 말대로 폭락하는 거 아니야?

구매하던 이들의 자금력에 문제가 생겼다.

구매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무조건 존버해라. 그러면 무조건 이득이다.

-맞다. 플레이어가 있는 한 스킬북 가격은 꾸준히 오를 수밖에 없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플레이어는 생산자이자 소비자야. 시간이 흐르면 플레이어가 늘어나고 그럼 스킬북도 많아질 수밖에 없어.

-스킬북은 일반인도 익힐 수 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스킬북 가격은 더 오른다.

-웃기시네. 이미 끝물이야. 넌 지금 스킬북 가격이 정상으로 보이냐? 스킬북 가격이 너무 올랐어. 이건 폭락의 징조다 팔아라.

-최현성 플레이어가 물량을 풀어 일시적으로 가격이 떨어졌을 뿐이다. 흔들리면 안 된다.

-맞다. 우리는 최현성 플레이어가 돈지랄하는 거 받아먹기만 하면 된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풀 수 있는 물량에도 한계는 있다. 그때까지 존버하면 우리가 승리한다.

구매자들이 둘로 나뉘어 버렸다.

스킬북 물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팔아야 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현성이 푼 스킬북은 계속해서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끝도 모르고 올라갔던 스킬북 가격이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에 갈팡질팡하던 구매자들 중 일부가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물량을 풀었다.

스킬북 가격이 폭락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구매자들이 보유하고 있던 물량을 풀자, 스킬북의 가격이 더 빠르게 내려갔다.

이에 몇몇 구매자들까지 달려들자 스킬북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현성은 이쯤에서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스킬북 가격이 폭락하자 갑자기 닥치는 대로 매입하는 세력이 나타났다.

폭락하던 스킬북 가격이 주춤했다.

그러더니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현성은 이번에 대규모 물량을 풀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

하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현성이 의문 섞인 표정으로 강선영 길드장에게 물었다.

“그게 아무래도 의도적으로 스킬북 가격을 올리는 작전 세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으흠.”

현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다.

‘웬만한 규모의 작전 세력이 받아 낼 수 있는 물량이 아니었는데.’

그걸 받아 냈다.

의문은 또 있었다.

‘도대체 왜 물량을 받은 거지?’

스킬북 가격은 지금도 올라가고 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최고점일 때보다 떨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슬금슬금 올라가며 복귀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다시 최고점 찍었다가 자기들이 폭락시키려고 하나?’

그게 아니면 딱히 이유가 없었다.

‘그냥 같이 터는 게 좋았을 텐데.’

스킬북 가격이 미쳤다고 말할 정도로 올라간 상태였다.

객관적으로는 그냥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스킬북을 서서히 풀며 손해를 줄이는 게 최선이었다.

지금의 스킬북 가격은 거품이다.

누군가가 계속 물량을 받아 가며 조절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이대로 유지될 수가 없었다.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고.’

스킬북은 단순한 현물이 아니라 플레이어를 강화시킬 수 있는 전략 무기다.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무너트려 주마.’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스킬북 뿌릴 준비해 주세요.”

“스, 스킬북이 더 있으셨습니까?”

강선영 길드장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스킬북 가격이 안정화될 때까지 푼다고 했잖아요. 사실 초기 물량 정도면 되겠다 싶어서 적당히 풀었는데, 아무래도 그걸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네요.”

“그럼 이번에는 얼마나 푸실 생각이신지?”

“이번에 풀었던 물량의 다섯 배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그놈들도 감당하기 힘들겠죠.”

현성의 말에 강선영 길드장이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어디 한번 제대로 붙어 보자.’

현성이 이를 악물었다.

포인트의 단위가 수십억 수준으로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스킬북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을 뭉개 버릴 생각이었다.

* * *

“휴우! 이제 사태가 수습된 것 같구려.”

70대로 보이는 백발의 노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최현성 플레이어 때문에 큰일 날 뻔했소.”

다른 노인 하나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동의했다.

“허풍을 떤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혼자서 그렇게 많은 물량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소.”

“그래도 결국은 우리가 이겼소.”

“아니, 아직은 아니오. 이제 겨우 총물량의 40%만 확보했을 뿐이잖소? 이 정도로는 부족하오.”

“맞는 말이오. 80% 정도는 쥐고 있어야 시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을 거요.”

“그럼 언제쯤 작전을 시작하실 거요?”

지금 가격으로 스킬북을 구매하기에는 노인들에게도 부담이 컸다.

전체 물량의 80%를 확보하려면 스킬북 가격이 한번 제대로 폭락해야 했다.

“한 달쯤 상황을 지켜보며 천천히 물량을 풀다가 폭락시킵니다. 독점 계약서가 휴지 조각이 될 정도는 되어야 살 만하지 않겠소?”

“그럼 그렇게 합시다.”

현재 존재하는 스킬북의 80%.

플레이어들과 맺은 스킬북 독점 계약서의 독점.

이 두 가지가 이들의 목적이었다.

“돈도 벌고 건방진 플레이어 놈들에게 족쇄도 채우고 완전 일석이조요, 하하하!”

“그러나게나 말이오!”

노인들이 웃으며 다가올 황금빛 미래를 기다렸다.

스킬북은 시작에 불과했다.

스킬북 시장을 장악하면 무기, 방어구, 액세서리, 포션 등등의 아이템 시장을 하나하나 장악해 나갈 계획이었다.

그때였다.

덜컹!

문이 열리며 스킬북 시장 동향을 살피던 직원이 뛰어 들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직원의 외침에 노인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인가?”

“최, 최현성 플레이어가 다시 스킬북을 시장에 풀었습니다! 전에 풀었던 것보다 물량이 훨씬 많습니다!”

직원의 말을 들은 노인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이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다.

노인들은 최현성 플레이어가 보유하고 있는 스킬북이 바닥났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풀었던 물량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판을 완전히 먹기 위해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아 최현성 플레이어가 푼 스킬북을 사들였다.

사실상 전 재산을 다 쏟아부었다.

하지만 뒷일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시장을 장악한 후 스킬북 시세를 조작하면 투자금 정도는 금방 복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투자금의 몇 배를 버는 것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한데 여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최현성 플레이어가 추가로 스킬북을 풀었다.

머릿속이 멍해졌다.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면?

시세 조작을 통해 차익을 보지 못하면?

이들은 그대로 파산할 수밖에 없었다.

* * *

현성이 다시 대량의 스킬북을 풀었다.

상승세에 있던 스킬북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보다 스킬북의 가격이 떨어지는 폭이 더 극단적이었다.

현성이 푼 물량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스킬북 가격이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다.

-이건 잠깐일 뿐이야! 버텨라! 무조건 존버해!

-무슨 개소리야? 이건 거품 빠진 거다! 지금이라도 팔아야 해!

스킬북에 돈을 투자했던 이들이 둘로 나뉘어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스킬북 가격은 쭉쭉 떨어지기 시작했다.

현성이 스킬북을 푼 첫날, 가격이 10% 이상 떨어졌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폭락에 연속이었다.

적게는 다섯 배 많게는 30배까지 폭등했던 스킬북 가격이 순식간에 바닥을 쳤다.

-이건 진짜 끝이다!

-거품이 빠진 거야! 진짜 망했다고!

-그때 최현성 플레이어 말 들을걸!

-도대체 최현성 플레이어는 스킬북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었던 거야?

-가격이 정상화될 때까지 스킬북을 풀겠다는 최현성 플레이어의 글을 허풍이라고 생각했음. 그런데 진짜였음.

-난 최현성 플레이어가 글 올렸을 때 다 팔고 빠졌다. 그때 최현성 플레이어 말 듣기 잘했지. 완전 제대로 꿀 빨았다.

-이거 최현성 플레이어가 판 짠 거 아닌가? 지금 가격 폭락하는 이유가 이모탈 길드가 스킬북 풀어서잖아?

-최현성 플레이어가 판을 짰으면 뭐 하러 스킬북 풀어서 시장 폭락시킬 거라고 대놓고 말하냐, 그냥 조용히 스킬북 물량 풀어서 돈을 벌지.

-그건 그래. 최현성 플레이어가 돈 벌 생각이었으면 절대 저렇게 안 한다. 말도 안 하고 천천히 물량 풀어서 제대로 꿀 빨았겠지.

-맞다. 이건 최현성 플레이어가 우리를 위해 막대한 손해를 감수한 거다.

-개소리다! 무조건 존버해라! 스킬북 가격은 다시 오른다! 아직 최고점은 오지 않았다!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스킬북을 파는 사람, 팔지 않고 가지고 있는 사람.

사람들은 각자의 신념에 따른 선택을 했다.

하지만 애초에 거품으로 만들어진 시세였다.

현성이 대규모로 스킬북 물량을 푼 시점에서 거품은 꺼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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